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은 그 어린아이가 계란이였다는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말했다."왜 온 것이냐? 누가 너를 데리고 온 것이냐? 스승님과 산으로 돌아가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버지는 네가 온 것을 알고 있느냐?"연달아 이어진 물음과 동시에 그는 계란이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어서 들어오거라. 햇빛이 하도 쎄서 그런지 얼굴도 다 빨개졌구나."안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다과가 준비되었느냐? 어서 다과를 갖고 오거라."안왕비와 안지도 걸어 나왔다. 여동생을 본 안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덥석 계란의 손을 잡았다."계란아, 왜 온 것이냐? 오숙도 오신 것이냐?""아버지께서는 함께 안 오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데려다주셨습니다."계란이가 웃으며 위왕이 묻는 말에 친절히 답했다."어서 들어가자. 요즘 날씨가 정말 덥구나!"안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고, 안왕비는 바로 하인에게 다과와 군것질을 대접하라고 명했다. 강북부에는 맛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경성에서 데리고 온 부엌 나인이 다과를 만들 줄 알았다.강북부에서 다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계란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위왕과 안왕이 연달아 ‘고문’을 시작했다."택란아, 네 아버지가 정말 네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위왕이 의아해하며 묻자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믿지 못하시면 어르신에게 서신을 보내 물으십시오."안왕과 위왕은 시선을 마주했다. 어르신이라는 세 글자가 괜히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위왕이 말했다."서신을 보내 물으마. 진국공주로서 절대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네 아버지가 왜 보낸 것이냐? 산에서 스승과 무예를 익혀야 하지 않느냐?"우문택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성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스승님께서 산에서 배운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도에 통달하려면 경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강북부나 약도성에서 인턴 생활을 할 뿐이지요.""인턴?"안왕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지한 계
위왕은 편지를 쓰고 비둘기의 다리에 맸다. 비둘기는 쏜살같이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꼬마 봉황이 비둘기를 뒤쫓았다.비둘기도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정면에서 날개를 펼친 꼬마 봉황 때문에 비둘기는 어쩔 수 없이 공중에서 다급히 멈춰 섰다. 봉황은 사나운 눈빛으로 커다란 날개를 펼쳤고 비둘기는 반응할 새도 없이 봉황의 날개 사이에 갇혔다.비둘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우문택란이 강북부에 온 지 4일이 되었다. 그동안 위왕은 줄곧 우문택란과 안지를 데리고 강북부 곳곳을 구경하며 그곳의 민속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삶과 변방 병사들의 노고를 느끼게 해줬다.그들은 강북부의 산과 풍경도 구경했다.안지는 첫 두날은 따라다닐 수 있었지만, 다니는 곳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나머지날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안왕비도 우문택란의 뛰어난 체력에 탄복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고 돌아와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함께 다니던 위왕이 피곤한 기색을 띠었다.나흘째 저녁 날, 우문호로부터 서신을 받았다.안왕이 먼저 서신을 본 후 위왕에게 전했다."다섯째는 알고 있습니다."위왕은 편지를 열어 읽기도 전부터 무척 놀라했다."이렇게나 길게 쓴 것이냐?"편지에는 다섯째가 기화가 계란을 데리고 강북부에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승낙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빌려 약도성에도 다녀가고, 몇 달 지내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봉지이니, 귀속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특별히 그녀가 원하는 일에 간섭할 필요 없이 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경험을 많이 쌓게 하고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위왕은 편지를 읽으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섯째의 성격으로 어찌 딸이 위험을 무릅써도 괜찮으니, 애지중지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섯째는 계란이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말도 하려 하지 않
