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그랬더니 민우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난 싸우는 건 괜찮지만 분석하는 건 됐어. 머리는 네가 나보다 더 잘 돌아가잖아.”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나와 민우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이다. 민우는 싸움 실력이 뛰어나지만 냉정하지 못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나는 싸움 실력이 달리지만 민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그 때문에 우리는 함께 협조할 때 호흡이 잘 맞는 거다.“주해진이 무슨 꿍꿍이가 있든 절대 방심하면 안 돼. 1800만 원은 이미 우리 손에 넘어왔으니 도로 가져갈 생각 못 하게 해야지.”이 돈은 우리의 사업 자금이기에 나는 절대 주해진이 도로 빼앗아 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이 차가 이렇게 됐는데도 주해진한테서 보상금을 받은 뒤로 마음이 덜 아픈 것 같았다. 나중에 페인트칠 조금 하면 사실 별문제 없으니까.전에 내가 그렇게 흥분한 건 사실 너무 가난해서였다.어렵게 돈 벌어 차를 장만했는데, 할부도 채 갚지 못했는데 엉망이 되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플 거다.역시 사람은 돈에 목숨을 건다는 선조들의 말이 맞나 보다.나는 민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사모님 댁에 갔다.사모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물었지만, 나는 두 분을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고 주해진이 찾아온 일은 말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지체되었다고만 했다.그러자 사모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수호 씨, 호섭 씨가 약욕해야 하는데 좀 도와줘요.”“네.”나는 두말없이 사모님을 도왔다.사모님 집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는데 마침 약욕을 하기 알맞춤했다.나와 사모님은 헐떡대며 한참을 바삐 돌아친 끝에 겨우 목욕물을 준비했다.뜨거운 물이 증발하면서 욕실 안에 열기가 오른 데다 힘을 썼더니, 나는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봤더니 얇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던 사모님 역시 옷이 수증기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얇은 옷감에 속이 보일락말락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모님
나는 애교 누나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양동준은 나에게 열흘이라는 기한을 줬고, 민우와 함께 따로 나가서 사업해 보려던 계획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또 사장님 치료도 신경 써야 했다이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특히 열흘 기한 중에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한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미야, 이러지 마. 수호 씨 아직 집에 있어...”그건 분명 사장님 목소리였다. 사장님은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곧이어 사모님 목소리도 들렸다.“수호 씨는 지금 방에 있어 못 들을 거야. 호섭 씨, 우리 한동안 안 했었잖아. 내가 뭐 다른 거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목욕하자.”사모님 목소리는 약간 안달 나 있었다.순간 내 머릿속에 욕실 속 장면이 그려졌다.풍만한 몸매가 얇은 천에 가려졌지만 사모님의 고혹적인 느낌은 가리지 못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아랫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그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안돼. 수호 씨가 들어오면 얼마나 어색해.”“문 잠그면 되지. 호섭 씨, 나 거절하지 마. 나도 정상적인 여자야. 나도 욕구가 있다고. 내가 다른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나 좀 만져주고 안아주고 키스해 주면 돼.”사모님의 말에 나는 피가 들끓었다.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서서 사모님의 욕구를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유미야, 그만 벗어. 계속 이러면 나도 못 참아...”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듯 말했다.“못 참겠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호섭 씨, 나 하고 싶어...”나는 사모님이 이렇게 적나라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래는 이미 부풀어 올랐다.욕실 안에서는 어느새 말소리가 끊기더니 희미하게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
