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003 화

Author: 단유
“미안하지만,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가희는 평온한 미소를 지었으나, 아름다운 눈동자엔 한 점의 온기도 없었다.

“그간 저와 관련된 모든 인사이동은 각 부서 회의에서 결정된 후, 대표이사님의 결재로 최종 확정된 건데, 유리 씨는 어느 과정에서 의문이나 불만이라는 거죠?”

가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저...!”

유리는 가희가 예전처럼 아무 말 없이 들어넘길 줄 알았지만, 예상 밖의 날카로운 반응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당황한 기색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냥 한마디 한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참나! 그동안 대표 덕 많이 봤잖아, 낙하산 주제에.’

가희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희고 가는 손가락으로 눈앞의 내선 전화기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유리 씨, 다음에 뭔가 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그룹 내 불만 접수 내선으로 바로 전화하세요. 여기서 헛소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요.”

말을 끝낸 가희는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뒤돌아 사무실로 걸어갔다.

유리는 가희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홧김에 옆에 있던 서류를 탁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짜면서 자기가 진짜인 줄 착각하나 봐. 이제 진짜가 돌아왔으니 어디 한번 얼마나 더 잘난 척하나 두고 보자고!”

따르릉-

따르릉-

가희가 막 책상에 앉자마자 옆에 있는 내선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맑고 투명하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마치 뜨거운 쇳덩이를 손에 쥐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느리게 수화기를 들었다.

“대표님, 무슨 일이죠?”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희미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가희는 의아한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여보세요, 대표님? 듣고 계신 거 맞으세요?”

계속 대답이 없어 실수로 걸린 전화라고 생각하며 끊으려던 순간, 갑자기 부드럽고 다정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이거 어떡해요? 치마가 완전히 망가져서 이제 이걸 입고 나갈 수 없잖아요.]

‘장예나?!’

가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이어서 남자의 낮고 은은한 웃음소리가 아주 잠깐 들렸고, 이내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명령이 떨어졌다.

[예나한테 줄 옷이랑 액세서리 하나 골라서 내 사무실로 보내, 지금.]

“네, 알겠습니다.”

가희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감정을 배제한 사무적인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근처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30분 후.

가희는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가득 들고 대표실 문 앞에 섰다. 너무 서둘러 온 탓에 숨이 가빠 한동안 거칠게 숨을 고르다가 몇 초간 심호흡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차갑고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 언제나 그렇듯 짧고 투박한 한마디였다.

가희는 바싹 마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 후, 늘 그렇듯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여자의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한 실장님이시죠? 고생 많으셨어요.”

장예나가 우아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가희가 든 쇼핑백을 받아 들며 잔잔한 미소로 덧붙였다.

“제가 자주 입는 브랜드예요. 신경 많이 써주셨네요.”

가희가 대답할 틈도 없이 윤호가 느릿하게 한마디를 던지며 깊고 냉정한 눈빛으로 가희를 흘긋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건 한 실장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의 무심한 말에는 암묵적인 경고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가희에게 ‘네 분수를 제대로 알라’고 상기시키려는 듯한 차가운 견제였다.

하지만 그런 경고는 애초에 쓸데없는 것이었다.

가희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그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가희는 억지 미소를 적당히 지어 보이며 마음속 깊은 불편함을 애써 감췄다.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예나 씨,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예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대표실 안쪽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가희는 본능적으로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지 않고, 더욱이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마주하는 건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가희는 그 정도로 심지가 굳은 것도 아니었다.

“대표님,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발짝도 나가기 전에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들었다.

“멈춰. 내가 나가도 된다고 했어?”

가희의 가녀린 몸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혹시 지시 사항이 더 있으신가요?”

윤호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돌아서서 말해. 지금 기본적인 예의도 잊은 거야?”

가희는 무의식적으로 늘어뜨린 손을 꽉 쥐고 있으며, 짧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아픔을 느낄 정도였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며 윤호를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말씀하시죠.”

윤호는 매서운 눈길로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니,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여기, 너희 집안의 투자 기획안이다. 가져가서 검토하고 보완할 내용이 있으면 바로 투자팀에 전달해.”

‘우리 집안의 투자 기획안?’

가희는 살짝 찡그린 눈썹 사이에 의문을 담았지만, 서류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NP 그룹 관련 일에 대해서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궁금하신 게 있다면 제 아버지와 직접 논의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

윤호는 그녀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는 네가 이 투자안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의 말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었지만 가희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희는 한동건 부부의 양녀에 지나지 않았다. 집안의 중요 대소사에 관여할 권리도 없었고, 하물며 NP 그룹과 관련된 투자 건이라면 더더욱 가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 사정에 대해 이윤호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말을 꺼내지?’

“듣자 하니, 너희 집안에서 최근 어떤 땅에 관심을 보이던데.”

윤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여자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반드시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던데.”

가희는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며 서늘함을 느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발 가치가 있는 땅은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꼭 그렇진 않아.”

윤호는 흥미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천천히 일어서더니, 느릿한 걸음으로 가희에게 다가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건 실제 가치는 별로 없더라도, 누군가는 그걸 얻기 위해 큰돈을 쓰기도 하지. 왜 그런지 알아?”

