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자기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하여 다른 사람을 위협하려 하다니.변호사는 이런 사모님이 있다면 진씨 집안은 언젠가는 망할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이 말들을 그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몇 마디 했을 뿐, 진시목 등은 이를 모른다.그들은 변호사가 방금 한 말을 듣고 변호사의 뜻을 이해했다.이것은 고다정을 찾아 화해하라는 것이다.고경영은 말하지 않았다.전에 그가 신우하이테크에 가서 고다정을 찾은 일 때문에 그는 여준재에게 여러 날 짓눌려 있었고, 지금까지도 회사가 안정되지 않아 지금의 그는 고다정 앞에 조금도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심여진도 말하지 않았다.그녀도 자기 딸을 구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고다정에게 사정하는 짓은 하기 싫었다.고다정이 그녀에 대한 증오로 그녀가 가더라도 고다정은 그녀에게 좋은 표정을 짓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이를 생각하며 고경영과 심여진은 진시목을 바라보았다.그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진시목은 그들의 눈빛을 이해했다.고씨 부부는 그가 직접 가서 간곡히 애원하기를 원했지만 이 일은 그가 나설 수 없었다.“제가 고다정을 찾아가는 것보다 장인어른이 고다정을 찾아가는 것이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도 저와 고다정의 원한을 알고 있고 고다정은 저를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나타나서 고다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도 몰라요.”이 말을 들은 고경영과 심여진 역시 진시목과 고다정의 관계를 떠올렸다.고다빈도 반대했다.“아빠가 고다정에게 가서 말해보세요. 아빠도 고다정의 아버지잖아요.”고경영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녀를 흘겨봤다.“고다정이 나를 인정해야 아버지라고 할 수 있지. 그 천박한 계집애는 여준재와 함께 있은 후부터 나를 안중에 두지 않아.”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도 고다정을 찾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진시목이 방금 한 말도 실제로는 여씨 집안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다는 걸 그도 알아차렸다.누구도 고다정을 찾아가기 싫어 한동안 화제가 정체되었다.진시목은 미간을 찌
핸드폰을 내려놓은 외손녀를 보며 강말숙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래서 네가 그동안 받은 장난은 다 고다빈 그 여자가 한 거야?”“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세요?”고다정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런 일들을 외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그러자 그녀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준재 씨가 알려줬어요?”강말숙이 그녀를 쳐다보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준재가 말한 거 맞아. 너는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외할머니께서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어요.”고다정은 화가 난 외할머니를 보며 부드럽게 애교를 부렸지만 안타깝게도 강말숙에게 먹히지 않고 계속 훈계했다.“네가 말하지 않으니 내가 더 걱정하잖아. 앞으로는 다른 일을 숨기면 안 돼.”이런 경고에 고다정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강말숙은 그제야 마음에 드는 듯 다른 것을 물었다.“방금 준재에게서 전화 왔는데 고다빈 일 말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외할머니, 어쩜 그것도 맞췄어요. 준재 씨가 그러는데 고경영과 진씨 집안 쪽에서 고다빈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에게 화해를 청하러 온대요.”고다정은 방금 전화한 내용을 숨기지 않았다.강말숙은 아부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이 일은 결코 화해할 수 없어. 이번에는 협박이지만 다음번에는 고다빈 그 여자가 너를 유괴하려고 할 거야.”화가 난 외할머니를 보며 고다정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그녀가 자신을 위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저도 화해할 생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외출할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 고경영과 진씨 집안 쪽은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들이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를지 걱정스러워요.”여기까지 말하고 고다정은 저녁에 여준재가 돌아오면 외할머니에게도 보디가드 한 명을 붙여 주어 외할머니가 평일 나들이를 나갈 때 보호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강말숙은 고다정의 마음을 모르지만 그녀의 말에는 동의했다.“준이 윤이는 평소에 너와 준재가 데
