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준재는 병을 앓은 지 오래되었다.그의 고통을 덜어줄 명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안타깝게도 매번 기대를 잔뜩 안고 찾아 나섰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그런데 지금 이런 사람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젊은 여자라…… 정말 믿기지 않았다.그 교통사고도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었다.이때 여준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이번에 해외에 나가면 레고 세트를 몇 개 사서 쌍둥이들에게 선물해 줘.”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도련님은 왜 갑자기, 그 꼬마들한테 이렇게 신경 쓰시는 거지?’그는 떠보듯 물었다.“도련님, 그 쌍둥이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준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그의 잔잔한 눈동자에서 그 어떤 기분도 읽을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그 녀석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져.”그도 자신이 왜 꼬맹이의 말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지 의아했다.레고가 없어서 실망한 그 꼬마의 눈빛이 그의 마음속에 새겨져 줄곧 떨쳐낼 수가 없었다.‘나와 그들, 분명 어떤 인연이 있을 것이야.’구남준은 별생각 없이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그 두 아이가 너무 귀엽고, 똑똑해서 그럴 거예요.”그는 조금도 의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두 꼬맹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으니까.“나는 그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일 거란 상상도 못 했어.”이 정도까지 말하자 구남준은 순간 자신이 일찍이 고다정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태블릿을 꺼내 그녀의 자료를 보던 구남준은 깜짝 놀랐다.“도련님, 다정 씨가 바로 5년 전, 그 떠들썩한 고 씨 집안의 큰 아씨입니다!”‘얘가?’여준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뒤돌아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지?”‘고 씨 집안 아씨라?’ 들은 것 같지만 별로 기억나지 않았다.구남준은 설명을 덧붙였다.“고다정 씨는 원래 진 씨네 도련님 진시목과 커플이었는데, 결혼하기 전날 밤 술자리에서
고경영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일었다.그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네 돌아가신 엄마의 목걸이가 나한테 있어. 내가 알기로는 그건 네 엄마 혼수였는데…….”다정은 의심스러웠다. 아버지가 자꾸 오라고 하는 것에는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고경영이 갑자기 자신에게 집에 오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 텐데…….‘목걸이? 본인이 지어내서 날 속이려는 거 아냐?’“그걸 내가 어떻게 믿죠?”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꽉 쥐고 물었다.“정 못 믿겠으면 네 외할머니한테 가서 물어보거라. 외할머니가 알려주실 거야. 청첩장은 이미 보내뒀다.”고경영은 음침한 표정을 짓고, 눈에는 승리의 빛이 반짝였다.다정은 전화를 끊고, 강말숙의 침실로 달려갔다.강말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바느질하고 있었다.“외할머니,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다정은 문을 밀고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강말숙은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뭔데 그러니? 물어봐.”심각한 다정의 표정을 보니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고경영이 말하기를, 엄마가 시집올 때 혼수로 장만한 목걸이 하나가 있다면서 저더러 가지러 오래요…… 혹시 정말 그런 목걸이가 있나요?”강말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목걸이가 하나 있긴 했지. 내가 젊었을 때 너의 외할아버지께서 내게 사준 선물이야. 그걸 너희 엄마가 시집갈 때 줬단다.”이 말을 하던 강말숙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일었다.“언제 가지러 오라던?”다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다음 주 수요일, 고다빈과 진시목의 결혼식 당일에요…….”강말숙의 눈에 경계의 눈빛이 비쳤다.“아마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다. 너희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몇 년째인데 이제야 이 얘기를 꺼내다니…… 지금에 와서 그걸 미끼로 너를 결혼식에 부르려는 속셈인 거 같은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 집안 인간들이 너를 어찌할까 봐 두렵구나.”예식장에서 모욕당할 게 뻔했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짐 싸. 서류 결재 끝나면 공항으로 가자.”지시를 듣고 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한 번 보았다. 시간이 아직 일렀다.“도련님, 귀국 후 빠른 시간 내에 고다정 씨를 찾아가 침을 맞도록 하죠.”준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좋을듯했다.그들은 공항으로 달려가 귀국길에 올랐다.비행기에서 내리자, 관자놀이가 지근지근 아파졌다. 여준재는 손을 뻗어 관자놀이를 힘껏 문질렀다.십여 시간의 비행으로 매우 피곤했다.공항을 나서자, 여 씨네 운전기사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운전기사는 준재를 보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도련님, 회장님께서 오늘 저녁 8시에 GS그룹 진시목의 결혼식에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구남준은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손목시계를 한 번 보았다.“8시? 지금 벌써 6시인데…… 그럼, 지금 바로 가라는 건가요? 대표님께서 일주일 내내 출장 마치고 지금 귀국하셨는데…… 휴식이 필요합니다.”