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에는 오직 한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다정은 잠자코 서서 자리를 떠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금테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바로 어제 교통사고가 났던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기품이 고귀하고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의 특유한 카리스마가 몸에 넘쳐흘렀던 그 사람…… 그때 맡았던 피비린내와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안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남자일 것이다.보기만 해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자와 시비가 붙었으니, 이치대로라면 빨리 도망가는 게 맞다.그러나 의술을 익힌 자로서, 눈앞에 목숨이 시급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모른 척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다정이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안에서 구남준의 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이것저것 따질 틈도 없이 다정은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에 들어갔다.문에 들어서니, 진한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깨끗한 병상에 정교한 얼굴의 남자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두 볼은 비정상적인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다정은 한눈에, 그가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열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듯.한쪽의 구남준과 소영은 어쩔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어젯밤에 신의약방에 온 후 여준재는 줄곧 여기에 묵고 있었다.그전까지는 멀쩡했다.그런데 방금 구남준이 여준재를 불렀는데 미동이 없었다. 혼수상태였다. 숨결이 미약하고 이마는 손을 델만큼 뜨거웠다.당황한 구남준이 바로 신수 어른을 부르러 나간 것이었다.소영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구 비서님, 지금 신수 어르신이 안 계십니다. 도련님의 상황이 급박하니 먼저 병원으로 모시는 건 어떨까요?”“그럴 수밖에요…….”구남준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누르고자 할 때, 얼핏 빨간 그림자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여준재에게 손을 뻗으려
고다정은 난처한 듯 답했다.“묻는 사람이 없어서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의술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진맥 정도는 조금 할 줄 알아요.”의술을 안다고 하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할까 봐 얼버무려 얘기했다.의술이 뛰어난 스승님 밑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일반적인 병을 진찰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구남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 사람을 믿어야 할지 고민 중인 듯했다.“조금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이죠? 고다정 씨, 저는 도련님 목숨으로 장난칠 수는 없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다정은 구비서의 말을 끊었다.“지금 병원으로 옮기기엔 이미 늦었어요. 지금 이분은 기운이 약해져서 언제든지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병원까지 꽤 멀어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고 해도 차로 30분은 족히 걸릴걸요. 그 난리를 피울 동안, 이분은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 같습니다만…….”다정의 말을 들은 소영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일리가 있긴 한데,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고다정 씨, 그럼, 도련님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한 듯합니다.”구남준은 아무 말없이 다정만 쳐다보았다. 눈빛에 그가 원하는 답이 뭔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다정은 한숨을 내쉬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의학에는 한계가 있어요. 병을 100%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 하물며 이분은 지금 목숨이 반밖에 남지 않았어요. 최선을 다하겠다는 얘기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세요.”구남준은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정은 이곳의 단골이다. 소영도 그녀를 여러 번 봤었다.’‘성격이 침착하고 연구개발한 약초도 효과가 뛰어나, 신수 어르신도 평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의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 그냥 속는 셈 치고 맡겨볼 수밖에…….’“구 비서님, 다정 씨에게 한번 맡겨 봅시다. 차도가 있다면 좋고…… 만약 안 된다면 병원에 갈 수밖에요…….”
다정은 머릿속의 생각들을 다 말로 하지 않았다. 굳이 얘기해도 별 소용없으니,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진맥하던 손을 거두고 다정은 고개를 돌려 소영에게 물었다.“소영 씨, 혹시 침 있어요? 침술용 그런 침이요.”소영은 눈이 맑아지며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네. 있어요! 그 말인즉 치료 가능하다는 얘기인가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답했다.“네.”그녀의 의술이 미덥지 않았던 구남준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고다정 씨, 정말 가능한 거죠?”다정은 별말 없이 구 비서를 한 번 쳐다보았다.‘이 사람 벌써 몇 번 확인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이 참 많군.’다정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제가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대체 제가 치료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쪽이 치료하는 겁니까?”구남준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위층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소영은 침이 들어있는 작은 케이스를 하나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이즈의 다양한 침이 촘촘히 꽂혀 있었다.“저 혼자 힘으로는 안 돼요.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말만 하세요.” 구남준도 캐묻지 않았다.“그래요, 소영 씨, 수고스럽지만 이 침들 전부 소독해 줘요.”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말했다.