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비웃음에 사여묵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직은 오라비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후궁이 되지 않으면 둘 사이 감정은 천천히 키울 수 있다고 믿었던 사여묵은 황제에게 인사를 건넨 자리에서 일어났다.황제는 그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오 공공을 찾았다. “오 공공!”“폐하, 찾으셨사옵니까?” 오 공공이 신전문을 열고 들어와 몸을 숙였다.“송석석이 3개월 안에 인연을 찾지 못하면 귀비로 봉한다고 전하거라.”오 공공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북명왕에게도 짐의 말을 알릴 거라. 단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마라.” 황제의 명에 오 공공이 답했다. “그리하겠사옵니다.”“가서 전하라.”황제는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말했고 오 공공이 나간 지 얼마 안 돼, 황후가 찾아왔고 황제는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말씀하시오!”황후는 상궁을 데리고 들어왔다. 상궁의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다는데 쟁반 위에는 탕약이 놓여 있었다.황후가 온화하게 말했다. “어제 과음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신첩이 직접 간을 보호하는 탕약을 다려 왔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께서 마음이 깊구려. 이리 가져 오시게.”황후는 직접 탕약을 들고 황제에게 다가가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그에게 건넸다. “폐하, 드시지요.”황제는 황후가 들고 온 그릇이 평소 좋아하던 그릇인 것을 알아차리고 탕약이 든 그릇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뒤 물었다. “송석석은 뭐라고 하든가?”황후는 란희에게 빈 그릇을 건넨 뒤, 황제의 옆에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 “신첩, 송 장군에게 후궁에 관한 말을 꺼내자 매우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혔사옵니다. 심심해할 신첩 위해 말동무가 되어 주겠답다고 하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황후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황제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더니 잠시 망설였다. “여동생이 없는 신첩은 송 장군의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들었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국공부로 들어오자마자 오 공공이 따라 들어와 황제의 말을 전했고 송석석은 너무 놀라 입만 벙긋거렸다.‘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후궁이 되라니?’그녀는 오 공공만 남겨두고 다른 사람들을 물렸다. “오 공공, 폐하께서 이러는 이유가 있으십니까?”만약 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자신의 후궁이 되라는 황제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아무도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결국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압박하고 있는 황제 때문에 그녀는 후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시간을 준 게 이상했다.“석 달 동안 아씨와 혼례를 치르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건 폐하께 맞서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실런지요?”“폐하께서 왜 내 혼사에 관여하시는 겁니까?”오 공공이 답했다. “아씨께서 폐하를 오라비로 여기시니 폐하께서도 오라비의 마음으로 동생의 혼사를 걱정하는 것입니다.”오 공공의 말에 송석석은 폐하의 미움을 받을 각오로 용감하게 말했다. “어떤 오라비가 동생이 혼례를 안 치른다고 자신의 부인으로 삼습니까?”오 공공이 한숨만 내쉬며 아무 말이 없었고 송석석은 결국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그녀와 황제는 어릴 적 같이 뛰놀았던 게 전부였다.매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고 어머니를 따라 종종 궐에 들었을 때, 황제는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매우 온화하게 대했다.‘왜 갑자기 전쟁에서 돌아온 나를 후궁으로 맞으시려는 거지? 후궁을 들이고 싶거든 폐하께서 간택을 하면 되거늘 어찌 한 번 다녀온 날 후궁으로 들이려는 걸까? 정말 내게 마음이 있다면 내가 전북망과 혼례를 하기 전에 어머니께 말해 궐에 들이는 방법도 있었어.’하필 그녀가 이혼하고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에야 후궁으로 들이려는 게 이해되지 않았을 뿐더러 황후가 그 얘기를 전하기 위해 그녀를 궐에 불렀다.후궁이 되지 않겠다는 뜻을 들은 황제는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기한을 주며 혼례를 재촉하는