윤호가 너무 가까이 다가섰다.

가희는 그에게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이 느껴질 정도였다.

길고 가는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어색하게 입술을 떼며 더듬거리듯 물었다.

“왜... 왜죠?”

그러나 윤호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가희의 살짝 당황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깊고 어두운 눈빛 속에 어떤 의도를 감춘 채 침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가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윤호의 시선을 피하려던 찰나, 휴게실 안에서 예나의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이것 좀 도와줄래요? 이 목걸이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마음이 순간 차디찬 얼음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해서 가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한 발 물러섰다.

윤호의 깊고 어두운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여자가 자신을 피하려는 듯한 태도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도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윤호는 알 수 없는 의미를 담아 낮고 천천히 말했다.

“한가희,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더 이상 가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돌아서서 휴게실 쪽으로 걸어갔다.

가희는 멍하니 그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내가 알게 될 게 뭐지?’

‘대체 뭘 알 거라는 뜻이야...’

혼란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자 갑자기 두통이 심해졌다. 가희는 지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힘겹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윤호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도,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희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사람은 내가 감히 바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가희는 손을 들어 창문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금빛 햇살을 가리며 붉어진 눈가를 가렸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인사팀으로 향했다.

인사팀 책임자는 가희가 건넨 사직서를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류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확인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물었다.

“한 실장님, 정말 퇴사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갑자기요?”

그리고 속으로는 이미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 실장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SR 그룹 전체가 다 알잖아! 대표 비서실의 만능 해결사, 대표님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완벽한 비서인데...’

‘이런 한 실장이 낸 사직서를 함부로 처리할 수 없지, 말도 안 돼!’

가희는 책임자가 난처해하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가볍게 입술을 다물었다가 열며 덤덤하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요. 대표님께도 이미 말씀드렸고, 승인받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책임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썩 이해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은 퇴사 절차에 대해 가희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사직서는 부서별로 확인을 거친 후, 3일 내로 최종적으로 대표님 결재가 이루어질 겁니다.”

“그 후, 모든 절차가 끝나면 한 실장님은 자유입니다.”

‘자유...’

가희는 속으로 그 단어를 곱씹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 좋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세상에 떠나기 전에 가희가 반드시 끝내야 할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 chapters

  • 비밀애인   0004 화

    “다음 정류장은 청산요양원, 청산요양원 정류장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기계음 안내방송이 천천히 버스 안에 울려 퍼졌고, 좁은 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희는 손에 든 보온병을 조심스레 들고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버스에서 내린 후,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요양원 3층으로 걸어 올라가 복도 끝에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고령의 할머니가 희미하게 보였다. 가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 비밀애인   0005 화

    생각을 다 정리한 가희는 잠을 잘 자지 못해 뻑뻑한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윤호와의 관계는 그저 ‘거래’였다. 그걸 잘 알면서도 괜히 스스로를 원망하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가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요양원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머, 가희 아니야? 이렇게 보자마자 가버리다니, 무슨 찔리는 일이라도 있는 거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진민주, 우준서의 아내였다. 과거 가희와 우준서의 사이가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

  • 비밀애인   0006 화

    가희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왕 대표님.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저희 대표님께서 이번 계약은 중요하니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윤호가 직접 자신을 보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시 말해, SR 그룹 대표가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왕명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왕명찬은 그녀의 은근한 경고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가희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술잔이 몇 차례 오간 뒤, 왕명찬은

  • 비밀애인   0007 화

    가희는 자리로 돌아와 계약서를 확인하던 중, 왕명찬이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록 왕명찬도 불쾌한 인물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사업을 키운 사람인 만큼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SR 그룹과 틀어지는 것은 WR 그룹에게 전혀 득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가희는 서류를 가방에 넣고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은 차량과 인파로 북적였고, 거리의 불빛들이 눈부셨다. 그러나 이 화려한 도심 한가운데서, 그녀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혔다.

  • 비밀애인   0008 화

    ‘설마... 오늘 밤 여기서 얼어 죽는 거 아니겠지?’ 그녀의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의식이 아득해질 무렵, 멀리서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왔다. 익숙한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빗속을 뚫고 천천히 가희 앞에 멈춰 섰다....다음 날 아침.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빛이 비쳐 들어와 침대 위에 누운 가희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녀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려 했지만, 온몸이 뻐근하고 힘이 빠져 있었다. 여자의 눈앞에 보인 것은 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샹들리에. ‘여긴 어디지...?’ 그 순간

  • 비밀애인   0009 화

    윤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 신규 프로젝트 협력 건을 완수하면, 그때 네 퇴사를 받아들여 주지.” 가희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대표님, 이건 처음에 이야기하신 조건과 다릅니다.” 그녀는 이미 모든 업무를 철저하게 인수인계했고, 자신이 떠난 뒤에도 대표실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윤호가 그녀의 퇴사를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순간적으로 가희의 마음속에 묘한 기대감이 스쳤다. ‘설마 나를 붙잡으려는 거야?’하지만 남자의

