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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화

Author: 단유
“다음 정류장은 청산요양원, 청산요양원 정류장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기계음 안내방송이 천천히 버스 안에 울려 퍼졌고, 좁은 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희는 손에 든 보온병을 조심스레 들고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버스에서 내린 후,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요양원 3층으로 걸어 올라가 복도 끝에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고령의 할머니가 희미하게 보였다.

가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그 소리에 창문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할머니가 힘겹게 휠체어를 돌리며 가희를 바라보았다.

“우리 가희 왔구나.”

오순미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웬일로 시간이 났니? 요즘 회사 일 바쁘지 않아?”

“안 바빠요. 할머니 보고 싶어서 왔죠.”

가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손에 든 보온병을 내려놓고 서둘러 오순미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머니 좋아하시는 작은 만둣국 좀 싸 왔어요. 저랑 같이 조금 드실래요?”

“아이고, 우리 착한 가희. 이렇게 신경 써 주다니.”

오순미는 애틋한 표정으로 그녀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간 내가 아픈 것도 미안한데 네가 곁에서 이렇게 늘 챙겨주니, 내가 참 고맙고도 미안하다.”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가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오순미의 말을 만류했다.

그녀는 오순미의 마른 손등을 꼭 잡고 볼을 살짝 문지르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때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 없을지도 몰라요.”

...

한동건 부부가 당시 가희를 입양한 건 순전히 자선 활동으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들은 혈연도 없는 양녀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지도 않았고, 딱히 많은 것을 베풀 생각도 없었다.

어린 가희는 집안 하인들과 함께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어느 날, 가희가 실수로 한동건의 아내가 입는 비싼 드레스를 다리미질하다 망가뜨리는 바람에 무려 사흘 동안 밥을 굶는 벌을 받았다.

그때 오순미가 가희를 발견한 것이다.

겨우 여섯 살짜리 어린 가희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비쩍 마른 몸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가희 앞에 대형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트럭을 피할 기력조차 없었다.

오순미는 아무것도 생각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가희를 끌어안고 몸으로 보호했다.

그렇게 가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오순미는 다리를 크게 다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되었다.

...

“할머니, 할머니가 저한테 베풀어주신 은혜는 제가 평생 노력해도 다 갚을 수 없어요.”

가희는 진심을 담아 조용히 감사의 말을 전하며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니까 할머니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요.”

“아니야, 내 불쌍한 아이...”

오순미는 한없이 다정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가희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목이 메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할머니는 예전에 네가 준서랑 잘되기를 바랐어. 정말 그랬단다... 그런데 지금은...”

오순미는 말끝을 흐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삼키려 애썼지만, 끝내 떨리는 목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됐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녀석은 네가 감당할 사람이 못 돼.”

그 말을 들은 순간, 가희는 ‘준서’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는지 그 기억조차 희미했다.

오랜 시간 감정의 흔들림 없이 지내왔던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짙어지며 어두워졌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희는 말없이 자리에서 돌아서 보온병 속에 담긴 작은 만둣국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뜨거운 국물이 손등에 튀며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그녀는 멍하니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마치 현실로 돌아온 듯 힘겹게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그 일들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에요.”

가희의 목소리엔 담담함 속에 묘한 쓸쓸함이 서려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오순미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가희의 담담한 말에 오순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녀’가 내민 하얀 도자기로 된 대접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오순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반짝였고, 참으려 했던 눈물이 끝내 흘러내리기 직전,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애타게 말했다.

“가희야... 제발, 할머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준서를 미워하지 말아 줘. 응?”

“...네.”

가희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 놓인 종이 타월을 집어 들고 조심스레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가희의 행동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깊고 따스했다.

그러나 오순미는 가희의 담담한 모습에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고, 다시 솟아나는 눈물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준서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애가 받은 충격은 너무 컸어. 그 충격 때문에 한씨 집안 모든 사람을 원망하고 증오로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지른 거야.”

오순미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가희야, 그 애 마음속엔 네가 있었어. 네가 누구인지 알고 나서 그렇게 괴로워했던 것도 그 때문이야...”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희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바닥에 무겁게 닿았다.

가희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지만 고개를 돌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남몰래 훔쳤다.

“할머니, 우리 이런 얘기 하지 말아요, 네?”

