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쌍둥이 얼굴에 행복한 미소는 사라진 채 어찌할 바를 몰라 천천히 우문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조그마한 얼굴을 들어 올려 깊은 반성의 눈빛으로 말했다.“아버지, 미안해요!”우문호는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원경릉이 계속 고개를 숙이게 했다.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작은 웅덩이를 이루었고 그중 두 방울이 두 쌍둥이의 손에 툭 떨어졌다.그는 두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코피가 좀 난 건데 뭘?”환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왜 피하지 않으셨어요?”우문호는 그들이 그 공을 받아 다시 차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힘을 다 쓰지 않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아버지 머리통이 깨졌을지도 몰라요.”칠성이 뒤늦게야 입을 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박장대소하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별거, 별거 아니야!”그는 최근 몇 년간 줄곧 아들에게 푸대접을 받아왔었다.그는 원경릉에게 두 쌍둥이와 놀아주라고 하고 본인은 청소하러 들어가려고 했다.원경릉도 따라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홀로 집으로 쿵쾅거리며 들어갔다.하지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것은 그가 찬 바람을 들이마시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소리뿐이었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아니어도 우리가 지켜드릴게요!”칠성은 원경릉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아이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그래, 너희들이 엄마를 여러 번 지켜주긴 했지, 엄마는 너희를 믿는단다!”칠성이 손을 뻗어 원경릉의 이마를 문질러주면서 말했다.“어머니, 겁내지 마세요!”원경릉이 당황한 듯 말했다.“엄마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왜 엄마가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가 무섭다고?”칠성이가 그녀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짓자 마치 용안처럼 검은 동공이 빛나듯 눈동자가 번쩍였다.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뇌가 전류에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실제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손끝이 마비된 듯한 느낌을
얼마 전 떡들에게 머리에 빛이 아직 남아 있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셋째를 임신한 후로 사라졌거나 약간 옅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환타, 칠성아, 엄마 머리 좀 봐 봐. 빛나는 게 아직도 보여?”두 쌍둥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네, 보여요!”원경릉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데 빛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당분간은 큰 위기가 없을 거라는 의미였다.소월각에 돌아온 우문호는 콧등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코가 약간 비틀려 있어 그는 스스로 바로잡아 주었다.우문호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원경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두 쌍둥이가 그렇게 힘이 세다니, 놀랐어.”“걔네는 원체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원경릉이 그에게 다가가서 부은 콧등을 살펴보며 물었다.“괜찮아?”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무릎에 앉혀 그녀의 선한 눈매를 바라보며 말했다.“음, 괜찮아! 왜? 기분이 안 좋아?”원경릉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에는 임신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아니, 그냥 우리 떡들이 보고 싶어서.”우문호가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하더니 입을 열었다.“며칠 뒤에 같이 입궐해서 한 번 보러 가도록 하자.”원경릉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응했다.“그래.”이틀이 지난 후 원경릉은 우문호와 함께 입궐했다.그녀가 생각하기에 떡들이 궁궐 생활이 매우 힘들어서 그녀를 보게 되면 다짜고짜 투정부터 부릴 거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들은 차분했고 심지어 머리를 빙빙 돌리며 원경릉에게 시를 읊어 주기도 했다.원경릉은 우문호와 태상황이 담소를 나누는 틈을 타 만두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정자에 이르자 그녀가 만두에게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네가 말해봐 봐, 엄마 머리에 있는 빛이 아직도 보여? 많이 옅어진 거 같지?”만두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어머니, 이미 삼
제 아무리 유능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며칠 뒤 경호에서 나온 상자를 귀영위가 밤새 원경릉에게 전달했다.상자 속에는 녹음 펜 하나가 들어있었고 원경릉이 들어보니 주진이가 그녀에게 녹음해준 것이었다.한 시간 분량의 이 녹음은 현대 육체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비정상적인 뇌파 방출로 인해 그녀의 몸을 해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만약 해동에 성공하고 현대 육체로 살아날 수 있다면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의식은 단절될 것이다. 즉 고대의 육체는 죽게 되고 현대의 육체가 살아난다는 뜻이었다.해동하지 않으면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태에 따라 1년 후 뇌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 말인 즉 어느 쪽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만약 그녀가 이에 동의하고 만두에게 답을 주면 즉시 항공우주 인공 냉동연구소에 육체를 보내 해동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했다.