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나기 시작하더니 계속 고열이 내리지 않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감염이래요. 상황이 꽤 심각해요. 그래서 B시 병원으로 옮기려고요.]나는 문자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 정도로 심각하다고?’‘그날 병원에 다녀갔을 때 안색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갑자기 커다란 돌멩이가 내 가슴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결국 위로의 말을 남겼다.[사장님은 좋은 분이니 분명 별일 없을 거예요. 제가 대신 기도할게요.][고마워요.]우리는 더 이상 문자를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모님한테서 받은 문자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점점 무거웠다.정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니?간암 말기가 되면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예전에 시골에 있을 때, 마을 어르신 중에 간암을 앓고 있는 분이 계셨는데, 말기가 되니 매일 아파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분명 우리 두 집 사이에 몇 집이 더 있었는데, 그 멀리에서도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난 사장님도 그런 고통을 겪는 게 싫었다.나는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 의서를 뒤졌다. 간암이 퍼지는 속도를 늦추거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적힌 고적이라도 있나 하고.그러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나는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는 것도 잊고 의서를 계속 뒤적였다. 그러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끝내 피곤을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 나는 민우의 소리에 깨어났다.민우는 나를 깨우더니 왜 위층에 왔냐고 물었다.“어제 사모님한테서 들었는데 사장님 상태가 악화되어 B시 병원으로 옮긴대. 의서에 무슨 방법이라도 적혀 있나 해서 도움이라도 되려고 찾았어.”민우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이건 다 사장님이 모아둔 책들인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면 사장님이 진작 발견하
[하하, 그래서 수호 씨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설마 거절할 건 아니죠?]“누가 대신 돌봐준대요?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자기 가족 떠넘기면 나더러 앞으로 어떻게 결혼하라고요?”나는 감정이 북받쳐 전화에 대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대화를 하다 보니 모태진이 대충 뭘 할지 짐작이 갔기에, 나는 절대 그가 무모한 짓을 하게 놔둘 수 없었다. 만약 이걸 막지 못하면 정말 모든 게 끝나니까.[하, 내가 지은 죗값은 내가 치러야죠. 나 때문에 화인당까지 안 좋은 일에 엮이면 난 진짜 죄인이 돼요. 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나 이제 볼일 보러 가야해요.]“전화 끊지 마요. 끊지 마요...”전화 건너편에서 긴 침묵이 흐르더니 끝내 전화가 끊어졌다.나는 속이 타들어 가 다급히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태진은 어느새 핸드폰을 꺼두었다.‘어디 가서 찾지?’한참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나는 얼른 주선영에게 전화해 한은솔 번호를 물어 그녀에게 전화했다.“한은솔, 안명훈 지금 어디 있어?”한은솔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지어 내가 다시 여러 번 걸어도 끝까지 받지 않았다.결국 나는 화가 나서 문자를 보냈다.[태진 선배가 안명훈 찾아가서 복수할지도 몰라. 만약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넌 가해자가 되는 거야. 선배 아내분한테 문자 보낸 거 너지? 그렇다는 건 적어도 양심은 있다는 뜻이잖아? 너도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 있길 바라는 건 아니지?]그 시각, 한 술집 안 구석에 앉아 있던 한은솔은 내 문자를 받자마자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오연화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한은솔이 맞다. 그녀는 모태진을 구하지는 못해도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사실 한은솔도 안명훈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무서워하기도 한다.안명훈한테 한은솔은 그저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노리개나 다름없다. 지금도 안명훈은 양옆에 아가씨를 끼고 앉아 시시덕거리며 즐기고 있는데, 한은솔은 그의 뒤치다꺼
