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은 송석석을 몰래 한 번 힐끔 보았는데, 그녀가 화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스스로를 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확실히, 안태부는 손녀를 몹시 아끼고 있었다. 안여옥은 아마 안태부의 막내 손녀일 터, 막내는 늘 가장 사랑받는 법이다.“두 분 많이 급하신지요? 오늘 저희는…” “급하오. 이미 눈물까지 다 쏟고 있소.” 안태부는 급한 마음에 무릎을 쓸어내리며 말했다.“고집불통이지만 만약 방 씨 가문 쪽에서 납득할 만한 답을 준다면 받아들일 것이네. 그 아이는 결코 억지로 매달리지는 않을 걸세."태부 부인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저 ‘망치게 될까 걱정된다’는 식의 답변을 들으니, 둘러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애는 굉장히 집요한 성격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합니다. " 사여묵의 기대는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오늘 만금산의 일몰은 강 건너간 것임이 분명했다.하지만 애써 실망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그럼, 방시원을 부르도록 하지요. 두 분은 함께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빠지겠네. 왕야와 왕비께서 사적으로 물어봐 주길 부탁하네. 내가 있으면 방시원은 아마도 ‘방해가 될까 두렵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테지."송석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 분을 배웅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편히 돌아가 쉬시지요." "배웅은 필요 없습니다." 태부 부인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 일은 두 분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얘기가 끝나면 혹 사람을 보내 답을 주시겠습니까? 그래야지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을 터입니다. 이이는 연속 이틀 밤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사여묵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러지요."노 집사와 염 선생이 그들을 배웅했다. 사여묵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석석에게 말했다. "오늘은 만금산에 갈 수 없겠구려." 그러자 송석석은 상냥하게 미소를
송석석이 급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긴 어딜 간다고! 곧 네 의형제께서 올 거야. 아가씨 한분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해서, 그의 생각을 물어보려는 거야. 사실 이미 거절한 상태라, 진짜 관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부인할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인지 물으려는 거야.” 그러자 시만자가 눈을 반짝이며 방금 전처럼 급히 안으로 들었다. “정말? 어느 집 아가씨가 그토록 안목이 높은 것이야?” “안만수 태부의 손녀, 안여옥.” 송석석은 입을 가리고 낮게 속삭였다.“이 일은 아직 성사된 일은 아니니 밖으로 퍼지지 않게 조심해야 해.” “그 아가씨 말이야?” 막 자리에 앉은 시만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가 혹시 미친건 아니지? 안여옥인데 왜 거절한 거지? 정말 훌륭한 분이잖아? 예의 바르고 의롭고, 문재도 뛰어나며, 얼굴까지 고운데, 그런 아가씨를 밀어내?” “좀 조용히 해.” 송석석이 그녀를 흘겼다.시만자는 머쓱해하며 다시 자리에 앉아 입꼬리를 올렸다.“기쁜 마음에 그만. 그런데 정말 안여옥이 그를 마음에 뒀단 말이야? 혹시 한 순간의 감정은 아니겠지?” “그게 걱정이야. 네 오라버니도...” 송석석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 방시원의 어머니와 아직 상계하지 않았는데 벌써 그를 오라버니라 부르는 게 맞아?” 시만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강호의 자녀들은 그런 형식 따위 신경 쓰지 않아. 좋은 날을 골라 형제로 삼을 것이니 걱정 마. 이미 의모를 뵈었고 의모께서도 딸은 내가 생겨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몰라.” “너에게도 친형제가 있잖아? 왜 굳이 방시원을 오라버니로 삼으려 하는 거야?” 송석석은 약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시만자는 사실 그 누구도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편이었다. 그녀와 송석석이 가까워진 것 역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은 시만자는 발을 흔
방시원이 쓴웃음을 지었다."혼사 이야기를 일부러 흘린 것은 왕청여의 마음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제 와서 제가 사실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말을 쉽게 번복하는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그러자 시만자가 다시 물었다. "만약 혼인 할 생각이 있다면 안여옥을 고려해 볼 것입니까?""동생아, 내가 그녀에게 어울리기나 하겠느냐?" 방시원은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였다.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보다도 열 살은 어리고 더군다나 나는 이미 한 번 결혼을 했던 사람인데 어찌 그녀를 넘볼 수 있겠느냐?""그녀가 기꺼이 원한다면요, 뭐." 시만자가 집요하게 파고들자 방시원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기꺼이 원할 리가 없다. 그저 일시적인 영웅심일 뿐이다. 그래서 왕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핑계를 하나 만들어서 거절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너무 노골적으로 그녀의 체면을 구기지는 말아야 하겠지. 너에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으니, 도와주겠니?""싫습니다. 전 의모님처럼 오라버니가 하루빨리 결혼해 자손을 두길 바라니깐요. 그러면 더는 왕청여도 오라버니를 노리지 않을 겁니다.""너 말이다. 네 자신도 맨날 결혼 안 한다고 말하더니, 왜 지금은 자꾸 나를 결혼시키려고 하느냐?" 방시원이 투덜거렸다."여자는 결혼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시만자는 송석석을 한번 바라보더니 덧붙였다."게다가 저는 결혼하지 않아도 석석이가 평생 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사여묵은 밖을 내다보았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그의 마음도 함께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나가긴 글렀군..’그는 송석석을 한 번 힐끗 보았는데, 그녀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두 형제의 혼사 이야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남편에게도 좀 신경을 쓰지? 우울해서 죽을 것만 같은데?’방시원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금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여인들이 많지만, 며
