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희는 굳이 충돌을 피하고자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 했지만, 민주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실장, 왜 그렇게 급하게 가시려고?” 민주는 날렵한 하이힐을 신고 가희의 팔을 붙잡으려 다가섰지만, 순간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준서가 다가와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고, 민주의 몸은 준서의 품에 안겼다. “괜찮아?” 준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주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살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카롭던 민주는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한층 부드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가 좀 부주
세 사람은 마침내 레스토랑을 나섰다. 예나는 윤호 옆에 바짝 붙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었고, 윤호는 그런 그녀에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가희는 마치 가슴 속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와 몸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빛은 점점 창백해졌다. 차에 오르기 직전, 가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뒤 차분하게 말했다. “대표님, 저는 방향이 다르니까 여기서 따로 가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윤호는 가희를 잠시 쳐다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차에 올라탔다. 예나 역시 윤호와 함께
하지만 이내 그녀는 이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아니야, ㄹ 그럴 리 없어. 한가희 따위가 뭐라고? 그런 애가 나를 상대할 자격이나 있어?’ 예나는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좋아, 한가희. 내가 이윤호의 마음속에서 네가 나와 비교도 안 될 존재라는 걸 똑똑히 보여줄게.” 그때 가희의 검사 결과지를 들고 병실로 들어오는 의사의 표정이 자못 무겁고 진지했다. 윤호가 검사 결과를 받으러 다가가려는 순간, 예나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몸의 균형을 잃었다. 윤호는 즉시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
가희는 한동건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제야 이해했다. 평소에 자신을 딸로 여기지도 않던 부모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한동건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너 참 고집 센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도 알잖니? 우리가 잘돼야 네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지금 네가 누리는 삶, 다 우리가 만들어준 거 아니냐?” 가희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가 진짜 입양 덕분에 편하게 살았다고?’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데려온 후 그녀가 누렸던 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혹시 한가희 씨 맞나요? 여기는 ‘나이트’입니다. 이윤호 씨께서 술에 많이 취하셨는데, 혹시 와서 모셔가실 수 있을까요?] 가희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차렸다. 윤호가 술에 취했다는 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술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건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밤공기를 가르며 집 밖으로 나섰다.
가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잠든 윤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남자의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눈 밑으로 그림자를 드리웠고, 평소 차갑고 냉정한 표정 대신 지금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가희는 살짝 미소 지으며 손을 뻗어 윤호의 미간을 살짝 만졌다. 그 순간 윤호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리자, 가희는 손을 급히 거두었지만,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오히려 더 크게 번져나갔다.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던 가희는 깊이 숨을 내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나 씨, 이 대표님이
예나는 그런 윤호의 시선을 받으며 얼굴에 살짝 붉은 기운을 띠었다. 마치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어젯밤 많이 취했었잖아요. 바텐더가 나한테 연락해서 내가 오빠를 부축해서 데려왔는데... 침대에 겨우 눕혔더니 오빠가 갑자기 나한테...” 예나는 일부러 말을 흐리며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순수한 여자애처럼 보였고, 윤호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윤호의 머릿속은 여전히 어젯밤의 기억이 불분명했고, 그는 예나를
예나는 윤호의 굳어 있는 표정을 보고 남자의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황한 예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몸을 살짝 웅크리며 더욱 가녀린 허리선을 드러냈다.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여러분, 제발 사진 촬영은 자제해 주세요...” 하지만 흥분한 기자들은 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더욱 가까이 다가오며 두 사람을 에워쌌다.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예나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윤호가 재빠르게 그녀의 팔을 붙잡아 세우고 자
가희는 창백한 얼굴로 이정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을 때, 가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감사합니다.”이정은 가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한가희 씨지요? 나도 가희 씨 알아요.”가희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나를 안다는 건, 아마도 최근의 뜨거운 실시간 검색어 때문이겠지.’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도 눈앞에 있는 여성을 알아봤다. 소이정, 과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다만,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B 국으로 떠났
“아가, 엄마는 오늘 술 안 마실 거야. 엄마가 널 지켜줄게.”하지만, 가희는 바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셀레나가 있는 룸의 문을 열자, 중심에 앉아 있던 장예나가 가희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희는 본능적으로 셀레나를 경계하고, 본능적으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셀레나가 가희의 손목을 붙잡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여기 앉아. 다들 몰랐겠지만, 이 사람이 내 새 매니저야. 꽤 유능하다고.”예나는 가희의 옆자리를 내주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한 실장님, 이렇게 또 만나네요. 정말 우연
“너...”셀레나가 여전히 당황하며 몸부림치는 동안, 가희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바늘과 실을 집어 들었다. 가희는 빠른 손놀림으로 실밥이 풀린 셀레나의 드레스를 즉석에서 꿰매기 시작했다.셀레나는 숨이 막히는 듯 분노했다.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가희를 때리려 했지만, 가희는 셀레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는 그대로 무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시간 없어요.”셀레나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저항할 틈도 없이 가희에게 떠밀리듯 런웨이 위로 올라갔다.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셀레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이 드레스가 스
셀레나는 자신이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문 앞에 서 있던 강지섭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셀레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보다니, 참 보기 드문 광경이네.”셀레나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고,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이런 우연이 있나요?”지섭은 소파에 앉아 가희가 작성한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남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감탄의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우연은 아니고. 가희 씨 보러 온 거야. 첫날이라 혹시나
가희는 몸이 거의 회복되자, 퇴원 후 바로 셀레나의 작업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이미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희는 노트북을 들고 셀레나의 대기실로 들어섰다. 셀레나는 대기실로 들어오는 가희를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신입이야? 와서 옷 정리 좀 해.”가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셀레나 씨 매니저입니다. 이런 일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흥.’셀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희를 압도하는 기세로 다가왔다.여자는 키가 180cm 정도 되었고,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서 가희를 아래로
“예나와의 결혼은 할머니의 유언입니다. 전 그 뜻을 어길 생각이 없습니다. 한가희와 관련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윤호는 자신이 가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오직 물질적 지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희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그는 말을 마치고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이영국은 윤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그는 혈압약을 삼키고 나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나 젊었을 때
윤호는 가희의 턱을 거칠게 잡으며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아귀는 점점 더 강하게 조여졌다.“한가희,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최근에 지섭이 모델을 구하는 일이 있다던데, 너는 거기 가서 지원 업무 해.”윤호는 눈을 감았다. 그는 가희가 외부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지섭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가희를 계속 집안에만 가둬둔다면, 결국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가희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희의 감정 없는 얼굴을 보며, 윤호의 가슴속에서는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
예나는 눈물을 흘리며 점점 더 흐느꼈다.“오빠, 혹시 인터넷에 뜬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그게 내가 조작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일은 정말 나랑 아무 상관 없어요!”그녀는 오늘 가희와 준서의 스캔들이 터진 걸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미 이영국이 윤호에게 결혼을 서두르라고 압박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스캔들이 터진다면 누가 봐도 자신이 꾸민 일이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윤호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냉랭하게 말했다.“그딴 거 신경 안 써. 예나야,
준서의 눈앞에서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핏방울이 번진 그의 얼굴 위로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해서 빛났다. 진민주는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뛰어왔다. 민주의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이를 악물고 현장에 있는 모든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 사람들, 단 한 명도 그냥 보내지 마.”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곧바로 의사들에게 준서를 응급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그 후, 그녀는 거침없이 가희의 병실로 향하며, 병실 문 앞에서 강지섭과 마주쳤다. 지섭은 민주를 보자마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