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장이 소사매를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비록 시만자를 안고 있다 해도 싸움에 나설 수는 있었다.그러나 뒤를 돌아보자 송석석이 채찍으로 연왕의 목을 걸어 당겨 자기 앞으로 끌어와 그의 얼굴 양쪽에 큼지막한 따귀를 몇 차례 날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래, 도둑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잡아야 하는 법이지. 저 놈을 묶어두면 최소한 빠져나갈 수는 있겠어.’그는 시만자를 안은 채 말없이 자리를 떴다. 시만자의 행동과 얼굴에 나타난 홍조로 보아 그녀가 계략에 빠진 걸 알 수 있었다. 은침을 몇 개 놓아 피를 돌게 해야만 해독이 가능할 터였다.한편 송석석은 연왕을 붙잡았지만, 홍현과 비윤은 이미 시위들에게 잡혀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날이 목살에 살짝 파고들어 피가 맺힐 정도였다.연왕도 더는 꾸미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네가 정말 능력이 있다면 나를 죽여라. 숙부를 시해했다고 하면 사여묵이 세상 사람들에게 뭐라고 변명할지 두고 보자."송석석은 채찍을 더 바짝 당기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는 듯했다.“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연왕은 목이 하도 세게 졸려 눈이 다 뒤집혀질 지경이였다. 그는 숨이 막혀 어지러움을 느껴 머리를 뒤로 젖혀 간신히 숨을 쉬려 했지만 목에 감긴 채찍이 너무 단단히 조여져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그때 측비 김씨가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북명왕비님, 왕야께서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이러십니까? 이러고도 왕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무슨 죄냐고요? 시만자를 더럽히려는 음흉한 의도를 가졌지 않습니까. 당당한 친왕이라는 자가 이런 비열한 짓을 저지르다니…… 그를 죽여도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는 것 일뿐입니다!"측비 김씨는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그건 오해입니다.”"우리 쪽 사람이 시 소저가 독에 중독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가 연왕비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여기로 데려와 해독하려 했던 겁니다. 우리 왕야께서는 청렴함으로 이름이 높으신데, 이런 식
무상은 서서히 머리가 아파왔다. 왕야가 정욕 때문에 판단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이 일이 이미 마무리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떠나기 전 왕야가 굳이 이런 일을 계획하였고, 심지어 일부 사사를 보내 이 일을 실행하게 했으니……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전부 진성에 남아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결국 시만자 한 명 때문에 모든 계획이 뒤틀려 버린 것이다.무상의 눈에 순간 살기가 스쳤다. 이 깊은 밤중에 송석석을 죽이고 시체를 묻었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었지만, 하필 두 사람이 도망쳤고, 게다가 송석석이 왕야를 협박하고 있는 탓에 일이 더욱 복잡해졌다.다행히 그는 모든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원래는 일이 다 끝난 후 시씨 가문에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이 일이 아무리 떠들썩해도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만 이제 시씨 가문과의 관계는 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송석석은 가슴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비애와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마차에 숨어있던 두 명의 현주를 보았다. 이 늙은 쓰레기같은 인간은 자신의 딸들에게조차 숨기지 않고, 바로 이곳에서 만자를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시민주는 인간 취급할 가치도 없고, 측비 김씨 또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쓰레기들이다."왕비님, 오해하지 마시지요. 시 소저는 왕야의 처제 아닙니까. 그러니 왕야께서 그런 부적절한 마음을 품으실 리가 없지요. 게다가 저희는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이는 시씨 가문과의 혼인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텐데요."측비 김씨는 계속 말했다. 그녀의 말은 하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변명을 준비해 두었다. 이를 황제 앞에 고한다 해도 고작 몇 마디 꾸지람을 듣는 것으로 끝날 것이고, 결코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오히려 송석석이 분노한 나머지 왕야를 진짜 죽여버린다면 문제가 더 커질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상과 측비 김씨는 동시에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마치 송석석이 그 사람이 시만자가 아니라고 부인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처럼 말이다. 송석석은 측비 김씨를 바라보며 말투를 바꾸어 물었다.“그런데 측비 김씨께서 하신 말씀은 좀 이상하네요. 제가 왜 당신들에게 감사해야 하죠? 그 여자가 저와 무슨 관계라도 되나요?”측비 김씨의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그…… 그렇다면 왕비께서 더더욱 왕야를 위협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 한 가족인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서로 보기 좋지 않잖습니까.”“그렇다면 정말 미안하네요. 오해였던 모양입니다.” 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연왕을 놓아주지 않고는 대신 측비 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런데 말이죠. 이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은 왜 서산구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을까요? 이 사람들이 모두 연황실 사람들인가요?”측비 김씨가 대답했다.“맞습니다. 이들은 왕야를 진성으로 호송하던 사람들입니다. 다만 연황실이 워낙 좁아 이들을 성 밖에 배치해둔 것입니다.”무상이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송석석이 말을 끊었다.“항상 성 밖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이 시만자를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들의 무공이 비범해 보이는데, 혹시 연황실의 부병들인가요? 그런데 왜 이 부병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건가요? 설마 뭔가 부끄러운 짓이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요?”측비 김씨는 말문이 막혔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송석석에게 약점을 잡힌 것이다.무상은 측비 김씨를 원망스럽게 흘겨보았고,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우선 왕야를 놓아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연왕은 목이 여러 차례 졸렸다 풀리기를 반복한 탓에 숨이 점점 막혀오며 두 눈이 흐릿해질 지경까지 되었다.“물론 놓아드려야죠.” 송석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고, 그저 차분한 눈빛으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야심한 밤에 이곳에 모여 있으면서도 여관에 묵지도 않고 역참에 묵지도 않았으며, 관도 옆이라