염 선생이 생각해 낸 묘책은 이러했다.현재 방시원이 임명장을 받지 못해 어디로 파견될지 알 수 없었기에 태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안여옥과 혼인한다면 그를 따라 파견지로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삼 오 년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을 수 있었다. 안여옥은 순수하고 효심이 깊은 사람이기에 가족을 떠나 변방으로 가서 고생할 수는 없어 보였다.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안여옥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공경을 다 하였기에 연로하신 두 분을 떠날 리 없었기 때문이다.다음날 사여묵은 대리사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송석석과 시만자가 함께 태부부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안여옥이 나와서 기쁘게 맞이하였다. 그녀는 연노란색의 교영상의에 같은 색 백접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에는 은실로 된 나비들이 이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은은한 빛은 마치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듯했다. “소녀 안여옥, 왕비 마마를 배알하옵니다!” 그녀는 몸을 낮추어 예를 올렸고 단정한 몸짓은 조금의 흠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세가의 품격이었다. 미소를 띠며 그녀를 바라보던 송석석이 시만자를 바라보니 그녀는 흡족한 눈빛으로 안여옥을 응시했다. 예전에 그녀가 예법을 읽힐 때 유모는 자를 들고 호되게 지도하였다. 그녀의 손과 무릎을 많이도 맞았다. 그렇게 힘들게 배운 예법이었지만 매우 딱딱하였다. 그러나 안여옥은 예를 드리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자세 또한 우아하고 단정하여 왕청여라는 광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안여옥의 부모는 무척 금실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안여옥도 온화하고 우아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다들 모이셨으니, 제가 바로 말씀드리지요. 어제 방시원이 말하기를 아직 임명장이 나오지 않았고, 변방으로 파견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가씨는 순수하고 효심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변방으로 그와 함께 간다면 첫째는 고생이고, 둘째는
그녀는 할머니 품에 안긴 채 한참을 울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은 붉게 부어있었지만, 눈동자는 맑고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한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서로 눈이 마주친 송석석과 시만자는 약간의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들은 안여옥이 포기할 것을 원한 것이었고, 방시원이 한 말을 안태부한테도 이미 전했으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태부의 집을 나선 두 사람은 곧장 왕부로 돌아갔고, 곧 사람을 보내 방시원에게 결과만 알리기로 했다. 그렇게 원래는 그저 결과만 전달할 생각이었지만, 송석석은 생각을 바꿔 시만자를 직접 보내 안여옥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게 했다.사랑이란 감정에 무딘 그녀였지만 안여옥이 괴로워하던 모습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안여옥이 방시원에 대한 마음은 그저 일시적은 것은 아니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과연 어떤 교류라도 있었던 걸까? 열 살이나 차이 나고, 방시원은 일찍이 군에 입대했어서 그들은 거의 만날 일이 없었다.시만자가 방시원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했을 때, 방시원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왕비께도 고맙다고 전해다오. 또한 염 선생에게도 좋은 핑계를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전하거라."잠시 생각에 잠기던 시마자가 입을 열었다.“안여옥은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지요. 그녀는 항상 오라버니를 위해 평안을 빌었습니다.”시만자가 눈이 높다는 걸 알기에,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것을 보며 안여옥이 정말 대단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훌륭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녀와 자신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나도 그녀의 평안과 행복을 빌어. 꼭 좋은 짝을 찾길 바랄 뿐이다.”한편, 왕청여를 평서백부로 데려간 최 씨는 그녀와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다."더는 여기저기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방시원이 아가씨께서 숨기고 있던 육세진의 옥패를 발견했고 그다음엔 제가 모든 것을 그에게 전했습니다."왕청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최 씨를 바라봤다. 그녀가 자신을 배신할
왕청여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그녀는 한 번도 최 씨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단정하고 차분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최 씨였는데, 이제는 그저 광기에 휩싸인 여인처럼 느껴졌다.“똑바로 보았느냐? 이 모습이 바로 너다. 모두가 보고 있는 네 모습이다. 단단히 미쳐서 체면도, 예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기본적인 자존심마저 다 버린 너 말이다.” 최 씨가 왕청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가자, 어머니 뵈러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랑 같이 가서 어머니가 쓰러지는 꼴을 지켜보고 너도 자결하거라. 그러면 이 집도 평안해지리라."왕청여는 두려움에 질려 뒤로 물러섰고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가지 않을 겁니다."