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도면을 잃어버려? 심지어 도면 대신 백지가 몇 장 들어있다고?’최성운은 서정원이 이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를 리 없다고 생각해 그녀의 설명을 들어볼 생각이었다.그러나 서정원은 해명할 생각이 없는 건지 평온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일단 이 일은 논의하지 않겠어요.”서정원은 백아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도면 백업했나요?”백아영은 이내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서정원 비서, 우리 주얼리 디자인 도면은 전부 손으로 그린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손으로 그린 건데 어떻게 백업해요? 서정원 비서는 그 정도 상식도 없
반지, 목걸이, 팔찌, 세 개 도면이 생생하게 반짝이고 있었다.더 놀라웠던 건, 서정원이 그린 도면이 디자이너팀의 손으로 그린 도면과 몇 군데 살짝 다른데, 오히려 달라진 점들이 얼음과 불 시리즈 주얼리에 영혼을 불어넣어 사람들을 푹 빠지게 만든다는 점이었다.주얼리 디자인팀의 수석 디자이너도 하지 못한 일을 서정원이 해낸 것이다.시골에서 올라온 그의 약혼녀 서정원은 대체 그에게 얼마나 더 많은 놀라움을 안겨주려는 걸까?하은별은 서정원이 그린 디자인 도면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이럴 수가!‘서정원은 대체 어떻게 겨우 한
“무슨 일이죠?”하은별과 백아영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마음속의 불만을 억누르며 의아한 표정으로 서정원을 바라봤다.서정원은 폴더에서 꺼냈던 백지를 흔들어 보였다.“이젠 이 일에 관해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서정원의 손에 들린 백지를 본 순간, 하은별의 눈빛이 저도 모르게 흔들렸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서정원은 종이를 들고 최성운의 앞에 서서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디자인 도면이 갑자기 백지로 바뀌었는데, 대표님은 의심이 들지 않으세요?”최성운의 마디마디 분명한 큰 손이 백지를 건네받았다. 그
서정원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하은별이 쉽게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하은별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서정원은 오늘 하은별이 한 짓을 밝히기 위해 미리 준비해 뒀다.“저한테 증거가 있어요. 당신이 오늘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증거 말이에요.”서정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최성운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은 크고 건장했고 표정은 차갑고 무심했다. 그는 얇은 입술이 일자가 되게 입을 꾹 다물었다.그는 서정원을 힐끗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얘기했다.“증거가 있다면 얘기해
“네, 대표님.”임창원은 정중하게 대답했다.그는 오늘 아침 서정원이 공항으로 떠나고 나서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사이의 CCTV 영상을 확보한 뒤 그것을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대표님, 가져왔습니다.”임창원은 들고 있던 USB를 최성운에게 건넸다.최성운은 USB를 건네받은 뒤 몸을 뒤로 젖히며 눈을 가늘게 떴다.CCTV에는 과연 뭐가 찍혔을까?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USB를 테이블 위에 놓은 뒤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재생하세요.”“네.”임창원은 명령에 따라 노트북을 켜고 화면 미러링을 한 뒤 USB에 담긴 CCTV
분명 서정원이 일부러 거짓말해 하은별을 당황하게 만들 셈이 분명했다.그러니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해야 했다.십 분 뒤, 영상 속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중년 여성이 회의실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는 다름 아닌 김희주였다.“김희주 씨, 안으로 들어오세요.”서정원은 김희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눈치를 줬다.김희주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지만 결연히 안으로 들어왔다.김희주를 본 순간, 하은별은 안색이 창백해졌다.그녀는 분명 김희주가 사직하여 시골로 내려간 걸 확인했었다. 그런데 김희주가 지금 왜 이곳에
김희주가 녹음용 펜을 꺼내 스위치를 누르자 두 사람의 대화가 흘러나왔다.“김희주 씨, 계좌에 5000만 원 입금했어요. 일이 끝난 뒤에 또 5000만 원 입금할게요. 이 돈이면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김희주 씨도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죠?”녹음용 펜 안에서 들리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하은별의 목소리였다.김희주는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돈을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 하은별 부장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간단해요. 그냥 손 좀 써서 서정원 씨 자료를 바꿔치기하면 돼요.”하은
“대표님, 전...”최성운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하은별은 몸이 얼어붙었다.최성운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나며 마치 칼날처럼 하은별을 사정없이 찔렀다.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은별 씨, 당신은 해고입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더 이상 운성 그룹의 직원이 아닙니다.”‘뭐라고? 해고?’그 말에 하은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아뇨, 대표님. 절 해고하시면 안 돼요!”하은별은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최성운에게 달려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성운 씨, 그거 알아요? 제가 이런 짓을 한 건 전부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전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