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윤이 평자호의 세 번째 방에 들어가게 되면서 소진 소주방은 마침내 첫 번째 입주자를 맞이했다.시만자는 그녀가 자수틀 앞에 앉아 꽃을 수놓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비록 시작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첫 발을 내딛은 셈이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소진 소주방을 떠올리길 간절히 바랐다.전소환은 남편에게 이혼당한 뒤 친정으로 돌아갔다. 왕청여는 그녀를 몹시 싫어했기에 원래는 집에 들이는 것조차 꺼려했다. 하지만 전북망이 그녀를 집으로 받아들일 것을 고집하자 화가 난 왕청여는 본인의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왕청여는 친정에서 어머니에게 울며 하소연했다. 이제 전북망은 봉급도 없고 맡은 일도 소홀히 하며, 하루 종일 폐인처럼 지내니 도저히 이런 삶은 살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노부인은 이제 왕청여의 울음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녀가 하소연하며 우는 일이 너무 잦다 보니 처음엔 위로라도 했던 노부인도 이제는 무덤덤해져서 그저 내버려 둘 뿐이었다.다만 최씨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그렇게 살기 힘들면 이혼을 하지 그래? 이혼한 뒤에는 친정에 돌아오지 말고 소진 소주방에 가면 되잖아. 다만 공방에서 너를 받아줄 것 같진 않구나. 예전에 민씨가 투신했을 때 네가 한 역할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야."왕청여는 민소진의 이름을 듣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동시에 큰형수인 최씨도 두려워했다. 결국 친정에서 이틀만 머무른 뒤 할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다시 장군부로 돌아갔다.한편 최씨도 소진 소주방에 들러 모종윤을 만났다. 모종윤의 사정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던 최씨는 시만자에게 그녀를 도와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시만자가 이미 홍현을 보내 상황을 확인하도록 했다며,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있겠지만 염색 공방은 아마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최씨는 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는 시만자의 말이 사실임을 묵묵히 인정했다.모종윤의 염색 공방은 그녀와 남편이 함께 만든 것이었지만 공방은
송석석 덕분에 대리사는 매우 바빠졌다. 송석석은 앞뒤로 열심히 뛰며 직접 사여묵에게 음식을 보내 그의 편의를 세심히 챙겼다.사건의 증거는 사실 이미 전부 확보된 상태였다. 대리사에서는 이를 확인하고 용의자들을 체포해 심문해야 했다.이런 일들은 본래 사여묵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관련된 인물들 뒤에는 모두 막강한 세력들이 있었기에 송석석이 원망을 사기보다는 자신이 원망을 받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스스로 나섰다.그냥 이 세가들이 자신을 미워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가장 신이 난 사람은 오진이었다. 최근 그는 무예 훈련에 더욱 힘을 쏟았다. 이번 일이 제대로 정리되면 순방영이 진성을 수호하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너무 빨리 기뻐했다. 대리사의 철저한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순방영과 경위의 직무가 중복된다며 순방영을 철폐하라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송석석도 순방영과 경위의 직무를 새로이 구분할 것을 요청하는 상주문을 올렸다.숙청제는 이 문제를 조정에서 즉각 허락하지 않고 조례가 끝난 뒤 송석석을 어서방으로 불러 물었다.“어제 태후께 문안을 드리러 갔더니 태후께서 여학에 대해 물으시더군.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송석석이 답했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여학의 보수 공사는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책상과 의자, 붓과 먹, 종이와 벼루를 준비해 두었으며 학자 또한 물색 중에 있습니다.”“태후께서 여학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니 그 일에 더 신경을 쓰도록 하라. 순방영의 문제는 당분간 미뤄두도록 하라.”송석석은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놀라지 않고 격식있게 대답했다.“예, 알겠습니다.”조정 회의에서 황제가 허락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이 일이 성사되기 어렵겠다고 직감했다.그녀는 숙청제에게 순방영을 철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짐작했다. 일부 병력을 줄여 경위로 보내고 남은 병력 중 불필요한 인원은 해산시키며, 쓸 만한 인원은 현철위로 재배치할 생각인 듯했다.숙청제는 그녀가
이방이 서경의 사신에게 끌려간 이후로 그는 거의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이방은 서경 사람들에게 온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잘리고, 살점이 한 조각씩 도려내어져 피가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집어삼켰다.대낮에 근무를 할 때조차도 줄곧 이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때는 도와달라 외쳤고, 어떤 때는 그를 배신자라고 욕하며, 또 어떤 때는 비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그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이방에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가지의 생각이 계속 충돌하면서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지고 완전히 지쳐버렸다.