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은은 여전히 미소 지었다.“걱정하지 마. 난 꼭 말한 대로 할 테니까.”“그럼 약속한 거예요. 두고 봐요. 지은 씨는 언젠가 저한테 매달리게 될 테니까.”말을 마친 나는 홱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혼자 룸 안에서 셀카를 찍고 있던 이영미는 내가 들어오자 사진을 찍어 달라며 핸드폰을 건넸다.나는 두말없이 핸드폰을 받아 들고 사진을 찍어주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뜬 메시지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이영미가 인터넷으로 중년 부부가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물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때마침 네티즌들이 댓글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섹스 토이를 추천하며 사진까지 첨부했다.“크흠...”난생처음 보는 신문물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때 이영미가 마침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고 물었다.“왜 그래?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간데?”“직접 보세요.”나는 말하면서 핸드폰을 건넸다.폰을 건네받은 이영미는 댓글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고작 이것 때문에 그래? 혹시 우리 지은이랑 이런 거 사용해 본 적 있어?”“아니요. 절대 없어요. 절 그렇게 변태로 몰아가지 마세요.”이영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아직도 젊어서 그런지 부끄러움이 많네. 수호 씨도 나이 먹으면 이러지 않을 거야. 사실 난 남녀가 성관계를 하는 건 즐겁기 위해서라고 봐. 그러니 즐겁고 재밌는 건 해봐야지.”‘제가 경험 많은 어머님과 어떻게 비교하겠어요?’입만 열면 이런 쪽으로 얘기하는 건 난 도저히 할 수 없다. 역시 유부녀라 그런지 욕구도 많고 뭐든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 어쩐지 인터넷에서 연애 경험 많은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보다 재밌다고 하더라니.그 말인 즉 유부녀가 훨씬 낫다는 말 아니겠나?“지은은?”“모르겠어요.”나는 그 여자를 언급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했다.그때 이영미가 룸 문을 닫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그럼 나 대신 골라 줘. 뭐가 더 재밌을 것 같아?”나는 순간 어리
하지만 점차 보다 보니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모든 제품을 한번 훑은 뒤 나는 세 가지를 선택했다.“제가 볼 때 이 세 가지가 괜찮아 보여요.”이영미는 한번 확인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이 세 가지로 하지 뭐. 주소 알려 줘.”“제 주소는 왜요?”“먼저 수호 씨 집에 보낼게. 수호 씨가 한번 사용해 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말해 줘. 그러면 내가 다시 살 테니까.”‘나를 실험용 생쥐로 보는 건가?’비록 조금 찜찜했지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도 마침 사용해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결국 내 주소를 가르쳐 줬다.이영미가 구매를 마쳤을 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윤지은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밖에서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제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둘이 뭐 했어?”이영미는 핸드폰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내가 수호 씨한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어. 뭐야? 이런 것도 상관하게?”“엄마는 나이도 있으면서 뭐 맨날 사진을 찍어요?”윤지은은 불만 투로 투덜댔으나 표정은 전혀 싫어하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녀도 제 엄마가 아직도 아이 같은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가끔 윤지은은 이런 엄마가 부러울 때도 있다. 평생 남편의 예쁨을 받고 아무 고민 없이 영원히 동심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식사 후반부는 그런대로 순조로웠다.식사를 마친 뒤 이영미는 함께 노래 부르러 가자고 초대했지만 나는 그걸 거절했다. 이번에는 윤지은도 강요하지 않았다.나는 사장님이 빌려준 레인지로버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고는 형수에게 전화했다. 그러고는 방금 이영미의 병을 봐주고 형수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그런데 결국 못 가게 됐어요.”다시 생각해도 이건 너무 아쉬웠다.내 말에 형수는 싱긋 웃었다.[난 계속 집에 있으니까 언제든 와요.]그 순간, 방금 이영미가 산 물건을 형수와 함께 사용하면 분명 끝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영미가 문건을 고를 때 나