“비서님, 이분의 옷을 다 벗겨 주세요. 아…… 속옷은 빼고요…….”“네?” 소독하러 가려던 소영이 놀라서 다정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소독하러 갔다.구남준은 꼼짝하지 않고 놀란 눈빛으로 다정을 바라보았다.‘어찌 이 여자 앞에서 도련님의 옷을 반쯤 다 벗긴단 말인가? 모양 빠지게…….’‘그리고 침술 하는데 바지를 벗기는 게 어딨어? 기껏해야 상의 정도지…….’구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다정의 초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바지 안 벗겨도 돼요, 대신 바짓가랑이는 걷어줘요, 말 안 따랐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쪽 책임인 겁니다…….”다정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쳐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쉽게 깨어난다고?’‘도련님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침 몇 대 놓고 10분 기다리면 깨어날 수 있다고……?’다정의 확신에 찬 말투에 구남준과 소영은 의아했지만, 별말 없이 초조히 기다렸다.구남준은 몇 번이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여준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저 여자 말을 대체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르겠네…….’두 사람의 긴장한 모습과 달리, 다정은 평온했다.다정은 침대 위의 남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말도 안 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병색으로 창백했지만, 이목구비는 조각같이 정교하고 또렷했다.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서글서글한 눈매에 총기가 넘치는 반짝거리는 눈, 단정하게 생긴 오뚝한 코, 복사꽃 같은 입술.비록 몸 정면은 보이지 않지만, 탄탄한 근육이 크고 건장한 몸에 보기 좋게 분포돼 있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남성미가 넘쳤다.‘어떻게 이렇게 잘생겼지?’힐끗 훑어보았을 뿐인데 다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찌릿했다. 이렇게 쳐다보는 것이 예의 아니라고 자책하며 시선을 돌려 소영 옆으로 가서 기다렸다.구남준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10분 지났어요.”다정은 여재준에게 다가가 침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천천히 침착하게.마지막 침을 몸에서 뽑자, 침대 위의 남자는 긴 속눈썹을 떨며 손을 움직였다.깨어났다.잔뜩 긴장했던 구남준이 총총걸음으로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도련님, 기분이 어떠십니까?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소영은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여준재의 몸을 가려주었다.열이 아직 내리지 않은 여준재의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봤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입술을 오므리고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지만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는 기력이 없는 나지막한 소리로 구남준에게 물었다.“나…… 이거, 왜 그래?”구남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여준재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얼른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입을
소영은 다정의 분부대로 약을 한 시간 동안 달여서 여준재에게 먹였다.그는 여전히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다. 깨어났을 때는 의식조차 혼미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몇 시간이 지나고,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구남준은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약을 한 그릇 마셨을 뿐인데, 준재 도련님의 열이 내리고 얼굴색도 많이 돌아왔다. 정신도 멀쩡한 것이, 방금 전의 그 허약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렇게 침 몇 곳 놓고, 약 한 그릇 마셨다고 이게 가능하다니.’여준재의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도련님, 다행이에요. 드디어 깨어나셨군요!”소영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방금까지도 다정의 의술을 의심했었는데.그러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도련님, 정말 어디 불편한 곳 없습니까?”준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아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지병때문에 늘 가슴이 답답해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그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도 가벼웠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전에 지병이 재발했을 때 여러 차례 신수 어른께 도움을 청했었다. 그때 먹었던 약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약효가 뛰어나진 않았다.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물었다.“이번에 먹은 약은 뭐야? 효과가 아주 좋네.”.“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암튼 처방전은 소영 씨에게 있습니다.”사방을 둘러보니 신수 어른이 보이지 않자, 한마디 덧붙였다.“신수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어르신이 나에게 처방해 주셨지?”구남준은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대답했다.“어르신은 지금 약방에 안 계십니다. 잠깐 외출하셨는데…… 곧 돌아오실 겁니다. 도련님, 이번에는 신수 어르신이 치료해 준 것이 아닙니다. 약도 어르신께서 처방한 것이 아니고요…….”여준재는 얼떨떨해졌다. 신수 어른보다 의술이 더 높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누가 처방한 거야?”“그게…….” 구남준은 다정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들어 그녀
