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의의 제자들은 진성 행림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소식도 제법 빠르다. 공방과 가의의 일이 시끌벅적하게 퍼지자 의원들도 의문을 금치 못했다. 설사약으로 어찌 유산이 된단 말인가? 그러던 중 누군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홍화삼칠탕약을 그리도 먹어댔으니 유산이 안 될 리가 없지. 생명도 위태로울 판에.” 이 말은 그렇게 돌고 돌아 홍작의 귀에 들어갔다. 공방과 관련된 일이라 홍작은 이 소문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고 결국 유 의원의 제자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유 의원은 평양후부의 전용의원으로 작은 의관을 운영하며 몇몇 제자도 키우고 있었다. 거듭된 조사와 질문 끝에 홍작은 유 의원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매일 평양후부에 보내는 약에 소량의 삼칠과 홍화를 넣었는데 그 향을 숨기기 위해 용안과 붉은 대추도 넣었다고 말했다. …왕경루.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노 집사와 후부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말 속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고청락이 난리를 치지 않았다면 측부인도 이리 일찍 가지 않았을 터, 측부인은 분명 화가 나서 갔을 것이오. 후부에 들어간 뒤로 고청락 때문에 측부인은 고단하게 살았소. 그러다 보니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 죽게된 것이지. 우리 하인들까지도 가슴 아프로구나.” 그 말에 노 집사는 고개를 들고 담담히 물었다. “듣자니 측부인께서 작년에 유산을 했다지? 사실이오?” 속으로 괴로워하던 풍 집사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다시 정신을 차렸다. 때마침 송석석과 시만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풍 집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의 행했다. “왕비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송석석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풍 집사, 어서 앉거라.” 풍 집사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왕비님과 자리를 함께하겠습니까. 서서 모시겠습니다.” “앉거라. 너에게 몇 번이고 일을 알아보면서도 내가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서 앉거라.” 송석석은 먼
풍집사는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속으로 그녀가 얼마나 알고 있을지를 추측하며 혹시라도 그녀가 자기를 속이는 게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 시만자가 크게 말했다. “어려울것 없다. 증좌를 들고 바로 관청에 고하면 될 일이다. 비록 장본인은 죽었다지만 그래도 자기가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지!”“안 됩니다!” 그 말에 풍집사는 털썩 무릎을 꿀고 다급히 말했다. “이건 측실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측실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더는 측실의 영혼을 불안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왕비님,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모든 건 소인의 짓입니다. 공방을 헐뜯으라고 사람을 보낸 것 역시 소인의 짓입니다.”송석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말했다. “시만자가 수씨를 언급한 것도 아닌데 넌 뭐가 그리 급해 그녀를 언급하는 것이냐. 관청에 고하라.” 그 말에 풍집사는 제대로 놀란 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제가 어찌해야 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왕비님이 시키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소인의 목숨을 빼앗아 가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관청에 고하진 않았지만 홍작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배후에서 계략을 세운 건 수씨이고 실행에 옮긴 건 풍 집사와 수씨의 몇몇 시녀였다. 하지만 평양후 모자가 이 일을 알고 있는지, 알면서도 감싸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수씨가 이런 계획을 세운 이유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뒤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시기에 평양후가 자신에게 측실을 들이겠다고 말하면서 이미 조씨라는 여인을 정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평양후는 조씨를 서부인의 신분으로 들이겠다고 했다. 허나 서부인이란 이름만으로도 그 지위는 첩들보다 월등히 높았다.게다가 조씨를 언급할 때면 평양후는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부친이 수재고, 그녀 또한 단정하고 정숙해 집안을 맡기기에 딱이라고 했다.허나 수씨가 알아본 데 의하면 조씨에겐 약혼자가 있었지만 약혼자가 죽게 되어 여태 혼인을 하지
송석석과 시만자는 풍 집사를 데리고 평양후부에 갔다.수씨가 세상을 떠난 뒤로 노부인의 건강은 더 나빠졌고 장례식을 치른 이후로는 줄곧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송석석이 막 도착했을 때 평양후 노부인은 막 약을 먹고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었는데 전소환이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었다.전소환은 송석석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큰 충격을 받았다.송석석이 가의의 일로 풍 집사까지 데리고 온 사실에 심장이 철렁했던 것이었다.전소환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다.그녀는 이번 생에 절대 송석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증오해도 그녀는 송석석을 두려워했다.송석석의 현재 신분과 지위로 평양후부의 작은 첩 하나를 없애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은 이전에 송석석의 청을 한 차례 거절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후부가 막 장례를 치른 후이기도 하고, 가의의 일이 소진 소주방에 누를 끼쳤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여 송석석이 들어오자 노부인은 전소환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입가의 약을 닦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왕비께서는 가의 일로 오신 게로군? 