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이 무슨 속셈인지는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선영이 너를 받아줄지 말지는 너한테 달렸어.”나는 요즘 다친 것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것이지 상처가 나으면 다시 사장님 댁에 가야 한다.날짜를 계산해 보니 이틀 뒤면 약욕을 끝낼 시기였다. ‘후속 치료도 순조로워야 할 텐데.’사장님이 괜찮아져야 유미 사모님도 괜찮을 테고 화인당도 상황이 좋아질 거다.상처를 치료하고 난 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현성이 나와 민우를 잡고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잘 수 없었다.현성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러던 끝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현성이 깨어나면 또 우리를 괴롭힐까 봐 민우와 함께 문을 나섰다. 물론 주선영도 우리와 함께 나왔다.현성은 내가 데려온 손님인데 주선영을 낯선 남자와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는 건 아무래도 주선영에게 좋지 않았으니까.나와 민우는 차를 따로 운전했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가고 민우는 주선영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나는 가는 길에 주해진에게 연락해 돈을 다 모았으니 언제 계약을 체결할지 물었다.[그럼 오늘 밤 체결하자고. 저녁에 약속 잡고 식사하면서 얘기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9시가 넘었을 때 사장님은 나에게 전화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사장님은 본인 건강만 챙기시면 돼요. 제 일은 걱정하실 거 없어요.”나는 사장님과 사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지 않으려고 정태곤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스스로 눈치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수호 씨는 내 직원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솔직히 말해 봐. 혹시 누가 또 화인당을 찾아와 행패 부렸어?]사장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아니에요. 제가 운전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정말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줘. 수호 씨는 나 대신 가게 돌봐주고 있는 건데,
나는 왠지 모르게 순간 소름이 돋았다.‘임 씨?’‘설마 임천호?’이토록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데다 성이 임씨라고 하니 나는 맨 처음 임천호가 떠올랐다.하지만 임천호는 너무 대단한 인물인 데다 S시에 거주하고 있어 강북에 나타나는 게 말이 안 된다.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으며 물었다.“네, 혹시 어떤 서비스를 원하나요? 침? 아니면 마사지? 혹은 특별히 맹인 마사지가 필요하신가요?”남자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화인당은 맹인 마사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한번 체험해 보고 싶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맹인 마사지사들이 하나같이 눈이 멀쩡하네?”그건 당연하다. 가게에는 대부분 여성 고객이 위주인데, 여성 고객들은 우리가 맹인이든 아니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직접 까발리지도 않는다.물론 남자 고객들이 가끔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대충 사람을 찾아와 은근슬쩍 넘어갔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절대 호락호락 물러날 작자가 아니었다.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사실 맹인 마사지 서비스는 진짜 맹인이 마사지사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성 고객을 상대할 때 눈을 막아 안 보이게 해서 맹인처럼 보일 뿐입니다.”“아, 그런가?”“이것도 다 여성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나의 태연한 대처에 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왠지 무서운 분위기를 주었다.“그럼 고객을 상대로 사기 친다는 거네?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이건 사기가 아닙니다. 고객분들도 다 알거든요. 고객님도 단번에 알아차렸잖아요. 방금 맹인 마사지를 체험하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적당한 선생님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필요 없네. 선생이 해줘!”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남자가 나를 겨냥하려고 찾아왔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수록 상대가 임천호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임천호 같은 사람이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고?’난 당연히
소여정은 고작 임천호의 정부다. 그런데도 상대가 그토록 체면을 세워주는데, 만약 임천호 본인이 나선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그럼 어떡해?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려고?”민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는 전에 임천호를 무서워했었다. 심지어 임천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멀리 도망치려고 했었다.하지만 이 순간이 정말 닥치니 오히려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내가 소여정 씨와 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백한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그러니까 너도 걱정 말고 준비하는 거 도와줘.”나는 침착하게 말했다.