안명훈은 가까스로 칼을 피했지만, 피하는 도중에 칼날이 그의 어깨를 베었다.순간 안명훈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더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안명훈은 제 상처를 부여잡고 버럭 소리쳤다.“예들아. 당장 와서 저 자식 족쳐!”모태진은 단칼에 안명훈을 해결하려 했지만, 그가 피해버리자 순간 당황했다. 심지어 전투 경험도 없는지라 손에 들고 있던 칼도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그러다가 술집 안 사람들이 저를 향해 달려오자 그대로 도망쳤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은솔은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아 얼른 울면서 나한테 전화했다.“모 선생님 지금 레드 오션에 있어. 방금 안명훈을 칼로 찌르려 하다가 실패해서 지금 도망 중이야. 안명훈이 모 선생님을 죽이려 하고 있어.”모태진의 위치를 들은 나는 곧장 한의관에서 뛰쳐나왔다.그때 마침 민우가 아침을 사 들고 돌아오는 게 눈에 띄어, 나는 얼른 그를 끌고 차로 올라탔다.“태진 선배가 레드 오션에서 그 자식을 찌르려 했대. 우리가 가서 도아야 해.”“헐. 이게 무슨 상황이래?”민우는 어리둥절해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내가 가면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자, 민우는 그제야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평소에 그렇게 점잖던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놀랍네. 이따가 싸우려면 얼른 배불리 먹어야겠어.”민우는 말하면서 찐빵 하나를 입에 베어 물었다.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로 3개를 먹어 치웠다.한편 나는 모태진이 위험할까 봐 차 속을 높였다.다행히 화인당이 레드 오션과 그리 멀지 않아, 우리는 10몇 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그 시각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걸 봐서는 상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민우는 밖에서 벽돌과 몽둥이를 찾아 쥐더니 나에게 몽둥이를 건넸다.“넌 경험이 부족하니까 이따 내 뒤에 붙어 있어. 누가 달려오면 그 몽둥이로 때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우선 때리고 봐.”민우는 싸움에 경험이 많다. 특히 이렇게 상대가 수적으로 많
그때 민우가 불쑥 물었다.“어떡해? 가서 말릴까?”나는 이를 악물었다.“아니! 저 개자식이 태진 씨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나라도 저놈 거시기 잘라버렸을 거야.”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시커먼 그림자들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그 모리는 다름 아닌 주해진 패거리였다.주해진은 모태진을 보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나?”“가자!”나는 때를 봐서 얼른 미우와 함께 앞으로 돌진해 모태진 앞에 막아섰다.“해진 형님, 살려줘요...”안면훈은 주해진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구원 요청을 해댔다.나는 두말없이 그 자식을 퍽, 걷어찼다.“닥쳐. 오늘 천지신명이 와도 널 구하지 못할 거야.”“지금 뭘 하려는지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수호야, 너 미쳤어? 이거 불법이야.”민우는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말했다.이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민우야, 입장 바꿔서 그런 일을 당한 게 너였다면, 나더러 그냥 참으라고 할 수 있어?”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모태진을 흘긋거리며 말했다.“태진 선배는 우리 화인당 식구야. 우리 식구를 괴롭히는 건 우리 화인당을 괴롭히는 거나 다름없어. 당하고 온 게 태진 선배든, 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난 똑같이 할 거야.”민우는 결국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래. 나도 같이해. 무슨 일 생기면 나도 같이 책임질게.”모태진은 이미 안명훈의 바지를 벗겨 그놈 거시기를 꽉 잡고 있었다.안명훈은 너무 놀라 벌벌 떨었고, 주해진은 그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젠장. 감히 나를 무시해? 저 자식 족쳐!”주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똘마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와 민우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막았다. 나는 심지어 거추장스러울까 봐 팔에 감고 있던 깁스까지 벗어던졌다.그러고는 민우가 하던 대로 요리조리 피하며 피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상대를 습격했다.물론 몇 군데 맞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가 휘두른 방망이는 한 번도 비껴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주해진이 번복할지도 모르니까.나는 사람들이 몰린 쪽을 쓱 훑다가 마침내 모태진을 찾았다.“태진 선배, 어때요? 복수했어요?”모태진은 몇 번 두들겨 맞아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다.“거의 성공하 뻔했는데 상대가 도망쳤어요.”“젠장.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고 복수는 나중에 하는 게 어때요?”내가 제안했다.모태진은 여전히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나와 민우를 생각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모태진은 원래 안명훈을 거세해 버리고 자수하려고 했는데, 나와 민우까지 연루되자 결국은 우리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모태진을 불러와 칼을 주해진의 목에 겨누게 했다.