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68화

Auteur: 임공
“진주야!”

은범의 어조가 한층 낮아졌다. 그에게 있어서는 나름의 단호한 표현이었다.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내 일에 상관하지 말고 당장 가줘.”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를 찾지 마. 우리, 더 이상 만날 필요 없어.”

이 말을 마친 그는 진주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진주는 다급한 마음에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은범은 전류가 흐르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진주의 손을 뿌리쳤다.

남자의 차가운 태도에 진주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왜 그래...? 우리, 잘 지내왔잖아...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널 기분 나쁘게 했어?”

진주의 말에 은범은 가늘게 눈을 떴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진주는 늘 우리가 친구라면서 우리 부모님을 속이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진실한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 단순한 친구라면, 이런 표정을 지을 리 없을 테니까.’

“허...”

은범은 비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시연이는 하진주를 딱 한 번 보고서 나와의 이별을 결심했어!’

‘사실... 시연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우스운 건, 내가 시연이한테 해명하려 했던 거지!’

‘나랑 하진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면서...’

하지만 은범은 이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여자를 곁에 두고 다닌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 그는 시연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시연을 잃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진주.”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은범의 목소리는 한층 차분해졌다.

“난 너를 좋아하지 않아.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만 돌아가. 그러면 우린 앞으로도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계속 이런다면... 우린 결국 남이 될 수밖에 없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진주가 더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더 이상 부정하지도 않았다.

“미안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폐를 끼쳤어. 그럼, 난 이만
Continuez à lire ce livre gratuitement
Scanner le code pour télécharger l'application
Chapitre verrouillé

Related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69화

    유건과 시연의 신혼 첫날밤은 살며시 스며드는 봄비처럼 다가왔고, 한여름 소나기처럼 뜨겁게 타올랐다.결국, 시연의 눈꺼풀이 감겨 버렸다.“여보, 물 좀 마셔.”유건은 시연을 품에 안고 물컵을 들어, 그녀의 입에 반쯤 가져다 댔다.“고마워요.”낮과 달리 한층 부드러워진 여자의 목소리였다.유건은 미소 지으며 받아들였다. “천만에, 여보.”‘역시 부부 사이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구나.’‘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부부 싸움은 침대에서 끝난다더니, 정말 딱 맞아.’유건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을 뒤적였다. 그러다 약을 하나 찾아 들고 돌아와 이불을 살짝 들추고는 시연의 발목을 잡았다.그는 아까 시연의 뒤꿈치가 벗겨진 걸 알아차렸었다. 시연은 평소에 힐을 신지 않는 여자였지만, 결혼식이기 때문에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짧게나마 힐을 신었다. 그러다 결국, 발뒤꿈치가 까진 것이었다. 유건은 약을 짜 손가락 끝에 묻혀 조심스레 상처 위에 발랐다.차갑고 약간 따끔한 감촉.“앗!”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을 움찔거렸다.“뭐 하는 거예요?”“가만히 있어.”유건은 여자의 다리를 살며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다정하게 말했다.“뒤꿈치가 까졌잖아. 약 바르면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착하지.”시연은 여전히 귀찮다는 듯한 얼굴을 하며 재촉했다.“빨리 해요! 너무 귀찮아요. 지금 자야 해요.”“알았어, 알았어.”유건은 서둘러 남은 상처에도 약을 발랐다.“다 됐어. 이제 자.”“흥...”시연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려 잠들어 버렸다.‘저것 좀 봐, 완전 귀찮다는 얼굴인데?’유건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나도 하루 종일 피곤했어.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챙겨줬는데, 칭찬 한마디도 안 해주는 거야?’ ‘조금 전까지 날 붙잡고 울던 사람은 어디 간 거지?’ ‘참, 자기 필요할 때만 날 찾는다니까.’ 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다음 날 아침.유건은 평소처럼 일어났다. 시연은 지쳐 있었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0화