  • 비밀애인   0010 화

    의사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병상 앞에서 애타게 매달리는 가족들을 너무 많이 봐 왔기에 더 이상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오순미 할머님은 오래된 심장 질환으로 인해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비용은 약 1억 정도 예상되며, 이후 회복을 위한 재활 치료와 요양에 필요한 추가 비용도 고려하셔야 합니다.”가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수술비는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해 주세요.” 의사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 비밀애인   0011 화

    그 시각 윤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오순미 할머니가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흥. 병세가 심각해진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히네.’ 윤호는 차갑게 물었다. “성진건설에 대한 투자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비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표님 예상대로 성진건설에 다량의 자본이 외부에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공식적인 회계 장부상으로는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윤호는 손가락 마디가 분명한 손으로 책상을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며

Latest chapter

  • 비밀애인   0051 화

    가희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알렌의 얼굴빛이 순간 창백해졌다. 가희의 말은 마치 날 선 칼처럼 그녀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찔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알렌은 그때 울린 휴대폰 벨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가희는 행사장 구석을 돌아다니며 이상이 없는지 점검을 마치고 잠시 앉아 쉴 생각이었지만, 그때 알렌이 다소 어색한 영어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너더러 오라고 했어? 설마 왕국영도 그렇게 말했어? 걔 나 꼬실 때는 그런 말 안 했거든.” “뭐라고? 지금 내가 임신하니까 날

  • 비밀애인   0050 화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지금 알렌이 윤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단순한 비즈니스적 시선이 아니라, 어딘가 감상하는 듯한 기색이 짙었기 때문이었다. 가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윤호가 와인잔을 들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가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여부는 우리 비서가 허락해야 할 것 같은데요.”알렌의 표정이 순간 살짝 굳었다. 하지만 가희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침착하게 답했다. “대표님께서는 오후에 귀사에서 마련한 환영 행사에 참석하셔야 하고, 저녁에는 냉동창고

  • 비밀애인   0049 화

    “실장님, 방금 대표님이 오늘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문서들 정리하러 갔다 왔는데, 오늘 AW 그룹의 알렌, 그러니까 그날 봤던 여자 비서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같이 가시겠어요?” 주성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고, 가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윤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네가 안 가도 돼. 난 창고 시찰하러 가야 하니까, 넌 호텔에 남아서 문서나 정리해.” 주성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조금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한 실장님 목에 있던 그건

  • 비밀애인   0048 화

    가희의 얼굴이 순간 붉게 물들었고, 윤호를 바라보며 당황한 기색으로 두 손을 그의 가슴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시간이 벌써... 저...”하지만 윤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고, 곧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가희, 넌 왜 여기 있어?”그 한마디에 가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젯밤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결국 또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네...’가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윤호는 그녀의 손목을 더 세게 잡으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날 유혹하려

  • 비밀애인   0047 화

    “대표님, 취하셨어요. 일단 가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희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윤호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마치 집착이라도 하듯 답을 강요했다. “후회하냐고! 한가희, 너 후회해?”‘후회?’ 가희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후회할 게 대체 뭐가 있지?’ ‘나는 그저 당신의 말 한마디에 움직여야 했던,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존재였잖아.’ ‘당신이 나에게 애인이 되라고 했을 때, 거절할 수 없었어. 자존심을 내던지고 당신 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지.’ ‘그

  • 비밀애인   0046 화

    윤호가 SR 그룹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가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고, 거의 매일 과로와 싸우며 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가희에게 익숙했다. 그가 직접 지시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윤호가 금방 눈치챌 것이 뻔했다. 가희는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주어진 일을 끝내기로 결심했다.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자기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 사이, 주성은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 비밀애인   0045 화

    “와서, 상처 다시 소독하고 붕대 감아주세요.”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가희의 상처를 다시 제대로 처리했다. 의사는 처치를 마친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환자분의 상처는 중요 장기나 신체 부위를 피했기 때문에 며칠만 안정을 취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당분간 식사나 생활 습관에 신경을 쓰셔야 하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약간 우울 증세가 보이는데, 심해지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의 설명이 끝나자 모두 병실에서 빠져나갔고, 병실 안에는

  • 비밀애인   0044 화

    윤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여비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주성은 여비서의 은근한 매력에 점점 더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주성은 그녀의 눈에 잠깐 스친 불쾌감의 기색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그때 갑자기 주성의 휴대폰이 울렸다. 윤호는 곧바로 주성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물었다. “간병인에게서 온 전화인가?”주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병원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요.”윤호는 곧바로 여비서를 향해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미팅은 이만 마쳐야 할 것

  • 비밀애인   0043 화

    “총알이 다행히 주요 장기를 크게 손상시키지는 않았습니다만, 환자분의 전반적인 생존 의지가 강하지 않아 당분간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윤호가 병실로 들어섰을 때, 가희는 침대에 누워 미동도 없이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마치 이미 세상을 떠난 것처럼 창백하고 생기 없는 모습이었다. 아까 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윤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가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한가희, 죽고 싶으면 적어도 나한테는 물어봐야지.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