“당신 부하들은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해. 당신은 우리랑 같이 나가고.”나는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주해진은 내가 제 거시기를 놓아주자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너희들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한 놈도 따라 나오지 마.”“내가 같이 나가면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주해진은 이상하리만치 우리에게 협조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 나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우리가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술집을 나가려고 할 때, 한은솔이 달려왔다.“모 선생님,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모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봤다.“저리 비켜!”그 순간 한은솔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모 선생님, 저도 협박받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 제가 그러지 않았으면 안명훈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모태진의 눈빛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꺼지라고 했을 텐데. 손쓰게 하지 마.”“차라리 절 때려요.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을게요.”모태진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었지만 결국은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그 대신 내가 다가가 짝, 하고 한은솔의 뺨을 후려갈기며 싸늘히 충고했다.“이건 태진 선배 대신 때리는 거야. 다
“하도 우리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요.”나를 보는 모태진의 표정은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그래도 후회는 안 돼요. 그냥 안명훈 거시기를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될 따름이에요.”나는 손을 뻗어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복수는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우리한테 기회는 많아요. 어제 형수님이 가게에 찾아왔는데 엄청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이따 집에 바래다줄게요.”모태진은 마구 도리질했다.“안 갈래요. 난 집에 갈 수 없어요.”“왜요? 집에 안 가고 또 그 여자 귀찮게 하려고요?”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자 모태진이 이내 대답했다.“나 앞으로 한은솔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 가기도 싫어요.”“왜죠? 이해가 안 되네요.”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안명훈이 모태진을 협박해 한은솔과 그런 짓을 하게 했으니 아내한테 미안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걸 거다.이 상황에 나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럼 우선 화인당에 가서 몸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요. 형수가 오늘도 아마 가게에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형수를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해 봐요.”모태진은 마음이 어수선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사이, 나는 차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20분 뒤 차는 천천히 화인당 문 앞에 섰다.화인당 직원들은 이미 제 일자리를 찾아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들어오자 걱정하는 듯 빙 둘러싸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댔다.특히 오민혁은 아예 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수호 형, 왜 이래요? 괜찮아요? 절대 죽지 마요. 형이 저한테 여대생 소개해주길 고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나는 화가 나서 오민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소개는 무슨. 민혁 씨는 평생 희망 없어요. 저쪽으로 좀 비켜요.”“싫어요. 세 사람 시중도 들어야 하거