심여진은 말하면 할수록 긴장해서 고경영의 손을 잡고 강경하게 말했다.“안 돼요. 다빈이는 감옥 가면 안 돼요. 안 그러면 평생 망하는 거예요.”“평생은 무슨, 이미 망가졌어!”고경영은 화가 치밀어 심여진에게 쏘아붙였다.“누구를 탓하겠어. 사위가 그렇게 고다정을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이 지경까지 왔잖아. 모두 혼자 자초한 일이야.”심여진은 어깨가 움츠러들 정도로 호통을 맞았고 표정은 무섭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만약 당신이 다빈이를 포기하면 다빈이를 구해줄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어요. 만약 누군가가 다빈이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고씨 집안이든 진씨 집안이든 모두 영향받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만약 진씨 집안에서 사위와 다빈이를 이혼시키면 어떡게요?”이 말은 사실 그녀가 고의로 고경영에게 들려준 것으로, 회사의 손실과 진씨 집안을 잃을 수도 있다는 핑계로 고다빈을 구할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었다.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이 모든 것을 고경영은 일찍이 생각했고, 이 일로 인해 마음이 심란했다.“당신은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만 물어보잖아. 내가 방법이 있다면 여기서 당신과 쓸데없는 말을 하겠어? 당신도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봐.”고경영은 심여진에게 고함을 지르며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분명히 예전에 이 여자는 눈치도 빠르고 생각이 많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바보가 되었을까.심여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고경영의 성가신 눈빛을 느끼고 이내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차가워졌다.그래, 고경영이 할 수 없다면 그녀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야지.그날 저녁, 여준재는 접대를 다 하고 돌아왔다.고다정은 할 말이 있어 책을 보면서 머리맡에 앉아 기다렸다.방에 들어서자 여준재는 이 광경을 보고 냉엄한 얼굴이 순간 부드러워지며 웃었다.“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요. 방금 몸이 회복되었는데 또 아프면 안 돼요.”“제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제가 주의하고 있어서 걱정하지 마세요.”고다정은 침대에
한동안 인터넷 곳곳에는 고씨, 진씨 집안에 대한 배척과 불만이 가득했고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주식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진씨 집안은 일이 발각되는 것을 줄곧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준비하여 사건 직후에 공고를 올려 그나마 괜찮았다.대체로 고다빈이 한 일을 부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이니 너그러이 봐달라는 뜻이다.동시에 그들은 진씨 집안이 최근 몇 년간 사회에 기부한 총액이 수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게시하여 네티즌들이 겨우 그들을 용서하게 하였다.JS그룹이 위기에 쉽게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GS그룹은 상당히 힘들었다.가뜩이나 GS그룹의 자금은 부족했고 주식도 반쯤 죽은 상태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주식이 그대로 빨갛게 곤두박질쳤다.그리고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프로젝트들도 협력 업체에 의해 줄줄이 중단되었다.반나절도 되지 않아 고경영은 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동시에 그는 이 배후에 YS그룹의 푸시가 없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빨리 전개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그는 자기가 왜 고다정이 태어났을 때 이 계집애를 목 졸라 죽이지 않았는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원망하면서 고다정이 정말 자기를 괴롭히려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고경영이 아무리 원망해도 그는 마음속으로 고씨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고다정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를 생각하며 그는 강수지가 애초 갖고 있던 지분양도서를 들고 마지못해 신우하이테크를 찾았다.사무실에서 고다정이 지선우의 말을 듣고 의아했다.“고경영이 저를 만나서 어머니의 물건을 돌려주려고 한다고요?”“그 사람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지선우는 고다정과 고경영 사이의 앙금을 알고 있어 존칭을 쓰지 않았다.고다정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올라오게 하세요.”여준재가 어머니의 지분으로 신우하이테크를 되돌려 받았지만,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의 물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되찾고 싶어 했다.그리
