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의 계획은 여유로웠다. 계란이를 데리고 이틀 묵은 후 경성으로 돌아가도 약도성을 보러 온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문택란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이틀 동안 위왕은 계란을 데리고 약도성을 살펴보았다. 나쁜 상황에 부딪히면 위왕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아름답게 포장하고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다.누군가 도둑질을 해도 위왕은 이렇게 해석했다."이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집안이 가난한 데다 여든살이 된 늙은 어머니와 어린아이 여덟명을 키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질하는 것이다."안왕은 도둑질을 한 사람을 뒤쫓아 돈을 되찾는 일을 맡고 있었다.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위왕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약도성은 무술을 즐기는 곳이다. 다들 무예를 익히기 좋아하고 골목에서 무예를 겨루곤 한다. 음...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자들은 아마 무예가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고 부지런히 연마할 것이다.""절름발이 거지가 어찌 달릴 수 있겠느냐? 정말 기적이구나. 약도성은 기적이 나타나는 곳이다.""약방의 약이 비싸다고? 그래. 멀리서 운반해 온 약재들이니, 운송비가 비싸다. 그래서 약들도 비싼 것이다.""이 여인들은 날이 너무 더워서 저렇게 적게 입은 것이다. 넌 보면 안 되니, 어서 고개를 돌리거라."우문택란은 멍하니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위왕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어제 도성에 왔을 때 이미 봤던 상황인데, 큰아버지는 그녀의 기억까지 지우려는 셈인가?큰어머니를 여태껏 달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분명 똑똑하지 못했다.그는 우문택란을 이틀 동안 얼버무리고 다시 경성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우문택란도 반대하지 않았다.위왕은 주 아가씨에게 식사를 준비하라 명했고 다들 함께 식사한 후 길을 떠나려 했다.그러자 주 아가씨는 바로 승낙했다. 성주는 비록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2천 명이 되는 병사를 얻었으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그녀는 아이가 즐겨 먹을 것 같은 정교한 음식을 만들라고 부엌에 시켰다. 평소 그들은 이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을 이끌고 순찰을 나갔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목이 걸어 나와 주 아가씨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공주마마께서 다시 돌아오셨소. 이번엔 위왕과 안왕 없이 혼자 돌아오셨소.”주 아가씨는 불안해졌다.“예? 혼자 오시다니요? 위왕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어찌 공주를 혼자 보내신 것입니까?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마마 괜찮으신 것입니까?”“괜찮소. 방금 식사를 마치시고 지금은 정원을 거닐고 계실걸세.”아목이 말했다.주 아가씨는 다급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뒷마당을 지나 택란을 찾아갔다. 택란은 작은 봉황과 함께 놀고 있었고 주 아가씨가 다가오자, 손을 뻗었다. 작은 봉황은 그녀의 팔에 올라타 천천히 손을 따라 어깨에 앉았다.택란의 갸름한 얼굴에는 연한 분홍빛이 감돌았고, 이마에는 맑고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오셨소?”주 아가씨가 물었다.“마마, 왜 다시 돌아오신 것입니까? 왕야는요?”"그들은 돌아갔소.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더구먼."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그녀는 돌아가던 중, 사부가 오셔서 그녀를 데려갈 테니 사부를 따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위왕과 안왕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돌이 떨어지는 걸 보고서 비로소 그녀의 사부가 실제로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그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말았다. 그 술에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이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어떻게 공주를 이렇게 놔두고 갈 수 있습니까?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위왕이 공주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그가 공주를 여기 남겨두어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더욱 화가 났다.그녀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많았다면 그녀는 진작에 사
그녀가 떠나자마자, 택란은 눈을 떴다. 마치 검은 포도알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천장에 비친 미세한 빛을 응시하였고,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사람들은 꽤 재미있긴 하지만, 사실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약도성이 그녀의 것이라면, 그녀는 꼭 백성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눈을 뜨고 일어나 옷을 입었다. 준비를 마치자 마침 묘시, 즉 이른 새벽이었다. 날은 아직 어두웠고, 개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온 세상이 고요했다.그녀는 사람을 기다리며 간단히 청소를 했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오지 않자, 꼬마 봉황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마구간에 가서 말을 끌어 마당으로 나섰다. 문지기는 잠시 졸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슬쩍 눈을 떴다. 한 어린아이가 말에 올라타 말을 타고 나서는 것을 보고, 문지기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줄로 알고 어리둥절했다.‘어디서 온 아이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이런 생각도 잠시, 그는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해가 뜨고 문지기는 잠에서 깨어났고, 그제야 깨달았다.