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가 위왕부로 이사하자 다들 축하하러 왔다.셋째 제왕은 특별히 위왕에게 계속 초왕부에서 지내며 돌아가지 않을 것인지 물었다.하지만 위왕은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그를 한 대 때렸다. 그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며칠 가서 더 묵고 싶다고 입을 열 면목이 없었다.나긋나긋하게 나가라는 소리가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 뿐이었다.그는 그저 정화를 몇 번 더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위왕부로 갔다. 그렇게 뻔뻔스럽게 경성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다가 안왕의 부상이 거의 나은 후에야 함께 강북부로 돌아갔다.안왕은 이번에 귀경한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그는 몇 년 동안 반란의 뜻도, 다섯째에 대한 질투도 품지 않았다. 친하지 않았으니, 고마운 마음도 당연히 없었다.그러나 이번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원경릉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한 달 반 동안 황후의 신분으로 궁 밖으로 나와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처방하며 치료 상황을 살폈다. 상처에 변고가 생기면 그녀가 조급해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혈육의 정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고 조금의 가식도 없었기에 황후가 정말 그를 가족으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환자로 대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환자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녀는 늘 관심을 가질 것이기에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변방을 지키는 병사일 뿐이라 열심히 상처를 치료해 줬을 뿐이었다.강북부로 돌아간 후, 그는 셋째와 함께 조카딸의 약도성으로 다녀오려고 했다. 계란이가 돌아오면 약도성으로 갈 것이라고 다섯째가 말한 적 있었기에 2년 동안 약도성의 문제를 서둘러 평정하려 했다.예전에 그는 병사를 쓰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려면 병사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기에, 그저 천천히 교육을 통해 백성들의 생각을 바꾸고, 북당인과의 혼사를 통해 북당인의 피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 그 문제들도 점점 사라
위왕은 그 어린아이가 계란이였다는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말했다."왜 온 것이냐? 누가 너를 데리고 온 것이냐? 스승님과 산으로 돌아가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버지는 네가 온 것을 알고 있느냐?"연달아 이어진 물음과 동시에 그는 계란이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어서 들어오거라. 햇빛이 하도 쎄서 그런지 얼굴도 다 빨개졌구나."안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다과가 준비되었느냐? 어서 다과를 갖고 오거라."안왕비와 안지도 걸어 나왔다. 여동생을 본 안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덥석 계란의 손을 잡았다."계란아, 왜 온 것이냐? 오숙도 오신 것이냐?""아버지께서는 함께 안 오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데려다주셨습니다."계란이가 웃으며 위왕이 묻는 말에 친절히 답했다."어서 들어가자. 요즘 날씨가 정말 덥구나!"안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고, 안왕비는 바로 하인에게 다과와 군것질을 대접하라고 명했다. 강북부에는 맛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경성에서 데리고 온 부엌 나인이 다과를 만들 줄 알았다.강북부에서 다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계란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위왕과 안왕이 연달아 ‘고문’을 시작했다."택란아, 네 아버지가 정말 네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위왕이 의아해하며 묻자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믿지 못하시면 어르신에게 서신을 보내 물으십시오."안왕과 위왕은 시선을 마주했다. 어르신이라는 세 글자가 괜히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위왕이 말했다."서신을 보내 물으마. 진국공주로서 절대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네 아버지가 왜 보낸 것이냐? 산에서 스승과 무예를 익혀야 하지 않느냐?"우문택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성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스승님께서 산에서 배운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도에 통달하려면 경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강북부나 약도성에서 인턴 생활을 할 뿐이지요.""인턴?"안왕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지한 계
위왕은 편지를 쓰고 비둘기의 다리에 맸다. 비둘기는 쏜살같이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꼬마 봉황이 비둘기를 뒤쫓았다.비둘기도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정면에서 날개를 펼친 꼬마 봉황 때문에 비둘기는 어쩔 수 없이 공중에서 다급히 멈춰 섰다. 봉황은 사나운 눈빛으로 커다란 날개를 펼쳤고 비둘기는 반응할 새도 없이 봉황의 날개 사이에 갇혔다.비둘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우문택란이 강북부에 온 지 4일이 되었다. 그동안 위왕은 줄곧 우문택란과 안지를 데리고 강북부 곳곳을 구경하며 그곳의 민속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삶과 변방 병사들의 노고를 느끼게 해줬다.그들은 강북부의 산과 풍경도 구경했다.안지는 첫 두날은 따라다닐 수 있었지만, 다니는 곳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나머지날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안왕비도 우문택란의 뛰어난 체력에 탄복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고 돌아와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함께 다니던 위왕이 피곤한 기색을 띠었다.나흘째 저녁 날, 우문호로부터 서신을 받았다.안왕이 먼저 서신을 본 후 위왕에게 전했다."다섯째는 알고 있습니다."위왕은 편지를 열어 읽기도 전부터 무척 놀라했다."