    “침대로?” 시간이 아직 이르니, 좀 더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유건은 시연을 침대에 눕혔다. 시연은 허리를 한번 문지르더니, 참지 못하고 남자를 흘겨보았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그래, 다 내 잘못이야.” 유건은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이 인간, 진짜 뻔뻔하긴...’ 시연은 못마땅한 듯 다시 남자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안 잘 거면 내 허리 좀 주물러 줘요.” ‘어이구, 아주 능숙하게 부려 먹네.’ 하지만 유건은 거절할 생각도 없이 아주 쿨하게 대답했다. “좋아, 내가 해줄게. 내 손기술이 당신보단 못해도 힘 하나는 좋을 테니까.” 남자의 손바닥이 시연의 허리에 닿았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돼?” ‘오, 고 대표 손기술도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힘쓰는 일은 남자가 유리한 게 맞아.’ “네...” 시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른하게 몸을 맡겼다. “그렇게... 그래요... 거기...” 마치 고양이처럼, 나른하면서도 애교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시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벌써 정오였다. 순간, 그녀는 당황하며 황급히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 태평하게 앉아 있는 유건을 보자 괜히 화가 났다. “왜 안 깨웠어요?” 유건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깨우면 ‘왜 깨우냐’고 뭐라 하고, 안 깨우면 ‘안 깨운다’고 또 뭐라 하고. 사모님,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었어? 너무 곤란한데?” 사실 그는 시연이 늦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시연이 할아버지를 신경 쓴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바로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시는데. 그리고 아직 안 늦었어.” 더 이상 유건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서 시연은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신혼 첫날, 시연이 고른 옷은 연한 보랏빛 롱 원피스였다. 왼손 약지에서는 유건과 맞춘 커플링이 빛났다. 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1화

    시연과 유건은 가장 마지막에 도착했다.문에 들어서자, 지하와 몇몇이 장난스럽게 놀려댔다.“어젯밤에 너무 힘들었던 거 아니야?”“형수님, 정말 수고하셨어요!”“이야, 이러다 이삿짐 싸야 하는 거 아냐?”“너희, 평생 장가 안 갈 작정이냐?”다들 어른이 되고도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시연은 그들의 말다툼에 끼지 않고, 우주를 바라보았다.지금 우주는 고상훈과 함께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둘만이 유일하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있었다.진아가 살짝 다가와 속삭였다.“꽤 오래 두고 있어. 처음엔 어르신께서 우주에게 말도 걸었는데...”그 말은 곧, 지금은 조용하다는 뜻이었다.‘왜...?’시연은 고상훈의 표정을 살폈다. 심각한 얼굴이었다.‘이거 좀 불안한데.'노인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굉장히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고상훈은 바둑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만한 실력자가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상대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것도 겨우 십 대의 소년.이번 한 수를 두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다행히도, 우주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랐다. 성급하게 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시연은 바둑을 둘 줄 몰랐다. 전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고상훈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우...”입을 열어 우주를 부르려는 순간, 유건이 허리를 감싸며 그녀를 저지했다.시연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왜 그래요?”“당신이야말로 뭐 하려는 거야?”유건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두 사람 바둑 두고 있는데, 방해하면 안 되지.”“우주가 괜히 할아버지에게 폐 끼칠까 봐...”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우주는 바둑 둘 줄도 몰라요...”“우주가 보통 아이야?”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내가 보기엔 잘 두고 있던데?”“하지만...”시연은 망설였다.고상훈의 표정을 보면, 우주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그럴 필요 없어.”유건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2화

