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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작가: 임공
유건은 아주 화냈다는데, 좋은 분위기의 데이트가 시작부터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직원을 꾸짖고 싶었지만, 시연이 손을 살짝 올려 그를 막았다.

“됐어요. 별일도 아닌데요. 나 배고파요... 우리 빨리 주문해요.”

‘이 여자, 진짜 화 안 난 걸까?’

유건은 믿을 수 없었다.

‘질투는 여자의 본능일 텐데.’

“여기, 장소미랑 같이 온 적이 있어.”

이미 말이 나온 김에,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때는 우리가...”

말을 흐리는 유건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굳이 설명 안 해도 돼요.”

시연이 유건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다 알고 있어요.”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고, 진짜 화난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알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시연이 아무렇지 않게 메뉴를 고르자, 유건은 더욱 답답했다.

메뉴가 나오고, 시연은 잘 익은 양갈비 한 조각을 잘라 유건의 입 앞에 내밀었다.

“한 번 먹어봐요. 아...”

여자의 행동에 기분이 풀린 유건은 입을 열었다.

‘정말 대범한 건가... 아니면, 신경을 안 쓰는 건가.’

유건은 한숨을 삼키고, 소매를 걷어 올려 직접 새우껍질을 벗기더니 소스를 묻혀 시연의 접시에 올렸다.

“밥 먹고 나서, 하고 싶은 거 있어?”

“네?”

시연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뭘 하려고요?”

그녀는 밥만 먹고 돌아갈 줄 알았기에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유건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정하지 않으면, 내가 정할 건데? 영화 보러 갈래?”

‘식사 후 영화라니, 연인들의 평범한 데이트 코스인데?’

‘고유건은 확실히 좋은 남자야. 이 남자가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시연은 속으로 답답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차피 이혼이 무산된 이상, 우리 같이 살아야 해.’

‘나도 최대한으로 노력해 봐야지.’

유건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어떤 영화가 개봉했는지도 잘 몰라요.”

“그럼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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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고, 곧이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빨리 가요. 비가 더 심해지면 사람을 찾기 더 어려워질 거예요.”‘이 여자, 화나지 않았구나.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어.’그 순간, 유건은 기뻐해야 할지, 서운해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으면 소화 안 돼.”“알겠어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리고 기환이 널 데려다 줄 거야.”유건의 곁에는 항상 그를 보호하는 부하가 있었고, 시연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비록 유건이 직접 운전할 때도, 그가 믿는 부하들은 항상 그림자처럼 뒤따랐다.시연은 양갈비를 입에 물고 있었기에 대답 대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았어요.”“집에 도착하면 전화해.”“네.”시연은 웃으며 말했다.“인제 그만 가봐요. 난 애가 아니잖아요.”“간다.”필요한 말을 다 한 유건은 몸을 돌려 걸어 나가려 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뒤돌아보았다.시연은 남자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 조용히 국을 마시고 있었다.알 수 없는 기분이 든 유건이 갑자기 물었다.“여보, 나한테 가라고 한 거, 진심이야?”“네?”시연은 유건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나?’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가야죠. 사람이 없어졌다면서요...”여자의 태도는 너무도 담담했다.갑자기 유건은 짜증이 밀려왔고, 묘하게 속이 뒤틀렸다.“알겠어.”그는 짧게 말하고 이번엔 진짜로 떠났다.문이 닫히는 순간, 시연은 제자리에 멍하니 선 채, 손을 가슴에 얹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시연은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먹어도 목구멍이 막힌 듯했다.사실, 유건이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시연은 입맛이 사라졌었다.그녀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켜며 숨을 돌렸고, 입을 닦고서야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연은 머리를 닦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이었는데, 전부 다 유건에게서 온 것이었다. 시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내가 다시 전화해 줘야 할까? ‘아니야, 그냥 두자.’ ‘어차피 장소미 찾느라 바쁠 거야. 정말 급한 일이면 다시 걸겠지.’시연은 잠시 기다리는 듯했으나, 유건이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웠다. 임신한 탓일까? 시연은 요즘 깊이 잠드는 편이었다. 시연은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핸드폰 벨소리에 깨어났다. 잠결에 짜증이 난 시연의 목소리에 신경질이 섞여 있었다. “예보세요?” [형수님! 저예요, 지한이요.] ‘...지한 씨?’ 그 순간, 시연은 잠이 확 깼다. 주지한이 이렇게 한밤중에 전화를 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그녀가 묻기도 전에, 지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요!] “뭐라고요...?” 순간 여자의 머릿속이 하얘지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연은 입술이 덜덜 떨리며 겨우 말을 뗐다. “많이 다쳤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저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근데, 형님 온몸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눈으로 본 그대로를 전하는 지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수님, 제가 민환을 보냈으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곧 도착할 거예요!] “...알았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시연은 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다리가 휘청거리고 머릿속이 잠시 새하얘졌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손이 계속 떨렸다. ...새벽 3시. 시연은 아무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대문으로 향했다. “형수님.” 이미 도착해 있던 정민환이 차 문을 열어주었다고,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유건은 막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2화

