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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임공
시연은 유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죠? 그냥 어르신을 잘 설득해 보시는 게...”

하지만 시연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이 말했다.

그는 안색이 변하지 않은 채 평온한 어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계약 결혼 조건으로 보상도 해줄게요, 돈으로요.”

‘금전적인 보상을 하겠다고?’

멍해진 시연은 차마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 우주는 아직도 치료비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고씨 저택을 찾아간 이유였지.’

시연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유건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시연 씨가 원하는 대로 드릴게요.”

시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눈을 흘기는 유건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조롱이 서려 있었다.

‘고작 돈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다니, 정말 보잘것없는 여자잖아?’

‘하지만 오히려 좋아, 앞으로도 다루기 쉬울 테니까.’

“그럼 합의서는 내가 준비할게요. 내일 아침, 신분증과 필요한 서류를 들고 구청으로 오세요!”

“네.”

이튿날 아침, 시연은 구청 입구에서 유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밤새 잠을 잘 자지 못했기 때문에 유건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머리가 멍한 상태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유건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본 시연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고유건 씨.”

하지만 유건은 시연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얼른 따라와요!”

“아, 네.”

절차는 빠르게 끝났는데, 혼인관계증명서를 손에 쥔 지시연은 왠지 마음이 복잡했다.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것도 모자라서, 결혼까지 하다니...’

구청의 입구에는 차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유건이 뒤에 있는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타요, 기사님이 집까지 데려다 줄 거예요.”

그는 곧장 앞에 있는 차로 향했다.

“형수님.”

주지한은 지시연에게 다가가 카드 한 장을 건네주었다.

“형님께서 주신 겁니다.”

‘바라던 바가 이렇게 빨리 실현되다니!’

시연은 사양하지 않았다.

카드를 건네받은 그녀는 유건을 향한 깊은 감사를 느꼈다.

“감사해요.”

하지만 유건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건 거래의 일부일 뿐이야. 고맙다는 말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고.’

“지한아, 이 여자는 네가 ‘형수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이만 가자.”

하지만 시연은 운전기사와 함께 가지고 않았고, 목적지의 주소를 물어본 뒤, 기사를 먼저 가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자폐증 치료 전문 요양병원인 태산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벤틀리 뮬산에 몸을 실은 유건이 지한에게 지시했다.

“소미 씨한테 가서 결혼이 없던 일이 되었다고 전해. 최대한 잘 달래주고,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들어줘. 꼭 그녀를 만족시켜야 해.”

“네, 형님.”

그때, 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카드 거래 명세서였다.

[XXXX 카드 승인, 고*건 님, 40,000,000원 일시불로 결제하였습니다.]

‘카드를 받자마자 이렇게 큰돈을 쓰다니!’

...

태산요양병원에서 나온 시연은 병원 진료비 납입 확인서를 가지고 있던 장부에 집어넣고는 꼼꼼히 메모를 해놓았다.

[XX년 X월 X일, 고유건 씨에게 4,000만 원을 빌렸음.]

시연은 결코 유건에게 공짜로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능력이 없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해서든 꼭 갚을 거야.’

한 가지 걱정거리를 해결한 시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동안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던 시연은 갑자기 긴장이 풀리자,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습의로서 무엇이 문제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날 밤 그 남자랑 너무 지나친 밤을 보내서 그런지… 이틀간 그곳이 심하게 아프고 출혈까지 있었어. 앞으로도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이네.’

이렇게 생각하자, 시연은 더 이상 지체할 엄두가 나지 않아 즉시 병원에 가서 산부인과에 진료 접수를 했다.

...

같은 시각.

회의 중이던 유건은 지한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

지한이 다급하게 말했다.

[장소미 씨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형님께서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갑자기 쓰러지셔서 지금 급히 병원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지금 바로 갈게!”

병원.

장미리가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딸! 약속했던 결혼이 물거품이 되다니, 억울해서 어째!”

“엄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유건 씨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에요.”

