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성과 도범이 방금 전 했던 약속들을 사람들은 모두 지켜보고 들었다.심지어 박이성은 옆 사람들에게 들리라고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을 했었다. 도범이 바보같이 자신의 앞에서 신발을 닦아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지금 도범이 부른 110억의 가격을 들으니 그는 정말 이 별장이 그만한 가치를 가지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110억은 적지 않은 돈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 돈을 내놓게 된다면 도범의 계략에 빠지는 건 아닐까?그는 도범이 일부러 가격을 높이 불러 그를 난감하게 하려 한다고 의심했다.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자니 도련님인 그가 도범의 신발을 닦아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것보다 창피한 일도 없었다.그때 성경일이 고민해 보더니 박이성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이성아, 겁내지 마. 너는 110억만 내고 나머지는 내가 내줄게, 저놈한테 질 수는 없잖아, 저놈도 돈 얼마 안 남았을 거야, 그러니까 20억 더 불러.”박이성은 그 말을 들으니 청심환이라도 먹은 듯 마음이 놓였다.“130억.”무대 위에 있던 여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이곳은 박이성과 도범의 전쟁터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멍청하게 두 사람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심지어 그녀가 묻지 않아도 두 사람이 알아서 가격을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 별장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경이었다.“130억, 박 도련님…”그녀는 높은 낙찰금액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질 상금을 생각하니 목소리까지 떨려왔다.그녀도 이런 장면은 처음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도범이 다시 입을 뗐다.“왜? 박 도련님 많이 쪼잔해졌네. 고작 20억 붙이고 나를 이기겠다고? 그럼 저는 150억 부르겠습니다.”“미쳤어? 150억이라니.”“그러니까, 그냥 마음대로 부르는 거 아니겠지?”“150억이면 저런 별장 두 채는 사겠다.”자리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렸다. 그들도 돈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물건을 살 때, 적은 돈을 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그런데 박 씨 집안의 데릴
지금의 박이성은 더 이상 돈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체면밖에 없었다.그는 박 씨 집안의 도련님이었기에 데릴사위인 도범보다 훨씬 존귀한 존재이며 절대 도범과 비길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그랬기에 그는 절대 도범의 신발을 닦아 줄 수 없었다.더구나 지금은 성경일이 도와주고 있었기에 그는 110억만 내면 그만이었다. 110억을 그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역시 성 도련님 대단하네, 가격을 더 올리다니.”“그러니까, 성 도련님이 데릴사위한테 지겠어?”“그런데 도범 용 씨 집안에서 경호원으로 일해서 월급을 꽤 많이 받는다고 하던데. 용 씨 집안에서 돈을 빌린 건지 월급을 미리 받은 건지 모르겠네.”“월급이 많다고? 아무리 많아봤자 경호원일 뿐이잖아.”“한 달에 40억이래, 그래도 별로야?”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했다.도범도 미간을 찌푸렸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박이성이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에 가격을 더 올려 부르다니.“왜? 계속해. 이제 좀 무서워? 지면 내 신발 닦아줘야 하는 거 알지?”박이성은 도범이 한꺼번에 높은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것을 보곤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럼 160억.”하지만 그때 도범이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했다.“박이성, 계속해. 이제 네 차례야.”“160억?”도범의 말을 들은 박이성이 놀라서 물었다. 도범은 정말 목숨 걸고 그와 싸울 기세인 듯했다. 계속 이러다간 성경일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박이성이 고개를 돌려 성경일을 바라봤다. 그는 성경일이 얼마나 더 부담해 줄 수 있을지를 묻고 있었다.성경일은 굳은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몇십 억만 내주면 끝일 줄 알았는데 지금 벌써 160억까지 올라갔다. 만약 박이성이 이기게 된다면 그는 50억을 내야 했다, 하지만 50억을 내고 이긴다고 해도 별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도움을 청하는 듯한 표정을 하곤 자신을 바라보는 박이성을 본 성경일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 귓속말을 했다.“저놈 미쳤어, 여기에