무상은 지금이야말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야께서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왕비님, 얼른 놓아주셔서 의원이 지혈하게 해주십시오!"그는 송석석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연왕을 놓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녀가 놓기만 하면 곧바로 사사들에게 송석석을 포위하라고 명령을 내리곤 공격할 계획이었다.그리고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녀들의 지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이들을 모두 처치하고 재빨리 떠나야만 했다.하지만 송석석은 여전히 연왕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다만, 이전보다 약간 힘을 풀어주어 숨을 쉴 수는 있게 했다."그냥 작은 상처일 뿐입니다. 단검을 뽑지만 않으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연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복부의 고통으로 그의 온몸이 떨렸다. 이 여자는 정말 망설임 없이 행동했으며 아주 잔혹했다.그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몸을 휘청거렸다. 송석석이 경고했다."서 있는 편이 좋을 좋으실 겁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단검이 더 깊이 박힐 테니, 그렇게 되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연왕이 분노에 차 외쳤다.“감히 친왕을 해치려 하다니! 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느냐!"송석석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상하군요. 이 단검이 설마 제 것이라도 된단 말입니까?""도대체 목적이 무엇이냐?"연왕은 고통으로 핏줄이 서 이미 궁지에 몰린 듯한 모습이었다. 비록 아직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감정은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송석석은 천천히 대답하며 시간을 끌었다."저는 왕야께서 이곳에 진을 치고 계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혹시 위소를 기습하시려는 겁니까?"그녀는 연왕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이번 일이 지금 당장 시만자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일지더라도, 그녀는 시만자가 해독하고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며 연왕을 단단히 붙잡아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시만자와 오사형이 돌아와 연왕을 철저히 혼내야만 이 억울한 분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여묵과 심청화, 그리고 몽동이는 북명황실의 부병들을 이끌고 관도를 따라 급히 달려와 곧바로 도착했다.횃불이 마치 대낮처럼 숲을 밝혔다. 사여묵은 비록 전투복을 입지 않았지만 크고 높은 말 위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전장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과도 같았다.그는 주변을 훑어보며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고 있었을 때, 시만자가 갑자기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뛰쳐나왔다."이 짐승 같은 놈! 죽어라!"그녀는 몸에 무기도 지니지 않고 뛰고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는 마치 맹렬한 사자처럼 연왕의 가슴을 향해 거칠게 들이받았다. 송석석은 그녀가 화를 마음껏 풀 수 있도록 일부러 비켜주며 막아서지 않았다.연왕은 두 장이나 뒤로 날아가 땅에 쓰러졌고, 입에서 피를 토했다.시만자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독이 막 풀려 기운도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분노는 사람의 잠재된 힘을 끌어내게 했다. 그녀는 몇 대를 연달아 후려쳤고, 결국 연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고 말았다."다들 죽은게냐? 얼른 가서 왕야를 구하지 않고 뭣들 하느냐!" 측비 김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자 사사들과 호위병들이 앞으로 나서려 했는데, 사여묵이 말을 몰아 시만자 앞을 막아섰고, 몽동이는 쇠몽둥이로 몸 앞을 가로막았다."어디 한 번 다가와 보시지!"북명황실의 부병들 또한 줄을 서서 검을 뽑아들고 대치했다."오해입니다, 전부 오해입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사람들을 풀어주거라!" 무상이 급히 나서며 홍현과 비윤을 풀어주라고 지시했다.두 사람의 목에는 피가 맺혀 있었지만, 다행히 피부만 스쳐 가벼운 상처만 남았다.송석석은 즉시 말했다."저희 경위는 연왕께서 밤중에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위소와 가까운 곳인데, 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사여묵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다소 차가웠다. 사여묵은 곧장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는 이번 일을 위소에 병력을 주둔
측비 김씨는 뺨을 맞아 머리가 헝클어지고 뺨이 붉게 부어올랐다. 게다가 한쪽 발도 걷어차여서 연왕 위로 넘어져 버렸다. 연왕은 고통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시만자는 그녀를 걷어찬 뒤 바로 시민주를 향해 걸어갔다.시민주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잠시만 동생아,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나는 네 언니야! 나는 널 해치려 하지 않았…… 아악!"시만자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나무쪽으로 내던졌다. 시민주는 허리가 부러진 듯한 고통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마지막으로 말해봐! 네 몸에 묻은 향기, 그거 네가 내게 뿌린 독이잖아."시만자는 그녀를 들어올리며 살기를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했다."시민주, 저 더러운 남자를 도와서 너에게 가는 이득이 무엇이냐? 설마 네가 이 왕비 자리에서 계속 앉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어리석고 악독하기도 하지."