가의는 그냥 내쫓아버리게. 그러면 내가 알아서 그 아이를 마을에 안치할 걸세.”노부인은 많이 여윈 상태로 눈두덩은 깊게 들어가 있었고 피부에는 누런 반점이 가득 자랐으며 눈가도 누르스름하고 푸르스름해 보이는 것이 전혀 기운이 없어 보였다.이전의 품위 있고 차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송석석이 물었다.“노부인께서는 어떠신지요?”“괜찮네. 왕비가 신경 써주니 감사할 따름이지.”노부인이 힘겹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한쪽에 있던 전소환이 손수건을 쥐고 말했다.“의원께서 노부인은 자극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병세가 더 악화될 수 있으니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송석석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풍 집사에게 말했다.“네가 직접 노부인께 말씀드릴 테냐, 아니면 내가 대신 말하랴?”풍 집사은 털썩하고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흘리
평양후부는 단 하룻밤 만에 모든 일을 철저히 조사해 냈다.조사가 끝난 뒤, 평양후부의 노부인은 평양후를 불러 자신의 계획을 전했다.“전소환을 휴서로 내치고 가의는 다시 데려오도록 하거라. 그리고 이야기꾼 몇 분을 모셔 진실을 전한 뒤 밖으로 나가 사실을 밝히게 하거라.”평양후는 속으로 이미 가의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져 있었기에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노부인의 제안에도 강하게 반대했다.“허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잘못을 덮어두는 편이 낫습니다. 과거 저는 고청락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많습니다. 겨우 그녀를 휴서로 내보내 평화를 얻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밝히는 것은 후부의 명성도 실추시키고 어머님 조카의 명성도 실추시키는 일입니다. 어머님 손주의 모친인데 이건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허니 아들은 절대 가의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부인은 그를 바라보며 속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과 끝없는 슬픔을 느꼈다.머리도 있고 눈도 있건만 아들은 머리도 돌아가지 않고 눈도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그들 같은 공작 가문에서는 후대가 무능한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아무 쓸모도 없는 코흘리개 같은 존재라면 방탕한 자식만도 못한다.노부인은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북명왕비는 이미 모든 사실을 명확히 조사했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말하지 않겠느냐? 그녀가 여기로 온 것은 아직 우리 평양후부의 체면을 세워줄 마음이 있으므로 우리에게 직접 처리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밖에 나가 이 사실을 말하면 우리 후부는 그야말로 가릴 것도 없어질 것이다. 됐다, 어차피 평양후부는 네가 주관하고 있으니 네가 직접 결정하거라. 네가 어떻게 하든 이 어미는 널 지지할 것이다.”노부인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평양후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북명왕비가 어머니 체면을 세워주려고 한다면 이 일을 덮어달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 공방이라는 것도 사실 허울에 불과하지
며칠 후, 소문은 점차 가라앉았다.인심이란 참으로 묘했다. 온갖 비난과 험담이 퍼져나간 후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소진 소주방의 존재 의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몇몇 거자들의 글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은 덕분일 것이다. 이들 글로 인해 몇몇 선비들도 점차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등과 찻집의 이야기꾼은 이렇게 말했다.‘소진 공방은 그저 버림받은 부인들에게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곳일 뿐이다. 헌데 그곳이 무슨 세상을 뒤엎거나 인륜을 어기는 대단한 곳이라도 된단 말인가? 혹시 그대들에게 이 정도의 너그러움조차 없단 말인가?’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비록 소수에 불과했지만, 대다수 사람들 역시 예전처럼 극렬히 반대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차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이러한 와중에 영안군주 사란이 소진 공방에 몸소 찾아가 공방에 들어가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회왕부와 인연을 끊고 더는 회왕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며 앞으로는 공방을 집으로 삼겠다고 밝혔다.이 결정은 그녀가 즉흥적으로 내린 것은 아니었다.공방에 처음 입주자가 없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이곳에 살고자 하는 뜻을 품고 석소사저와 라사저와 몇 차례 상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저는 이를 반대하며 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진실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방에 도리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번 일이 터진 뒤에도 그녀의 의지는 변함 없었다. 이에 석소사저는 송석석을 찾아가 이 일을 논의했고 송석석은 사란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녀의 입주를 허락했다. 다만 공방에 들어가기 전 회왕부와의 관계를 완벽하게 끊을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사실 회왕부에는 앞으로도 분명 일이 터질 것이기에 회왕과의 관계를 끊어야만 사란이 연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란은 그리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부모의 행동에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을 뿐이었다.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가의 얼굴에 점점 불쾌한 기색이 나타났다. "아이구, 내가 몇 번이나 말했소? 그만 좀 떠들어 대시오. 손마마처럼 구질구질하게 굴면 다들 싫어한다지 않았소? 내가 주인이라면 자네 같은 하인은 필요 없을 것이오!"그러자 손마마가 불쑥 나타나 반문했다. "그럼 직접 주인이 되셔서 마음에 꼭 맞는 하인을 구하십시오!""