박이성은 도범에게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결국 이를 물고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그래, 오늘은 내가 재수 없었다고 인정할 게. 이 별장을 너한테 줄 테니까 너한테 정말 그 많은 돈이 있다는 거 증명해 봐. 네가 일부러 가격을 높이 부른 게 아니라는 거 증명해 보라고. 그 많은 돈을 내놓지 못한다면 사장님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데릴사위가 별장 하나를 위해서 190억을 쓰다니, 정말 놀랍다, 놀라워.”“별장 주인도 이 가격에 팔렸다는 거 알고 놀라겠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도범을 바라봤다. 전의 비웃음은 사라지고 경외심이 담겨있었다.그들은 이렇게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네가 인정한다면 됐어.”도범이 웃으며 무대 위의 여자를 보며 말했다.“저한테 낙찰해 주시죠.”“190억 한 번.”“190억 두 번.”“190억 세 번.”“낙찰입니다.”여자가 말을 하며 놀란 얼굴로 망치를 내려쳤다.“자, 박이성, 박 도련님, 이제 신발 닦아줘야지. 여기 천도 없는데 어떻게 닦아줄 생각이야? 혀로 핥을 건 아니지?”도범이 웃으며 물었다. 박이성은 전부터 박시율과 수아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었기에 도범은 쉽게 그를 봐 줄 생각이 없었다.“일단 돈부터 내놔, 돈도 안 내놓고 너한테 정말 그 돈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겠어?”박이성은 도범에게 그 돈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머지않아 도범은 190억을 지불하고 돌아왔다.“이제 됐지? 박 도련님.”도범이 웃으며 물었다.“미안하다, 이성아. 이건 정말 못 도와주겠다. 저놈한테 돈이 이렇게 많을 줄 누가 알았겠어. 용 씨 집안에서 돈을 많이 받았나 보네.”한지운이 옆에서 말했다.“신발 닦아주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못하는 것도 아니고.”박이성이 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리곤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하지만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다, 그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어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재밌네.”도범이 웃으며 무릎을 굽히고 앉은 박이성을 바라봤다.“내 와이프랑 딸 괴롭힐 때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봐? 계속 닦아, 졌으니 약속한 대로 깨끗하게 닦아줘야지.”“닦으면 될 거 아니야.”박이성이 헐거벗은 채 이를 악물고 도범을 욕했다. 그는 도범이 점점 더 싫어졌다.보아하니 용 씨 집안에서 도범에게 돈을 많이 주는 것 같아 어르신 생신잔치 때 그를 내쫓는 것도 크게 희망이 없어 보였다.그랬기에 유일한 방법은 바로 어르신 생신이 지난 뒤, 도범이 경계를 풀었을 때, 장소연을 시켜 도범에게 그 약을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그 약을 먹게 된다면 도범은 한 달 뒤에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도범이 이제 곧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박이성이 조금 편안해져 도범의 신발 바닥을 닦아줬다.“다 됐어.”박이성이 일어서며 불퉁하게 말했다.“박 도련님 솜씨는 또 처음 맛보네. 나름 괜찮네.”도범이 웃으며 다시 덧붙였다.“박 도련님 나름 괜찮네, 자기가 졌다는 걸 인정할 줄도 알고. 나는 별장 산 거 수속 좀 밟으러 가야 해서 먼저 가볼게.”박이성이 떠나는 도범을 보다 경매장을 떠났다. 윗옷이 없었던 그는 일단 옷을 파는 곳으로 가 옷을 한 벌 샀다.“190억, 190억. 그 병신 같은 게 190억을 내놓았다니,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자신이 얕잡아보던 사람에게 진 박이성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오늘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도 화가 났다. 이 일은 금방 사람들 사이에서 퍼질 것이 분명했다.“용 씨 집안에서 월급을 미리 줘서 그래, 아니면 절대 그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없었을 거야.”한지운은 도범이 그 별장을 사 갔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물론 그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이는 치명적이었다.특히 박이성은 도범의 신발까지 닦아줬으니 그는 평생 이를 잊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이제 곧 죽을 놈이니 그냥 두고 보자고, 그 별장을 어르신께
