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소리와 함께 9명의 자객은 재빨리 날아올라 뿔뿔이 흩어졌다. 필명은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객들은 사온을 구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죽이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차를 바라볼 때 멍해졌다. 그 자객은 마차에 끌려들어 갔고 두 발은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송석석은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 마차의 커튼을 열었다. 필명은 가까이서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야님?” 마차에는 사여묵 뿐만 아니라 사온도 마차 한쪽에 묶여있었는데 방금 비명을 지른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지금 매서운 눈빛으로 그 자객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여묵은 자객을 잡고 마차에서 내려 필명에게 말했다. “대리사로 데려가거라. 내가 그의 혈을 찍었고 입에 있던 독약도 꺼냈지만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데려간 후 연근산을 먹이도록 하거라. 이런 사사들은 독을 먹는 것 외에도 스스로 경맥을 끊어 죽을 수 있다.” 필명은 자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사여묵을 쳐다보았다. ‘왕야님은 언제 마차에 탄 거지? 분명히 사온을 호송하기 전까지 마차엔 아무도 없었는데. 그리고 대리사에서 나온 후에도 경위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송 대인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필명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일단 사람을 종인부로 보내고 다시 얘기하지.” 송석석은 사여묵을 바라보며 승리의 손짓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섬광을 타고 가십시오. 내가 마차를 타고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시오. 나머지는 당신에게 맡기겠소.” 사여묵은 말을 끌며 사온을 쳐다보자 사온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다고 내가 말할 줄 아느냐?” 그러자 사여묵은 웃으며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말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자객을 잡아서 누군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니까. 사실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러자 사온은 전혀 놀라지 않고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황제에게 말하거라. 증거를 제출하란
마차가 종인부에 도착했다. 송석석이 사온을 마차에서 끌어 내리자, 황실의 죄수를 관리하고 있는 유은이 나와 인수인계를 받았다. 인수인계를 마친 후, 유은은 곧바로 사온의 전신에 무거운 쇠사슬을 채우라고 명령했다."황제께서 하명하시길, 사온이 혀를 깨물어 자결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치아를 절반가량 뽑아 버리고 손목과 발목의 힘줄을 끊어 버리라 하셨습니다. 송 대감께서도 함께 감시하시지요. 그래야 돌아가 보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러자 사온은 이를 악물며 바락바락 애를 썼다."네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하지만 송석석은 가볍게 무시했다."길을 안내하라." 더는 마차에서의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사온은 끌려가면서도 포효를 멈추지 않았다. 종인부는 매우 넓었고, 동서는 널찍한 골목 하나로 나뉘어 있었는데, 동쪽은 사무를 보는 곳이고 서쪽은 죄수를 가두는 장소였다. 종인부는 황실 종친만을 위한 감옥이었기에 그저 작은 뜰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높은 벽으로 둘러싸 경비가 삼엄하였다. 송석석은 이미 금군 통령 왕정에게 금군을 파견해 감시하도록 명했다.금군은 이미 도착했으나 왕정은 보이지 않았다. 유은은 종인부의 관리로 이곳의 죄수를 관리하고 있었다. 종인부에도 경비가 있었지만, 사온은 황제의 특별한 조치로 금군을 따로 더 배치했다.자그마한 뜰에 도착한 사온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거기에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고, 허름한 낮은 탁자 위에는 이를 뽑기 위한 집게와 손발의 힘줄을 끊기 위한 쇠갈고리가 놓여 있었다.“놔라!” 거세게 몸부림치던 사온은 몸을 감싼 무거운 쇠사슬 때문에 그만 균형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이런 일들에 이미 익숙한 듯한 유은은 미동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비록 너의 공주 신분을 박탈했으나, 여전히 종인부에 보냈구나. 이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니, 무릎을 꿇음으로써 그 은혜에 감사하거라."말을 마친 유은은 부하들에게 사온을 일으키라고 명령했다. 그 충격에 피를 흘리던 사온의 입술이 다시 터
극심한 고통에 왕정은 분노가 치밀었고, 결국 계급도 무시한 채 송석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연속으로 따귀를 맞아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송석석이 어떻게 공격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진성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더욱 다정하고 이해심이 깊어져, 상대가 잘 볼 수 있도록 멱살을 잡아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가 급히 두 손으로 막으려 했지만 그녀의 주먹은 아주 정확하게 얼굴을 가격하고 말았다.그리고 뒤이어 날아오는 발길질에 그는 또다시 저만치 날아가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그녀의 움직임은 이제 선명하게 보였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었다. 느리게 움직이던 그녀의 다리가 갑자기 허공에서 속도를 올렸다. 빠르게 상대의 다음 동작을 예측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그만 얼어붙었고 그저 또다시 날아오는 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왕정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점점 자주빛으로 변해갔다… 묵직하게 들어오는 그녀의 발차기에 한동안 단전의 기를 추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그저 옷소매를 가볍게 털고는 잔뜩 놀란 유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제 시작하거라."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은은 경외의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며 힘차게 대답했다. “예!”금군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몸을 가눈 왕정은 더 이상 고개를 빳빳이 쳐들지 못했다.바닥에 얼굴이 짓눌린 채 여전히 발악하고 있는 장공주는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설도 서슴치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송석석은 형벌이 시작되려고 하자 냉담하게 한마디 했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저리 지껄이는 정도 뿐이겠지."멀쩡한 치아를 뽑는 것이 잔혹하긴 하지만, 사온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형벌에 익숙했던 종인부는 사온을 거침없이 바닥에 짓누른 후 한 사람이 그녀의 입을 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집게로 이를 뽑기 시작했다.사온은 대리사에서 형을 받을 때에도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때는
