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와 노마님의 눈물주씨는 정후가 갑자기 눈을 뜨는 걸 보고 놀라서 얼른 뒤로 물러나 바로 퉁명스럽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시체가 일어나는 줄 알았잖아요.”정후가 이 말을 듣고 성질을 부리며: “입 닥쳐, 네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지, 시체가 뭐야? 내가 죽었어?”주씨는 정후가 소리를 지르니 깜짝 놀랐는데 요즘 정후는 화를 심하게 내서 건드리지 못하겠다. 해장국을 가져와서: “일단 해장국 좀 드세요.”정후는 목이 말라서 받아 들고 한 입에 쭉 들이켜더니: “어머니는 오늘 저녁식사 하셨어?”주씨가 입을 삐죽거리며, “누가 알아요? 부인이 거기서 시중을 들고 있는데.”정후가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자 주씨가 말리며, “당신 뭐하는 거예요? 밤이 늦었는데 가시려 거든 내일 아침에 가세요. 노마님도 주무세요.”정후가 갈지자로 비틀비틀 문을 나가며 욕을 하는데, “뭘 안다고 그래, 중풍에 걸린 사람은 잠에 빠졌는데 밤낮을 가릴 거 같아? 낮에 많이 자면 밤에 깨 있는 거야.”주씨가 씩씩거리며: “전에도 이렇게 효도한 적이 없더니 무슨 꿍꿍인가 몰라, 이제서야 만회할 생각인 거 보니, 당신이 노마님을 열 받게 한 거 아니예요?”정후가 확 뒤를 돌아 흉폭하게: “헛소리하지 마, 죽여버릴 줄 알아.”주씨는 정후가 살인자 같은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서 입이 딱 굳었다.노마님은 확실히 깨 있었다. 조어의가 침을 놔서 경락과 혈맥이 통하면서 상황이 상당히 호전되었으나 여전히 말을 하시지는 못했다. 정후는 비틀비틀 침대로 오는데 술냄새가 전신에 풀풀 나 노마님에게 훅 끼쳤다.정후가 침대에 앉았다가 노마님이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고 놀라 덜덜 떨며 바닥에 떨어졌다.“어머니, 어머니, 깨어나셨나요?” 정후는 천천히 기어올라 반듯하게 앉아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노마님이 정후를 보고 중풍이 온 이후 말을 할 수 없지만 머리속으로 정후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겨우
안왕의 협박정후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며, “누가? 무슨 말을?”안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상부인(尚夫人)이 정후 나리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며,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보러 오지 않냐고.”정후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바닥에 꿇어앉아 몸을 채로 치는듯 탈탈거렸다.안왕이 오만하고 냉담한 모습으로 정후를 보고, “정후, 사람은 다 이기적인 법이네, 반편생을 골육간의 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관직과 앞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 눈 앞에 큰 기회를 두고 정말 포기할 수 있나? 당신이 이렇게 태자비를 감싼다고 당신한테 일이 터지면 태자비가 감싸 줄까 과연?”정후는 땅에 꿇어 앉아 여전히 몸을 떨며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다.“왕야, 어떻게 알게 된 거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후는 스스로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고 생각했고 상부인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사람이 아닌데 안왕은 어떻게 안 거지?안왕이 차갑게 웃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상부인 뿐 아니라 정후가 벌인 일을 난 다 알고 있어. 이제 정후에게 두가지 선택만 있지, 어제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느냐, 아니면 내가 이 일을 천하에 공개하느냐, 정후가 직접 결정하지.”정후는 무릎걸음으로 나오며 애원하길, “안됩니다, 왕야, 상의한 대로 해요, 왕야 제발 비밀을 지켜주세요.”“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해.” 안왕이 차갑게 말했다.정후는 울상을 지으며, “왕야, 만약 이 일이 발각되면 사형을 면치 못합니다. 왕야 저는 정말 할 수 없어요, 왕야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거 말고 다른 일은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안왕이 아래로 내려다보며 화조차 내지 않고, “정후 당신에게 안타깝게도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능력은 없어, 이 일이 만약 발각될 경우 분명 사형감이지만, 나도 절대 당신이 발각되게 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발각되면 내가 발각되니까. 내 목숨이 아깝지