게다가 집도 마침 강북에 위치해 있다.나는 얼른 전화번호부에서 조현성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얼마 뒤 현성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현성아. 나야. 정수호.”[정수호? 오호 브라더. 갑자기 웬일로 연락했어?]대학교 때 친구들은 우리가 늘 꼭 붙어 다닌다고 부부냐며 놀렸었다.나도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싫었지만, 현성의 성격이 꽤 괜찮은 데다 어디 놀러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닌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우리가 친해서 그렇게 놀리는 거라고 점차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성은 웬 여자애를 따라다니느라 대학교를 그만뒀고, 그 뒤로 우리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며칠 전 강북으로 돌아왔다는 현성의 SNS를 보고 그에게 연락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용건이 있으니까 했지. 너 지금 어디야? 우리 만날까?”[나야 백수라 빈둥빈둥 놀고먹기만 하지. 며칠 전에 우리 영감탱이가 날 집에 가두는 바람에 아직도 집에 있어.]“어? 그럼 만나지 못하잖아.”[만나려면 당연히 만날 수 있지. 내가 누구야. 마왕이라고 불리는 사나이 아니겠어. 우리 집 열쇠로 나를 가둘 수 있을 것 같아? 주소 보내 봐. 이따 찾으러 갈게.]현성의 말에 나는 한시름 놓았다.나는 얼른 근처에서 가게를 찾아 위치 정보를 공유했다.그러자 현성은 곧 올 거라며 기다리라는 문자를 보냈다.약 20분쯤 기다렸을 때 현성은 모습을 비추었다.몇 년 만에 만나서인지 조현성은 많이 변해 있었다. 몸에 살이 올랐고 얼굴도 더 동글동글해졌다. 하지만 본업에는 충실하지 않고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을 반짝이던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글쎄,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에 있는 두 여자애를 향해 휘파람을 불다가 된통 욕까지 먹었다. 하지만 현성은 어찌나 뻔뻔한지 개의치 않고 제 명함까지 건넸다. 물론 그 명함은 예상대로 쓰레기통 행이였지만.“하하. 까칠하네. 그래도 마음에 들어.”현성은 빙그레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 순간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현성은 손을 휙 저었다.“뭔데? 말해 봐.”“네가 나 대신 대출 좀 받아 줘.”은행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거액의 대출을 받으려면 실력 있는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현성은 가정형편이 좋으니 내 보증을 서주기에 적합했다.“얼마나 빌릴 건데?”“3억.”나는 필요한 돈보다 더 대출할 생각이었다. 만약 앞으로 혼자 하면 이런저런 지출이 있을 게 뻔하니, 수중에 돈을 남겨두는 건 당연했다.“뭐 하러 그렇게 많이 빌려?”현성은 음식을 우물거리며 물었다.결국 나는 민우와 함께 한의관을 열려고 한다는 걸 털어놓았다.그걸 들은 현성은 테이블을 탁 치며 일어섰다.“정수호. 어떻게 민우랑 한의관을 열면서 나한테 말하지 않아? 난 네 친구 아니야?”현성의 반응에 멍해진 나는 한참 뒤에 반응했다.“나도 네가 강북에 온 걸 얼마 전에 알았어.”“그럼 이제 돌아왔는데 나도 좀 끼워주면 안 돼?”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우선 앉아 봐. 내가 천천히 설명해 줄게.”현성은 내 말에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는 걸 본 나는 조목조목 분석하기 시작했다.“그 한의관을 운영할 사람은 나랑 민우뿐만이 아니야. 또 다른 파트너 두 명이 더 있어. 물론 네가 끼어도 되지만 네 성격에 매일 가게에 붙어 있을 수 있어?”내 기억에 따르면 현성은 학교 다닐 때 교실에 붙어 있는 걸 가장 싫어했었다.직접 한의관을 운영하는 건 학교 다니는 것보다 분명 더 바쁠 거다. 뭐든 직접 해야 하는 건 물론,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며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고생 한번 한 적 없는 현성이 그걸 버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내 분석을 들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뜻은 알겠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뭐 하나 해낸 게 없어서 우리 부모님이 맨날 닦달해. 난 진작부터 성과를 내서 두 분께 보여주고 싶었어. 그동안은 딱 떠오르는 게 없어서 실행하지 못했지만 너랑 민우가 창업한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등신 같더라. 그래서 나도
나는 현성이 나 대신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현성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게. 내가 차 한잔 올릴게.”우리는 이야기 샘이 마를 새가 없이 한참 동안 얘기했다.현성은 어찌나 허풍을 잘 떠는지 제 여자 친구 성이 고씨였다가 이씨로 변하고 나중에는 마씨라고 했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현성이 후궁을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난 이미 그가 솔로라는 걸 눈치챘다.날이 어둑해질 즘 민우도 합세해 우리 셋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현성은 집에서 나와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곧바로 그를 제지했다.“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방이 두 개뿐이야. 그중 하나는 여대생이 살고 있고 나랑 민우는 나머지 방과 거실에서 지내고 있어. 그런데 너까지 오면 어디서 지내려고?”