“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서지예 씨를 기분 나쁘게한 적 있나요? 좀 내가 잘되기를 바라주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반박했다.그러자 서지예가 콧방귀를 뀌었다.“날 기분 나쁘게 한 적 없다고요? 지난번에 그딴 것도 아이디어랍시고 내는 바람에 내가 동준 씨랑 한동안 말도 못했잖아요.”나는 뻘쭘해서 양동준의 눈치를 살폈다. 양동준의 눈빛은 시종일관 차가웠는데 마치 왜 서지예한테 그런 방법을 가르쳐줬냐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때문에 눈을 마주칠 엄두가 안 났다.“저기, 혹시 물 마실래요? 민혁 씨, 얼른 가서 물 따르지 않고 뭐 해요?”서지예는 손을 들어 내 말을 잘랐다.“물은 됐어요. 아가씨 부탁으로 도와주러 온 거예요.”‘윤지은?’보아하니 윤지은이 병원에서 사모님으로부터 화인당의 상황을 전해 듣고, 서지예와 양동준을 보내 우리를 도와주라고 한 모양이었다.순간 나는 윤지은한테 너무 감사했다.윤지은은 비록 자주 독설을 퍼붓지만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도와준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개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어쨌든 양동준이 여기 있읜 우리도 뱃심이 두둑해졌다. 심지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두 분 안으로 들어오세요.”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얼른 다른 직원더러 두 사람을 위해 차를 내오라고 부탁했다.양동준은 앞에서 걸어가고 서지예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서지예는 갑자기 절음을 멈추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은밀한 방 하나 찾아줘요.”“왜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서지예가 나를 노려봤다.“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저 뻣뻣한 인간이랑 단둘이 있으려고 그러죠.”‘그건...’나는 서지예의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어쨌든 나는 양동준의 제자가 되는 게 목적인데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제자가 될 수 없을 게 뻔했다.하지만 양동준은 너무 차갑고 말이 적어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다. 그에 반해 서지예는 털털하고 친해지기 쉽다.서지예가 도와주면 일이 쉬워질 테지만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요? 나를 돕지 않으면 내 도움도 바라지 마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이 타이밍에 나도 서지예의 화를 돋울 수 없어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에요. 기회 잘 잡아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를 탓하지 마요.”“오케이.”서지예는 이내 기분 좋은 좋아진 듯했다, 이윽고 말을 마친 뒤 신이 나서 양동준을 찾아갔다.나는 어이없어 한숨을 푹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사장님, 저를 탓하지 마세요. 저도 다 화인당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나는 차에 몰래 약초를 섞어 넣고 오민혁더러 차를 내가게 했다. 그렇게 하면 양동준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양동준이 여기서 지켜주고 있으니 왠지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다만 서지예와 양동준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건 두 커플 사이의 일이니 나와 상관없다.다만 우리가 한창 바삐 보내고 있을 때 서지예가 갑자기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심지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수호 씨, 이리 와요!”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왜 그래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나한테 대체 뭘 했어요? 솔직히 말해요.”“뭐 안 했는데요? 지예 씨 요구대로 했잖아요.”“그럼 왜 양동준은 마시고도 아무 문제 없는데 나만 이렇게 됐어요?”서지예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그럴 리 없어요. 내가 쓴 약초는 소한테 쓰는 거라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어요.”“양동준은 정말 괜찮다니까요. 아까 내가 그 인간 몸에 기댔는데 나를 밀어 냈어요. 지금 나만 괴로워 죽겠는데 이거 어떡해요?”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양동준이 어두운 얼굴로 내려왔다.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었다.하지만 양동준은 우리를 무시한 채 곧장 화인당을 떠났다.내가 발견한 바로는 양동준은 괜찮은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였다.양동준의 얼굴도 살짝 발그스름한 걸 봐서 그도 분명 느낌이 왔다는 걸 설명한다. 다만 양동준의 의지력이 너무 강해 그걸 억제한 거다.
형수는 차에 오르자마자 나를 보며 물었다.“아직도 불편해요?”형수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할 리 없었다.야심한 시각, 차에는 나와 형수 둘뿐이었다.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안고 입술을 비볐다.한참 동안 입을 맞춘 뒤 형수는 나를 놓아주었다.“여긴 위험해요. 우리 안전한 곳을 찾아요.”“밖에서요?”“우리 집에 갈래요? 그럴 배짱 있어요?”이건 내가 배짱이 있고 없고를 떠나, 동성 형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형수는 내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수호 씨한테 성에 대해 처음 알려줄 때 우리 집에서 했잖아요. 그때 그 경험 다시 해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는데 진동성 그 인간한테서 전화 한 통 안 오는 걸 보면 아마 집에 안 왔을 거예요. 