눈물을 글썽이는 소미는 아주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가 복이 없었던 거죠. 유건 씨, 그래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유건은 여자가 우는 것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었지만, 소미는 그의 첫 여자인 셈이었기에 그는 약간의 인내심을 가져야만 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만... 그 여자와의 결혼은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에요. 절대 그 여자를 향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조만간 이혼할 거고, 소미 씨와 한 약속도 꼭 지킬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요.”

유건이 말했다.

“정말이에요?”

장미리는 곧 울음을 그쳤다.

“고 대표님, 지금 우리 소미를 속이시는 건 아니죠?”

유건은 결코 의심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설령 그 사람이 장소미의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소미가 유건의 옷소매를 잡고 흐느꼈다.

“저는 유건 씨를 믿어요.”

이 말을 들은 유건의 얼굴빛이 누그러졌다.

‘얼마나 억울하겠어.’

‘모든 게 다 지시연, 그 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 때문에 내 신용을 잃었다고!’

“푹 쉬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요.”

“네, 유건 씨의 말대로 할게요.”

소미를 위로한 유건은 서둘러 회사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병원 로비를 지나던 그의 눈에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저 사람은... 지시연?’

‘집으로 가랬더니 왜 여기 있는 거야?’

유건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시연이 한 진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유건이 고개를 들어 팻말을 확인했다.

[산부인과.]

유건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30분 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 나오던 시연은 유건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시연은 멍해졌다.

“고유건 씨가 왜 여기 있어요?”

유건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산부인과에는 왜 온 겁니까?”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에요.”

시연이 눈이 반짝였다.

“고유건 씨는 알 필요 없는... 제 개인적인 일이라고요.”

갑자기 진료실 문이 열리고, 손에 의무기록 사본을 쥔 간호사가 소리쳤다.

“지시연 님, 신청하신 의무기록 사본 챙겨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시연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유건이 한발 앞서 의무기록 사본을 빼앗았다.

놀란 그녀가 발을 구르며 의무기록 사본을 빼앗으려 했다.

“돌려주세요! 보지 마시라고요!”

“내가 보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큰 키라는 장점을 활용한 유건이 의무기록 사본을 펼치자, 시연은 조급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체 당신이 뭔데요? 제발 보지 마세요!”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황이었다.

순간, 유건의 얼굴이 잿더미처럼 검게 변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천박한 상처야?”

수치심을 느낀 시연이 눈을 질끈 감았는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호사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남자 친구이신 것 같은데, 여태 그것도 모르셨어요? 정말이지 여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분이시네요. 그쪽이 쾌락을 찾는 동안, 환자분은 그곳이 심하게 찢겨 몇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고요. 사랑하는 여자라면 더 잘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녀가 등을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경험이 많지도 않으면서, 왜 자기 여자 친구한테 그런 쓸데없는 요구를 해?!”

유건은 누군가에게 몽둥이를 맞은 것 같았다.

‘심하게 찢긴 상처? 몇 바늘이나 꿰맸다고? 게다가... 쓸데없는 요구?’

‘허, 정말 얼마나 뜨거운 밤을 보낸 거야?!’

‘내가 이런 여자랑 결혼하게 될 줄이야!’

‘이제 막 결혼했는데, 나한테 이렇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물하다니!’

‘내가 고작 이런 여자 때문에 소미 씨를 슬프고 억울하게 한 거야?!’

“지시연, 그 어떤 말로도 네 뻔뻔함을 형용할 수는 없을 거야! 알아?!”

유건은 시연을 끌고 갔다.

그의 거센 힘으로 인해 통증을 느낀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당연히 할아버지께 가야지!”

‘막 혼인신고 한 여자가 이미 다른 남자와 첫날밤을 가졌고, 심지어는 수치스러운 상처 때문에 병원까지 방문했으니까!’

고유건은 잠시도 참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 네가 어떤 여자인지 똑똑히 말씀드려! 이렇게 방탕하게 몸을 굴리는 주제에, 감히 겁도 없이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혼약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먹여?!”

시연은 미안함과 동시에 억울함을 느꼈다.

‘결혼을 원한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었잖아?’

‘게다가 우리는 계약 결혼을 했을 뿐이고, 실질적인 부부관계와 간섭은 하지 않기로 했어!’

‘우리는 곧 이혼할... 그런 사이라고!’