안왕비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들이 길에서 먹을 다과를 바삐 준비했다. 이곳은 경성과 달리 맛있는 것을 편히 사 먹을 수 없었다.날이 밝자마자 다들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위왕은 마차를 준비했지만, 기마술이 뛰어나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우문택란의 말에 말을 준비했다.약도성으로 가는 길은 산지가 많고 관도가 적어 말을 타는 것이 마차를 타는 것보다 편리하기에 위왕도 그녀의 뜻에 동의하였다.안왕과 위왕, 그리고 공주 한 명에 봉황 한 마리, 하인 몇 명이 약도성으로 출발했다.약도성은 강북부에서 그저 200리가 떨어진 거리였다. 말을 타고 순조롭게 간다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길에서 반 시진 쉬며 다과를 먹고 위왕은 꼬마 봉황을 데리고 놀았다. 꼬마 봉황도 주인을 똑 닮은 듯 아주 침착했다.하지만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급선회하는 모습을 보면, 성질이 있는 봉황이라 느껴졌다.그것도 계란이와 똑 닮았다. 계란이가 조용하고 똑똑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녀의 몸속에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다.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도성에 도착했다.약도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이 숟가락과도 같았다. 서쪽은 끊임없이 이어진 산봉우리였고, 가장 높은 봉우리는 2천 미터 정도의 약도봉 이었다.남쪽도 산이 있었지만, 산세가 낮아 식물을 심기에 적합했고, 동쪽은 지세가 평탄하여 초원이 많아 목축하기에 적합했다.북쪽에 있는 약도산은 산세가 가파른 편이었다. 약도산은 조용히 누워 있는 맹호와도 같이 금나라와의 왕래를 차단했다.이곳에는 풍부한 광산 자원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금나라가 수도를 옮기려는 이유였다. 아마도 이곳의 광산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약도성에는 30여만 명의 백성들이 지내고 있었다. 백성의 태반이 목축과 쌀보리를 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약도성은 과거 북막의 양마장이었다. 북막의 전투마들은 대부분 약도성에서 옮겨진 것이었다.경제가 뒤처진 터라, 북막에 심하게 착취를 당했다. 전마를 팔 수 없었고 조정을 대신하여 키울 뿐이
위왕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전혀 개의치 않는지 바로 답했다."주 아가씨한테 주인이 왔다고 전하거라."여인은 시선을 우문택란에게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 놀라움이 묻어있었다.‘참 예쁘게 생겼구나. 저 아가씨가 바로 공주인가?’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려던 순간,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었다."사람도 많고 상황이 복잡하니, 예를 올릴 필요 없소."여인은 웃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예. 바로 주 아가씨께 보고하러 가겠습니다!"그녀는 몸을 돌려 말 한 마리를 끌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위왕과 안왕은 조카딸을 데리고 빨리 떠나려 했다. 골목 곳곳에서 욕설과 싸움으로 가득했고 평화롭지 않았다. 그들은 조카딸의 눈을 더럽힐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 그들은 어린 조카딸의 수용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골목에서 패싸움하는 것도 멈춰서서 재밌게 구경할 정도였다.그녀는 갓 산에서 내려온 토끼처럼 귀엽고 무해했고 세상만사에 흥미가 가득해 보였다.패싸움과 닭싸움을 보고, 도박에 기생들이 손님을 부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도둑질에 거지가 물건을 빼앗고 가게 주인장이 손님을 속이는 것도 구경했다. 그렇게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두 시진이 지나서야 저택에 도착했다.비록 저택은 아주 컸지만 조금도 화려하지 않았다. 돌사자도 없었고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대문도 없었다. 그저 저렴한 나무로 지어진 소박한 대문 하나뿐이었고 문패의 글도 검으로 ‘성주부’라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성주부의 ‘부’ 자도 틀리게 적혀 있었다.그녀의 부하들이 얼마나 무식한 지 알 수 있었다.누군가 문 앞에서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러 갔다. 그들이 말에서 내리자, 주 아가씨가 사람을 데리고 뛰어나왔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리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오자마자 상전에게 예를 올리기 전, 먼저 위왕을 질책했다."두 시진 전에 성문에 도착했는데, 어찌 이제야 성주부로 도착한 것입니까?"그녀는 성문
주 아가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진작에 병사를 쓰고 싶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잖습니까?""병사를 투입하면 조정의 대계를 망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병사를 쓰면 조정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약도성은 원래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기에 호부에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아마 3, 5개월 안에는 이 돈을 쓰지 못할 것이다."내부 모순에 병사를 쓰려한다면 조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그리고 갈등을 자극할 수도 있으니, 그는 그동안 병사를 쓰려하지 않았다.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그럼, 왜 물으신 겁니까? 묻기만 하면 병사를 쓸 수 있는 것입니까?"위왕이 손을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너는 모른다. 형식상으로 말은 물어야지 않겠느냐?"주 아가씨가 눈을 흘겼다.주 아가씨는 안왕에 대한 태도가 그나마 좋았다. 안왕이 도성의 생산, 경제, 목축과 농사를 묻자, 주 아가씨는 다시 인내심을 잃었다.그녀는 이미 인내심의 끝에 달했다. 그녀가 얼마나 병사를 이끌고 산을 점거하고 있는 유민들을 처리하고 싶은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유민 도둑무리들은 한 달에 한 번 사에서 내려와 백성들을 약탈하였다. 백성들은 힘들어하며 조정이 그들을 위해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원망했다.하지만 낭산은 지키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산세였다. 도적들이 얼마나 있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성에서 도망쳐 온 유민들이 약도성에 어울리지 못하면 도적떼에 몰려들어 도적들의 수는 계속 증가되었다.예전에는 오합지졸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산에서 내려와 약탈할 때마다 조직적으로 안배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위왕을 경고했다."약도성을 계속 관리하지 않으면 몇년후 북당의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위왕은 약도성의 상황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형세가 심각한 듯했다. 안왕과 몇 마디 나눈 후, 그가 주 아가씨한테 말했다."좋다. 2천 명이