시만자는 옆에 있던 부병의 칼을 빼앗아 시민주의 가슴에 겨누었다. 살기 가득한 눈빛은 여전했다."아니야……"시민주는 겁에 질려 결국 울음을 떠뜨리고 말았다. 그녀의 비명은 진심으로 공포로 가득 찬 비명소리였기에 측비 김씨의 흐름을 망쳐 놓을 정도였다. "나는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하지만 왕야가 내게 강요했어. 그래, 측비 김씨도 강요했어.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정말로 두려웠다. 왜냐하면 시만자는 진심으로 그녀를 죽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무상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결과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연왕이 이렇게 조급해하지 않고 관도를 넘어 숲 속으로 들어가기만 했어도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랬다면 계획을 성공할 수는 있었다. 연왕의 두 아들과 두 현주는 마차 안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밤의 사건이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저 충격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그들을 연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일론 큰 소란은 일으켜도 지나치게 확산 되지는 않아야 한다. 시만자는 어느 정도 분이 풀렸지만 아직 억울함이 전부 해소되지는 않았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순방영과 경위가 먼저 이곳에 도착했다. 왕정은 금군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금군은 명령 없이는 진성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왕정은 몰래 변장을 하고 나왔다.그들은 사건의 전말을 속속히 다 알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분노한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시만자가 어떤 사람인가? 그녀는 그들의 사부이다.사부를 능욕하는 것은 부모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홍현이 비밀리에 사건의 전말과 현재 연왕과 왕비의 음모를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은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 있었지만 일단 참고 연왕을 때리지 않았다. 대신 순방영과 경위의 현갑군에게 연왕 일행을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특히, 중점은 검은 옷을 입은 사사들을 주의하라고 했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는 자들인데, 지금이 되어서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은 장기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뒤에는 격노하여 이를 악물고 연왕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시작했다."너희가 납치한 여자는 내 의동생이다! 구출되긴 했다지만 감히 그녀를 모욕하려 하다니! 이 추잡한 놈아, 내가 내 의동생의 복수를 하겠다!"그는 연왕의 몸에 직접 타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황의 경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리 두 군데를 집중적으로 가격했고, 이어 그의 치욕스러운 부위를 주먹으로 두 번 내리쳤다.이는 사실 시만자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그녀는 더럽다고 느껴 직접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장기문이 대신 나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주는 것을 보자 시만자는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지
연왕은 명예를 잃은 것도 모자라 치료도 받으러 가야 했다.그렇게 그는 진성을 떠날 때는 위풍당당했지만 돌아갈 때는 위소의 병마에 호송되어 초라하게 복귀하게 되었다.무상은 연왕이 여자를 마음에 들어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방시원은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진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사사들은 모두 꼼짝달싹할 수 없이 체포되었다. 이전에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붙잡힌 사사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태도가 매우 강경하여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었다.하지만 이번에 그들은 사사로서의 신분을 부인했다. 만약 그들이 사사임을 인정한다면 위소 근처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방시원이 군영 기습을 시도한 중대한 죄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연황실의 부병이라고 주장하며, 연왕을 호위하여 진성으로 오고 연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부병은 신분이 특별하여 진성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서산구의 별장에서 머물렀다고 해명했다.이 말은 겉으로 보기엔 일리가 있었지만, 그들의 검은 옷차림은 사여묵과 방시원에게 약점을 잡힐 구실을 제공할 수 있었다.그들을 압송하여 진성으로 돌아올 때, 송석석과 시만자는 같은 말에 올라탔다.시만자는 아까 전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두려움을 느껴 송석석에게 감사함을 전했다."석석아, 네가 제때 날 구하러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고맙게 여겨야 할 사람은 우리 오사형이지. 오사형이 널 먼저 구했거든."시만자는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네가 뛰어들어와 날 구해준 게 아니었어?""널 먼저 구해준 건 오사형이였어."그러자 시만자는 놀라 목을 길게 빼고 뒤를 살폈는데, 대열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 마리 당나귀가 보였다. 거리가 좀 멀어서 당나귀가 마치 개처럼 보일정도로 거리가 좀 멀었지만, 그 당나귀 위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올라타 있는 것 같았다.사여묵이 없는 것 같자 시만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순간 왕노오가 자신을 안고 뛰어와
