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과 보주는 황후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황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몸종과 함께 왔사옵니다.”황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그만 일어나시오.”“황후마마, 감사하옵니다.”송석석과 보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황후는 송석석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황후는 예전에 송석석을 만난 적 있는데, 그때도 송석석이 매우 아름다워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고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그녀의 피부는 많이 상해 있었음에도 여전히 절세미인이었다.황제가 자신에게 송석석을 불러 후궁으로 들어올 생각 있는지 물어보라는 말에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송석석처럼 무술에 재능이 있으면서도, 절세미인이기도 한 여인이 궁에 들어오면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물론 신분과 지위가 황후보다 못하겠지만, 황제의 마음을 얻는 것만으로 이미 승자인 셈이다.다만 현명했던 황후는 대놓고 적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송석석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 장군은 처자의 소중함을 몰라보고 눈앞의 새로운 것에 눈이 팔려 이리 귀한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구려.”황후의 칭찬인 것 같으면서도 칭찬 같지 않은 말에 송석석은 기분이 묘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황후가 자신에게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황후가 차 한 모금을 들이키고, 손톱에 낀 금색의 호갑투(護甲套)로 찻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어루만지더니 큰 결심을 한 듯 송석석을 쳐다보았다.“그래도 명주는 명주인 법, 흙모래에 가려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명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터니.” 송석석은 자신에게 지아비를 소개해 주려는 것 같은 황후의 의미심장한 말에 불쾌했지만, 티를 내지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신녀는 지나간 일을 뒤돌아보지 않사옵니다. 사람은 앞날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 생각하옵니다. 신녀를 명주에 비유한 것은 당치 않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신녀는 그저 어릴 때부터 매산에서 무예를
장춘궁에서 나와 출궁을 하던 중, 사여묵과 송석석이 마주쳤다.술에서 덜 깬 사여묵은 어제 입고 온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전투복과 녹슨 투구를 한 채, 금옥관을 묶고 있었다. 붉은 궁문에 기댄 그에게서 익숙한 땀 냄새가 났다.나른한 눈빛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여묵에게 다가간 송석석이 손을 흔들었다.“어제 궐에 묶으셨어요?”“그래.”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차림이 예쁘구려. 부잣집 규수 같소.”송석석이 웃음을 터트렸다.“원래 부잣집 규수였습니다만.”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황후께서 궐에 들어와 후궁이 되라고 하셨소?”송석석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어찌 황후마마께서 하신 말을 알고 계신 거예요?”사여묵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어젯밤 태후마마를 만났으니 오늘 황후마마께 문안을 올리러 올 것 같았소.”“정확하셔요. 왕야님께서 이 사달이 난 내막을 알고 계시나 봅니다.” 송석석이 사여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황제 폐하께서 저를 궐에 들이시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계세요?”이리저리 알아보는 것보다야 사여묵에게 직접 묻는 편이 훨씬 신뢰가 있었다.어두운 눈빛을 한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수락했소?”송석석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답했다.“수락이라뇨? 줄곧 오라비로 여긴 폐하의 후궁이 될 수 없습니다.”사여묵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폐하와 왕야님께서 제 오라비 때문에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셨고 저도 자연스레 두 분과 놀았지요. 그때부터 두 분을 제 오라비로 여겼습니다.”그녀의 말을 듣던 사여묵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오라비?”송석석은 사여묵이 자기 대신 황제에게 마음을 전해주길 바랐다.“그렇습니다. 폐하와 왕야님은 제게 오라비 같은 존재예요.”사여묵이 다시 물었다. “폐하를 오라비로 여기는 것이오? 아니면 나도 오라비로 여기는 것이오?” “두 분 다요.”송석석이 단호하게 말했다.‘이
황제의 비웃음에 사여묵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직은 오라비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후궁이 되지 않으면 둘 사이 감정은 천천히 키울 수 있다고 믿었던 사여묵은 황제에게 인사를 건넨 자리에서 일어났다.황제는 그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오 공공을 찾았다. “오 공공!”“폐하, 찾으셨사옵니까?” 오 공공이 신전문을 열고 들어와 몸을 숙였다.“송석석이 3개월 안에 인연을 찾지 못하면 귀비로 봉한다고 전하거라.”오 공공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북명왕에게도 짐의 말을 알릴 거라. 단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마라.” 황제의 명에 오 공공이 답했다. “그리하겠사옵니다.”“가서 전하라.”