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었을 땐 이미 다음날 정오였다.잠이 계속 쏟아졌지만, 궐에 들라는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머리를 빗고 단장을 마친 송석석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보주, 내 친구들은 일어났어?”“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보주는 어젯밤 송석석의 방에 있는 부드러운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씨를 지킬 수 있어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 몰랐다.“깨우지 말고 계속 자게 해. 사흘 밤낮을 자도 신경 쓰지 마라.” 사실 그녀도 내일까지 깨지 않고 자고 싶었다.보주는 그녀의 상투를 빗질해 주고 보석이 박힌 비녀를 골라 꽂았다. 얼굴에 있는 멍 자국을 보고 있자니, 보주는 마음 한편이 아팠다. “네, 아씨. 진복 아저씨한테 들었어요. 장군님과 도련님들도 전쟁에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며칠씩 잠든다고 하셨어요.”“그래.” “궐에서 보낸 사람이 태후마마의 사람이더냐, 황제폐하의 사람이더냐?”보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후마마의 사람입니다.”송석석이 의아한 듯 물어다. “황후마마?”그녀는 제 황후(齊皇後)와 왕래하지 않았다. 매산에서 돌아와 궐에 들 때면 태후에게 인사를 올리고 지나가던 길에 황후에게 인사를 올린 게 전부였다.그렇게 딱 한 번 인사를 올린 적 있는 황후였기에, 그녀는 황후의 얼굴로 자세히 몰랐다. 황후의 부친은 이부 상서(吏部尚書)이고, 제씨 가문(齊家)은 백 년 된 명문가이다. 조상들 대다수가 현신(賢臣)과 대학자(大儒)로 제황후는 규방(閨房)에서 유명했다.일찍이 당시의 태자, 지금이 황제와 혼사를 했기에 내각을 나가기 전부터 유명했었다. 다만 송석석은 그녀와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이전에 매산에 있었고, 돌아온 뒤에는 어떤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었다.그렇기에 제 황후와 친분이 없었다. 자신을 왜 궁으로 불렀는지 이유도 알 수 없었고, 궐에 들어가서 직접 대면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한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궐로 향했다.궐에 들어서자, 제 황후를 옆에서 모시던 상궁 란
송석석과 보주는 황후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황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몸종과 함께 왔사옵니다.”황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그만 일어나시오.”“황후마마, 감사하옵니다.”송석석과 보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황후는 송석석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황후는 예전에 송석석을 만난 적 있는데, 그때도 송석석이 매우 아름다워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고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그녀의 피부는 많이 상해 있었음에도 여전히 절세미인이었다.황제가 자신에게 송석석을 불러 후궁으로 들어올 생각 있는지 물어보라는 말에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송석석처럼 무술에 재능이 있으면서도, 절세미인이기도 한 여인이 궁에 들어오면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물론 신분과 지위가 황후보다 못하겠지만, 황제의 마음을 얻는 것만으로 이미 승자인 셈이다.다만 현명했던 황후는 대놓고 적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송석석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 장군은 처자의 소중함을 몰라보고 눈앞의 새로운 것에 눈이 팔려 이리 귀한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구려.”황후의 칭찬인 것 같으면서도 칭찬 같지 않은 말에 송석석은 기분이 묘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황후가 자신에게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황후가 차 한 모금을 들이키고, 손톱에 낀 금색의 호갑투(護甲套)로 찻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어루만지더니 큰 결심을 한 듯 송석석을 쳐다보았다.“그래도 명주는 명주인 법, 흙모래에 가려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명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터니.” 송석석은 자신에게 지아비를 소개해 주려는 것 같은 황후의 의미심장한 말에 불쾌했지만, 티를 내지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신녀는 지나간 일을 뒤돌아보지 않사옵니다. 사람은 앞날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 생각하옵니다. 신녀를 명주에 비유한 것은 당치 않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신녀는 그저 어릴 때부터 매산에서 무예를