나는 영상 하나를 찾아 빨리 내 안의 욕구를 풀 생각이었다.하지만 내가 한창 욕구 해소에 정신이 팔렸을 때,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나는 얼른 영상을 끄고 바지를 올리고는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누구세요?”“수호 씨, 나예요.”사모님이었다.‘사장님이랑 끝났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모습인 데다 기분이 가라앉은 듯했다.“왜 그러세요?”나는 걱정스러워 물었다.‘사모님이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셨지? 표정은 왜 이렇고?’“약욕 시간 다 됐어요. 나랑 같이 호섭 씨 침대에 좀 옮겨요.”사모님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사모님은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듯했는데, 먼저 말하지 않으니 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나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하면 부풀어 올라 민망한 내 그곳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나와 사모님이 욕실로 들어가자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사모님을 바라봤다.“유미야, 나...”사장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사모님이 말을 잘랐다.“다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마. 우선 몸조리부터 잘해.”사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두 분 왜 이러지? 설마 사장님이 아까 실패해서 미안해하는 건가?’가끔 어떤 일은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나는 사모님을 도와 사장님을 방에 옮겼다. 사장님은 침대에 누운 채 시선을 사모님한테서 떼지 못했다.“수호 씨, 오늘 고마웠어. 오늘 더 이상 아무 일 없으니까 가서 쉬어.”“네.”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객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방금 전 일을 생각했다.사모님은 만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할 리 없다. 사장님은 지금 몸 건강이 안 좋아 사모님을 만족하게 하는 게 어려울 거다.‘하, 사장님이 얼른 나아서 두 분 백년해로해야 할 텐데.’사모님이 예쁘고 몸매도 좋은 데다 농염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윤미화가 소리 지르려 할 때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윤 사장님이 제 방에 들어온 거예요. 게다가 분명 먼저 저를 키스했잖아요. 전 꿈이라고 착각했어요. 이건 제 탓 아니라고요. 소리도 치지 마요. 한밤중에 소리 지르면 사모님이 올 텐데,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나는 한꺼번에 말을 내뱉었다.‘젠장, 누가 잘 자고 있는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올 줄 알았겠냐고?’게다가 나는 진짜 꿈에서 애교 누나를 만난 줄 알았다. 사귀는 사이에 이런 짓을 하는 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상대가 윤미화일 줄이야. 진짜 귀신 곡할 노릇이다.윤미화는 얼른 옷을 정리하고는 씩씩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나는 상대가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손을 풀었다.그랬더니 윤미화가 나를 째려봤다.“아주 땡잡았겠네? 오늘 일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걸 왜 말하겠어요? 그리고 왜 갑자기 제 방에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팍 들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키스까지. 혹시 예전부터 저랑 자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내 남편이 수호 씨보다 훨씬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내가 왜 수호 씨를 좋아하겠어? 잠결에 내 집인 줄 알아서 그랬지. 게다가 수호 씨가 내 남편인 줄 알기도 했고...”그렇다면 참 난감해진다나는 상대가 애교 누나인 줄 알고, 상대는 내가 제 남편인 줄 알았다니.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불을 켰을 때 봤던 윤미화의 나른하고 매혹적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특히 밖에 훤히 드러난 가슴이 유독 매력적이었다.아마도 내가 자기 전에 너무 참아서 그런지 이 순간 윤미화의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심지어 아무 생각도 없이 이대로 윤미화를 덮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다.윤미화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 너무 당황해했다. 그동안 남편 외의 다른 이성과 이런