“정말 그렇다면 용 씨 집안이 너무 관대한 거고.”“알았어, 일단 알아보라고 할게. 그런데 우리 저번에 돈 들여서 킬러를 찾아서 도범을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했잖아,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네.”저번에 쓴 돈을 생각하니 한지운이 조금 아까웠다. 그 많은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도범을 죽이지 못했으니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건 조금 받아들일 수 없었다.한편 도범은 모든 수속을 밟은 뒤, 열쇠를 들고 별장 앞으로 갔다.“190억원이 조금 비싸하다고는 하지만 시율이한테 집을 줄 수 있으니 그걸로 됐어.”도범이 별장을 보며 웃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별장 안의 화원과 인테리어를 보니 도범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별장 뒤에는 또 다른 집들이 지어져있었는데 그 집들도 보기에 괜찮았다. 아마도 하인들이 사는 집인 듯했다.“여기에 조금 고쳐야 할 곳이 있는지 모르겠네.”도범이 별장을 둘러보다 장진에게 전화를 걸어 별장으로 오라고 했다.장진도 여자였으니 여자의 안목은 다를지도 몰라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머지않아 장진의 차가 별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가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대박, 사부님, 이 집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이렇게 크다니, 너무 부러워요. 제가 사는 곳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거실로 들어선 장진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도범을 보며 물었다.“너 정말 기억력 별로다, 왜 또 사부라고 부르는 거야?”“여기에는 다른 사람도 없잖아요. 우리 둘 밖에 없는데 사부님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부대에서 사부님 따라다니던 시절이 좋아요, 중주는 너무 재미없어요.”장진이 도범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가지색의 긴 치마는 그녀의 늘씬한 두 다리와 굴곡진 몸매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할 일 없으면 여행이라도 가, 아니면 쇼핑을 가던지. 네 신분이면 아무나 잡아서 너랑 놀아달라 하는 거 어렵지 않잖아.”“재미없어요, 차라리 사부랑 노는 게 더 좋아요.”장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도범과 장진은 각자 운전해 가구를 고르러 갔다.하지만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박이성에게 들킬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도범이랑 그 여자네.”박이성이 소리쳤다, 그는 벌써 여러 번 두 사람이 함께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장진은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뒷모습과 긴 다리를 보니 박이성은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도범과 함께 떠난 여자가 경매장에서 본 그 여자라고 그는 확신했다.“이제 알 것 같네, 그 돈 절대 도범 돈이 아니야. 용 씨 집안에서 월급을 미리 준 것도 아니고 저 여자 돈이네.”박이성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그 별장이 박 씨 저택과 멀지 않았던 탓에 그는 이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그는 곧바로 성경일과 한지운에게 전화를 걸었다.“왜? 이성아, 무슨 일인데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돌아오라고 한 거야?”성경일과 한지운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방금 도범이 그 별장에서 나오는 걸 봤어.”박이성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성경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이성아, 지금 장난해? 그딴 일로 다시 오라고 한 거야? 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아? 도범 그놈 별장을 샀으니 당연히 와서 보려고 했겠지. 네가 예쁜 마누라랑 결혼을 했으니 당장 그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싶은 거랑 같은 거라고.”“그러니까, 게다가 도범 같이 가난한 사람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어렵게 돈이 생겨서 별장을 샀으니 당연히 와 볼 생각을 했겠지. 어르신에게 줄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돈으로 산 거니 별장에서 며칠 지낼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한지운도 박이성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박이성이 답답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정말 그것뿐이었다면 내가 두 사람을 다시 불렀겠어? 별장에서 나온 사람이 도범 혼자가 아니라 여자도 있었다고.”“여자? 박시율 아니야?”한지운이 놀라 추측하기 시작했다.“용신애인가? 설마 용신애가 도범한테 이 별장을 대신 사