    “젊은 사람들끼리 재미있게 놀다 와.”시연의 몸 상태 때문에 신혼여행 계획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제남도를 떠날 것도 아니었다.계획대로라면 섬에서 이틀, 삼일 정도 더 머무르며 쉴 예정이었다.오후가 되자, 유강석이 앞장서서 바닷가에 가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동의했다.시연은 우주를 걱정하며 물었다.“우주, 가고 싶어?”우주는 반짝이는 눈으로 시연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누나, 가고 싶어.”하지만 시연은 여전히 고민되었다. 몸이 불편한 탓에 동생을 제대로 돌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주는 영리했다. 바로 유건에게 시선을 돌렸다.게다가 우주는 시연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간절하게 바라볼 때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곤 했다.유건이 그걸 이겨낼 리 없었다. 결국 처남을 위해 나섰다.“가자. 우주는 걱정하지 마. 내가 볼게. 마침 우주도 수영 배우고 싶다며? 내가 가르쳐 줄게.”우주의 두 눈이 더 크게 빛났다.몇 번이나 말하려다 망설이며, 결국 기대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매형, 진짜... 진짜야?”“진짜지.”유건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내가 너한테 거짓말하면, 네 누나가 날 가만둘 것 같아?”“누나.”매형의 약속을 받고 나니, 우주는 다시 시연을 바라보았다. 결국 결정권은 누나에게 있었다.동생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던 시연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물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그녀는 유건을 믿었다.감정을 떠나, 유건이라는 사람 자체가 신뢰감을 주었다.“와!”우주는 기쁨에 들떠 뛰어올랐다.“매형! 누나가 허락했어! 얼른 가자!”그렇게 다들 바닷가로 향했다.남자들은 전부 바다로 뛰어들었고, 시연만이 해변 의자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임진아는 자연스럽게 시연 곁을 지켰다.“안 들어가?”“귀찮아.”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움직이기도 싫어.”“히힛.”진아는 장난스럽게 다가오며 속삭였다.“어젯밤에 너무 무리했어?”시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3화

    “네?”진아가 고개를 돌려 보니, 부지하였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이내 다시 가라앉았다.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는 사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지하는 여자의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궁금해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아무 말 없이 표정만 저렇게 변하는 걸까?’그가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려 가게의 코코넛을 바라보니, 이미 개봉된 상태였다. 상황이 다 이해됐다.지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핸드폰 안 가져온 건가?”진아는 순간 멍해졌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결심한 듯 손을 꽉 쥐며 말했다.“실례지만, 대신 결제해 주실 수 있나요? 핸드폰 찾으면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흠...”지하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했다.코코넛 몇 개 값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진아가 원한다면, 섬 하나를 사서 선물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 쫀득한 찹쌀떡 같은 진아가 묘하게 재미있어서 장난치고 싶어졌다.“못 해 줄 건 없지.”“정말요?”진아는 반색하며 기뻐했다.“응.”지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대신, 나를 ‘오빠’라고 한 번 불러 봐. 그럼 그냥 사줄게. 돈도 안 받을게, 응?”진아는 순간 얼어붙었다.‘뭐라고?'그리고 곧바로 깨닫고는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됐어요! 도움 안 받을래요!”‘성빈이 말이 맞아. 이 사람,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코코넛 몇 개 사 준다고 생색을 내다니! 게다가 이런 장난까지!’진아가 화가 나서 돌아서려던 순간, 가게 주인이 말했다.“어이, 아가씨! 돈 안 내고 어디 가!” 이와 동시에 지하가 진아의 손목을 붙잡았다.“사장님 말씀 들었지? 아가씨, 먹튀는 나쁜 거야.”진아는 당황스럽고 화가 나면서도 창피함까지 몰려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됐어.”지하는 더 장난을 칠 기세였지만, 이대로 가다간 진아가 진짜 폭발할 것 같아서 적당히 멈추기로 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4화