    “다행이네요.” 시연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유건 씨의 교통사고도... 나름 값어치는 한 셈이니까요.” 뭔가 이상한 말이었기에, 지한이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형수님,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하죠?” 여자의 눈은 한없이 담담하고 깨끗했다. “내가 한 말이, 틀리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단 한마디였지만, 지한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형님은 절대 형수님이 이렇게 생각하길 바라지 않으실 텐데...’그럼에도 지한은 유건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몰랐고, 괜히 말실수라도 할까 봐 입을 다물었다. “형수님.” 지한이 화제를 돌렸다. “배 안 고프세요? 뭐라도 사 올까요?” 시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마워요.” 아침은 기환이 사 왔는데, 다들 유건 걱정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연만은 예외였다. 시연이 하얀 쌀죽에 작은 만두를 곁들여 조용히 식사하자, 기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님... 유건 형님이 걱정도 안 되세요?” “쉿!” 지한이 그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헛소리 좀 하지 마! 형수님은 임신 중이시잖아. 아기를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라고.” “아, 그래?” 기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그럴까?’ 오전 7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수술은 끝이 났다.유건은 VIP 병실로 옮겨졌는데, 지한이 모든 절차를 맡았기에 시연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절차가 마무리된 후, 지한은 병실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시연을 발견했다. 여자의 얼굴은 아주 지쳐 보였다. “형수님, 피곤하시죠?” “네.” 시연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한밤중에 불려 나와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당연히 피곤할 만했다.지한이 바로 말했다. “형님 상태는 괜찮으니까, 민환이랑 댁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댁에 가서 좀 쉬세요.” “그래요.” 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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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 잠결에 얼굴을 스치는 가느다란 실루엣. 유건은 무겁게 뜬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남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시연이 아닌 장소미였다. 유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뭔가 찝찝해.’ 남자의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늘하게 스쳤다. “유건 씨!” 유건의 깨어난 모습을 본 소미가 반가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좀 들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요?” “난 괜찮아. 그런데 너...” 소미의 얼굴엔 반창고가 붙어 있었고, 오른쪽 팔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심지어 붕대 사이로 핏자국이 배어 나오고 있었는데, 유건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상처, 많이 심한 거야?” “아니에요. 괜찮아요.” 소미는 가볍게 웃으며 관자놀이 쪽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냥 가벼운 찰과상이에요.” 유건은 이내 그녀가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는 당연히 묻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조애린 말로는, 네가 갑자기 사라졌다던데. 무슨 일이야?” “아...” 소미가 순간 머뭇거리며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애린 언니가 좀 깊이 생각한 거예요.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촬영 끝나고 혼자 좀 걷고 싶었는데, 너무 외진 곳이라 길을 잃었어요. 핸드폰도 안 들고 나갔고...” 묘하게 표정이 굳은 유건은 소미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요, 괜히 걱정 끼쳐서...” 소미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꼬아 쥐었다. “아냐.” 유건은 피곤한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터는 어딜 가든 핸드폰을 꼭 챙겨.” “네, 다시는 이러지 그럴게요...”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유건아! 정신이 들었다며?” 시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몇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부지하, 주정빈, 유강석. 유건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가 곧바로 그 빛이 사라졌다. 부지하 일행도 병실 안에 소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4화