‘하지만 고유건 씨가 나한테 큰 은혜를 베푼 건 사실이야... 그래,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자.’

병실에 도착한 유건은 시연을 거칠게 안으로 밀쳤다.

“들어가, 가서 네가 어떤 인간인지 할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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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가 없어졌으니, 지시연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시연이 예상한 바와 같이, 그녀는 실습 업무 자체로도 매우 바빴고, 시간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시연은 일주일간 틈틈이 일자리를 찾았는데, 배가 고프면 빵을 두 입 먹을 뿐이어서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그녀는 오늘도 야근하고 나서 일자리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 “시연아.”같은 실습의인 주하은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오준수 선생님께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시연은 멍해졌다.“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알아?” “모르겠어.”주하은이 고개를 저었다. “난 이만 채혈하러 가봐야 해. 너도 얼른 가봐.” “그래, 알겠어.”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날이랑 상황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녀는 곧바로 오준수의 사무실로 갔다. 오준수는 전문의이자 의대 실습의의 총책임자였다. 시연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오 선생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녀를 한 번 바라본 오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약간의 의혹을 품은 채 입을 열었다.“시연아, 병원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더러 실습이 중지됐으니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하더라.” 시연이 온몸을 떨며 눈동자를 움츠렸다. “왜... 요?”오준수가 고개를 저었다.“글쎄다, 학교 측에 물어보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만 돌아오더라고.” 총책임자이던 그는 시연이 실습의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론이든 수술 실습이든, 흠잡을 데가 없는 학생이었는데...’오준수도 곤혹스러워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감도 안 오는 거야?” ‘제가 무슨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겠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시연은 갑자기 심장이 꽉 조이는 듯했다. ‘틀림없이 고유건의 짓이야!’ 시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병원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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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에 들어선 시연은 침대 옆에 앉았다. 고상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시연아,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 짐은 다 챙긴 게야?” ‘준비? 짐을 챙긴다는 건 또 무슨 말씀이시지?’ 시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대답할 수 없었다.곧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고상훈이 말했다.“설마 유건이가 너한테 말을 하지 않은 게야? 이 자식이! 이럴 줄 알았어, 성의 없이 한 대답일 줄 알았다고!” 사실, 조만간 고상훈의 오랜 친구가 생일을 쇨 예정이었는데, 그는 직접 갈 수 없어서 고유건에게 지시연과 함께 가라고 한 것이었다. 이는 고상훈이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었다.이 나이까지 살아온 그가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유건과 시연을 붙여 놓으려 했다. “시연아, 이 할아비의 말을 좀 듣거라.” 고상훈은 두 젊은이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유건이가 다른 사람한테 지시를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 감정을 잘 가다듬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네.”지시연은 반박할 수 없어서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착한 아이구나.”고상훈이 흐뭇하게 웃었다.“시연아, 유건이는 너한테 맡기마.” 병실에서 나온 지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습이 중단된 일을 겪은 그녀는 유건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상훈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시연은 어려서부터 그 누구의 귀여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상훈은 늘 시연에게 잘해주었고, 그녀는 이를 감사하고 소중히 여겼다.‘그래, 다녀오자. 다 어르신을 위한 일이잖아.’ ‘어차피 이미 실습을 정지당했기 때문에 휴가를 낼 필요도 없어. 하지만...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면 선물은 준비해야겠지?’ ‘돈이 없어서 비싼 걸 살 수는 없으니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자.’ 마침 시간이 있었던 시연은 천음사로 향하는데... 그녀는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싸고 유건에게 전화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2화

