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이방과 달리 걱정이 많았다. 그는 원래 남강 전장에 가고 싶어 했지만, 그때는 사국 병사들만 있을 때였다. 지금 서경의 삼십만 대군이 시몬과 일리에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사국이 계속 병력을 증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지금 상황에서 적군의 병력은 오십만 명에 달한다. 그가 경군을 이끌고 가도 고작 십이만 명 정도이며, 여기에 현재의 북명왕 병력까지 합쳐도 겨우 삼십만 명에 불과하다.더구나 현재 북명왕의 병력은 매우 지쳐 있었고, 부상자도 많으며, 양식도 부족해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일리를 공격할 수 없었고, 그저 대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 겨울이라는 점이다. 남강 지역은 추위가 심해 전투에 불리한 반면, 사국 병사들은 '흑곰장(黑熊將)'이라는 별명답게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겨울에도 얼음 위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따라서 양국의 전력 차이는 명확해 이번 전투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사국이 계속 병력을 증강해 잃어버린 성들을 되찾고 남강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면, 대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승리하면 공을 세우겠지만, 패배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송회안과 그의 아들들이 남강 전장에서 희생된 것처럼 말이다.남강 전장의 위험성은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게다가 이방은 대군이 도착하기 전에 원군이 남강 전장에 도착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녀가 너무 쉽게 큰소리를 쳤다. 그녀는 관료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대패하면, 그와 이방은 가장 먼저 문책을 받을 것이다.따라서 이런 좋은 기회 앞에서 그는 이방처럼 낙관적일 수 없었고 되려 걱정이 많았다.“당신은 전하께서 왜 금군을 보내 국공부 앞에서 송석석을 감시하게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이방이 갑자기 물었다.전북망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송석석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끝없는 다툼이 시작될 것이다.이방은 망토를 정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전북망과 이방이 남강 전장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은 노부인을 설레게도 하고 걱정스럽게도 했다.그녀는 전장에 나가는 것이 복과 화가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승리를 거두면 당연히 큰 공을 세우는 것이지만, 대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믿었고 이방을 믿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이방이 큰 공을 세웠으니, 그녀는 능력이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장군으로서 전투를 지휘하기만 하면 되었고, 돌격하는 일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었다.이렇게 생각하니 걱정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녀는 출정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전북망과 이방이 군대를 이끌고 경성을 떠난 지 며칠 후, 사국에 배치된 첩자에게서 소식이 도착했다.밀보는 북명왕이 남강에서 보낸 소식과 똑같았다.또한, 한 달 전 송석석이 궁에 와서 전한 소식과도 일치했다.젊고 잘생긴 황제는 밀보를 찢어버리며 분노했다. 반달이나 차이가 있었다.만약 송석석의 말을 믿고 즉시 원군을 파견하고 양곡을 준비하게 했다면, 상국의 승산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이방이 서경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전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거리와 행군 속도를 계산해 본 결과 숙청제는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후회했다. “어찌하여 송석석이 연인에 빠져서 전북망에게 복수하려 한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분명히 그 애가 전한 것은 중요한 군사 정보였는데 내가 믿지 않았다.”오대반은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것은 송 장군의 여식이 심청화의 서신을 위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옵니다.”숙청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심청화의 서신을 위조하지 않았다면, 난 그 애의 말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상국은 서경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조약은 이방이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난 그 애가 이방의 공을 깎아내리려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군자의 마음을 소인배처럼 판단했다. 그 애는 송 진국