송석석은 친구들이 남강 전쟁을 도와준 것으로 충분히 고마웠고, 더는 신경 쓰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오 공공이 찾아와 전한 말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남강 전쟁에서 우리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희생 당했고, 그들의 복수하려고 난 남강 전쟁에 참가했어. 날 도와 함께 싸워준 이 은혜는 꼭 기억할게.”무림의 규칙은 원수는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은 친구인 송석석을 도와 복수를 하는 게 당연했다. 송석석이 호탕하게 말했다. “배불리 먹었으면 거리에 나가서 물건 좀 사갈래? 사문에게 내 물건 좀 가져다줘.”“폐하께서 보상을 주지 않아 은자도 없는 걸?” 몽동이가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잊으신 건 아닐까?”송석석이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 없어. 폐하께서 직접 세 개 군에 상을 내리겠다고 했어. 우린 전공을 세웠고 분명 상을 받을 거야.”“폐하께서 황금 백 냥을 줬으면 좋겠다. 10년 치 임대료를 해결할 수 있다고.”몽동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몽동이가 속한 고월파는 매산에 있지만 매산은 만종문 소유이기에 매년 만종문에게 임대료를 내야 했으나 고월파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었고 몽동이의 사부님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탓에 문파 제자들은 내공 무술을 닦는데만 열중했지 산에서 내려와 장사하지 못했다.“연지가루를 몇 개 사서 누이들과 나눌 거야.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라 내가 챙기는 수밖에 없어. 돌아갈 때 채단도 몇 개 사가야 내가 전쟁에 나갔다고 뭐라 하시지 않을 거야... 비녀도 사야지!”시만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 사부님은 전쟁에 나갔다고 비난할 분이 아니지만 그런 물건을 사서 돌아간다면 네 열 손가락을 자를 것이야.”시만자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때마침, 부 장군 장대성이 그들에게 상을 건네주러 왔다.네 사람은 황금 2백 냥을 받았고 송석석은 성을 무너뜨리는 큰 공을 세웠기에 황금 천 냥을 받았으며 정4품 장군으로 승진했지만 어떤 직책도 주지는 않았다.앞니로 황금을 살짝 깨무는 몽동이에게 시만자가 자신
김순희는 고작 이런 상금을 받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를 전쟁에 보낸 게 아니었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승진 기회를 놓친 게 이방 때문인 것도, 전북망이 이방 대신 벌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 김순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김순희는 분노에 못 이겨 밤중 기절했고 의관을 불러와 주사를 맞아 겨우 회복되었다.그러나 신의에게 약을 사기 위해선 이미 손에 쥔 돈이 없었다. 수중의 돈은 일찍이 탕진했고 차례를 치르기 위해 돈까지 빌렸다. 전북망이 상으로 받은 황금 2백 냥으로 빚은 갚은 뒤 약을 처방받는 수밖에 없었다.‘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가 고작 황금 2백 냥이라니!’ 자기가 기절했는데도 수발을 들지 않는 이방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딴 걸 집에 들일 수 있어? 부부가 군공을 얻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리 효심이 없어서야.”“어머님, 의관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전북망이 침대 곁을 지키며 그녀를 집중시켰다.“오라버니, 이방이 더럽혀졌다는 게 사실이에요?”밤새 김순희의 곁을 지킨 사람은 전소환이었다. 며칠간 마을에 이방에 관한 소문이 끝없이 돌았었다. 친구들에게 자기 새언니라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알게 된 전소환은 수치심에 죽을 것 같았다. ‘곧 혼인해야 하는데, 새언니라는 사람이 이 사달을 낸 탓에 혼삿길이 막혔어!’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의 없게 누구 이름을 불러?”“더러운 그 사람을 언니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전소환이 입술을 깨고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 둘째 오라버니가 받은 상금으로 여름옷 좀 만들어주세요. 벌써 6월이나 됐는데 입을 옷이 없어요. 작년에 송석석이 만들어준 것만 입어서 다들 비웃어요.”“그래, 사거라.” 김순희의 대답에 전북경이 화를 냈다. “둘째가 받은 상금은 모두 어머니의 약값과 장군부 지출로 써야 하는데, 옷이 웬 말이냐!”전소환은 집안에서 막내이기에 모두 그녀를 귀여워했고 꾸지람 한 번 못 들어보고 귀하게 자랐