당연히 그럴 것이오. 여기서 고생하며 자네 같은 늙은 하인 얼굴 볼 바에야!"가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어서 가십시오. 옷 챙길 필요도 없겠습니다. 가면 좋은 옷이 많을 테니깐요.” 그러자 가의가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경고하는데 내 옷 건드리지 마시오! 줬다 뺐는 건 부도덕한 일이오."그러자 손마마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인색하긴, 어차피 입지 못하는 옷인데 가져가서 뭘 하시려고요? 후부의 하인도 그런 옷은 입지 않을 겁니다.” “입고 안 입고 난 반드시 가져갈 것이오.” 그러자 손마마가 말했다."알겠습니다. 내가 챙겨줄 테니까 빨리 가십시오."그러자 가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내 물건은 내가 챙길 테니 건드리지 마시오!” 그러더니 다급히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사란은 잠시 시만자를 바라보다가 시만자에게 얼른 그녀를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방 안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는데 바닥엔 심지어 진흙도 있었다. 의자에는 새 옷 한 벌이 걸려 있었는데 땀 냄새가 났고 바닥에는 신발 두 켤레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하나는 새 신발이고 또 하나는 진흙이 묻은 짚신이다.가의는 그 옷을 품에 안았다. 그 옷은 단순한 색깔로 아무런 자수나 장식이 없었지만 바느질이 매우 섬세했다.사란이 물었다. "언니, 아주 비싼 옷이오?"그러자 가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비싸긴 개뿔, 손마마가 못 쓰는 안감으로 만들어 준 옷이다. 노파가 어찌나 깍쟁인지 나한테 옷 한 벌 만들어주는 것도 아까워하더구나. 흥, 절대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그러자 사란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무랐다. “언니, 그런 말은 하지 마시
가의는 눈앞의 비통함이 가득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살길을 찾고 싶다면 들어가시오. 비록 생활은 궁핍할지 몰라도 여기선 아무도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니.”여인의 눈물은 순간 둑이 터진 강물처럼 쏟아졌다.그녀의 이름은 모종윤이었다.원래 그녀와 남편 진성은 서울에서 염색 공방을 운영하며 딸 하나를 두고 살았다.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부 사이는 원만했고 금전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나름 행복한 생활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딸을 낳을 때 대출혈을 겪으며 의원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다만 이후로는 아이를 다시 가질 수 없다는 소식에 큰 슬픔에 빠진 것이었다.그녀는 낙담했지만 진성은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딸 하나면 충분하오. 나에겐 아우가 둘이나 있으니 아우들이 대를 이어갈 것이오.”그녀는 장며느리로서, 또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두 소숙에게 각자 아내를 맞이하도록 도왔고 그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다.그 시절 두 소숙은 그녀를 존경하며 모든 일을 상의했다.그러나 1년 전, 남편과 딸이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산적을 만나 참변을 당했다.떠날 때는 생기 넘치는 두 사람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이미 부패 직전의 시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 충격에 거의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자식으로서, 며느리로서 마지막까지 봉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떨칠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것과 달리 시부모와 두 소숙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남편이 죽고 아들도 없는 그녀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그들은 염색 공방과 그녀가 모은 재산을 전부 가져갔고 결국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심지어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를 때렸다는 누명까지 씌웠다. 그 일은 관아까지 알려졌고 시부모에게는 증인이 있었으며 심지어 몸에 상처가 있었다.그녀는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하인들과 두 소숙의 아내들이 직접 증언하는 바람에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그녀는 친정으로 돌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친정
모종윤이 평자호의 세 번째 방에 들어가게 되면서 소진 소주방은 마침내 첫 번째 입주자를 맞이했다.시만자는 그녀가 자수틀 앞에 앉아 꽃을 수놓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비록 시작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첫 발을 내딛은 셈이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소진 소주방을 떠올리길 간절히 바랐다.전소환은 남편에게 이혼당한 뒤 친정으로 돌아갔다. 왕청여는 그녀를 몹시 싫어했기에 원래는 집에 들이는 것조차 꺼려했다. 하지만 전북망이 그녀를 집으로 받아들일 것을 고집하자 화가 난 왕청여는 본인의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왕청여는 친정에서 어머니에게 울며 하소연했다. 이제 전북망은 봉급도 없고 맡은 일도 소홀히 하며, 하루 종일 폐인처럼 지내니 도저히 이런 삶은 살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노부인은 이제 왕청여의 울음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녀가 하소연하며 우는 일이 너무 잦다 보니 처음엔 위로라도 했던 노부인도 이제는 무덤덤해져서 그저 내버려 둘 뿐이었다.다만 최씨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그렇게 살기 힘들면 이혼을 하지 그래? 이혼한 뒤에는 친정에 돌아오지 말고 소진 소주방에 가면 되잖아. 다만 공방에서 너를 받아줄 것 같진 않구나. 예전에 민씨가 투신했을 때 네가 한 역할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야."왕청여는 민소진의 이름을 듣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동시에 큰형수인 최씨도 두려워했다. 결국 친정에서 이틀만 머무른 뒤 할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다시 장군부로 돌아갔다.