숙청제는 말했다. "그자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그자가 남강 변경으로 가서 소식을 전했기에, 아우가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기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군사 정보는 하루 또는 한 시각씩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자는 공이 있고. 짐이 믿지 않았던 것이 문제다."숙청제는 몸을 살짝 돌리며 말을 이었다. "짐이 금군(禁軍,고려·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국왕의 친위군)을 보내어 그자를 감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도망친 것을 보니 그자의 경공이 꽤 뛰어난 모양이구나."오대반이 웃으며 말했다. "전하, 그자는 만종문(萬宗門)에서 7~8년 동안 무예를 배웠사옵니다. 만종문은 저희 상국의 제일 큰 문파이며,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자가 사문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옵니다.""그런가?" 숙청제는 만종문의 심청화만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이 이렇게 뛰어난 줄은 몰랐다. "나는 송 부인이 왜 그자에게 전북망을 지아비로 맞이하게 했는지 궁금하구나. 송 가문의 가세로 보아 명문가의 자제들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몰락한 장군 가문을 골랐을까?"오대반은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구혼한 사람이 많았지만, 오직 전북망만이 송 부인에게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옵니다."숙청제는 잠시 멈춰 섰다가 눈썹 사이에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건 정말 아이러니하다.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공을 세우자마자 평처를 구하고, 짐을 공모자로 만들었다. 송 부인이 사람을 잘못 본 게야."오대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송 부인이 잘못 본 사람이 어디 전북망뿐이겠사옵니까?"숙청제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오대반이 말했다. "얼마 전 영안군주가 시집을 갔을 때, 송석석이 사람을 시켜 군주에게 지참금을 보냈지만, 문조차 통과하지 못했사옵니다. 이혼한 여인은 불길하다고 송석석이 보낸 물건도 모두 되돌려졌사옵니다."숙청제는 살짝 화가 나서 말했다.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회
모르는 것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오대반은 먼지를 털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만 명을 받들었을 뿐, 노비는 모르옵니다."‘명을 받들었을 뿐’이라는 말 한마디에 회왕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황제의 위엄은 하늘을 찔러 벌도 상과 같았다.오대반이 떠난 후,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은 진성에서 모친을 모시고 있었고, 황제의 동의로 태비를 회왕부로 내보내어 그들과 함께 살도록 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꽤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아무런 연고도 없이 벌을 받게 되었다니?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아무 짓도 감히 할 수 없었다.정말 이상한 일이었다.섣달 한겨울, 대설이 전북망 대군의 진군을 막았다.진성을 떠날 때부터 길을 재촉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틀 동안 연달아 내린 눈으로 인해 곳곳이 눈에 덮였다. 추위는 둘째 쳐도 진행 속도가 심각하게 느려졌다.한 발을 내디딘 후, 다시 발을 빼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남강에도 눈이 내렸지만, 다행히 크지 않았다. 새로 모집된 병사는 무려 3만 명이었고 신병으로서의 훈련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무기와 전갑도 탑성에서 제작되고 있어 서경군이 도착하기 전에 전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북명왕은 송석석을 찾아와 그녀에게 당장 진성으로 돌아가라고 엄한 명령을 내렸지만, 송석석은 자신이 이미 입대한 상태이므로 지금 수도로 돌아가면 탈영병이 되는 것이라며 송씨 가문에는 탈영병이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북명왕은 그들 다섯 명이 서로 보살피도록 하며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무공을 제대로 펼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뒤엉킨 몸싸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북명왕이 송석석을 찾아왔을 때, 신신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 지휘관이 마치 야인처럼 생겼다고 말했다.시만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만? 내가 보기에는 여기 병사들이 대부분이 모두 야인 같아."그랬다.남강 전장에서 그들은 6년이란 시간 동안 버티고 또 버텼다. 그때 송
"서른 명까지 세고 더는 세지 않았어."송석석은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화창은 너무 무거웠고 전쟁은 정말 힘들었다."난 50명을 죽였어!" 만두는 멋지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바로 힘이 풀렸다. 그의 무기는 칼이었는데, 적이 너무 많이 몰리는 탓에 칼을 떨어뜨렸고, 나중에는 주먹과 다리로 때려눕혔다. 그러다 마지막에 다시 칼을 주웠다.시만자가 말했다. "나는 66명."그때 부대장 장대성이 다가왔다. 그 역시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송석석이 도화창을 짚고 일어섰다. "부대장!""아씨!" 장 부장은 기뻐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씨께서 몇 명을 죽였는지 아십니까?""모르오, 세지 않았소."장 부장은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장군님께서 직접 세어보셨는데 도화창으로 적의 목을 찌른 수만 해도 삼백 명이 넘었습니다. 목을 찌르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참말로 전장이 처음입니까? 모든 장군들이 아씨를 보며 감탄했고 원수님의 여식답다고 했습니다.""그렇게 많이 죽였소? 세지는 않았지만 정말 너무 힘이 드오." 송석석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추워서 그런지 피곤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장군님께서 부르시니 어서 가 보세요!" 