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희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왕 대표님.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저희 대표님께서 이번 계약은 중요하니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윤호가 직접 자신을 보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시 말해, SR 그룹 대표가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왕명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왕명찬은 그녀의 은근한 경고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가희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술잔이 몇 차례 오간 뒤, 왕명찬은
가희는 자리로 돌아와 계약서를 확인하던 중, 왕명찬이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록 왕명찬도 불쾌한 인물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사업을 키운 사람인 만큼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SR 그룹과 틀어지는 것은 WR 그룹에게 전혀 득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가희는 서류를 가방에 넣고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은 차량과 인파로 북적였고, 거리의 불빛들이 눈부셨다. 그러나 이 화려한 도심 한가운데서, 그녀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혔다.
‘설마... 오늘 밤 여기서 얼어 죽는 거 아니겠지?’ 그녀의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의식이 아득해질 무렵, 멀리서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왔다. 익숙한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빗속을 뚫고 천천히 가희 앞에 멈춰 섰다....다음 날 아침.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빛이 비쳐 들어와 침대 위에 누운 가희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녀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려 했지만, 온몸이 뻐근하고 힘이 빠져 있었다. 여자의 눈앞에 보인 것은 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샹들리에. ‘여긴 어디지...?’ 그 순간
윤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 신규 프로젝트 협력 건을 완수하면, 그때 네 퇴사를 받아들여 주지.” 가희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대표님, 이건 처음에 이야기하신 조건과 다릅니다.” 그녀는 이미 모든 업무를 철저하게 인수인계했고, 자신이 떠난 뒤에도 대표실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윤호가 그녀의 퇴사를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순간적으로 가희의 마음속에 묘한 기대감이 스쳤다. ‘설마 나를 붙잡으려는 거야?’하지만 남자의
의사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병상 앞에서 애타게 매달리는 가족들을 너무 많이 봐 왔기에 더 이상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오순미 할머님은 오래된 심장 질환으로 인해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비용은 약 1억 정도 예상되며, 이후 회복을 위한 재활 치료와 요양에 필요한 추가 비용도 고려하셔야 합니다.”가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수술비는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해 주세요.” 의사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시각 윤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오순미 할머니가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흥. 병세가 심각해진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히네.’ 윤호는 차갑게 물었다. “성진건설에 대한 투자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비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표님 예상대로 성진건설에 다량의 자본이 외부에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공식적인 회계 장부상으로는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윤호는 손가락 마디가 분명한 손으로 책상을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며
“좋아. 남은 일은 전부 한 실장이 알아서 맡아서 진행해.”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 나가려 했으나,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렸다. 장예나가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은빛 하이힐이 바닥을 울리며 리드미컬하게 걸어오는 예나는 고급스러운 흰 원피스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고, 흐트러짐 없이 빛나는 웨이브진 헤어와 은은하게 풍기는 아르마니 향수의 향기가 그녀의 품격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예나는 윤호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오늘 나랑 식사하기로 했던 거 잊은 건 아니죠?
윤호는 가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입을 열었다. “한 실장, 연기를 그렇게 잘한다면, 혹시 실수로 한 마디라도 흘리면 어떤 결과가 올지 잘 알겠지.” 가희는 두 손을 꽉 쥐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비웃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아냈다. ‘이윤호, 어차피 장예나 앞에서는 완벽한 연인을 연기할 거면서, 왜 굳이 나를 끌어들여 애인처럼 만들었어?’하지만 이런 생각을 윤호에게 직접 내비칠 수는 없었다. ‘지난 4년은 결국 철저한 거래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 거래에서 얻은 이익을 부정할 수는
가희는 창백한 얼굴로 이정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을 때, 가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감사합니다.”이정은 가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한가희 씨지요? 나도 가희 씨 알아요.”가희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나를 안다는 건, 아마도 최근의 뜨거운 실시간 검색어 때문이겠지.’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도 눈앞에 있는 여성을 알아봤다. 소이정, 과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다만,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B 국으로 떠났
“아가, 엄마는 오늘 술 안 마실 거야. 엄마가 널 지켜줄게.”하지만, 가희는 바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셀레나가 있는 룸의 문을 열자, 중심에 앉아 있던 장예나가 가희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희는 본능적으로 셀레나를 경계하고, 본능적으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셀레나가 가희의 손목을 붙잡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여기 앉아. 다들 몰랐겠지만, 이 사람이 내 새 매니저야. 꽤 유능하다고.”예나는 가희의 옆자리를 내주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한 실장님, 이렇게 또 만나네요. 정말 우연
“너...”셀레나가 여전히 당황하며 몸부림치는 동안, 가희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바늘과 실을 집어 들었다. 가희는 빠른 손놀림으로 실밥이 풀린 셀레나의 드레스를 즉석에서 꿰매기 시작했다.셀레나는 숨이 막히는 듯 분노했다.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가희를 때리려 했지만, 가희는 셀레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는 그대로 무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시간 없어요.”셀레나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저항할 틈도 없이 가희에게 떠밀리듯 런웨이 위로 올라갔다.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셀레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이 드레스가 스
셀레나는 자신이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문 앞에 서 있던 강지섭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셀레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보다니, 참 보기 드문 광경이네.”셀레나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고,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이런 우연이 있나요?”지섭은 소파에 앉아 가희가 작성한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남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감탄의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우연은 아니고. 가희 씨 보러 온 거야. 첫날이라 혹시나
가희는 몸이 거의 회복되자, 퇴원 후 바로 셀레나의 작업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이미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희는 노트북을 들고 셀레나의 대기실로 들어섰다. 셀레나는 대기실로 들어오는 가희를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신입이야? 와서 옷 정리 좀 해.”가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셀레나 씨 매니저입니다. 이런 일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흥.’셀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희를 압도하는 기세로 다가왔다.여자는 키가 180cm 정도 되었고,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서 가희를 아래로
“예나와의 결혼은 할머니의 유언입니다. 전 그 뜻을 어길 생각이 없습니다. 한가희와 관련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윤호는 자신이 가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오직 물질적 지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희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그는 말을 마치고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이영국은 윤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그는 혈압약을 삼키고 나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나 젊었을 때
윤호는 가희의 턱을 거칠게 잡으며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아귀는 점점 더 강하게 조여졌다.“한가희,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최근에 지섭이 모델을 구하는 일이 있다던데, 너는 거기 가서 지원 업무 해.”윤호는 눈을 감았다. 그는 가희가 외부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지섭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가희를 계속 집안에만 가둬둔다면, 결국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가희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희의 감정 없는 얼굴을 보며, 윤호의 가슴속에서는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
예나는 눈물을 흘리며 점점 더 흐느꼈다.“오빠, 혹시 인터넷에 뜬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그게 내가 조작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일은 정말 나랑 아무 상관 없어요!”그녀는 오늘 가희와 준서의 스캔들이 터진 걸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미 이영국이 윤호에게 결혼을 서두르라고 압박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스캔들이 터진다면 누가 봐도 자신이 꾸민 일이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윤호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냉랭하게 말했다.“그딴 거 신경 안 써. 예나야,
준서의 눈앞에서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핏방울이 번진 그의 얼굴 위로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해서 빛났다. 진민주는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뛰어왔다. 민주의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이를 악물고 현장에 있는 모든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 사람들, 단 한 명도 그냥 보내지 마.”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곧바로 의사들에게 준서를 응급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그 후, 그녀는 거침없이 가희의 병실로 향하며, 병실 문 앞에서 강지섭과 마주쳤다. 지섭은 민주를 보자마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