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여준재,금테 안경테를 쓰고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 구남준이었다.그들은 방을 둘러보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꾸며졌다.작은 방에는 아늑한 느낌이 가득했다.임은미의 말을 듣고, 그제야 시선이 임은미 뒤에 있는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임은미는 그들의 시선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그녀는 두 아이를 껴안고 뒤로 물러났다.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긴장한 나머지 TV에서 보도된 아동 유괴에 관한 사건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어떡하지? 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손 대면 어떻게 대처해야지?’지금의 상황에선 그녀도 취약계층이었다.둘째 하윤은 작은 몸을 완전히 임은미의 뒤에 웅크리고 겁에 질려 감히 그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겁이 없는 하준은 오히려 앞에 있는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동자에는 경계심을 느끼고 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준재는 턱을 괴고, 이 두 아이를 지켜보았다. 왠지 재미있었다.지난번 교통사고 때도 다정 곁에 있던 두 아이를 봤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일 것으로 짐작했다.겨우 4, 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했다.붉은 입술에 가지런한 이, 부드러운 머리카락까지 너무 귀여웠다. 둘은 비슷한 스타일의 패밀리룩을 입고 있었는데, 거실의 아늑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여자아이는 똘망똘망하니 귀엽게 생겼다. 촉촉하고 맑은 큰 눈망울은 호수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임은미 뒤에 웅크리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다.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남자아이는 미간에 귀여운 느낌 대신 총기와 똘똘함이 더했다.준재가 두 꼬맹이를 훑어보고 있을 때 하준도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잘생긴 아저씨다.’하준은 이 남자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적대심 같은 게 없었다. 반대로 이 아저씨에 대해 이상하게도 친근감이 느껴졌다.준재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들 앞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하준을 쳐다보며 물었다.“고다정 씨는 너
다정의 안색이 변했다. 이 어이없는 상황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임은미는 다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금 전의 일을 설명했다“다정아, 방금 내가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글쎄 이 사람들이 들이닥쳤어…….”그러고는 다정의 귓가에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만약 이 사람들이 막 나온다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하준과 하윤도 다정의 손가락을 잡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녀에게 용기를 주려는 것 같았다.웃기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그녀는, 일단 아이들을 다독였다.“엄마는 괜찮아, 겁내지 마.”“은미야, 괜찮아,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다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여준재에게 향했다. 말투에는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오려면 사전에 얘기해야죠. 당신들 모습 좀 봐요. 우리 가족들이 놀랐잖아요.”구남준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고다정 씨, 가족을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오늘 정말 상황이 급박해서 예고도 없이 방문했습니다.”임은미는 사태의 전개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뭐야?”그녀는 다정의 옆구리를 손으로 쿡쿡 찔렀다.“괜찮아, 나를 찾아온 거야. 악의는 없어. 할머니는 아래층 장 씨 아주머니 집에 계셔. 너, 하준이랑 하윤이 데리고 먼저 거기 가 있어. 내가 좀 있다 가서 설명해 줄게.”다정이 은미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들이 이렇게 급하게 온 것은 아마도 이 남자의 몸에 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때 하준이 다정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엄마, 안 갈래요. 여기 같이 있을래요.”아들이 엄마 걱정하는 것을 알고, 다정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민폐를 끼칠 녀석이 아니니 묵인했다.하윤도 상황을 보고 가지 않으려 했다.“나도 엄마와 함께 있을 거예요.”임은미는 걱정되어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다정은 두 아이를 끌고 준재에게 다가갔다.“이렇게 기별도 없
하준과 하윤은 다정 뒤에 서서 서로 쳐다보았다.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왜 갑자기 이 아저씨를 치료하지?’이해가 안 되지만, 방해할 엄두도 못 내고, 얌전히 바라보기만 했다.“야옹.”앳된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렸다. 젖먹이 고양이 두 마리가 문밖에 갇혔다.하준과 하윤의 눈이 마주쳤다. 분명 그들의 새끼 고양이가 그들을 찾아온 것이었다.두 꼬맹이가 살금살금 뛰어가서 문을 열고 각각 한 마리씩 안고 돌아와 엄마를 바라보았다.다정은 능숙한 동작으로 이미 침 소독을 마쳤다.“시작합시다.”다정은 능숙하게 준재의 등에 침을 놓았다.속도가 빨라 통증을 느낄 틈도 없었는데 이미 끝냈다. 등이 약간 시큰거렸다.하준과 하윤은 준재의 눈을 쳐다보았다.시선은 예리하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꼈다.“멋쟁이 아저씨, 정말 우리 집에 돈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군요.”하윤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이 아저씨가 그렇게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준재는 그제야 제대로 하윤을 관찰할 수 있었다.그녀에게선 똑 부러지고 사랑스러운 아우라가 가득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처럼 웃는 모습이 작은 천사 같았다.