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원에서 한바탕 난리법석이더니 시만자가 욕설을 퍼붓고 몽동이는 도망쳤다. 보주와 궁녀 영 씨는 계란을 삶아 두 사람의 얼굴과 눈가의 붓기를 가라앉혔다. 효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분을 발라서 시만자의 얼굴은 보기에 많이 좋아 보였지만 왕비의 눈가는 점점 검게 변했다. 보주가 분을 발라주려고 하자 송석석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됐어. 조정의 명관이 무슨 분을 바른 다는 것이냐? 저리 가거라.” “하지만 부인의 눈이 크게 뜨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주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황제폐하도 만나러 가야 할 텐데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송석석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황제를 만나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령 고개를 든다고 해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송석석은 직접 마구간에 가서 그녀의 망아지 번개를 끌어내고 번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쪽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말했다. “번개야,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전쟁터로 가야 한다. 우린 함께 싸워야 된다. 알겠느냐?” 번개는 마구간에 너무 오랫동안 있었다. 가끔 두어 바퀴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송석석은 마차를 타고 나갔고 번개는 마차를 끌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개는 코에서 김을 뿜고 말발굽으로 땅을 파헤치며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이때 마부가 와서 몸을 굽히고 말했다. “왕비님 걱정 마십시오. 안장은 새것이고 발굽도 고쳤습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제가 가장 좋은 사료를 먹였습니다. 번개는 지금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송석석은 새 안장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사람은 옷 발이고 말은 안장 발이라더니 안장을 바꾸니 바로 위풍당당하게 느껴지는구나.’ 송석석은 채찍을 받아 들고 말했다. “돌아가서 노 집사에게 돈을 받거라. 내가 분부한 것이라고 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왕비님의 승진을 기원합니다.” 마부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 왕비님의 한쪽 눈이 왜 시커멓게 멍이 들었는지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송석석이 외출
송석석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일찍 일어나서 입궁 전에 저택의 사람들과 비무하다 실수로 한 대 맞은 것입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이냐? 현갑군 지휘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봐 긴장이라도 한 것이냐?” 황제의 물음에 송석석은 사실대로 말했다. “긴장한 것 맞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어서 기대에 어긋날까 봐 걱정입니다.” 숙청제는 그녀의 검푸른 눈을 보며 여전히 웃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몇 가지 당부할 말이 있어 정색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조정의 첫 번째 여관으로서 네가 감당해야 할 일은 현갑군 지휘사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태후의 기대도 있고, 천하의 여인들도 모두 널 우러러보겠지. 그러니 다른 사람이 지휘사를 맡으면 나라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 하면 되지만 넌 항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처리도 잘해야 하겠지. 힘들긴 하지만 나는 네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모든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 계신 네 가족의 영혼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다. 네 부친과 오라비들은 우리 조정의 여웅이다. 그들은 용맹하게 싸웠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들이 편히 살기를 바랐다. 그러니 너도 그들의 의지를 계승해야 할 것이야.” 황제가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에 송석석은 알아채고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 반드시 최선을 다해 진성의 평화를 지키고 백성들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숙청제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는 현갑군 지휘사의 관복을 입고 있는 송석석이 위풍당당해 보였고 그녀의 실력으로 현갑군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압할 수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지휘관으로서 그녀는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했다.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아침부터 대리사 쪽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보고가 들어왔으니 넌
그녀는 반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황제가 자신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지휘사라는 실직을 주고는 북명황실과 원한이 있는 사람을 발탁하라고 하다니. 어쩌면 이렇게 하는 게 황제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오대반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왕야와 왕비가 시련을 넘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황제는 사실 송 지휘관을 거치지 않고 전북망을 임명할 수 있었다. 송 지휘관이 직접 접근시키려면 이부를 거치지 않고 통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을 자신의 통제하에 진행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당사자들의 마음은 불쾌감을 느꼈다. 송석석은 궁을 떠나 경위관아로 갔다. 오늘 그녀가 부임했기 때문에 필명과 순방영 총령 오진이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기다렸다. 다행히도 그녀의 검푸른 눈을 주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보았다고 해도 예의 때문에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금군 통령인 왕정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송석석은 왕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평서백 왕표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평서백의 모든 아들 중에 왕정은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서백 왕표는 방계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특히 왕정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왕정은 능력이 있었는데 왕표는 평서백작의 작위를 계승한 후에도 큰 공을 세우지 못해서 가문의 청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왕정은 줄곧 상승하여 금군 통령이 되었다. 