주진은 또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도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끝으로 주진은 만약 해동에 실패하더라도 마지막 마법의 무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측정 불가한 강한 의식을 가진 두 쌍둥이고 그들이 그녀의 의식과 뇌세포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주진은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걱정하지 말고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나머지 일들은 모두 그녀에게 맡기면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녀가 지금 한창 연구 중인 일이고 그녀가 원경릉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주진의 말로 원경릉은 그제야 한시름 놓게 되었는데 셋째를 출산하기까지는 적어도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더욱이 주진은 근거 없는 위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는 주진을 믿었다.그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면 그녀도 웬 만큼의 확신이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주진은 함께 해결책을 찾자고 했을 것이다.예전에 한 번 돌아갔을 때 연구소에서 주진은 그녀에게 자신의 뇌파도를 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보지 않게 되자 아마도 주진은 이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
원경릉은 잠잠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일을 저질렀다. "누가 이런 짓을 꾸몄는데? 그동안 독고 사람들을 제거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경성 근처에서 활동하는 거야?"우문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독고의 밀정은 거의 다 제거되었어. 그러나 독고와 북막의 진씨 집안이 결탁한 지 이미 오래되었던 터라 북막에 섞여 있던 사람들이 들어온 것 같아. 북막은 군을 주둔시키고 물러나지 않네.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 소문을 퍼뜨려 백성이 조정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려는 수작 같아, 걱정하지 마. 나도 방법이 있어."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북당 군사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아."원경릉은 그의 냉엄한 눈빛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한편, 마음 한쪽이 아렸다."그런 생각은 하지 마. 황실의 큰 경사가 그런 헛소문에 휘둘리게 할 수 없잖아? 우린 황실의 새 생명을 기쁘게 맞이하는 거야." 우문호가 차가운 표정을 지우고 웃으며 말했다."새 생명이라..." 원경릉이 그를 바라보며 온화하게 말했다. "우리도 한몫 해야지."우문호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그래. 사식이도 이젠 우리 집안 사람이고, 서일도 곧 아비가 되잖아. 그간 우리와 함께 한 햇수도 있는데 꼭 보답할 거야. 만약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위해 성은을 빌고, 사내놈이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 큰일을 하게 해야지."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딸이면 어떤 성은을 바랄 건데?"우문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태자비의 수양딸이 되는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그럼 당신은 그 아이의 의붓아버지고?" 원경릉은 그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원경릉은 바로 눈치챘다.우문호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난 줄곧 열심히 살았어, 그러니 의붓아버지라고 못할까?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쨌든 나중에 딸 아이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거니, 우리 자식과 마찬가지야.""장난해? 서일이 그걸 원하겠어? 서일이 동의를 한다 해도
"임신까지 다 한 마당에, 지금 때려서 어찌할 건데?" 원경릉이 쏘아붙였다.우문호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주변을 방황하며 중얼거렸다. "어쩌지? 낳아야 하는 건가?"원경릉이 목소리를 높였다. "싫다는 거야?""그게 아니라..." 우문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회임 소식에 그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었다.그는 진정할 수 없었다.원경릉은 다가가 우문호를 껴안았다. 나지막이 말했다. "이러지 마, 다 잘 될 거야. 우린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우문호가 그녀를 다시 껴안았다. 그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한 번은 사고라지만, 이렇게 또 다시 아이가 찾아오면 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 조심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했다.딸을 갖고 싶다고 말했지만, 신께서 그 소원을 정말 이뤄줄 줄은 몰랐다."이건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하는 행운이야." 원경릉이 말했다."우리를 찾아온 복이니 우리가 책임져야지. 이제 와서 아이를 포기할 수도 없잖아?" 원경릉은 그가 방금 했던 말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내가 잠시 당황해서 말실수한 거야." 우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녀의 마른 얼굴이 신경이 쓰여 다시 통통하게 할 생각이었다.그는 당분간 회임 소식을 밖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상관없는 유언비어로 황실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민심을 혼잡하게 만드는 일이다.소문이 소문을 낳는 법이다.하지만 원경릉은 이 사실을 할머니에게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초기 임신 상태라 항상 몸 조심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다행히도 그녀의 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살은 빠졌지만, 원기는 충분했다.첫 번째 교육생은 곧 출사할 것이다.원은 우문호에게 경중에 관공서 의관을 몇 개 더 만들어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조정에서 다시 돈으로 의관을 기르고 백성은 최소의 약값만 감당하게 하자는 의견이다.우문호 역시 현재 개인 의관의 가격이 너무 높아서 많은 가난한 백성들이
