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이 조금 있네요. 상처에도 염증이 생긴 것 같고. 어제보다 좀 심각해졌어요.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군요.”차우미의 진료를 마친 뒤, 나준우가 한 말이었다.그녀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척추가 살짝 삐끗한데다 손의 상처에 염증까지 생겼다.안색도 어제에 비해 좋지 않았다. 미열 때문에 안색은 초췌했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어젯밤 새벽부터 그녀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여기저기 아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그녀의 옆을 밤새 지켰던 온이샘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당직의사를 호출했다.의사가 해열제와 진통제를 주사한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나준우가 찾아왔다.차우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며칠이나 더 있어야 하나요?”부모님은 이틀 뒤에 퇴원한다고 알고 있었다.이 일로 부모님이 더 속상해하실까 봐 걱정됐다.“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를 봐야 해요. 며칠이라고 지금 장담할 수는 없어요.”차우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녀는 병원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고 자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싫었다.그녀의 마음을 아는 온이샘이 물었다.“열은 주사 맞으면 내리는 거지? 염증은 오늘 안에 좋아질 수 있어?”나준우는 창백한 차우미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열은 아마 오후가 되면 알아서 내릴 거야. 하지만 염증은 나도 장담할 수 없어. 게다가 나도 오늘 청주로 돌아가야 해서 주치의가 바뀔 거야.”“그래도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이쪽으로 잘하는 선생님으로 추천했거든요.”차우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 때문에 먼길 오시고, 고생 많았어요.”나준우는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고 나상준이 떠올랐다. 어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상준에 비해 차우미는 아주 덤덤한 모습이었다.그의 추측이 맞다면 나상준은 차우미를 신경 쓰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 전혀 나상준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상처가 심각해진 것을 보면 어제 분명
임상희가 주혜민이 탄 휠체어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고 있었다.입구에서 마주친 세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누었다.주혜민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임상희도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준우 삼촌이 왜 여기 있어?”나준우의 시선이 환자복을 입고 있는 주혜민에게 닿았다.“어쩌다 다쳤어요?”주혜민을 살피던 그는 갑자기 차우미가 떠오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주혜민은 갑자기 바뀐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별거 아니에요. 부주의로 넘어졌어요.”“부주의는 무슨! 그 여자가 밀쳐서 다친 거잖아!”옆에 있던 임상희가 정색하며 소리쳤다.그 말을 듣고 나준우는 임상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너 머리는 왜….”임상희가 손짓 몸짓 다 해가며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던 찰나, 나준우의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준우 삼촌은 몰랐어?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병원에서 죽다가 살아났는데 상준 삼촌이 아무 말도 안 해줬어?”나준우도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나상준이 여태 말을 안 해줘서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주혜민은 그 모습을 보고 아까 불쾌했던 심정이 조금은 나아졌다.나상준은 임상희가 다친 사실도 그에게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만약 주혜민이 다친 사실만 숨겼더라면 서운했겠지만 아예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니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주혜민은 임상희가 당한 사건을 간략해서 설명한 뒤,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준우 씨는 왜 여기 있어요?”설명을 다 들은 나준우는 생각에 잠겼다.주혜민은 임상희의 사고를 얘기할 때 차우미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았지만 셋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수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그는 덤덤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일 때문에 잠시 왔다가 오늘 돌아가는 길이에요.”“지금요?”주혜민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맞아요. 여기 일정이 끝났으니까 돌아가야죠. 그런데 어디를 다쳤어요? 의사는 뭐래요?”