황제는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말했고 오 공공이 나간 지 얼마 안 돼, 황후가 찾아왔고 황제는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말씀하시오!”황후는 상궁을 데리고 들어왔다. 상궁의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다는데 쟁반 위에는 탕약이 놓여 있었다.황후가 온화하게 말했다. “어제 과음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신첩이 직접 간을 보호하는 탕약을 다려 왔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께서 마음이 깊구려. 이리 가져 오시게.”황후는 직접 탕약을 들고 황제에게 다가가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그에게 건넸다. “폐하, 드시지요.”황제는 황후가 들고 온 그릇이 평소 좋아하던 그릇인 것을 알아차리고 탕약이 든 그릇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뒤 물었다. “송석석은 뭐라고 하든가?”황후는 란희에게 빈 그릇을 건넨 뒤, 황제의 옆에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 “신첩, 송 장군에게 후궁에 관한 말을 꺼내자 매우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혔사옵니다. 심심해할 신첩 위해 말동무가 되어 주겠답다고 하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황후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황제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더니 잠시 망설였다. “여동생이 없는 신첩은 송 장군의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들었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국공부로 들어오자마자 오 공공이 따라 들어와 황제의 말을 전했고 송석석은 너무 놀라 입만 벙긋거렸다.‘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후궁이 되라니?’그녀는 오 공공만 남겨두고 다른 사람들을 물렸다. “오 공공, 폐하께서 이러는 이유가 있으십니까?”만약 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자신의 후궁이 되라는 황제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아무도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결국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압박하고 있는 황제 때문에 그녀는 후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시간을 준 게 이상했다.“석 달 동안 아씨와 혼례를 치르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건 폐하께 맞서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실런지요?”“폐하께서 왜 내 혼사에 관여하시는 겁니까?”오 공공이 답했다. “아씨께서 폐하를 오라비로 여기시니 폐하께서도 오라비의 마음으로 동생의 혼사를 걱정하는 것입니다.”오 공공의 말에 송석석은 폐하의 미움을 받을 각오로 용감하게 말했다. “어떤 오라비가 동생이 혼례를 안 치른다고 자신의 부인으로 삼습니까?”오 공공이 한숨만 내쉬며 아무 말이 없었고 송석석은 결국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그녀와 황제는 어릴 적 같이 뛰놀았던 게 전부였다.매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고 어머니를 따라 종종 궐에 들었을 때, 황제는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매우 온화하게 대했다.‘왜 갑자기 전쟁에서 돌아온 나를 후궁으로 맞으시려는 거지? 후궁을 들이고 싶거든 폐하께서 간택을 하면 되거늘 어찌 한 번 다녀온 날 후궁으로 들이려는 걸까? 정말 내게 마음이 있다면 내가 전북망과 혼례를 하기 전에 어머니께 말해 궐에 들이는 방법도 있었어.’하필 그녀가 이혼하고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에야 후궁으로 들이려는 게 이해되지 않았을 뿐더러 황후가 그 얘기를 전하기 위해 그녀를 궐에 불렀다.후궁이 되지 않겠다는 뜻을 들은 황제는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기한을 주며 혼례를 재촉하는
송석석은 친구들이 남강 전쟁을 도와준 것으로 충분히 고마웠고, 더는 신경 쓰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오 공공이 찾아와 전한 말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남강 전쟁에서 우리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희생 당했고, 그들의 복수하려고 난 남강 전쟁에 참가했어. 날 도와 함께 싸워준 이 은혜는 꼭 기억할게.”무림의 규칙은 원수는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은 친구인 송석석을 도와 복수를 하는 게 당연했다. 송석석이 호탕하게 말했다. “배불리 먹었으면 거리에 나가서 물건 좀 사갈래? 사문에게 내 물건 좀 가져다줘.”“폐하께서 보상을 주지 않아 은자도 없는 걸?” 몽동이가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잊으신 건 아닐까?”송석석이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 없어. 폐하께서 직접 세 개 군에 상을 내리겠다고 했어. 우린 전공을 세웠고 분명 상을 받을 거야.”“폐하께서 황금 백 냥을 줬으면 좋겠다. 10년 치 임대료를 해결할 수 있다고.”몽동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몽동이가 속한 고월파는 매산에 있지만 매산은 만종문 소유이기에 매년 만종문에게 임대료를 내야 했으나 고월파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었고 몽동이의 사부님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탓에 문파 제자들은 내공 무술을 닦는데만 열중했지 산에서 내려와 장사하지 못했다.“연지가루를 몇 개 사서 누이들과 나눌 거야.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라 내가 챙기는 수밖에 없어. 돌아갈 때 채단도 몇 개 사가야 내가 전쟁에 나갔다고 뭐라 하시지 않을 거야... 비녀도 사야지!”시만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 사부님은 전쟁에 나갔다고 비난할 분이 아니지만 그런 물건을 사서 돌아간다면 네 열 손가락을 자를 것이야.”시만자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때마침, 부 장군 장대성이 그들에게 상을 건네주러 왔다.네 사람은 황금 2백 냥을 받았고 송석석은 성을 무너뜨리는 큰 공을 세웠기에 황금 천 냥을 받았으며 정4품 장군으로 승진했지만 어떤 직책도 주지는 않았다.앞니로 황금을 살짝 깨무는 몽동이에게 시만자가 자신