그러자 민우도 다급히 내 준비를 도와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마사지 준비를 끝마쳤다. 이윽고 나는 로비로 나가 임천호에게 말했다.“준비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죠.”임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나는 곧장 임천호더러 마사지 침대 위에 누우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득 물었다.“이 침대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엎드렸었지?”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임천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전신 마사지는 원래 침대에 엎드려 받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시트를 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벗은 뒤에야 그의 몸 전체에 문신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몇 군데 나 있었다.그 순간 나는 이 강한 아우라를 내뿜는 남자가 임천호라고 확신했다.나는 임천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끝까지 모른 척했다. 나는 마사지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한 손으로 침대 옆에 들고 갔다.임천호는 이미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제 눈을 가릴까요?”“그래. 나도 여자들한테 어떻게 마사지해 주는지 느껴보고 싶거든.”나는 아무 말없이 안대를 끼고 임천호의 등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임천호는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절대 임천호에게 내가 긴장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니까.마사지는 원래 이렇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가도 똑같기에 나는 절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네.”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정태곤이 분명 없는 말까지 보태서 보고했을 걸 알기에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임천호는 여기 오기 전부터 나를 안 좋은 눈으로 바라봤을 텐데, 내가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하면 오히려 그의 의심만 가중될 거다.게다가 내가 거짓말했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건 임천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그런 방식으로 거짓말을 들킬 바에는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게 더 좋다. 나는 그저 마사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임천호는 아예 몸을 돌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그럼 나도 전신 마사지나 받아 보지 뭐. 어디 전신 마사지는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고.”역시 이럴 줄 알았다.전에 마음의 준비를 한 덕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오일을 임천호의 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사지 솜씨라면 나도 자신 있었다. 게다가 기술도 있고 능숙해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선 넘는다고 느낄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천호는 여전히 나에게 물었다.“여자들 가슴을 마사지할 때는 어떻게 하지?”“은밀한 부위는 전용 장비가 따로 있습니다.”그거라면 사실이었다. 나는 아예 장비를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그러자 임천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렇다면 화인당 맹인 마사지는 정규적이라는 거네?”“당연하죠.”“하하. 계속 해.”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계속해서 마사지를 이어갔다.다만 한 손으로 하는 터라 오늘 유독 힘들었다. 결국 절반쯤 했을 때 나는 힘에 부쳐 임천호에게 말했다.“혹시 다른 동료를 불러서 해드려도 될까요? 제가 팔을 다치는 바람에 힘을 쓸 수가 없거든요...”“난 딱 선생이 해줬
임천호는 싱긋 웃으며 나를 봤다.“무릎 꿇고 하라고.”“저기요. 제가 어떻게 하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무례한 요구를 하는 건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모욕하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강북 일대의 효웅 임천호 회장님이시잖아요.”나는 내 짐작을 입 밖에 냈다.그러자 임천호는 싱긋 미소 지었다.“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겠네?”“정태곤이 회장님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소여정 씨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를 믿지 않으셔도 소여정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믿으셔야 하잖아요.”“내 여자가 어떤지는 내가 알아. 하지만... 네 놈은 내 여자한테만 손대지 않았을 뿐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여자들을 많이 건드리고 다닌 거로 아는데.”“그건 제 일이라 임 회장님이 상관하실 거 없습니다.”“상관할 거 없다라... 내 여자가 지난번에 강북에 온 뒤로 돌아오지 않으려 한 게 네놈 때문이 아니라고? 이번에 강북에 오겠다고 기어코 우겨 내 동의를 받아낸 것도 네놈 때문이 아니야? 응?”나는 단 몇 마디 말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모는 임천호가 존경스러웠다.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대답했다.“그건 저한테 물을 게 아니라 소여정 씨한테 물으세요. 저는 일개 마사지사라서 고객님이 까라고 하면 까야 하거든요.”“그래서 용천 호텔에 오란다고 쫄래쫄래 따라가 같이 수영했나?”임천호는 마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나를 벼랑 끝으로 밀었다.결국 나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제가 용천 호텔에 갔던 건 기사와 마사지사 신분으로 간 것뿐이에요. 다른 걸 묻는다면 여전히 같은 대답이에요. 저와 소여정 씨는 깨끗해요.”“하하. 재밌네.”임천호는 다시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자. 계속 해.”나는 눈앞의 남자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더더욱 헤아릴 수 없었고.결국 나는 다시 마사지 침대 앞으로 다가가 마사지를 이어갔다.한 시간 뒤 나는 겨우 마사지를