장대성은 그녀가 다시 앉으려고 하자 급히 말했다.벌떡 일어선 만두는 정신이 맑아졌다. "장군님께서 부르셨다고요? 그럼 가야지요."30명을 죽이면 승진한다고 했고 그는 50명을 죽였다. 송석석은 정말 대단하다.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무사였다.그들은 서로 부축하며 지휘 본부로 향했다. 장막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몇몇 장군들이 앉아 있었고, 방천허 장군도 그곳에 있었다.만두는 발걸음을 멈췄다. 설 자리가 없었다.갑자기 멈춘 만두때문에 뒤에서 걷던 이들은 모두 넘어졌다. 다섯 명의 용감한 소년 소녀들이 엉망으로 바닥에 뒤엉켰고 모두가 그들 때문에 크게 웃었다.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화가 난 시만자는 일어서며 만두를 발로 찼다.북명왕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이리 성, 서경의 원수(元帥) 수란키(蘇蘭基)는 성루에 서서 멀리 상국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증오와 분노가 그의 눈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남강은 지키지 못할 것이다." 수란키 원수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의 눈 속에서 차오르는 불길은 상국 인들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네 병사들은 부상과 질병이 많으니 며칠 쉬었다가 다시 싸워라." 사국 원수 빅토르가 말했다.하지만 수란키는 고개를 저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두꺼운 모자를 쓴 그는 씩씩거리며 성루의 벽을 꽉 잡았다. "아니, 그들을 너무 오래 기뻐하게 할 수 없다. 모레 다시 공격을 시작해서, 사흘 내로 탑성(塔城)을 점령할 것이다."빅토르는 상관없다는 듯이 보였다. 어차피 지금 돌격하는 대부분은 서경 병사들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식량을 가지고 왔다."알아보라고 한 것 말이야. 이방이라는 여장군은 확실히 상국에 있네. 지금은 남강 전장으로 향하고 있고."주먹을 꽉 쥔 수란키는 이마에 핏줄이 드러났다. "이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포해야 하네."빅토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여인일 뿐인데, 왜 이렇게 원한이 깊은 거지?’"이 사람이 자네와 어떤 원한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자네 서경은 상국에 정보원이 있지 않은가? 왜 우리 사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나?""우리 서경의 정보원들은…" 수란키는 천천히 손을 풀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그의 지친 얼굴을 감쌌다. "이미 그들의 임무를 다했네."빅토르는 왜 서경이 사국을 도와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건 없이 도와주는 이유는 무엇일까?단지 사국의 황제와 서경의 황제가 동맹을 맺어 남쪽 변경을 점령한 후 양국의 무역을 강화하고 해상로를 개통하는 것이 양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서경의 조건은 아니었다.아마도 서경이 성령관 전투에서 상국에 패배하고 항복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빅토르는 항복하는 사람을 경멸했지만, 당연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한편, 장막을 떠나 천천히 군영으로
군영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이미 모든 감정을 정리해 두었다.천호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신신 그들과 함께 협소한 천막에서 생활해야 했다. 단지 탑성에서 보내온 새 이불 두 장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만두와 몽동이는 남자이기 때문에 중간에 가림막을 치고 상처를 치료했다.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날씨가 추워서 평소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송석석은 자신의 상처 치료 약을 나눠주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누구나 전장에 나갈 때 약을 조금씩 챙겼다.문파마다 자신들만의 상처 치료 비법이 있었다.송석석은 약을 거두며 말했다. "아끼게 되었네?""석아, 들었어? 네 전 지아비가 새 부인을 데리고 지원하러 온대. 그들을 만나면 어색하지 않겠어?"옷을 입은 신신이 바닥의 약 가루를 치우며 물었다."어색할 게 뭐 있어?" 시만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들을 돼지나 개처럼 여겨. 우리 눈에 그 두 더러운 것들이 들어올 리 없잖아."만두가 가림막을 젖히며 말했다. "그런데 왜 네 어머니는 널 전북망 같은 천한 자식에게 시집보낸 거야?""그가 영원히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거든." 송석석은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몸이 마차에 치인 것처럼 쑤시고 아팠다. "어머니는 내가 만종문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내실 다툼에 서툴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아마 정실과 첩의 싸움에서 손해 볼까 봐 걱정되셨나 봐."신신의 매력적인 얼굴은 이미 더러워졌다.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고 이미 응고된 상태였다."내실 다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네 어머니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야. 문제는 네가 배신자를 만난 거지."만두는 가림막을 내리고 상처에 붕대를 더 감았다. "그럼, 네 어머니는 지금 아마 후회하고 계시지 않을까? 나라면 가솔들을 거느리고 장군부에 가서 난리법석을 쳤을 텐데. 넌 불같으면서 만종문에 있을 때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거야? 그자가 너를 그렇게 대했을 때 왜 한 대도 때리지 않은 거야?"송석석은 눈을 감고 말했다.