김순희는 고작 이런 상금을 받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를 전쟁에 보낸 게 아니었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승진 기회를 놓친 게 이방 때문인 것도, 전북망이 이방 대신 벌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 김순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김순희는 분노에 못 이겨 밤중 기절했고 의관을 불러와 주사를 맞아 겨우 회복되었다.그러나 신의에게 약을 사기 위해선 이미 손에 쥔 돈이 없었다. 수중의 돈은 일찍이 탕진했고 차례를 치르기 위해 돈까지 빌렸다. 전북망이 상으로 받은 황금 2백 냥으로 빚은 갚은 뒤 약을 처방받는 수밖에 없었다.‘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가 고작 황금 2백 냥이라니!’ 자기가 기절했는데도 수발을 들지 않는 이방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딴 걸 집에 들일 수 있어? 부부가 군공을 얻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리 효심이 없어서야.”“어머님, 의관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전북망이 침대 곁을 지키며 그녀를 집중시켰다.“오라버니, 이방이 더럽혀졌다는 게 사실이에요?”밤새 김순희의 곁을 지킨 사람은 전소환이었다. 며칠간 마을에 이방에 관한 소문이 끝없이 돌았었다. 친구들에게 자기 새언니라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알게 된 전소환은 수치심에 죽을 것 같았다. ‘곧 혼인해야 하는데, 새언니라는 사람이 이 사달을 낸 탓에 혼삿길이 막혔어!’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의 없게 누구 이름을 불러?”“더러운 그 사람을 언니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전소환이 입술을 깨고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 둘째 오라버니가 받은 상금으로 여름옷 좀 만들어주세요. 벌써 6월이나 됐는데 입을 옷이 없어요. 작년에 송석석이 만들어준 것만 입어서 다들 비웃어요.”“그래, 사거라.” 김순희의 대답에 전북경이 화를 냈다. “둘째가 받은 상금은 모두 어머니의 약값과 장군부 지출로 써야 하는데, 옷이 웬 말이냐!”전소환은 집안에서 막내이기에 모두 그녀를 귀여워했고 꾸지람 한 번 못 들어보고 귀하게 자랐
사나운 눈빛에 깜짝 놀란 전소환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다가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이 여자가 절 때렸어요.”김순희는 사랑스러운 자기 딸이 이방에게 뺨을 맞자 참고 있었던 분노가 터졌다.“둘째야, 네 부인 단속 좀 해라.”전북망은 달려와 뺨부터 날리는 자기 부인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애한테 손을 댈 수 있소? 잘못했으면 꾸중을 하면 되지, 왜 때리시오?” 이방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때리면 안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사람을 탓해야죠.”“내가 말한 것도 아니고 바깥사람들이 그랬다는데, 그럼 다른 사람도 때리지 그래요?”전소환이 흐느끼며 말했다. “바깥사람은 때리지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화내요?”이방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건 그들의 일이고, 바깥사람이 어떻게 굴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그래도 내가 네 언니인데 단속은 해야 하지 않겠어? 아버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아주버님과 형님도 나 몰라라하고 어머님은 종일 골골 대기나 하시고, 약 살 돈도 없는데 네가 철없이 옷이나 장신구를 사달라고 하지. 적어도 난 군공을 세운 적 있는 장군인데, 네가 뭔데 내 험담을 해?” 이방의 말에 전북망과 민씨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노부인은 손가락으로 이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지 못한채 얼굴만 붉혔다.전북망은 손을 들어 이방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말 조심하시오!”이방은 자기 뺨을 감싼 채 전북망을 멍하게 쳐다보았다.“절 때리신 거예요?”전북망도 깜짝 놀라서 자기 손만 바라보았다. 그간 겪었던 수모와 가족들에게 예의없게 구는 이방의 태도에 화가 다시 한번 이방의 뺨을 때렸고 이방도 화가 나서 모퉁이에 있는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전북망의 머리 쪽으로 휘둘렀다. “어디 누가 죽는지 봅시다!”전북망은 이방이 의자를 휘두르는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몸을 돌렸고 그 의자는 그대로 전북망의 뒤에 있던 전기에게 부딪쳤다.“아버지!”전북망과 민씨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전기는 머리에
