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개예요? 왜 사람을 이렇게 물어요?”나는 윤지은의 뜬금없는 행동에 기가 막혔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또 이러는지 의문이었다.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윤지은의 옷을 찢어버렸다.“계속 물면 난 지은 씨 당장 앉아버릴 거예요. 누가 더 손해인지 두고 보자고요.”윤지은은 심장이 덜컹했지만 나를 놓아주기는커녕 더 세게 물었다.하지만 윤지은이 물수록 나는 그녀의 옷을 벗겨댔다. 그러다 얼마 뒤 아예 옷을 찢었다.이토록 연약한 상대를 나도 똑같이 물 수는 없다. 다만 그 대신 호되게 혼내줄 수는 있었다.그 뒤로 분위기는 갑자기 이상하게 흘렀다. 윤지은은 자발적으로 내 목에 팔을 둘렀고 곧이어 아찔한 장면이 이어졌다.하지만 모든 걸 끝낸 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어쩌다 또 몸을 섞게 됐는지 어리둥절했다.나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 반해 윤지은은 덤덤한 표정이었다.“내가 방금 그랬을 때 왜 밀어내지 않았어요?”나는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윤지은은 옷을 정리하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왜 밀어냐? 봉사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만인데.”“누가 봉사했다는 거예요? 난 지은 씨 혼내 준 거예요. 오히려 지은 씨야말로 방금 진짜 마음이 흔들린 거 아니에요?”윤지은은 나를 홱 째려봤다.“마음이 흔들려도 생리적 수요 때문이지 사람과는 단 한 푼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자아도취 그만해.”‘젠장.’가만 보니 나는 윤지은의 독설에 항상 받기만 했지 한 번도 말발로 윤지은을 이겨본 적이 없다.나는 의자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그러자 윤지은은 언짢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안 피우면 안 돼? 나 담배 냄새 싫어.”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흘긋 보고는 결국 마지못해 꺼버렸다.“그럼 이제 뭐 할 거예요?”나는 앉아 있는 게 너무 지루해 몸이 불편할 정도였다.“뭘 한다는 거야?”“계속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를 일부러 남겼으면 할 일이거나 할 얘기가
내가 떠난 뒤 윤지은은 끝내 표정이 풀어졌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그녀는 너무 좋았다. 너무 끝내주는 속궁합 덕에 윤지은은 매우 기쁘고 만족했다.솔직히 윤지은은 본인이 너무 민감해서 잘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찾아 시험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윤지은은 방탕한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뼛속까지 남자를 혐오한다. 그녀는 소여정이나 백연우처럼 쾌락을 느끼려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는 스타일도 아니다.그동안 남자라고는 나와 여준휘 뿐인데, 첫사랑 여준휘한테 모든 마음을 바쳤지만 결국 상처만 남게 되었다.그 뒤로 윤지은은 더 이상 남자한테 진심을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보니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더군다나 나와 몸을 섞는 게 즐겁게까지 느껴졌다. 이토록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쁜 건 다른 사람한테서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윤지은은 시동을 걸어 친구 사모님의 집으로 향했다.문을 연 사모님은 제 친구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했다.“지은아, 여긴 어쩐 일이야?”윤지은은 차키를 쑥 내밀었다.“수호 씨 대신 차 돌려주러 왔어. 앞으로 여기 올 일 없을 거야.”“왜?”사모님은 의아한 듯 물었다.윤지은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완곡히 말했다.“유미야, 나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지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못 알아듣겠는데?”“용천 호텔에서 너랑 수호 씨가...”윤지은은 친구의 남편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내리깔았다.그 말에 사모님의 표정은 단번에 변했다.“너, 다 알았어?”사모님은 불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그 순간 윤지은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사실 윤지은도 확실하지 않아 찔러본 거였는데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윤지은은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저와 친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같은 남자와 불분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니.‘정수호가 대체 뭐가 좋은데?’윤지은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유미야, 난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어.
