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이는 포도 같은 눈을 동그랗고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심재경은 자기 아이를 어떻게 봐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볼에 뽀뽀했다.“아가야, 얼른 크자.”“걔가 크면 재경 씨는 늙는데.”안이슬이 요리를 식탁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심재경은 고개를 돌려 진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이슬아, 샛별이 커도 우리 함께 있을 거야, 맞지?”안이슬은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몰라.”비록 지금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한평생 살다 보면 너무나 많은 의외의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심재경도 자기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금방 좋아졌는데 너무 멀리 생각하고 있었기에 안이슬의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조금 지나자,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 안이슬은 수저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심재경은 샛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배고팠는지 울려고 하다가 지금은 즐겁게 먹고 있다. 안이슬도 모든 걸 끝내고 샛별이 보러 왔다. 샛별이는 눈을 감고 졸리는 것 같았는데 입은 여전히 힘 있게 분유를 먹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는지 땀도 나고 얼굴도 빨개졌다.심재경이 말했다.“먼저 먹어. 난 샛별이 좀 있다가 먹을게.”“안 급해. 샛별이 재우고 같이 먹으면 돼.”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30분 정도 지나자, 샛별이는 잠이 들었는데 심재경이 방에 데려가 침대에 내려놓자,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심재경은 아직 손을 샛별이 등에서 빼지 않았기에 허리를 굽혀 계속 안은 자세로 토닥거렸다. 그러자 샛별이는 다시 눈을 감았고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리자, 심재경은 부드럽게 팔을 빼냈다. 샛별이는 입술을 꿈틀거리더니 이번에는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샛별이가 다시 깨지 않자, 심재경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그는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딸이 곤히 자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안이슬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심재경이
심재경은 안이슬이 건네준 소고기를 입에 넣고 힘 있게 씹었다. 식탁에서는 씹는 소리만 들렸는데 심재경은 방금 안이슬이 무슨 생각을 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듯 말했다.“이슬아, 과거의 일은 우리 이제 다 잊어버리자. 너도 이제 더는 생각하지 마, 알았지?”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너 너무 말랐어. 많이 먹어.”심재경이 말하며 그녀에게 밥을 더 퍼줬고 안이슬은 거절하지 않고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여러차례 수술했기에 몸이 많이 허약해진 건 사실이었기에 심재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윙윙...휴대폰 진동 소리에 안이슬은 휴대폰을 꺼내서 받았다.“여보세요.”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송연아의 목소리를 듣자, 안이슬의 기분이 좋아졌다.“연아야.”심재경도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언니, 어디 갔어요? 왜 집에 없어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심재경을 한번 보고 말했다.“나 지금 재경 씨랑 같이 있어. 밥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으면 여기로 올래? 우리 지금 밥 먹고 있어.”송연아는 안이슬이 심재경을 재경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심리상담이 효과가 있나 보네.’송연아는 두 사람이 같이 오붓하게 가지는 시간이 얼마 만인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난 먹었어요. 두 분 식사해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송연아는 일부러 핑계를 대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안이슬은 끊어진 휴대폰을 보고 웃으며 옆에 놓았다.“연아가 우리 때문에 걱정 많이 했어.”심재경이 말했다.“맞아, 우리 이제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야.”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저녁 식사 후 안이슬이 설거지하려고 하자, 심재경이 못 하게 말렸다.“밥도 네가 했는데 어찌 설거지까지 네가 해. 나 밥은 못하지만 설거지는 잘해.”심재경은 식후의 모든 일을 도맡았는데 안이슬에게 과일을 씻어다 주며 TV를 보면서 먹고 있으라고 하고 자기는 주방으로 들어가 바쁘게 움직였다. 안이슬은 주방에서 앞치마 두르고 싱크대에서 허리를 살짝 굽혀 설거지하는