덩치 큰 사내놈은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차 안으로 던져버렸다. 그 순간 팔이 의자에 부딪히는 바람에 심한 통증이 전해졌다.임천호는 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고 덩치 큰 사내놈은 운전을 책임졌다.그걸 본 나는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절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임천호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내 말을 무시했다. 차가 시동을 건 순간 나는 반항해야 하나 고민했다.하지만 내 지금 상태로는 절대 저 덩치 큰 놈의 상대가 아니었다. 나도 내 주제는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반항하려는 생각은 단념했다.오히려 놈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차는 약 30분 정도 달려 한 5성급 호텔 문 앞에 멈춰 섰다.그러자 덩치 큰 놈이 차에서 내려 나를 밖으로 끌어내렸다. 그 길로 나는 놈들에게 끌려 웬 방에 도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는 소여정이 있었다.소여정은 나를 발견했지만 이내 시선을 임천호에게 돌렸다.“뭐 조 사러 간다더니 저를 속인 거였어요?”임천호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내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이놈을 만나러 가게 뒀을까?”“이 사람은 왜 찾아갔어요? 제가 다 설명했잖아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정태곤이 헛소리 지껄이는 거예요.”소여정은 애교를 부리며 다가가 임천호 품에 안겼다.“제 말 믿어준다고 했으면서 또 이러다니. 흥!”임천호는 소여정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주권을 선포하는 듯 차가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내가 왜 널 안 믿겠어? 안 믿었으면 저 자식이 진작 죽었지.”죽는다는 말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소여정도 그걸 봤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왜 데려왔는데요? 시험하려고요?”“그래도 돼?”“흥. 이것 봐요. 안 믿는 거면서. 시험할 테면 해 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시험하든 뭘 하든 꿀릴 것도 없고요.”소여정은 임천호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며 그의 옆에 앉았다.그러자 임천호는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그 시각 나도 임천호를 보고 있었다.“이리 와서 내 앞에서 시범 보
소여정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안돼. 마사지숍에서는 피로를 풀려고 마사지 받은 거지만 내 남자 앞에서 마사지하려 한다면 내가 동의 안 해.”“하려면 회장님이 해 줘요.”소여정은 임천호의 팔짱을 끼며 교태를 부렸다. 소여정이 커다랗고 예쁜 눈을 깜빡이며 애교부릴 때면 임천호는 껌벅 죽는다.“내가 하면 저 자식을 어떻게 시험해?”임천호는 역시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너구리처럼 질문을 다시 나에게 던져버렸다.그러자 소여정이 계속해서 애교 부리며 말했다.“그럼 저 사람이 눈을 가린 채 회장님을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회장님은 저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고. 강북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저것 의심해요? 의심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정 안 되면 제가 회장님 마사지해 드려도 되고요.”소여정은 뱀처럼 임천호의 품에 나른하게 파고들더니 빨간 입술을 그의 볼에 갖다 댔다.“그렇게 해요. 네?”임천호는 소여정에게 단번에 넘어갔다.“그래. 예전에는 네가 나를 마사지해줬으니 오늘은 내가 해줄게.”소여정은 곧바로 나에게 안대를 던져줬다. 그 의도를 캐치한 나는 묵묵히 눈을 가리며 위기를 모면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하지만 이 위기를 정말 잘 극복할 수 이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달렸다.안대를 착용하자마자 소여정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등부터 할래요? 가슴부터 할래요? 회장님이 선택해요.”임천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우선 등부터 시작하자고. 순서대로 해야지.”“그럼 엎드릴게요.”나는 안대를 쓰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순간 소여정이 얼마나 고혹적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소여정이 평소 임천호를 이렇게 시중드는 거였구나. 어쩐지 임천호가 소여정한테 껌뻑 죽는다 했더니.’곧이어 내 귓가에는 오일 병을 따는 소리와 오일을 문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마사지하는 도중에 소여정은 일부러 야릇한 신음을 냈다.그때 임천호가 가볍게 물었다.“저 자식한테 마사지 받