준재의 몸이 버텨내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지금 상황에서 급선무는 고다정에게 연락하여 치료받는 것이었다.운전기사는 약간 난처한 기색을 하며, 준재의 뜻을 살폈다.준재는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가지, 시간 지체하지 말고!”구남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이때 블루웰 호텔, 4층 연회장에 손님들이 운집했다.그중에는 상류층 사업가도 있고, 화려한 스타도 있었다.오늘 진 씨네 도련님과 고 씨네 아가씨가 여기서 결혼식을 진행할 예정이다.JS그룹과 GS그룹 이 두 그룹이 사돈을 맺는 것은 성대한 일이다.예식홀은 낭만적이고, 럭셔리하게 꾸며졌다.바닥은 화려한 한백옥 대리석을 사용했고, 사방에는 붉은 비단이 가득 걸려 있으며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눈부시도록 빛을 반짝이고 있다.홀, 거대한 스크린에는 구다빈과 진시목이 찍은 쇼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고경영과 심여진, 그리고 신랑인 진시목과 그의 부모인 진동진과 유이단이 입구에 서서 얼굴에 미소를 띠
고다빈이 장미, 소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직원이 다가와 문을 두드리며 그들에게 말했다.“신부님, 곧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조금 있으면 신부 입장이에요.”다빈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미는 그런 그녀를 대신해 면사포를 씌워줬다. 소유는 그녀의 뒤에서 웨딩드레스를 정리했다.한편, 고다정은 막 택시에서 내려 고개를 들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호텔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정장도 아닌 평범한 녹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모두가 차려입고 참석했지만, 다정은 아주 캐주얼했다.다정은 청첩장을 손에 쥐고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그녀 스스로에게 말했다.“그래, 엄마의 유품만 챙기고 바로 나오는 거야.”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위층 연회장으로 올라갔다.결혼 행진곡이 연회장에서 은은하게 들려왔다.다빈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회전계단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승리자의 기쁨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는 다정의 시선을 사로잡아 반감을 불러일으켰다.“신부가 나왔어요!”‘찰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며 플래시는 거의 사람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반짝였다.계단 입구에는 고귀한 턱시도를 입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서서 다빈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윽하고 경건했다.다빈은 계단 아래에 다다르자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오늘의 새 신랑, 신부는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걸었다.다정은 이 장면을 바라보며 수년 전, 다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다짐한 그 남자를 떠올렸다.“다정아, 난 네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거야. 우리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하자.” 그 결과, 그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다정은 역겹고 우스웠다.‘그때의 난 왜 그런 말을 철석같이 믿었을까? 정말 바보 같아.’하지만 다행히 지금 그녀의 마음속엔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오늘 다빈 씨는 정말 아름다워요. JS그룹 도
아직도 고경영은 고다정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그는 아직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경영은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지금은 자기 딸의 결혼식이었다.만약 성급하게 떠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심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결혼식장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아마도 이 도시 역사상 이렇게 큰 규모의 결혼식은 흔치 않을 거야.’오늘 밤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우리 딸은 성공한 스타이고, 우리 사위도 이렇게 훌륭하니 말이야.’게다가 축하하러 온 하객들 모두 유명한 인물들이었다.그녀는 세어 봤을 때, 여 씨 집안을 제외한 모든 세가가 참석했었다.‘여 씨 집안?’심여진은 멈칫했다.‘방금 진시목이 이미 여 씨 집안에 청첩장을 보냈다고 했어.’‘여 씨 집안이 우리의 체면을 세워줄지도 몰라.’고경영도 이 점을 생각하고 옆에 앉아 있던 진동진에게 물었다.“사돈, 오늘 여 씨 집안도 옵니까?”진동진은 웃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여 씨 집안 쪽에서 온다고 했으니 반드시 누구라도 올 거예요. 누가 오든, 우리에겐 큰 자랑이죠! 제가 이미 입구에 있는 사람에게 잘 지켜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면 가장 먼저 보고할 거예요!”고경영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어쩔 바를 몰랐다.“그래요? 그럼, 정말 잘 됐군요!”여 씨 집안은 이 도시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세가다.진 씨 집안과 고 씨 집안은 모두 이 기회를 빌려 여 씨 집안과 연을 맺고 싶었다.그럼, 그 집안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여 씨 집안도 결코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다.심여진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이건 정말 우리 두 집안의 큰 경사네요! 역시 여 씨 집안은 세가답게 예의를 지키며 우리를 축하하러 오는군요.”그녀는 점점 더 기세등등해졌다.이제 여 씨 집안도 그녀의 가족들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그녀는 눈 밑에 음흉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고다정, 네가 다빈이랑 겨룰 수 있을 것 같아?’