조금 더 쇼핑하다가는 통째로 가져갈 것 같아서 안이슬이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심재경이 말했다.“아직 시간도 이른데 조금 더 둘러봐.”안이슬이 서둘러 말했다.“나 피곤해.”심재경은 반신반의하면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안이슬이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저기 들어가서 잠깐 쉬었다가 집에 가자.”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들은 의자에 앉아 휴식하며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안이슬은 심재경의 품에서 샛별이를 받아안고 쉬했으면 바꿔주려고 살폈다.“방금 바꿨어.”확실히 아직 마른 상태였다. 샛별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재경이 또 제안했다.“너 많이 힘들 텐데 우리 오늘 집에서 밥하지 말고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들이 식사하고 돌아가자 산 물건들도 차례로 집으로 배달됐다. 샛별이가 졸려 하자, 심재경이 목욕시키고 재우기로 하고 안이슬은 배달된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네 옷은 침실 옷장에 걸어둬.”심재경의 말에 안이슬은 원망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어떤 것들은 쓸모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사서 다 어떡해?”“액세서리와 가방들을 넣을 수납장을 맞춤 제작하면 돼.”안이슬이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낭비하면 안 돼.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쓰는 건 아니잖아.”심재경이 말했다.“너를 위해 쓰고 싶었어.”안이슬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마음 한쪽에서부터 따뜻한 기류가 솟아올랐다. 그녀는 당장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은 가방에 넣어 빈방에 가져가고 지금 사용할 물건들만 골라서 정리했다.샛별이는 힘들었는지 목욕하고 우유를 먹더니 바로 잠들었다. 샛별이 방에서 나온 심재경이 방에 들어가자 안이슬은 침대 옆으로 걸쳐 앉아서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문에 기대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슬아, 이렇게 너를 보고 있으니 이 집이 집 같다는 느낌이 들어.”안
안이슬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반투명한 유리에 키 큰 그림자가 비쳤다.“응. 있어.”사실 그녀는 샤워를 마쳤지만 나가서 심재경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가 마법의 주문처럼 그녀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이슬은 심재경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아직 안 끝났어?”심재경은 뭘 하려는 게 아니고 단지 그녀가 안에 너무 오래 있어서 걱정되었다.“거의 다 됐어. 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필요한 게 있으면 나를 불러.”“알았어.”안이슬은 거울 앞에서 수건을 꼭 쥐고 거울에 비친 이전과 많이 달라진 얼굴을 바라봤는데 가끔은 본인도 너무 낯설었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눈을 감고 지금 이 고비를 넘겨야 더 좋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며 스스로 다짐했다. 샛별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수건을 내려놓고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 안이 수증기 때문에 답답했던지 나와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자 정신도 맑아졌다. 그녀가 침실로 들어갔는데 심재경은 없었다.‘어디 갔지?’그런데 심재경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안이슬은 사실 안도했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는데 빛이 내리 쏘이면서 눈이 어지러웠다. 그래서 눈을 감았더니 오늘 하루 피곤했는지 서서히 졸음이 찾아왔다. 심재경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아예 일어나서 심재경 찾으러 나갔는데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안이슬은 우유 한 컵을 데워다 주며 말했다.“이거 마시고 일찍 쉬어.”심재경은 고개를 들어 안이슬을 바라보며 답했다.“응, 알았어.”“그럼 나 먼저 잘게.”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회사 일 하나만 처리하고 잘게.”