장춘궁에서 나와 출궁을 하던 중, 사여묵과 송석석이 마주쳤다.술에서 덜 깬 사여묵은 어제 입고 온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전투복과 녹슨 투구를 한 채, 금옥관을 묶고 있었다. 붉은 궁문에 기댄 그에게서 익숙한 땀 냄새가 났다.나른한 눈빛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여묵에게 다가간 송석석이 손을 흔들었다.“어제 궐에 묶으셨어요?”“그래.”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차림이 예쁘구려. 부잣집 규수 같소.”송석석이 웃음을 터트렸다.“원래 부잣집 규수였습니다만.”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황후께서 궐에 들어와 후궁이 되라고 하셨소?”송석석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어찌 황후마마께서 하신 말을 알고 계신 거예요?”사여묵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어젯밤 태후마마를 만났으니 오늘 황후마마께 문안을 올리러 올 것 같았소.”“정확하셔요. 왕야님께서 이 사달이 난 내막을 알고 계시나 봅니다.” 송석석이 사여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황제 폐하께서 저를 궐에 들이시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계세요?”이리저리 알아보는 것보다야 사여묵에게 직접 묻는 편이 훨씬 신뢰가 있었다.어두운 눈빛을 한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수락했소?”송석석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답했다.“수락이라뇨? 줄곧 오라비로 여긴 폐하의 후궁이 될 수 없습니다.”사여묵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폐하와 왕야님께서 제 오라비 때문에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셨고 저도 자연스레 두 분과 놀았지요. 그때부터 두 분을 제 오라비로 여겼습니다.”그녀의 말을 듣던 사여묵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오라비?”송석석은 사여묵이 자기 대신 황제에게 마음을 전해주길 바랐다.“그렇습니다. 폐하와 왕야님은 제게 오라비 같은 존재예요.”사여묵이 다시 물었다. “폐하를 오라비로 여기는 것이오? 아니면 나도 오라비로 여기는 것이오?” “두 분 다요.”송석석이 단호하게 말했다.‘이
황제의 비웃음에 사여묵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직은 오라비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후궁이 되지 않으면 둘 사이 감정은 천천히 키울 수 있다고 믿었던 사여묵은 황제에게 인사를 건넨 자리에서 일어났다.황제는 그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오 공공을 찾았다. “오 공공!”“폐하, 찾으셨사옵니까?” 오 공공이 신전문을 열고 들어와 몸을 숙였다.“송석석이 3개월 안에 인연을 찾지 못하면 귀비로 봉한다고 전하거라.”오 공공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북명왕에게도 짐의 말을 알릴 거라. 단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마라.” 황제의 명에 오 공공이 답했다. “그리하겠사옵니다.”“가서 전하라.”황제는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말했고 오 공공이 나간 지 얼마 안 돼, 황후가 찾아왔고 황제는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말씀하시오!”황후는 상궁을 데리고 들어왔다. 상궁의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다는데 쟁반 위에는 탕약이 놓여 있었다.황후가 온화하게 말했다. “어제 과음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신첩이 직접 간을 보호하는 탕약을 다려 왔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께서 마음이 깊구려. 이리 가져 오시게.”황후는 직접 탕약을 들고 황제에게 다가가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그에게 건넸다. “폐하, 드시지요.”황제는 황후가 들고 온 그릇이 평소 좋아하던 그릇인 것을 알아차리고 탕약이 든 그릇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뒤 물었다. “송석석은 뭐라고 하든가?”황후는 란희에게 빈 그릇을 건넨 뒤, 황제의 옆에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 “신첩, 송 장군에게 후궁에 관한 말을 꺼내자 매우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혔사옵니다. 