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부축해 일어섰다.그때 윤지은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무슨 상황이야? 뭔데 이렇게 맞았어?”나는 이를 악문 채 진동성이 한 짓을 털어놓았다.“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아직 실력이 모자라 저 인간을 직접 찢어발기지 못한 게 한이에요.”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윤지은은 차갑게 말했다.“실력이 없는 걸 알면 노력해야지 허구한 날 여자나 밝히니까 계속 제자리지. 쌤통이네.”나는 적어도 윤지은이 나를 위로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지은은 위로는커녕 나를 비꼬아댔다.하지만 그 말이 너무 맞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윤지은은 나를 혼낸 뒤 진동성 일행을 바라봤다.“두 사람이 태연과 애교 전남편들이지?”“당신은 또 누구야?”왕정민은 차가운 얼굴로 윤지은을 훑으며 물었다.운지은은 입꼬리를 싸늘하게 말아 올렸다.“네 어미다. 이 자식아!”그 말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윤지은이 사람을 갈구는 모습은 소여정과 똑 닮았다.“양동준, 쳐!”양동준은 왕정민에게 걸어갔다. 그러자 왕정민은 겁에 질린 채 연신 뒷걸음쳤다.“당신들이 뭔데 사람을 때려?”윤지은은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대꾸했다.“어미가 아들놈 교육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양동준은 두말없이 다가가 왕정민의 뺨을 팅팅 부을 때까지 때렸다.왕정민은 뭐라 하려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양동준이 또다시 뺨을 때리는 바람에 더 이상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윤지은은 네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더 물어볼 거 있어?”진동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진소민과 여간호사는 더더욱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그때 윤지은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 내 사람이야.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한테 도전하는 거로 간주할 거야.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잘 알 거야.”윤지은이 나를 지켜준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진동성의 표정은 잿빛이 되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윤지은은 진동성 일행을 혼쭐내고 나한테 말했다.“아직도 안
“어떻게 할 생각인데?”왕정민은 어두운 얼굴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입이 팅팅 부어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진동성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어떡하긴, 당연히 사람들 시켜 죽여야지. 방금 그 여자, 너도 봤지? 아무리 봐도 어느 대기업 딸인 것 같아. 곱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가 아니고서야 해명할 기회도 안 줄 리가 없어. 저 여자가 방금 정수호가 자기 사람이라고 했으니 되도록이면 직접 손쓰면 안 돼. 안 그러면 화를 입을지도 모르니까.”진동성의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 하지만 왕정민은 대꾸하지 않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가자. 다른 곳에서 천천히 상의해야겠어.”왕정민은 겹겹이 싸인 분노를 급히 분출해야 했다. 그는 진동성 옆에 있는 진소민을 흘긋거렸다.한동안 보지 않았더니 진소민은 훨씬 더 여성스러워졌다.왕정민의 눈빛을 느낀 진소민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그녀는 이제 진동성을 모시고 있으니 진동성 여자이기에 더 이상 왕정민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진동성의 말 한마디는 진소민의 결심을 구렁텅이로 처넣었다.“우리 파트너 바꿔서 놓지 않을래?”진소민은 진동성이 그러지 않길 바라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그를 봤다.하지만 진동성도 진작 왕정민의 파트너를 눈독 들이고 있었기에 바로 헤실거리며 대답했다.“가자.”진소민의 마음은 순간 씁쓸해졌다. 그녀는 사실 이런 생활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돈 많은 남자 한 명을 잡아 스폰 받으며 지내는 거였다.진소민은 반항하지 못했다. 그럴 배짱도 없었다.하지만 왕정민의 파트너는 이런 것에 거리낌이 없는 걸 보니 이미 경험이 많은 듯했다.결국 진소민도 어쩔 수 없이 세 사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식사를 마친 뒤, 윤지은은 양동준더러 하정현과 한지영을 바래다주게 하고 나를 혼자 남겼다.나는 이게 대체 무슨 뜻인지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나한테 할 말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윤지은은 여