하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것만 같았다.준재는 귀여운 하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그래, 그럼 빚진 돈은 네 엄마가 치료해준 거로 퉁 치자.”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그렇지…… 아저씨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았어.”‘방금까지도 내가 무서워서 다른 사람 뒤에 꽁꽁 숨어 있었으면서…….’여준재는 그런 하윤이가 너무 귀여웠다. 하준은 여동생을 덥석 잡아당기며 경계하듯 말했다.“낯선 사람과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우리는 저 아저씨를 아직 잘 모르잖아. 엄마가,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 거 잊었어? 저 아저씨가 잘생겼다고 해서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하윤은 귀엽게 눈을 깜빡이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오빠에게 고개
구남준은 예민하게 다정의 반응을 보고는 좀 의아했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도련님이 신분을 안 즉시, 서둘러 아부했을 텐데 말이다.그러나 고다정은 놀라기만 하고, 곧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그는 좀 궁금했다. ‘설마 도련님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걸까?’궁금한 것은 궁금한 거고, 그도 남한테 신분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다.재계에서 오랜 기간 발 담그고 있다 보니,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사이 다정은 이미 시침을 마쳤다.다정은 침 하나하나의 강도가 모두 적합한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러고는 한숨을 돌리며 일어났다.“다 놓았어요, 등에 있는 침은 건드리지 마세요, 30분 후에 와서 침 뽑을 게요.”다정은 대범하고 우아하게 웃으며 구남준에게 말했다.이어 두 아이에게 말했다.“하윤이는 엄마랑 약재 고르러 가자. 하준이는 시간 체크하다가 30분 지나면 엄마 불러줘.”두 아이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은 하윤의 부드러운 작은 손을 잡고 안방을 나섰다.하준은 그녀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 바로 거실로 갔다.들어올 때는 손에 스톱워치와 장난감 하나를 들고 있었다.하준은 스톱워치를 침대 머리맡에 놓고, 옆에 놓인 의자에 혼자 앉았다.손에 10단계 큐브를 들고 조용히 혼자 놀기 시작했다.고사리 같은 손으로 큐브의 색깔을 순식간에 흐트러뜨렸다.가만히 침대에 엎드린 준재도 좀 심심했던 터라, 시선이 곧 하준이에게도 쏠렸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았다.아이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빨랐다. 아무렇게나 돌리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규칙적이었다. 매번 돌릴 때마다 다 계획적이었다.이를 지켜보던 구남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완전히 흐트러뜨린 10 단계 큐브라, 어른도 쉽게 맞추기 힘든 난이도인데…….’‘이 녀석, 3분 만에 다 맞췄다.’‘이게 무슨 괴물 아이큐야!’하준은 별일 아닌 듯 입을 삐죽거리며 큐브를 한쪽에 놓았다. 그가 보기에 큐브 맞추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놀랄 만
여준재는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말했다.“너희 엄마가 나를 치료해 주었고…… 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장난감을 선물한 것도 고마움의 표시야. 그러니까 받아도 돼.”하준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레고를 절대 받지 않겠다고 했다.여준재는 마음속으로 꼬맹이가 남의 걸 탐내지도 않고 예의도 바른 것이 참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했다.‘고다정 이 여자, 애들 교육을 참 잘했네. 젊은 여자가 대단해.’구남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참으로 잘 가르쳤구나. 착하네.”남준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는 처음 봤다.하지만 칭찬이라고 한 말에 하준이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아빠 없어요. 엄마와 외증조할머니만 있어요.”목소리가 씁쓸함을 띠고 있는 게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여준재와 구남준은 순간 자신들이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그나저나 집에 들어오고부터 애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앞에 다정과 두 번 만났을 때도 그녀는 늘 혼자였다.추측해 보면 아마도 이혼했을 것이다.“꼬마야, 미안해. 아저씨가 몰랐어…….”구남준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남준은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비록 한부모 가정이지만, 애들이 참으로 예의 바르게 잘 컸다.오히려 하준이 씩씩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이미 익숙한걸요. 비록 저는 아빠가 없지만, 멋진 사내대장부가 되어 우리 가족들을 지킬 거예요.”그의 말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눈빛에 확고함이 담겨 있었다.‘난 이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야. 앞으로도 내가 외증조할머니, 엄마, 여동생을 지켜야 해.’여준재와 구남준은 말없이 하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꼬마 아이가 이렇게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니.’하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혼자 잘 놀고 있었다. 비록 방안은 적막감이 감돌았지만.한편 다정과 하윤은 약방에 도착했다.이른바 ‘약방’이라 함은 바로 그들이 거주하는 주택단지 아래층에 있는 작은 창고를 말하는 거였다. 거기에 다정이 재배한 다양