안이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갔는데 그제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면 몸이 이 정도 굳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심재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건드리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안이슬의 몸은 그제야 조금 풀렸다.“나... 아직 준비 안 됐어.”“알아.”심재경은 그녀의 등 뒤에 바싹 다가가서 가슴을 등에 대고 말했다.“나 기다릴게.”안이슬은 알았다고 했고 심재경의 이해에 긴장이 많이 풀렸다. 안이슬은 심재경이 줄곧 배려해 주는 게 안타까워서 스스로 빨리 이겨낼 거라고 다짐하면서 몸을 돌려 심재경의 품에 안겼다.심재경은 순간 마음속에 기쁨이 소용돌이쳤는데 그도 안이슬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눈을 감고 안이슬을 토닥거렸다.“잘 자.”...다음 날 안이슬은 계속해서 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송연아도 여전히 밖에서 기다렸다. 11시가 거의 되어서 안이슬이 나오자, 송연아가 일어서며 맞이했다.안이슬이 말했다.“우리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두 사람은 아주 근사한 식당을 찾았다.“연아야, 오늘은 내가 살 거니까 예의 차리지 말고 원하는 거 다 시켜.”안이슬의 목소리에서 송연아는 예전처럼 우울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게 효과가 있기는 있네.’안이슬의 마음 상태가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좋아요. 그럼 나 먹고 싶은 걸 다 주문할 거예요.”송연아는 웃으며 말하고는 메뉴를 보며 몇 가지 좋아하는 요리를 주문했다. 안이슬이 사는 것이니 작정하고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안이슬이 말했다.“나 어젯밤에 재경 씨와 같이 있었어.”송연아는 놀라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은 물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안이슬이 마음을 열어서 그녀는 기뻤다.“재경 선배 좋아하겠네요.”송연아가 말했다.안이슬은 자기와 심재경의 지난 시간을 생각하더니 말했다.“나도 좋았어.”“언니가 다시 마음을 열어줘서 저도 기뻐요. 언니를 위해서도, 선배를 위해서도 그리고 샛별이를 위해서도 좋은 거예요.
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송연아가 대답했다.“좋아요. 제가 살게요.”“재경 씨한테 사라고 해야지.”안이슬이 말하자 송연아가 웃었다.“그러네요.”송연아가 안이슬에게 요리를 건네며 말했다.“제가 재경 선배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나 밥 한 끼 거하게 얻어먹어도 되죠.”“그래, 거하게 받아내.”송연아가 웃었다.“당연히 그래야죠.”...구애린이 책을 보고 있는 찬이에게 말했다.“찬이야, 너의 엄마는 언제 돌아와?”구애린이 턱을 올려들고 입으로는 석류를 먹으며 묻자, 찬이가 대답했다.“저도 몰라요.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얘기할 때도 찬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보고 있었다.“엄마가 전화를 안 하면 너도 엄마에게 전화를 안 해?”구애린이 물었다.“아빠가 말했어요. 엄마는 귀국해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대요. 그러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요.”구애린은 찬이에게 다가앉으며 말했다.“찬이야, 네 생각에 아빠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찬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고모는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구애린이 한숨을 쉬면서 배를 만졌다.“이 배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넌 재미있게 놀았지?”구애린은 찬이가 스위스에 스키 여행 다녀온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찬이는 스키 타며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재미있었어요. 또 가고 싶어요.”“그럼,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는지 물어봐. 엄마가 돌아오면 또 너를 데리고 갈 수 있잖아.”구애린이 찬이에게 아이디어를 주었지만, 찬이는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아빠가 엄마에게 전화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넌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야?”찬이가 정중하게 말했다.“이건 고집에 센 것이 아니고 말을 잘 듣는 거예요.”“어머, 그래. 찬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 들었지? 뭔가 수상한데?”구애린이 그의 머리를 만지며 또 말했다.“말해. 너 뭐 있지?”찬이가 웃었다.“역시.