나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하지만 소여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이번에 나는 소여정에게 단단히 신세를 졌다.안에서 나는 소여정의 매력적인 웃음소리만 들어도, 지금 분명 야릇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내 마음은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씁쓸했다.소여정은 나를 도와주려고 자신을 희생했다. 비록 희생이라는 건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소여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돌아가는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뒤죽박죽이 된 생각을 정리했다.임천호가 직접 강북에 행차한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게다가 먼 길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분명 쉽게 돌아가지 않을 거다. 임천호를 떠올리니 나는 마음이 심란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더니 민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민우는 내가 걱정되어 전화한 게 틀림없었다.나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난 괜찮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괜찮다니 다행이네. 지금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치를 확인한 뒤 민우에게 알려주었다.그로부터 얼마 뒤 민우는 차를 몬 채 나를 데리러 왔다.민우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보자마자 이곳저곳 훑으며 검사하더니, 멀쩡한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난 네가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식겁했어.”사실 나도 애초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아까 전 임천호의 태도만 보면 나를 당장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곤해서 휴식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우리는 곧장 화인당으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성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죽은 것처럼 쿨쿨 자더니 이제야 일어난 모양이었다.우리가 반나절동안 고생하면서 일한 뒤에야 느긋하게 일어나는 걸 보니 역시 재벌 2세는 남달랐다.현성
사모님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는데 딱 봐도 제대로 휴식을 못 한 모양새였다.“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요즘 좀 바빠서 머리가 복잡한 것뿐이에요. 수호 씨는 괜찮아요?”사모님이 나를 보는 눈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심지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모님 손에서 약재를 빼앗아 들었다.“괜찮아요.”“정말이에요? 임천호가 강북에 왔다고 들었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그걸 어떻게 아세요?”“어떻게 알긴요. 여정한테서 들었지. 임천호가 여기에 직접 온 것만 봐도 여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어요. 수호 씨가 이번에 고비를 넘긴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예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저도 이런 게 싫은데 매번 소여정 씨가 저를 찾아와서 저도 할 수 없어요.”“여정이 왜 자꾸 수호 씨를 찾아오는지 알아요?”‘날 놀리려는 것밖에 더 있을까?’물론 나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그때 사모님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보아하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보네요. 여정은 아직 기억하던데.”사모님의 말에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죠? 저랑 소여정 씨가 예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거예요?”“나도 상세한 건 몰라요. 여정이 말로는 임천호를 만나기 전에 수호 씨한테 도움받은 적이 있다더라고요. 그것도 여정이 연 파티에서. 전에 수호 씨 형과 형수랑 함께 파티에 참석한 적 있죠? 그 파티에서 수호 씨 형이 수호 씨를 여정한테 밀어줬고요. 그때부터 여정은 수호 씨를 알아봤대요. 수호 씨는 잊은 것 같았지만.”‘내가 전에 소여정을 만난 적이 있다고? 게다가 도와주기까지 했다고?’소여정처럼 예쁜 여자를 한번 만나면 절대 잊을 리 없는데,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그러자 사모님이 말을 이었다.“너무 오래전이라 기억 못
나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하지만 소여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이번에 나는 소여정에게 단단히 신세를 졌다.안에서 나는 소여정의 매력적인 웃음소리만 들어도, 지금 분명 야릇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내 마음은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씁쓸했다.소여정은 나를 도와주려고 자신을 희생했다. 비록 희생이라는 건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소여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돌아가는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뒤죽박죽이 된 생각을 정리했다.임천호가 직접 강북에 행차한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게다가 먼 길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분명 쉽게 돌아가지 않을 거다. 임천호를 떠올리니 나는 마음이 심란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더니 민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민우는 내가 걱정되어 전화한 게 틀림없었다.나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난 괜찮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괜찮다니 다행이네. 지금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치를 확인한 뒤 민우에게 알려주었다.그로부터 얼마 뒤 민우는 차를 몬 채 나를 데리러 왔다.민우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보자마자 이곳저곳 훑으며 검사하더니, 멀쩡한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난 네가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식겁했어.”사실 나도 애초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아까 전 임천호의 태도만 보면 나를 당장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곤해서 휴식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우리는 곧장 화인당으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성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죽은 것처럼 쿨쿨 자더니 이제야 일어난 모양이었다.우리가 반나절동안 고생하면서 일한 뒤에야 느긋하게 일어나는 걸 보니 역시 재벌 2세는 남달랐다.현성