장공주 다음은 고부진 차례였다. 칙명이 전달되자 그의 죄목이 발표되었다. 고부진은 한마디로 감음, 약탈, 살해 등으로 안 해본 악행이 없는 나쁜 놈이다. 이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고부진은 첩들을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들과 나는 한 때 부부였고 아이도 낳았으니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힘겹게 살아온 것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사온에게 살해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느니라. 허나 결국 그들에게는 몹쓸 짓이니… 그저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할 수 있도록 네가 전하께 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그는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고 반성할 마음은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고후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고후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비록 고후부는 후작의 지위를 잃었으나, 황제께서 그들을 조사하지 않으셨기에 아직은 기반이 남아 있어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다.사여묵은 한 때 고모부였던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위선적인 가면은 이제 벗으시지요. 당신이 사랑한다 말하던 림봉아조차도 당신을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죄하고 싶다면 죽은 후에 한 명 한 명 꼼꼼히 사죄하세요.”고부진은 쓴웃음을 지었다.“죽은 후에도 꼭 사죄할 것이다. 모두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그들을 지키지 못하였다… 왕야, 내가 그대의 고모부였던 것을 생각해서라도 청란이를 만나게 해다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족을 만나고 싶구나.”그러자 사여묵이 냉소했다. "친족을 만나고 싶다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내가 곧바로 고후부로 사람을 보내 자손들을 불러오겠다. 아니면 가의 군주라도 괜찮겠느냐?"고부진의 애원 가득한 얼굴은 즉시 굳어졌다. 그는 손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아니다, 됐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만난들 무엇하리? 부디 나 대신 그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해주길 바란다. 다음 생
고씨 가문에서 은전 오만 냥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말하길, 여인들의 향후 거처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더불어 고부인은 끊임없이 형편이 어렵다고 울먹거리며 오만 냥은 자신의 전 재산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호통쳤다. "전하께서 십만 냥이라 하셨다. 단 한 푼도 모자라선 안 된다. 삼 일 후에 형벌을 집행할 것이니, 마지막으로 만남을 가져도 좋다."그녀가 열 달 품어 낳은 아들이었으니. 고부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씨 가문의 어르신, 고철갑의 차가운 시선에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바꿨다."아닙니다. 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저 슬픔과… 분노만 더할 뿐이지요.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우리 고씨 가문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집니다.""맞습니다. 죄가 너무 크다보니 보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고철갑 또한 같은 대답이었다. 그들은 되도록 고부진과의 연을 끊어내고 싶어 했다. 아들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굳이 가문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이미 고지하였으니 만날지 말지는 그들의 결정이었고, 보지 않겠다고 했기에 은표를 받고 그들을 돌려보냈다.오만 냥만 먼저 들이민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단번에 십만 냥을 내면 부족함이 없다는 인상을 줄 것이고 공주부에서 몰수한 은전도 일부 내어놓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했다. 어림없지! 단 한 푼도 줄일 수 없다!…다음 날, 그들은 나머지 오만 냥을 보내왔다. 송석석은 귀가할 수 있는 여인들에게 그중의 일부를 나눠주었고 더는 그 누구도 그들을 첩이라 부르지 못하도록 명했다. 이제 그들은 그들 자신일 뿐,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다.그러나 대부분 딸이 있었기에 나이가 적든 많든 떠나길 원치 않았다. 하여 일단 이수암으로 거처를 정했다.고청란은 이수암에 가지 않아 시만자가 그녀의 행적을 책임지기로 했다.휘왕과 함께 살고 있는 고청영 역시
송석석의 차가운 눈이 제릉서를 응시했다."그대는 사리에 밝다고 여겼는데 제가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라는 그대의 가벼운 말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을지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이 여인들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들을 들였던 가문들도 연루될 것입니다."송석석이 그를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신임을 받는 그였기에 송석석에게 할 수 있는 발언은 황제께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황제께서 현재는 덕망을 쌓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후년에 기반이 더욱 탄탄해졌을 때 그가 한 말을 되새기며 후환을 없애려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여인들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자신이 방금 실언했음을 깨달은 제릉서도 더 이상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송 대감께서 저 대신 방장께 고아 신분으로 여기에 머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들 모녀가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사실 그녀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송석석은 그 말에 냉소하며 답했다. "이것이 그대들의 결정이라면 방장과 상의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니, 저는 그리 보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를 고아로 둔갑시키고, 어머니와 딸이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이들을 분리해야 할 텐데, 어떤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고청묘가 아이를 외면할 수는 있어도 그 아이는 분명 어머니를 알아볼 것입니다."그럴듯한 말들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제릉서의 말을 송석석은 단칼에 끊어버렸다. 송석석은 이미 그들에게 모녀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제안을 한 적이 있었지만, 제릉서는 계속 모녀 관계를 숨기려 했다. 즉, 모녀가 한 지붕 아래 살 수는 있어도 함께 살을 부대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그들의 계획은 송석석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게다가 그들은 전에 아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니.