“여대생? 예뻐?”현성은 내 말을 듣기나 했는지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거기에 꽂혀버렸다.그 순간 나는 여대생을 언급한 걸 후회했다.‘젠장.’현성이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만 봐도 쉽게 따돌리지 못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성은 오늘 당장 여대생을 보겠다며 기어코 집에 같이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나와 민우도 현성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말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더니 주선영은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주선영은 말 잘 듣는 착한 이미지인 데다 긴 생머리에 연한 컬러의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이런 여학생은 아마 학교에서도 수많은 남자애 마음을 훔칠 거다.현성은 주선영을 보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나와 민우에게 말했다.“나 저 여자애랑 꼭 사귀고 만다!”“그 전에 우선 제대로 서 있기나 해. 어떤 여자애가 너처럼 후들거리는 남자를 좋아하겠어?”“너희가 나 좀 부축해 줘. 내 다리가 내 게 아닌 것 같아. 제대로 서지를 못하겠어.”나와 민우는 양쪽에서 현성을 부축했다.다만 나는 아직 몸이 다 나은 게 아니라 힘을 쓸 수 없었기에 소파 앞까지만 부축했다. 이윽고 나는 주선영을 보며 소개했다.“선영아
이 녀석이 무슨 속셈인지는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선영이 너를 받아줄지 말지는 너한테 달렸어.”나는 요즘 다친 것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것이지 상처가 나으면 다시 사장님 댁에 가야 한다.날짜를 계산해 보니 이틀 뒤면 약욕을 끝낼 시기였다. ‘후속 치료도 순조로워야 할 텐데.’사장님이 괜찮아져야 유미 사모님도 괜찮을 테고 화인당도 상황이 좋아질 거다.상처를 치료하고 난 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현성이 나와 민우를 잡고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잘 수 없었다.현성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러던 끝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현성이 깨어나면 또 우리를 괴롭힐까 봐 민우와 함께 문을 나섰다. 물론 주선영도 우리와 함께 나왔다.현성은 내가 데려온 손님인데 주선영을 낯선 남자와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는 건 아무래도 주선영에게 좋지 않았으니까.나와 민우는 차를 따로 운전했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가고 민우는 주선영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나는 가는 길에 주해진에게 연락해 돈을 다 모았으니 언제 계약을 체결할지 물었다.[그럼 오늘 밤 체결하자고. 저녁에 약속 잡고 식사하면서 얘기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9시가 넘었을 때 사장님은 나에게 전화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사장님은 본인 건강만 챙기시면 돼요. 제 일은 걱정하실 거 없어요.”나는 사장님과 사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지 않으려고 정태곤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스스로 눈치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수호 씨는 내 직원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솔직히 말해 봐. 혹시 누가 또 화인당을 찾아와 행패 부렸어?]사장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아니에요. 제가 운전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정말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줘. 수호 씨는 나 대신 가게 돌봐주고 있는 건데,
나는 왠지 모르게 순간 소름이 돋았다.‘임 씨?’‘설마 임천호?’이토록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데다 성이 임씨라고 하니 나는 맨 처음 임천호가 떠올랐다.하지만 임천호는 너무 대단한 인물인 데다 S시에 거주하고 있어 강북에 나타나는 게 말이 안 된다.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으며 물었다.“네, 혹시 어떤 서비스를 원하나요? 침? 아니면 마사지? 혹은 특별히 맹인 마사지가 필요하신가요?”남자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화인당은 맹인 마사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한번 체험해 보고 싶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맹인 마사지사들이 하나같이 눈이 멀쩡하네?”그건 당연하다. 가게에는 대부분 여성 고객이 위주인데, 여성 고객들은 우리가 맹인이든 아니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직접 까발리지도 않는다.물론 남자 고객들이 가끔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대충 사람을 찾아와 은근슬쩍 넘어갔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절대 호락호락 물러날 작자가 아니었다.