위왕의 계획은 여유로웠다. 계란이를 데리고 이틀 묵은 후 경성으로 돌아가도 약도성을 보러 온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문택란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이틀 동안 위왕은 계란을 데리고 약도성을 살펴보았다. 나쁜 상황에 부딪히면 위왕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아름답게 포장하고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다.누군가 도둑질을 해도 위왕은 이렇게 해석했다."이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집안이 가난한 데다 여든살이 된 늙은 어머니와 어린아이 여덟명을 키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질하는 것이다."안왕은 도둑질을 한 사람을 뒤쫓아 돈을 되찾는 일을 맡고 있었다.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위왕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약도성은 무술을 즐기는 곳이다. 다들 무예를 익히기 좋아하고 골목에서 무예를 겨루곤 한다. 음...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자들은 아마 무예가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고 부지런히 연마할 것이다.""절름발이 거지가 어찌 달릴 수 있겠느냐? 정말 기적이구나. 약도성은 기적이 나타나는 곳이다.""약방의 약이 비싸다고? 그래. 멀리서 운반해 온 약재들이니, 운송비가 비싸다. 그래서 약들도 비싼 것이다.""이 여인들은 날이 너무 더워서 저렇게 적게 입은 것이다. 넌 보면 안 되니, 어서 고개를 돌리거라."우문택란은 멍하니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위왕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어제 도성에 왔을 때 이미 봤던 상황인데, 큰아버지는 그녀의 기억까지 지우려는 셈인가?큰어머니를 여태껏 달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분명 똑똑하지 못했다.그는 우문택란을 이틀 동안 얼버무리고 다시 경성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우문택란도 반대하지 않았다.위왕은 주 아가씨에게 식사를 준비하라 명했고 다들 함께 식사한 후 길을 떠나려 했다.그러자 주 아가씨는 바로 승낙했다. 성주는 비록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2천 명이 되는 병사를 얻었으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그녀는 아이가 즐겨 먹을 것 같은 정교한 음식을 만들라고 부엌에 시켰다. 평소 그들은 이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을 이끌고 순찰을 나갔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목이 걸어 나와 주 아가씨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공주마마께서 다시 돌아오셨소. 이번엔 위왕과 안왕 없이 혼자 돌아오셨소.”주 아가씨는 불안해졌다.“예? 혼자 오시다니요? 위왕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어찌 공주를 혼자 보내신 것입니까?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마마 괜찮으신 것입니까?”“괜찮소. 방금 식사를 마치시고 지금은 정원을 거닐고 계실걸세.”아목이 말했다.주 아가씨는 다급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뒷마당을 지나 택란을 찾아갔다. 택란은 작은 봉황과 함께 놀고 있었고 주 아가씨가 다가오자, 손을 뻗었다. 작은 봉황은 그녀의 팔에 올라타 천천히 손을 따라 어깨에 앉았다.택란의 갸름한 얼굴에는 연한 분홍빛이 감돌았고, 이마에는 맑고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오셨소?”주 아가씨가 물었다.“마마, 왜 다시 돌아오신 것입니까? 왕야는요?”"그들은 돌아갔소.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더구먼."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그녀는 돌아가던 중, 사부가 오셔서 그녀를 데려갈 테니 사부를 따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위왕과 안왕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돌이 떨어지는 걸 보고서 비로소 그녀의 사부가 실제로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그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말았다. 그 술에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이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어떻게 공주를 이렇게 놔두고 갈 수 있습니까?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위왕이 공주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그가 공주를 여기 남겨두어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더욱 화가 났다.그녀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많았다면 그녀는 진작에 사