밖으로 나온 시만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송석석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청묘 주변에 아이가 있어선 안 된다고 하던 제상서가 이제 와서 아이를 보내겠다고 하잖아! 상서가 되어서 말을 번복하기나 하고, 아이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대체 왜 낳는 거야? 아이만 불쌍하지.”시만자도 그런 자들을 혐오했다.“아마 그때는 일시적은 충동에 자신들이 해결하겠다고 했겠지만,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없다고 여겨 여기에 맡기기로 한 거야. 그러면서도 모녀가 붙어있을 수는 없고 고아라 칭하게 만들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네. 분명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로 살아가게 만드는 건 상서란 직책에 스스로 먹칠하는 꼴이 아니겠어?”“내버려둬. 알 게 뭐야. 우리는 그냥 이들을 잘 안치하기만 하면 돼. 이토록 내치려 하니 이곳에서 잘 보살펴주면 돼. 사실 제상서 부인에게 고청묘와 그 아이는 모두 지극히 잔혹한 존재일 뿐이야.”시만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미 깨진 행복을 다시 이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해. 정말 그녀가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그건 그녀만 알겠지.”“아, 맞다.”명부를 확인했던 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위국공부의 고청아는 오지 않았어. 그녀가 도면을 훔친 것을 두고 황제께서 따로 처분을 내리실 건가 봐.”그러자 차가웠던 송석석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고청아에게는 곤장 20대를 내렸고 위국공부의 위해철에게는 곤장 30대와 감봉 2년을 내렸어. 하지만 고청아의 20대도 위해철이 감당하기로 하여 도합 50대지. 어제 형벌이 집행되었는데 거의 반 죽어버린 상태라 들었어.”“그나마 책임감은 있군. 제상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높은 자리에 오르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법이지. 제상서는 자신의 명성을 조금도 더럽힐 수 없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 거야. 현재로서는 위국공부의 위해철이 더 책임감이 있어 보이지만, 그도 제상서와 같은 자리에 오르면 지금처럼 고청
송석석도 시만자도 머리가 복잡해졌다.“영우야, 이모랑 함께 갈래?” 하지만 시만자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아기에게 조용히 물었는데, 말을 아직 잘하지 못하는 한 살이라 입속으로 엄마만 찾을 뿐이었다.시만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엄마 보러 가자.”서로 시선을 맞춘 송석석과 시만자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 아이는 돌아가더라도 엄마 곁에서 자랄 수 없었고 방장이 다른 사람이 돌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모가 아이를 등에 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만자의 등에 업힌 아기는 유모가 따라오지 않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만자는 한참 달래주었고 그렇게 한참 후, 아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말을 끌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조장 밖에는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는데, 마차에 있는 상서부의 표식을 확인한 송석석은 잠시 망설였다. 제상서인가, 제릉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인가?그 광경에 시만자도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는 뒤로 손을 뻗어 영우의 엉덩이를 토닥였다.한참 뒤, 마차의 커튼이 열리더니 초췌한 얼굴의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어두운 청색 비단옷을 입은 그녀는 머리에 간단한 보석장식을 하고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잠시 송석석과 시만자를 바라보다 입술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에는 나이 든 유모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조용히 위로하는 듯했다. 그녀가 바로 제상서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송석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모 한 명만 동행했기에 분명 아기를 해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제상서는 잘 처리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부인을 기만했다. 하지만 가문을 이끌어가는 그녀였으므로 그리 순진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단지 남편 앞에서만 모른 척했던 것뿐이다.송석석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녀 역시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잠시 눈빛만 주고받다가 송석석은 곧바로 말에 올라탔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듯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