한편 최씨도 소진 소주방에 들러 모종윤을 만났다. 모종윤의 사정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던 최씨는 시만자에게 그녀를 도와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시만자가 이미 홍현을 보내 상황을 확인하도록 했다며,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있겠지만 염색 공방은 아마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최씨는 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는 시만자의 말이 사실임을 묵묵히 인정했다.모종윤의 염색 공방은 그녀와 남편이 함께 만든 것이었지만 공방은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서백부에 도착했다. 시만자의 신분을 아는 덕분에 밤늦은 시간임에도 문이 열렸다. 하지만 최씨가 병을 앓고 있는 관계로 하인은 왕준과 남희에게 이를 알리러 갔다.소식을 들은 왕준과 남희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늦은 밤에 시 소저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준이 먼저 물었다.“남자를 데려왔다고? 그 남자는 누구인가?" 문지기가 답했다."전혀 본 적이 없는 이였고, 태도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의자를 두 개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습니다. 입으로는 험한 말을 뱉으며 정말 너무한다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왕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분란을 일으키러 온 건가? 혹시 왕청여가 화를 산 사람인가?"그는 최근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누군가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면 첫 번째로 왕청여가 일을 벌인 게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아닐 겁니다." 문지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이 욕한 대상은 노부인과…… 돌아가신 선대대인 이었습니다."왕준은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기에 백작이라 불리지 못했다. 그래서 평서백부의 하인들은 그를 선대대인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왕준은 효심이 매우 깊은 아들인지라,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시만자가 데려온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가자, 내가 직접 나가서 누군지 보겠다. 평서백부에 와서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무슨 배짱을 가진 놈인가 보자!"왕준은 죽은 자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이를 욕하는 것은 성격이 비열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만이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에 차 남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나갔다.한편 왕이장이 의자를 발로 차는 소란이 있자, 다른 하인이 이를 최씨에게 보고하러 갔다. 모두가 이런 문제를 진정시킬 사람은 오직 최씨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왕준도 관직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이 대게
심청화가 급하게 그를 따라 나서서 붙잡자, 왕이장은 걸어가며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심청화는 왕이장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마음속에 무언가 괴로움이 있어도 그는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저 다른 곳으로 떠나 은둔하는 것을 선택했다."이건 우리가 추측한 것일 뿐이야.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왕이장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제 술을 마시러 갈 겁니다. 마침 지금 가을바람도 불고 날씨도 시원한데, 미인과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시만자가 나서서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가자. 내가 함께 마셔줄게."시만자도 지금이 되어서야 그가 사실 첩의 아들이 아니라 평서백부인의 친아들이며, 왕표와 왕청여와 같은 친남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왕이장은 시만자가 따라오는 것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는 시만자에게 말했다."내가 가려는 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시만자는 막무가내로 그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술값은 내가 계산해줄게."하지만 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태도가 날카롭고 신랄하게 변한 것이다."돈 있어. 따라오지 마. 정말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냐? 정말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된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자꾸만 살려준 은혜를 갚으려 해서 그랬던 거야. 너희 여자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 스스로 얼마나 귀찮은지조차 모르잖아."시만자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여자들만 귀찮아? 남자들은 안 귀찮고?"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왕이장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다 귀찮아. 똑같이 귀찮아."시만자는 그의 손을 계속 잡아끌며 마구간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말타러 가자. 남자도 여자도 보지 않으면 되잖아.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데. 바람 맞으며 말을 타면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안 간다고!"“가자니까!”시만자는 웃음을 거두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말 타러 가지 않으면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네가 나랑 같이 가야 해. 나도