    “지시연을 놔줘.”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유건은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지한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넘쳐흘렀다. “예, 형님.”지한이 황급히 손을 놓았다.하지만 이런 소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연은 깨어나지 않았다. 순간,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이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어쨌든 지시연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여기 온 거잖아. 나중에 할아버지께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는 건 내가 될 거라고.’ ‘정말 귀찮은 여자 같으니라고!’ 표정이 굳은 유건은 허리를 굽혀 시연을 가로로 안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가 시연을 옮기던 찰나, 그녀의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무릎에 있는 두 개의 멍이 드러났다. ‘이게 뭐야?’ 유건은 멍해졌다.‘이래서 어젯밤에 아프다고 한 건가? 근데 이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지?’ 그의 포근한 가슴에 기댄 시연이 놓지 못하겠다는 듯 유건의 목덜미를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은이야...” 유건은 또 한 번 멍해졌다.‘은이? 사람 이름이잖아?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지시연이 왜 잠결에 여자애 이름을 부르는 거지?’ 유건은 그제야 시연의 길고 볼륨감 있는 속눈썹, 모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얼굴, 그리고 분홍빛 도는 입술이 살짝 내밀어진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유건은 잠시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깨어난 시연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고... 유건 씨?” 유건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손을 풀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채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일부러 무섭게 말했다.“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내 방문 앞에서 죽지 말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두 걸음 세 걸음 멀어져갔다. 시연은 의아했다.‘목숨을 저주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지한 또한 그녀에게 말했다.“밤새 많이 추웠을 텐데, 샤워로 추위를 좀 몰아내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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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8화

    [알겠습니다, 형님.]전화를 끊자, 소미가 방으로 들어왔다.“유건 씨.”유건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저었다.“먼저 들어가 있어. 여기 담배 냄새 나.”담배는 임신한 여자에게 좋지 않으니까.“아, 네.”연기가 가라앉은 후, 유건은 문을 열고 들어가 소미가 건넨 물을 받았다.“좀 괜찮아요?”소미가 다정하게 물었다.“네.”유건은 물을 마시고 소파에 기대었다.“너무 많이 마셨나 봐.” 그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도 잠깐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제가 마사지해 드릴까요?”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의 곁에 앉으며 소매를 걷었다.남자가 거부할 틈도 없이, 그녀는 말했다.“눈 감아요. 우리 아빠가 술 마셨을 때 자주 해드렸어요.”여자의 손끝이 관자놀이를 누르자, 유건은 거부하지 않았다.“고마워.”소미가 잔잔히 웃었다.“저한테 뭘 그렇게 고마워하세요? 제가 유건 씨를 도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할 사이잖아요.”‘그래,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이지.’유건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익숙해져야 했다.소미의 손길이 생각보다 편안해서 그는 점점 나른해졌다.“유건 씨?”그녀가 속삭이듯 부르자, 유건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응...”소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가슴이 뛰었다.‘이건 기회야!’‘내 임신은 거짓말이잖아... 시간을 더 끌면 고유건은 의심할 거고, 배를 감출 수도 없을 거야.’‘그 전에 내가 확실히 해야 해. 이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그녀는 숨을 죽이고 목에서 어깨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유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남자의 입술과 단 한 뼘도 남지 않은 거리.하지만, 소미는 남자의 입술이 닿기 직전, 유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여자가 너무 가까이 있는 걸 깨닫고, 순간 멈칫했다.“소미 씨?”“유건 씨.”소미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키스해 줘요.”유건은 말이 막혔고, 본능적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7화