“황당하네요!”가족들의 말에 육씨가 화를 내며 상을 두드렸다. 환하게 밝혀진 등불 때문에 분노한 그녀 얼굴을 볼 수 있었다.전북경과 민씨는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지금 저더러 국공부에 찾아가라는 거예요? 전북망이 이혼한 걸 후회하고 있다고 말할까요? 오라버니가 며느리라는 작자에게 맞았고, 돌아와서 이 아수라장을 정리해달라 어찌 말 합니까?”“형님, 송석석 입장은 생각이라도 해봤어요? 들고 온 혼수를 전부 되돌려 달라고 할 판입니다. 폐하께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 가게까지 털어먹을 작정 아니었나요? 자기 체면 구기기 싫어서 날 보내는 것 같은데, 싫습니다.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지, 그런 일은 못합니다.”“그리고 체면 차리지 않을 거면 연 왕비께 직접 가는 게 어때요? 연 왕비가 둘의 혼례를 보장했고 헤어질 땐 무서워서 감히 부르지 못했다 해도, 다시 합치려면 연 왕비께 허락을 받으셔야죠. 왕비가 사람을 보내 해코지할까 봐 두려우세요?”“아니면 연 왕비께서 병약하기에 가문의 운명을 걸기엔 믿음이 안 가나요? 당신들이 한 더러운 일 때문에 장군부 명예가 훼손당했어요. 조상님께서 쌓으신 공로를 무너뜨린 게 이 집안사람입니다.”육씨는 시시비비를 따지더니 몸종을 불러 그들을 쫓아냈다. 그들의 변명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육씨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장군부의 경제 상황으로 단설환 조차 사 먹을 수 없었다.자리에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던 민씨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머님의 일방적인 희망이에요. 동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예요.”전북경이 그녀를 질책했다.“그 불순한 말은 무엇이오? 우리 장군부의 모든 영광은 둘째가 세운 공 때문이오. 덕분에 우리도 존경을 받았던 것이오. 송석석이 돌아오든 말든, 가족에게 어찌 이럴 수 있소?”민씨는 남편의 질책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사실 전북망이 장군이 되어 장군부에 영광을 가져다주던 그때, 하필이면 송석석이 아닌 이방을 선택한 것을 누구
그녀는 결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비루하게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이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여장군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충분히 강인하게 버틴다면 한 자리라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하지만 전북망은 그저 그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탈출 경로를 짜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번에 서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아시오? 합치면 백여 명이고, 시위만 해도 최소 예순 명이오. 내가 구해낼 수 있을 리 없잖소.”“혼자 할 필요 없으십니다, 장군님. 북명왕부가 도와줄 겁니다.” 이방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북망도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소리였다. “제가 서경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반드시 소승도 함께 데려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명왕부는 소승을 못 본체 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님은 단지 그들이 소승을 구할 때 저를 구해내면 됩니다.”전북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온몸이 서늘해졌다. “뭐라고 하였소? 무슨 수로 서경 사람들이 소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다는 거요?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작정이오?”이방은 그를 흘겨보며 비웃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를 구해 주시면 장군님과 저 사이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죽든 살든 장군님과는 아무 상관없게 될 것입니다.”“아니, 난 받아드릴 수 없소.” 전북망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없소.”“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송석석이 남아 있겠지요. 장군님은 결국 저를 저버린 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저는 장군님을 위해 진술까지 바꿨습니다. 정말 조금의 정마저도 잊
담판을 앞둔 전달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회동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대리사 역시 밤새 재판을 진행했다. 형부에서는 이방이 자백한 이후로 줄곧 전북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방이 형부에 들어온 후 이렇게까지 약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택은 담판이 끝난 후 이방이 서경 사신에게 인계될 것이며 죽음도 쉽게 맞지 못할 잔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형수도 죽기 전에는 가족을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그는 오늘 밤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물론, 그 또한 감옥에서만 허용되었다. 이택은 전북망을 감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아전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전북망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택은 밖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전북망은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 어떠한 날카로운 물건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방이 자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이방은 현재 여성 수감자용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택은 엄중한 병력으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작은 등불이 두 사람의 초췌한 얼굴을 비추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의 그 당당함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초라함, 그리고 절망과 혼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장군님을 위해 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방은 눈앞의 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의지가 꺾인 모습에 그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다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성릉관 일은 장군님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은 무사하실 것입니다.”전북망이 대답했다.“그건 사실이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소.” “하지만 장군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는 소승이 모든 일의 주동자였습니다.”“그 말은 성립되지 않소. 황제와 형부는 믿지 않을 것이오.”이방의 얼굴이 더욱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관없습니다. 서경이 이