큰 손이 바닥에 떨어진 술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은 남자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지만, 입으로 뱉은 말은 분노에 차 있었다. "말도 안 된다, 군영에서 술을 몰래 마시다니, 몰수다!"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코를 문지르는 송석석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희미한 그림자가 자신의 군영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장군에게 몰수당했어." 멈칫하던 만두는 한탄하며 말했다."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뭐야. 이제 몰수당했잖아."시만자도 장군이 올 줄 몰랐다. 하지만 곧 히히 웃으며 말했다. "내 배낭이 저리 큰데 술을 한 병만 챙겼을까?"만두와 몽둥이는 급히 몸을 돌리며 그녀에게 아부를 떨었다. 그들 다섯은 그렇게 또 다른 주머니에 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상쾌했다!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자 철제 말발굽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 듯 울렸다.북명왕은 이번 전투에서 적을 상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죽이는 것은 피하라고 명령했다.만두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죽일 수 있는데 왜 안 죽여? 부상당하면 나중에 치료받고 다시 전장에 나올 텐데."송석석은 도화창을 들고 말했다. "난 이해했어."만두가 물었다. "도대체 왜지?"송석석이 대답했다. "전장에서는 묻지 말고, 장군의 명령대로 손발 힘줄을 끊거나, 손이나 다리를 잘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죽여."더 말할 시간도 없이 전투가 시작되었다.송석석의 도화창은 눈에 띄었고, 적군은 마치 그녀를 겨냥한 듯 백여 명이 그녀를 에워쌌다.스물다섯 개의 창이 동시에 덥쳤지만,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오른 송석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미처 멈추지 못한 그들의 창은 동료들에게 꽂혔다.송석석이 외쳤다. "만자, 뱀처럼 휘감아!"시만자는 포위망에서 날아오르며 긴 채찍을 뱀처럼 휘둘러 모든 창을 감싸고, 다시 외쳤다. "석아, 천녀산도(天女散桃花)!"송석석이 도화창을 휘두르자 유연한 힘을 발산하며 모두 적군에게 박혔다.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최숙심의 딱한 사정을 운운하면서 그녀의 선한 마음씨 또한 찬양했다.그녀의 삶도 이토록 엉망진창인데 힘든 사람들에게 죽도 나눠주고 갈 곳 없는 여인들을 소주방에서 지내게 도와준 사실들을 일일이 읊으면서 감탄했다. 솔직히 숙청제에게는 지금 최숙심처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바로 어명을 내려 그녀에게 순금 백 냥과 집 한 채까지 하사했다. 그리고 유방 당했던 왕씨 가문 남자들도 남강 전쟁만 끝나면 북명왕과 함께 진성으로 돌아오는 것에 허락했다.그렇게 최숙심은 죽을 고비를 넘어 인생 역전까지 이뤄냈다!한편, 왕표에게는 요참형이 내려졌고 역적과 손잡고 왕표를 선동한 고청우에게도 똑같은 형을 내렸다. 그러자 숙청제는 예전에 고씨 가문 여인들을 살려준 일이 후회되었다. 고청우를 진작 감옥에 가뒀다면 남강에 이렇게 큰 화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이후 숙청제는 척귀에게 걱정되니깐 암자에 가끔 가보라고 했는데, 이는 실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송석석은 척귀를 보자마자 황제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사람을 보내 고씨 여인들에게 고청우의 형이 집행될 때 고청우와의 옛정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고 확실하게 당부했다.한편, 소주방에 있는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왕표가 결국 체포되었고 요참형을 받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채, 죄 없는 왕청여와 최숙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노부인은 두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며, 서방인 왕표를 배신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흥분하다가 결국 최숙심과 왕청여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그리고는 지금 당장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왕표를 구해내라고 억지를 부렸다.최숙심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노부인에게 노여움을 풀라고 빌었지만, 노부인은 오히려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최숙심도 더 이상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주막에서 칼을 가져오더니 바닥에 툭 던졌다
왕표는 중범죄자이기에 바로 대리사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송석석은 그를 일단 경위부로 압송했다. 경위부에서 심문을 마친 후, 어전에 보고를 올리며 최숙심의 공을 황제에게 잘 얘기한다면,왕준과 현이 하루 빨리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고청우도 아직 경위부에 갇혀 있기에 왕표와 고청우가 만난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고청우와 왕표는 같은 곳에 갇혔으며, 중간에 나무 울타리 하나를 세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청우와 왕표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왕표가 먼저 이를 갈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천박한 놈! 결국 네 놈 꼴도 이렇게 되었구나! 드디어 벌을 받은 게야!”그러자 고청우가 실눈을 살짝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천박한 년이면 왕표 너는 뭔데? 나도 벌을 받았지만 너도 결국 이렇게 갇혀 있잖아! 넌 뭐 다를 것 같아?”“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왕표가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고청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뒤로 살짝 물러난 고청우는 오아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버러지 같은 놈!”“네 놈이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 놈이 역적과 손잡고 날 꼬셔서 야반 도주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 남강 원수의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절대 이런 꼴을 당할 리 없었을 거라고!”