    소미의 말에 유건은 다시금 떠올렸다. ‘맞네. 그 여자... 지금 임신 중이잖아.’ ‘이런 무리한 밤샘을 견뎌낼 몸 상태가 아니잖아.’ 순간, 남자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지한은 재빨리 맞장구쳤다. “형수님은 어젯밤 소식 듣자마자 달려오셨어요. 걱정도 정말 많이 하셨죠. 형님 상태 보고 안심하긴 했지만, 제가 일부러 쉬라고 돌려보냈어요. 아마 곧 올 거예요.” “맞아요.” 소미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맞장구쳤다. “응.” 유건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몇 시지?” 지한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6시요.” 시연이 떠난 지 벌써 하루가 다 되어 간다. 지한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형님, 형수님께 전화라도 한 통 넣을까요?” 그는 이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있었지만, 유건이 단호하게 막았다. “아니야.” “재촉하지 마.” 유건은 자기가 시연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하는 것과, 시연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언제쯤 오는지 한 번 보자고.’ 똑똑-마침, 병실 문이 두드려졌고, 유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병실 안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숨을 죽이고 문 쪽을 바라봤다. 문이 열리고, 시연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여행용 캐리어, 다른 손에는 작은 쇼핑백. 시연은 고개를 들자마자 병실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았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지한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좀 들어주실래요?” “네, 형수님.” 지한이 서둘러 다가가 쇼핑백을 받은 후, 바로 물었다. “캐리어는 어떻게 할까요?” “우선 옷장 쪽에 놔주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네.”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놓고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시연은 병실을 둘러보며 유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분들, 당신 친구들이에요?” “응.” 유건은 입을 삐죽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5화

    ‘또 화가 났네?’ 시연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내가 온 타이밍이 문제였을 거야. 내가 오자마자 장소미가 자리를 비웠으니까.’‘뭐... 기분이 나쁜 것도 이해는 되네.’“미안해요.” ‘내가 일단 사과하고 보는 게 상책이야.’ 이어서 그녀는 부드럽게 물었다. “그럼... 지금 뭐라도 먹을래요?” 유건은 짜증이 치밀어 고개를 홱 돌렸다. “안 먹어. 그냥 굶어 죽을래.” ‘‘먹을래요’ 라니? 지금 먹을 게 넘어가겠어?’ ‘이 여자,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야!’‘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굶고 있었는데! 남자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연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 이제 보니까 하나도 안 다쳤네. 성질 하나는 멀쩡하니까.’ 그녀는 말없이 보온 가방을 열었고, 하나씩 식기를 꺼낸 후 죽을 덜어냈다. “지금은 유동식만 가능해요. 성애 이모님이 죽을 끓여주셨어요.” 시연은 부드러운 쌀죽을 그릇에 담아 유건의 앞에 내밀었지만, 그는 힐끗 보고도 꿈쩍하지 않았다.시연이 의아해했다. “싫어서 그래요? 그럼 뭐 먹고 싶어요? 이모님한테 전화해서 다시 부탁할까요?” 말하면서 그릇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일단 이거라도 좀 먹어봐요. 그냥 참고 먹어보라고요.” 시연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부드러운 어조로 그를 달랬다. 하지만, 유건은 시연의 의도를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 “그게 먹으라고 부탁하는 태도야?” 이 말을 듣고 시연이는 순간에 말문이 막혔다.‘그럼 뭐 어쩌라는 건데?’ ‘손도 멀쩡하잖아. 숟가락을 못 드는 것도 아니고, 죽 한 그릇 못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여자가 가만히 있자, 유건은 이를 악문 채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빨리 먹여 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1초. 2초... 결국, 시연이 먼저 물러섰다. 그녀는 그릇을 들고, 한 숟가락을 떠서 내밀었다. “알겠어요. 먹여 줄게요.” 유건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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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건의 눈썹이 깊게 찌푸려지며 불쾌함이 짙게 깔렸다. “너 지금 가겠다는 거야?” ‘그럼 안 가고 여기 남으라고?’시연이는 헛웃음이 났다. 유건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고, 비웃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아내라면 당연히 옆에서 간호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유건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시연이가 보기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그녀는 충동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정말로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나라고? 장소미가 아니라?’ ‘장소미를 찾아가다 사고를 당했잖아. 그럼 곁에서 간호해야 하는 사람도 당연히 장소미여야 하는 거 아닌가?’하지만, 시연은 입을 열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자들은 역시... 제멋대로구나.’ 시연은 체념했다.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여기 남을게요.” 유건은 순간적으로 놀랐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어.’그는 기분이 살짝 풀리는 듯했지만, 괜히 체면을 차리듯 툴툴거렸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둬.” “억지 아니에요.” 시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내 짐을 안 챙겨왔어요. 집에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유건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시켜서 가져오면 되잖아.” ‘이런 사소한 일까지 직접 움직여야 하나?’ ‘임신 중인데?’ ‘이 여자, 자기 남편이 돈이 많다는 걸 깜빡한 거야?’ 하지만,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생활용품이야 쉽게 챙길 수 있지만, 읽을 책이 필요해요. 전문 서적이라 다른 사람이 챙기기 어려워요.” 결국, 시연이 직접 집에 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 여자, 나랑 있는 시간이 그렇게 싫은 거야?’ 유건은 기분이 더러워져서 냉소적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화