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사실 맹인 마사지 서비스는 진짜 맹인이 마사지사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성 고객을 상대할 때 눈을 막아 안 보이게 해서 맹인처럼 보일 뿐입니다.”“아, 그런가?”“이것도 다 여성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나의 태연한 대처에 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왠지 무서운 분위기를 주었다.“그럼 고객을 상대로 사기 친다는 거네?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이건 사기가 아닙니다. 고객분들도 다 알거든요. 고객님도 단번에 알아차렸잖아요. 방금 맹인 마사지를 체험하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적당한 선생님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필요 없네. 선생이 해줘!”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남자가 나를 겨냥하려고 찾아왔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수록 상대가 임천호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임천호 같은 사람이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고?’난 당연히
소여정은 고작 임천호의 정부다. 그런데도 상대가 그토록 체면을 세워주는데, 만약 임천호 본인이 나선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그럼 어떡해?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려고?”민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는 전에 임천호를 무서워했었다. 심지어 임천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멀리 도망치려고 했었다.하지만 이 순간이 정말 닥치니 오히려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내가 소여정 씨와 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백한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그러니까 너도 걱정 말고 준비하는 거 도와줘.”나는 침착하게 말했다.그러자 민우도 다급히 내 준비를 도와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마사지 준비를 끝마쳤다. 이윽고 나는 로비로 나가 임천호에게 말했다.“준비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죠.”임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나는 곧장 임천호더러 마사지 침대 위에 누우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득 물었다.“이 침대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엎드렸었지?”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임천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전신 마사지는 원래 침대에 엎드려 받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시트를 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벗은 뒤에야 그의 몸 전체에 문신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몇 군데 나 있었다.그 순간 나는 이 강한 아우라를 내뿜는 남자가 임천호라고 확신했다.나는 임천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끝까지 모른 척했다. 나는 마사지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한 손으로 침대 옆에 들고 갔다.임천호는 이미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제 눈을 가릴까요?”“그래. 나도 여자들한테 어떻게 마사지해 주는지 느껴보고 싶거든.”나는 아무 말없이 안대를 끼고 임천호의 등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임천호는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절대 임천호에게 내가 긴장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니까.마사지는 원래 이렇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가도 똑같기에 나는 절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네.”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정태곤이 분명 없는 말까지 보태서 보고했을 걸 알기에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임천호는 여기 오기 전부터 나를 안 좋은 눈으로 바라봤을 텐데, 내가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하면 오히려 그의 의심만 가중될 거다.게다가 내가 거짓말했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건 임천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그런 방식으로 거짓말을 들킬 바에는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게 더 좋다. 나는 그저 마사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임천호는 아예 몸을 돌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그럼 나도 전신 마사지나 받아 보지 뭐. 