나준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난 일정이 빠듯해서 일단 가볼게요. 푹 쉬고 어디 아픈 곳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요.”주혜민은 나준우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약간 서운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조심히 가요.”“갈게, 상희야.”“응, 삼촌. 나중에 같이 밥 먹자.”대화를 마무리한 나준우는 그 길로 병원을 나섰다.주혜민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있던 미소를 지웠다.“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봐야 정상 아니야?”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어제 나준우가 차우미의 병실에 들어간 걸 봤다던 임상희의 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질투심이 치솟았다.그녀가 다치고 임상희까지 죽을 뻔했는데 나준우는 그들을 한 번도 보러 오지 않고 오히려 차우미의 병실을 방문했으니 어찌 화가 안 날 수 있겠는가?그래서 나준우가 나오는지 보려고 일부러 산책을 하는 척하면서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그렇게 나준우와 마주쳤고 조금 전 있었던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이다.잠깐의 대화로 그녀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주혜민은 나준우가 차우미를 일부러 진료 보려고 이 병원에 온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 차우미가 다친 것에 비하면 그 당시 임상희의 상태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었다.‘정말 다른 일정 때문에 여기 왔었던 거네.’그가 왜 차우미를 보러 갔는지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어제의 목적을 이미 이루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그녀는 더 이상 차우미가 나상준과 자신 사이에 끼어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만약 주제를 모르고 자꾸 얼쩡거린다면….주혜민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나준우가 떠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상준도 더 이상 병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주혜민과 임상희도 그 뒤로 찾아오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안심하고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온이샘은 줄곧 병실을 떠나지 않고 그녀를 지켰다.하선주와 차동수는 설득 끝에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매일 맛있는 반찬을 가지고 병원
일정을 마친 문은혜가 임상희를 보러 병원에 방문한 것이었다.마침 오늘 임상희와 주혜민도 퇴원하는 날이었다.퇴원 절차를 마무리하고 세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문은혜는 임상희에게 돌아가서 어디 밖에 나다니지 말고 외할머니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주의를 주었다.임상희를 다치게 한 사람은 이미 절차대로 경찰에 잡혀갔고 곧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 임상희는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며 투덜거렸다.그녀는 상대를 감옥에 보내는 것 이상을 원했다.문은혜는 딸을 걱정해서 이번 일을 그냥 덮자고 설득했다.임상희는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엄마의 말을 무시로 일관했다.문은혜는 무슨 말을 해도 딸이 시큰둥한 얼굴로 있자 짜증이 치밀어서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듣다가 짜증이 난 임상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그만 좀 해! 짜증나!”문은혜는 순간 당황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주혜민은 옆에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모녀의 대화가 거의 싸움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남의 집안 일은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임상희는 원래 고집이 세고 반발심이 강한 아이였다.하지만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놓고 문은혜를 바라보았다.문은혜는 상심한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혜민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는 임상희에게 말했다.“상희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한테 소리지르는 건 좀 아니지. 그건 잘못된 거야.”임상희는 울먹이고 있는 엄마를 힐끗 보고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니까 누가 옆에서 자꾸 잔소리하래? 시끄러워서 짜증이 난단 말이야!”문은혜가 더 뭐라고 하려 했지만 주혜민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결국 문은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어뜨렸다.주혜민이 말했다.“언니도 이제 그만해.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청주 가면 푹 쉬어.”문은혜는 아직도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딸을 바라보며 속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할 말은 많은데 결국
주혜민과 문은혜는 차우미의 옆에서 짐을 들어주고 있는 온이샘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들은 왜 온이샘이 차우미와 함께 있는지, 그들이 무슨 관계인지 무척 궁금했다.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일가족의 짐을 거의 다 들고 있는 온이샘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문은혜는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온이샘이 이런 곳에서 차우미와 함께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주혜민의 시선도 온이샘과 차우미를 향하고 있었다.하선주는 주혜민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가 문이 열리자 먼저 차우미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차우미의 어깨를 부딪히고 휙 나가버렸다.차우미는 저도 모르게 온이샘 쪽으로 상체가 기울어졌고 온이샘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인상을 찌푸리며 나간 사람을 노려보았다.임상희였다.고의성이 다분한 행동이었다.온이샘은 싸늘한 표정을 하고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어깨와 손을 동시에 부딪힌 차우미는 통증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하지만 비명을 지르는 대신, 밀치고 지나간 임상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임상희는 뭐에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로비까지 걸어갔다.문은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차우미와 하선주에게 다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아침에 애랑 다툼이 좀 있었는데 철이 없어서 그래요.”하선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을 바라보다가 문은혜의 사과를 듣자 어쩔 수 없이 표정을 풀었다.“괜찮아요. 어서 애나 따라가 봐요.”화가 났지만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사과를 하는데 안 받아줄 수도 없었다.“정말 죄송합니다.”재차 사과한 문은혜는 다급히 임상희를 쫓아갔다.“상희야, 같이 가.”주혜민은 그들을 따라가는 대신, 차우미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는 온이샘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확신이 선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그런 거였구나. 이제 안심이네.’주혜민은 그제야 밝은 표정으로 임상희 모녀를 쫓아갔다. 하선주가 떠나는 그들을 보며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재수가 없으려니까 쟤만