인생에 대한 태상황의 생각주지스님이 정말 힘을 써 주신 게 현실로 증명됐다. 명원제는 초왕 가족이 잠시 초왕부에 살도록 윤허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초왕의 전에 봉호로 회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초왕부라고 불러도 예법에 저촉되거나 타당하지 못한 면이 없었다.세 아가의 만 한달 축하연이 어떤 격식으로 거행되어야 하는지 황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태상황이 일률적으로 황제의 적장자의 규례에 따라 거행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그동안 태상황은 건곤전에서도 안정 하지를 못하고 종일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며 뭔가 상당히 애타는 듯한 모습이었다.상선이 태상황에게,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술이 고프신 건 아닌지요? 만약 드시고 싶으시면 제가 가서 주재상과 소요공에게 입궁하여 폐하를 모시라 전하겠습니다.”태상황이 뒤를 돌아 상선에게, “부르지 마, 됐어, 걔들은 귀찮아.”“그럼 왜 그러십니까?” 상선이 물었다.태상황이 말없이 여전히 뱅글뱅글 맴을 돌고 자리에 앉아 다바오를 오라고 하더니 개를 훈련시키다가, 상선이 멍하니 한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괜찮으면 초왕부에 좀 보러 가.”“뭘 볼까요?” 상선은 태상황이 증손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초왕부에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궁에 볼 게 많지요.”태상황이 성질을 내며, “가라면 갈 것이지, 뭘 보든 상관없으니 그냥 가.”상선이 웃으며: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태상황이: “창고에 태자비가 몸보신에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보고 가져다 줘라.”상선이: “태상황 폐하, 최근 궁에서 나간 인삼(人參)과 녹용(鹿茸)이 아마도 태자비께서 매일 드셔도 1년동안 다 못 드실 양입니다.”“뭘 안다고 그래? 해산한 여인은 몸조리를 잘 해야 하고 말고? 몸조리를 잘해야 계속 낳을 수 있지.” 태상황이 역정을 냈다.상선이 ‘아!’하더니, “일년 육개월은 아마도 낳지 못하실 겁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시겠지만 세 도련님은 배를 가르고 낳으신 겁니다.”“일년 육개월후에 낳
태자에게 후궁을?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죽기 살기로 싸워서 결국 편안해 지자는 거 아닌가?상선은 초왕부에 와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어르려고 했다.왜냐면 본인은 남녀의 인연이 없는 몸이라 소월각 안에 들어가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원경릉도 일어나 옆에서 같이 있을 수 있었다.만두는 특히 상선을 좋아해서 상선을 보자 헤벌쭉 웃었다.만두는 많이 먹고 통통해서 웃는 모습이 동자승 같은데 상당히 귀엽고 상선이 어르는 맛이 있다.“궁 안에 사시면 딱 좋을 텐데요.” 상선이 아쉬운 듯 만두를 내려놓고 경단이와 찰떡이를 안으며, “궁 안에 사셔야 합니다, 밖에 계시니 한 달에 한 번 뵙기도 어렵고 태상황 폐하께서는 아가들이 보고 싶으신데 태자비께서 아직 나오지 못하는 개월수라 궁 안을 안고 걷지도 못하고, 폐하 본인도 밖에 나오시기 어려운지라 아주 많이 그리워하세요.”원경릉이 웃으며: “만약 태상황 폐하께서 데리고 계신 것이 좋으시면 만 한달이 차거든 데려다 주시고 2년간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셔도 됩니다.”상선이 보물을 다루듯 경단이를 가슴에 안고 살살 흔들며, “정말이십니까? 만약 정말 이시면 폐하깨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실 겁니다.” 