어디 전신 마사지는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고.”역시 이럴 줄 알았다.전에 마음의 준비를 한 덕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오일을 임천호의 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사지 솜씨라면 나도 자신 있었다. 게다가 기술도 있고 능숙해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선 넘는다고 느낄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천호는 여전히 나에게 물었다.“여자들 가슴을 마사지할 때는 어떻게 하지?”“은밀한 부위는 전용 장비가 따로 있습니다.”그거라면 사실이었다. 나는 아예 장비를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그러자 임천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렇다면 화인당 맹인 마사지는 정규적이라는 거네?”“당연하죠.”“하하. 계속 해.”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계속해서 마사지를 이어갔다.다만 한 손으로 하는 터라 오늘 유독 힘들었다. 결국 절반쯤 했을 때 나는 힘에 부쳐 임천호에게 말했다.“혹시 다른 동료를 불러서 해드려도 될까요? 제가 팔을 다치는 바람에 힘을 쓸 수가 없거든요...”“난 딱 선생이 해줬
소여정은 고작 임천호의 정부다. 그런데도 상대가 그토록 체면을 세워주는데, 만약 임천호 본인이 나선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그럼 어떡해?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려고?”민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는 전에 임천호를 무서워했었다. 심지어 임천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멀리 도망치려고 했었다.하지만 이 순간이 정말 닥치니 오히려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내가 소여정 씨와 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백한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그러니까 너도 걱정 말고 준비하는 거 도와줘.”나는 침착하게 말했다.그러자 민우도 다급히 내 준비를 도와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마사지 준비를 끝마쳤다. 이윽고 나는 로비로 나가 임천호에게 말했다.“준비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죠.”임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나는 곧장 임천호더러 마사지 침대 위에 누우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득 물었다.“이 침대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엎드렸었지?”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임천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전신 마사지는 원래 침대에 엎드려 받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시트를 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임천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벗은 뒤에야 그의 몸 전체에 문신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몇 군데 나 있었다.그 순간 나는 이 강한 아우라를 내뿜는 남자가 임천호라고 확신했다.나는 임천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끝까지 모른 척했다. 나는 마사지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한 손으로 침대 옆에 들고 갔다.임천호는 이미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제 눈을 가릴까요?”“그래. 나도 여자들한테 어떻게 마사지해 주는지 느껴보고 싶거든.”나는 아무 말없이 안대를 끼고 임천호의 등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임천호는
나는 왠지 모르게 순간 소름이 돋았다.‘임 씨?’‘설마 임천호?’이토록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데다 성이 임씨라고 하니 나는 맨 처음 임천호가 떠올랐다.하지만 임천호는 너무 대단한 인물인 데다 S시에 거주하고 있어 강북에 나타나는 게 말이 안 된다.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으며 물었다.“네, 혹시 어떤 서비스를 원하나요? 침? 아니면 마사지? 혹은 특별히 맹인 마사지가 필요하신가요?”남자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화인당은 맹인 마사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한번 체험해 보고 싶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맹인 마사지사들이 하나같이 눈이 멀쩡하네?”그건 당연하다. 가게에는 대부분 여성 고객이 위주인데, 여성 고객들은 우리가 맹인이든 아니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직접 까발리지도 않는다.물론 남자 고객들이 가끔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대충 사람을 찾아와 은근슬쩍 넘어갔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절대 호락호락 물러날 작자가 아니었다.