    “지하야, 우주 좀 잘 부탁해.”“걱정하지 마.”지하는 가볍게 OK 사인을 그려 보였다. ‘우주는 유건이 아내의 심장 같은 존재니까, 내가 당연히 잘 챙겨야겠지.’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유건은 시연을 방으로 데려가서 재우려 했다.혹시라도 햇빛이 들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아를 바라보았다.“진아 씨, 부탁 좀...”“네.”진아는 유건의 말에 따라 방수 의류를 들어 시연의 얼굴과 머리를 가렸다.“됐어, 고마워.”유건은 한숨을 돌리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그 태도에 진아는 순간 놀랐다.‘고 대표가 이렇게까지 시연이를 아끼다니.’그녀는 연애를 해본 적 없지만, 주변 친구들의 연애는 익히 봐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남자도 유건과 비교할 수 없었다.‘이래서 시연이가 결혼을 결정했구나.’이제 진아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그것은 바로 유건이 앞으로도 시연만 바라보고, 장소미 같은 사람과는 더 이상 얽히지 않는 것. ...유건은 시연을 방으로 데려가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그리고 커튼을 내려, 편히 잘 수 있도록 했다.몇 분 정도 옆에서 머물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우주는 여전히 해변에 있었다.물론 지하가 잘 챙기고 있겠지만, 그래도 유건은 시연과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해가 저물 무렵, 시연이 눈을 떴다. 푹 자고 난 덕분에 머리가 개운했다.그리고 방 안은 조용했고, 그녀 혼자뿐이었다.시연이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어 보니, 바깥은 무척이나 떠들썩했다.모두가 머무는 곳과 테라스는 연결되어 있었고, 중앙의 넓은 공간에는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BBQ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붉게 물든 노을과 겹쳐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가운데에는 진아와 성빈이 있었다.진아는 바비큐를 굽고 있었고, 성빈은 잘 깐 귤을 그녀 입에 하나씩 넣어 주고 있었다.시연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시연아, 일어났어?”진아가 바로 반응하며 성빈을 툭툭 쳤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5화

    옆에서 빠르게 한쪽 팔이 뻗어 나와 우주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러나 너무 급한 탓에 숯불 화로가 그대로 넘어가면서 뜨거운 숯이 쏟아졌다. 그중 일부가 그 팔 위로 떨어졌다.“쓰읍!”유건이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입을 벌린 시연은 약 2초가량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유건 씨!”이어서 본능적으로 남자의 팔을 잡아 살펴보았다.“빨리 보여줘요.”그녀는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리고 더 볼 것도 없었다. 고온의 숯이 직접 닿았으니 당연히 화상이었다.“빨리 와요!”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시연은 유건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우선 세면대 앞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로 화상 부위를 식혔다.“잠깐만 있어요.”여자는 곧바로 욕실로 뛰어가 대야를 찾아 들고, 냉장고의 얼음 칸에서 얼음을 퍼 담았다.그런 다음, 단호하게 지시했다.“팔 넣어요.”유건은 시연을 바라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왜 멍하니 있어요?”시연은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너무 아파서 정신이 나간 거예요?”그리고 답답해서 남자의 손을 직접 잡고 강제로 얼음물에 담갔다.유건은 당연히 정신을 놓은 게 아니었다.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시연이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시연은 원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지금처럼 유건을 신경 써 주고, 다급하게 챙기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그게 유건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역시,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거겠지?'유건은 시연이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단순히 할아버지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순간, 그는 멀쩡한 팔로 시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리고 여자를 품에 끌어당겼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물었다.“여보, 날 좋아하지?”질문을 뱉어낸 순간, 남자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사실, 유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시연이 자신을 조금은 좋아한다는 사실을.하지만 그녀가 직접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 또한 묻거나 확인하지 않았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76화

