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은 그 문신을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 매의 눈의 도안은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한……, 자신의 신세를 망친 그 남자, 5년 동안 때때로 꿈속에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는, 그 남자의 가슴에도 이와 같은 문신이 있었다.‘뭔가…… 너무 닮았다.’감았던 눈을 크게 뜨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하윤과 하준도 아빠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몇 년 동안 다정 또한 아이들의 생부를 찾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어떠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설마 이 사람이 바로 그 남자, 아이들의 아빠일까?’‘아닐 것이다. 문신 종류가 수천수만 가지이니, 유사할 수도 있다.’‘진짜 똑같은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걸까?’다정은 그 문신이 기억 속의 그 모습인지 다시 한번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았다.그 사이 준재는 이미 검은 셔츠의 단추를 전부 채웠다.검은 셔츠를 넥라인 위까지 잠그니, 늘씬한 몸매를 더욱 매혹적으로 돋보이게 해 주었다. 차도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가슴의 문신도 가려졌다. 문신 모양을 확인할 길이 없어지자, 다정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의 시선을 인식한 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 구남준의 절박한 부름에 말을 삼켰다.“도련님, 도련님을 치료할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습니다.”구남준은 요 몇 해 동안 준재와 함께 세계 각국의 명의를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헛물켰다.모처럼 그의 병세에 도움이 될 사람을 찾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신수 노인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어떤 말도 더 이상 할 수 없었기에 난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다정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확고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정에게로 옮겨갔다.“좋습니다, 네, 제가 치료할게요. 단, 저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모두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약속?” 준재도 멈칫했다. 그녀가 갑
신수 노인과 다정은 한쪽 방에 가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 남준과 준재는 떠나지 않고 휴게실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대략 30분이 지나서야 그들은 돌아왔다.“할아버지, 어때요?” 준재가 물었다.확신에 찬 눈빛을 한 신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치료 계획은 내가 봤어. 먼저 한 달 동안 해보자고.”의학상의 일은 준재 등은 모르니, 전문적인 약리 지식으로 설명해 줘도 이해 못 할 것을 뻔히 알고, 신수 노인이 간단하게 얘기한 것이었다.신수 노인이 말하면서,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준재는 보았다.준재는 그의 눈빛에 깃든 아리송함이 궁금했다.준재의 의문 가득한 눈빛은 다정에게로 투사되었다.‘둘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신수 할아버지는 왜 이런 표정을 짓지?’그러나 신수 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그 치료계획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이제 쌍방이 모두 만족하는 이상적 협의를 진행할 차례다.“고다정 씨, 이쪽으로 앉으세요. 치료에 관한 이야기 좀 합시다.”구남준은 안경테를 짚으며, 성숙하고 진중한 공적인 분위기로 돌입했다.“저는 별다른 요구사항은 없어요. 치료에 잘 협조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치료 비용과 치료 시간도 다 정해지자, 다정은 자기 생각을 밝혔다.구남준은 생각하다가 치료 장소의 문제를 언급했다.“다정 씨는 앞으로 도련님 자택에 와서 치료할 것인가요? 아니면…….”만약 다정이 집까지 치료하러 와준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준재를 곁눈질해 보다가 그의 예리한 매의 눈과 마주했다.“여준재 씨, 저는 집에 돌봐야 할 가족도 있고…… 또 우리 약원도 가꿔야 하니, 제가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제가 가기는 쉽지 않겠어요. 번거롭겠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 치료하면 안 될까요?”구남준과 여준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준재처럼 대단한 인물이, 고작 이런 여자한테 끌려다니다니…….하지만 준재의 지병만 고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치료받으러 가는 것뿐인데 안 될 게 뭐가
고다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다정은 고 씨 가문에서 쫓겨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엘리베이터도 없는 이런 낡고 허름한 곳에서 두 아이와 할머니를 모시고,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니.이런 삶은 자신의 삶과는 천양지차이다!매일 쥐꼬리만 한 수입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다정의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해 왔다. 몸에는 퀴퀴한 약초 냄새가 배어 있고, 누렇게 뜬 얼굴로 산발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그런데 자기가 상상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세월의 지혜와 삶에 대한 애착은 다정을 더욱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애들을 키우면서 모성의 감성적 색까지 입혀지니 더욱 우아해 보였다.몇 년 전에 고 씨 집안에서 큰 아씨로의 삶을 살고 있을 때보다 더 빛이 났다.고다빈은 겉으로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마음 속에선 쓰디쓴 구역질이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예전에도 다정에게 늘 밀렸는데, 지금도 그녀를 이길 수 없다니?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다정을 자극했다.“언니, 오늘 나는 아빠 말씀 전하러 왔어. 