너무 평화로운 결혼 생활은 잔잔한 물결처럼 기복도 격정도 없다. 윤미화의 결혼 생활이 지금 그러하다.이젠 중년에 접어든 터라 한 달에 한 번 부부 관계를 맺는 것만 해도 괜찮은 축에 속한다.하지만 윤미화의 남편은 매번 할 때마다 숙제를 완성하기라도 하는 듯 기계처럼 임무를 수행하느라, 애무도 하지 않고 그녀를 기쁘게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만족스러운지 물어보지도 않는다.윤미화는 솔직히 그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때문에 마사지 받으러 와서 자꾸만 나를 희롱했던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배신하는 일을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하지만 방금 나와 뒹군 그 짧은 시간 동안, 윤미화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처럼 자꾸만 정신이 멍하고 어쩔 줄 몰랐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마치 열쇠라도 열린 듯 민감해지고 통제 불능이 되었다.결국 윤미화는 참지 못하고 제 옷 속으로 손을 넣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곧이어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 일을 알 리 없었다.방금 겪은 일에 나는 자극을 받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윤미화는 내 사장님인데, 내가 사장님을 그랬다니...나는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앞으로 욕구가 생기면 제때제때 풀어야겠어. 절대 이런 망나니 같은 짓을 하면 안 돼.”다행히 중요한 순간에 고삐를 쥐어 잡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난처해 죽었을 거다.나는 일부러 문에 바싹 기대 밖을 훔쳐봤다. 그러고는 안방 쪽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사장님과 사모님이 엿듣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나는 화장실에서 찬물 샤워를 해 강제로 몸을 식힌 뒤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윤미화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먼저 나한테 인사했다.“수호 씨, 좋은 아침.”나는 속으로 태연하게 행동하는 윤미화를 존경스러워하며 맞장구쳤다.“좋은 아침이에요. 언제 왔어요?”윤미화는 예쁜 미소를
윤미화는 예리하게 이상함을 알아차렸다.“난 그냥 농담한 건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져? 설마 내 말이 맞아? 설마 정말 둘이 그랬어?”윤미화는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그녀의 제부는 유려하고 우아하지만, 전혀 무뚝뚝하지 않다. 이건 동생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정신과 마음이 모두 사랑을 받을 때만 얼굴에 붉은빛이 감돈다. 때문에 윤미화는 자기 동생 역시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그에 반해 윤미화는 너무 슬펐다. 똑같이 유려하고 우아한 남편을 뒀으나, 윤미화의 남편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데다, 매번 정사를 치를 때마다 아무 느낌도 없다.윤미화는 예쁜 데다 몸매도 좋고, 꽃에 비유하자면 활짝 핀 장미 같은 분위기를 띠었다. 그런데 아무리 예쁜 장미꽃이라도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시들어 죽기 마련이다. 윤미화는 본이니 지금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나 속은 텅 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해. 집에 우리만 있는 거 아니잖아.”사모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나를 자꾸만 흘깃거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저들의 대화를 내가 들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더 부끄러워했다.나는 너무 어색해 머리를 긁적이며 얼른 뒤돌아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로 너무 어색할 테니까.하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윤미화는 제 동생의 팔짱을 끼고 계속 물었다.“대체 한 거야 안 한 거야? 말해 봐.”“안 했어. 저 사람 몸이 저런데 어떻게 해? 머리로 생각 좀 해 봐.”“안 했는데 얼굴은 왜 붉혀? 혹시 부끄러워 말 못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먼저 하자고 해서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는 거야?”그 순간 임유미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언니가 이런 것마저 눈치챌 정도로 똑똑할 줄은 몰랐다.“아니야.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아침이나 사와.”“오호. 유미, 네가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윤미화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이미 동생의 반응에서 답을 얻었다. 이윽고 신이 나서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속으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애교 누나에게 이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지금껏 애교 누나와 알게 된 이래 우리는 로맨틱한 기억이 없었다. 내가 한 번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기에 그런 기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내 유일한 추억이라고는 그저 애교 누나의 훌륭한 몸매와 다정한 모습뿐이다.이 모든 게 그저 욕망 때문이라면 내가 너무 나밖에 모르는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문자를 보낸 뒤 나는 곧장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애교 누나가 보낸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좋은 아침이에요.]짤막한 한마디였지만 그걸 본 순간 내 기분은 유난히 좋았다.