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사실 맹인 마사지 서비스는 진짜 맹인이 마사지사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성 고객을 상대할 때 눈을 막아 안 보이게 해서 맹인처럼 보일 뿐입니다.”“아, 그런가?”“이것도 다 여성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나의 태연한 대처에 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왠지 무서운 분위기를 주었다.“그럼 고객을 상대로 사기 친다는 거네?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이건 사기가 아닙니다. 고객분들도 다 알거든요. 고객님도 단번에 알아차렸잖아요. 방금 맹인 마사지를 체험하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적당한 선생님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필요 없네. 선생이 해줘!”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남자가 나를 겨냥하려고 찾아왔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수록 상대가 임천호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임천호 같은 사람이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고?’난 당연히
이 녀석이 무슨 속셈인지는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선영이 너를 받아줄지 말지는 너한테 달렸어.”나는 요즘 다친 것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것이지 상처가 나으면 다시 사장님 댁에 가야 한다.날짜를 계산해 보니 이틀 뒤면 약욕을 끝낼 시기였다. ‘후속 치료도 순조로워야 할 텐데.’사장님이 괜찮아져야 유미 사모님도 괜찮을 테고 화인당도 상황이 좋아질 거다.상처를 치료하고 난 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현성이 나와 민우를 잡고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잘 수 없었다.현성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러던 끝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현성이 깨어나면 또 우리를 괴롭힐까 봐 민우와 함께 문을 나섰다. 물론 주선영도 우리와 함께 나왔다.현성은 내가 데려온 손님인데 주선영을 낯선 남자와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는 건 아무래도 주선영에게 좋지 않았으니까.나와 민우는 차를 따로 운전했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가고 민우는 주선영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나는 가는 길에 주해진에게 연락해 돈을 다 모았으니 언제 계약을 체결할지 물었다.[그럼 오늘 밤 체결하자고. 저녁에 약속 잡고 식사하면서 얘기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9시가 넘었을 때 사장님은 나에게 전화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사장님은 본인 건강만 챙기시면 돼요. 제 일은 걱정하실 거 없어요.”나는 사장님과 사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지 않으려고 정태곤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스스로 눈치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수호 씨는 내 직원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솔직히 말해 봐. 혹시 누가 또 화인당을 찾아와 행패 부렸어?]사장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아니에요. 제가 운전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정말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줘. 수호 씨는 나 대신 가게 돌봐주고 있는 건데,
나는 현성이 나 대신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현성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게. 내가 차 한잔 올릴게.”우리는 이야기 샘이 마를 새가 없이 한참 동안 얘기했다.현성은 어찌나 허풍을 잘 떠는지 제 여자 친구 성이 고씨였다가 이씨로 변하고 나중에는 마씨라고 했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현성이 후궁을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난 이미 그가 솔로라는 걸 눈치챘다.날이 어둑해질 즘 민우도 합세해 우리 셋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현성은 집에서 나와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곧바로 그를 제지했다.“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방이 두 개뿐이야. 그중 하나는 여대생이 살고 있고 나랑 민우는 나머지 방과 거실에서 지내고 있어. 그런데 너까지 오면 어디서 지내려고?”“여대생? 예뻐?”현성은 내 말을 듣기나 했는지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거기에 꽂혀버렸다.그 순간 나는 여대생을 언급한 걸 후회했다.‘젠장.’