이러한 행동은 자연스레 경중 백성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의원에서는 현재 태자가 혜민서 진료를 증설하기 위해 약초를 통제하여 약방의 부분 약초들이 불충분해졌다고 책임을 조정과 태자에게 떠넘겼다.멀리 미래를 보았을 때, 이는 백성들에게 좋은 조치이다. 하지만 병에 걸린 백성들은 지금 병을 보지 못하니 당연히 소란을 피울 수 밖에 없다. 원래의 의약시장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비록 비싸더라도 병을 볼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의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 백성들이 아니다 보니 그들은 혜민서 진료를 개설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혜민서 진료는 비록 싸지만, 이전의 인식에 따르면 좋은 의사들은 모두 나와 의원을 개설하고 의술이 정교하지 못한 의사들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넉넉한 사람들은 모두 혜민서에 가 줄을 서지 않을 것이다.물론 진정한 권력가들도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경중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의원에서 하루 50명의 환자를 제한하더라도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사람을 파견해 청하기만 하면 반드시 의사를 집으로 청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소란을 피우는 것은 바로 중간 층의 백성이였다.그리고 사실은 일부 권력가들도 태자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탕양은 원경릉에게 성중 몇 개의 의원은 혜평 공주의 소유라 알려주었다. 혜평 공주는 과거 부중에서 태자가 관리해야 할 것은 관리하지 않고 관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관리한다 욕설을 퍼부었다.혜평 공주는 고 숙태비(肅太妃)의 딸로 내의원 전임 원판의 아들과 부부가 되었다. 부마도 내의원에 들어가려 했으나 부마가 된 후 궁중 어의에 임직할 수 없어 혜민서에서 의관(醫官)을 하였다. 그 후 공주는 아예 의원을 몇 군데 개설해 그에게 관리를 맡겼다.숙태비가 세상을 뜬 후부터 혜평 공주는 요 몇 년 동안 태상황의 환심을 사지 못했다. 태상황은 예전에 혜평이 너무 공리적이고 포악해 인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한 적 있다.하지만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태상황은 보통 얘
"쇤네... 쇤네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기라는 우문호를 여러 해 동안 따라다녔고 초왕부의 시녀로서 태자비 또한 따라다녔다. 어느 집에서 그녀에게 체면을 조금 주지 않을까? 이런 대접을 받은 적 없는 터라 그녀는 억울하고 황송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태자비에게 도움을 청했다.고개를 돌리자 혜평 공주는 바로 명을 내렸다. "여봐라, 뺨을 때리거라!"그녀 뒤에 서있던 시녀들이 나섰고 두 사람은 동시에 기라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잠깐만요!" 그때, 원경릉이 소리치며 혜평 공주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저희 초왕부에는 자고로 이런 큰 예를 갖추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공주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 분인 줄도 몰랐습니다. 다만 시녀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하더라도 저희 초왕부 사람이니 공주께서 나서서 훈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혜평 공주의 그 말은 기라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녀를 노리고 하는 것이다. 기라는 무고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녀의 두 손이 빨갛게 데인 것을 보고 원경릉은 마음속으로 화가 치솟아 기라에게 차갑게 말했다."이만 물러가거라! 기 상궁을 불러 공주께 차를 올리라 하거라!"기라는 눈물을 참으며 일어나 몸을 숙이고는 물러갔다.혜평 공주는 이 광경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며 포악한 기색을 드러내고 콧방귀를 뀌었다."아는 사람들이 보면 태자비가 아랫사람을 배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초왕부에 규칙이 없다 생각할 거예요. 본 공주도 다 태자비를 위해서예요,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원경릉의 얼굴에는 참기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공주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헌데 공주께서는 오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혜평 공주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태자비는 뭐가 그리 급하죠? 본 공주가 앉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차를 좀 마시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원경릉은 그녀를 참아주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탕양이 말한 의원에 관련된 얘기를 듣고, 그녀가 온 뜻을 알아보려 했다.기라는
혜평 공주는 화가 나 봉안이 더욱 야박해졌고 사식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본 공주가 찾아온 건 할 말이 있어서에요, 이런 잡스러운 사람들은 물러가게 하세요.""초왕부에는 잡스러운 사람이 없습니다!"원경릉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혜평 공주는 얼굴을 치켜세우고 냉소를 지었다."그래요, 규칙이 없는 곳이니 나도 할 말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할게요, 태자가 혜민서 진료를 증설하려는 거, 태자비의 뜻이죠?""전 조정의 일들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원경릉이 답하자 혜평 공주는 냉담하게 말했다."인정하지 않다니, 태자비가 무슨 학원인지를 차린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태자비는 엄청난 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2~3년에 의사 한 명을 양성해 내다니, 8년, 10년 없이 어떻게 의사로 출사를 한단 말입니까? 만약 태자비의 학원에서 나온 의사가 돌팔이에게도 미치지 못해 치료를 하다 사람이라도 죽인다면, 태자비가 책임 지실 겁니까?"원경릉은 이곳에서 의학을 배우려면 어려서부터 스승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몇 년간 약을 캐고 말리며, 약을 지어 제련하고 그 외에 또 스승의 집에서 모든 일상생활을 모셔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다 끝내고 나이가 어느 정도 되고 나서야 의술을 가르칠 수 있다.하지만 학원의 학생들은 3년 동안 다른 것들을 하고 배울 필요가 없다. 유일하게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배우는 것이다. 지금 할머니께서 진료를 개설함에 따라 학생들도 번갈아 곁에서 따라다니며 증상을 판별하고 임상 경험을 늘이고 있다. 원경릉은 그녀의 학생들이 새로 가르쳐 낸 의사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혜평 공주의 말을 듣고는 그녀가 말했다."이 일들은 공주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혜민서 진료를 증설하는 것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이자 정사(政事)이니 저희 모두 간섭할 수 없습니다."온 뜻을 알고 나니 원경릉은 얼버무리기도 귀찮아져 일어났다."손님을 배웅하거라!""원경릉, 네가 감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