사모님은 얼굴이 발그레해서 윤지은을 사람이 없는 방으로 끌고 갔다.“유미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혹시 정수호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말만 해. 내가 가서 죽일 테니까.”사모님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아, 아니야. 수호 씨와는 아무 상관 없어. 내 문제야. 난, 난 좋은 여자가 아니야. 내가 용천 호텔에서...”사모님은 입을 오므린 채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결국 답답해진 윤지은이 따져 물었다.“네가 용천 호텔에서 뭐? 말 좀 해. 답답해 죽겠어.”“내가 너한테 말하면 절대 연우와 여정이한테 말하면 안 돼.”사모님은 입을 떼기 어려운 듯 오므렸다가 한참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사실 그날 어렴풋이 수호 씨가 웬 여자랑 하는 걸 봤거든. 나도 하필 술 때문에 몸이 달아올라 너무 불편한 거야. 그래서... 그래서...”“그래서 뭐? 혼자 해결했어?”윤지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그 말에 사모님의 얼굴은 빨간 노을처럼 화르르 달아올랐다.“지은아. 설마 이랬다고 내가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사실 나도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호섭 씨가 아픈 뒤로 한 적이 없기도 하고 그날 너무 자극을 받아 참지 못했던 거야.”사모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한 듯 말했다. 사모님은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라 절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 그날 밤 한 게 처음이자 유일한 한 번이다.안 그래도 그동안 남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걸 마음속 깊이 숨긴 채 꺼낼 생각이 없었는데, 윤지은이 말을 꺼내는 바람에 입 밖에 꺼낸 거였다.윤지은은 사모님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됐어. 그만 울어.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 거 정상이야.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정말? 그런데 좋은 여자는 그런 짓 하면 안 되잖아.”“좋은 여자면 뭐? 좋은 여자는 생리적 수요가 없는 줄 알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이 꽉 막혔어?”사모님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윤지은을 바라봤다.“지은아, 그럼... 넌 그런 거 해?”사모님은 일순 호
“어쩐지 계속 남자 친구를 안 사귀나 했네. 넌 성적 수요가 적은가 보네. 연우한테서 들었는데 여자가 성적 수요가 적다면 불감증일 경우가 많대. 너도 병원에서 검사받아 보는 게 어때?”윤지은의 낯빛은 더 이상해졌다. 사실 여기까지 직접 온 건 사모님한테 따져 묻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사모님한테 질문세레를 받고 있으니.윤지은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유미야. 그날 밤 정수호와 했다는 여자 얼굴 제대로 봤어?”“아니. 술에 취해서 흐릿하게 보였어. 그런데 그 여자 가슴에 문신이 있었어.”“문신? 무슨 문신?”윤지은이 물었다.사모님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나비 문신이었던 것 같아. 맞아. 나비 문신이야. 가슴 여기에 있었어.”윤지은은 그날 일을 곰곰이 회상했다.“그날 밤 식사 자리에 우리 넷을 빼면 정수호 형수랑 여자 친구였지?”“우리 넷 중에는 가슴에 나비 문신을 한 사람이 없고, 형수랑 여자 친구도 없었던 것 같은데.”윤지은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그날 일을 애써 떠올렸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아무튼 오늘부터 정수호랑 떨어져. 정수호 좋은 사람 아니야. 네 몸을 노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사모님은 깊이 생각지도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윤지은은 사장님을 흘긋 보고는 자리에 한참 앉아있다가 떠났다.윤지은이 떠난 뒤 사모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이상해졌다....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택시를 타고 월세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했다.집에는 현성 혼자만 있었다.“민우는?”나는 물으면서 소파에 앉았다.그러자 핸드폰을 하고 있던 현성이 대답했다.“여자 친구랑 밥 먹으러 갔어.”현성은 말하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수호야, 오늘 밤 너도 나가서 지내는 게 어때? 나랑 주선영이 단둘이 이을 기회를 마련해 줘.”“여긴 내가 세 맡은 집인데 왜 내가 나가야 해?”현숭은 두말없이 두터운 현찰을 꺼내 내밀었다.“강북에 있는 3성급 호텔이든 5성급