현성이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만 봐도 쉽게 따돌리지 못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성은 오늘 당장 여대생을 보겠다며 기어코 집에 같이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나와 민우도 현성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말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더니 주선영은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주선영은 말 잘 듣는 착한 이미지인 데다 긴 생머리에 연한 컬러의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이런 여학생은 아마 학교에서도 수많은 남자애 마음을 훔칠 거다.현성은 주선영을 보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나와 민우에게 말했다.“나 저 여자애랑 꼭 사귀고 만다!”“그 전에 우선 제대로 서 있기나 해. 어떤 여자애가 너처럼 후들거리는 남자를 좋아하겠어?”“너희가 나 좀 부축해 줘. 내 다리가 내 게 아닌 것 같아. 제대로 서지를 못하겠어.”나와 민우는 양쪽에서 현성을 부축했다.다만 나는 아직 몸이 다 나은 게 아니라 힘을 쓸 수 없었기에 소파 앞까지만 부축했다. 이윽고 나는 주선영을 보며 소개했다.“선영아
현성은 손을 휙 저었다.“뭔데? 말해 봐.”“네가 나 대신 대출 좀 받아 줘.”은행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거액의 대출을 받으려면 실력 있는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현성은 가정형편이 좋으니 내 보증을 서주기에 적합했다.“얼마나 빌릴 건데?”“3억.”나는 필요한 돈보다 더 대출할 생각이었다. 만약 앞으로 혼자 하면 이런저런 지출이 있을 게 뻔하니, 수중에 돈을 남겨두는 건 당연했다.“뭐 하러 그렇게 많이 빌려?”현성은 음식을 우물거리며 물었다.결국 나는 민우와 함께 한의관을 열려고 한다는 걸 털어놓았다.그걸 들은 현성은 테이블을 탁 치며 일어섰다.“정수호. 어떻게 민우랑 한의관을 열면서 나한테 말하지 않아? 난 네 친구 아니야?”현성의 반응에 멍해진 나는 한참 뒤에 반응했다.“나도 네가 강북에 온 걸 얼마 전에 알았어.”“그럼 이제 돌아왔는데 나도 좀 끼워주면 안 돼?”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우선 앉아 봐. 내가 천천히 설명해 줄게.”현성은 내 말에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는 걸 본 나는 조목조목 분석하기 시작했다.“그 한의관을 운영할 사람은 나랑 민우뿐만이 아니야. 또 다른 파트너 두 명이 더 있어. 물론 네가 끼어도 되지만 네 성격에 매일 가게에 붙어 있을 수 있어?”내 기억에 따르면 현성은 학교 다닐 때 교실에 붙어 있는 걸 가장 싫어했었다.직접 한의관을 운영하는 건 학교 다니는 것보다 분명 더 바쁠 거다. 뭐든 직접 해야 하는 건 물론,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며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고생 한번 한 적 없는 현성이 그걸 버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내 분석을 들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뜻은 알겠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뭐 하나 해낸 게 없어서 우리 부모님이 맨날 닦달해. 난 진작부터 성과를 내서 두 분께 보여주고 싶었어. 그동안은 딱 떠오르는 게 없어서 실행하지 못했지만 너랑 민우가 창업한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등신 같더라. 그래서 나도
게다가 집도 마침 강북에 위치해 있다.나는 얼른 전화번호부에서 조현성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얼마 뒤 현성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현성아. 나야. 정수호.”[정수호? 오호 브라더. 갑자기 웬일로 연락했어?]대학교 때 친구들은 우리가 늘 꼭 붙어 다닌다고 부부냐며 놀렸었다.나도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싫었지만, 현성의 성격이 꽤 괜찮은 데다 어디 놀러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닌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우리가 친해서 그렇게 놀리는 거라고 점차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성은 웬 여자애를 따라다니느라 대학교를 그만뒀고, 그 뒤로 우리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며칠 전 강북으로 돌아왔다는 현성의 SNS를 보고 그에게 연락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용건이 있으니까 했지. 너 지금 어디야? 우리 만날까?”[나야 백수라 빈둥빈둥 놀고먹기만 하지. 며칠 전에 우리 영감탱이가 날 집에 가두는 바람에 아직도 집에 있어.]“어? 그럼 만나지 못하잖아.”[만나려면 당연히 만날 수 있지. 내가 누구야. 마왕이라고 불리는 사나이 아니겠어. 우리 집 열쇠로 나를 가둘 수 있을 것 같아? 주소 보내 봐. 이따 찾으러 갈게.]현성의 말에 나는 한시름 놓았다.나는 얼른 근처에서 가게를 찾아 위치 정보를 공유했다.그러자 현성은 곧 올 거라며 기다리라는 문자를 보냈다.약 20분쯤 기다렸을 때 현성은 모습을 비추었다.몇 년 만에 만나서인지 조현성은 많이 변해 있었다. 몸에 살이 올랐고 얼굴도 더 동글동글해졌다. 하지만 본업에는 충실하지 않고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을 반짝이던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글쎄,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에 있는 두 여자애를 향해 휘파람을 불다가 된통 욕까지 먹었다. 하지만 현성은 어찌나 뻔뻔한지 개의치 않고 제 명함까지 건넸다. 물론 그 명함은 예상대로 쓰레기통 행이였지만.