이게 바로 연애의 맛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나왔던 것처럼 단순한 연애의 맛.나는 침대에 누워 애교 누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다.그때 민우가 들어와서 아침에 뭘 먹을 건지 물었고 나는 ‘아무거나’라고 대충 대답을 흐렸다.그러자 민우는 아예 내 쪽으로 다가와 침대에 털썩 앉았다. 나도 민우를 피하지 않았기에 그는 나와 애교 누나의 대화 내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아침부터 연애질이야?”민우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부러워했다.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네가 나더러 좀 배우라며? 그래서 실천 중이잖아. 그런데 기분은 진짜 좋네.”“수호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뭔데?”“너 정말 애교 누나랑 결혼할 거야?”나는 되려 반문했다.“난 애교 누나랑 결혼하면 안 돼?”“어. 난 네가 그냥 누나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지.”“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나는 민우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지금껏 나는 내 감정에만 신경 쓰면서 다른 사람의 견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알아내면 나도 이태웅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그때 민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너 여자 친구 많잖아. 그 누나들과 모두 결혼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 그래서 네가 결혼하겠다고 한 건 그냥 여자 달래는 수법인 줄 알았지.”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보아하니 다른 사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건 왜요?][내가 남자의 다릿심에 관한 특집 하나 만들 거거든.]‘그런 거였구나. 난 또 나랑 뭘 해보자는 줄 알았네.’나는 두말없이 영상을 찍어 전송했다.[됐어. 나 이제 영상 편집해야 해서 얘기는 나중에 해.]어렵게 대화할 상대를 찾았나 싶었는데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하고 또 가버렸다.‘됐어. 그냥 영상이나 찾아보자.’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영상을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러다 비몽사몽 중에 누군가 내 방으로 들어와 내 몸을 더듬는 걸 발견했다.그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누구야?”“수호야. 나야.”그건 다름 아닌 민우의 목소리였다.“젠장. 깜짝 놀랐잖아. 걷는데 왜 소리도 없어? 내 몸은 왜 더듬는 건데?”나는 말하면서 침실의 불을 켰다.그러자 민우가 헤실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난 현성인 줄 알았잖아. 너인 줄 몰랐어.”“왜? 너 현성이한테 관심 있어?”“아니거든. 전에 형성이 그 자식이 여자애랑 해본 경험이 없다고 기회가 되면 우리끼리 먼저 체험해 보자고 했거든.”그 말에 내 눈은 커다래졌다. “너희 변태야? 남자 둘이 어떻게 해?”“그냥 체험. 진짜로 하는 게 아니라. 수호야, 나 요즘 임설아랑 부쩍 가까워졌어. 이제 꼭 결혼할 거야. 사실 나도 설아랑 진도 더 빼고 싶은데 내가 이런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네가 좀 가르쳐줄래?”‘이 자식 뭐라는 거야? 남자를 상대로 어떻게 가르쳐달라는 거지? 난 남자를 보고 아무 느낌도 없는 건 물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나는 두말없이 야동 하나를 공유했다.“네가 직접 봐.”“어. 이런 영상은 싫어. 너무 노골적이잖아. 좀 아름다운 영상은 없어?”“나도 섹스를 어떻게 아름답게 해야 하는지 몰라. 너 사람 잘못 찾아왔어.”나는 확실히 그런 방법 따위는 모른다. 나는 항상 하고 싶으면 바로 본론으로 직행하는 스타일이라.민우는 내 말에 투덜거렸다.“나 정말로 설아랑
곧이어 백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호 씨, 좋아요?”“당연하죠. 연우 씨처럼 농염한 여자를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어요?”곧이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그 순간 내 뇌는 새하얗게 질렸고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나는 다급히 그곳을 떠났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안 와서 다른 사람을 부른 건가?’‘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즐길 목적으로 만난 건데 진지할 거 뭐 있어?’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좋지 않았다.나는 차에 앉아 담배를 연거푸 몇 대를 태웠다. 하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월세방으로 돌아갔다.그동안 조현성과 주현영이 월세방에서 함께 지냈다. 현성은 매일 가게에 나가보는 것 외에 온 신경을 주현영에게 쏟아부었다.그리고 현성의 끊임없는 노력 덕에 주현영은 확실히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내가 돌아왔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본 현성은 실망한 의아한 듯 말했다.“수호야, 네가 왜 왔어?”여긴 분명 내 집인데 현성은 오히려 내가 손님인 것처럼 굴었다.