서류를 받아보니 확실히 주식양도서가 맞았다. 이제 고다정이 여기에 사인만 하면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고다정은 눈을 반짝이다가 그걸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고경영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이것으로 준재 씨가 당신 회사를 그만 놔두는 데는 문제 없겠네요.”“무슨 말이야, 그게?”고경영은 경계하며 그녀를 보았다.고다정은 가볍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말 그대로예요. 고 대표님께서 그 정도도 못 알아듣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고경영은 말문이 막혔다가 곧 불만을 터뜨렸다.“다시 말하지만, 난 이 주식 갖고 GS그룹의 안정을 바꾸려는 거야. 그리고 다빈이도.” “저도 방금 말씀드렸죠? 이 정도 갖고는 회사만 지킬 수 있어요. 그리고 고다빈은, 제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누구나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책임져야 하니깐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강력한 눈빛을 쏘면서 고경영을 봤다.그 까맣고 단단한 눈동자를 지켜보는 고경영은 잠시나마 여준재를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고,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한껏 성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넌 왜 애가 정이 하나도 없느냐? 어쨌든 다빈이가 네 동생 아니냐?!”“동생이요?”고다정은 차갑게 비웃으며 고경영을 쳐다봤다.“엄마는 나한테 동생 같은 건 낳아주지 않았는데, 개나 소나 다 내 동생이에요?”이 말을 들은 고경영은 다시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흥분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소리쳤다.“고다정!”그러나 거의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원래부터 그를 경계하고 있었던 소담과 소민 두 자매가 즉시 앞으로 나서서 고다정의 양옆을 지켰다.만만치 않아 보이는 그 두 자매를 보자, 발작하려던 분노가 삽시에 사그라든 고경영은 다시 침착함을 찾았다. 그는 고다정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눈 밑에는 계산적인 심산이 스쳐 가더니 주식양도서를 다시 거둬들이며 허세를 부렸다. “네가 내 조건에 동의 안 하면, 이번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하자.”
교장은 고다정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다시 한번 자신이 신중을 기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그렇다면 바깥 저 사람은 가짜라는 말인데, 혹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교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한 고다정은 동의했다.“신고하세요.”사실 그녀는 학교에 찾아와 두 아이를 찾는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뻔뻔스럽게 두 아이의 외할머니라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심여진 말고는 없다.심여진이 두 아이를 찾아간 이유는 물론 그 두 아이를 볼모로 고다빈을 풀어달라고 하려는 거겠지...전화를 끊고 나서,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경비원한테 교장이 분부했다.“밖에 있는 사람이 도련님과 아가씨에게 해코지할 수도 있으니, 작은 사모님이 경찰에 신고하라 하시네요.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있으세요, 도망가지 못하게요.”“알겠습니다.”경비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갔다.그는 다시 학교 정문 어귀로 돌아와서, 심여진이 대문밖에 서서 강의동을 향해 좌우로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경각심을 더 높였다.그와 동시, 심여진은 경비가 애들 없이 혼자 돌아오는 걸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 외손주들은요?”“방금 들어가서 알렸는데요, 선생님께서 지금은 수업 시간이라, 만나려면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만나라고 하셨어요.”경비원은 미리 생각해 놓은 핑계를 댔다.그에 심여진도 역시 의심하지 않고 물었다.“그럼 끝나려면 얼마 남았나요?”경비원은 손목의 시계를 보면서 대답했다.“이제 수업 시작한 지 겨우 20분 됐거든요. 아직 20분 남았어요. 경비실에 잠깐 앉아 기다리실래요?”경비원은 이 여자가 너무 오래 기다리기 싫어 도망갈까 봐 그녀를 잡아두려고 이렇게 말했다.심여진은 수업이 아직 20분이나 더 남아있다는 말에, 하이힐을 신고 밖에 서 기다리는 게 생각만 해도 너무 지쳐, 경비원을 따라 경비실로 들어갔다.경비실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심