소여정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안돼. 마사지숍에서는 피로를 풀려고 마사지 받은 거지만 내 남자 앞에서 마사지하려 한다면 내가 동의 안 해.”“하려면 회장님이 해 줘요.”소여정은 임천호의 팔짱을 끼며 교태를 부렸다. 소여정이 커다랗고 예쁜 눈을 깜빡이며 애교부릴 때면 임천호는 껌벅 죽는다.“내가 하면 저 자식을 어떻게 시험해?”임천호는 역시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너구리처럼 질문을 다시 나에게 던져버렸다.그러자 소여정이 계속해서 애교 부리며 말했다.“그럼 저 사람이 눈을 가린 채 회장님을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회장님은 저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고. 강북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저것 의심해요? 의심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정 안 되면 제가 회장님 마사지해 드려도 되고요.”소여정은 뱀처럼 임천호의 품에 나른하게 파고들더니 빨간 입술을 그의 볼에 갖다 댔다.“그렇게 해요. 네?”임천호는 소여정에게 단번에 넘어갔다.“그래. 예전에는 네가 나를 마사지해줬으니 오늘은 내가 해줄게.”소여정은 곧바로 나에게 안대를 던져줬다. 그 의도를 캐치한 나는 묵묵히 눈을 가리며 위기를 모면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하지만 이 위기를 정말 잘 극복할 수 이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달렸다.안대를 착용하자마자 소여정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등부터 할래요? 가슴부터 할래요? 회장님이 선택해요.”임천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우선 등부터 시작하자고. 순서대로 해야지.”“그럼 엎드릴게요.”나는 안대를 쓰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순간 소여정이 얼마나 고혹적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소여정이 평소 임천호를 이렇게 시중드는 거였구나. 어쩐지 임천호가 소여정한테 껌뻑 죽는다 했더니.’곧이어 내 귓가에는 오일 병을 따는 소리와 오일을 문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마사지하는 도중에 소여정은 일부러 야릇한 신음을 냈다.그때 임천호가 가볍게 물었다.“저 자식한테 마사지 받
덩치 큰 사내놈은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차 안으로 던져버렸다. 그 순간 팔이 의자에 부딪히는 바람에 심한 통증이 전해졌다.임천호는 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고 덩치 큰 사내놈은 운전을 책임졌다.그걸 본 나는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절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임천호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내 말을 무시했다. 차가 시동을 건 순간 나는 반항해야 하나 고민했다.하지만 내 지금 상태로는 절대 저 덩치 큰 놈의 상대가 아니었다. 나도 내 주제는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반항하려는 생각은 단념했다.오히려 놈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차는 약 30분 정도 달려 한 5성급 호텔 문 앞에 멈춰 섰다.그러자 덩치 큰 놈이 차에서 내려 나를 밖으로 끌어내렸다. 그 길로 나는 놈들에게 끌려 웬 방에 도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는 소여정이 있었다.소여정은 나를 발견했지만 이내 시선을 임천호에게 돌렸다.“뭐 조 사러 간다더니 저를 속인 거였어요?”임천호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내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이놈을 만나러 가게 뒀을까?”“이 사람은 왜 찾아갔어요? 제가 다 설명했잖아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정태곤이 헛소리 지껄이는 거예요.”소여정은 애교를 부리며 다가가 임천호 품에 안겼다.“제 말 믿어준다고 했으면서 또 이러다니. 흥!”임천호는 소여정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주권을 선포하는 듯 차가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내가 왜 널 안 믿겠어? 안 믿었으면 저 자식이 진작 죽었지.”죽는다는 말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소여정도 그걸 봤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왜 데려왔는데요? 시험하려고요?”“그래도 돼?”“흥. 이것 봐요. 안 믿는 거면서. 시험할 테면 해 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시험하든 뭘 하든 꿀릴 것도 없고요.”소여정은 임천호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며 그의 옆에 앉았다.그러자 임천호는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그 시각 나도 임천호를 보고 있었다.“이리 와서 내 앞에서 시범 보