“어르신이 나가신지 얼마 안 되어서 도련님의 상황이 악화되었어요. 혼수상태에 빠져서 열도 나고…… 아주 심각했었습니다. 어르신께는 전화도 안 받으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마침 어르신을 찾아뵈러 온 고다정 씨가 도와주었어요. 다정 씨 덕분에 도련님이 이렇게 빨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정 씨 의술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글쎄, 침을 몇 곳 놓으니까, 도련님이 이렇게 일어나셨지 뭐예요…….”신수 노인이 나타나니, 소영은 마음속에 걸려 있던 큰 돌이 내려간 듯 안심되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설명하였다.“어르신, 사실이에요.”구남준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다정이가?” 신수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네. 맞아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신수 노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더해졌다.“다정이가 의술을 할 줄 안다고?”“네, 알고말고요. 게다가 의술도 아주 대단하던 데요. 저도 오늘에야 알았어요……. 어르신이 다정 씨랑 친하니까…… 진작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소영의 말을 듣고 신수 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다정과는 그래도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그녀가 약재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만 알 뿐, 의술을 할 줄 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다정이 그 녀석,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구먼.’‘그런데 생명이 위독한 준재를 다정이가 구하다니…….’“녀석아, 손 좀 내놔, 내가 맥을 짚어 보마.”여준재의 맥박에 손을 얹고 한참이나 진맥하던 신수 노인이 갑자기 혀를 내둘렀다.준재를 치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맥이 이렇게 평온한 것은 처음이었다.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심각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원기 왕성해질 수 있지?“소영아, 다정이가 침을 놓을 때…… 무슨 혈을 찔렀더냐?”신수 노인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다정이가 정말 이 녀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큰 경사일 것이다.소영은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다정은 어리둥절했다. 신수 어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은 처음 봤다.다정은 한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신수 어른은 친절하게 그녀를 휴게실로 이끌고 갔다.“햇볕이 이렇게 뜨거운데…… 자, 다정아, 우리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자꾸나!”다정은 의아했다. ‘오늘의 신수 어르신은 좀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휴게실에 이미 준비해 둔 차를 보고 그녀는 약간 놀랐다.신수 노인은 의술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분이었다.다정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손을 꼭 잡은 신수 노인을 보며 다소 어색해했다.“네, 어르신,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자신이 좀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신수 어른은 웃으며 다정의 손을 놓았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내가 흥분했구나.”애써 멋쩍게 웃으며 자기 손을 움츠렸다.뒤를 힐끗 보고서야 다정은 소영, 조각남과 그리고 그의 비서인 구남준이 모두 같은 쪽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다정의 시선은 중간에 서 있는 조각남 여준재에게 고정되었다. 정신은 아주 맑아 보였다. 보아하니 자신의 구급치료 효과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녀는 당연히 그가 왜 이렇게 빨리 회복되었는지 알고 있었다.표정으로는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신수 노인을 보고, 다정은 신수 노인이 이렇게 흥분한 연유를 알 것 같았다.신수 어른이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다정아, 내가 오늘 널 여기로 부른 것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야. 소영이한테 들었어……. 준재는 심맥이 손상되고, 외상과 내상이 모두 심각한 상태에다 지병까지 재발해서……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심각했었지……. 그런데 네가 침을 놔주고 처방한 약을 먹었더니 이렇듯 혈기도 돌고 살아났잖아. 정말 구사일생인 셈이지. 어떻게 준재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구나……. 그리고, 너의 처방전에 어떤 약이 들어있었는지도 알고 싶어……. 빙설련, 이 약재는 시장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약재인데, 어떻게 구했니……
화제가 자신한테로 돌려지자, 준재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세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역시 구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요, 보수는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러고 보면 우린 다정 씨랑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죠…….”신수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왜? 아는 사이냐?”구남준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셈이죠?”남준은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올려 세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며칠 전에 저와 도련님이 차를 타고 가다 다정 씨와 도로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접촉 사고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다정 씨가 이런 대단한 분인 줄 몰랐습니다.”이 말을 꺼낸 뒤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다.구남준은 다정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다정 씨, 그 교통사고에 관해서는, 다정 씨에게 어떠한 배상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다정 씨를 우리 도련님의 개인 주치의로 모시고 싶습니다. 비용은 다정씨가 원하시는 데로 드리겠습니다.”준재는 침묵했다. 그렇게 진행하라는 의미였다.다정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생각지도 못했다.너무 갑작스러워서 여러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결정해야 한다.다정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의술이 대단하다니요, 과찬입니다. 제가 무슨……. 만약 고수라면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고 있지는 않겠죠……?”다정의 이 말은 겸손이자, 자조였다.자신이 지금 이렇게 초라한데, 무슨 고담준론을 펼치겠는가?다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산다’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완곡한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다정 씨, 혹시 돈 문제 때문입니까? 고민할 필요 없이 비용을 제시해 보세요.”준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정은 처음으로 준재의 목소리를 들었다.그의 목소리는 매우 듣기 좋았다. 톤은 낮고 분위기 있으며, 마치 파도의 속삭임처럼 사람을 매료시켰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의 비주얼과도 너무 찰떡궁합이었다.다정은 마음속으로 그의 신분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