그녀가 떠나자마자, 택란은 눈을 떴다. 마치 검은 포도알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천장에 비친 미세한 빛을 응시하였고,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사람들은 꽤 재미있긴 하지만, 사실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약도성이 그녀의 것이라면, 그녀는 꼭 백성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눈을 뜨고 일어나 옷을 입었다. 준비를 마치자 마침 묘시, 즉 이른 새벽이었다. 날은 아직 어두웠고, 개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온 세상이 고요했다.그녀는 사람을 기다리며 간단히 청소를 했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오지 않자, 꼬마 봉황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마구간에 가서 말을 끌어 마당으로 나섰다. 문지기는 잠시 졸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슬쩍 눈을 떴다. 한 어린아이가 말에 올라타 말을 타고 나서는 것을 보고, 문지기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줄로 알고 어리둥절했다.‘어디서 온 아이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이런 생각도 잠시, 그는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해가 뜨고 문지기는 잠에서 깨어났고, 그제야 깨달았다.‘아이가 왜 없지? 아, 공주님이…’그는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침 나오고 있던 주 아가씨와 공연, 허둥지둥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는 것이냐?”“주 아가씨, 공주께서 오늘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문지기가 다급히 말했다.“나가셨다니?”주 아가씨는 고개를 돌려 공연을 바라보았다."오늘 아침에 공주를 뵈러 가지 않은 것이냐?"공연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저는 공주가 여기에 계신 것도 깜빡했습니다. 잘 못 본 거 아닐까요? 어제 약이 섞인 연기를 마셨으니, 적어도 정오까지는 일어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녀도 피곤했다. 어젯밤 방 안에 앉아 있다가 경미한 약을 흡입해 버려서 늦잠을 자게 되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진작 일어났을 것이다.주 아가씨는 발을 돌려 택란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
이리 나리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곁으로 걸어가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사람이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재산은 평생을 써도 남을 만큼 많으니 아끼며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그는 말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탄 뒤,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원경릉은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앞서 한 말은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뒤이어 한 말은 또 다른 의미로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저렇게 자랑하지 않으면 못 참는 걸까?랑문서가 정식으로 설립된 날, 삼대 거두는 길고 긴 폭죽을 보내왔다. 폭죽 소리는 십 리 밖까지 울려 퍼졌고, 이는 북당이 한 걸음 더 발전했음을 상징했다.수도에서 천 리 떨어진 약도성에서도 이날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도성 중심에 새로 만들어진 상업 거리가 성대하게 시작을 알렸다. 이곳은 택란이 계획한 곳으로, 각종 장사를 한곳에 모아 거래를 규범화하고, 관아에서 관리하여 사기와 도둑질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상업 거리라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는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만들 예정이다.같은 날, 또 다른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도로 건설의 시작이었다. 간소한 의식을 치른 뒤, 도로 공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약도성은 광산 자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금나라와의 합의만 아니라, 산을 개척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기초 공사도 필요했다.조정에서 약도성에 특별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작업은 성에서 스스로 해내야 했다. 다행히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확보했기에, 이를 공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한편, 택란은 계속 금나라의 상황을 꼬마 봉황을 통해 접하고 있었다.진국왕은 얼음에 맞은 후 죽지는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지위를
주 어르신은 원경릉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세상 만물은 도법을 떠날 수 없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주 어르신은 정말 학식이 깊으십니다!”“대충 추측한 것이다!”소요공이 손으로 부채질하며 원경릉에게 물었다.“또 진맥하러 온 것이냐? 어제 네 할머님도 다녀갔다.”“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손가락을 찌를 것입니다!”원경릉이 말했다.무상황은 손가락 찌른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안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는 얼마 전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고, 며칠에 한 번씩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가?