고경영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너무 바쁜 나머지 전화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그는 웃으며 말했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지금 전화해 볼게요. 임 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그는 잠시 자리를 떠나 급히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정은 멀리서 이 상황을 보고 비웃었다.‘난 단지 어머니의 유품을 가져오기 위해 왔을 뿐이야.’‘그것만 찾는다면,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그래서 다정은 고경영의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전화할 필요 없어요.”고경영은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불쾌한 말투로 질문했다.“너는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그리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 꼴은 또 뭐야? 오늘이 무슨 날인데 내 체면을 구기는 거야?”말을 마치자, 그는 눈까지 부라렸다.잠시 후, 임 회장이 본다면 고 씨 집안을 얼마나 무시할지 모른다.‘변변한 옷도 없이 거지처럼 입고 오다니.’‘다행히 임 씨 집안의 그 녀석도 그리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어쨌든 임 씨 집안은 다정을 원하지 않을 리 없어.’자신을 무시하는 말투를 들은 다정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내 친아버지라니.’그녀는 즉시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제가 정말로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전 우리 엄마의 유품을 가져가기 위해 온 거예요. 물건만 챙기고 바로 갈 거니까 굳이 꾸미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요.”‘내 모든 걸 빼앗은 악랄한 고다빈 부부를 축복하라고?’‘꿈 깨.’고다정은 손을 내밀어 귀찮다는 듯 말했다.“당장 내놔요!”고경영은 차가운 얼굴로 뒷짐을 지고 물건을 가지고 올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뭐가 그리 급해? 내가 널 부른 것은 단지, 너에게 물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역시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그녀는 냉담하게 말했다.“그럼, 무엇을 위해서죠?”그가 어떤 목적이 있
고다정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진시목과 고다빈이 그녀를 주시했다. 진동진과 유이단도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그들이 함께 걸어오자, 유이단과 고경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다빈은 그녀 앞에 다가와 반가운 척했다.“언니 왔어? 나는 또 언니가 안 올 줄 알았지. 나와 시목 씨 결혼식에 와 줘서 너무 기뻐.”다빈은 말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다정의 손을 잡았다.다정은 징그럽다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특히 다빈 옆에는 시목이 서 있었다.다빈이 정말로 다정을 위했다면 시목을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다정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준수한 외모의 남자도 그녀를 쳐다보았다.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 차 있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다정은 익숙한 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울렁거렸다.시목은 입을 열어 그녀에게 인사했다.“다정아, 오랜만이야. 나와 다빈이의 결혼식에 와줘서 고마워.”그의 낯설고 차가운 말투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다정은 고개를 돌려 스스로를 비웃었다.그녀는 자신이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다정은 그에게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시목의 말을 들으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지난 6년 동안 그녀는 그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다.‘시목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이제 보니 6년 전, 그가 자발적으로 다정을 떠나 버린 것은 아주 잔혹한 사실이었다.다정은 참지 못하고 다빈의 손을 아주 세게 뿌리쳤다.그 바람에 다빈은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고, 시목은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다빈아, 괜찮아?”시목은 다빈을 내려다보며 긴장된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렸고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다빈도 다소 놀라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미안해, 언니,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다빈은 다정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듯, 억지로 웃었다.순간,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하객들은 다정의 예의 없고 무례한 행
고다빈은 자기 뜻대로 되니 속으로 아주 기뻤다.고다정의 감정은 치솟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질 때까지 그녀는 혀끝을 깨물고 모든 감정을 참았다.다정의 날카로운 눈빛은 다빈을 쏘아붙였다.그리고 다정의 목소리는 뼈에 사무치는 싸늘함이 배어 있었다.“그래? 그럼 내가 네 친절과 너와 자매임에 감사해야 하는 거야? 안타깝지만, 우리 엄마는 나 하나만 낳았지, 여동생 같은 건 낳은 적이 없어. 첩 자식 주제에 나랑 친한 척하지 마.”그녀의 말은 무척 날카로웠고, 다빈의 배경을 직접적으로 비꼬았다.이 말이 나오자 심여진과 다빈의 표정이 바뀌고, 고경영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여론의 방향도 그들을 향해 불타올랐다.“고경영이 바람을 피워서 심여진과 만났고, 그 사이에서 둘째 딸이 생긴 거잖아.”누군가가 작게 속삭인 말이 많은 야유를 불러일으켰다.“그런 줄은 몰랐어. 고 회장은 굉장히 가정적으로 보였는데,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심 여사도 우아해 보였는데, 불륜녀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었고 심여진과 다빈은 날카로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결혼식이 이렇게 엉망으로 되자, 진시목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정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축하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지난 몇 년 동안 다빈이는 줄곧 네 걱정만 했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니?”그의 말은 분명 다정을 비난하며 다빈을 보호하고 있었다.고다정은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그따위 관심에 신경 쓸 거 같아? 고다빈은 나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이틀 전에 직접 날 찾아와 우리 외할머니를 밀쳐 병원에 입원시켰어, 근데 지금도 여기서 위선 떨고 있다니. 역시 연예계 스타네, 여우주연상은 받았지? 혹시 못 받았다면 내가 상을 줘야겠는걸.”그녀는 쯧쯧 소리를 내며 비웃었다.이 말에 모든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또 주위에는 기자들이 있었는데, 다빈이 다정의 할머니를 밀쳤다는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