원경릉이: “저도 한적하니 좋지요.”상선이 미소를 머금고 원경릉에게: “맞아요, 몸조리를 잘 하셔야지요, 오늘 태상황께서 또 그러셨습니다, 앞으로 만약 태자 전하께서 딸을 원하시면 후궁에게 낳도록 하고 마마를 고생시킬 수는 없다고. 태상황 폐하는 참으로 마마를 제 몸처럼 아끼세요.”원경릉이 놀라며, “뭐요? 어느 후궁에게서 낳게 한다는 겁니까?”“아직 후궁도 없지 않습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고르시지요.” 상선이 말했다.원경릉이 정신이 안 돌아온 상태로 희상궁이 한손으로 경단이를 빼앗으며 화가 나서: “후궁이 왠말입니까? 왕비마마께서 아직 산후 조리도 마치지 않으셨는데 고작 태자 생각한다는 게 전하께 후궁을 맞이하시게 하는 겁니까?”상선이: “빠르던 늦던 언젠가는 있을 일이 아닙니까? 전에 친
태자 책봉 전희상궁이 화가 나서: “어서 가기나 해,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해야지, 사람 마음 다치게 하는 거 안보여?”상선이 희상궁의 격한 반응을 보고 태자비 원경릉의 불쾌한 낯빛을 떠올리며 가는 수밖에 없었다.상선이 돌아가서 태상황에게, “폐하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소인이 했더니 태자비는 불쾌해 하시고, 희상궁도 바로 저를 쫓아내던 데요, 일이 쉽지 않겠습니다!”태상황이: “무슨 말?”“말씀하셨던 후궁일 말입니다.”태상황이 놀라며, “후궁? 뜬금없이 왠 후궁?”상선이: “아직 맞지 않아서 그렇지 맞으면 후궁의 딸도 있는 거지요.”태상황이 담담하게: “네가 이런 몹쓸 놈이라고 욕 먹었다고 했지? 아직 후궁조차 없는데 네가 먼저 말을 꺼낸 데다가 배를 갈라 아이 셋을 나은 게 가슴 아프다고 했지? 어쩌자고 이럴 때 가서 태자비에게 후궁이 어쩌고 산통이 어쩌고 지껄였어? 과인이 보니 넌 나이가 들수록 잔인해 져. 독하다 독해.”상선이 말문이 막혀서, “소인이 뭐가 잔인한데요? 이건 오늘 폐하께서 분부하신 일이 아니십니까?”“시끄러워, 과인은 성정이 착해서 이런 일 안 해, 과인이 살아 있을 동안은 후궁 어쩌고는 없는 일이니, 과인이 죽은 후에 알아서 들 하든가!”태상황은 ‘인생 뭘까’하는 눈빛인 상선에게: “아가들은 어땠어?”상선이 얼른 답하길: “좋아요, 소인이 안으니 바로 웃는데 웃는 모습이 제가 그냥 샘물처럼 녹아버리겠더라구요.”“하루에 젖은 몇 번 먹는데? 끙아는 몇 번 하고? 쉬는? 잠은 얼마나 자? 찰떡이는 황달 없어졌어?”태상황이 줄줄이 질문을 해대는데 상선이 눈만 뻐끔뻐끔 뜨고 아무 말도 못하는게 후궁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이런 얘기를 묻기도 전에 희상궁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태상황은 상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진짜 갈수록 쓸모가 없다니까 태자에게 후궁이 필요한 게 너와 무슨 상관인가?”말을 마치고 유유히 다바오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했다.상선이 따라 나가 복도 앞에 앉아 태상황이 다바
태후를 조르는 현비진심이든 거짓이든 후궁 마마들은 태후 앞에 문안하며 모두 세 쌍둥이의 복을 비는 말을 하곤 했다.태후도 기분이 좋은데 유일하게 불만인 것이 태자가 동궁에 살지 않는 것으로 태후가 아무 때나 세 쌍둥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하지만 주지 스님이 세 쌍둥이가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나서 태어난 곳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주지 스님의 말 대로 했다. 어쨌든 그 방면에선 주지 스님이 전문가니 말이다.이날 현비는 또 태후를 찾아왔다.태후도 요즘 현비를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필 자기 조카에 소씨 집안 사람이라 또 귀찮게 해도 형식적으로 대강대강 받아주는 수밖에 없다.사실 황제가 현비의 책봉을 이래저래 늦추는 게 태후가 생각해도 이상하다.하지만 태후는 이 사실을 묻지 않고 늘 자식의 뜻을 따랐듯이 아들이 그렇다면 그러려니 했다.현비는 여전히 질질 짰지만 오늘 한층 더 조급증이 나는지 아니면 그날 호비에게 따귀를 맞았는데 황제가 결국 호비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은 것을 두고, 자신의 지위와 신분이 매우 위험하다고 느꼈나 보다.현비가 훌쩍 거리며: “고모, 폐하께서 조카를 말려 죽이시려고 해요. 바깥사람들이 전부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폐하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아들은 태자로 책봉되었는데 어미의 품계는 오르지 못한다고 추측한다고요. 