요즘 안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사모님과는 접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하지만 사모님을 피했더니 윤지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와 동시에 조마조마했다. 그러면서 윤지은이 대체 어떻게 알았을지 궁금했다.나는 결국 뻔뻔하게 물었다.“뭘 아는 거예요? 아는 게 있다면 알려줘요. 저도 그날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알몸으로 구경당하지는 않았겠죠.”윤지은의 낯빛은 순식간에 변했다. 나는 윤지은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윤지은이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틀림없다. 그 결론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윤지은이 알고 있었다면 그동안 왜 아무 말도 안 해줬지?’‘내가 요즘 사모님과 접점이 많아지니 이제야 언급하는 건 뭐지?’나는 마음이 복잡했고 호기심이 점점 깊어졌다.“아무것도 아니야.”윤지은은 내 호기심을 건드리고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사람이 왜 그래요? 말을 하다 말 거면 차라리 하지나 마요.”윤지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지금 나를 의심해?”나는 일순 겁이 나 바로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의심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을 건드리고 아무 말도 하는 건 사람 피 말리는 거랑 뭐가 달라요?”“나도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호의를 무시하지 마.”윤지은은 나를 보며 강조했다.하지만 너무 애매모호한 말에 나는 대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사모님이 맞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 괴로웠다.“다른 질문은 더 있어요? 없으면 전 가볼게요.”나는 궁금하고 답답해 더 이상 윤지은과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윤지은은 나를 홱 째려봤다.“얌전히 앉아 있어. 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못 가.”“그건 너무 독단주의 아니에요? 묻지도 말라 가지도 말라 하면 대체 뭘 하자는 거예요?”“내 시중이나 들어. 왜? 싫어?”윤지은은 뜬금없이 요구했다.그 말에 나는 잠깐
“정말 개예요? 왜 사람을 이렇게 물어요?”나는 윤지은의 뜬금없는 행동에 기가 막혔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또 이러는지 의문이었다.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윤지은의 옷을 찢어버렸다.“계속 물면 난 지은 씨 당장 앉아버릴 거예요. 누가 더 손해인지 두고 보자고요.”윤지은은 심장이 덜컹했지만 나를 놓아주기는커녕 더 세게 물었다.하지만 윤지은이 물수록 나는 그녀의 옷을 벗겨댔다. 그러다 얼마 뒤 아예 옷을 찢었다.이토록 연약한 상대를 나도 똑같이 물 수는 없다. 다만 그 대신 호되게 혼내줄 수는 있었다.그 뒤로 분위기는 갑자기 이상하게 흘렀다. 윤지은은 자발적으로 내 목에 팔을 둘렀고 곧이어 아찔한 장면이 이어졌다.하지만 모든 걸 끝낸 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어쩌다 또 몸을 섞게 됐는지 어리둥절했다.나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 반해 윤지은은 덤덤한 표정이었다.“내가 방금 그랬을 때 왜 밀어내지 않았어요?”나는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윤지은은 옷을 정리하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왜 밀어냐? 봉사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만인데.”“누가 봉사했다는 거예요? 난 지은 씨 혼내 준 거예요. 오히려 지은 씨야말로 방금 진짜 마음이 흔들린 거 아니에요?”윤지은은 나를 홱 째려봤다.“마음이 흔들려도 생리적 수요 때문이지 사람과는 단 한 푼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자아도취 그만해.”‘젠장.’가만 보니 나는 윤지은의 독설에 항상 받기만 했지 한 번도 말발로 윤지은을 이겨본 적이 없다.나는 의자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그러자 윤지은은 언짢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안 피우면 안 돼? 나 담배 냄새 싫어.”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흘긋 보고는 결국 마지못해 꺼버렸다.“그럼 이제 뭐 할 거예요?”나는 앉아 있는 게 너무 지루해 몸이 불편할 정도였다.“뭘 한다는 거야?”“계속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를 일부러 남겼으면 할 일이거나 할 얘기가
