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주는 호명의 도움을 받아 얼음 한 조각을 꺼내 옹기에 담아냈다. 이 얼음들은 당시 저장할 때 모두 우물물이었기 때문에 아주 깨끗했다. 녹주는 원래 얼음을 으깨서 그녀의 잔 속으로 넣으려 했지만 원경릉이 한 움큼 잡고 바로 입에 넣을 줄은 몰랐다.얼음이 깨지는 맑은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울렸고 그녀의 이가 얼음을 바삭거리며 빻기 시작했다. 탕양과 녹주는 모두 넋을 잃었다."태자비, 얼음을 이렇게 드시옵니까?"녹주가 멍하니 물었다."응!"원경릉은 또 한 줌을 꺼내 입에 넣고 몇 번 씹어 전부 삼켰고 그제야 마음속의 불이 많이 줄어들고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서늘한 기운은 그녀를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태자비, 괜찮사옵니까? 어디 아프신 겁니까?"탕양의 눈빛은 조금 복잡해졌다. 태자비의 이런 모습을 본 적 없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원경릉이 말했다."어젯밤에도 이랬단다. 계속 덥고 마음이 불에 구워지는 것처럼 괴로웠네. 허나 그 외에는 딱히 어디가 불편하지는 않았다네."녹주가 말했다."맞사옵니다. 태자비께서는 어젯밤 계속 일어나서 물을 마셨사옵니다. 여러 번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물을 마셨는데도 여의방에 가시는 것을 본 적 없사옵니다."탕양이 원경릉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살이 조금 찌신 것입니까? 아니면 조금 부었습니까?""살이 찐 것 같네!"원경릉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살이 찐 것인지 붓기인지는 그녀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탕양이 말했다."사람을 명해 노부인을 청했으니 노부인에게 맥을 짚게 하십시오."원경릉은 괜찮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 상황이 예사롭지 않긴 하였다. 줄곧 목이 마르고 지금도 계속 얼음을 먹고 싶었기에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할머니에게 진찰을 받는 것도 좋았다. 원 할머니는 전의감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 참이었지만 원경릉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먼저 달려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녹주가 다급히 말했다."노부인, 태자비가 줄곧 목이 말라하고 얼음도
원 할머니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태자가 걱정되는 것이냐?""걱정은 조금 되지만 그래도 처음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럴 정도는 아니에요."원경릉이 말했다."별일 없을 테니 일단 마음을 놓고 아이를 잘 보살피거라."원 할머니는 손녀를 안타까워하며 얼굴을 쓰다듬었다."정말 고생이 많구려. 이번에 아이를 낳고 나면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말거라.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들들 볶으면 건강이 바로 나빠질 것이니.""알겠사옵니다. 헌데 이 아이도 나올지는 원래 예상하지 못했사옵니다!"원경릉은 스스로도 조금 난감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자 또 목이 건조해지고 뒤집어지는듯했고 마음속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괴로웠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또 얼음을 꺼내 입에 넣었다.그녀는 갑자기 예전에 태상황이 그녀에게 비취 세 개를 준 것이 생각났다. 도대체 그녀가 세쌍둥이를 낳을 것이라 말하는 것인지 아이를 세 번 낳을 것이라고 말한 것인지 모를 일이기에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이왕 임신한 이상 말할 수도 없구나."원 할머니는 정말 그녀를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손녀는 자신의 시대에서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만약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분야에서 반드시 큰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할머니는 새삼 그녀를 감탄했다."만약 네가 계속 연구를 했다면 지금쯤 너의 연구 성과는 아마 세계를 놀라게 했을 것이야. 정말 팔자가 사람을 갖고 노는구나!"원경릉은 예전에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그녀는 정말 이 방면으로 연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있는 세계에는 이익에 눈이 먼 야심가들이 너무 많아, 이런 연구 성과는 진보가 아니라 세계를 큰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다.문명의 진보는 때로 과학기술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측정되기도 한다.주진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처한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연구를 계속
