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슬은 심재경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물었다.“신경 쓰여? 그 사람은 내 과거야. 우리가 같이하려면 시시각각 내 과거를 직면해야 할 거야? 정말 충분히 생각했어?”심재경이 대답했다.“난 명섭 씨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고 네가 샛별이를 지우려고 했다는 게 놀라워. 나를 그렇게 하찮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안이슬이 말했다.“명섭 씨가 그러면 안 된다고 나더러 낳으라고 했어.”이번에는 심재경을 떠보려는 게 아니라 그에게 양명섭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알아.”...다음 날.송연아와 안이슬은 함께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안이슬이 말했다.“어제 재경 씨를 만났어.”송연아는 놀라하지 않고 물었다.“기분이 어땠어요?”안이슬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많이 변한 것 같아.”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좋게 변했어요? 나쁘게 변했어요? 예전의 선배가 좋아요? 아니면 지금의 선배가 좋아요?”“달라.”예전의 심재경은 해맑았고 두 사람 모두 의학을 전공했기에 공통 화제가 많았다면, 지금의 심재경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고 또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송연아가 말했다.“역시 사람은 많은 일을 겪으면 성숙해지나 봐요.”안이슬도 동의했다.“그런가 봐.”심재경이 처음부터 그랬더라면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많은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나 혼자 들어갈게.”안이슬이 말하자,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다.“여기에서 기다릴게요.”“그래.”안이슬은 대답하고 문 앞으로 걸어가 노크했다. 안에서 들어오라고 하자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밝고 소박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책 몇 권이 놓여 있고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아주 다정하게 물었다.“안이슬 씨에요?”안이슬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여기에 앉으세요.”안이슬이 자리에 앉자,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안이슬 씨, 상황은 송 선생님한테서 얘기 들었습니다.
안이슬은 부정했다.“아니에요.”“그럼 이슬 씨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진짜로 대답하라고 하니까 그녀는 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기만 했다.“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 일은 이슬 씨가 원해서 겪은 것이 아니잖아요. 아닌가요? 이슬 씨는 강제로 당한 거고 피해자예요. 따라서 당신은 여전히 순결한 거예요. 이것은 자신도 꼭 인지해야 해요.”안이슬은 의사의 말을 듣더니 조금 명쾌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껏 그녀는 자기가 겪은 일만 생각했지, 강요당했고 피해자라는 생각은 안 했었다.“이슬 씨는 본인을 도덕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거예요. 그 감옥은 이슬 씨가 만든 거예요. 사실 이슬 씨가 겪은 일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슬 씨가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모두 이슬 씨의 과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가슴 아파하고 걱정할 뿐입니다.”안이슬도 확실히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느꼈다. 양명섭의 동료들도 많은 관심을 보냈고 또 송연아는 그녀가 제일 힘들어할 때 오랫동안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격려하고 위로해 줬다.“이슬 씨는 삶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해요?”의사가 묻자, 안이슬은 대답할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에요.”안이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스스로를 기쁘게 해요?”“네. 사람은 살면서 어차피 인생의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만 인생이 길거나 짧거나 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행복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어요?”“말씀은 맞지만, 세상을 혼자 사는 게 아닌지라 누구든 자기 맘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안이슬은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의 눈길을 무시하고 혼자만 기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애인, 친구 모든 걸 감안해야 하잖아요?”의사가 웃었다.“네, 맞아요.”“그런데 저한테 불가능한 걸 하라고 하세요?”안이슬이 물었다.“네, 그런 고려해야 할 대상이 많기 때문에 입장을 바꿔보시라는 거예요. 이슬 씨가 한 얘기도 다 맞아요. 그런데 이슬 씨는 본인 삶의 의
안이슬이 말했다.“이제부터 샛별이는 내가 돌볼게.”심재경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우선 들어와.”안이슬이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이사할 거야?”심재경이 되물었다.“넌 어디가 좋아? 여기가 좋아? 아니면 원래 살던 데가 좋아? 어차피 여기도 내 부동산이니까 네가 좋은 대로 하자.”비록 원래 살던 데보다는 작지만 조용하고 아늑했다.“여기 좋아.”심재경이 웃었다.“나도 여기가 좋아.”그때 베이비시터가 샛별이를 재우고 나왔는데 심재경이 물렀다.“저 잠깐 보시죠.”베이비시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갔다. 심재경은 그녀에게 미리 준비해 둔 큰 봉투를 건넸다.“그동안 제 딸을 잘 보살피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돌아와서 베이비시터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베이비시터가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심재경이 말했다.“선생님은 아주 책임감 있는 좋은 베이비시터여서 꼭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실 겁니다. 여기 많지는 않습니다만, 저희 마음입니다.”“대표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월급을 이미 많이 주셨습니다.”