수란석이 반사적으로 반박했다."말도 안 되오! 송석석이 아무리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우리 서경에서 제일 뛰어난 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장공주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손쉽게 제압했다지 않습니까? 서경의 고수가 권력에 눈이 멀어 스스로 무술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과 달리 송석석은 어릴 적부터 만종문에서 무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만종문이 어떤 곳인지 모르십니까?""그냥 하나의 무림 문파 아니오? 대체 뭐가 특별하단 말이오?"소란석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말했다. 비록 정영수가 송석석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눈에 선했지만, 그는 여전히 송석석의 무술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만약 정영수를 이긴 게 북명왕이었다면 그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한 문파의 여제자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양안도 여성이 그렇게 강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냉옥 장공주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어휴, 이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그들의 불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무지함은 그들의 자만에서 나온 것이었다.그들은 여성이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상국뿐만 아니라 서경에서도 삼년에 한 번만 여성을 뽑아 조정에 들이는 데, 수많은 여인들이 단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노력하고, 나태함은 한순간도 용납되지 않으며, 매일 세 시진밖에 자지 못한 채 긴장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음을 그들이 알리 만무했다.상국에만 하더라도 현재 여관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다. 그녀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현갑군의 지휘관을 맡을 수 있었겠는가?그녀는 심지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운 바도 있었다.물론 그들의 눈에는 이런 모든 것이 북명왕이 그녀를
사여묵은 그가 충동적이고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판은 쉽게 풀렸고 그들은 즉석에서 정영수를 붙잡았기에 수란석은 충분히 회왕을 의심하고 회왕이 그들과 함께 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란석은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그는 비록 충동적이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진 소경, 계속 심문하거라." 사여묵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진이에게 명령을 내린 후 왕정에게 말했다. "수 대인을 회동관으로 모시고 이 일을 장공주께 보고하거라.""예!" 왕정은 명령을 받고 수란석에게 말했다. "수 대인, 가시지요."수란석은 정영수를 한 번 보더니 손을 내밀어 소매 주머니를 정리했다. 그 안에는 황제의 성유가 들어 있었고, 정영수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정영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는 이미 버려진 졸개가 되었다. 비록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서경에서의 협상이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 떠안아야 했다.수란석은 대리사를 떠나며 손과 발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고 마음속엔 계속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로 매복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세 명만 있었던 걸까?’ 정영수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한 사람에게만 맞은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를 붙잡은 사람은 십여 명이 세 명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즉 북명왕은 미리 이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고 그저 정영수와 사사들이 싸움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수란석은 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세 명이라면 그것은 마부와 여종, 그리고 북명왕비의 조합일 텐데, 그런 조합이라면 사사들이 없다 해도 정영수를 이길 수는 없다.아니다, 마침 그때 경위가 나타났다는 건 미리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 경위들이 정영수를 붙잡은걸까?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했다.경위와 금군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중에는 무공이 뛰어난 자는 거의 없었다.