원 할머니는 자애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리석은 아이여, 할머니는 비록 조금 바쁘지만 그래도 아주 즐겁단다. 아직 내가 쓸모가 있고 백성들을 확실하게 도울 수 있으니 이 할미는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만약 집에만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퇴직을 해야 했을 것이야.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후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더냐? 원래 심장이 좋지 않아 항상 병원에 가서 요양을 했는데, 이곳에 온 후로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고 있단다. 이곳이 정말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명당이라 생각하네."할머니는 처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원경릉은 그녀가 정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즐거우시면 소자, 그걸로 되옵니다.""아주 즐겁고 알차구려!"원 할머니는 손을 뻗어 머리를 가다듬으며 아주 자랑스러운 듯 몰래 웃었다."전의감의 그 늙은 관리들이 늘 핑계를 대고 나에게 아첨을 하는데, 그중 한 늙은이가 아주 멋있다네. 만약 마음을 단단히 잡지 않으면 네 할아버지한테 미안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겠구려. 다행히도 내 마음속에서 네 할아버지의 지위는 아주 중요하고 누구도 흔들지 못하니 망정이다."원경릉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할미는 이제 가마!"할머니도 웃으며 가셨다.원경릉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손녀로서 그녀는 오히려 할머니가 자신과 함께 노후를 지낼 사람을 찾기를 바랐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뜨신지 여러 해가 되었고 할머니는 줄곧 혼자였다. 항상 일에 빠져계시지만 그래도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지 않은가? 곁에서 말동무가 되어줄 사람이 없다.깊은 사색에 빠져있는 동안 녹주가 가져온 얼음을 모두 다 먹었다. 그녀는 이렇게 많이 먹었으니 배탈이 날 것 같아 풀이 죽은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점심이 되어서도 어디 불편한 데가 없었다. 목이 말라 얼음 물을 마시고 싶은 것을 제외하면 정신상태도 아주 좋았다.조금 늦은 무렵 미색이 와서 직접 그녀에게 태자에게는 큰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변객이 곧장
원경릉이 걱정을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한동안은 잠잠하지 못할 운명이다."잠시 후에 이리댁으로 가겠사옵니다. 태자께 더 할 말 있사옵니까? 요즘 몸은 어떻사옵니까? 태자께서 분명 물으실 겁니다."원경릉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기라가 대신 말했다."태자비께서는 몸이 불편하시옵니다. 오늘 노부인을 청해 맥도 짚었습니다."미색이 멈칫했다."무슨 일이시옵니까?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요?"원경릉은 기라를 흘겨 보았다."기라의 허튼소리를 듣지 말거라. 짐은 괜찮다. 그저 이유 없이 목이 너무 말라 와서 탕양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할머니를 부르신 것 뿐이고, 간화가 왕성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일로 인해 초조하고 열이 났나 보나 싶다. 다섯째한테는 아무 일도 없고 잘 지낸다고 말하면 된다."미색이 웃으며 말했다."그나저나 태자비는 이번에 이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예전보다 성격이 급해지긴 한 것 같사옵니다. 뱃속의 이 꼬마 불덩이 성질이 똑같이 급할 것 같사옵니다. 저는 반대로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성격이 많이 차분해졌사옵니다. 아마도 아이가 앞으로 여섯째랑 같을 것 같사옵니다."사식이가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회왕을 닮은 것이 훨 좋지요. 만약 회왕비를 닮아서 욱하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사옵니다."사식이는 두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있다. 배가 크든 작든 기세가 있어야 한다며 임신을 하고부터 항상 이렇게 걸었다."남자아이라면 화가 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여자아이라면 차분해야 시집을 잘 갈 수있으니 차분한 게 좋을 것 같사옵니다."시집을 못 가는 것을 미색은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한다.그녀는 혼자서도 큰일을 해낼 수 있지만 그녀의 사상은 비교적 전통적이였다. 그녀는 부창부수의 생활을 동경하고 한 사람과 손잡고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을 원한다.원경릉이 웃기 시작했다. 사식이가 미색의 옆에 앉는 것을 보고 그녀는 저도 몰래 조금 의아했다."둘이서 평소에 나란히 앉지 않으니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비겨서 보니 미색의 배가