    시연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자신이 병원에 온 건 유건을 간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크게 불편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시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럼 지금 뭘 해주면 돼요?” “이리 와.” 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시연이 가볍게 걸음을 옮기자,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 씻고 싶어.” “그건 안 돼요.” 시연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의사처럼 덧붙였다. “상처에 물 닿으면 안 된다고요.” 그러자 유건은 비틀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씻어야겠어. 안 씻으면 찝찝해서 몸도 안 좋아질 거 같거든?” 몸을 뒤로 젖히며 힘없이 손을 들어 보였다. “네가 알아서 해 봐.” ‘이거 완전 생떼 아니야?’ 시연은 불쾌한 감정을 꾹 눌러 담고, 침착하게 말했다. “목욕은 안 돼요. 대신, 몸을 닦아줄 수는 있어요.” “그럼 그걸로 하지.” 유건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요.”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럼 남자 간병인을 불러올게요. 그게 더 편할 거예요. 아!!” 그녀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남자에게 강하게 붙잡혔다. 순간, 통증이 퍼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유건이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묻자, 시연은 당황해서 찌푸린 얼굴로 되물었다. “씻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간병인을 부르려고요.” “그럼 넌 뭐 하는 사람인데?” “나요?” 시연이 말을 더듬었다. “내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뭐가?” 유건이 여자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뜨거운 남자의 숨결이 여자의 피부에 닿았다. “우린 부부야. 내 몸, 네가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만진 적도 있고, 심지어...” “그만해요!” 시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당황한 나머지 남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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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밖.유건, 은범, 그리고 진주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가장 먼저 진주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네, 이제 끝났어요. 곧 갈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진주는 은범을 바라보았다.“은범아, 우리 엄마가 집에 빨리 들어오래.”하지만 은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없이 굳어 있었다.그는 무조건 시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진주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럼 나 먼저 갈게.”“응...”은범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절대 시연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그러나 그때, 은범의 핸드폰이 울렸다.강수희였다.“어머니.”[은범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진주를 안 데려다준 거니? 서로 친해지는 건 좋지만, 너무 늦으면 진주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은범은 진주를 한 번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강수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이제 늦었으니, 무조건 진주 데려다줘야 해. 알겠지?]이를 악물며, 은범은 짧게 대답했다.“알았어요.”전화를 끊고, 그는 진주를 향해 말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어?”진주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며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그래도 돼?”“너랑 같이 왔잖아.”은범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너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게 맞지.”시연에게는 나중에 충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니까.“가자.”“응.”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건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눈빛 가득한 냉소를 띄웠다.‘역시 믿을 수 없는 놈이었어.’그는 긴 다리를 내디뎌 은범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비꼬는 듯한 미소.“어디 가려고?”“고 대표님...”은범이 답하려 했지만, 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내가 있는 한, 넌 한 발짝도 못 움직여.”은범은 얼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고 대표님, 전 친구를 집에 데려다줘야 합니다.”“헛소리 좀 그만하지 그래?”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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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걸음 떨어진 곳.노은범과 하진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그리고 시연과 마주쳤다.“시, 시연아.”은범은 당황해 더듬거렸다.진주는 은범을 한 번 바라보더니 옅게 미소 지었다.“친구야?”“응, 아니... 아니야. 내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이야.”은범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부정했고, 더 이상 진주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둘러 시연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시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뜻밖의 조우에 시연은 잠시 놀랐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교수님이 여기서 회의 중이셔. 놓고 가신 자료를 가져다주러 왔어.”그녀가 유건에게 한 말과 똑같았다.“그렇구나.”은범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가방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허공을 잡았다.시연은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난 것이었다.은범은 순간 멍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시연아?”시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속엔 명확한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먼저 가볼게. 그리고 널 방해하면 안 되잖아.”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은범은 당황했다.시연이 오해했다고 확신했다.“시연아...”“잠시만요.”진주가 갑자기 시연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자의 직감은 빠르다. 이 짧은 순간에도 진주는 분위기를 감지했다.시연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말했다.“죄송하지만, 잠깐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어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시간 없어서요. 비켜주세요.”거절이었다.진주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강단 있게 나섰다.그녀는 시연의 팔을 잡았다.“잠깐이면 돼요! 금방 끝날 말이에요.”그녀는 은범을 흘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당신이 은범이가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냥 친구일 뿐이거든요.”“하고 싶으신 말, 다 하신 거예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0화