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사령관이라는 자리가 사실상 허울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그에게 아무 임무도 주지 않으니 매일 그냥 허둥지둥 거리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집에서도 평안하지 않았다. 왕청여는 소란을 피웠고, 전소환은 그에게 후부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라고 부추겼기 때문이다.어디에서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답답함과 고통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그런 친구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그와 왕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사실 이방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익각에서 온 소식에 따르면 냉옥 장공주는 아직도 녹분성에 갇혀 있었다.수란석은 녹분성으로 돌아간 뒤 사령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즉각적인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지만 병력을 주둔시키며 퇴각하지도 않았다.그 역시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저울질하며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국과의 회담을 거친 뒤 그는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공격을 하자니 식량과 무기가 부족하고, 물러서려니 황제의 밀지가 있어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처지였다.그는 직접적으로 공격할지 후퇴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냉옥 장공주에게 무장들과의 협상을 맡겼다. 때가 되면 그 흐름에 맞춰 행동하
사여묵은 약간 짜증이 났다. 전북망이 도무지 눈치가 없어서였지, 질투 때문은 아니었다.송석석이 방금 어서방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나온 뒤였는데 전북망이 그런 자리에서 그녀를 붙잡고 질문을 하다니, 정말 생각 없는 행동이었다. 어서방에는 궁인들뿐만 아니라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는 대신들도 많이 오가는 곳이었다.송석석이 말했다."상대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가 다시 이방에 대해 물어볼 줄은 몰라서 조금 의외였을 뿐이에요.""신경 쓰지 마시오." 사여묵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제 서우를 데리러 가자."마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노을의 잔광이 마차 커튼 틈새로 스며들어 두 사람의 얼굴에 따스한 금빛을 드리웠다.서원에 도착하자 장대성이 마차를 세우고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그가 서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서우는 이제 훨씬 차분해졌다. 서원에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땐 고모와 고모부가 자신을 데리러 오면 신나서 깡충깡충 뛰어 달려 나왔지만 이제는 단정하게 걸어 나왔다. 비록 표정은 잔뜩 신이나 있었지만 말이다.서우는 마차에 올라 사여묵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린 후에야 고모의 품에 안겨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고모! 오늘 선생님이 저를 칭찬해 주셨어요. 제가 쓴 글이 훌륭하대요!"송석석은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오, 우리 서우가 이제 글도 쓰는구나?""네!"서우는 신난 얼굴로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송석석에게 내밀었다."고모, 보세요. 이게 제가 쓴 글이에요!"송석석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되지 않았기에 글씨에 역동적인 멋은 없었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반듯하고 힘이 느껴졌다. "글씨가 참 예쁘구나.” 그녀는 서우를 칭찬한 뒤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글의 표현은 다소 유치했지만 단어 선택과 문장 구성이 분명하고 주제가 뚜렷했다. 서우가 똑똑하고 생각이 명확한 아이임을 엿볼 수 있었다.송
대황자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빛이 모두 변했다.서우는 고모 옆에 서 있다가 조금 당황한 듯 옷자락을 꼬집었다. 사실 그에게서는 약간의 냄새가 나긴 했다. 매번 집에 돌아오면 단신의가 지어준 약물로 목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우 자신은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어서 더 이상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의 마음속에 있던 열등감이 다시금 서서히 올라왔다. 거지였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냄새나니까 꺼져!”송석석은 한 손으로는 서우의 손을 꼭 쥐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고모는 이 약초 향이 좋은데?"서우는 고모의 따뜻한 눈빛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렇다. 남들이 한두 마디 한다고 이렇게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그는 고모에게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제 황후는 태후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나 대황자를 끌어오며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하라고 가르쳤느냐? 당장 송국공께 사과드려라!”대황자는 턱을 쭉 내밀며 말했다."저는 거지한테 사과하기 싫어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황자는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느꼈다.