‘아이가 왜 없지? 아, 공주님이…’그는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침 나오고 있던 주 아가씨와 공연, 허둥지둥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는 것이냐?”“주 아가씨, 공주께서 오늘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문지기가 다급히 말했다.“나가셨다니?”주 아가씨는 고개를 돌려 공연을 바라보았다."오늘 아침에 공주를 뵈러 가지 않은 것이냐?"공연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저는 공주가 여기에 계신 것도 깜빡했습니다. 잘 못 본 거 아닐까요? 어제 약이 섞인 연기를 마셨으니, 적어도 정오까지는 일어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녀도 피곤했다. 어젯밤 방 안에 앉아 있다가 경미한 약을 흡입해 버려서 늦잠을 자게 되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진작 일어났을 것이다.주 아가씨는 발을 돌려 택란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
중간 정도에 도달했을 때, 두 명의 검은색 옷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남자는 쇠 검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사납고 위협적이었으며, 온몸에서 끔찍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매우 악랄하고 험악했다. 그는 칼을 뻗어 곧장 그녀의 목에 대었다.난폭한 눈빛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고 마치 사냥감을 만난 늑대처럼 탐욕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어린아이의 목에도 칼을 대다니. 그들이 사람의 생명을 잡초보다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눈빛에서 보이는 탐욕과 더럽고 거침없는 태도는 정말 분노를 일으킬 정도였다.그들은 작은 소녀가 겁을 먹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불꽃과 같은 눈을 치켜뜨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바보인가? 그들은 검을 거두고 땅에 내팽개치며 악의를 가득 품은 표정으로 말했다."지난번엔 네가 먼저 나섰지만, 이번엔 내 차례다!"다른 한 사람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상관없어, 어차피 오래 기다릴 필요 없다."그 사람은 히히 웃으며, 노랗고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쳤다.그는 택란의 허리를 향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완전히 들어 올리려 했다. 그는 이내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꼬마야, 무서우면 소리 지르거라. 살려달라고 크게 소리쳐. 난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제일 좋더구나."택란의 허리에 손이 닿자마자 그는 갑자기 손을 움츠리며 떼어냈다. 그의 손에는 뜨겁게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고, 손바닥이 마치 익어버린 듯 지글지글 끓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한 사람은 급히 허리에 찬 술병을 꺼내어 술을 그의 손바닥에 부었다.그의 손바닥은 검붉게 변했고, 속살이 드러났다.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프냐?"두 사람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어린 소녀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고,
동산의 도적 떼는 총 300여 명으로, 가장 잔인하지만, 사람은 가장 적었다.이들은 검은색의 옷으로 무장하고 다녔고, 극악무도하여 돈을 강탈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백성들은 그들의 소문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하지만 오늘로써 그들의 명도 다할 것이다.동산 위의 북이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낭산 전체에 동산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산적들은 그 소리를 듣고 빠르게 달려왔다. 그들이 산에서내려온다는 것을 알고는 한몫 챙기려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하늘에는 커다란 새가 날고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소녀가 앉아 있었다. 높이는 대략 90미터 정도였으며, 소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눈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은 볼 수 있었다.동산의 산적 소굴에서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먼저 불이 붙었다.어쩌다 불이 난 것인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울타리 벽에 서 있던 도적들도 이유 없이 몸 주변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들자,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산적들과 도적들은 깜짝 놀랐다. 그 소녀가 도대체 누구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그들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불을 끄려 했다. 이곳은 그들의 본거지였다. 불길이 퍼지기 시작하면 전체 낭산이 불타버릴 수도 있다.하지만 불은 어떻게 해도 꺼지지 않았고, 점차 바깥쪽으로 번져갔다. 이내 불은 둥글게 구역을 만들었고, 불길이 더 이상 밖으로 퍼지지 않았지만, 그들도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불바다에 갇히게 되었다.소녀의 목소리가 마치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지옥 같은 울부짖음 속에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렷하게 들렸다.“너희는 낭산을 차지하고 백성들을 학살했다. 오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천벌이다. 내가 묻겠다. 너희는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느냐?”불길이 이렇게 이상하고, 소녀가 거대한 붕새에 타고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미신을 믿는