염선생과 노 집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이 일이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심청화의 말에 따르면, 사부님께서 처음 조사한 바로는 왕전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했었다. 다만 몸이 상해 이미 건강이 나빠진 탓에, 진성의 많은 명의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서 결국 어느 사찰로 보냈다는 것이다.이 점은 왕전이 이 아이에게 부성애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막내아들은 대개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하지만 노 집사와 평서백부의 몇몇 노관리와 노집사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왕전은 죽은 그 아이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태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냉대했다는 것이다.그들은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지금의 왕이장이 옛날 그 당시에는 왕교여라고 불렸다. 때는 할아버지의 생신 날, 할아버지는 그를 직접 안고 생신 연회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정정하게 걸으실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일 이후, 왕교여가 할아버지를 피곤하게 했다는 이유로 왕전은 그를 끌어내 손바닥을 열 대나 맞는 벌을 내렸다.이 일은 다른 이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하인들 중 일부가 목격했다고 한다.또 다른 예로, 할아버지가 왕교여를 데리고 사냥을 갔을 때 흰 여우를 잡아 여우 가죽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가죽은 셋째인 왕청여가 입고 있었다.그 외에도 왕전이 왕교여에게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는 하인들 사이에서 여러 번 회자되었다. 노 집사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들도 이를 보았다고 말했다.당시 분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저택에서 생활했다. 왕전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조차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또한 왕교여의 병을 치료할 때 당시 의원은 모두 그의 할아버지가 초빙한 명의들이었다. 그렇게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약재가 바뀌었는데, 왕전은 약을 달이는 하녀나 하인들에게
하지만 그녀는 순간 집사의 보고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매각한 점포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으며, 그 가격 또한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세보다 10~20% 더 높은 가격이었다.그녀는 집안을 관리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점포 거래를 여러 번 해보았다. 거래는 대개 시세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한두 건 정도 시세를 약간 웃도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 매각한 모든 점포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거래되니 매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자신이 점포를 매각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급히 은자가 필요한 줄로 여겨 일부러 높은 가격에 매입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집사에게 매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계약서에 써 있는 매수인의 이름이 고효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북명황실에 고효풍이라는 이름의 집사가 있느냐?" 최씨가 집사에게 물었다."들어본 적 없습니다.""그럼 이 매수인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그녀의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세보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 매수하다니, 혹시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거래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공식 문서를 통해 등기되었고, 또한 증인이 보증한 합법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어 보였다."됐다.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남은 점포는 더 이상 팔지 마라. 어머니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그녀거 집사에게 말했다.점포를 매각하는 일은 그녀가 노부인 몰래 진행한 것으로, 심지어 왕준이나 남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안일은 관리하지 않으니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이를 알게 되더라도 나중에 이유를 설명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이 일은 그녀만을 위해 진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수인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송석석이 그녀를
홍이의 말에 왕청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대답했다.“하지만… 내 서방님은 출세를 못하잖아. 가서 계급도 달지 못한 병사를 한다는데.. 그럼 내 체면은 어떡하라고? 난 내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거야. 그때 당시 송석석이 내 서방과 이혼할 땐 어명까지 내려졌잖아. 그런데 난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거냐고.”홍이는 이 모든 게 왕청여가 자초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각자 다른 선택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북명 왕비님보다 못한 사람도 있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한 건 아닙니다.”왕청여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왜 예전에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냐?”“제가 얘기를 해도 아가씨께서는 제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문발을 내린 홍이가 마부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이만 출발합시다.”마차 안에 멍하니 앉아있던 왕청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녀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불안했다.