    유건은 결국 함정에 빠졌다.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시연을 놓아주었다.“배가 어떻게 아파? 심한...”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연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지시연!”유건은 당황하며 몇 걸음에 따라잡아 그녀를 끌어안았다.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뭔가 반응할 새도 없이, 유건의 넓고 따뜻한 손이 여자의 눈을 가렸다.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보지 마.”“뭐를요...?”시연은 놀라며 남자의 손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왜 이러는 건데요? 안 가려도 돼요...”‘안 가리면 어떡하라고?!’유건은 앞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노은범이 하진주에게 자기 재킷을 벗어 걸쳐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걸 시연이가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유건 씨!”시연이 저항하자, 유건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너, 으음...”시연이 놀라서 입을 열려는 순간, 유건이 그녀를 덮치듯 입을 맞췄다.‘뭐야?!’시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놔... 윽...”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유건은 더욱 거칠게 여자의 입술을 탐했다.남자의 키스는 점점 깊어졌고, 점점 더 강렬해졌다.시연은 필사적으로 유건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손을 번쩍 들었다.찰싹!깨끗한 타격음이 울리며 유건의 뺨이 돌아갔다.유건은 순간 멍해졌다.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충격받은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나는...”그는 단지 시연이 은범을 보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키스하고 나서 이성을 잃어버렸다.그녀를 원했고, 가까이하고 싶었으며, 심지어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마치 혐오스러운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너무나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우리... 그래도 예전에는 부부였고, 이 사람의 포옹과 키스를 받아들일 이유라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이제 우리는 이혼을 앞둔 상태잖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9화

    연회장으로 돌아온 유건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그는 소미를 한 번 바라보고 나직이 말했다.“가자, 별로 재미없어.”소미는 아무런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유건의 시선이 그녀의 배로 향했다.“너무 늦게 자면 두 사람한테 안 좋잖아.”“네.”소미는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 불안했다.‘어떡하지? 이 사람, 아이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지금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곤란해질지도 몰라.’“왜 그래?”유건은 소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몸이 안 좋아?”“아니에요.”소미는 웃으며 얼버무렸다.“그냥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같이 가자.”“괜찮아요...”“아니.”유건은 단호했다. 그녀가 지금 상태에서 혼자 다니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는 결국 화장실 입구까지 소미를 데려다주었다.“천천히 다녀와.”“네.”소미는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이 남자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이렇게 다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유건은 조금 떨어진 흡연 구역으로 이동했다.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기도 전에 시연이 책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시연이? 여기 온 이유는 뭘까?시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뭐 찾는 거야?”“네?”시연이 놀라 돌아보았다.유건을 보자, 그녀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여기 B동 6층 맞나요?”유건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6층은 맞는데, 여긴 B동이 아니라 C동이야.”“아.”시연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두드렸다.“아, 진짜! 또 길을 잘못 들었네요.”“또?”유건은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보며 무심코 물었다.“길을 자주 잃어버려?”시연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사실, 자주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방향 감각이 떨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8화