요 몇 년간 사이가 틀어졌지만, 아빠도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그때 일어난 일들, 모두 언니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아빠는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언니를 집에 초대하라고 했어.”고다빈은 청첩장을 꺼내 다정에게 건네주고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은은한 골드 배경에 용과 봉황이 춤추고 있는 청첩장에 찍힌 은색의 큰 글씨가 유독 눈에 거슬렸다.‘고 씨 집안사람들이 하는 짓들은 참으로 어이없다.’ ‘그때는 그렇게 나를 모질게 내치더니…… 5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그들이 하는 이런 행동들이 진짜 가족이라면 과연 할 수 있는 일인지 곱씹어 보았다.다정은 청첩장을 받곤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비웃으며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던져버렸다.“나는 고 씨 집안과 진작에 연을 끊었어. 우리 엄마 딸은 나 하나뿐이라고……. 너같은 동생을 둔 적도 없어. 너도 더 이상 나를 언니라
다정이 입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말숙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강말숙은 머리에 두꺼운 흰색 붕대를 감고, 손에는 링거 꽂고 있었다. 누워만 있는 게 답답한지 일어나 앉고 싶은 모양이었다.다정은 급히 뛰어가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등 뒤에 베개를 받쳐주었다.“할머니,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다정이 친절하게 물었다.강말숙은 이마를 짚으며 기운 없는 목소리도 말했다.“다른 건 괜찮고 머리만 조금 아프네. 의사 선생님이 방금 오셨었는데 큰 문제는 없고, 상처 난 곳에 약만 잘 바르면 된대.”다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할머니 옆의 의자에 앉았다.“다정아, 이 링거 다 맞으면 우리 집에 가자. 겨우 이 정도 갖고 병원에 입원할 필요 없어. 돈 많이 들어.”강말숙은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맡에 거의 다 맞은 링거병을 보며 말했다.“할머니, 오늘 이미 계산 끝냈어요. 지금 퇴원하면 환불도 안 해줘요. 아직 상태가 불안정하니 병원에서 하루 지켜보고 별일 없으면, 내일 퇴원해요.”다정은 손을 내밀어 할머니를 꼬옥 안았다. 다정은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미리 입원 수속을 끝냈다.돈보다 할머니가 중요했다.강말숙은 다정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베개에 기댔다.강말숙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다정의 손을 잡고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다정아, 요 몇 년 동안 아픈 나를 돌본다고 고생이 많다. 이 할미가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다정은 얼른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아니에요, 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언제 저를 고생시켰다고요. 제가 고 씨 집안에게 쫓겨나 오갈 데가 없을 때, 할머니가 저를 안 받아 주셨으면, 저는 없었을 거예요. 어떻게 저한테 지금 같은 날이 있었겠어요?”고 씨 집안일을 언급하자, 강말숙은 오늘 고다빈의 말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다정아, 고 씨 집안 행사에…… 갈 생각이니?”다정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곧 다시 별일 없는 듯 활짝 웃었다.“왜
“다정이 그년, 집에서 쫓겨나 할망구랑 같이 살더니, 교양도 없어졌나 봐.”심여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화제를 돌렸다.“여보, 우리는 원래 빈이 결혼식을 빌어 다정의 혼사도 정하려고 했잖아요. 지금 걔 하는 거 보니 쉽게 집으로 오지 않을 것 같네요.”고경영은 다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돌아오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라도 데려와야지. 방법을 찾아 볼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분명 때가 되면 임 씨 집안 쪽에서 틀림없이 신부를 내놓으라 할 텐데. 그럼 그땐 어디에 가서 신부를 구해오겠어? 다정이가 그런 스캔들에 휘말린 마당에 임 씨 집안과 결혼하는 것만으로 은혜를 베푸는 영광으로 알아야지! 이걸 거절한다면 그야말로 멍청한 거지…….”임 씨 집안과의 혼인 이야말로 그들이 이번에 다정을 부른 진정한 목적이었다.임 씨 집안은 임진시에서 명망이 있는 집안으로 재산도 많다. 대대로 유명 인사와 인재를 배출했다.하지만 이번 세대에는 안타깝게도 놀고먹는 개차반 2세인 부잣집 도련님이 하나 있는데, 그는 임 씨 가문 최대의 골칫거리였다.이 인간은 평판이 굉장히 나빴다.얼마 전 운전 중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불구가 되었다. 그런데 다들 동정하기는커녕 인과응보라고 고소해하는 사람이 많았다.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지만, 불구자인데다 성질머리도 더러워서 있는 집 자제와 결혼시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이런 개차반과 어느 여자가 결혼하기를 원하겠는가?조건이 좋은 여자들은 당연히 이런 놈과 만날 리 없고, 조건이 좋지 않은 여자들은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꼭 그놈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임 씨 집안은 도처에서 집안이 맞는 아가씨를 찾고 있다.조건을 아주 넓게 놓아 재혼이라도 상관없고, 또 두둑이 한몫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마침 고 씨네 그룹은 두 달 전 사업 때문에 적자가 커졌다. 그 적자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자금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다.고경영이 한창 자금 때