“하하. 까칠하네. 그래도 마음에 들어.”현성은 빙그레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 순간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점차 보다 보니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모든 제품을 한번 훑은 뒤 나는 세 가지를 선택했다.“제가 볼 때 이 세 가지가 괜찮아 보여요.”이영미는 한번 확인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이 세 가지로 하지 뭐. 주소 알려 줘.”“제 주소는 왜요?”“먼저 수호 씨 집에 보낼게. 수호 씨가 한번 사용해 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말해 줘. 그러면 내가 다시 살 테니까.”‘나를 실험용 생쥐로 보는 건가?’비록 조금 찜찜했지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도 마침 사용해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결국 내 주소를 가르쳐 줬다.이영미가 구매를 마쳤을 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윤지은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밖에서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제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둘이 뭐 했어?”이영미는 핸드폰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내가 수호 씨한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어. 뭐야? 이런 것도 상관하게?”“엄마는 나이도 있으면서 뭐 맨날 사진을 찍어요?”윤지은은 불만 투로 투덜댔으나 표정은 전혀 싫어하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녀도 제 엄마가 아직도 아이 같은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가끔 윤지은은 이런 엄마가 부러울 때도 있다. 평생 남편의 예쁨을 받고 아무 고민 없이 영원히 동심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식사 후반부는 그런대로 순조로웠다.식사를 마친 뒤 이영미는 함께 노래 부르러 가자고 초대했지만 나는 그걸 거절했다. 이번에는 윤지은도 강요하지 않았다.나는 사장님이 빌려준 레인지로버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고는 형수에게 전화했다. 그러고는 방금 이영미의 병을 봐주고 형수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그런데 결국 못 가게 됐어요.”다시 생각해도 이건 너무 아쉬웠다.내 말에 형수는 싱긋 웃었다.[난 계속 집에 있으니까 언제든 와요.]그 순간, 방금 이영미가 산 물건을 형수와 함께 사용하면 분명 끝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영미가 문건을 고를 때 나
윤지은은 여전히 미소 지었다.“걱정하지 마. 난 꼭 말한 대로 할 테니까.”“그럼 약속한 거예요. 두고 봐요. 지은 씨는 언젠가 저한테 매달리게 될 테니까.”말을 마친 나는 홱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혼자 룸 안에서 셀카를 찍고 있던 이영미는 내가 들어오자 사진을 찍어 달라며 핸드폰을 건넸다.나는 두말없이 핸드폰을 받아 들고 사진을 찍어주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뜬 메시지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이영미가 인터넷으로 중년 부부가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물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때마침 네티즌들이 댓글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섹스 토이를 추천하며 사진까지 첨부했다.“크흠...”난생처음 보는 신문물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때 이영미가 마침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고 물었다.“왜 그래?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간데?”“직접 보세요.”나는 말하면서 핸드폰을 건넸다.폰을 건네받은 이영미는 댓글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고작 이것 때문에 그래? 혹시 우리 지은이랑 이런 거 사용해 본 적 있어?”“아니요. 절대 없어요. 절 그렇게 변태로 몰아가지 마세요.”이영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아직도 젊어서 그런지 부끄러움이 많네. 수호 씨도 나이 먹으면 이러지 않을 거야. 사실 난 남녀가 성관계를 하는 건 즐겁기 위해서라고 봐. 그러니 즐겁고 재밌는 건 해봐야지.”‘제가 경험 많은 어머님과 어떻게 비교하겠어요?’입만 열면 이런 쪽으로 얘기하는 건 난 도저히 할 수 없다. 역시 유부녀라 그런지 욕구도 많고 뭐든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 어쩐지 인터넷에서 연애 경험 많은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보다 재밌다고 하더라니.그 말인 즉 유부녀가 훨씬 낫다는 말 아니겠나?“지은은?”“모르겠어요.”나는 그 여자를 언급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했다.그때 이영미가 룸 문을 닫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그럼 나 대신 골라 줘. 뭐가 더 재밌을 것 같아?”나는 순간 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