난 수호 씨랑 집에서 하고 싶어요. 그래야 나도 소속감이 들어요.”형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면 형수가 슬퍼할 것 아닌가?“좋아요. 형수네 집에 가요.”나는 차를 운전해 형수네 동네로 향했다.우리는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동성 형은 역시나 집에 없었다.집안이 캄캄해 불을 켜려고 하던 찰나, 형수가 나를 막아섰다.“불 켜지 마요. 난 어두운 게 좋아요. 그래야 마음 놓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나는 형수의 말대로 불을 켜지 않았다.우리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형수를 오랜만에 안는 거라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형수 역시 그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몸은 이미 민감할 대로 민감해져 있었다.형수와 하는 동안, 형수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40분 뒤, 형수는 내 품에 나른하게 기대 누웠다.“역시 수호 씨랑 하면 항상 만족스러워요.”나는 형수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형수, 고생했어요.”“내가 고생할 게 뭐 있어요?”형수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그동안 참고 다른 남자 만나지 않아서 고생했다는 거예요. 나 때문이에요?”“몰라요. 아마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왜 몰라요?”나는 의아했다.“나도 다른 남자 만나볼까 생각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애교 누나와 합류했다.형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애교 누나와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나는 욕구를 참으며 운전을 해야 해서 너무 괴로웠다.다행히 한동안 참았더니 욕구가 겨우 가라앉았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선물을 샀다. 이윽고 우리는 함께 유미 사모님의 집으로 향했다.형수와 애교 누나가 선물을 고르는 사이, 사모님께 전화해 형수와 애교 누나가 사장님을 뵈러 왔다고 말했더니 사모님은 매우 기뻐했다. 심지어 두 사람을 직접 본 순간 감격에 눈시울까지 붉혔다.아마도 형수와 애교 누나가 직접 병문안까지 오리라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세 사람은 아직 소여정과 윤지은처럼 친해지지 않았기에, 형수와 애교 누나가 직접 온 게 사모님한테는 큰 감동인 모양이었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사장님을 처음 만나는 거였기에 위로의 말을 건네고 나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결국에는 사모님한테 사장님 건강과 본인 건강을 잘 돌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사모님은 고마운 눈빛으로 형수와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직접 찾아와줘서 고마워요.”“앞으로 유미라고 불러도 되지? 기분 안 나쁘지?”형수가 사모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러자 사모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당연하지.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그래. 그럼 앞으로 이렇게 부를게. 친구라고 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고민 없이 우리한테 말해 줘.”애교 누나도 옆에서 맞장구쳤다.“맞아. 이제 남도 아닌데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 부탁해.”사모님은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떠났다.그러자 사모님은 나더러 두 사람을 배웅하라고 부추겼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사모님은 처음으로 나한테 살갑게 대했다. 나는 순간 감개무량했다. 만약 형수와 애교 누나가 오지 않았다면 나와 사모님은 아마 지금까지 냉전 중이었을 거다.형수와 애교 누나를 배웅하려고 집에서 내려왔더니 형수가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이젠 아예 사
“비겁한 x놈들. 두 사람이 저지른 짓 진동성한테 다 말할 거야. 내가 너희 둘이 잘 살게 내버려둘 것 같아?”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나와 형수의 모습에 진용진은 질투심이 솟구쳤다.형수는 동생인 고수연보다 몇 배는 예쁘다. 때문에 진용진은 진작 형수의 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형수가 저는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나와 눈빛을 교환하니 질투가 날 수밖에.형수는 두말없이 또 진용진의 뺨을 후려갈겼다.“말할 테면 말해. 난 상관없어. 그런데 날 노리려는 생각은 영원히 묻어 둬. 너처럼 두꺼비 같이 생긴 놈은 내 스타일 아니야. 그리고 내 동생과 빨리 이혼해. 또다시 다른 x 데리고 수연이를 역겹게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형수는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경고했다.그 사이, 나는 핸드폰을 꺼내 진용진과 그 요망한 여자의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진용진은 순간 깜짝 놀라 손을 들어 내 자기를 가렸다.“뭐 하는 거야?”“증거 사진 찍는 거잖아. 바람피운 현장인데 증거 사진 찍어 둬야 하지 않겠어?”