구남준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부르는 게 값이구만.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을…….’‘약 두 봉지에, 500만 원이라니? 너무 비싸잖아!’“500만 원짜리 한약이 어디 있어요? 게다가, 교통사고 합의금에서 까기로 했잖아요, 왜 우리더러 돈을 지불하라고 해요?”구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가 너무한다고 생각했다.‘혹시 도련님이 돈 많은 걸 알고 돈을 뜯어내려는 잔꾀를 부리는 게 아니야?’ 구남준은 의심이 갔다.다정은 당찬 눈빛으로 그를 올려보았다.“보통 약재는 별로 비싸지 않아요. 하지만 이 안에 한 가지 약이 더 들어가 있어요. 진귀한 약재예요. 내 손에도 총 세 뿌리밖에 없어요. 천만금을 줘도 구하기 힘든 약재라고요. 이 약이야말로 당신 도련님의 병세를 해결하는 주재료라고요.”그녀가 재배한 이 약은 원래부터 값싼 약이 아니었다.신수노인와 거래할 때도 이 가격이었다.‘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누군가를 속인 적 없이 양심적으로 임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돈 많은 재벌들에게 의심받다니?’지난번의 합의 결과를 생각해 본 다정은 덧붙여 말했다.“교통사고 합의금은 치료비로 상쇄하고, 약값은 따로 계산합니다. 처음부터 약속된 건데요.”그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약값의 지급 방식에 대해서도 그들도 찬성했었다.화가 난 구남준이 이는 분명 바가지를 씌우는 거라고 말을 뱉으려는 순간에 준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줘!”자기 집 도련님이 주라고 말씀하셨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이체해 주면서도 말투는 비아냥거렸다.“이렇게나 돈을 잘 버시는데 어떻게 돈이 부족할 수 있죠? 제가 봤을 때는 곧 재벌이 될 거 같은데요…….”탐욕스럽다는 비아냥을 듣고도, 다정은 개의치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거…… 희귀 약재예요, 얼마나 재배하기 어려운데요? 나한테 그 약재가 많았더라면 치료비로 접촉 사고 합의금 1,000만 원을 충당하지는 않았겠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
구남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준재는 병을 앓은 지 오래되었다.그의 고통을 덜어줄 명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안타깝게도 매번 기대를 잔뜩 안고 찾아 나섰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그런데 지금 이런 사람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젊은 여자라…… 정말 믿기지 않았다.그 교통사고도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었다.이때 여준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이번에 해외에 나가면 레고 세트를 몇 개 사서 쌍둥이들에게 선물해 줘.”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도련님은 왜 갑자기, 그 꼬마들한테 이렇게 신경 쓰시는 거지?’그는 떠보듯 물었다.“도련님, 그 쌍둥이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준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그의 잔잔한 눈동자에서 그 어떤 기분도 읽을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그 녀석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져.”그도 자신이 왜 꼬맹이의 말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지 의아했다.레고가 없어서 실망한 그 꼬마의 눈빛이 그의 마음속에 새겨져 줄곧 떨쳐낼 수가 없었다.‘나와 그들, 분명 어떤 인연이 있을 것이야.’구남준은 별생각 없이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그 두 아이가 너무 귀엽고, 똑똑해서 그럴 거예요.”그는 조금도 의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두 꼬맹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으니까.“나는 그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일 거란 상상도 못 했어.”이 정도까지 말하자 구남준은 순간 자신이 일찍이 고다정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태블릿을 꺼내 그녀의 자료를 보던 구남준은 깜짝 놀랐다.“도련님, 다정 씨가 바로 5년 전, 그 떠들썩한 고 씨 집안의 큰 아씨입니다!”‘얘가?’여준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뒤돌아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지?”‘고 씨 집안 아씨라?’ 들은 것 같지만 별로 기억나지 않았다.구남준은 설명을 덧붙였다.“고다정 씨는 원래 진 씨네 도련님 진시목과 커플이었는데, 결혼하기 전날 밤 술자리에서
고경영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일었다.그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네 돌아가신 엄마의 목걸이가 나한테 있어. 내가 알기로는 그건 네 엄마 혼수였는데…….”다정은 의심스러웠다. 아버지가 자꾸 오라고 하는 것에는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고경영이 갑자기 자신에게 집에 오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 텐데…….‘목걸이? 본인이 지어내서 날 속이려는 거 아냐?’“그걸 내가 어떻게 믿죠?”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꽉 쥐고 물었다.“정 못 믿겠으면 네 외할머니한테 가서 물어보거라. 외할머니가 알려주실 거야. 청첩장은 이미 보내뒀다.”고경영은 음침한 표정을 짓고, 눈에는 승리의 빛이 반짝였다.다정은 전화를 끊고, 강말숙의 침실로 달려갔다.강말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바느질하고 있었다.“외할머니,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다정은 문을 밀고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강말숙은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뭔데 그러니? 물어봐.”심각한 다정의 표정을 보니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고경영이 말하기를, 엄마가 시집올 때 혼수로 장만한 목걸이 하나가 있다면서 저더러 가지러 오래요…… 혹시 정말 그런 목걸이가 있나요?”강말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목걸이가 하나 있긴 했지. 내가 젊었을 때 너의 외할아버지께서 내게 사준 선물이야. 그걸 너희 엄마가 시집갈 때 줬단다.”이 말을 하던 강말숙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일었다.“언제 가지러 오라던?”다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다음 주 수요일, 고다빈과 진시목의 결혼식 당일에요…….”강말숙의 눈에 경계의 눈빛이 비쳤다.“아마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다. 너희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몇 년째인데 이제야 이 얘기를 꺼내다니…… 지금에 와서 그걸 미끼로 너를 결혼식에 부르려는 속셈인 거 같은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 집안 인간들이 너를 어찌할까 봐 두렵구나.”예식장에서 모욕당할 게 뻔했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