임천호는 싱긋 웃으며 나를 봤다.“무릎 꿇고 하라고.”“저기요. 제가 어떻게 하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무례한 요구를 하는 건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모욕하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강북 일대의 효웅 임천호 회장님이시잖아요.”나는 내 짐작을 입 밖에 냈다.그러자 임천호는 싱긋 미소 지었다.“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겠네?”“정태곤이 회장님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소여정 씨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를 믿지 않으셔도 소여정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믿으셔야 하잖아요.”“내 여자가 어떤지는 내가 알아. 하지만... 네 놈은 내 여자한테만 손대지 않았을 뿐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여자들을 많이 건드리고 다닌 거로 아는데.”“그건 제 일이라 임 회장님이 상관하실 거 없습니다.”“상관할 거 없다라... 내 여자가 지난번에 강북에 온 뒤로 돌아오지 않으려 한 게 네놈 때문이 아니라고? 이번에 강북에 오겠다고 기어코 우겨 내 동의를 받아낸 것도 네놈 때문이 아니야? 응?”나는 단 몇 마디 말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모는 임천호가 존경스러웠다.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대답했다.“그건 저한테 물을 게 아니라 소여정 씨한테 물으세요. 저는 일개 마사지사라서 고객님이 까라고 하면 까야 하거든요.”“그래서 용천 호텔에 오란다고 쫄래쫄래 따라가 같이 수영했나?”임천호는 마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나를 벼랑 끝으로 밀었다.결국 나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제가 용천 호텔에 갔던 건 기사와 마사지사 신분으로 간 것뿐이에요. 다른 걸 묻는다면 여전히 같은 대답이에요. 저와 소여정 씨는 깨끗해요.”“하하. 재밌네.”임천호는 다시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자. 계속 해.”나는 눈앞의 남자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더더욱 헤아릴 수 없었고.결국 나는 다시 마사지 침대 앞으로 다가가 마사지를 이어갔다.한 시간 뒤 나는 겨우 마사지를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절대 임천호에게 내가 긴장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니까.마사지는 원래 이렇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가도 똑같기에 나는 절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네.”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정태곤이 분명 없는 말까지 보태서 보고했을 걸 알기에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임천호는 여기 오기 전부터 나를 안 좋은 눈으로 바라봤을 텐데, 내가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하면 오히려 그의 의심만 가중될 거다.게다가 내가 거짓말했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건 임천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그런 방식으로 거짓말을 들킬 바에는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게 더 좋다. 나는 그저 마사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임천호는 아예 몸을 돌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그럼 나도 전신 마사지나 받아 보지 뭐. 어디 전신 마사지는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고.”역시 이럴 줄 알았다.전에 마음의 준비를 한 덕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오일을 임천호의 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사지 솜씨라면 나도 자신 있었다. 게다가 기술도 있고 능숙해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선 넘는다고 느낄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천호는 여전히 나에게 물었다.“여자들 가슴을 마사지할 때는 어떻게 하지?”“은밀한 부위는 전용 장비가 따로 있습니다.”그거라면 사실이었다. 나는 아예 장비를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그러자 임천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렇다면 화인당 맹인 마사지는 정규적이라는 거네?”“당연하죠.”“하하. 계속 해.”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계속해서 마사지를 이어갔다.다만 한 손으로 하는 터라 오늘 유독 힘들었다. 결국 절반쯤 했을 때 나는 힘에 부쳐 임천호에게 말했다.“혹시 다른 동료를 불러서 해드려도 될까요? 제가 팔을 다치는 바람에 힘을 쓸 수가 없거든요...”“난 딱 선생이 해줬
소여정은 고작 임천호의 정부다. 그런데도 상대가 그토록 체면을 세워주는데, 만약 임천호 본인이 나선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그럼 어떡해?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려고?”민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는 전에 임천호를 무서워했었다. 심지어 임천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멀리 도망치려고 했었다.하지만 이 순간이 정말 닥치니 오히려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내가 소여정 씨와 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백한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그러니까 너도 걱정 말고 준비하는 거 도와줘.”나는 침착하게 말했다.그러자 민우도 다급히 내 준비를 도와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마사지 준비를 끝마쳤다. 이윽고 나는 로비로 나가 임천호에게 말했다.“준비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죠.”임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나는 곧장 임천호더러 마사지 침대 위에 누우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득 물었다.“이 침대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엎드렸었지?”