윤미화의 탐정 사무소에서 일한 뒤로 나는 이혼 소송이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알아버렸다. 이혼 소송을 하려면 자기한테 유리한 증거를 많이 수집해 상대가 법정에서 할 말이 없게끔 해야 한다.진용진과 고수연은 현재 모두 이혼 소송을 건 상태인데,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용진이 내연녀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면 고수연한테 도움이 될 거다.사진을 찍은 뒤, 나는 형수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수호 씨, 가지 마요.”내가 떠나려 할 때, 형수가 내 손을 잡고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내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헝수가 설마...’“형수, 안 돼요. 애교 누나가 기다려요.”“애교 만나러 가는 게 그렇게 급해요? 수호 씨 마음속에 나는 없는 거예요?”형수는 입을 삐죽거리며 질투하는 모습을 보였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애교 누나가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그래요. 그리고 우리 사장님 병문안
진용진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제 품에 있던 여자를 내 쪽으로 밀쳤다.하지만 그 여자는 약간 싫어하는 눈치였다.“자기야, 나 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자극적인 플레이를 해볼 거야. 한번 해 봐. 너도 좋아하게 될 테니까.”요염한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용진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그 순간, 힘없이 내 품에 기대 있던 형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우리는 진용진과 그의 내연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해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때 형수가 두말없이 다가가 짝, 하고 진용진의 뺨을 후려갈겼고 진용진은 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쳤다.진용진의 내연녀는 깜짝 놀라 바들바들 떨더니 다급히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진용진은 형수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그 순간 나는 진용진에게 달려들어 놈을 발로 뻥, 하고 차버렸다. 진용진은 그대로 나가떨어져 바닥에 고꾸라졌다.형수는 얼른 놈을 타고 올라 양 볼을 철썩철썩 때렸다.진용진의 입에서 연신 악악거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형수는 한참 동안 놈의 뺨을 때리다가 힘이 달리자 그제야 동작을 멈췄다.“개자식, 감히 나를 노려? 죽고 싶어?”진용진은 그제야 나와 형수한테 제대로 당했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정수호, 이 개자식이. 감히 나를 갖고 놀아?”나는 진용진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너를 갖고 놀지 않으면 누구를 갖고 놀아? 감히 네 주제에 우리 형수를 넘봐?”내 발에 걷어차인 진용진의 얼굴은 순간 퉁퉁 부어올랐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불복하는 표정이었다.“나더러 ‘감히’라고 한 거야? 그러는 넌 자격이 있고? 진동성이 없으면 지금의 너도 없었을 거면서, 은인의 여자랑 뒹군 주제에 넌 뭐 좋은놈인 줄 알아?”진용진의 말에 나는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냉소를 띤 채 놈을 또 한 번 걷어찼다.옆에서 지켜보던 형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수호 씨,
‘게다가 그렇게 분 냄새 심한 여자를 어떻게 형수와 애교 누나와 비교해?’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 연기했다.“그래. 약속할게.”우리는 대화를 끝내고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자리에 돌아오자마자 형수와 애교 누나는 내가 진용진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었다.나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형수, 이따가 저 협조해 줘요. 이따가 저 개자식을 사람 없는 곳으로 유인한 뒤 죽사발을 만들 거거든요.”형수는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됐어요. 진용진은 미친놈이나 다름없어요. 저런 자식을 때리면 오히려 수호 씨를 물려고 들지도 몰라요.”“전 두렵지 않아요. 저 자식이 감히 형수를 희롱하는데, 이번에 제대로 혼 내주지 않으면 이 화를 도저히 가라앉힐 수 없어요.”형수는 여전히 고민했다.그때 애교 누나가 맞장구치며 말했다.“태연아, 난 이번에 수호 씨 편이야. 저런 쓰레기는 제대로 혼내줘야 해. 그리고 너도 동생 대신 복수하고 싶지 않아?”애교 누나의 말에 형수는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그럼 이렇게 해요. 이따가 형수가 저를 협조해서 취한 척하면 제가 형수를 끌고 사람 없는 곳으로 갈게요. 그리고 저 자식을 유인하면 돼요.”“하, 알았어요.”형수는 끝내 동의했다.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 사이, 나와 형수는 끊임없이 술을 들이켰다. 물론 형수가 마신 건 모두 음료수였지만.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형수는 기회를 봐서 취한 척 연기했다.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애교 누나, 누나는 먼저 돌아가요. 전 형수 먼저 데려다줄게요.”애교 누나는 내 연기에 협조했다.“그래요. 난 먼저 가볼 테니 두 사람 조심해요.”애교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고, 나 역시 형수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그 사이 형수는 일부러 내 품에 쓰러졌다. 순간 말캉한 몸이 내 가슴에 찰싹 붙어 왔다.형수는 일부러 내 가슴을 꼬집었다.“나쁜놈. 수호 씨 진심으로 나 도와주려는 거예요? 아니면 이 기회에 나를 노