원경릉은 그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히 약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어르신은 모범을 보이듯 먼저 혈압을 쟀고, 소요공도 뒤따라 검사했다.검사를 마친 두 사람은 무상황을 붙잡아 의자에 앉히고, 손가락을 원경릉 앞으로 내밀었다. 소요공이 말했다.“세게 찌르거라!”원경릉은 물론 세게 찌를 리 없다. 그녀가 부드럽게 처리했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소요공을 노려보았다.혈압과 혈당이 조금 높긴 했지만, 심각한 편은 아니라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모든 검사를 마친 후, 원경릉은 랑문서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주 어르신은 중요한 일이니 곧바로 동의했고, 바로 이리 나리를 불러왔다.이리 나리는 이미 이런 노골적인 요구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는 과거 늑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평생에서 얻은 것이 많지만, 그 어떤 것도 공주보다 귀하지 않다. 만약 내 모든 것을 공주와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 늑대파도 포함해서 말이다.”이 말에 늑대파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를 둘러싼 채 한바탕 두들겨 팼다. 이리 나리는 가까스로 틈에서 빠져나와 힘겹게 말했었다.“하지만 설랑은 제외다!”그는 결국 더 심하게 두들겨 맞았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
사건의 진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문호는 종권을 보며 늑대파가 지금의 임무 외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랑문서라는 기관을 설립해 각 주부의 큰 사건들을 전담 조사하도록 하는 것이다.특히 지역과 주부를 넘어서는 큰 사건들은 지역적 한계로 인해 조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랑문서에 권한을 부여하여 형부나 대리사의 통제를 받지 않게 한다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지고 효율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우문호는 곧바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이일은 이리 나리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늑대파가 비록 그동안 조정의 일을 도맡아왔고 사실상 조정에 소속된 상태였지만, 공식적으로 관청을 설립하는 것은 늑대파가 이리 나리의 관할에서 완전히 벗어나 나라의 소속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논의 후 내각 대신들이 모두 찬성했지만, 우문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동안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 왠지 부끄럽구나.”냉정언이 대꾸했다.“그렇다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시지요.”우문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건 안 된다. 부끄럽긴 하지만, 일은 해야 한다.”그는 냉정언을 보며 말했다.“다만, 내가 직접 나서긴 좀 그러니, 네가 이리 나리를 설득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냉정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체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황후께 부탁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사제 관계였으니 얘기가 통할 것입니다.”“원 선생은 체면이 없는 줄 알아? 안 된다. 원 선생도 이미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했다. 네가 수보니, 네가 가야지.”냉정언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더 권위가 있는 수보를 찾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 어르신은 어떤가요?”“좋다!”우문호가 바로 동의했다.냉정언이 말을 이었다.“그럼 황후께서 맥을 보러 가실 때, 주 어르신께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는 이 말을 남기고 다급히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멍하니 있다가 바로 깨달았다.‘결국 또 원 선생이 나서게
사실 소금 사건은 겉보기엔 제왕 일행이 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색과 늑대파가 조사하고 있었다.미색은 이미 성공적으로 손영영과 접촉했다. 사실 손영영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회왕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색에게 해명하려 했지만, 미색은 아예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회왕은 답답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원경릉은 이를 보고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며 생각했다.‘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겠지? 고생 좀 해봐야지.’그녀는 이 일을 다섯째에게 알렸고 다섯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섯째는 호부를 관리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데는 일등이오. 지금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거나 연기, 책략을 필요한 일에는 서일 만도 못 하오. 그런 주제에 미남 계를 쓰고, 셜록 홈즈를 흉내 내다니. 그냥 고생 좀 하게 두시오. 우리가 나설 필요 없소.”원경릉이 웃음을 터트렸다.“셜록 홈즈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하오!”“뭐가 대단하오? 그곳에 몇 번이나 갔는데, 이런 새로운 이야기도 내가 모를 것 같소?”“셜록 홈즈는 새로운 이야기에 속하지 않소.”“나를 비웃으려는 것이오?”우문호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알았소. 웃지 않겠네. 그나저나, 호랑이와 늑대도 출발했고, 사식이도 며칠 뒤에 궁으로 들어올 것이오.”“좋구먼. 이제 궁에 아이들이 있게 됐소. 사식이의 아이는 이제 몇 달이 되었네. 볼이 얼마나 말랑하고 귀여운지 아시오?”다섯째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래서 서일에게 거처를 제공하려 한 것이오?”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당연히 아이 때문이지. 서일한테서 뭘 바랄 수 있겠소? 서일은 도통 쓸모가 없소.”“그만하시오! 말을 좀 이쁘게 하시오. 서일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네.”“서일을 하루라도 놀리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오!”“독설가가 따로 없소!”원경릉은 비록 그를 타박했지만, 사실 그녀도 사