    [알겠습니다, 형님.]전화를 끊자, 소미가 방으로 들어왔다.“유건 씨.”유건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저었다.“먼저 들어가 있어. 여기 담배 냄새 나.”담배는 임신한 여자에게 좋지 않으니까.“아, 네.”연기가 가라앉은 후, 유건은 문을 열고 들어가 소미가 건넨 물을 받았다.“좀 괜찮아요?”소미가 다정하게 물었다.“네.”유건은 물을 마시고 소파에 기대었다.“너무 많이 마셨나 봐.” 그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도 잠깐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제가 마사지해 드릴까요?”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의 곁에 앉으며 소매를 걷었다.남자가 거부할 틈도 없이, 그녀는 말했다.“눈 감아요. 우리 아빠가 술 마셨을 때 자주 해드렸어요.”여자의 손끝이 관자놀이를 누르자, 유건은 거부하지 않았다.“고마워.”소미가 잔잔히 웃었다.“저한테 뭘 그렇게 고마워하세요? 제가 유건 씨를 도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할 사이잖아요.”‘그래,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이지.’유건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익숙해져야 했다.소미의 손길이 생각보다 편안해서 그는 점점 나른해졌다.“유건 씨?”그녀가 속삭이듯 부르자, 유건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응...”소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가슴이 뛰었다.‘이건 기회야!’‘내 임신은 거짓말이잖아... 시간을 더 끌면 고유건은 의심할 거고, 배를 감출 수도 없을 거야.’‘그 전에 내가 확실히 해야 해. 이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그녀는 숨을 죽이고 목에서 어깨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유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남자의 입술과 단 한 뼘도 남지 않은 거리.하지만, 소미는 남자의 입술이 닿기 직전, 유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여자가 너무 가까이 있는 걸 깨닫고, 순간 멈칫했다.“소미 씨?”“유건 씨.”소미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키스해 줘요.”유건은 말이 막혔고, 본능적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7화

    유건은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로 돌아왔다.비서가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장소미 씨가 도착하신 지 좀 되었습니다.”오늘 밤, 유건은 한 연회에 참석해야 했고, 이번엔 소미가 파트너였다.“유건 씨.”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그냥 앉아 있어.”유건은 손을 살짝 흔들며 무심하게 말했다.“조애린 씨한테 들었는데,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네, 그래요.”소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양 감독님의 작품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촬영했거든요. 광고를 비롯한 일정이 과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요.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싫어요.”잠시 생각하던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미의 배를 힐끗 바라보았다.“몸에 이상 없으면 소미 씨 뜻대로 해. 다만, 배가...”언젠가는 드러날 것이었다.“아, 아직 문제없어요. 사극이라 의상 때문에 티도 안 나고요.”소미는 오늘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평평한 신발까지 신은 것을 떠올렸다.유건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양 감독님께 소미 씨 촬영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이야기해.”“네,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시간이 늦어서 유건은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미와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연회는 해성 호텔에서 열렸다.주차장에서, 노은범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고마워.”진주가 미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은범은 담담히 말했다.“별일 아니야.”그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본 하진주는 웃으며 말했다.“너무 긴장하지 마. 우리 약속했잖아? 친구처럼 지내기로.”“알아.”은범은 살짝 찡그렸다.“하지만, 네가 나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괜찮아.”진주는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 엄마도 연관되어 있으니까.”그녀는 남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그냥 편하게 가자.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들도 우리가 진짜 안 될 거라고 깨달으시겠지.”은범은 한결 편안해졌다.‘나보다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6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진주를 힐끗 바라보았다.“내가 보기엔 진주가 참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우리 은범이 복이 없는 탓이지, 뭐.”진주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이모, 그런 말씀 마세요. 과찬이세요.”“진주야.”강수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진주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지난번에 은범이랑 같이 연극 봤다면서? 그 후로는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말해 봐. 은범이의 뭐가 마음에 안들었니?”“그게...”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지난번에 은범과 미리 조율한 대로, 진주는 연극을 본 후 자기 부모님께 자신이 은범을 향한 마음이 없다고 전했다. 이는 진주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거였고, 은범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강수희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진주는 은범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모, 은범이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다만, 저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이 말이 강수희에게 희망을 주고 말았다.“그럼, 좀 더 만나보고 알아가면 되잖아? 제발, 은범이에게 기회를 줘 봐, 응?”“어머니!”은범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다가왔다.그는 먼저 방혜령에게 인사를 건넸다.“이모, 오랜만이네요.”그리고 곧바로 어머니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어머니, 이모는 어머니를 뵈러 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내가 이러는 건...”“괜찮아.”방혜령이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을 은범에게 두었다.“이제 많이 컸네? 그런데 너희 엄마 말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아.”그녀는 딸을 한번 흘긋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한 번 본 걸로 판단하기엔 너무 성급하지 않아? 좀 더 만나면서 알아가는 게 맞지 않나?”강수희가 기뻐하며 맞장구쳤다.“내 말이!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어머니!”“엄마!”은범과 진주가 동시에 소리쳤다.그 모습을 보고, 방혜령과 강수희는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5화