“이런 우연이. 식사하러 왔나?”‘뭔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는지.’‘샤브샤브 식당에 식사하러 왔지, 설마 바람 현장 잡으러 왔을까?’형수는 직설적으로 대답했다.“진용진, 수연이랑 이혼한 게 아니면 아직 법률상으로 수연이 남편이고 내 처남이야.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내연녀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진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나 당신 동생 앞에도 이 여자를 당당히 데려갔던 사람이야, 당신이라고 신경 쓸 것 같아?”형수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용진, 선 넘지 마. 사람이 아무리 물러서 화는 내. 우리 고씨 가문 사람들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야.”진용진은 여전히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나도 알아. 만만하지 않다는 거. 그러니까 천천히 싸워보자고.”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은 마치 바람피우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같았다.그 모습에 형수는 화가 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하지만 진용진은 음탕한 눈빛으로 형수의 가슴을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서서 놈의 멱살을 잡았다.“우리 잠깐 저쪽 가서 얘기할까?”진용진은 내가 뭔 얘기를 하려는 지 몰라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여전히 요행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그래, 가자고.”진용진은 내연녀더러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나를 따라왔다.우리는 함께 구석진 곳에 도착했다. 그 순간 진용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할 말이 뭔데?”“맞춰봐.”진용진은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고, 나 역시 똑같은 시선으로 놈을 훑었다.그때 진용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와 네 형수 일에 대해 말하려는 거야? 아니면 약재 합작 건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거야?”나는 서둘러 대답하는 대신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나와 형수가 뭐?”나는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그러자 진용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시치미 떼지 마. 두 사람 아까 뭔 짓 했는지 똑똑히 봤으니까. 정수호, 고태연도
30분 뒤, 우리는 성호샤브샤브 식당에 도착했다.형수는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어 육덕진 몸매가 더 도드라졌다. 그 때문에 주위 남자들은 형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몰래 훔쳐봤다.나는 일부러 형수 옆에 앉았다.애교 누나는 내 의도를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형수를 훔쳐보던 남자들도 잠깐 훔쳐보더니 더 이상 보지 않았다.형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가 이러면 나한테 대시하는 남자가 없잖아요. 두 사람만 만족하면 난 어떡하라고요?”그 말에 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럼 수호 씨가 너 한번 만족시켜 주면 되잖아.”“너 정말 괜찮겠어?”“안 괜찮을 거 뭐 있어. 우리 아직 정식으로 관계 확정한 것도 아닌데, 네가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하던가.”가운데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내가 뭔 도구도 아니고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하라니.“애교 누나, 제 기분도 생각해 줘요.”내가 슬쩍 귀띔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혔다.“왜요? 수호 씨한테 득이 되는 데도 싫어요?”“얼른 주문해요.”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이건 득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두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그렇다고 둘 모두 만족시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얼마 뒤,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애교 누나와 형수더러 메뉴를 고르게 했더니 형수는 아예 메뉴판을 애교 누나 앞으로 죽 밀었다.“난 이미 주문했으니 나머지는 네가 주문해.”애교 누나도 거절하지 않고 곧장 음식을 주문했다.그때 형수의 손이 갑자기 내 다리 위에 올라오더니 살살 긁어댔다.나는 이내 형수의 뜻을 알아차렸다.'하지만 형수는 전에 분명 나한테 더 이상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알게 뭐야.’나는 얼른 형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형수의 손은 통통해 애교 누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그때 형수가 나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날렸다.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안된다는 뜻을 내비