    우주에게 차근차근 가르치듯 말하길 십 분.“누나가 말한 거, 기억했어?”“응!” 우주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시는 안 그럴게. 누나, 화내지 마.”동생이 잔뜩 주눅 든 모습을 보니 시연의 마음이 또 약해졌다.그녀는 우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누나는 화난 게 아니야. 우주가 걱정돼서 그래.”바로 그 순간, 우주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아이고!”기다렸다는 듯이 진아가 우주의 팔을 잡았다.“우리 우주 배고프다! 나랑 같이 가서 뭐 좀 먹자!”그녀는 우주를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아이고 참, 우리 우주를 배고프게 했네!”방 안에는 다시 부부 둘만 남았다.시연은 유건을 한번 바라보고 나서, 약상자를 꺼냈다.이곳의 약상자는 꽤 잘 갖춰져 있었다. 화상 연고까지 있었다.“얼음찜질은 이 정도면 됐어요.”그녀는 유건의 팔을 살며시 잡아 닦아주었다.“물기부터 닦고, 연고 바를게요.”이어서 깨끗한 거즈를 꺼내 물기를 조심스럽게 흡수한 후, 면봉으로 연고를 정성껏 발랐다.그리고 한층 신중해진 얼굴로 말했다.“아마 물집이 잡힐 거예요. 더 아플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터뜨려 줄게요.”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며, 입술을 앙다물고 조용히 말했다.“미안해요.”시연은 자기 동생이 유건을 다치게 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건은 순간 멍해졌다가,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그런 말은 하지 마.”그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아내가 남편한테 이런 식으로 사과해야 하나?’어쩐지 유건의 속이 상했다.“지시연, 지금 너는 내 아내고, 우주는 내 처남이야. 그런 사과는 필요 없으니까 취소해.”시연은 순간 당황했다.‘말한 걸 어떻게 취소하라는 거지?’하지만 유건은 진심으로 기분 나빠했다.시연은 살짝 남자의 손을 잡고 나긋하게 말했다.“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취소할게요.”그녀는 때로는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오늘 유건이 아니었으면, 다친 건 우주였을 것이다.그런 남편에게 사과하는 것은 이상한 일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1화

    시연의 어투는 담담했다. 하지만 유건의 귀에는, 그 말투가 기묘하게 비꼬는 듯 들렸다. 그는 애초에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복되는 비아냥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었다.“내가 팔을 다친 건, 다 너 때문이야!”“네?” 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말요...?”“그래!” 유건은 당황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설명하려 들었다.“그때 나는...”“그만해요.” 시연은 그의 말끝을 잘랐다.“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계속 말할래요?”유건은 움찔했다. 차가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왠지 모를 무력감이 밀려왔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그래, 안 할게. 가자.”그렇게 그는 시연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고씨 가문의 본가였다.본가에 도착하니, 집 안에는 왕성애만 있었다. 고상훈이 입원 중이라 이호민은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집안일은 왕성애가 맡고 있었다.거실에 들어서자 시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모님,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객실 하나 정리해 주세요.”“네...?” 왕성애가 잠시 멈칫하며 유건을 바라봤다. 그런데 유건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놀란 눈치였다. 이 얘기는 금시초문인 듯했다.“객실은 왜?”“내가 써야 하니까요.” 시연은 얕게 웃으며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이모님, 제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어서 고유건 씨랑 따로 자는 게 편할 것 같아요. 부탁드릴게요.”“지시연!” 유건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왕성애를 힐끔 보더니, 낮게 말했다. “이모님, 먼저 들어가 계세요.”“아, 예예...” 왕성애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유건은 시연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가, 침실 문을 닫았다. 눈빛에 분노가 가득했다.“도대체 너, 뭐 하자는 거야? 어?”“왜 소리를 질러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0화