심심해할 신첩 위해 말동무가 되어 주겠답다고 하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황후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황제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더니 잠시 망설였다. “여동생이 없는 신첩은 송 장군의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들었사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국공부로 들어오자마자 오 공공이 따라 들어와 황제의 말을 전했고 송석석은 너무 놀라 입만 벙긋거렸다.‘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후궁이 되라니?’그녀는 오 공공만 남겨두고 다른 사람들을 물렸다. “오 공공, 폐하께서 이러는 이유가 있으십니까?”만약 석 달 동안 지아비를 찾지 못하면 자신의 후궁이 되라는 황제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아무도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결국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압박하고 있는 황제 때문에 그녀는 후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시간을 준 게 이상했다.“석 달 동안 아씨와 혼례를 치르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건 폐하께 맞서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실런지요?”“폐하께서 왜 내 혼사에 관여하시는 겁니까?”오 공공이 답했다. “아씨께서 폐하를 오라비로 여기시니 폐하께서도 오라비의 마음으로 동생의 혼사를 걱정하는 것입니다.”오 공공의 말에 송석석은 폐하의 미움을 받을 각오로 용감하게 말했다. “어떤 오라비가 동생이 혼례를 안 치른다고 자신의 부인으로 삼습니까?”오 공공이 한숨만 내쉬며 아무 말이 없었고 송석석은 결국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그녀와 황제는 어릴 적 같이 뛰놀았던 게 전부였다.매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고 어머니를 따라 종종 궐에 들었을 때, 황제는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매우 온화하게 대했다.‘왜 갑자기 전쟁에서 돌아온 나를 후궁으로 맞으시려는 거지? 후궁을 들이고 싶거든 폐하께서 간택을 하면 되거늘 어찌 한 번 다녀온 날 후궁으로 들이려는 걸까? 정말 내게 마음이 있다면 내가 전북망과 혼례를 하기 전에 어머니께 말해 궐에 들이는 방법도 있었어.’하필 그녀가 이혼하고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에야 후궁으로 들이려는 게 이해되지 않았을 뿐더러 황후가 그 얘기를 전하기 위해 그녀를 궐에 불렀다.후궁이 되지 않겠다는 뜻을 들은 황제는 그녀에게 석 달이라는 기한을 주며 혼례를 재촉하는
송석석은 친구들이 남강 전쟁을 도와준 것으로 충분히 고마웠고, 더는 신경 쓰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오 공공이 찾아와 전한 말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남강 전쟁에서 우리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희생 당했고, 그들의 복수하려고 난 남강 전쟁에 참가했어. 날 도와 함께 싸워준 이 은혜는 꼭 기억할게.”무림의 규칙은 원수는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은 친구인 송석석을 도와 복수를 하는 게 당연했다. 송석석이 호탕하게 말했다. “배불리 먹었으면 거리에 나가서 물건 좀 사갈래? 사문에게 내 물건 좀 가져다줘.”“폐하께서 보상을 주지 않아 은자도 없는 걸?” 몽동이가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잊으신 건 아닐까?”송석석이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 없어. 폐하께서 직접 세 개 군에 상을 내리겠다고 했어. 우린 전공을 세웠고 분명 상을 받을 거야.”“폐하께서 황금 백 냥을 줬으면 좋겠다. 10년 치 임대료를 해결할 수 있다고.”몽동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몽동이가 속한 고월파는 매산에 있지만 매산은 만종문 소유이기에 매년 만종문에게 임대료를 내야 했으나 고월파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었고 몽동이의 사부님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탓에 문파 제자들은 내공 무술을 닦는데만 열중했지 산에서 내려와 장사하지 못했다.“연지가루를 몇 개 사서 누이들과 나눌 거야.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라 내가 챙기는 수밖에 없어. 돌아갈 때 채단도 몇 개 사가야 내가 전쟁에 나갔다고 뭐라 하시지 않을 거야... 비녀도 사야지!”시만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 사부님은 전쟁에 나갔다고 비난할 분이 아니지만 그런 물건을 사서 돌아간다면 네 열 손가락을 자를 것이야.”시만자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때마침, 부 장군 장대성이 그들에게 상을 건네주러 왔다.네 사람은 황금 2백 냥을 받았고 송석석은 성을 무너뜨리는 큰 공을 세웠기에 황금 천 냥을 받았으며 정4품 장군으로 승진했지만 어떤 직책도 주지는 않았다.앞니로 황금을 살짝 깨무는 몽동이에게 시만자가 자신