임은미는 다정의 가장 친한 친구로,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한, 둘도 없는 절친이다.요 몇 년 동안 임은미는 다정을 많이 도왔다. 그녀는 두 아이의 의모이다.강말숙은 은미의 이름을 듣자마자 안심하고 더 이상 딴말하지 않았다.임은미는 다정의 집 열쇠를 갖고 있다. 다정이 급한 사정이 있을 때마다 종종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다정은 병원으로 가 밤새 강말숙의 옆을 지켰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강말숙의 컨디션도 점차 회복되었다.오히려 다정은 강말숙이 간밤에 뭔 일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되어 수시로 살피느라 한숨도 못 잤다.이튿날 아침, 회진하던 의사가 와서 강말숙에게 검사 결과를 말해 주었다.다행히 큰 문제없이 여러 가지 지표가 정상이어서 퇴원해도 괜찮다고 의사가 얘기했다.건강 상의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둘 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정은 간단히 물건을 정리하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주택단지의 입구에 막 이르렀는데 한쪽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수다를 떨며 무언가를 수군거리고 있었다. 다정도 얼핏 몇 마디 들었는데, 무슨 고급 외제차니, 좋은 사람 같지 않다느니, 빚 독촉하러 왔다느니 등 얘기가 오갔다. 다정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과 상관없는 일.다정은 외할머니를 부축하여 자신의 아파트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2층까지 올라갔는데 이때 누군가가 허둥지둥 달려와 그녀들의 앞을 막아섰다.고개 들어보니 소박한 꽃무늬 상의에 초록색 바지,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뒤로 대충 묶은 4, 50대의 아줌마였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마음씨 따뜻한 이웃집 장 씨 아주머니였다. 장 씨 아주머니는 매우 초조해 보였다.“다정아, 큰일 났어. 너희 집에 일 났어. 십여 분 전에 검정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너희 집에 들이닥쳤는데, 딱 보니 깡패 놈들이 빚 독촉하러 온 거 같더라! 너 사채 빌렸니? 애기들이랑 은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여준재,금테 안경테를 쓰고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 구남준이었다.그들은 방을 둘러보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꾸며졌다.작은 방에는 아늑한 느낌이 가득했다.임은미의 말을 듣고, 그제야 시선이 임은미 뒤에 있는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임은미는 그들의 시선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그녀는 두 아이를 껴안고 뒤로 물러났다.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긴장한 나머지 TV에서 보도된 아동 유괴에 관한 사건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어떡하지? 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손 대면 어떻게 대처해야지?’지금의 상황에선 그녀도 취약계층이었다.둘째 하윤은 작은 몸을 완전히 임은미의 뒤에 웅크리고 겁에 질려 감히 그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겁이 없는 하준은 오히려 앞에 있는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동자에는 경계심을 느끼고 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준재는 턱을 괴고, 이 두 아이를 지켜보았다. 왠지 재미있었다.지난번 교통사고 때도 다정 곁에 있던 두 아이를 봤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일 것으로 짐작했다.겨우 4, 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했다.붉은 입술에 가지런한 이, 부드러운 머리카락까지 너무 귀여웠다. 둘은 비슷한 스타일의 패밀리룩을 입고 있었는데, 거실의 아늑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여자아이는 똘망똘망하니 귀엽게 생겼다. 촉촉하고 맑은 큰 눈망울은 호수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임은미 뒤에 웅크리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다.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남자아이는 미간에 귀여운 느낌 대신 총기와 똘똘함이 더했다.준재가 두 꼬맹이를 훑어보고 있을 때 하준도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잘생긴 아저씨다.’하준은 이 남자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적대심 같은 게 없었다. 반대로 이 아저씨에 대해 이상하게도 친근감이 느껴졌다.준재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들 앞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하준을 쳐다보며 물었다.“고다정 씨는 너
다정의 안색이 변했다. 이 어이없는 상황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임은미는 다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금 전의 일을 설명했다“다정아, 방금 내가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글쎄 이 사람들이 들이닥쳤어…….”그러고는 다정의 귓가에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만약 이 사람들이 막 나온다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하준과 하윤도 다정의 손가락을 잡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녀에게 용기를 주려는 것 같았다.웃기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그녀는, 일단 아이들을 다독였다.“엄마는 괜찮아, 겁내지 마.”“은미야, 괜찮아,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다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여준재에게 향했다. 말투에는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오려면 사전에 얘기해야죠. 당신들 모습 좀 봐요. 우리 가족들이 놀랐잖아요.”구남준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고다정 씨, 가족을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오늘 정말 상황이 급박해서 예고도 없이 방문했습니다.”임은미는 사태의 전개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뭐야?”그녀는 다정의 옆구리를 손으로 쿡쿡 찔렀다.“괜찮아, 나를 찾아온 거야. 악의는 없어. 할머니는 아래층 장 씨 아주머니 집에 계셔. 너, 하준이랑 하윤이 데리고 먼저 거기 가 있어. 내가 좀 있다 가서 설명해 줄게.”다정이 은미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들이 이렇게 급하게 온 것은 아마도 이 남자의 몸에 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때 하준이 다정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엄마, 안 갈래요. 여기 같이 있을래요.”아들이 엄마 걱정하는 것을 알고, 다정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민폐를 끼칠 녀석이 아니니 묵인했다.하윤도 상황을 보고 가지 않으려 했다.“나도 엄마와 함께 있을 거예요.”임은미는 걱정되어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다정은 두 아이를 끌고 준재에게 다가갔다.“이렇게 기별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