    유건은 능력 있고, 잘생기고, 집안까지 완벽하며, 시연에게도 잘했다. 시연이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이성을 놓고,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 시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해.’ ‘그리고 이제 나는, 정말 푹 자야 해...’ 그녀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잘못된 감정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밤새 깊은 잠을 잤다. 시연이 눈을 떴을 때, 팔이 묘하게 무거웠다. 아파서가 아니라, 눌린 느낌. 그리고 고개를 숙여보니, 유건이었다. 그가 침대 옆에 앉아, 시연의 손을 꼭 잡은 채, 팔에 머리를 얹고 잠들어 있었다. ‘어쩐지 무겁더라.’ 그녀는 이 남자가 언제 왔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시연은 팔을 힘껏 빼보려 했지만, 여자와 남자의 힘 차이는 너무 컸다. “유건 씨.” 시연은 더 이상 뵈는 게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요. 팔 저려서 미치겠으니까.” “응...?” 유건은 곧바로 눈을 떴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여자의 팔을 풀어줬다. “여보, 일어났네.” ‘그건 나도 알지.’ 시연은 유건의 의미 없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침착하게 침대 옆 호출 벨을 눌렀다. 곧 간호사가 들어왔다. “사모님, 일어나셨네요. 세수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몸이 훨씬 나아졌어요. 퇴원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럼 주치의한테 여쭤볼게요.” “네, 부탁해요.” 간호사가 나가고, 시연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건이 그 뒤를 따랐다. “벌써 퇴원하게? 하루쯤 더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시연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 철컥-남자의 코앞에서 문을 잠갔다. 유건은 멈칫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잡이를 잡아보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어쩔 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9화

    시연이 문손잡이를 잡고 살짝 당기려던 찰나, 뒤에서 다가온 유건이 팔을 뻗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남자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시연의 머리 위를 감쌌다. “그래, 진료받을게. 대신 같이 가자.” “뭐라고요?” 시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요?” “지시연!” 유건의 미간에 분노가 깊게 드리워지며 얇은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넌 내 아내야.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지.” “그래요, 난 당신 아내예요. 하지만...” 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근데, 당신 그 상처... 나 때문에 입은 거 아니잖아요. 내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다쳤는데, 그걸 왜 내가 책임져야 하죠?” “당신!” “아, 맞다...” 시연은 무심한 표정으로 웃음을 더했다. “이젠 내가 당신을 돌볼 생각이 없으니까, 돈이 많은 당신은 간병인을 쓰면 되잖아요. 한 명으로 부족하면 두 명을 쓰고...”“지시연!” 유건의 얼굴은 새까만 먹물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게 있어! 장소미는 나 때문에 다쳤어! 그런 사람을 안 돌보면... 나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 돌보지 말란 말은 안 했어요.” 시연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오히려 돌보라고 했잖아요. 옆에 있어 주라고요. 진심이에요.” “그럼 왜 이러는데? 왜 이렇게 구는 거야?” “내가 뭘요?” 시연은 허탈한 듯 웃었다. “난 그냥, 당신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거잖아요. 나도 내 선택을 했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이해돼요?”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웃었다. “네 선택? 명목상 부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요?” 시연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제안,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군지 잊었어요?” 유건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8화

    왜냐하면, 시연은 다 보고 말았으니까.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 둘은, 이전처럼 지내는 게 좋겠어요. 더 먼 미래는...” “잠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건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비웃듯 되물었다. “‘이전처럼’이라는 게, 어떤 거지?” “네?” 시연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말 그대로 명목상 부부, 서로 터치 안 하고, 간섭도 안 하고...” “하.” 유건은 코웃음을 내뱉었다. “먹은 밥을 도로 뱉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무슨 소리야?’ 시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동의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요?” “왜냐고?” 유건은 속이 뒤집힐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나한테 화난 거야? 당신 쪽으로 먼저 안 갔던 거, 그거 때문에?” 시연이 대답할 틈도 없이, 유건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 입장에선 당연히 화날 수 있어. 나한테 뭐라고 해도 좋아. 근데...” “그래요. 당신 말대로, 내가 화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시연이 무표정하게 남자의 말을 끊었다. 유건은 순간 멍해졌다. ‘역시... 시연이는 화가 난 거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맞아, 다 이해해.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당신한테 갔다면, 구출이 더 늦어졌을 거야. 기환이가 당신 옆에 있기도 했고, 지하한테 부탁하기도 했으니까...” “알아요.” 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그 반응에 유건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알면서 왜...?” ‘왜 이러는 건데...?’ 시연은 미세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7화

