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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Author: 임공
“네?”

진아가 고개를 돌려 보니, 부지하였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이내 다시 가라앉았다.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는 사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

지하는 여자의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궁금해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아무 말 없이 표정만 저렇게 변하는 걸까?’

그가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려 가게의 코코넛을 바라보니, 이미 개봉된 상태였다. 상황이 다 이해됐다.

지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핸드폰 안 가져온 건가?”

진아는 순간 멍해졌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결심한 듯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실례지만, 대신 결제해 주실 수 있나요? 핸드폰 찾으면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흠...”

지하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했다.

코코넛 몇 개 값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진아가 원한다면, 섬 하나를 사서 선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쫀득한 찹쌀떡 같은 진아가 묘하게 재미있어서 장난치고 싶어졌다.

“못 해 줄 건 없지.”

“정말요?”

진아는 반색하며 기뻐했다.

“응.”

지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대신, 나를 ‘오빠’라고 한 번 불러 봐. 그럼 그냥 사줄게. 돈도 안 받을게, 응?”

진아는 순간 얼어붙었다.

‘뭐라고?'

그리고 곧바로 깨닫고는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됐어요! 도움 안 받을래요!”

‘성빈이 말이 맞아. 이 사람,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코코넛 몇 개 사 준다고 생색을 내다니! 게다가 이런 장난까지!’

진아가 화가 나서 돌아서려던 순간, 가게 주인이 말했다.

“어이, 아가씨! 돈 안 내고 어디 가!”

이와 동시에 지하가 진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사장님 말씀 들었지? 아가씨, 먹튀는 나쁜 거야.”

진아는 당황스럽고 화가 나면서도 창피함까지 몰려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됐어.”

지하는 더 장난을 칠 기세였지만, 이대로 가다간 진아가 진짜 폭발할 것 같아서 적당히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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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내 잘못이야. 벌 받을게.”...다음 날 아침.시연은 몽롱한 상태에서 손에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뭐 하는 거예요?”그녀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내가 깨운 거야?”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곧 나가야 해서 가기 전에 약 한 번 더 발라주려고. 다 바르면 다시 자. 깨어나서도 꼭 스스로 바르고. 하루 네다섯 번 정도.”“귀찮아 죽겠어요!”시연은 이불을 확 댕겨 얼굴을 덮어버렸다.유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지만 다정하게 웃었다.시여의 성격은 그다지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가 기상 후 심한 짜증을 부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을 충분히 잤을 때는 괜찮지만, 덜 잤을 때는 아주 예민했다.“안 건드릴게. 푹 자.”...시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오늘은 별다른 업무가 없었고, 강울대병원에 가서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 날이었다.그녀는 준비를 마치고 기환의 차에 올라 강울대병원으로 향했다.서류를 제출한 후, 같은 팀 펠로우인 서성안이 그녀에게 근무 스케줄을 건넸다.“이게 우리 과 다음 주 야간 근무 일정이야. 가는 길에 외래 수간호사님께 전해줘.”“알겠어요.”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받아서 들었고, 외과 건물을 나와 외래 진료실로 향했다.그녀는 수간호사에게 스케줄을 전달한 후, 외과 진료실을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오늘은 오준수와 김현진이 외래 근무 중이었다. 역시나 환자들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그때, 기환이 시연에게 달려왔다.“형수님,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금방이에요. 1분이면 돼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주시거나, 그냥 소리치시면, 제가 바로 달려올게요.”“알겠어요. 빨리 다녀와요.”기환은 늘 시연을 보호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심지어 식사나 화장실 가는 일조차 마음대로 못 할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나 괜찮아요. 여긴 사람도 많잖아요.”“금방 다녀올게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환을 기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1화

    유건은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시연을 침대에 눕혔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품속에 가두어,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내 말 안 들려? 내가 절대 아내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왜 날 믿지 않는 거야?”시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고 대표님, 당신이 도덕적 기준을 지킬 거라고 믿어요. 당신의 몸은, 나에 충실할 거라고요.”유건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도덕성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유건을 오래 봐왔기에 시연도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배신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에요. 마음의 배신도, 배신이에요.”뭔가 어색한 듯, 그녀는 말을 고쳐 잡았다.“아니, 내가 잘못 말했네요. 사실 당신의 마음도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죠.”유건이 시연의 말을 끊었다.“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 양심에 찔리진 않아?” ‘내가 이 여자에게 쏟아온 모든 진심이, 헛것이었단 말이야?!’“그래요.”시연은 솔직히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찔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당신 마음은 나를 향하긴 했어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유건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완전히 당신을 향한다고 생각할 건데?” ‘나는 진심으로 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고, 함께 살아가려 했고...’ ‘이 여자와 배 속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야?’“몰라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절호의 순간이 오면, 당신이 다른 이유로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말이 틀렸나요?” 결국, 그녀는 오늘 밤 유건이 약속을 어긴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었다.유건은 시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베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그런 얘긴 나중에 하고, 약부터 바르자.”그는 그렇게 말하며, 시연의 손을 놓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잠시 후, 약을 들고 돌아왔다.“칼에 베인 거야?”시연은 살짝 찡그리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0화