만약 전조에 따르면 금군은 현갑군의 분파에 속하지 않아 그의 권력은 더욱 커질 것이었다. 예전에도 통합되지 않았고 금군은 비록 현갑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왕정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통합을 요구하는 데다 통솔자가 여인이니 그는 마음속으로 다소 불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송석석은 이미 현갑군의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고 사여묵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왕정이 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선 안에
그는 나이가 30대였는데 미간이 넓고 체구는 장대하지 않았지만 튼튼해 보였으며 다소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이끌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였으나 눈빛은 여전히 오만으로 가득 찼다. “하관이 일이 있어 늦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들고 그의 뒤에 두 줄로 늘어선 열두 명의 위장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오만해서 호락호락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자인 송 지휘관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송석석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그 장군에 그 병사군.’ “오늘은 별일 없으니 각자 일 보러…” 송석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정은 말을 가로챘다. “별일 없으면 얼굴도 확인했겠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궁에 할 일이 정말 많거든요.” 말을 마친 후 그는 송석석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려 했다. 이때 필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왕정.” 하지만 왕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냥 떠나가버렸다. 그러자 필명은 할 수 없이 송석석에게 해명했다. “지휘사님, 왕부통령이 성격이 오만해서 그렇지 다른 뜻이 없습니다.” 송석석은 필명이 그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래, 일단 대리사로 가게.” 대리사는 오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여묵은 어젯밤에 황실로 돌아가 한 시진 있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아직 장공주를 심문하지 않았다. 그는 급해하지 않고 며칠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막을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에 장공주부의 하인들을 먼저 심문하기로 했다. 게다가 도망간 자들도 체포해서 심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송석석이 필명을 데리고 대리사에 도착하자 대리사의 화가사와 염 선생이 하인의 서술에 따라 도망간 집사의 초상화를 그려 경위에게 넘겨 조사하도록 했다.다들 바빠서 지휘사인 송석석이 여인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송석석은 손을 뻗어 초상화를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진이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을
사여묵은 송석석을 앞으로 그러안더니 그녀의 멍든 눈을 만지며 물었다. “아프오?” 그러자 송석석은 누가 볼까 봐 그의 품에서 나와서 말했다. “조금 아픕니다.” “걱정 마시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오?” 그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송석석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의자에 앉아 눈가를 만졌다. 확실히 오늘 아침보다 좀 더 부은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만자와 비무하는데 몽동이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나와 만자가 모두 다쳤습니다.” “내가 나중에 그에게 벌을 주겠소.” 사여묵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몽동이는 사실 늘 듬직했는데 만자와 석석과 놀 때면 소년의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 “벌을 내는 건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벌을 내는 건 작은 일이지만 석소 사저가 알고 그의 사부에게 알린다면 그의 사부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저 겁을 주려는 것이지 정말로 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소.” 사여묵은 그들의 감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린 시절의 우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파괴하려고 하지 않았다. “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송석석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저더러 전북망을 어전시위장으로 추천하는 글을 써서 이부에게 임명서를 내라고 하더군요.” 사여묵은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전북망을 쓰려고 했소. 다만 전북망이 그를 실망시켰을 뿐이오. 하지만 지금 드디어 공을 세웠으니 당연히 그를 승진시키겠지. 그리고 어전시위는 현갑군의 소속이지만 당신이 통제할 수는 없소. 그들은 결국 황제의 명령에만 복종할 것이니 지금은 그저 과도기에 불과하오.” “당신 말이 맞습니다. 황제는 이미 영시위부를 개설할 계획이니 그때가 되면 어전시위는 현갑군에서 이탈할 것 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금군 12사에 어전시위가 포함되어야 하지만 황제가 제외한 것을 보아서는 자신의 심복을 양성하려는 것 같습니다. 안