내가 떠난 뒤 윤지은은 끝내 표정이 풀어졌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그녀는 너무 좋았다. 너무 끝내주는 속궁합 덕에 윤지은은 매우 기쁘고 만족했다.솔직히 윤지은은 본인이 너무 민감해서 잘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찾아 시험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윤지은은 방탕한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뼛속까지 남자를 혐오한다. 그녀는 소여정이나 백연우처럼 쾌락을 느끼려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는 스타일도 아니다.그동안 남자라고는 나와 여준휘 뿐인데, 첫사랑 여준휘한테 모든 마음을 바쳤지만 결국 상처만 남게 되었다.그 뒤로 윤지은은 더 이상 남자한테 진심을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보니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더군다나 나와 몸을 섞는 게 즐겁게까지 느껴졌다. 이토록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쁜 건 다른 사람한테서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윤지은은 시동을 걸어 친구 사모님의 집으로 향했다.문을 연 사모님은 제 친구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했다.“지은아, 여긴 어쩐 일이야?”윤지은은 차키를 쑥 내밀었다.“수호 씨 대신 차 돌려주러 왔어. 앞으로 여기 올 일 없을 거야.”“왜?”사모님은 의아한 듯 물었다.윤지은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완곡히 말했다.“유미야, 나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지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못 알아듣겠는데?”“용천 호텔에서 너랑 수호 씨가...”윤지은은 친구의 남편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내리깔았다.그 말에 사모님의 표정은 단번에 변했다.“너, 다 알았어?”사모님은 불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그 순간 윤지은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사실 윤지은도 확실하지 않아 찔러본 거였는데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윤지은은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저와 친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같은 남자와 불분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니.‘정수호가 대체 뭐가 좋은데?’윤지은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유미야, 난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어.
사모님은 얼굴이 발그레해서 윤지은을 사람이 없는 방으로 끌고 갔다.“유미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혹시 정수호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말만 해. 내가 가서 죽일 테니까.”사모님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아, 아니야. 수호 씨와는 아무 상관 없어. 내 문제야. 난, 난 좋은 여자가 아니야. 내가 용천 호텔에서...”사모님은 입을 오므린 채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결국 답답해진 윤지은이 따져 물었다.“네가 용천 호텔에서 뭐? 말 좀 해. 답답해 죽겠어.”“내가 너한테 말하면 절대 연우와 여정이한테 말하면 안 돼.”사모님은 입을 떼기 어려운 듯 오므렸다가 한참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사실 그날 어렴풋이 수호 씨가 웬 여자랑 하는 걸 봤거든. 나도 하필 술 때문에 몸이 달아올라 너무 불편한 거야. 그래서... 그래서...”“그래서 뭐? 혼자 해결했어?”윤지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그 말에 사모님의 얼굴은 빨간 노을처럼 화르르 달아올랐다.“지은아. 설마 이랬다고 내가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사실 나도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호섭 씨가 아픈 뒤로 한 적이 없기도 하고 그날 너무 자극을 받아 참지 못했던 거야.”사모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한 듯 말했다. 사모님은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라 절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 그날 밤 한 게 처음이자 유일한 한 번이다.안 그래도 그동안 남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걸 마음속 깊이 숨긴 채 꺼낼 생각이 없었는데, 윤지은이 말을 꺼내는 바람에 입 밖에 꺼낸 거였다.윤지은은 사모님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됐어. 그만 울어.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 거 정상이야.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정말? 그런데 좋은 여자는 그런 짓 하면 안 되잖아.”“좋은 여자면 뭐? 좋은 여자는 생리적 수요가 없는 줄 알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이 꽉 막혔어?”사모님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윤지은을 바라봤다.“지은아, 그럼... 넌 그런 거 해?”사모님은 일순 호