왕표가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고청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널 꼬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결국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넌 내가 무엇인가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까지 낳으니 이제 날 곁에 묶어 둘 수 있겠다고 확신한 거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네 본처처럼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줄 알아? 가족애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거야. 그딴 걸로 날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내가 널 버리고 갈 때 분명하게 얘기했잖아. 넌 무능하고 무술 실력도 보잘것없는데
한편, 송석석은 시만자를 데리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직접 보화사로 향했다. 보화사에 도착한 뒤 절을 올리고 초를 꽂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 신분을 밝힌 뒤, 여람 스님에 관해서 물었다.주지 스님은 바로 지객 스님을 불러왔다. 각지 스님들이 보화사에 찾아와 며칠 묵고 갈 때마다 지객 스님이 그자들을 모셨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보화사는 진성 3대 절 중의 하나일 정도로 꽤 유명했기에, 매년 보화사에 찾아와 경을 들으면서 며칠동안 이곳에 묵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 수련의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원칙대로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남강에서 죽은 이의 영혼들을 제도했기에 그 자비로운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덕행도 많이 쌓았기에 지객 스님은 의례적으로 여람 스님을 받아준 것이다.“며칠동안 매일 여람 스님께서 밖에 돌아다니셨습니다. 진성 내에 전란이 일어나 사상자가 많았기에 여람 스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제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송석석은 그런 지객 스님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을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그러고는 지객 스님에게 여람 스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여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돈을 기부하며 여람 스님을 위해 따로 절 하나를 지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한편, 지객 스님은 송석석과 시만자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기품이 넘쳐 흘렀기에 모 훈작 세가의 부인이나 아가씨일 것이라고 추측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왕표는 자신을 찾아온 자가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가 절을 만들어주며 돈까지 기부하겠다는 소식에 바로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평서백이었던 왕표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절에 돈을 기부하는 명문 가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이내 표정을 숨긴 최숙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른 가십시오. 돈을 구하면 바로 서방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진성 순찰이 삼엄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십시오.”왕표는 자신을 걱정하는 최숙심의 말을 듣자,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려도 결국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뿌듯함에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최대한 3일 안에 마련해주면 고맙겠소.”그러자 최숙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그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3일 안에 그 큰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딸 지아가 지금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난 부인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부인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그리고 내가 부인을 찾아왔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오. 어머니와 왕청여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되오!”말을 마친 왕표는 삿갓을 쓰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표정이 확 어두워진 최숙심은 그를 얼른 따라갔지만 골목 밖에도 순찰하는 경위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섣불리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왕표는 궁지에 몰린 순간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어떻게든 진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왕표가 진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최숙심은 빠른 걸음으로 소주방에 돌아와 석소를 구석으로 불렀다.“석소 아가씨, 얼른 왕비에게 찾아가서 왕표 그자가 보화사에 여람 스님 신분으로 위장하여 숨어있다고 전하시오.”“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그렇게 석소가 돌아서서 소주방을 떠나려던 그때, 최숙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왕비님께 너무 대놓고 보화사에 왕표를 잡으러 가지는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몇 사람만 데리고 가서 상황만 파악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현재 수색이 삼엄해서 왕표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이는 최숙심이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단번에 확