‘송석석은 한 번 이혼을 하고도 외모가 수려하고 나라에 큰 공까지 세운 서방을 만날 수 있는데 난 왜 안 되는 걸까?’이런 생각에 왕청여는 홍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홍이야, 설마 나중에 전북망 그 사람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일은 절대 없겠지?”홍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아가씨,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그분은 나중에 다시 장군님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평생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결국 장군부까지 잃을 수도 있겠죠.”“그 사람 능력으로 다시 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산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예물마저 다 탕진하고 결국 장군부까지 빼앗겨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도 있어. 그럼 내 인생은 정말 망가지는 거야. 내
시만자는 오늘 계속 방씨 가문에 있었다. 오수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약왕당의 청작을 불러서 방씨 가문으로 같이 간 것이다.저녁이 될 때까지 방씨 가문에 있었던 시만자는 방씨 가문 사람들을 통해 오늘 편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천허의 부인은 이 사실을 절대 오수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도 모자라 낙태까지 하다니. 방시원은 이제 더 이상 왕청여의 서방이 아니지만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기에 방시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외부에 방시원이 잠자리에 약해서 왕청여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남발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전장에 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이와 반대로 왕청여가 태생부터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박한 여자라는 비판도 무성했으며 노세진을 뻔뻔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씨 가문에서 착한 마음으로 노세진을 거둬줬는데 노세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노세진과 왕청여는 천벌 받아 마땅한 나쁜 놈들이고 방시원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엮였다는 결론이 내렸다. 반면, 전북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씨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전북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왕청여와 이혼한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밤, 함께 황실로 돌아온 시만자와 송석석은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얘기해주다가 이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전에는 구경 삼아 지켜보던 일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시만자와 송석석도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한편, 현이는 오늘 밤에도 무술을 연습하러 찾아왔고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현이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약왕당으로 가서 홍작을 모셔왔다. 다행히 이마의 상처가 깊지 않았고 신속적으로 지혈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고열을 앓고 있었던 최씨는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화까지 낸 탓에 새까만 피를 왈칵 토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최씨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석석이 아무리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의원님, 상황은 좀 어떤가요?”홍작이 최씨에게 진맥 검사를 마치자 송석석이 물었고 홍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인께서 고열을 며칠이나 앓으셨는데 조금 전에 등을 확인해보니 폐에 문제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화병 때문에 간에도 어혈이 생겼습니다. 전에 복용하시던 약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극약 처방으로 간과 폐를 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은 몸조리를 통해 천천히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과로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말을 하던 홍작은 송석석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간에 어혈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늘 화병이 잠재되어 있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에 어떤 일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쌓아 두면 나중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은 최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왕표가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안 사람들까지 엮이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일단 약을 좀 복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홍작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송석석은 밖으로 나와 순방영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이내 순방영 사람들까지 떠났고 송석석은 돌아선 순간, 기둥에 가까스로 기댄 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왕청여를 발견하게 되었다.왕청여는 다음 순간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으로 송석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북명 왕비님, 제가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