    유건은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로 돌아왔다.비서가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장소미 씨가 도착하신 지 좀 되었습니다.”오늘 밤, 유건은 한 연회에 참석해야 했고, 이번엔 소미가 파트너였다.“유건 씨.”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그냥 앉아 있어.”유건은 손을 살짝 흔들며 무심하게 말했다.“조애린 씨한테 들었는데,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네, 그래요.”소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양 감독님의 작품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촬영했거든요. 광고를 비롯한 일정이 과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요.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싫어요.”잠시 생각하던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미의 배를 힐끗 바라보았다.“몸에 이상 없으면 소미 씨 뜻대로 해. 다만, 배가...”언젠가는 드러날 것이었다.“아, 아직 문제없어요. 사극이라 의상 때문에 티도 안 나고요.”소미는 오늘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평평한 신발까지 신은 것을 떠올렸다.유건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양 감독님께 소미 씨 촬영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이야기해.”“네,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시간이 늦어서 유건은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미와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연회는 해성 호텔에서 열렸다.주차장에서, 노은범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고마워.”진주가 미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은범은 담담히 말했다.“별일 아니야.”그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본 하진주는 웃으며 말했다.“너무 긴장하지 마. 우리 약속했잖아? 친구처럼 지내기로.”“알아.”은범은 살짝 찡그렸다.“하지만, 네가 나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괜찮아.”진주는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 엄마도 연관되어 있으니까.”그녀는 남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그냥 편하게 가자.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들도 우리가 진짜 안 될 거라고 깨달으시겠지.”은범은 한결 편안해졌다.‘나보다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6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진주를 힐끗 바라보았다.“내가 보기엔 진주가 참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우리 은범이 복이 없는 탓이지, 뭐.”진주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이모, 그런 말씀 마세요. 과찬이세요.”“진주야.”강수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진주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지난번에 은범이랑 같이 연극 봤다면서? 그 후로는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말해 봐. 은범이의 뭐가 마음에 안들었니?”“그게...”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지난번에 은범과 미리 조율한 대로, 진주는 연극을 본 후 자기 부모님께 자신이 은범을 향한 마음이 없다고 전했다. 이는 진주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거였고, 은범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강수희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진주는 은범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모, 은범이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다만, 저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이 말이 강수희에게 희망을 주고 말았다.“그럼, 좀 더 만나보고 알아가면 되잖아? 제발, 은범이에게 기회를 줘 봐, 응?”“어머니!”은범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다가왔다.그는 먼저 방혜령에게 인사를 건넸다.“이모, 오랜만이네요.”그리고 곧바로 어머니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어머니, 이모는 어머니를 뵈러 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내가 이러는 건...”“괜찮아.”방혜령이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을 은범에게 두었다.“이제 많이 컸네? 그런데 너희 엄마 말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아.”그녀는 딸을 한번 흘긋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한 번 본 걸로 판단하기엔 너무 성급하지 않아? 좀 더 만나면서 알아가는 게 맞지 않나?”강수희가 기뻐하며 맞장구쳤다.“내 말이!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어머니!”“엄마!”은범과 진주가 동시에 소리쳤다.그 모습을 보고, 방혜령과 강수희는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5화

    과장실 문 앞에서, 시연은 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형수님.]“지한 씨.”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유건 씨와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죠. 형님도 여기 계세요.]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유건의 무심한 어조.“심폐 프로젝트팀에 내가 들어가게 된 거, 당신이 한 일이에요?”질문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개입했다면, 바로 이해할 터였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남자의 답이 돌아왔다.[그래.]전혀 놀랍지 않았다. 시연은 눈을 감았지만,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여자의 침묵에, 유건은 비웃듯 말했다.[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벌인 일이라는 이유만으로?]시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멍청하긴...]유건이 낮게 욕했다.[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간다는 게 너한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설명해야 하냐?]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팀에 들어가면 분명 시연의 수입도 늘어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경험과 기술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돈 때문이라면 이렇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지시연.]유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나와 관계를 끊는 게 중요해? 아니면 네 미래가 더 중요해?]책망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시연도 알고 있었다.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결정을 내렸다.“고마워요, 유건 씨.”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다.‘다행이네. 이 여자, 결국 받아들였어!’하지만 시연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유건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예전엔 내가 잘못했어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요. 앞으로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유건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4화

    ‘원래라면, 저 여자, 부와 명예를 누려야 마땅해. 하지만 지금은...’...차에 돌아온 지한은 유건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즉, 유건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묵직한 어둠과 슬픔을 느낀 것.‘설마, 또 형수님한테 혼난 건가? 그게 아니면, 이번엔 진짜로 맞기라도 한 건가?’“형님...”“지한아.”유건의 시선이 멍하니 허공을 가로질렀다.“방법을 좀 찾아봐. 시연이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내가 돈을 건네면, 시연이는 절대 받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연이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건 아닐 거야.’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시연이가 돈과 명예를 탐하는 여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 한심해!’...시연은 임진아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에 양석현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교수님.”[시연아, 내일 오전에 내 사무실로 와. 할 말이 있어.]“네, 교수님.”양석현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다음 날 아침, 시연은 교대 근무도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외과로 향했다.양석현은 회진을 마친 후에야 시간을 냈고, 시연을 과장실로 데려갔다.“일찍 왔구나. 앉아.”시연은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았다.“교수님, 무슨 일이신가요?”‘혹시 내가 1학년 실험 수업을 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걸까?’“뭘 그렇게 긴장해?”양석현은 일부러 뜸을 들이다가도, 결국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은 소식이야.”그는 서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시연에게 건넸다.“이걸 작성하면, 너는 공식적으로 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가게 될 거거든.”시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교수님, 이게... 정말 규정에 맞는 건가요?”“규정대로라면, 맞지 않지.”양석현이 웃었다.“원래는 네가 대학원에 합격하면 팀에 넣을 생각이었어. 그 자체도 예외적인 거지만 말이야.” 그런데 아직 대학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양석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3화