“고수연!”형수는 화가 나고 억울해서 버럭 소리 질렀다. 다른 사람 눈에 그녀는 아내로서의 도리도 안 지키는 방탕한 여자처럼 보일 거지만 누구도 그동안 형수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를 거다.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없지만 가족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가슴에 칼을 꽂으니 형수는 너무 괴로웠다.고수연도 제 말이 심했다는 걸 인식했는지 다급히 언니 옆으로 다가갔다.“언니, 난 그런 뜻이 아니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난 그냥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수호도 좋은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절대 빠지지 마.”그게 사실인 건 맞지만 형수의 마음은 무척 괴로웠다.“수호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잘 알아. 고수연, 네가 진용진한테 불만 많은 거 알아. 하지만 애먼 사람한테까지 안 좋은 프레임 씌우지 마. 너랑 진용진 사이의 일은 수호 씨랑 상관없잖아.”고수연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내 몸 하나 돌볼 겨를도 없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잖아.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 먼저 잘게.”말을 마친 뒤 고수연은 일어서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형수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혼은 여자한테 큰 영향을 주곤 하다. 특히 고수연처럼 애까지 있는 유부녀라면 더더욱.게다가 진용진이 얼마나 머리를 썼는지 정말 이혼하게 된다면 고수연은 빈털터리로 쫓겨날 거다. 그러면 아이는 오히려 짐이 되고 만다.형수는 갑자기 저와 진동성 사이에 애가 없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부가 갈라지는 순간이 오면 안 좋게 끝날 것이기에 아이가 없는 게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다.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형수도 분명 고수연과 진용진처럼 됐을 거다.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초인 종소리에 형수는 문을 열었다. 이윽고 문밖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월세방 구했다고 했잖아요?”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들어와요.”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지은이랑은 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지은이가 어젯밤 찾아와서 앞으로 수호 씨를 멀리하라고 하더라고요.]사모님은 내가 걱정되는 듯 물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맥이 빠졌다.“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항상 저를 저격하거든요. 그냥 제가 꼴 보기 싫은가 봐요.”[지은이 좋은 사람이에요. 겉보기에는 무뚝뚝하고 차가워도 말만 심하게 했다 뿐이지 마음은 여려요. 정말 화나게 한 상황을 빼면요.”나는 너무 억울했다. 그동안 분명 윤지은을 건드린 적도 없는데 말이다.“사모님, 전 정말 그런 적 없어요.”나는 풀이 죽어 해명했다.“사모님도 친구분이니 아실 거잖아요. 소여정 씨마저 윤지은 씨 상대가 안 되는, 하물며 저는 어떻겠어요?”[하하. 아무튼 두 사람 꼭 원수 같다니까요. 그런데 옆에서 보는 건 재밌어요.]사모님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 난감했다.이게 대체 어디가 재밌다는 건지?나는 그런 여자와 놀고 싶은 생각은 없다.“됐어요, 사모님, 일 보세요.”사모님과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방에서 나왔다.형수는 이미 푸짐한 아침상을 준비했다.다만 고수연은 대충 두 숟갈 먹더니 입맛이 없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거실에는 나와 형수 둘뿐이었다.“저 계집애는 상관하지 마요.”형수는 나를 위해 달걀을 까다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봤다.“이게 뭐 같아요?”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네?”“남자 그거 같지 않아요?”‘아...’형수는 달걀을 내 입에 밀어 넣었다.“얼른 먹어요. 영양가 많은 거니까. 참, 식사하고 나서 뭐 할 거예요?”“이따 도관에 연습하러 가야 해요.”“그럼 나도 같이 가도 돼요?”“당연하죠. 가고 싶으면 가는 거죠.”나는 형수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도관으로 향했다.변석훈은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도관에 들어서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에 매진했고 형수는 내 옆에 앉아 나를 지켜봤다.시간이 급박하고 내가 배울 시간이 많지 않기에 나는