최 씨의 시녀 금숙이 그녀를 의자에 앉히자 최 씨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 씨는 순간 평서백부에 시집온 이후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시부모에게는 지극정성으로, 아랫사람들에게는 공정하게, 심지어는 남편의 첩과 자식들에게조차 한 번도 부당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첩들이 문제를 일으켰고, 남편이 그 문제를 돕고 있었기에 그녀는 온갖 고생을 다 견뎌야 했다. 남편을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직책을 마련하고, 혹여나 자식들에게까지 해가 가지 않기 위해 명성을 쌓으며 노력했다. 그렇게 평서백부의 모든 식구들이 그녀에게 기대었으나, 모두가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지지해 준 사람은 오직 작은 시아주버니 부부뿐이었다. 시어머니도 나쁜 분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약해,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집안일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누이 왕청여는 언제나 그녀에게 골칫거리였다. 이제는 전 부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방씨 가문에 찾아가고, 북명왕부에서까지 소란을 피워 버렸다. 비록 왕부가 아랫사람들을 엄하게 다스린다 해도, 손님들이 있고 게다가 방씨 가문쪽 많은 하인 들도 지켜보고 있었으니 쓸데
북명왕부로 급히 달려간 민 씨는 왕청여가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평서백부로 향했다. 전북망은 당직이여서 아직 이 사태를 알지 못했고,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쩔 수 없이 민 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온 것이다.민 씨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왕청여가 송석석을 찾아간 것이라면, 아마도 전북망과 관련된 일일 것이라 짐작했다. 평서백부의 최 씨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왕청여가 임신 중이라며 잘 보살피라고만 전했다. 그렇기에 민 씨는 더는 묻지 못해 여전히 의문스러움만 남았다. 아이를 가진 건 분명 기쁜 일인데 왜 북명왕부에서 그리 소란을 피웠는지.. 왕청여의 임신 소식에 전북망과 전 노부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밤, 전북망은 왕청여를 조심스럽게 돌보았다. 왕청여는 그의 품에 안겨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직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대해준다면 이 결혼 생활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며칠 후, 그녀가 방씨 가문을 찾아갔다는 소식이 온 거리에 퍼지고 말았다! 늘 체면을 중요시하던 전노부인은 그 일을 듣자마자 왕청여를 불러 크게 질책했다. "너는 내 아들의 아이를 품은 몸인데 방씨 가문에는 왜 간 것이냐?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했냔 말이다? 네 뱃속의 아이가 진정 내 아들의 자식이 맞느냐? 방시원이 돌아오자마자 그와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임신한 것은 아니냐?"시어머니에게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존경심도 남아 있지 않았던 왕청여는 차갑게 답했다."그건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불륜을 저질렀다는 둥, 몰래 아이를 가졌다는 둥, 어머니께서 하시는 이러한 말씀들이 전북망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시는 겁니까? 이런 말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어머님 아들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말을 마친 왕청여는 홱하고 뒤돌아 나가버렸다.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비록 그녀가 이미 몰
연왕비로부터 내일 방문하겠다는 배첩을 받은 최 씨는 문뜩 왕비가 했던 말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렇게 잠시 생각하고는 금숙에게 명령을 내렸다. "예물을 준비하거라. 내가 직접 북명왕부에 다녀와야겠다.""부인, 먼저 배첩을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냥 가면 실례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럴 필요 없다. 내가 왕비에게 이미 직접 가서 사과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연왕부에서 내일 방문한다고 하니 배첩을 올릴 시간이 없었다.북명왕부에서 송석석은 최 씨의 부은 얼굴을 보고 놀라 물었다. "괜찮으신가요?"최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이건 제가 스스로를 때린 겁니다. 평서백부에서 감히 저를 때릴 사람은 없습니다."송석석은 그녀의 집안일을 깊게 묻고 싶지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최 씨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것을 통해 세가에서 정서가 안정된 여인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사실 부인께서 굳이 찾아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부인이 아니기도 하고요."잠시 생각에 잠기던 최 씨가 진솔하게 말했다. "왕비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찾아온 것은 단순히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라,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송석석은 천천히 차 한 모금 마시며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물어보세요."송석석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물으려는지 알고 있었다. 연왕부에서 평서백부에 배첩을 보냈기 때문이다.연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북명왕이 단단히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몽동이까지 병사들을 이끌고 주시하고 있었다. 연왕의 신분에 걸맞게 신경 써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최 씨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려 했으나, 왕청여의 일로 너무 지쳐 있었기에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왕비 마마, 연왕께서 평서백부에 배첩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왕비께서 조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그녀의 질문은 매우 교묘했다. 누가 들어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