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엉덩이를 두 차례 강하게 얻어맞았다. 그는 아파서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어서 눈물 닦지 못할까!”사여묵이 그를 안아 들고 매섭게 소리쳤다.대황자가 아무리 거만하게 횡포를 부려봤자 겨우 일곱 살에 불과했다. 어린 아이가 사여묵의 이런 엄한 태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대황자는 곧 울음을 꾹 삼켰다. 훌쩍이며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제 황후를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제 황후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얼굴 또한 굳었다."사과해. 안 그러면 황숙이 네 아바마마께 이 일을 모두 말씀드릴 거야."그녀는 말하면서 태후를 흘끗 바라보았다. 태후는 천천히 차를 들며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대황자는 마지못해 서우에게 사과했다.서우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를 위로했지만 대황자는 이를
어전에서 숙청제가 오 대반의 보고를 들었을 때 숙청제는 얼굴이 새파랗게 될 정도로 화가 났고 분노에 차 외쳤다."이 못난 놈 같으니라고!" 그러자 오 대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폐하, 태후께서 혜 태비에게 명하시어 왕야와 왕비를 궁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태후께서 송국공만 남겨 함께 식사하시고, 궁문이 닫힐 때쯤 내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숙청제가 명을 내리며 말했다."직접 어선방에 가서 태후께서 좋아하시는 요리를 몇 가지 준비하게 하라. 내가 태후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갈 것이다.""예!"숙청제는 이어 명령을 덧붙였다."또 장춘궁에 가서 내 명을 전하라. 전북망에게 대황자를 데리고 태묘에 가서 무릎 꿇고 참배하게 하라. 그리고 전북망에게 송가가 치른 모든 전투에 대해 그에게 가르치게 하라. 내가 나중에 질문할 것이다."오 대반은 이 명령이 아주 좋다고 여겼다 특히나 대황자를 전북망이 데리고 가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오 대반이 물러난 후, 숙청제는 눈앞에 쌓인 상소문들을 보며 갑자기 모든 의욕을 잃었다.최근 2년 동안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태자를 책봉해달라고 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역대 왕조에서도 태자 책봉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었다. 조정 앞과 궁궐 뒤, 공신과 외척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복잡한 구도를 형성해왔다.하지만 이 조정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태자를 세운다면 장자와 적자를 우선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대황자는 장자이자 적자로서 신분의 존귀함이 다른 황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태자 책봉에 있어 의심할 여지없이 대황자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황후와 제씨 가문도 여러 차례 그의 반응을 살피며 의사를 떠보았지만 숙청제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황자는 능력이나 성품 모두 태자로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상국을 그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숙청제는 한없이 불안해졌다.다행히도 그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태
숙청제가 죄책감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모든 것이 소자의 잘못입니다."그러자 태후가 이어서 말했다."내가 본래는 황제와 송씨 가문 자제들 간의 친분을 이야기하고 함께했던 지난날을 들려주며, 황제께서 황제라는 신분을 잠시 잊고 단지 어른으로서 서우를 대하도록 말씀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 계속해서 일깨워야만 기억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 감정 자체가 이미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제께 직접 통첩을 드립니다. 반드시 그 아이를 잘 대우하고 아무도 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십시오."태후의 말은 숙청제로 하여금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그는 이 순간에서야 자신에게도 한때 절친한 벗들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당시 송씨 가문과의 교류는 온전히 순수한 의도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 우정만큼은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다.송씨 가문의 부자가 희생되었을 당시, 그는 막 황위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그의 마음은 무엇보다 전조를 안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며 다시 공을 세워 나라를 재건하는 데 더 많이 쏠려 있었다.그는 남강을 되찾는 공로를 매우 중시했기에 송씨 가문의 부자들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슬픔이 아니라 극심한 걱정이었다. 이후 동생을 남강으로 파견했고 매 순간 승리의 소식이 전해지기만을 기다렸다.그 기다림 속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송씨 가문의 부자들이 희생된 슬픔을 외면했다. 그렇게 마침내 대승을 거두자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만이 가득했다.태후의 말은 숙청제를 깊은 회상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 추억 속에 잠긴 그는 죄책감과 슬픔에 조금씩 잠식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숙청제는 몸을 굽히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소자가 약속드리옵니다. 오늘과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소자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감히 서우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태후는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황제가 약속을 반드시