“선생님도 제 딸 잘 보살펴 주셨잖아요.”“따님 너무 귀엽습니다.”몇 마디 더 얘기하고 심재경은 베이비시터를 배웅했다. 심재경은 문을 닫고 돌아서서 안이슬에게 물었다.“짐은 안 챙겼어?”안이슬이 말했다.“안 가져왔어.”“나와 같이 가지러 갈까?”안이슬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시 시작하고 싶어.”모든 걸 다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심재경이 말했다.“그래, 잘 생각했어. 샛별이 깨면 같이 나가서 사자, 내가 사줄게.”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샛별이는 쉽게 깨어나지 않고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어서 두 사람은 거실에 앉아있었는데 할 말을 다 하고 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한창 그러고 있다가 안이슬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오늘 회사 안 가?”심재경이 고개를 저었다.“안 가.”“나 점심 준비할게.”안이슬이 말하며 일어나
안이슬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안이슬은 필요한 야채와 고기들을 찾아 꺼냈다.“우선 놔. 이러고 있으면 아무 것도 못 해.”심재경이 야채들을 건네받았다.“내가 씻을게.”그는 채소들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나도 요리하는 걸 배워야겠어. 그래야 네가 힘들지 않지. 아니면 가정부를 고용할까? 그런데 집에 외부인이 있는 거 좀 불편할 것 같은데...”심재경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걸 안이슬은 듣고만 있었다.“왜 아무 말도 없어? 내가 말 잘못했어?”심재경이 물었다.“아니야. 재경 씨 말이 맞아. 집에 외부인이 있는 거 불편해.”안이슬이 서둘러 대답했다. 심재경은 그러다가 다시 또 말을 뒤집었다.“안돼. 우리 샛별이까지 있어서 집안일이 더 많아질 거야. 너 혼자면 너무 힘드니까 가정부를 구해서 집안일을 분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 아직 요리하지 못하니까 요리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어.”안이슬이 말했다.“재경 씨가 알아서 해.”심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구할게.”“나이가 젊은 사람으로 찾아.”“...”‘지난번에 비비안을 보낸 것 때문에 화가 난 건가?’심재경은 목을 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지난 과거는 신경 쓰지 마.”안이슬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알았어.”안이슬이 밥을 짓고 심재경은 씻은 채소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원하는 모양으로 잘랐다.“우리 감자볶음을 해 먹자.”매일 감자로 요리조리 볶아 먹으니, 맛있고 좋아하던 요리도 질리는 것 같았다.“오늘은 감자으로 먹자.”안이슬이 소고기를 썰며 말했다.“감자와 당근 그리고 소고기 양지를 넣고 같이 조림하는 거야.”심재경이 말했다.“난 네가 만드는 건 다 좋아.”“방금 감자볶음 먹고 싶다고 했잖아?”“그건 다음에 먹으면 되지.”“농담이야.”심재경은 고개를 들고 안이슬의 옆얼굴을 올려다봤는데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재경은 행복해하며 안도의 심호흡을 했다.‘그래,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야.’와
샛별이는 포도 같은 눈을 동그랗고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심재경은 자기 아이를 어떻게 봐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볼에 뽀뽀했다.“아가야, 얼른 크자.”“걔가 크면 재경 씨는 늙는데.”안이슬이 요리를 식탁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심재경은 고개를 돌려 진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이슬아, 샛별이 커도 우리 함께 있을 거야, 맞지?”안이슬은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몰라.”비록 지금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한평생 살다 보면 너무나 많은 의외의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심재경도 자기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금방 좋아졌는데 너무 멀리 생각하고 있었기에 안이슬의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조금 지나자,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 안이슬은 수저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심재경은 샛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배고팠는지 울려고 하다가 지금은 즐겁게 먹고 있다. 안이슬도 모든 걸 끝내고 샛별이 보러 왔다. 샛별이는 눈을 감고 졸리는 것 같았는데 입은 여전히 힘 있게 분유를 먹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는지 땀도 나고 얼굴도 빨개졌다.심재경이 말했다.“먼저 먹어. 난 샛별이 좀 있다가 먹을게.”“안 급해. 샛별이 재우고 같이 먹으면 돼.”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30분 정도 지나자, 샛별이는 잠이 들었는데 심재경이 방에 데려가 침대에 내려놓자,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심재경은 아직 손을 샛별이 등에서 빼지 않았기에 허리를 굽혀 계속 안은 자세로 토닥거렸다. 그러자 샛별이는 다시 눈을 감았고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리자, 심재경은 부드럽게 팔을 빼냈다. 샛별이는 입술을 꿈틀거리더니 이번에는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샛별이가 다시 깨지 않자, 심재경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그는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딸이 곤히 자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안이슬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심재경이