“내가 두 사람을 봤을 때, 마침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라고. 그래서 사진을 못 찍었어, 사진까지 찍었다면 더 완벽했을 텐데.”박이성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도범 그 여자 돈으로 별장을 산 게 분명해.”“맞아, 이성아. 네가 별장 맞은편에 사니까 요즘 잘 좀 지켜봐, 무언가를 발견하는 대로 기회를 찾아서 사진을 찍도록 해. 도범이랑 그 여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진이면 더 좋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키스하고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사진을 찍어서 동네에 소문을 낸다면 어떨 것 같아?”성경일이 웃으며 말했다. 이는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도범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머리가 아팠는데 도범이 이렇게 주동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줄 줄이야.”“당연하지,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도범의 꼬투리를 잡아내야 해.”박이성이 주먹을 쥐고 말했다.“우리 집 마당이 마침 도범 별장이랑 제일 가깝거든. 나무 뒤에 숨어서 몰래 사진을 찍는다면 도범도 발견하기 힘들 거야.”“그래, 그럼 이성이 네가 수고 좀 해. 최대한 친밀한 사진을 찍어야 해. 박시율 쪽은 내가 언제 시간 봐서 찾아가서 얘기 좀 해볼게. 도범이 그 여자랑 별장을 샀다는 걸 알게 되면 박시율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성경일이 말했다.“좋은 생각이야.”박이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이 별장을 도범이 여자를 도와서 산 거라면 아마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지를 목적으로 샀을 거야. 몰래 데이트를 하기 위한 거지. 만약 도범 이름으로 되어있다면 아마 여자가 도범에게 선물해 준 거겠지. 도범 그때 가서 뭐라고 할 건지 내가 볼 거야.”“그럼 도범 이름이 아니라 그 여자 이름으로 되어있다면?”“그래도 도범은 못 벗어나, 도범이 별장을 사러 갔는데 다른 여자 이름이 적혀있으면 박시율이 좋아하겠어? 도범이랑 여자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는 것밖에 더 되겠냐고. 그리고 두 사람이 여기에서 몰래 데이트를 즐겼을지도 모른다고 볼 수 있지.”“그 여자
용정 부동산, 박시율이 테이블 앞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요즘 회사의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덕분에 그녀는 일이 많지 않았다.그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성경일이 쳐들어왔다.그는 노크를 한 뒤, 박시율의 대답을 듣고서야 꽃 한 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섰다.“성 도련님?”성경일을 바라보는 박시율의 눈빛에 싫증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성경일을 보며 웃었다.“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우리 회사랑 합작하려고 온 건 아니겠죠? 도련님 회사는 이쪽이랑 연관이 없는 걸로 아는데.”그 말을 들은 성경일이 웃으며 문을 닫았다.“시율아, 내가 왜 너를 찾아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그가 말을 하며 꽃다발을 박시율에게 건네줬다.“도범 그놈 너한테 하나도 어울리지 않아, 공부도 안 한 놈이라서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 파는 걸로 돈을 번 놈이 네 남편이라는 게 나는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게다가 예전에는 배달부로 일했었잖아.”박시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경일이 계속 그녀를 말렸다.“그러니까 나랑 결혼하자, 걱정하지 마. 너랑 네 딸한테 누구보다도 잘 대해줄 테니까. 수아 내 딸처럼 대해줄게.”“죄송합니다, 성 도련님. 꽃은 다른 분에게 주시죠. 적지 않은 여자들이 도련님의 꽃다발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련님은 잘생긴 데다가 돈도 많으니 수많은 여자들의 이상형이잖아요.”박시율은 성경일이 내민 꽃다발을 받지 않았다. 예전에는 성경일이 괜찮다고 생각했었지만 도범이 돌아온 뒤로 성경일이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저번에 사람들을 데리고 박시율의 집을 뜯으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남자라면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쓸 리가 없었다.성경일은 박시율이 자신의 꽃을 받아주지 않자 어색하게 웃으며 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다시 박시율에게 다가와 말했다.“그래, 인정할게. 나 돈 많고 신분도 낮지 않아서 여자 찾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나는 너 하나면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