형수는 이 일을 나한테 알려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하지만 내가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에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금 백주 대낮이기도 하니 진동성이 저를 어떻게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결국 형수는 밖으로 나가면서 진동성에게 답장했다.[장소는 내가 정해.]형수는 일부러 사람이 많이 다니는 가게를 약속 장소로 정했다. 지금 훤한 대낮이고 사람이 많으니 진동성이 함부로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채로.하지만 진동성은 형수가 생각한 것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진동성이 형수를 불러낸 건 사실 나와 형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왕정민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도 있었다.나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윤지은의 사람한테 된통 얻어맞은 왕정민은 너무 화가 나서 그 화를 형수한테 풀려고 했다.형수가 진동성과 이혼하면 당연히 나랑 만날 걸 알았으니까. 형수의 몸을 취하는 건 형수에 대한 복수일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게다가 왕정민이 형수를 노린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이 기회에 형수랑 잘 생각이었다.진동성은 형수에게 문자를 보낸 뒤 곧바로 옆에 있는 왕정민에게 말했다.“약속 잡았어. 이제 걸려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돼.”“그럼 난 호텔에서 기다릴게. 이따 네가 호텔로 데려와.”진동성은 키득키득 웃었다.“그래.”왕정민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왕정민이 떠난 뒤 진동성의 표정은 이내 음흉해졌다.“고태연, 날 먼저 배신한 건 너야. 그러니까 날 탓하지 마. 아무도 내 명예를 무너뜨릴 수 없어. 아무도!”진동성은 몰래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켰다. 그는 이따가 왕정민이 형수를 취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형수가 아내의 본분도 지키지 않는 더러운 여자가 될 거고 절대 저한테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까.사람은 양심을 잃으면 짐승만도 못해진다. 진동성도 지금 그 상태다.형수는 약속 장소를 엔젤 카페로 정했다.얼마 뒤 형수와 진동성은 그곳에서 만났다.형수는 진동성을 만나자마자 본론을
“고태연, 그 돈은 내가 번 거야. 내 돈을 왜 너한테 줘야 하는데?”형수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내 도움이 없었다면 창업 자금도 없이 어떻게 돈을 벌 건데? 창업 초기 내가 두 발로 뛰어가면서 고객 만나고 미팅하러 다녔던 거 잊었어? 진동성, 너 양심은 있니? 개한테 뜯긴 거야?”진동성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이제 와서 그런 게 뭔 소용인데? 돈은 내가 벌었으니 내 거지. 게다가 모든 돈은 이미 우리 부모님 계좌로 빼돌렸어. 내 계좌에는 고작 몇만 원밖에 없으니 그거라도 나누고 싶으면 나눠 가지던가.”“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절대 너 안 줘. 난 너랑 정수호 그 자식이 내 집에서 붙어먹는 꼴 절대 못 봐. 정말 그러기로 작정한 거지?”형수는 속으로 뭔가 계획을 세웠다.진동성은 여전히 표정 한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누군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네가 나 벼랑 끝으로 몰았잖아. 너랑 정수호 그 자식 일은 안 따지겠다고 했는데 왜 이혼하겠다는 거야? 왜 꼭 내 체면을 바닥으로 짓뭉개는데? 네가 날 그렇게 난처하게 하는데 내가 왜 널 가만둬?”형수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진동성, 난 적어도 넌 왕정민과 달리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어쩜 왕정민보다 더 쓰레기일 수가 있어?”“그래.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집은 이미 우리 엄마 명의로 명의 이전했어. 네가 모든 돈은 네가 다 빼돌렸다니 그냥 가져. 하지만 전에 내가 투자했던 항목들 모두 내 돈으로 투자했던 거 알지?”“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 투자 상품들 모두 300퍼센트 수익을 냈어. 내가 투자로 번 돈은 네가 모은 것보다 훨씬 많아.”형수의 말을 들은 진동성의 낯빛은 일순 어두워졌다.“투자 상품은 언제 구매했는데? 난 왜 몰라?”형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내가 이애교인 줄 알아? 왕정민이 뭐라고 하면 따르는? 난 애교랑 달라. 난 가정주부한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너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