심재경은 안이슬이 건네준 소고기를 입에 넣고 힘 있게 씹었다. 식탁에서는 씹는 소리만 들렸는데 심재경은 방금 안이슬이 무슨 생각을 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듯 말했다.“이슬아, 과거의 일은 우리 이제 다 잊어버리자. 너도 이제 더는 생각하지 마, 알았지?”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너 너무 말랐어. 많이 먹어.”심재경이 말하며 그녀에게 밥을 더 퍼줬고 안이슬은 거절하지 않고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여러차례 수술했기에 몸이 많이 허약해진 건 사실이었기에 심재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윙윙...휴대폰 진동 소리에 안이슬은 휴대폰을 꺼내서 받았다.“여보세요.”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송연아의 목소리를 듣자, 안이슬의 기분이 좋아졌다.“연아야.”심재경도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언니, 어디 갔어요? 왜 집에 없어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심재경을 한번 보고 말했다.“나 지금 재경 씨랑 같이 있어. 밥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으면 여기로 올래? 우리 지금 밥 먹고 있어.”송연아는 안이슬이 심재경을 재경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심리상담이 효과가 있나 보네.’송연아는 두 사람이 같이 오붓하게 가지는 시간이 얼마 만인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난 먹었어요. 두 분 식사해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송연아는 일부러 핑계를 대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안이슬은 끊어진 휴대폰을 보고 웃으며 옆에 놓았다.“연아가 우리 때문에 걱정 많이 했어.”심재경이 말했다.“맞아, 우리 이제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야.”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저녁 식사 후 안이슬이 설거지하려고 하자, 심재경이 못 하게 말렸다.“밥도 네가 했는데 어찌 설거지까지 네가 해. 나 밥은 못하지만 설거지는 잘해.”심재경은 식후의 모든 일을 도맡았는데 안이슬에게 과일을 씻어다 주며 TV를 보면서 먹고 있으라고 하고 자기는 주방으로 들어가 바쁘게 움직였다. 안이슬은 주방에서 앞치마 두르고 싱크대에서 허리를 살짝 굽혀 설거지하는
조금 더 쇼핑하다가는 통째로 가져갈 것 같아서 안이슬이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심재경이 말했다.“아직 시간도 이른데 조금 더 둘러봐.”안이슬이 서둘러 말했다.“나 피곤해.”심재경은 반신반의하면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안이슬이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저기 들어가서 잠깐 쉬었다가 집에 가자.”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들은 의자에 앉아 휴식하며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안이슬은 심재경의 품에서 샛별이를 받아안고 쉬했으면 바꿔주려고 살폈다.“방금 바꿨어.”확실히 아직 마른 상태였다. 샛별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재경이 또 제안했다.“너 많이 힘들 텐데 우리 오늘 집에서 밥하지 말고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들이 식사하고 돌아가자 산 물건들도 차례로 집으로 배달됐다. 샛별이가 졸려 하자, 심재경이 목욕시키고 재우기로 하고 안이슬은 배달된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네 옷은 침실 옷장에 걸어둬.”심재경의 말에 안이슬은 원망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어떤 것들은 쓸모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사서 다 어떡해?”“액세서리와 가방들을 넣을 수납장을 맞춤 제작하면 돼.”안이슬이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낭비하면 안 돼.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쓰는 건 아니잖아.”심재경이 말했다.“너를 위해 쓰고 싶었어.”안이슬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마음 한쪽에서부터 따뜻한 기류가 솟아올랐다. 그녀는 당장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은 가방에 넣어 빈방에 가져가고 지금 사용할 물건들만 골라서 정리했다.샛별이는 힘들었는지 목욕하고 우유를 먹더니 바로 잠들었다. 샛별이 방에서 나온 심재경이 방에 들어가자 안이슬은 침대 옆으로 걸쳐 앉아서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문에 기대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슬아, 이렇게 너를 보고 있으니 이 집이 집 같다는 느낌이 들어.”안
안이슬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반투명한 유리에 키 큰 그림자가 비쳤다.“응. 있어.”사실 그녀는 샤워를 마쳤지만 나가서 심재경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가 마법의 주문처럼 그녀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이슬은 심재경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아직 안 끝났어?”심재경은 뭘 하려는 게 아니고 단지 그녀가 안에 너무 오래 있어서 걱정되었다.“거의 다 됐어. 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필요한 게 있으면 나를 불러.”“알았어.”안이슬은 거울 앞에서 수건을 꼭 쥐고 거울에 비친 이전과 많이 달라진 얼굴을 바라봤는데 가끔은 본인도 너무 낯설었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눈을 감고 지금 이 고비를 넘겨야 더 좋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며 스스로 다짐했다. 샛별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수건을 내려놓고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 안이 수증기 때문에 답답했던지 나와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자 정신도 맑아졌다. 그녀가 침실로 들어갔는데 심재경은 없었다.‘어디 갔지?’그런데 심재경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안이슬은 사실 안도했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는데 빛이 내리 쏘이면서 눈이 어지러웠다. 그래서 눈을 감았더니 오늘 하루 피곤했는지 서서히 졸음이 찾아왔다. 심재경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아예 일어나서 심재경 찾으러 나갔는데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안이슬은 우유 한 컵을 데워다 주며 말했다.“이거 마시고 일찍 쉬어.”심재경은 고개를 들어 안이슬을 바라보며 답했다.“응, 알았어.”“그럼 나 먼저 잘게.”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회사 일 하나만 처리하고 잘게.”안이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갔는데 그제야 안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