하지만 나는 말하기 귀찮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너무 피곤해 운전하기 싫어서 여기로 왔어.”현성은 곧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럼 너 혼자 여기서 지내. 난 선영이 데리고 영화 보러 갈 거야.”“그러던가.”현성은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다만 이 기회에 주선영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호텔 방 하나 잡아...현성은 생각할수록 기뻤다.원래는 이곳에 돌아와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현성 이 자식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친구를 바로 버렸다.현성이 주현영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집에는 또 나 혼자 남았다. 그 순간 기분 나쁜 일들이 물밀듯 밀려왔다.하지만 내가 질투할 자격이 있을까? 나와 백연우는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백연우가 누구를 만나든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우리 화인당과 천수당이 힘을 합쳐 사업을 더 크게 발전시켜 봐요.”“하하. 나도 바라던 바야. 앞으로 화인당에 정형외과 환자가 있으면 천수당을 추천할게. 그쪽에도 마사지를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우리 화인당을 추천해.”마침 정 사장님과 뜻이 맞아 나는 무척 기뻤다.나는 얼른 사장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사장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분명 이 업계를 점점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을 거예요.”그때 유미 사모님이 옆에서 농담조로 끼어들었다.“두 사람 너무 친한 거 아니야? 보는 내가 다 부럽네.”나는 머쓱해서 사장님 손을 바로 놓아주었다.“사장님, 사모님. 일찍 쉬세요. 전 방해하지 않을게요.”“수호 씨, 내가 앞까지 마중해 줄게요.”사모님은 마치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을 나서자마자 사모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우리 그이 몸 완전히 회복된 거 맞죠?”사모님이 이 말을 할 때 얼굴부터 귀불까지 발그스름했다.그 순간 나는 사모님의 뜻을 이해했다.유미 사모님은 무척 함축적으로 물어보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사모님은 워낙 내성적이라 백연우처럼 남녀 간의 정사를 함부로 입에 쉽게 담지 못했다.나 역시 사모님이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문제없을 거예요. 자제하면서 하면 돼요.”내 말에 유미 사모님의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내, 내 말은 그게 아니라.”“사모님, 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서 사장님 돌봐드려요.”“그래요.”사모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답고 눈부셨다.사실 나는 사모님의 마음을 진작 꿰뚫어 봤다. 오늘 특별히 한껏 치장하고 예쁘게 화장한 것도 모자라 섹시한 옷을 입은 걸 보면 사장님을 꼬시려는 게 분명했다.사모님과 사장님 대신 내가 다 기뻤다. 사장님이 건강을 되찾았으니 사모님도 이제 더 이상 성욕을 참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두 부부의 관계도
윤지은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설마 너랑 잔 여자들이 모두 너한테 먼저 들러붙었다는 거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아닌가?애교 누나 외에 내가 먼저 꼬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내가 신들마저 공분하게 할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말 할 자격은 없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왜? 내 말에 자신감을 잃었어? 솔직히 말하면 너 확실히 잘생겼어. 게다가 선천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를 지니고 있어.”“그건 돈 주고 산 남자들한테서 찾을 수 없는 거야. 돈 주고 산 건 재미가 없어. 오히려 너처럼 약간 멍청한 게 사람을 더 끌리게 하지.”나는 윤지은이 오늘 밤 좀 달라 보였다. 왠지 자꾸만 나를 꼬시는 것 같았다. 물론 불장난에 휘말릴까 봐 윤지은의 뜻을 마음대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뜬금없이 웬 칭찬이에요? 쑥스럽게.”나는 이 기회에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그때 윤지은이 내 어깨를 살짝 꼬집었다.“그러니까 잘생긴 게 다는 아니라고. 그냥 하느님이 너한테 운을 몰아준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마.”윤지은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순간 살기를 내뿜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그 순간 나는 윤지은이 전에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윤지은은 나더러 자기 친구들을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다. 가까운 접촉은 더더욱 하지 말고.그렇다면 나와 백연우의 일은 윤지은이 절데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윤지은이 내 가죽을 벗길지도 모르니까.나는 너무 놀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운전했다.윤지은을 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다시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방금 친구 세 명이 모여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하느라 사장님께 한약관 얘기를 하는 걸 깜빡했다.천수당은 모레면 개업식이라 나는 하루빨리 화인당 일을 사장님께 다시 인수해야 했다.그동안 휠체어만 타고 다녀