황후의 말에 숙청제는 용안이 일그러지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찻잔을 거칠게 휘둘러 황후 앞에 내던졌다.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황후는 그 소리에 놀라서 얼어붙었고 순간 멍해졌다.하지만 그녀는 황제가 지나치게 과민하다고 여겼다."폐하, 그저 어린 아이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일 뿐이지 않습니까. 서우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크게 화를 내시는지요?"숙청제는 차갑게 대답했다."황후가 그 아이가 장차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로 남길 원한다면, 그 뜻을 따르겠소."제 황후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 이런 말이 외부로 전해진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이를 마음에 새길까 두렵습니다."숙청제는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그것이야말로 좋지 않소? 어차피 황후는 그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으니, 장차 그는 한가한 왕자로 남아 동생들의 그늘 아래서나 밥을 빌어먹게 될 것이오."제 황후는 그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의 기절할 뻔한 그녀는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휩싸였다.오랜 시간 편안한 궁중 생활에 익숙해진 황후는 황권이라는 것이 본래 가시밭길임을 잊고 있었다. 단지 신분만으로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에 그 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그 아이가 큰 능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게 된다 해도, 이는 모두 제 탓입니다. 오늘부터 그 아이를 엄격히 지도하여 넓은 마음과 올바른 품성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냉정하게 말했다."빈말을 듣고 싶지 않소. 일년을 기한으로 하겠소. 그때까지도 그 아이가 여전히 경중을 모른 채 경솔하게 행동하고 학업에 뒤처지며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는 고려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을 것이오."황후는 숙청제가 일년의 기한을 주겠다고 하자 안도의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
한편, 크게 놀란 진왕은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송석석이 찾아갔을 때, 진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송석석에게 자객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송석석이 진왕에게 자객이 도망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사실 진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자객이 도망쳤다고 진작 얘기했지만 진왕은 믿지 않았다. 이제 송석석에게서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이다.송석석은 진왕에게 몸조리 잘 하라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이덕회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병부 상서인 이덕회는 지금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겪어 보기도 했고 또한 왕비와 현갑군을 믿었기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한편, 매산 출신 몇 명은 한데 모여 전에 성릉관에서 만났던 검은 복장 차림의 무리들을 의심하고 있었다.어쩌면 그자들이 바로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이 의심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바로 시만자였다. 그는 그 무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수상했고 비밀 경로를 통해 계획적으로 도망친 거라고 확신했다.더군다나 조금 전 자객들도 전부 검은색 옷차림이었기에, 비록 머릿수가 조금 차이 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일부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성릉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동했던 건 아마 우리한테 손을 쓰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성릉관에서 우리를 죽이면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한 거야.”시만자는 분석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송석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자들은 아니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조금 전 자객들은 그자들보다 무술 실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자들은 성릉관에서도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그렇게 보면 네 의심이 성립되지 않다는 거지. 그자들은 성릉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