    ‘애초부터 장소미와 함께 보낼 생각이었겠지.’ 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괜히 헛수고하지 말자.’‘괜히 마음 쓰고 노력해 봤자, 정작 본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결국 나만 바보 되는 거잖아.’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조용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조용했던 방 안, 문 쪽에서 철컥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시연은 즉시 몸을 돌려,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환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유건은,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소파 위에 툭 던졌다. ‘맞네, 여기... 저 사람 집이었지?’ ‘내가 문을 잠근다고 해서 이 사람이 못 들어올 리가 없잖아.’ 시연은 순간적으로 잊고 있던 현실을 떠올렸다. 유건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침대 위에 편하게 앉았다. “날 못 들어오게 해? 그럼 난 어디서 자라고?” 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방은 우리 방이야. 반반씩 나눠 써야지.” 시연은 남자를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섰다. “그럼 당신이 여기서 자고, 난 다른 방에서 잘게요.” 그러고는 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 “손님방은 안 치웠어.” 유건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설마, 이 시간에 성애 이모를 깨울 생각이야?” 그 말에, 시연은 순간 망설였다. ‘하긴, 나도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긴 하는데.’ 하지만 바로 대안을 찾았다. “그럼 서재에서 잘게요.” “안 돼.” 그 순간, 유건이 팔을 당겨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가슴팍에 파묻힌 시연.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여보, 오늘 내 생일이야. 그냥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지금 이걸... 핑계라고 하는 거야?’ 시연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런 말... 다른 사람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나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9화

    “알 필요 없어요.” 시연은 아픈 손을 조심스럽게 뺐다. ‘알 필요 없다고?’ 유건의 예리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신은 내 아내야. 아내가 손을 다쳤는데, 내가 몰라도 된다고?” “그게 뭐 대수인가요?” 시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하지만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전 여자 친구와 생일을 함께 보낸 것도 몰랐는데요?” ‘뭐...? 생일을... 함께 보냈다고?’ 유건은 순간 당황했다. 그보다 더한 기분은, 놀라움이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러나,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연은 이미 팔을 빼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생일...?’ 유건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가, 곧바로 깨달았다. ‘맞다, 오늘 내 생일이었지.’ 시연이 저녁 약속을 잡았던 이유, 그녀가 오늘 내내 기다렸던 이유. ‘시연이는...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유건은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전화기 너머로 기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알고 있었어?” 유건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연이가... 내 생일 챙기려고 했던 거.” [네, 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왜 말 안 했어?” 유건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기환은 짧은 침묵 후, 솔직하게 답했다. [형수님께서 형님께 직접 깜짝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던 거죠.]유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환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요 형님... 혹시... 선물 이야기는 들으셨나요?]“선물?” [아... 형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말하면, 그 마음을 망치는 거 아닐까요?]유건은 그 말을 듣자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기환은 한 가지 더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형수님께서 정말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든 거예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8화

    시연은 계속해서 국수를 먹었지만, 전혀 유건을 쳐다보지 않았다. 유건은 속이 쓰렸다. 그리고 시연을 한밤중까지 기다리게 한 자기 잘못을 확실히 인정했다. “내일 저녁은 어때? 내가 직접 예약하고 먼저 가 있을게.” “괜찮아요.” 시연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남은 매운 단무지 한 조각을 집었다. “마지막 하나네.” “더 가져다줄게.” 유건은 기회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반찬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 자기는 반찬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걸. 잠시 냉장고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이모님 부를게.” “됐어요.” “아니야.” 유건은 고집스레 말했다. “당신이 먹고 싶다며?” “그러니까, 됐다고요.” 시연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항상 왜 그래요?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해줘요.” 여자의 말속에 분명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많이 화났구나...’ 유건은 결국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알겠어. 당신 말대로 할게.” 시연은 다시 젓가락을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왜 계속 쳐다봐요? 배고픈 거예요? 저녁 안 먹었어요?” 유건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먹었어.” “먹었군요.” 시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작은 웃음을 흘렸다. 유건은 순간 깨달았다. ‘아차, 또 실수했어!’ 그렇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 “미안해.” 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사과하는 것 외에는. 그러나, 그 사과조차도 공허할 뿐이었다. 시연은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면을 다 먹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요.” 말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건은 얼른 의자를 뒤로 빼주었다.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7화