    과장실 문 앞에서, 시연은 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형수님.]“지한 씨.”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유건 씨와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죠. 형님도 여기 계세요.]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유건의 무심한 어조.“심폐 프로젝트팀에 내가 들어가게 된 거, 당신이 한 일이에요?”질문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개입했다면, 바로 이해할 터였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남자의 답이 돌아왔다.[그래.]전혀 놀랍지 않았다. 시연은 눈을 감았지만,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여자의 침묵에, 유건은 비웃듯 말했다.[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벌인 일이라는 이유만으로?]시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멍청하긴...]유건이 낮게 욕했다.[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간다는 게 너한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설명해야 하냐?]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팀에 들어가면 분명 시연의 수입도 늘어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경험과 기술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돈 때문이라면 이렇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지시연.]유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나와 관계를 끊는 게 중요해? 아니면 네 미래가 더 중요해?]책망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시연도 알고 있었다.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결정을 내렸다.“고마워요, 유건 씨.”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다.‘다행이네. 이 여자, 결국 받아들였어!’하지만 시연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유건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예전엔 내가 잘못했어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요. 앞으로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유건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4화

    ‘원래라면, 저 여자, 부와 명예를 누려야 마땅해. 하지만 지금은...’...차에 돌아온 지한은 유건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즉, 유건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묵직한 어둠과 슬픔을 느낀 것.‘설마, 또 형수님한테 혼난 건가? 그게 아니면, 이번엔 진짜로 맞기라도 한 건가?’“형님...”“지한아.”유건의 시선이 멍하니 허공을 가로질렀다.“방법을 좀 찾아봐. 시연이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내가 돈을 건네면, 시연이는 절대 받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연이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건 아닐 거야.’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시연이가 돈과 명예를 탐하는 여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 한심해!’...시연은 임진아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에 양석현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교수님.”[시연아, 내일 오전에 내 사무실로 와. 할 말이 있어.]“네, 교수님.”양석현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다음 날 아침, 시연은 교대 근무도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외과로 향했다.양석현은 회진을 마친 후에야 시간을 냈고, 시연을 과장실로 데려갔다.“일찍 왔구나. 앉아.”시연은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았다.“교수님, 무슨 일이신가요?”‘혹시 내가 1학년 실험 수업을 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걸까?’“뭘 그렇게 긴장해?”양석현은 일부러 뜸을 들이다가도, 결국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은 소식이야.”그는 서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시연에게 건넸다.“이걸 작성하면, 너는 공식적으로 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가게 될 거거든.”시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교수님, 이게... 정말 규정에 맞는 건가요?”“규정대로라면, 맞지 않지.”양석현이 웃었다.“원래는 네가 대학원에 합격하면 팀에 넣을 생각이었어. 그 자체도 예외적인 거지만 말이야.” 그런데 아직 대학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양석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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