황후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서리고 있었다.그녀는 후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줄은, 심지어 황제가 그 무엇보다 먼저 송석석을 감싸며 노여움을 터뜨릴 줄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 노여움도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송석석이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황제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황제가 모든 비난을 혼자 떠맡기로 한 것이다.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물 흐르듯 상황을 이용해 송석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명성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근데 왜 지금 송석석을 먼저 보호하려 하는 것인가? 만약 외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서히 제 황후의 마음을 휘감았고, 문득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황제가 송석석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제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이 남자가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 것은 지위와 권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하지만 전제 조건은, 황제가 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긴 세월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총애란 단지 황제가 패를 몇 번 더 뒤집은 것뿐이었지, 진정한 마음을 쏟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다.평소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부분 그녀가 주관했다. 그러나 오직 송석석만은 예외였다. 송석석의 이름은 황제가 직접 올렸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또 다른 이유는 송석
염선생의 걱정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황실의 하인들을 찾아가 몰래 물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미리 경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북명황실이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더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일이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제가 궁궐을 나선다는 것은, 화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수의 사람만 데리고 미복하여 민간을 방문해 민정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황실이나 훈작세가에 어떤 경사가 있더라도, 황제가 가마를 이끌고 그곳에 방문하려면 미리 몇 일 전부터 조서를 내려 황제를 맞이할 일을 준비하게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정원이나 집을 미리 수리하고, 부드러운 융단을 깔고 꽃을 심으며,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밤중에 단 몇 명만 데리고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북명왕은 아직 남강에 있었고, 북명왕비이자 사령관인 송석석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줄곧 그녀를 어서방에 불러 국사를 논의했다고 했다.과연 진짜로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서 일까?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남자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를 탓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황제가 잘못을 했다면, 모두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황제가 송석석과 어서방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황제는 후궁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틀림없이 속삭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물론 후궁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거동한 일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후궁들이 장춘궁에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 수빈과 덕비는 평소에는 후궁의 상황을 황후에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다. 보고를
서방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심청화의 말을 듣자마자 송석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겠네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뻔했습니다."염선생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심청화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연왕을 본받는다면, 사제는 아마 사청엄처럼 될 것이다.""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했을 겁니다." 염선생이 말하자 송석석이 매우 우울해하며 말했다. "그가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을텐데…... 어렸을 때 그는 둘째 형과 잘 지내며, 항상 나를 여동생처럼 대해줬고, 내가 조정에 들어간 후에도 진심으로 나를 신하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그러자 염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갑자기요? 왕비님은 남강을 되찾고 돌아왔을 때, 그가 왕비님을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나는 그가 나를 이용해 사제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그리고 그때 그녀는 송회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궁에 들이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심청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가 너에게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익을 계산해본 후 포기한 거겠지."그러고나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때 진짜로 너를 궁에 들이려 했다면, 넌 궁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느냐?"송석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곧장 짐을 싸서 매산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단순히 궁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나?""대사형,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에요. 궁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하지만 너는 그때 사제도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왜 망설임 없이 그에게 시집을 간 것이지?" 심청화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그때 이미 사제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너 자신도 그 감정을 몰랐거나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