    차가 시연 앞에 멈췄다.창문이 내려가더니, 지한이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지었다. “형수님, 어디 가세요? 타세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시연은 유건을 흘낏 보았다.‘이상하네, 왜 조수석에 앉아 있지?’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또 유건의 차를 타면 점점 엮이게 될 것 같았다.“형수님, 얼른 타세요.” 지한은 차를 움직일 기색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내려서 직접 문 열어드려야 합니까?”“아니에요...”시연은 거절하려 했지만,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뭐야, 버스 정류장에 세우면 안 되는 거 몰라?”“그러니까! 버스가 못 지나가잖아.”“빨리 가라고!”“벤틀리네, 저런 차를 태워준다는데 안 탄다고?”“재수 없어.”점점 더 듣기 거북한 말들이 오갔다.어쩔 수 없이, 시연은 차 문을 열고 탔다.“형수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차에 타자마자, 지한이 물었다.시연은 대답 대신 조수석에 앉아 있는 유건을 바라보았다.‘이거 완전 악연 아니야? 왜 자꾸 마주치는 거지?’“형수님.” 지한이 웃으며 유건을 가리켰다. “마침 형님이 차에 계시긴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진 마세요.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어차피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요.” 시연은 당황했다. ‘이 둘 뭐 하는 거야?’“이제 목적지 말해주실래요?”지한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형수님, 실은 우리도 친구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제가 그저 한 번 모시고 가는 걸로 부담 갖는 건 아니시죠?”지한의 말에 시연은 결국 마지못해 답했다.“산신당으로 갈 거예요.”지한은 잠시 멈칫하더니, 본능적으로 조수석의 유건을 바라보았다.“거기서 볼일 있으세요?”“네.”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살 게 있어서요.”‘거기서 뭘 사려는 거지?’산신당은 G시보다 더 오래된 곳일지도 모른다. 사찰뿐만 아니라 재래시장도 있어, 평범한 서민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으니 말이다.분명 번잡하고 활기차지만, 고급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2화

    시연은 믿을 수 없었다.‘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우리한테 단 한 번도 아버지 역할을 해주지 않던 사람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지동성은 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다시 한번 말하마. 우주를 ‘웰스’로 보내는 돈은 이 아빠가 다 낼게.” 시연은 멍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닌데, 이해할 수 없었다.“왜요?”지동성은 한숨을 쉬며 난감한 듯 말했다.“아버지가 자식한테 돈을 주는 데에도 이유가 필요하니?”‘이유가 필요하냐고? 그럼 그때 우주의 치료비를 끊고,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건 누구였더라?’‘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그 중심에 있던 거 아니었나?’ 시연은 믿을 수 없었다. 곧이어, 지동성이 말을 이었다.“시연아, 곧 다가올 아빠의 생일에 네가 꼭 와줬으면 좋겠구나.”시연은 또다시 얼어붙었다.‘오늘따라 무슨 일이 이렇게 많아?’무심결에 튀어나왔다.“무슨 뜻이에요? 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흠.”지동성이 가볍게 기침했다.“아빠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앞으로 몇 번이나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단다. 가족끼리 모여서 밥 한 끼라도 같이 먹고 싶어.” ‘뭐 이런 헛소리가 다 있어?’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냉소를 흘렸다.“아내도 있고 딸도 있잖아요. 가족이랑 매일매일 함께하잖아요?”“시연아.”지동성이 딸의 말을 끊고, 불만스럽게 고개를 저었다.“너와 우주도 아빠의 자식이야.”그는 모델 조립에 열중하고 있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아빠의 생일에 와준다면, 네가 나를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게. 그때가 되면 우주의 치료비는 얼마가 되든 내가 책임지마.” ‘우주를 빌미로 협박하는 거야?’시연은 본능적으로 떠올렸다.‘로얄호텔에서의 그때도...’그녀는 경계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예요?”딸의 반응을 본 지동성도 깨달은 듯했다. 잠시 스치는 후회의 눈빛.“아빠가 뭘 할 수 있겠니? 그냥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1화