형수는 나와 애교 누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거였다.형수가 떠난 뒤, 나는 참지 못하고 애교 누나를 와락 끌어안고 강하게 키스를 갈겼다.“애교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요.”애교 누나는 내 키스에 얼굴이 발그스름해져 부끄러운 듯 말했다.“그래요? 어디가 보고 싶었는데요?”“어디든요.”고작 몇 번 키스한 것뿐인데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역시 애교 누나의 매력은 너무나도 컸다.내 변화를 느낀 애교 누나는 얼굴이 더 상기되었다.“수호 씨 나빴어요. 자꾸 찌르지 마요.”나는 누나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누나가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이 근처에 호텔이 있던데 우리 호텔에 잠깐 들를까요?”애교 누나는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방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오랜만이라 나와 애교 누나 모두 감정을 쉽사리 억제하지 못했다. 우리는 마치 영영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오랫동안 키스했다. 옷을 한 벌 한 벌 벗기다 보니 익숙한 몸이 눈에 들어왔다. 백옥 같은 몸을 보니 오랜만에 따스함과 즐거움이 느껴졌다.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누나를 탐했다. 심지어 매번 1시간씩 지속했다.애교 누나는 몇 번이나 절정에 달했다. 정사가 끝난 뒤 나는 애교 누나를 꼭 껴안았다.“애교 누나, 그동안 잘 지냈어요? 누나 아빠가 그동안 누나를 난처하게 굴지는 않았어요?”애교 누나도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았어요. 난처하게는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만나는 건 계속 반대했지만. 한 번은 수호 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는데, 혹시 만났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만났어요. 저더러 누나를 포기하라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그리고 한 가지 계약을 맺었어요. 1년 안에 제 성과가 왕정민을 뛰어넘으면 우리를 갈라놓지 않겠댔어요.”“그건 너무 어렵잖아요. 왕정민이 전승빈 도움으로 회사를 더 키웠다고 하던데.”애교 누나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누나가 나를 걱정하는 걸 알았기에
나는 차를 몰고 화인당에 도착했다.내가 사장님의 차를 타고 온 걸 보고 다들 내가 사장님의 심복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사실 나는 이런 게 좋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혼자 나가서 일할 때 어려울 테니까.“다들 그만 놀려요. 제가 몰고 다니던 차는 수리해도 영 별로라서요. 지금은 제가 사장님과 화인당을 대표하는데, 제가 그런 차를 타고 다니면 체면이 깎일까 봐 사장님이 빌려주신 거예요. 사장님이 돌아오면 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요.”내 말에 고참 직원들이 마음을 놓았다.이제 막 들어온 지 몇 달도 안 된 신참이 매일 미녀한테 둘러싸이는 것도 모자라, 사장님의 특별 대우까지 받으면 고참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신분을 낮추니 그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동료들은 다시 웃고 떠들며 자기가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10시가 넘을 때쯤 형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수호 씨, 오후에 나랑 애교가 수호 씨네 사장님 뵈러 갈 거예요.]“애교 누나요? 애교 누나랑 같이 가요? 정말이에요?”애교 누나도 함께 온다는 소리에 나는 마음이 설렜다.형수는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가 애교 보고 싶어할 줄 알고, 내가 일부러 애교 본가까지 찾아가서 불러냈어요.]“그럼 누나네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해요?”[애교를 불러낸 게 수호 씨도 아니고 나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하겠어요? 그냥 저녁에 일찍 돌려보내라고만 했어요.]“형수, 고마워요. 저를 이렇게 도와주시고.”나는 형수한테 너무 고마웠다.그러자 형수가 대답했다.[고마울 거 뭐 있어요? 두 사람을 돕는 건 나를 돕는 거나 다름없어요. 난 평생 새장에 갇힌 새처럼 밖을 나갈 수 없으니까 두 사람이라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형수, 그런 말 마세요. 새장에 갇힌 새라고 해도 형수는 즐겁게 지내야죠.”나는 얼른 형수를 위로했다.그러자 형수가 말을 이었다.[나도 다 알아요. 위로해 줄 거 없어요. 우리가 오후에 수호 씨 찾으러 갈게요. 애교랑 하고 싶은 게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