백연우는 말하면서 내 엉덩이를 힘껏 주물렀다.이런 여자가 요물이 아니라는 게 말이 안 됐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홀리는지.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대로 백연우를 안고 싶었다.“그럼 이따 학교 갈 때 배웅해 줄게요.”백연우는 내 턱에 가볍게 입 맞췄다.“이따 봐.”나는 백연우를 놔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하필이면 윤지은과 마주쳤다.나는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는 다정하던 윤지은의 눈빛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살기를 띠었다.“이젠 내 눈앞에서 이러시겠다? 너 아주 발정 났구나?”“오해예요. 난 그저 잘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려고 온 것뿐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냉소를 흘렸다.“그래? 그럼 이따 나 집까지 바래다줘.”그건...“왜? 싫어? 백연우를 데려다주고 싶어?”윤지은은 우리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현재로서 윤지은이 나와 백연우 사이를 아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관계가 악화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요. 이따 바래다줄게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뒤돌아섰다.윤지은이 떠난 뒤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따 윤지은 씨를 데려다줘야 해서 백 쌤은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아요.”“마음대로 하던가. 난 상관없어.”다행히 백연우와는 대화가 잘 통했다.나는 신속히 화장실에서 나왔다.윤지은과 백연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백연우는 직접 운전해서 떠났고 나는 윤지은을 데려다주기로 했다.윤지은이 조수석에 앉은 순간 늘씬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뜬금없이 물어왔다.“백연우랑 잔 적 있어?”나는 윤지은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막막했다.“대체 뭘 묻고 싶은 거예요?”나는 양심이 찔려 대뜸 물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차갑게 노려봤다.“내 질문에 대답해. 다른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놀라움을 표했다.백연우는 네 명 중에서 자유를 가장 좋아하고 구속받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겠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윤지은은 잠깐 침묵하다가 또다시 설득했다.“나는 네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너 정말 자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어?”“내가 언제 자유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했어? 우리 이미 합의했어. 결혼하면 각자 놀고 싶은 대로 놀기로. 승진도 하고 내가 얻고 싶은 것도 얻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니야?”그 말에 유미 사모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난 영 미덥지 못한 것 같은데? 설마 너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연우야, 잘 생각해 봐.”백연우는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등을 기댔다.“생각할 것도 없어. 내가 평생 바라는 게 딱 두 가지야. 바로 사업과 남자. 총장 아들 잘생겼어. 피부도 하얗고 점잖은 게 딱 내 스타일이야. 게다가 그런 남자가 내 승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데 내가 땡잡은 거지.”윤지은은 아주 냉정하게 분석했다.“너도 방금 말했잖아.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 너 그 사람 제대로 알아봐. 두 사람 결혼하면 빠져나오기 힘들어.”“나도 알아. 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우리 함께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같이 한잔해.”백연우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더 설득하려는 모습이었지만 백연우는 두 사람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러다가 백연우가 화장실을 갈 때 나도 조용히 뒤따랐다.“정말 결혼해요?”“응.”백연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에 나는 바로 경고했다.“나도 백 쌤 말리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은 씨와 사모님 말도 맞잖아요. 결혼은 작은 일이 아니에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백연우는 립스틱을 덧바르면서 아를 향해 눈웃음을 날렸다.“내가 결혼한다니까 아쉬워? 결혼하면 너랑 안 놀아줄까 봐?”“솔직히 아쉬운 것도 맞아요. 하지만 백