“경험한다니? 어디에 가서 경험하는 것이오?”다섯째는 뒤따라오던 호랑이와 늑대를 돌아보았다. 녀석들은 기운 없이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었다.“밖으로 나가는 건 좋지만, 아무도 따라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소.”“아주 영리한 녀석들이라 괜찮소. 아니면 늑대파에 부탁해서 데리고 나가게 하는 게 어떻소? 석 달이든, 반년이든, 한해든 밖에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소.”다섯째는 호랑이와 늑대를 부르더니 무릎을 꿇고 녀석들을 안아줬다. 그는 호랑이와 늑대의 털을 쓰다듬으며 원경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당신 말이 맞소. 이 녀석들을 계속 이 궁에 가두면 아프기라도 할 것 같소. 밖으로 나가 경험을 쌓게 해야 하오.”“좋소!”원경릉은 안도하며 웃었다. 드디어 녀석들을 주인들에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어디로 보내야 하오?”다섯째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원경릉을 바라봤다.“음, 그냥 네 개의 성으로 보내서 녀석들의 주인과 만나게 하는 건 어떻소?”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뭐요?”다섯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녕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소?”원경릉은 그를 바라보며 너무 놀라서 뭐라 대답할 말을 잃었다.“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오?”다섯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밤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흔들었다.“이번에 집에 갔을 때, 자네 오라버니 방에서 옛 검을 하나 봤소. 자세히 살펴보니, 그 검은 남유성에서 제작된 것이었고, 검 손잡이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소. 누구 이름일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기대며 미소 지었다.“경단?”“맞소. 그 녀석은 원래 사람의 환심을 잘 사오. 형님이 옛 검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만든 거요. 그 검 때문에 그들이 북쪽에 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에 그들의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소. 내가 또 뭘 알았는지 알고 있소?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져갔고, 심지어 셀카도 찍었소.”원경릉의 심장이 잠시 멈춘 듯했다.
서일이 요리사들을 쫓아내자, 원경릉이 그를 수라간으로 불러들여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원경릉이 물었다.“왜 궁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느냐? 사식이가 승낙했느냐? 홀로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지 않겠느냐?”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다.서일이 답했다.“사식도 동의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니, 집안 지출이 꽤 늘었습니다. 야간 근무를 하면 봉급이 더 나오고, 후궁에서 근무하면 상을 받는 경우도 많아서 한해에 꽤 큰 수입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렇게 돈이 부족한 것이냐? 지금 너도 어엿한 조정 신하다!”원경릉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서일의 상이라는 소리에 후궁에서 제대로 된 상을 줄 상전은 그녀뿐이었다. 이건 대놓고 그녀의 돈을 노리는 것 아닌가?“부족합니다. 지금 제 직책은 봉급도 적고 일도 적습니다. 낮에 힘들지 않으니, 밤에 더 일할 수 있습니다.”원경릉은 그가 직책을 옮긴 것을 떠올렸다. 지금 그는 병부에서 여유로운 직책을 맡고 있었다. 사식이가 임신했을 때, 그녀를 잘 돌보기 위해 직책을 옮겼었다.“걱정 말거라. 원가에서 아이들에게 부족한 게 없도록 지원해 줄 것이다.”“계속 사식이의 친정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아직 젊고 힘도 있으니, 더 일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시간이 지나면 궁에서 거처를 마련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식이와 아이들을 데려와 잠시 함께 지낼 수도 있습니다.”그건 괜찮은 생각이었다. 궁 안에는 빈 전각이 많고, 다른 후궁도 없으니 사식이가 머물 전각 하나를 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사식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궁 안의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궁궐의 규칙인 '외간 남자가 후궁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낡은 관습에 불과했다. 폐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좋구나. 궁 안에 거처를 마련해서 가족이 들어와 살게 하는 것도 괜찮다. 그렇지 않소? 다섯째.”원경릉은 약한 불에서 끓인 우유를 접시에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