사나운 눈빛에 깜짝 놀란 전소환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다가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이 여자가 절 때렸어요.”김순희는 사랑스러운 자기 딸이 이방에게 뺨을 맞자 참고 있었던 분노가 터졌다.“둘째야, 네 부인 단속 좀 해라.”전북망은 달려와 뺨부터 날리는 자기 부인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애한테 손을 댈 수 있소? 잘못했으면 꾸중을 하면 되지, 왜 때리시오?” 이방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때리면 안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사람을 탓해야죠.”“내가 말한 것도 아니고 바깥사람들이 그랬다는데, 그럼 다른 사람도 때리지 그래요?”전소환이 흐느끼며 말했다. “바깥사람은 때리지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화내요?”이방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건 그들의 일이고, 바깥사람이 어떻게 굴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그래도 내가 네 언니인데 단속은 해야 하지 않겠어? 아버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아주버님과 형님도 나 몰라라하고 어머님은 종일 골골 대기나 하시고, 약 살 돈도 없는데 네가 철없이 옷이나 장신구를 사달라고 하지. 적어도 난 군공을 세운 적 있는 장군인데, 네가 뭔데 내 험담을 해?” 이방의 말에 전북망과 민씨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노부인은 손가락으로 이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지 못한채 얼굴만 붉혔다.전북망은 손을 들어 이방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말 조심하시오!”이방은 자기 뺨을 감싼 채 전북망을 멍하게 쳐다보았다.“절 때리신 거예요?”전북망도 깜짝 놀라서 자기 손만 바라보았다. 그간 겪었던 수모와 가족들에게 예의없게 구는 이방의 태도에 화가 다시 한번 이방의 뺨을 때렸고 이방도 화가 나서 모퉁이에 있는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전북망의 머리 쪽으로 휘둘렀다. “어디 누가 죽는지 봅시다!”전북망은 이방이 의자를 휘두르는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몸을 돌렸고 그 의자는 그대로 전북망의 뒤에 있던 전기에게 부딪쳤다.“아버지!”전북망과 민씨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전기는 머리에
“황당하네요!”가족들의 말에 육씨가 화를 내며 상을 두드렸다. 환하게 밝혀진 등불 때문에 분노한 그녀 얼굴을 볼 수 있었다.전북경과 민씨는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지금 저더러 국공부에 찾아가라는 거예요? 전북망이 이혼한 걸 후회하고 있다고 말할까요? 오라버니가 며느리라는 작자에게 맞았고, 돌아와서 이 아수라장을 정리해달라 어찌 말 합니까?”“형님, 송석석 입장은 생각이라도 해봤어요? 들고 온 혼수를 전부 되돌려 달라고 할 판입니다. 폐하께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 가게까지 털어먹을 작정 아니었나요? 자기 체면 구기기 싫어서 날 보내는 것 같은데, 싫습니다.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지, 그런 일은 못합니다.”“그리고 체면 차리지 않을 거면 연 왕비께 직접 가는 게 어때요? 연 왕비가 둘의 혼례를 보장했고 헤어질 땐 무서워서 감히 부르지 못했다 해도, 다시 합치려면 연 왕비께 허락을 받으셔야죠. 왕비가 사람을 보내 해코지할까 봐 두려우세요?”“아니면 연 왕비께서 병약하기에 가문의 운명을 걸기엔 믿음이 안 가나요? 당신들이 한 더러운 일 때문에 장군부 명예가 훼손당했어요. 조상님께서 쌓으신 공로를 무너뜨린 게 이 집안사람입니다.”육씨는 시시비비를 따지더니 몸종을 불러 그들을 쫓아냈다. 그들의 변명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육씨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장군부의 경제 상황으로 단설환 조차 사 먹을 수 없었다.자리에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던 민씨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머님의 일방적인 희망이에요. 동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예요.”전북경이 그녀를 질책했다.“그 불순한 말은 무엇이오? 우리 장군부의 모든 영광은 둘째가 세운 공 때문이오. 덕분에 우리도 존경을 받았던 것이오. 송석석이 돌아오든 말든, 가족에게 어찌 이럴 수 있소?”민씨는 남편의 질책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사실 전북망이 장군이 되어 장군부에 영광을 가져다주던 그때, 하필이면 송석석이 아닌 이방을 선택한 것을 누구