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임천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전신 마사지는 원래 침대에 엎드려 받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시트를 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벗은 뒤에야 그의 몸 전체에 문신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몇 군데 나 있었다.그 순간 나는 이 강한 아우라를 내뿜는 남자가 임천호라고 확신했다.나는 임천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끝까지 모른 척했다. 나는 마사지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한 손으로 침대 옆에 들고 갔다.임천호는 이미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제 눈을 가릴까요?”“그래. 나도 여자들한테 어떻게 마사지해 주는지 느껴보고 싶거든.”나는 아무 말없이 안대를 끼고 임천호의 등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임천호는
나는 왠지 모르게 순간 소름이 돋았다.‘임 씨?’‘설마 임천호?’이토록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데다 성이 임씨라고 하니 나는 맨 처음 임천호가 떠올랐다.하지만 임천호는 너무 대단한 인물인 데다 S시에 거주하고 있어 강북에 나타나는 게 말이 안 된다.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으며 물었다.“네, 혹시 어떤 서비스를 원하나요? 침? 아니면 마사지? 혹은 특별히 맹인 마사지가 필요하신가요?”남자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화인당은 맹인 마사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한번 체험해 보고 싶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맹인 마사지사들이 하나같이 눈이 멀쩡하네?”그건 당연하다. 가게에는 대부분 여성 고객이 위주인데, 여성 고객들은 우리가 맹인이든 아니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직접 까발리지도 않는다.물론 남자 고객들이 가끔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대충 사람을 찾아와 은근슬쩍 넘어갔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절대 호락호락 물러날 작자가 아니었다.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사실 맹인 마사지 서비스는 진짜 맹인이 마사지사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성 고객을 상대할 때 눈을 막아 안 보이게 해서 맹인처럼 보일 뿐입니다.”“아, 그런가?”“이것도 다 여성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나의 태연한 대처에 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왠지 무서운 분위기를 주었다.“그럼 고객을 상대로 사기 친다는 거네?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이건 사기가 아닙니다. 고객분들도 다 알거든요. 고객님도 단번에 알아차렸잖아요. 방금 맹인 마사지를 체험하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적당한 선생님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필요 없네. 선생이 해줘!”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남자가 나를 겨냥하려고 찾아왔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수록 상대가 임천호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임천호 같은 사람이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고?’난 당연히
이 녀석이 무슨 속셈인지는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선영이 너를 받아줄지 말지는 너한테 달렸어.”나는 요즘 다친 것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것이지 상처가 나으면 다시 사장님 댁에 가야 한다.날짜를 계산해 보니 이틀 뒤면 약욕을 끝낼 시기였다. ‘후속 치료도 순조로워야 할 텐데.’사장님이 괜찮아져야 유미 사모님도 괜찮을 테고 화인당도 상황이 좋아질 거다.상처를 치료하고 난 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현성이 나와 민우를 잡고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잘 수 없었다.현성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러던 끝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현성이 깨어나면 또 우리를 괴롭힐까 봐 민우와 함께 문을 나섰다. 물론 주선영도 우리와 함께 나왔다.현성은 내가 데려온 손님인데 주선영을 낯선 남자와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는 건 아무래도 주선영에게 좋지 않았으니까.나와 민우는 차를 따로 운전했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가고 민우는 주선영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나는 가는 길에 주해진에게 연락해 돈을 다 모았으니 언제 계약을 체결할지 물었다.[그럼 오늘 밤 체결하자고. 저녁에 약속 잡고 식사하면서 얘기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9시가 넘었을 때 사장님은 나에게 전화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사장님은 본인 건강만 챙기시면 돼요. 제 일은 걱정하실 거 없어요.”나는 사장님과 사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지 않으려고 정태곤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스스로 눈치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수호 씨는 내 직원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솔직히 말해 봐. 혹시 누가 또 화인당을 찾아와 행패 부렸어?]사장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아니에요. 제가 운전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정말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줘. 수호 씨는 나 대신 가게 돌봐주고 있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