김순희는 고작 이런 상금을 받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를 전쟁에 보낸 게 아니었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승진 기회를 놓친 게 이방 때문인 것도, 전북망이 이방 대신 벌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 김순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김순희는 분노에 못 이겨 밤중 기절했고 의관을 불러와 주사를 맞아 겨우 회복되었다.그러나 신의에게 약을 사기 위해선 이미 손에 쥔 돈이 없었다. 수중의 돈은 일찍이 탕진했고 차례를 치르기 위해 돈까지 빌렸다. 전북망이 상으로 받은 황금 2백 냥으로 빚은 갚은 뒤 약을 처방받는 수밖에 없었다.‘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가 고작 황금 2백 냥이라니!’ 자기가 기절했는데도 수발을 들지 않는 이방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딴 걸 집에 들일 수 있어? 부부가 군공을 얻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리 효심이 없어서야.”“어머님, 의관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전북망이 침대 곁을 지키며 그녀를 집중시켰다.“오라버니, 이방이 더럽혀졌다는 게 사실이에요?”밤새 김순희의 곁을 지킨 사람은 전소환이었다. 며칠간 마을에 이방에 관한 소문이 끝없이 돌았었다. 친구들에게 자기 새언니라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알게 된 전소환은 수치심에 죽을 것 같았다. ‘곧 혼인해야 하는데, 새언니라는 사람이 이 사달을 낸 탓에 혼삿길이 막혔어!’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의 없게 누구 이름을 불러?”“더러운 그 사람을 언니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전소환이 입술을 깨고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 둘째 오라버니가 받은 상금으로 여름옷 좀 만들어주세요. 벌써 6월이나 됐는데 입을 옷이 없어요. 작년에 송석석이 만들어준 것만 입어서 다들 비웃어요.”“그래, 사거라.” 김순희의 대답에 전북경이 화를 냈다. “둘째가 받은 상금은 모두 어머니의 약값과 장군부 지출로 써야 하는데, 옷이 웬 말이냐!”전소환은 집안에서 막내이기에 모두 그녀를 귀여워했고 꾸지람 한 번 못 들어보고 귀하게 자랐
사나운 눈빛에 깜짝 놀란 전소환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다가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이 여자가 절 때렸어요.”김순희는 사랑스러운 자기 딸이 이방에게 뺨을 맞자 참고 있었던 분노가 터졌다.“둘째야, 네 부인 단속 좀 해라.”전북망은 달려와 뺨부터 날리는 자기 부인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애한테 손을 댈 수 있소? 잘못했으면 꾸중을 하면 되지, 왜 때리시오?” 이방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때리면 안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사람을 탓해야죠.”“내가 말한 것도 아니고 바깥사람들이 그랬다는데, 그럼 다른 사람도 때리지 그래요?”전소환이 흐느끼며 말했다. “바깥사람은 때리지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화내요?”이방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건 그들의 일이고, 바깥사람이 어떻게 굴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그래도 내가 네 언니인데 단속은 해야 하지 않겠어? 아버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아주버님과 형님도 나 몰라라하고 어머님은 종일 골골 대기나 하시고, 약 살 돈도 없는데 네가 철없이 옷이나 장신구를 사달라고 하지. 적어도 난 군공을 세운 적 있는 장군인데, 네가 뭔데 내 험담을 해?” 이방의 말에 전북망과 민씨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노부인은 손가락으로 이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지 못한채 얼굴만 붉혔다.전북망은 손을 들어 이방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말 조심하시오!”이방은 자기 뺨을 감싼 채 전북망을 멍하게 쳐다보았다.“절 때리신 거예요?”전북망도 깜짝 놀라서 자기 손만 바라보았다. 그간 겪었던 수모와 가족들에게 예의없게 구는 이방의 태도에 화가 다시 한번 이방의 뺨을 때렸고 이방도 화가 나서 모퉁이에 있는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전북망의 머리 쪽으로 휘둘렀다. “어디 누가 죽는지 봅시다!”전북망은 이방이 의자를 휘두르는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몸을 돌렸고 그 의자는 그대로 전북망의 뒤에 있던 전기에게 부딪쳤다.“아버지!”전북망과 민씨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전기는 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