방 마마는 나이가 많아 다른 집사들과 분리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깨끗한 작은 감방에 따로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는 대리사에 온 후부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진이는 직접 그녀를 심문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감방에 누워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사실 사여묵도 그녀가 장공주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공주는 그녀가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들의 감정은 이미 주종을 초월했다. 지금까지 장공주 주변의 사람들이 바뀌었지만 유독 그녀만이 장공주의 곁을 지켜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장공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온갖 더러운 일을 모두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의 손을 거치기도 했었다. 사여묵은 송석석에게 말했다. “진이가 오늘 도준을 심문한 결과 장공주가 원래 당신 당숙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그의 일가를 죽이라고 명령했었는데 방 마마가 도준에게 명령을 이행하지 말라고 했다더군. 그렇지 않으면 당신 당숙의 가족은 모두 몰살당했을 것이오.” 송석석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친 것 아닙니까? 외모가 우리 어머니를 닮은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부진에게 첩으로 보내 아이를 낳게 하고 우리 아버지를 닮은 사람은 데려가 얼굴을 망가뜨리고 죽이려는 것입니까?” “그러니 그녀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오직 방 마마만이 잘 알고 있소. 장공주부에는 역모사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피빚도 있소. 황제는 역모사건 외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아직 살아있는 그리고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를 피해자들을 위해서 조사할 필요가 있소.”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역을 꾀하는 것은 극악무도한 죄지만 장공주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도 유일무이한 인생이 망쳐진 것이었다. “내가 가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사람을 시켜 취조실로 데려가겠소.” “취조실에 형구는 놓지 마십시오.” 사여묵은 웃으며 말했다. “형구는 취조실에 두지 않고 전용 형구실이 있소. 지금까
그녀는 마치 오래된 우물처럼 고요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노려보았다. 송석석도 그녀를 보았다. 예전에 장공주부에 갔을 때 송석석은 방 마마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방 마마는 석청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 위엄이 가득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남색 옷은 쭈글쭈글했고 비녀는 비뚤어져 귀밑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눈 밑은 처져 있었으며 얼굴은 여위고 반점도 뚜렷했다. 근심걱정에 단식까지 해서 이렇게 초췌해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사실 그녀의 애간장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진이는 방 마마와 이야기를 하러 갔었지만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눈빛조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송석석에게는 입을 열었다. “내 입에서 공주에게 불리한 말을 들을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도준이 당신이 우리 당숙 일가를 구했다고 하던데, 당신이 아니었으면 아마 우리 당숙 일가는 없어졌을 것이네. 그것만은 고맙소.” 방 마마는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난 그들을 살리려는 마음 없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잡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죽이든 말든, 그리고 언제 죽이는 것은 모두 내 결정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멀쩡히 살아서 장공주부에서 나왔소.” 그러자 방 마마는 차갑게 말했다.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그래봤자 장공주의 증언을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공주는 죄가 없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든 건 나와 도준이 한 것입니다.” “방 마마는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이오?” 송석석은 그녀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공주부엔 말하지 못할 일이 많지 않소?” “뒤뜰에 있던 여인들 말입니까? 흥.” 방 마마는 원통스러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보며 말했다. “모든 사람이 공주부를 비난할 자격이 있지만 송씨 가문만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의 부친이 공주님의 평생을 망쳤습니다. 그리고 뒤뜰에 있던 여인들도 모두
송석석은 방 마마의 말들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좀 슬프다고 생각했다. 방 마마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확실했다. 송석석은 방 마마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장공주 몰래 당숙 일가를 풀어준 것을 보면 마음가짐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방 마마와 도준이 한 것이라면 장공주와는 무관하니 근 몇 년 동안 당신의 손을 거쳐 장공주부로 데려온 여인은 몇 명이고 죽은 사람은 얼마인지 말해보시오.” 방 마마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안색이 창백해졌다. 송석석은 계속 말했다. “그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방 마마가 책임져야 하지 않소? 그리고 끌려온 여인들의 부모나 친척들에게도 더 이상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고 알려야 하지 않겠소? 게다가 장공주께서 모역죄를 지었으니 죽음은 면치 못할 것이오. 그러니 당신이 그 여인들의 신분을 밝히는 것도 장공주를 위해 덕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소.” 방 마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송석석을 올려다보더니 입술을 심하게 떨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녀의 모역죄 때문일 수도 있었다. 송석석은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방 마마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 한 잔 주시겠습니까?” 탁자 위에는 차 주전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건 송석석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송석석은 마시지 않고 차 한 잔을 따라서 방 마마에게 건네며 말했다. “드시오.” 방 마마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이 부들부들 떨며 차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잔을 손에 쥐며 송석석에게 우는 것보다 더 보기 흉한 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모든 사람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보아하니 대리사에서도 장공주부를 샅샅이 뒤졌겠지요. 내 방 앞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대추나무 가장자리에 돌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