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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내가 살릴 수 있어

홀에는 오직 한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다정은 잠자코 서서 자리를 떠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금테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바로 어제 교통사고가 났던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기품이 고귀하고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의 특유한 카리스마가 몸에 넘쳐흘렀던 그 사람…… 그때 맡았던 피비린내와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안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남자일 것이다.

보기만 해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자와 시비가 붙었으니, 이치대로라면 빨리 도망가는 게 맞다.

그러나 의술을 익힌 자로서, 눈앞에 목숨이 시급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모른 척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다정이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안에서 구남준의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것저것 따질 틈도 없이 다정은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에 들어갔다.

문에 들어서니, 진한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깨끗한 병상에 정교한 얼굴의 남자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두 볼은 비정상적인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다정은 한눈에, 그가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열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듯.

한쪽의 구남준과 소영은 어쩔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

어젯밤에 신의약방에 온 후 여준재는 줄곧 여기에 묵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멀쩡했다.

그런데 방금 구남준이 여준재를 불렀는데 미동이 없었다. 혼수상태였다. 숨결이 미약하고 이마는 손을 델만큼 뜨거웠다.

당황한 구남준이 바로 신수 어른을 부르러 나간 것이었다.

소영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구 비서님, 지금 신수 어르신이 안 계십니다. 도련님의 상황이 급박하니 먼저 병원으로 모시는 건 어떨까요?”

“그럴 수밖에요…….”

구남준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누르고자 할 때, 얼핏 빨간 그림자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여준재에게 손을 뻗으려 하는 것이 보였다.

구남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그는 경계하듯 한 걸음 성큼 다가가 빨간 그림자의 손목을 잡아채며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바로 고다정이었다.

다정은 구비서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멍했다가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구남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악의 없어요. 다만 환자의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구남준은 방금 홀에 있던 사람이 생각났다. 다정의 손을 놓고 훑어보며 경계하듯 물었다.

“누구세요? 아는 얼굴은 아닌 거 같은데……!”

“저는…….”

다정은 갑자기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구남준은 말 더듬는 다정을 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잠시 보고 있자니…… 이 여자, 왠지 낯이 익었다.

머릿속에서 어제의 교통사고가 번뜩 떠올랐다.

“아, 생각났어요, 어제 도로에서 갑자기 정차한 그 도로 킬러……, 맞죠?”

‘하필 아픈 곳을 건드리다니!’

다정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저예요.”

구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정을 쳐다보았다.

“근데 왜 여기 있어요? 혹시 의술 알아요? 새로 온 의사입니까?”

옆에 있던 소영은 얼른 다가와 해명했다

“아니에요, 구 비서님. 이분은 고다정 씨라고…… 우리 약국의 약초 납품 업체 사장입니다. 우리 단골이고요, 신수 어르신과도 잘 아는 사이입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아니에요.”

간단한 소개를 마친 소영은 다정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다정 씨, 저기 여 도련님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의술 공부했어요? 전에 그런 얘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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