“두 분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한번 시도해 볼게요.”“그럼 부탁드릴게요.”“우선 집에 바래다 드릴게요.”나는 대리를 불러 두 분을 집까지 모셔다드렸다.이다연은 어느새 집에 돌아왔는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거실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아버렸다.이 선생님은 그 순간 욱해서 욕지거리를 퍼부으려고 했지만 이 사모님이 제때 말렸다.이 사모님은 이다예의 연락처를 나한테 몰래 건네주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달라고 부탁했다.나는 그 연락처를 저장한 뒤 이 선생님을 위로하다가 이내 집을 나섰다.나는 사모님 댁에 들러 사잔님과 화인당 및 천수당에 관한 일을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 이다연에 관한 일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제대로 대화해 보면 되니까.내가 사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 집에 윤지은과 백연우도 와 있었다.두 사람은 일 때문에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가 일이 끝난 뒤 바로 달려온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유미 사모님과 친한 사이라 고가의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여정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쉽네. 안 그러면 우리 넷이 또 모일 수 있을 텐데.”백연우는 소여정을 언급하며 아쉬워했다.임천호가 강북에 온 뒤로 소여정은 친구들과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때문에 그녀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윤지은은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잘 지내고 있을 거야. 임천호가 걔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이제는 임천호 아이까지 낳겠다고 나섰으니 임천호가 푸대접하지 않을 건 아니야.”그 말에 백연우가 혀를 끌끌 찼다.“이것 봐. 여정이 곁에 있을 때는 그렇게 투덕대더니, 없으니까 또 걱정하네.”“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나는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윤지은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았다.그때 백연우가 싱긋 웃으며 윤지은의 팔짱을 꼈다.“이제는 그만 인정해. 우리가 안 지 몇 년인데 누가 어
그날 임민수 내외는 모든 사람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술까지 권했다. 그 모습은 살짝 의외였다.“수호 군, 우리 호섭이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자네 공이 커. 자, 내가 한 잔 권하지.”임민수의 말에 나는 얼른 뚝딱거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어르신, 별말씀을요.”나는 솔직히 임민수가 나에게 술을 권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때 한영심도 잇따라 일어났다.“정 선생, 나도 한 잔 권하네.”“아닙니다, 어르신.”임민수 내외의 존경을 받게 되어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심지어 유미 사모님마저 직접 나에게 술을 권했다.“수호 씨, 나도 한 잔 올려요.”“사모님, 저만 마실 테니 사모님은 마시지 마세요.”사모님은 아직 사장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걱정되었다.그런데 사모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도 딱 한 잔만 마실 거예요. 우리 호섭 씨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수호 씨 덕분이에요. 호섭 씨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마실게요. 그러니 절대 사양하지 마요.”사모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술잔을 들어 올려 사모님의 잔과 부딪혔다.식사 분위기는 매우 화목하고 화기애애했으며 전에 있던 안 좋은 일은 모두 털어버렸다.임민수는 어찌나 기뻤는지 취할 때까지 술잔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두 어르신을 집으로 모셔 드리겠다고 하니 기어코 필요 없다며 대리까지 불렀다.술을 마시지 않은 한지영은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 떠났고, 이 선생님은 기분이 안 좋아 살짝 술을 들이켜더니 또 이다연을 꾸짖었다. 결국 이다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버렸고, 그 때문에 이 선생님은 또 한바탕 화를 냈다.사장님은 나더러 저와 사모님을 상관하지 말라며 대리를 부르고는, 나더러 이 선생님 가족을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다.차에 올라탄 순간, 이 선생님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셨다.나이도 드신 분이 서럽게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