하지만 그 잠깐의 뜨거움을 참아내자 오히려 굉장한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손바닥에서 따뜻한 흐름이 서서히 퍼져 나가는 듯, 그 흐름이 팔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지며, 서둘러 달려오며 쌓인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공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애지중지 키운 황실 공주가 아닌가?"그녀는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저 공연과 사람들에게 함께 산에 남아 현장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후, 택란과 꼬마 봉황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갔다.산에서 내려가면서,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나 무릎을 찧을 뻔했다.산 아래에 도착하고 택란이 손을 뗀 후 말의 고삐를 잡으려 하자, 주 아가씨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 '퍽' 하고 무릎을 찧고 말았다.택란은 살짝 놀라 별처럼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주 아가씨는 자신이 쓸모없고 한심하다고 느꼈다. 다리가 풀린 것이 부끄러워 무안해하며 말했다.“소인이 돌이켜보니, 아직 공주님께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인, 공주님께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그녀는 진지하게 예를 갖추며, 속으로 깊은 후회를 하였다. 왜 처음에 공주가 그저 교만하고 귀한 집안의 공주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그녀는 황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낳은 딸이니, 분명 매우 뛰어날 것이다.택란은 몸을 돌려 말에 올랐다.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역시 부드럽고 온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어나시오. 배가 매우 고프오!”“예!”주 아가씨는 일어섰지만, 공주의 눈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말에 올라 앞뒤로 줄지어 떠났다. 택란의 머리 위에서 봉황이 날고 있었고, 가끔 멀리 날았다가 다시 돌아와 하늘을 맴돌았다. 신이 난 듯했다.택란은 가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마치 방금 산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다 온 듯, 피곤한 기색도 전혀 없었다.평소 체력이 좋은 주 아가씨조차 이번에는 계
주 아가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택란이 식사를 마치고 입가를 닦으며 그녀를 보고 말했다.“아니, 자네 생각이 틀렸소. 약도성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산적이나 도적과는 다르오. 낭산의 악인들은 한 번의 불로 없앨 수 있지만, 약도성의 사회 문제는 그렇게 무력을 사용할 수는 없소.”주 아가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나치게 충격을 받아 아까 생각한 걸 입 밖으로 꺼낸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말한 기억이 없었다.공주의 맑고 선한 눈빛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부정했다. 틀림없이 말했을 것이다. “나는 약도성에 1년 정도 머무를 것이네. 그 1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지만, 적어도 일부의 혼란은 정리할 수 있을 것이오. 이후의 민족 통합, 문화 교류, 생활 습관 변화, 그리고 조정에 대한 소속감 등과 같은 문제는 정말로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마마, 제가 돕겠습니다.”택란이 미소를 지었다.“아니요. 내가 자네를 돕는 것이오. 나는 아직 대외적으로 약도성을 다스리지 않았네. 지금은 자네가 약도성의 진정한 주인이오.”“그럴 수는 없습니다!”주 아가씨는 다급히 말했다. 불경스럽게 공주 앞에서 주인 행세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주 아가씨는 자신이 왜 갑자기 그녀에게 이렇게 아첨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낭산의 불길에 그녀는 충격에 빠졌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심이 솟아났다. 그녀는 이에 완전히 굴복했고, 가슴은 존경심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시오.”택란은 일어나며 밖으로 향했다.“조금 피곤하니, 난 좀 자야겠소. 자정에 깨워 야식을 내오도록 하시오.”그녀는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에 익숙했다. 아침에 과일을 먹은 것이 한 끼였고, 지금은 밤이지만 점심으로 간주하였다. 자정의 한 끼가 그녀의 저녁이었다.습관은 바꿀 수 없었다.열정에 불탄 주 아가씨는 쏜살같이 시장으로 달려갔다.저택에는 평소 여분의 음식이 없었다. 있어도 이렇게 더운
“정말 화나 나서 죽을 지경이구나.”주 아가씨는 정신없이 정리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돕기 시작했다.택란과 꼬마 봉황이 나와 그녀들이 음식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다들 식사가 끝난 것이오?”“아니요…”주 아가씨는 무심코 대답했지만, 정작 남은 건 먹다 남은 음식뿐이었다. 그녀는 풀이 죽은 채 말했다. “공주님, 좀 더 주무십시오. 제가 닭 한 마리를 잡아 오겠습니다. 집에 알을 낳는 늙은 암탉이 몇 마리 있는데, 그중 한 마리를 고아 드리겠습니다.”택란은 자리에 앉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소. 여기 아직 음식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냥 먹으면 되네.”“하지만, 이건 먹다 남은 음식입니다.”공연은 매우 죄송스러웠다. 공주라는 신분의 사람에게 남은 음식을 먹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괜찮소. 배만 채우면 되오. 음식을 낭비할 순 없지 않겠나!”택란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다른 사람들에게 재촉했다.“부엌에 있는 음식을 얼른 가져오거라. 공주께 새 음식을 드려야지.”“예, 알겠습니다!”그들은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들의 음식은 소박했다. 볶은 고기, 채소, 삶은 호박, 열몇 개의 삶은 달걀 등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한꺼번에 들고 나왔다. 택란은 모두에게 다시 앉아 먹으라고 권했다. 모두 명령을 듣고 앉았지만, 선뜻 음식을 먹지는 못했다. 음식이 모자랄까 봐 겁이 났다. 택란은 저녁때보다 더 빨리 음식을 먹기 시작하며 물었다.“모든 일은 정리된 것이오?”“보고를 드리자면, 시신만 대충 세어 보았고, 아직 묻진 않았습니다.” “묻을 필요는 없네. 그냥 세어만 두시오.” “묻지 않는다고요?” “그렇소. 하늘에 맡기는 것이오!”택란은 말했다. 낭산에는 야생 동물이 많았고, 독수리도 많았다. 땅을 오염시키며 매장하는 것보다, 차라리 동물들의 먹잇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나았다. 그녀가 화력을 잘 조절했으니 가능할 것이다.주 아가씨가 공연에게 물었다.“혹시 도망친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