저녁이 되어 송연아는 심재경이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 심재경은 샛별이를 안고 있었고 그 옆에 안이슬도 있었다. 멀리에서 세 식구를 보는데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걸어가자 안이슬이 일어나서 반겼다.“연아야.”송연아는 다가가며 말했다.“길이 너무 막혀서 늦었어요. 오래 기다렸죠?”“아니야, 우리도 금방 왔어. 얼른 앉아.”안이슬이 말했다.송연아는 의자를 꺼내 앉으며 샛별이를 봤다.“그래도 여자아이가 조용하네요.”그러면서 손을 내밀었다.“제가 안을게요.”심재경은 샛별이를 송연아에게 건넸다.“왜, 아들로 부족해? 딸이 부러워?”“저를 자극하지 말아요.”심재경이 웃었다.“넌 아들이 둘이니 나중에 그들이 너에게 며느리도 두 명이나 데려올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우리 보배 하나여서 나중에 커서 시집가면 외로울 것 같아.”송연아가 말했다.“그러네요. 저는 며느리가 둘이네요. 그럼, 저 지금부터 선배한테 잘 보여야겠네요. 그래야 나중에 샛별이를 제 며느리로 데려오죠.”안이슬이 그녀에서 물을 따라줬다.“너무 멀리 생각하는 거 아니야? 너 이렇게 젊으면서 벌써 시어머니 하고 싶어?”송연아가 말했다.“집에서 심심하니 이런 거라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거죠.”심재경이 그녀의 모습에 감탄했다.“역시, 시간은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송연아도 맞장구를 쳤다.“그러게요. 선배가 사업하고 제가 전업주부를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예전에 아픈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사람들이 말이죠.”심재경이 웃었다.“그러게 말이야.”그런 말을 했던 날이 바로 어제 같았지만, 현실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바뀌었다.송연아가 말했다.“약속해요. 샛별이 나중에 우리 며느리로 준다고.”“그만해. 너도 신시대 여성이면서 어린애들을 놓고 그런 혼약을 맺고 싶어? 명확히 말하는데 난 동의하지 않아.”“쳇.”사실은 송연아도 농담이었다. 벌써부터 어린애들의 혼약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애들이 크면 그때 시대는 지
송연아도 심재경도 한 번에 다 마시고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송연아는 잔을 내려놓고 품에 있는 샛별이를 보았는데 샛별이는 송연아의 품에서 전혀 낯가림이 없이 울지도 않았다. 두 눈은 동그랗고 속눈썹은 짙고 길었으며 포동포동한 얼굴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송연아는 참지 못하고 샛별이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샛별이 너무 귀여워요.”“너도 두 아이의 엄마면서 부러워해?”송연아가 웃었다.“그러게요. 제 아들도 너무 귀여워요.”그때 종업원이 요리를 올려오자 안이슬이 송연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샛별이는 나한테 주고 식사해.”“괜찮아요. 제가 안고 있을게요.”심재경이 안이슬의 손을 잡아당겨 앉혔다.“괜찮아. 연아는 안 먹어도 돼.”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선배,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심재경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연히 와이프가 더 중요하지.”“이봐요, 심재경 씨, 이런 배은덕한 일이 정말 있네요. 자기 목적을 달성했다고 도와준 사람을 이렇게 대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심재경이 마음속으로 재미있어하며 웃었다.“연아야, 너를 놀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그런데 너 세헌이와 같이 살더니 성격이 닮아가는 것 같다.”송연아가 물었다.“선배, 지금 그 말은 제 남편 성격이 나쁘다는 거예요?”심재경은 감히 직접적으로 말을 못 하고 서둘러 해명했다.“난 그런 말 안 했어. 네가 한 거야.”송연아가 강세헌에 대한 보호본능에 그는 웃었다.“아이고, 비슷한 사람들끼지 만나서 산다더니 너희야말로 정말 똑같은 좀생이들이야.”송연아는 입을 삐쭉거리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선배야말로 진짜 좀생이면서...’식사 도중에 샛별이가 울음을 터뜨려서 안이슬은 샛별이를 안고 식당에 있는 휴게실로 가서 샛별이에게 기저귀를 바꿔줬다.안이슬이 자리를 비우자 송연아는 농담기를 버리고 정색해서 말했다.“선배랑 이슬 언니 잘 지내고 있어요?”심재경은 안이슬의 변화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우리 둘 다 노력하고 있어.”송연아는 한시름을 놓았다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