드넓은 사무실에는 지금 무섭고 살벌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다.특히나 여준재의 주변 공기는 살벌하다 못해 가까이 다가가면 칼부림이라도 맞을 것 같이 살 떨리고 공포스러웠다.“고씨 집안에서 감히 내 경고를 귓등으로 들은 모양이구나. 반드시 뼈에 새기도록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겠어. 누굴 건드려도 되고 누굴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지 똑똑히 알게 말이야!”“네!”구남준은 명령을 받고 돌아서서 바로 착수하러 나갔다. 그도 마음속으로 눈치 없이 날뛰는 고씨 집안의 의문스러운 행보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한편, 고경영은 신우하이테크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심여진의 전화를 받고 급급히 경찰서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야, 당신 왜 여기 잡혀있어?”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고경영은 의자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앉아있는 심여진을 보고 기가 막힌 듯 다가가서 퉁명스럽게 물었다.심여진은 노기등등한 제 남편을 보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때 한 경찰관이 다가와 고경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여기 이분과 어떻게 되는 사이십니까?”“제가 남편인데,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여기 이렇게 잡혀있어요?”고경영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경찰을 조마조마하게 쳐다봤다.경찰이 바로 그한테 얘기해줬다.“당신 부인이 한 유치원에 찾아가서 남의 아이 학부모 행세를 하다가, 유치원 직원이 발견하고 이분을 유괴범으로 의심해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마침 잘 오셨어요, 방금 상황을 물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네요. 당신이 설명 좀 해주세요.”말을 마치자, 그는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고경영한테 묻기 시작했다.한바탕 질문을 받고 나서야 고경영은 심여진이 대체 왜 경찰서로 끌려왔는지 알았다.그는 겨우 해명하여 오해를 풀었고, 그들이 유괴범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경찰서에서 나오게 되었다.나오자마자 그는 심여진을 노려보며 화가 치밀어 덜덜 떠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호통쳤다.“당신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 어딜 감히 그 금덩어리들을 건드려 건드리
그다음 날부터 과연 여준재의 말대로, 고경영이든 심여진이든, 아니면 진시목이든 전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연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며 심해영은 매일 같이 빌라에 드나들었다. 두 손자를 보기 위함도 있었고, 주로는 고다정에게 여씨 집안의 복잡한 친인척과 지인 관계를 파악해 주기 위해서였다.고다정이 너무 복잡하여 기억하지 못할까 봐, 그녀는 특별히 그것을 프린트하여, 그중의 상호 간에 얽힌 이익 관계를 조리 있게 설명해 주었다.물론 고다정도 심해영의 속마음을 잘 알고, 그녀가 설명할 때마다 매우 열심히 듣고 새겼다.“관계망은 이 정도면 됐어. 나머지는 다 그리 중요하지 않아, 그냥 서로 체면만 유지하면 돼.”심해영은 자신이 정리한 자료를 다 설명하고 요약을 지었다.고다정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잘 새길게요.”진지하게 대하는 고다정의 표정을 보고 심해영은 마음이 흐뭇해 웃으면서 말했다.“조급해할 거 없어. 나중에 이 안에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하면 자료 내용을 저절로 다 알게 될 거야. 자, 이제 우리 여씨 가문 친인척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녀는 고다정한테 소화할 틈을 주기라도 하는 듯이 일부러 잠깐 말을 멈추었다.고다정은 그녀한테 따로 자료가 없는 것을 보고, 도우미를 불러 종이와 펜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도우미가 그걸 가져오자, 심해영은 여씨 집안 친척과 지인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우리 여씨 집안은 큰집과 작은 집이 있어.”“큰 집에는 네 아버지와 네가 만났던 고모네 두 아이만 있고, 다른 친척은 없어. 작은 집에도 사람은 많지 않아. 다섯 형제자매가 있는데 다 해외에서 산업을 맡고 있는데, 너도 알다시피 해외에는 좀 어지러운 곳들이 많잖니.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까, 이번에는 한 사람만 대표로 오기로 했어. 촌수를 따지면 네 큰 외삼촌이 되겠구나. 나머지는 네가 나중에 만나면 내가 다시 소개해 주마.”고다정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말한 정보들을 노트에 자세히 기록했다.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