진성 전체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자 예상대로 왕표가 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왕표가 찾아간 사람은 왕청여가 아니라 최숙심이었다.이날 최숙심은 딸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어준 옷을 주러 북명 황실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주방 여인들을 위해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도 했다.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왕표를 봤을 때, 최숙심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왕표는 분명 왕청여에게 자신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최숙심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건가?’“부인, 나일세.”커다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왕표가 확실했다. 최숙심은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꽉 깨문 채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 몰래 주변을 쓱 살폈는데, 골목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최숙심은 왕표가 절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그녀의 판단이 틀려 버린 것이었다.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이를 악문 최숙심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는데, 왕표는 그녀가 자신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흥분한 거라고 착각했다.왕표는 이내 삿갓을 위로 슬쩍 올려 삐쩍 마른 얼굴을 드러냈다. 왕청여가 말한 것처럼 눈썹은 전부 잘라버렸는데,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우스꽝스러 보였다.“부인, 정말 나일세!”왕표는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가 이내 주변을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가족들이 걱정돼서 이렇게 진성으로 다시 돌아온 거라네. 다들 무사한 걸 보니까 이제 한시름 놓이는군.”하지만 최숙심은 가식적인 왕표의 모습에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진성 곳곳에 당신의 체포 공문서가 붙어있는데 어떻게 감히 진성으로 돌아온 것입니까?”“다들 무사한 걸 봤으니, 이제 이곳을 떠날 생각이오.”왕표는 말을 하며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평생 이렇게 여기저기 숨어 다녀야 할지도 모르오. 부인, 내가 예전에 부인에게 많은 잘못
최숙심은 왕청여에게 언제 어디에서 왕표를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하게 물으며, 왕표 곁에 아이가 없었는지도 확인했다.“어제 냄비를 사러 밖에 나갔는데 소주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라버니가 갑자기 작은 골목에서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겁을 먹고 있다가 오라버니가 제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오라버니를 알아보았거든요. 얼굴은 까맣고 눈썹도 다 잘랐는데 몸도 심하게 야위어서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오라버니라는 걸 절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아이를 데리고 있지는 않았고 혼자였어요.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서 도주하게 되었는데 체포 공문이 떠서 여기저기 숨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요. 이제 가진 돈도 다 썼고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저와 어머니에게 어떻게든 3천냥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돈을 구하면 그자에게 어떻게 주기로 했어?”최숙심이 다급하게 물었고 왕청여가 대답했다.“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일단 저희에게 돈부터 구하라고 하곤, 나중에 오라버니가 날 찾아오겠다고 했어요.”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최숙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자가 눈썹이 없다고 했나?”“네, 오라버니는 눈썹이 짙어서 알아보기 쉽거든요. 그래서 다 잘라버린 것 같아요.”왕청여가 말한 것처럼 왕표가 눈썹을 자른다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이 사실을 얼른 북명 왕비에게 알려야 하지만 눈썹을 다시 그릴 수도 있기에 눈썹이 없는 사람만 유의해서 될 일도 아니다.“그럼 넌 이틀에 한 번씩 밖을 돌아다녀서 관찰해봐. 병부에 가서 왕이장을 만나기도 하고. 네 오라버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너를 몰래 미행할 거야. 난 석소에게 지금 당장 북명 왕비를 찾아가 순찰에 더욱 힘써 달라고 부탁할게. 그래야 네 오라버니가 한 시라도 빨리 널 찾아올 거야.”“알겠어요.”고개를 끄덕이던 왕청여가 다시 물었다.“그럼 어머니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 왕이장이 돈을 주기로 했고 지금 점포를 팔고 있는 중
한편, 최숙심은 뜨개질로 딸에게 옷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현재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는 딸이 먹고 쓰는 것까지 황실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최숙심은 뜨개질을 하면서도 왕비가 했던 말들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왕표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면 무조건 진성으로 돌아올 테지만 진성에 돌아온 그가 자신을 찾아올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왕표는 일단 노부인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할 것이고 노부인이 도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고 아끼는 노부인은 어떻게든 그의 이 일을 해결해주려고 할 것이다. 비록 오늘 노부인과 왕청여를 미행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왕표가 진성으로 돌아온 이유가 돈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돈만 구해지면 바로 진성을 떠날 것이다.