"심장 소리가 두 개니 거의 분간이 될 것이다."원경릉도 앉아서 청진기를 귀에 걸고 그녀의 뱃가죽을 따라 심장 박동을 찾았고, 마침내 태동을 느끼자 원경릉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이 아이가 아주 활발한 것 같구나.""괜찮은 것 아닌가요?"미색은 줄곧 자신의 아이가 침착한 편이고 태동도 정상이라 생각해 왔다.청진기가 뱃가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고 미색의 거의 숨을 죽이고 원경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원경릉은 청진기를 떼고 미색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사식이가 정말 말하는 대로 되는구나!""정말이옵니까?"미색은 놀라 입을 가렸고 웃음이 눈가에 차올랐다."세상에! 둘인 것이옵니까?""그렇다. 쌍둥이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사식이가 웃으며 기라에게 말했다."어서 가서 회왕비께 감축드린다고 하고 상을 받거라!"기라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미색을 향해 예를 올렸다."회왕비께서 쌍둥이를 회임하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미색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상이다, 상이야!"그녀는 즉시 돈주머니를 꺼내 안에서 어음 한 장을 꺼냈고 오백만 냥의 거금을 투척하고 한 번 흔들었다."초왕부의 사람들의 몫도 있으니 네가 가져가서 나누거라!"기라는 오백만 냥이나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바삐 건네받고 고마움을 전한 뒤 기분 좋은듯 폴짝폴짝 뛰며 나갔다.전 초왕부가 순간 떠들썩해졌고 모두들 밖에 나가 미색을 축하했다.미색은 축복의 소리에 둘러싸여 기쁜 나머지 이리댁에 가는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는 계속 원경릉의 손을 잡고 청진기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가장 좋고 완벽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감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사실 임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는데, 부처님이 저를 박대하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사옵니다. 제가 오히려 원망을 잘못했나 봅니다. 나중에 마당에 향을 피워 부처님께 죄를 청해야겠사옵니다. 하하."원경릉과
사식이가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정말 황실의 기인이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사식이를 바라보았다."기인?""예. 아름답고 뛰어나며, 대범하고 명랑하옵니다. 심지어 독립적이면서도 회왕과 서로 양보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정말 뛰어난 기인이옵니다!"사식이는 미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자 원경릉은 웃었다. 기인이라는 말은 현대에서 이미 뜻이 왜곡되었지만 사실 단어 자체는 좋은 뜻이였다.그녀는 사식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맞다. 미색은 정말 뛰어난 기인이도다!"뛰어난 기인인 미색은 초왕부를 떠난 후 기분 좋게 곧장 이리댁으로 달려갔고, 이리댁에 도착해서 모든 일을 까먹고 자신의 희소식만 선포했다.미색의 성격에 대해 이리댁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녀는 무릇 조금 기쁜 일이 생기면 숨기지 못하고 반드시 모든 사람과 나누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기쁜 일이다. 모두들 그녀가 아들을 얻으려는 고생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모두 기뻐했다.그러나 이 소식은 우문호에게 있어서 희한한 일이 아니다. 그는 세쌍둥이를 거쳐 다시 쌍둥이를 얻은 아버지로서 쌍둥이를 임신한 것이 무슨 희한한 일인지 몰랐다. 정말 능력이 있다면 원 선생을 능가하여 네쌍둥이를 낳는 것이야말로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이리 나리는 이 소식을 듣고는 의미심장하게 우문호를 쳐다보았다."내가 알기로는 미색의 조상은 쌍둥이를 낳지 않았다는데. 이렇게 보면 우문가 때문인가 보구려."그는 그렇게 말을 하며 시선을 천천히 우문호에게서 다시 공주 우문령의 배로 옮겼다. 잘생긴 얼굴에는 옅은 기대가 드러났다.우문령은 볼을 약간 붉히며 그를 한 번 노려보고 말했다."뭘 보는 것이옵니까?""보는 것도 안 되느냐?"이리 나리가 물었다.우문령이 어수룩하게 말했다."내 얼굴만 보면 되지 배는 왜 보십니까? 지금은 임신하지 않을 것이옵니다."그렇긴 하다."오늘 약 먹었느냐?"이리 나리가 물었다."아침에 먹는 것을 이미 보시지 않았습니까?"이리