    상처 부위 때문에, 소미는 어깨가 드러나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왼팔부터 턱 아래까지, 하얀 붕대가 겹겹이 감겨 있었고, 응급 처치 과정에서 급히 잘라낸 머리카락은 자비 없이 뚝뚝 잘려져 있었다. 게다가 계속 울었던 탓에, 얼굴은 눈물과 붉은기, 부은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심지어 유건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하며,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주었다. “울지 마. 눈물이 상처에 닿으면 안 좋아.” “유건 씨...” 소미는 눈을 꼭 감더니, 그대로 남자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 “어떡해요... 저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무서워하지 마.” 유건은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요즘 의학, 많이 발전했잖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게 안 되면요...?” 소미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영원히 못 고치면요...? 그런 일, 충분히 있을 수 있잖아요?” 유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여자를 바라볼 뿐. “봐요... 대답 못 하잖아요. 저를 위로하려고 한 말인 거 다 알아요.” 소미는 울음을 꾹 참으려다, 다시 숨을 들이켰다. “아...!!!” 그러고는 그대로 눈이 뒤집히며 쓰러졌다. “소미 씨!” 유건은 당황해서 그녀를 흔들었다. “의사! 간호사!” “들어갑니다!” 의료진이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상태가 왜 이래요? 아까까지 괜찮았잖아요!” “고 대표님, 환자분은 광범위 화상으로 인한 쇼크 증세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응급 처치가 필요하니, 잠시만 자리를 비워주세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병실 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침대 가리개가 닫히고, 유건은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가 뒤돌아선 순간, 시연이 병실 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유건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여보...” 시연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봤다. 유건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피하지 않고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6화

    기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확한 건 아직 잘 모르겠고... 그냥, CA국 쪽이랑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만 하고 있어요.” 시연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지한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게 끝이야?’ 시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지한은 그녀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을 회피했다. ‘장소미는... 어떻게 된 거지?’ “형수님, 푹 쉬세요. 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필요하신 거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그래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지한 씨... 뭔가, 나를 피하는 것 같아.’ 그리고, 이상한 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건이 오지 않았다. 그것도 너무 늦게.‘왜 안 와? 납치당한 나를 두고...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지한은 아까 ‘일이 좀 생겼다’고 했지만, 그 ‘일’이 그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말이 될까? ‘말이 안 돼... 너무 이상해.’ 시연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사모님...!” 간호사가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연은 간호사의 팔을 빌려 병실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바깥에서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형님은 언제쯤 오시는데?” “글쎄... 민환이 말로는, 장소미 씨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시연과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곧추세웠다. “형수님...” “형수님!” 시연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차가운 기운이 가슴속 깊숙이 퍼졌다. “장소미... 어떻게 된 거예요?” 지한과 기환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었다. “유건 씨... 지금 장소미랑 같이 있는 거죠?” 이번엔 더 대답이 없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5화

    응급실에서 시연은 기본적인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생명 지표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 중이었기에, 산부인과 전문의의 협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유건은 병실 밖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환아.” “예, 형님.” 오늘 시연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기환이었기에, 유건은 그에게 반드시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봐.” 기환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형님, 죄송합니다. 형수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자신이 기억하는 전후 상황을 전부 설명했다. 그 얘기를 다 들은 유건은 눈썹을 깊게 찌푸렸다. “네가 마신 그 밀크티... 장소미 씨가 줬다고?” “네.” 기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방심했어요. 장소미 씨가 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의심도 안 했습니다.” 곧이어 서둘러 덧붙였다. “그런데요 형님, 이 모든 게 장소미 씨의 계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소미 씨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걸 수도 있어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엔 소미를 의심하긴 했다. 하지만, 소미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 지한에게 들은 바로는 소미 역시 납치당했고, 시연보다 훨씬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그녀의 소행일 리 없었다.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꾸민 놈... 우리 쪽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다친 사람들은 전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야.’ ‘CA국... 그 사람들이 아니라면 또 누가?’ ‘아직은 뚜렷한 대상이 없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으니, 날 흔들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건가?’ ‘진짜 못된 놈들... 남까지 해치면서 날 압박하겠다는 건가?’유건이 보기에, CA국 사람들은 비열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또 성공했다는 것. 지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4화