약왕당 외에 두 개의 등불이 걸려 있었다. 사여묵 일행이 말을 타고 도착했을 때 송석석은 막 시만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그녀가 나오자 수란석의 몸은 굳어졌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말 실패한 걸까?’그는 분노로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회왕이다. 분명 회왕이다. 회왕이 서경과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 아닌, 상국이 보낸 첩자가 분명했다.송석석의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상처 입은 팔은 이미 붕대를 감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분명 누군가 그녀의 집에 가서 옷을 가져온 것이다.사여묵은 즉시 말에서 내리더니 약간 흔들리는 등불 아래를 급하게 걸어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소?"송석석은 불만과 억울한 기운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팔이 떨어져 나갔을 겁니다. 정 대인은 저와 무슨 큰 원한이 있기에 사람까지 데려와 저를 해치려고 하는 겁니까?"그녀는 화를 내면서도 사여묵의 손을 꼭 잡고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였다.그 말을 들은 수란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그녀가 진짜 북명왕비가 맞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정영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그런 짓을 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꽉 잡고 몸을 돌려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대리사에 가서 확실하게 확인해 봅시다."수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북명왕이 왕비를 말에 태우자 그 옆의 여종이 능숙하게 말에 올라 기민한 동작을 보였다. 이는 평범한 여종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밤늦게 대리사에 도착했지만 대리사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잡혀 온 정영수와 다섯 명의 사사는 아직 감옥에 가두어지지 않았고 소경인 진이가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심문실에서 정영수를 본 수란석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는 온몸이 엉망이었고 머리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굵은 채찍 자국이 얼굴을 거의
정신을 차린 수란석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1층에는 몇 명의 호위 복을 입은 사람들이 계산대 근처에 서서 보고하러 온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어왔을 땐 주인장과 하인밖에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건지 궁금했다. 보고하러 온 사람은 왕정이었는데, 그는 세 명의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수란석을 보자 그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수 대인, 서경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감히 송 대감에게 암살 시도를 하다니요?"수란석은 송석석이 보이지 않자 어쩌면 이것이 덫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십여 명을 이끌고 고작 세 명을 상대하는 일이니 정영수가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정영수는 무공이 매우 높아 만약 그들이 미리 대비했다면 최소한 붙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송석석은 이미 잡혀갔고 그들은 그것을 서경에서 했다고 추측하여 이곳에서 그를 속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더욱 분노하며 사여묵을 향해 돌아서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북명왕,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연극을 꾸며서 우리를 모함하려는 겁니까? 내일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겁니까? 너무 비열하지 않습니까?"사여묵은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왕정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왕비가 다쳤다고 했소? 그럼 괜찮은 건가?""큰 상처는 나지 않았고, 팔을 다치고 지금 약왕당에서 치료 중입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는 대리사로 갈 예정입니다."사여묵은 왕비가 정말로 다쳤다는 말에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서경의 정영수가 한 짓이라고 확신하는게요?"왕정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합니다. 정영수 외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습니다. 송 대감이 몇 명을 처치했고 나머지는 모두 대리사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의 입속에는 독이 있었지만 송 대감이 모두 제거했습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음해하려 한다면 내일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왕경루는 아직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입구에는 "영업 종료"라는 글자가 적힌 양각등 두 개가 걸려 있었다.3층의 별실은 원래 차를 마시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술 한 주전자와 몇 가지 안주가 놓여 있었다.사여묵는 호위와 함께 오지 않았고 수란석도 단 한 명의 하인만 데리고 왔는데 하인은 문 앞에 서 있었다.술은 이미 절반을 마셨고 두 사람은 내일 있을 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수란석은 그를 이곳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명확했기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작전은 이미 끝났기에 반드시 잡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반면, 사여묵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일의 협상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북명왕이 아주 대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했지만 막상 수란석은 단 몇 마디만으로 그를 속일 수 있었다.그렇다고 경계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의 협상은 상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알기에 자국의 조건을 탐색하려 할 것이다.그가 웃긴다고 생각한 것은 북명왕은 마치 광대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북명왕의 오만함이 참을 수 없어 웃으며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허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황제께서 왕야에게 군권을 넘길까요? 제가 알기로는 귀국의 황제는 왕야를 두려워하시기에 다시 군을 맡길 리가 없습니다."사여묵은 담담히 대답했다."그건 상황을 보고 결정할 문제지 폐하의 뜻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상황요?" 수란석은 여전히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왕야는 군을 이끌고 나가서 과연 전세를 돌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다만...""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사여묵의 눈빛에 담긴 자신감은 수란석의 걱정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이미 선수를 친 상태에서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