미색은 자신의 큰일이 외면당했고, 모두의 관심사가 오히려 우문령의 기혈 부족에 쏠리고 있으니 풀이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원경릉의 생각을 떠올리며 바삐 말했다."아 맞소. 태자비께서 전해라고 하신 말이 있사옵니다.”"원 선생은 괜찮느냐?"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미색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오자마자 묻고 싶었지만 그녀가 쌍둥이를 임신한 것을 수다스럽게 얘기를 하다 보니 못했다."태자비가 줄곧 얼음을 드시옵니다!"미색은 기쁨에 정신이 혼미해져 원경릉이 다섯째에게 좋은 말만 하라고 신신당부한 것도 잊었다. 말을 내뱉은 후에야 잘못 말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말을 고쳤다."별일은 아니고 그저 얼음을 좋아할 뿐이옵니다. 목이 말라서 그렇죠!""목이 마르다고?"우문호는 어리둥절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되지 왜 얼음을 먹는 것이지?"소자는 그저 목이 마를 뿐이옵니다. 임신을 하면 다들 목이 마르지 않사옵니까. 저도 그와 똑같사옵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사람을 불렀다."나에게 물 한 잔을 따라오거라. 목이 마르구나."우문호가 물었다."목마른 것 말고 다른 건 없느냐?""없사옵니다!"미색이 대답하자 우문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고, 미색은 양심에 찔리는듯 변명했다."만약 무슨 일이 생겼다면 제가 거기에 남아있지, 어떻게 직접 오겠사옵니까? 태자비는 잘 계시지요. 그저 태자를 걱정할 뿐입니다."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아무리 목이 말라도 얼음은 먹지 말거라. 날도 덥지 않은데 왜 얼음을 먹은 것이냐? 위에 안 좋을 것 같은데 먹지 말라고 이미 하지 않았느냐?""예. 태자비는 안 드시옵니다. 게다가 노부인도 약전을 써서 간화가 많다고 하셨사옵니다. 태자가 지나치게 걱정하시는 것 같사옵니다."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보며 말했다."돌아가 보고 싶사옵니다."이리 나리가 말했다."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지금 검마가 말은 했으나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일격을
이리 나리는 우문호를 도와 곤경을 헤쳤다고 할 수 있기에 우문호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향해 웃었다."좋은 검입니다!""현철로 만들어서 절대 망가지지 않고 공격과 방어가 일체지. 하하!"바로 그때, 한 자루의 검이 이리 나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 검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한 번에 좋은 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검의 주인은 내력이 깊었다. 이 검이 내리 꽂히는 것을 보니 벼락과도 같은 기세가 있었다. 이리 나리는 검을 들고 차분하게 막았고 ‘댕강’소리와 함께 자객의 검은 두 동강이 났고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자객이 무기를 잃은 것은 목숨을 반쯤 잃은 것과도 같다. 자객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리 나리가 칼을 들고 그의 심장에 찌르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이리 나리가 칼날을 위로 밀자 자객은 그 자리에서 바로 죽어 버렸다!홍매문의 사람들도 오늘 밤에 왔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늘 밤은 목숨을 건 한판이다. 검마가 오면 이런 혼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이리댁 전체가 칼 빛과 검의 그림자에 휩싸였고 싸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그리고 오늘 밤, 초왕부또한 조용하지 않았다.자객들이 모두 단도직입적인 것은 아니였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수단을 사용했다. 모두들 태자가 태자비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태자가 순순히 머리를 내놓게 하려면 태자비를 납치하는 것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방법이다.그래서 이리 댁에서 싸우던 십여 명의 자객은 곧장 초왕부로 달려갔다.모두 자객의 목표가 우문호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초왕부에서 무공이 높은 사람들도 모두 이리댁으로 갔고 서일도 그리로 갔다. 현재 초왕부에는 탕양과 십여 명의 시위뿐이었다.원경릉은 소월각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떡들은 입궁하여 공부를 시작한 후부터 늦게까지 읽고 쓰는 습관을 길렀다. 밤이 되면 반드시 반 시진 동안 서책을 읽고 반 시진 동안 글을 써야 했다.만두는 오늘 저녁 금강경 한 부를 베꼈다. 원경릉은 한 번 보고 오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