노부인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이 없지만 진성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인맥은 넓다. 여기저기서 돈을 조금씩 빌린다면 그건 상대방들을 구렁이에 빠트리는 거나 다름없다.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탓에 노부인은 직접 돈을 빌리러 나갈 수도 없고 창피해서라도 절대 직접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보낼 사람은 남희나 왕청여밖에 없다.최숙심이 속으로 이런저런 분석을 하고 있을 때, 왕청여가 방으로 걸어 들어왔고 최숙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왕청여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줄줄 흘렸다.“새언니, 제가 예전에 멍청한 짓을 많이 저질렀어요. 저 때문에 새언니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고 조카들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예전에 했던 행동들이 너무 후회돼요.”최숙심은 왕청여가 감옥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뒤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먼저 찾아와서 사과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다 지난 일이야. 이제 미래를 보면서 살아야지. 앞으로 다 잘 될 거야.”최숙심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
왕청여는 결국 왕이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뻔뻔하게 왕이장도 평서백부 핏줄이니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반드시 도와야 하는 게 맞다고 얘기하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왕청여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평서백부가 무한한 영광과 명예를 누릴 때 왕이장은 덕을 조금도 보지 못했다면 왕씨 가문이 패가망신한 지금, 왕이장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왕청여는 그보다 이 사실을 새언니에게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다. 오라버니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왕청여는 나무 그늘 밑에 앉아 한참동안 멍 때리고 있었다.이때, 석소 사저가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가 왕청여를 보자 그녀와 마주치기 싫어서 바로 방향을 틀었고 조금 전의 말실수가 떠오른 왕청여가 다급하게 석소 사저를 불러 세웠다.“석소 사저, 조금 전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나쁜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었습니다.”“예.”그러자 석소 사저는 대충 대답을 하고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왕청여는 자유롭게 사는 무림의 여인은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을 해줄 것 같아서 돌아서는 석소 사저에게 말을 걸었다.“석소 사저, 혹시 사저와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걸음을 멈춘 석소 사저가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왕청여에게 다가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나무 그늘 밑에 나란히 앉았다.“무슨 얘기하고 싶은데요?”왕청여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석소 사저 손에 들고 있던 재봉실을 보며 물었다.“재봉실을 사신 거예요?”“아니요. 이씨 부인께서 보내왔어요.”석소 사저의 대답에 왕청여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이씨 부인은 사람이 참 선하네요. 소주방에 신경도 많이 써주고.”“다들 선한 사람들이죠.”“맞아요.”석소 사저는 대충 대답을 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그러자 왕청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함께 사는 얘기나 하려고 그런 겁니다. 아
왕청여는 석소 사저가 자신의 뜻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이 심란해서 사과할 겨를이 없었다. 문을 굳게 닫은 왕청여는 어머니에게 약을 건네며 말했다.“어머니, 일단 약부터 드세요. 나머지는 다시 천천히 생각하시고요.”그러자 노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청여야, 네가 솔직히 얘기해 보거라. 네 오라버니가 평소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느냐?”“어머니, 하지만 저희는 이제 오라버니를 도울 능력이 없어요. 우린 지금 소주방에서 빌붙어서 살고 있고 어머니께서 드시는 약도 시만자 아가씨가 돈을 줘서 살 수 있었던 거예요.”왕청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자 노부인이 반박했다.“네가 틀렸어. 그 돈들은 왕이장이 준 거야. 비록 왕이장이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였었다고.”“그자의 돈이라고 해도 우리는 오라버니를 위해 그자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어요.”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노부인이 솔직하게 얘기했다.“그 돈들은 왕이장 돈이 아니야. 그때 당시 왕이장이 돌아왔을 때 네 새언니가 왕이장에게 보상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어. 그래서 점포 여러 개를 왕이장에게 준 거야.”“그자에게 줬으면 그자의 것이잖아요. 그리고 왕이장 그자도 암암리에서 저희를 많이 챙기고 도왔는데 이제 와서 도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 이건 왕이장에게 불공평해요.”왕청여의 말에 노부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어차피 우리는 왕이장에게 미안한 짓을 이미 많이 저질렀어. 지금도 왕이장은 우리를 원망하고 있을 텐데 더 원망하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네 오라버니가 잘못을 저지른 건 맞아.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랬을 거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데 네 오라버니가 이대로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고개를 푹 숙인 왕청여는 약 그릇을 내려놓으며 대꾸했다.“어머니, 차라리 새언니에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새언니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그건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