    기환은 곧장 환풍기로 향했다. ‘시간이 없어. 옷을 덮어드린 건 찰나의 시간을 끈 것일 뿐이야. 진짜 중요한 건... 여기서 빨리 나가는 거야.’ 기환은 환풍기 선을 확인한 뒤, 맨손으로 선을 잡아당겨 끊었다. 환풍기의 날개가 천천히 멈춰가는 것을 기다린 후, 바지 주머니에서 멀티툴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해체를 시작했다. 약 삼십 분이 지나자, 환풍기 전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됐다.” 기환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시연에게 달려갔다. “형수님...” 그런데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시연이 뭐라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 형수님, 뭐라고요?” “유건 씨... 유건 씨...” 기환은 귀를 가까이 댔다. 분명히, 시연은 유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형수님, 형님을 찾고 계신 거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는 조심스럽게 시연을 안아 들었다. 시연은 의식을 잃은 채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춥...다...” 얼굴을 찡그리며 작게 신음했다. “아...” 기환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다정히 말했다. “이제 곧 나가요. 나가면 따뜻해질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 시연이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으... 으흑... 유건 씨... 추워요...” 기환은 더 당황했다. “형님을 곧 만나게 해드릴게요. 조금만, 조금만 더...”창고의 환풍구는 제법 큰 편이라 기환이 시연을 안고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하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가자. 형수님을 다치게 하면 안 돼.’ 그는 달팽이처럼, 아주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바깥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환풍기 밖은 냉동창고 안처럼 춥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이젠 괜찮아질 터였다. 그때, 부지하가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전부 흩어져! 이 구역 전부를 샅샅이 뒤져! 땅을 파서라도 찾아내!” “네!” 지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3화

    “지한, 받아!” 지한이 반응할 틈도 없이, 유건은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을 그대로 그의 쪽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불 속으로 돌진했다. “형님!” 지한은 깜짝 놀라 외쳤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거야?! 위험하잖아!’ ‘장소미 씨 때문이라면 이해가 되는데... 이번엔... 또 왜?’ 유건이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짙은 연기가 덮쳐왔다. “컥... 콜록, 콜록!” 그는 허리를 낮추며 바닥을 이리저리 뒤졌다. 이마엔 굵은 주름이 짙게 잡혔다. “대체 어디 떨어진 거야... 설마 못 찾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멈췄다. 불꽃 속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금속... 그것은 시연이 선물했던 그 라이터였다. 유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찾았다!!” 망설임 없이, 그는 불길 속으로 팔을 뻗었다. “악...!” 뜨거운 열기와 불꽃에 살갗이 타들어 갔다.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유건은 멈추지 않았다.라이터를 움켜쥐고 몸을 돌렸고, 빠르게 밖으로 달려 나왔다. “형님!!” 밖에 있던 지한은 안절부절못했는데, 유건이 나오지 않으면 직접 들어갈 생각이었다. “괜찮으세요?!” 유건은 왼팔을 감싸 쥔 채,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손을... 좀 데었어. 병원 가야겠네.” “구급차 도착했습니다.” 소방대도 이미 현장에 도착했고,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유건은 팔을 안고 걸음을 재촉하며 물었다. “사람은? 장소미 맞아?” 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 그런데 상태가 좀... 안 좋습니다.” 유건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얼굴도 못 봤어...’ “어디 있어?” “저쪽입니다.” 소미는 이미 구급차에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고 있었다. 유건이 올라타자, 그녀의 상태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의식은 없이 링거와 산소 치료를 받는 소미.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왼쪽 팔과 아

Découvrez et lisez de bons romans gratuitement
Accédez gratuitement à un grand nombre de bons romans sur GoodNovel. Téléchargez les livres que vous aimez et lisez où et quand vous voulez.
Lisez des livres gratuitement sur l'APP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