이렇게나 길게 쓴 것이냐?"편지에는 다섯째가 기화가 계란을 데리고 강북부에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승낙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빌려 약도성에도 다녀가고, 몇 달 지내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봉지이니, 귀속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특별히 그녀가 원하는 일에 간섭할 필요 없이 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경험을 많이 쌓게 하고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위왕은 편지를 읽으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섯째의 성격으로 어찌 딸이 위험을 무릅써도 괜찮으니, 애지중지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섯째는 계란이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말도 하려 하지 않
안왕비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들이 길에서 먹을 다과를 바삐 준비했다. 이곳은 경성과 달리 맛있는 것을 편히 사 먹을 수 없었다.날이 밝자마자 다들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위왕은 마차를 준비했지만, 기마술이 뛰어나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우문택란의 말에 말을 준비했다.약도성으로 가는 길은 산지가 많고 관도가 적어 말을 타는 것이 마차를 타는 것보다 편리하기에 위왕도 그녀의 뜻에 동의하였다.안왕과 위왕, 그리고 공주 한 명에 봉황 한 마리, 하인 몇 명이 약도성으로 출발했다.약도성은 강북부에서 그저 200리가 떨어진 거리였다. 말을 타고 순조롭게 간다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길에서 반 시진 쉬며 다과를 먹고 위왕은 꼬마 봉황을 데리고 놀았다. 꼬마 봉황도 주인을 똑 닮은 듯 아주 침착했다.하지만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급선회하는 모습을 보면, 성질이 있는 봉황이라 느껴졌다.그것도 계란이와 똑 닮았다. 계란이가 조용하고 똑똑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녀의 몸속에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다.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도성에 도착했다.약도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이 숟가락과도 같았다. 서쪽은 끊임없이 이어진 산봉우리였고, 가장 높은 봉우리는 2천 미터 정도의 약도봉 이었다.남쪽도 산이 있었지만, 산세가 낮아 식물을 심기에 적합했고, 동쪽은 지세가 평탄하여 초원이 많아 목축하기에 적합했다.북쪽에 있는 약도산은 산세가 가파른 편이었다. 약도산은 조용히 누워 있는 맹호와도 같이 금나라와의 왕래를 차단했다.이곳에는 풍부한 광산 자원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금나라가 수도를 옮기려는 이유였다. 아마도 이곳의 광산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약도성에는 30여만 명의 백성들이 지내고 있었다. 백성의 태반이 목축과 쌀보리를 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약도성은 과거 북막의 양마장이었다. 북막의 전투마들은 대부분 약도성에서 옮겨진 것이었다.경제가 뒤처진 터라, 북막에 심하게 착취를 당했다. 전마를 팔 수 없었고 조정을 대신하여 키울 뿐이
위왕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전혀 개의치 않는지 바로 답했다."주 아가씨한테 주인이 왔다고 전하거라."여인은 시선을 우문택란에게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 놀라움이 묻어있었다.‘참 예쁘게 생겼구나. 저 아가씨가 바로 공주인가?’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려던 순간,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었다."사람도 많고 상황이 복잡하니, 예를 올릴 필요 없소."여인은 웃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예. 바로 주 아가씨께 보고하러 가겠습니다!"그녀는 몸을 돌려 말 한 마리를 끌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위왕과 안왕은 조카딸을 데리고 빨리 떠나려 했다. 골목 곳곳에서 욕설과 싸움으로 가득했고 평화롭지 않았다. 그들은 조카딸의 눈을 더럽힐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 그들은 어린 조카딸의 수용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골목에서 패싸움하는 것도 멈춰서서 재밌게 구경할 정도였다.그녀는 갓 산에서 내려온 토끼처럼 귀엽고 무해했고 세상만사에 흥미가 가득해 보였다.패싸움과 닭싸움을 보고, 도박에 기생들이 손님을 부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도둑질에 거지가 물건을 빼앗고 가게 주인장이 손님을 속이는 것도 구경했다. 그렇게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두 시진이 지나서야 저택에 도착했다.비록 저택은 아주 컸지만 조금도 화려하지 않았다. 돌사자도 없었고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대문도 없었다. 그저 저렴한 나무로 지어진 소박한 대문 하나뿐이었고 문패의 글도 검으로 ‘성주부’라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성주부의 ‘부’ 자도 틀리게 적혀 있었다.그녀의 부하들이 얼마나 무식한 지 알 수 있었다.누군가 문 앞에서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러 갔다. 그들이 말에서 내리자, 주 아가씨가 사람을 데리고 뛰어나왔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리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오자마자 상전에게 예를 올리기 전, 먼저 위왕을 질책했다."두 시진 전에 성문에 도착했는데, 어찌 이제야 성주부로 도착한 것입니까?"그녀는 성문