“어쩐지 계속 남자 친구를 안 사귀나 했네. 넌 성적 수요가 적은가 보네. 연우한테서 들었는데 여자가 성적 수요가 적다면 불감증일 경우가 많대. 너도 병원에서 검사받아 보는 게 어때?”윤지은의 낯빛은 더 이상해졌다. 사실 여기까지 직접 온 건 사모님한테 따져 묻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사모님한테 질문세레를 받고 있으니.윤지은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유미야. 그날 밤 정수호와 했다는 여자 얼굴 제대로 봤어?”“아니. 술에 취해서 흐릿하게 보였어. 그런데 그 여자 가슴에 문신이 있었어.”“문신? 무슨 문신?”윤지은이 물었다.사모님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나비 문신이었던 것 같아. 맞아. 나비 문신이야. 가슴 여기에 있었어.”윤지은은 그날 일을 곰곰이 회상했다.“그날 밤 식사 자리에 우리 넷을 빼면 정수호 형수랑 여자 친구였지?”“우리 넷 중에는 가슴에 나비 문신을 한 사람이 없고, 형수랑 여자 친구도 없었던 것 같은데.”윤지은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그날 일을 애써 떠올렸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아무튼 오늘부터 정수호랑 떨어져. 정수호 좋은 사람 아니야. 네 몸을 노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사모님은 깊이 생각지도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윤지은은 사장님을 흘긋 보고는 자리에 한참 앉아있다가 떠났다.윤지은이 떠난 뒤 사모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이상해졌다....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택시를 타고 월세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했다.집에는 현성 혼자만 있었다.“민우는?”나는 물으면서 소파에 앉았다.그러자 핸드폰을 하고 있던 현성이 대답했다.“여자 친구랑 밥 먹으러 갔어.”현성은 말하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수호야, 오늘 밤 너도 나가서 지내는 게 어때? 나랑 주선영이 단둘이 이을 기회를 마련해 줘.”“여긴 내가 세 맡은 집인데 왜 내가 나가야 해?”현숭은 두말없이 두터운 현찰을 꺼내 내밀었다.“강북에 있는 3성급 호텔이든 5성급
“고수연!”형수는 화가 나고 억울해서 버럭 소리 질렀다. 다른 사람 눈에 그녀는 아내로서의 도리도 안 지키는 방탕한 여자처럼 보일 거지만 누구도 그동안 형수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를 거다.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없지만 가족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가슴에 칼을 꽂으니 형수는 너무 괴로웠다.고수연도 제 말이 심했다는 걸 인식했는지 다급히 언니 옆으로 다가갔다.“언니, 난 그런 뜻이 아니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난 그냥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수호도 좋은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절대 빠지지 마.”그게 사실인 건 맞지만 형수의 마음은 무척 괴로웠다.“수호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잘 알아. 고수연, 네가 진용진한테 불만 많은 거 알아. 하지만 애먼 사람한테까지 안 좋은 프레임 씌우지 마. 너랑 진용진 사이의 일은 수호 씨랑 상관없잖아.”고수연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내 몸 하나 돌볼 겨를도 없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잖아.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 먼저 잘게.”말을 마친 뒤 고수연은 일어서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형수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혼은 여자한테 큰 영향을 주곤 하다. 특히 고수연처럼 애까지 있는 유부녀라면 더더욱.게다가 진용진이 얼마나 머리를 썼는지 정말 이혼하게 된다면 고수연은 빈털터리로 쫓겨날 거다. 그러면 아이는 오히려 짐이 되고 만다.형수는 갑자기 저와 진동성 사이에 애가 없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부가 갈라지는 순간이 오면 안 좋게 끝날 것이기에 아이가 없는 게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다.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형수도 분명 고수연과 진용진처럼 됐을 거다.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초인 종소리에 형수는 문을 열었다. 이윽고 문밖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월세방 구했다고 했잖아요?”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들어와요.”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