문은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주혜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언니, 아까 그 사람 기억해?”문은혜가 멈칫하며 물었다.“가온그룹 후계자 말이야?”주혜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문은혜는 잠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더니 말했다.“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해외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국내로 들어온 줄은 몰랐어.”잠시 숨을 고른 문은혜가 말했다.“게다가 차우미랑 같이 있을 줄은 몰랐지. 둘은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걸까?”아까 두 사람 모습을 봤을 때 온이샘이 차우미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것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그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나상준과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신변에 벌써 남자가 생겼을 줄은 몰랐다.주혜민은 차우미를 살뜰히 챙기던 온이샘의 모습과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던 차우미의 태도를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인연이라는 건 참 복잡하고 묘한 거라니까.”문은혜가 말했다.“그래. 너랑 상준이도 마찬가지잖아.”주혜민이 말했다.“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아.”청주 공항.멕시코에서 출발했던 비행기가 서서히 청주 공항에 착륙했다.평소처럼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나상준이 VIP통로를 나오고 있었다.“차우미 씨는 이미 퇴원하셔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주혜민 씨와 임상희 씨도 오늘 퇴원해서 공항으로 갔고요. 문 박사님께서도 이번에 돌아오셔서 같이 청주로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그래.”나상준은 앞만 보고 걸으며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티켓은 예매했지?”“당연하죠. 열한 시 십분 비행기입니다.”나상준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열 시 정각이었다.그들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출구로 향했다.그 시각, 안평.낡은 아파트로 돌아온 뒤, 하선주는 주방에서 바쁘게 돌아치더니 한 시간이 지나 풍성한 밥상을 차렸다.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점심 식사를 끝냈다.식사가 끝난 뒤, 하선주는 온이샘이랑 시내를 둘러보고 오라고 딸을
“전화 좀 받고 올게.”온이샘이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차우미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녀는 낡은 건물이 줄지은 거리를 조금 앞장서서 걸었다. 오랜 시간 비바람을 견딘 건물은 색이 바래고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길가 양쪽에 벚나무가 줄지어 있었는데 나무에도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가지가 풍성하게 뻗어나간 나무는 해마다 벚꽃철이 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이곳은 길가 노점에서 각종 생필품과 지역 특산물을 팔고 있었다. 점주 대부분이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었으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이었다.돌아온 뒤로 이렇게 느긋하게 거리를 걸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은 3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여전히 그녀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이곳이 주는 느낌은 그녀에게 조금 새로웠다. 아마 세월이 흘러 그녀가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차우미는 구석구석을 자세히 둘러보며 이곳의 모든 것을 차분하게 느꼈다.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눈 안에 들어온 그림자가 그녀의 상념을 멈추게 했다.운동복 차림에 가방을 멘 십대 소년이 입에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소년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남자 아이의 멱살을 잡더니 그 소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는 소년은 차우미도 아는 얼굴이었다.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소년은 외삼촌네 아들 준혁이었다.3년 만에 처음 보는 아이는 키가 훤칠하게 컸고 이목구비도 더 입체적으로 자랐다.그녀가 결혼식을 올리던 해에 소년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식에 참석하지는 못했다.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바로는 아이는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원하던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들었다.3년이 지났으니 이제 수능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반항심이 가득한 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어렸을 때부터 준혁이는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비록 외삼촌 내외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부부
“그래. 넌 돌아가서 푹 쉬고 의사가 당부했던 말 잊지 말고 지켜. 시간 나면 또 보러 올게.”“그럴 필요 없어. 나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 했는데 자꾸 그러면 내가 미안해지잖아.”차우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나중에 시간 나면 내가 한번 선배 보러 갈게.”살짝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온이샘은 자신을 보러 온다는 그녀의 말에 심장이 철렁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나를 보러 온다고 말한 건가?’그가 오매불망 꿈에서 그리던 상황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황했다.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정말이야?”차우미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어서 가서 일 봐. 서흔 씨 기다리겠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로 연락해.”“그래.”온이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대화를 끝내고 차우미가 뒤를 돌아봤을 때, 소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온이샘은 차우미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부모님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인자한 부모님은 지역 특산물을 잔뜩 싸서 그의 차에 넣어주었다.온이샘이 극구 사양하자 차우미가 말했다.“선배, 받아 둬. 두고 간식처럼 먹으면 맛있어. 부모님께도 가져다드려.”그녀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안 받을 수는 없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다음에는 우리 고향 특산물 가져올 테니까 먹어봐. 엄마는 강원도 분이신데 강원도 음식도 맛있어.”차우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선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먼저 가볼게요. 두 분도 어서 들어가세요.”차에 오른 온이샘은 하선주 부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웃는 얼굴로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배웅해 주었다. 그는 천천히 시동을 걸고 아쉬운 마음으로 아파트를 벗어났다.백미러로 점점 작아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우미도 천천히 나를 받아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