    주말, 시연은 여느 때처럼 태산 요양병원에 우주를 보러 갔다.“시연 씨.”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오늘은 꽤 이른데요?”“실습이 끝났거든요.”“그분, 시연 씨보다 더 일찍 왔어요.”시연은 순간 멈칫했다. “누가요?”“지난번에도 왔던 분이요. 시연 씨랑 우주의 아버지라고 하시던데요?”순간, 시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 지동성이야?’‘요즘 대체 왜 저러는 거야?’“그리고...”간호사가 시연을 조용히 불러 세우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분이 우주가 ‘웰스’ 검사받은 거에 관해 물어보셨어요.”그 말을 듣자, 시연의 이마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알겠어요. 고마워요.”“별말씀을요.”간호사와 작별한 뒤, 시연은 우주의 병실로 들어갔다.방 안, 우주는 바르게 앉아 있었고, 지동성은 그의 맞은편에서 상자를 열고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우주야, 그거 마음에 드니?”멀리서 본 그것은, 비행기 모델이었다.우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남자아이들이 이런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누나.”우주는 고개를 들어 시연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최근 이 아저씨가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나가 싫어한다면, 그 선물을 받을 순 없었다.우주가 실망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시연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우주가 마음에 들면 받아. 그리고 감사하다고 해야지.”“아, 감사합니다!”우주는 기쁜 듯 지동성을 향해 방긋 웃으며 상자를 안아 들었다.“우주야, 잘 가지고 놀아.”“네!”시연은 그제야 지동성을 마주 보았다.“오셨어요?”그녀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지난번엔 오실 줄 몰라서 못 돌려줬는데, 이번엔 가져왔어요. 돌려드릴게요.”지난번, 지동성이 간식 봉투 안에 넣어둔 돈이었다.지동성은 찡그리며 받지 않았다.“받으세요.”시연은 재촉하며 덧붙였다.“그리고, 그 모델 얼마 주고 사셨어요? 같이 송금해 드릴게요.”“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0화

    “그럼,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 “간호사님, 수액 놔주세요.” 유건은 한발 물러서며, 핸드폰을 꺼내 은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은범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네 번까지. 그는 결국 포기했고, 다시 수액실로 돌아왔다. 그 사이, 간호사는 이미 시연에게 주사를 놓고 있었다. 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고, 수액을 맞고 있었다. 유건이 들어서자, 시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가려는 거예요?” 유건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못 가.” 그는 핸드폰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너희 ‘은이’가 전화를 안 받더라고.” 시연은 순간 멍해져서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바쁘겠죠.” “응.” 유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실은 냉방이 켜져 있었고, 침상에는 이불이 없었다. 유건은 입고 있던 정장 외투를 벗어, 시연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좀 불편해도 참아. 네 남자 친구한테 안전하게 넘기기 전까진, 절대 못 가.” 남자의 태도는 변함없이 고집스러웠다. ‘이 남자는 정말로 쉽게 물러나지 않는구나.’ 결국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냥 유건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기로 했다. 그 사이, 유건의 핸드폰이 몇 번 울렸다. 그는 멀리 가지 않고, 시연의 곁에서 전화를 받았다. 실은 유건에게 온 전화는 대부분 주지한이 걸어온 업무 관련 전화였다.“난 못 가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그래, 그렇게 해.” 시연은 눈을 감은 채,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일이 있다면서, 왜 끝까지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나를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건가?’ 시연은 손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첫 번째 수액이 끝날 무렵, 이번엔 은범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유건이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에서 불쾌감이 묻어났다. “노 사장님, 바쁘셨나 보네요.” 전화기 너머의 은범이 정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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