가희는 애원하듯 말하며 차분하게 감추던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었다.

과거의 깊은 상처 때문에 여전히 아팠고, 견디기 힘들었다.

오순미는 그런 가희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가희야... 네가 준서를 위해 했던 일들, 할머니는 다 기억하고 있어. 그때 네가 아니었으면... 할머니가 그 아이 대신 진심으로 미안하단다.”

“할머니!!”

가희는 다급하게 오순미의 말을 끊으면서 차가운 눈동자 속에 간절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있었다.

“제발, 그런 얘기 이제 그만해 주세요. 다 지난 일이에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지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결혼도 했고, 저도 제 삶을 살아갈 거예요.”

가희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며 담담하게 말했다.

“과거에 제가 했던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도,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길 바랄 겁니다.”

여기에 덧붙일 말은 없었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이제 그런 감정은 가희에게 사치였다.

앞으로는, 조용히 홀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그녀가 바라는 전부였다.

가희가 요양원을 나섰을 때는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그녀는 혼자 외롭게 조약돌이 깔린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드문드문 몇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이 네댓 개 흩어져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4년 전 그날 밤과 같았다.

그날 밤, 한동건 부부는 가희를 윤호에게 보냈다.

윤호는 마치 어둠 속에 숨어서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 같았다.

그는 긴 다리를 꼬고 앉아 가죽으로 덮인 고급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었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가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 왜 한동건 부부가 너를 여기로 보냈는지.”

윤호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희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움에 가득 차 고개를 서둘러 저었다.

“네가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이지.”

윤호는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니, 숨길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거래의 대상일 뿐, 그다지 경계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태연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특히 그 눈. 그 사람이랑 거의 똑같아.”

그 순간, 가희는 깨달았다. 윤호에게는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여인이 있었고, 자신은 단지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선택된 것이었다.

“하지만 난 강요하는 건 싫어하니까 선택권을 줄게.”

윤호는 늘 그렇듯 차갑고 이성적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을 앞에 두고도 감정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손에 든 와인잔을 천천히 흔들며 가희를 한참 동안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싫으면 지금 나가도 돼.”

가희는 그때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무 살 남짓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이런 위압적인 분위기와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을 마주한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 가희는 정말 두려웠다. 그리고 너무나도 두려워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동건 부부는 애초부터 SR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해 왔다.

그들은 계획 속에서 가희를 철저히 거래의 도구로 여겼고, 양녀를 이용하기 위해 함정을 이미 촘촘하게 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희는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내몰며 벼랑 끝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싫어... 싫어하지 않아요. 제가... 제가 원해요.”

가희는 고개를 떨군 채 윤호 앞에 서 있으며, 눈을 내리깔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대표님 같은 분이라면... 저를 크게 손해 보게 하진 않으실 테니까요.”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윤호는 특별히 놀라거나 흡족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늘 그렇듯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였고, 그저 흥미롭다는 듯 가벼운 웃음소리만 내뱉었다.

“재미있네. 말해 봐, 원하는 게 뭐지?”

“...8억이요.”

가희는 긴장한 채 손바닥을 꼭 쥐었다.

짧은 손톱이 살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8억만 주시면... 제가 대표님...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윤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가희는 속으로 차가운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찬 채 서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순간이었다.

윤호도 그녀가 내민 조건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별다른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가희의 말을 끝까지 듣고, 아무 말 없이 수표를 꺼내 건넸다.

그러다 무심한 목소리로 한마디 물었다.

“물어봐도 돼? 그렇게 큰돈이 어디에 필요한 건데?”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한동건 부부 때문에 모든 미래가 망가질 뻔한 우준서,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하지만, 가희는 그 진실을 윤호에게 털어놓지 않고,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조용히 말했다.

“죄송해요, 대표님. 개인적인 일이에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 편할 대로.”

윤호는 더 이상 캐물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신, 그는 천천히 한 걸음 다가와 가희 앞에 서더니 긴 다리를 내딛고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윤호가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가볍게 여자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남자의 큰 키에 가희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희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를 악물고 움직임을 멈췄다.

윤호는 그녀의 두려움과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난 눈빛을 놓치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한가희, 내가 너한테 선택할 기회를 줬어. 그런데 네가 그걸 거절한 거야.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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