전북망이 싸늘한 얼굴로 반복했다.“형님, 송석석을 찾아가지 마세요.”김순희는 전북망이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우리 장군부의 마지막 생명줄이 송석석이다. 이방 때문에 장군부가 어떻게 된 줄 알아? 체면은 다 깎이고 남들 손가락질이나 받고 있지. 고약한 계집애가 감히 시아버지를 때려? 아버지 목숨이 위태로우면 내 당장 친정으로 내쫓아버릴 것이니 다시는 내 눈에 띄게 하지 마.”“그리고 왜 하필 폐하를 찾아가 이방과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간청을 한 것냐?”김순희는 전북망을 바라보며 쌓아뒀던 속내를 털어놓았다.“자기 시아버지를 때리고, 시어머니를 존경하지 않는 여인과 혼례를 하겠다고 간청하다니. 이제 헤어질 때 폐하께 뭐라고 변명할 셈이야?”전북망이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그만 하세요. 폐하께서 절 잊기를 바랄 뿐이에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떠올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다시 이혼하겠다고 폐하께 청하면 아마 제 벼슬길도 거기서 끝일 겁니다.”김순희가 깜짝 놀라 대꾸했다.“몇 년이 지난 뒤에 찾길 바란다고? 그럼 너한테 출셋길이 틀 것 같으냐? 무장이란 젊었을 때 싸우는 것이다. 이방을 단속 못 한 것 때문에 그런 고초를 겪을 순 없다. 그리고 황제께서 너에게 상도 내리고 경공연에 초대한 걸 보면 아직 널 아끼시는 게 틀림없어.”전북망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전쟁에서 돌아와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고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그는 가족들에게 성릉관의 일에 관해, 이방이 저지른 참혹한 짓들을 입 밖으로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아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김순희는 속으로 화만 삭였다. ‘이방 때문에 혼례 당일부터 지금까지 장군부는 체면만 잃었어.’김순희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하필 그런 애를 염모해서는… 송석석과 비교도 되지 않는 애를.”전북망은 입술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북망도 수천 번 후회했다.두 번의 군공은 그에게 출셋길을 열어주기 충분했으나 이방과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 군
오랫동안 외원을 관리했기에 견문과 식견이 넓었던 진복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아씨, 폐하께서 아씨를 정말 궐에 들일 생각은 없나 봅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당장 어명을 내려 후궁으로 불러들여도 되지요. 그런데 석 달이나 기한을 주셨잖아요.”“나도 알아. 석 달 안에 시집가게 하려는 거야.” 송석석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독신녀로 사는 게 폐하께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버지 조서(诏書)에서 나와 혼인을 하는 자는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사항을 봤었는데,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을 사람을 찾으시려는 건가?”“저도 조서에 적합한 사내를 데려와 배양해야 한다고 쓴 걸 봤습니다. 추후에 가문의 대소사를 이어받을 수 있게요. 폐하께서 송씨 가문이 후계자를 찾는 걸 반대하시려는 것인지, 아니면 적합한 후보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런데 석 달이라는 기한을 준 것으로 보아, 이미 마음에 드신 후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송석석은 어머니가 남겨주신 팔찌를 만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자네 말대로 이미 내정된 후보가 있나 보오.”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렸다.또다시 모르는 사람과 혼인을 해, 모르는 사람에게 가문을 맡겨야 했다.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유모 중 한 명, 양 마마가 입을 열었다.“만약 내정된 후보가 있다면 그분께서 데릴사위가 된다는 겁니까? 아이를 낳으면 송씨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사내가 이를 받아들이려 한단 말입니까? 행여 받아들인다 해도, 직위를 얻고 나서 첩을 들여 서자에게 직위를 물려준다면 그땐 저희는 어찌합니까?”그녀 말대로, 데릴사위가 되어 혼자 들어오는 건 상관이 없지만, 가족 전체를 이 집안에 데려와 살게 할 수는 없었다.그녀의 어머니도 전북망과 혼사를 추진한 가장 큰 이유가, 전북망이 첩을 절대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으나 진성의 어떤 명문가도 첩을 들이지 않는 가문은 없었다. 심지어 평범한 백성조차, 첩을 들이는 게 다반사였다.혼인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었던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