    그런 유건을 보면서 소미는 바로 눈치챘다. 지금 남자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소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응.”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소미 씨. 지금 당장 가봐야 해.” “미안하긴요.” 소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린 오랜 친구인데, 그런 걸로 사과할 필요 없어요. 급한 일 있으면 얼른 가요.” 유건은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조심해서 가요!” 소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손안에 쥔 나비 머리핀을 서서히 꽉 쥐었다. ...차 안. 지한은 운전석에서 전화를 걸었다. “기환아, 형수님을 꼭 붙잡아 둬. 형님, 지금 가는 중이야.” 기환이 난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 그러나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갔다. 기환은 순간 당황하며 급하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형수님, 형님 곧 도착하십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시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너무 늦었어요.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났으니, 저도 이제 들어가 봐야죠.” 기환은 속수무책이었다. ‘형수님을 강제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결국, 한숨을 삼키며 시연을 따라 차에 올랐다. ‘형님이 실수하신 건 맞지...’‘아무리 바빴다고 해도, 임신 중인 형수님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기환은 차를 몰며 지한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변명이 없었다. ‘오늘은... 형님이 잘못하신 거야.’ 두 사람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건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건 텅 빈 테이블,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치우지 않은 식기들.그리고... 텅 빈 의자.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고, 바로 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6화

    그날, 지한이 다녀온 후, 직접 유건에게 보고했다.유건이 남긴 선물이 이미 ‘나비 공주'의 손에 무사히 전달되었다고.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건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외로 나가 치료받았다. 그는 반년 동안 앞이 보이지 않았고, 또다시 반년을 걸려 치료받고서야 성공했다. 유건은 그렇게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그것이 ‘나비 공주’가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아이가 날 지켜준 덕분에 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시력을 되찾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비 공주’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비 공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그녀가 살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그 후로도 ‘나비 공주’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소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걸 보며, 유건의 눈가가 뜨겁게 붉어져 왔다. ‘설마... 정말 유건 씨가...?’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에 쥐고 있던 나비 머리핀을 소미 앞에 내밀었다. 소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애린 언니가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이걸 왜 유건 씨가...?”유건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원래 내 것이었어.” ‘만약 장소미가 진짜 나비 공주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거야.’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공기마저 조용해진 듯했다. 소미의 눈에 혼란과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입술이 떨리면서도 몇 번이나 말하려다 멈추었다. “유건 씨... 당신...!” 그녀는 숨이 가빠진 듯, 겨우 말을 꺼냈다. 유건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소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달라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 순간, 유건의 숨이 멎었다. ‘그때 내가 남겼던 말을 장소미가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면... 맞아.’ ‘진짜 ‘나비 공주’가... 장소미인 거라고.’ 유건은 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5화

    과거의 기억이 순식간에 유건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그것은 유건이 아직 어리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해, 그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유건은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상훈은 세계적인 명의들을 불러 치료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누구도 극 시력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세상이 영원히 어둠뿐일 거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은 소년이던 유건에게 아주 가혹한 선언이었다...그 시절의 유건은 극도로 예민하고 난폭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고상훈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화를 냈다. 그저 모든 것이 짜증 났다.간병인과 가사 도우미들에게도 끊임없이 신경질을 부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어두운 사람이 되어 갔다. 고상훈은 그런 손자를 안타까워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최대한 그의 뜻을 존중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건은 조용한 회복을 위해 도심에서 떨어진 별장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나비 공주’와 처음 만났다. ‘나비 공주’는 유건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두 집은 높은 담장을 두고 연결되어 있었고, 그녀는 자주 그 담장을 넘어오곤 했다. 두 사람과의 첫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유건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까...?’ 그때, 익숙하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비 오는데 왜 거기 앉아 있어? 감기 걸릴지도 몰라!” 유건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나는 볼 수도 없는데.’ 그가 반응하지 않자, 소녀는 다급한 듯 담장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잠시 후, 소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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