주 아가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진작에 병사를 쓰고 싶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잖습니까?""병사를 투입하면 조정의 대계를 망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병사를 쓰면 조정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약도성은 원래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기에 호부에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아마 3, 5개월 안에는 이 돈을 쓰지 못할 것이다."내부 모순에 병사를 쓰려한다면 조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그리고 갈등을 자극할 수도 있으니, 그는 그동안 병사를 쓰려하지 않았다.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그럼, 왜 물으신 겁니까? 묻기만 하면 병사를 쓸 수 있는 것입니까?"위왕이 손을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너는 모른다. 형식상으로 말은 물어야지 않겠느냐?"주 아가씨가 눈을 흘겼다.주 아가씨는 안왕에 대한 태도가 그나마 좋았다. 안왕이 도성의 생산, 경제, 목축과 농사를 묻자, 주 아가씨는 다시 인내심을 잃었다.그녀는 이미 인내심의 끝에 달했다. 그녀가 얼마나 병사를 이끌고 산을 점거하고 있는 유민들을 처리하고 싶은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유민 도둑무리들은 한 달에 한 번 사에서 내려와 백성들을 약탈하였다. 백성들은 힘들어하며 조정이 그들을 위해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원망했다.하지만 낭산은 지키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산세였다. 도적들이 얼마나 있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성에서 도망쳐 온 유민들이 약도성에 어울리지 못하면 도적떼에 몰려들어 도적들의 수는 계속 증가되었다.예전에는 오합지졸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산에서 내려와 약탈할 때마다 조직적으로 안배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위왕을 경고했다."약도성을 계속 관리하지 않으면 몇년후 북당의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위왕은 약도성의 상황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형세가 심각한 듯했다. 안왕과 몇 마디 나눈 후, 그가 주 아가씨한테 말했다."좋다. 2천 명이
위왕의 계획은 여유로웠다. 계란이를 데리고 이틀 묵은 후 경성으로 돌아가도 약도성을 보러 온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문택란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이틀 동안 위왕은 계란을 데리고 약도성을 살펴보았다. 나쁜 상황에 부딪히면 위왕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아름답게 포장하고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다.누군가 도둑질을 해도 위왕은 이렇게 해석했다."이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집안이 가난한 데다 여든살이 된 늙은 어머니와 어린아이 여덟명을 키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질하는 것이다."안왕은 도둑질을 한 사람을 뒤쫓아 돈을 되찾는 일을 맡고 있었다.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위왕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약도성은 무술을 즐기는 곳이다. 다들 무예를 익히기 좋아하고 골목에서 무예를 겨루곤 한다. 음...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자들은 아마 무예가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고 부지런히 연마할 것이다.""절름발이 거지가 어찌 달릴 수 있겠느냐? 정말 기적이구나. 약도성은 기적이 나타나는 곳이다.""약방의 약이 비싸다고? 그래. 멀리서 운반해 온 약재들이니, 운송비가 비싸다. 그래서 약들도 비싼 것이다.""이 여인들은 날이 너무 더워서 저렇게 적게 입은 것이다. 넌 보면 안 되니, 어서 고개를 돌리거라."우문택란은 멍하니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위왕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어제 도성에 왔을 때 이미 봤던 상황인데, 큰아버지는 그녀의 기억까지 지우려는 셈인가?큰어머니를 여태껏 달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분명 똑똑하지 못했다.그는 우문택란을 이틀 동안 얼버무리고 다시 경성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우문택란도 반대하지 않았다.위왕은 주 아가씨에게 식사를 준비하라 명했고 다들 함께 식사한 후 길을 떠나려 했다.그러자 주 아가씨는 바로 승낙했다. 성주는 비록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2천 명이 되는 병사를 얻었으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그녀는 아이가 즐겨 먹을 것 같은 정교한 음식을 만들라고 부엌에 시켰다. 평소 그들은 이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을 이끌고 순찰을 나갔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목이 걸어 나와 주 아가씨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공주마마께서 다시 돌아오셨소. 이번엔 위왕과 안왕 없이 혼자 돌아오셨소.”주 아가씨는 불안해졌다.“예? 혼자 오시다니요? 위왕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어찌 공주를 혼자 보내신 것입니까?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마마 괜찮으신 것입니까?”“괜찮소. 방금 식사를 마치시고 지금은 정원을 거닐고 계실걸세.”아목이 말했다.주 아가씨는 다급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뒷마당을 지나 택란을 찾아갔다. 택란은 작은 봉황과 함께 놀고 있었고 주 아가씨가 다가오자, 손을 뻗었다. 작은 봉황은 그녀의 팔에 올라타 천천히 손을 따라 어깨에 앉았다.택란의 갸름한 얼굴에는 연한 분홍빛이 감돌았고, 이마에는 맑고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오셨소?”주 아가씨가 물었다.“마마, 왜 다시 돌아오신 것입니까? 왕야는요?”"그들은 돌아갔소.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더구먼."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그녀는 돌아가던 중, 사부가 오셔서 그녀를 데려갈 테니 사부를 따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위왕과 안왕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돌이 떨어지는 걸 보고서 비로소 그녀의 사부가 실제로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그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말았다. 그 술에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이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어떻게 공주를 이렇게 놔두고 갈 수 있습니까?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위왕이 공주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그가 공주를 여기 남겨두어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더욱 화가 났다.그녀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많았다면 그녀는 진작에 사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