마마께서 조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시면 조카는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요.”태후는 위로할 수 있는 말은 다했는데 현비가 이렇게 집착하며 나날이 강도가 더하는 게 방법이 없어: “네 품계를 높이지 않는 것은 폐하가 틀림없이 생각이 있어서니 네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다. 미움만 커지게 할 뿐이니 돌아가거라, 나도 널 도울 수가 없구나.”현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전히 달갑지 않다는 얼굴로, “북당 왕조가 시작된 이래 아들이 태자에 오르면 어미의 품계가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건 조상께서 정해 놓은 규칙임을 태후마마도 아시는데 폐하께서 어찌 조상의 규칙을
진실을 알게 된 태후태후가 본론으로 들어가며: “이제 황태자가 정해졌으니 이 어미도 한시름 덜었구나, 그런데 아들 덕에 어미가 귀해진다고 하지 않더냐, 우리 북당은 예로부터 자식덕에 비빈의 품계를 올려주는 규례가 있는데 태자를 세웠는데도 현비의 품계를 올려주지 않으니 바깥 사람들이 네가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예단해도 어쩔 수 없구나.”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어마마마 안심하세요, 짐에게 이미 생각이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태후가 명원제에게, “어미에게 얘기해 다오, 현비가 출산을 방해했던 일 때문이 아니냐?”명원제의 눈이 다시 한번 병풍을 흘끔 보더니: “태자비가 해산하기 전후 및 해산할 때 현비가 ‘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남기라’고 했는데 다행히 태자비의 명이 길어 살아서 버텨내고 다섯째를 태자에 옹립 시켰지요. 짐도 당연히 조상의 규칙을 알고 태자의 어미도 함께 책봉하고자 했으나 짐이 연속으로 삼일간 황실의 종묘에서 성배를 잃어버린 것이 열조께서 전부 현비의 책봉에 동의하지 않아서 인가 싶습니다.”태후가 놀라서, “세상에 그랬단 말이냐?”명원제가: “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현비는 이런 걸 따질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살리라는 건 현비의 주장이었으니, 지금 아들은 귀한 몸이 되고 어미는 평범한 신분인 것도 바로 그 이치가 아니겠습니까.”태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치 따위 따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남기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태후가 그날 해산할 때 현비가 소동을 일으킨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다.명원제가 약간 의외라는 듯, “어마마마, 그 일은 궁 안에 소문이 자자한테 모르셨습니까?”명원제는 태후가 이미 알고 있는 줄 안 게 어쨌든 이미 비밀도 아니고 태후가 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예전처럼 고모 조카 정에 끌려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었다.“무슨 소문인데? 그런데 왜 나는 몰랐지?” 태후가 점점 어안이 벙벙해 졌다.호상궁이 당황해서 태후를 쳐다보
불같이 화가 난 태후그때 현비는 황제가 다섯째를 이렇게 바로 태자로 책봉할 줄 알기나 했나? 만약 알았으면 원경릉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명원제가 간 뒤 태후가 소리 지르며: “당장 나와!”현비가 눈이 퉁퉁 부은 채 바닥에 꿇어 앉아 슬픈 목소리로: “고모, 조카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태후는 현비가 여전히 자기만 아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따귀를 때리며, “네가 정말 날 아주 열 받아 죽게 할 참이구나. 천하에 어찌 너 같은 시어머니가 있느냐? 며느리가 산실에서 생사를 오가는데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목숨을 구하려는 걸 방해해? 세상 어떤 이치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심지어 내 조령이라고 거짓으로 꾸며 나를 불의한 존재로 모함하다니. 초왕비가 마침 황실의 대통을 낳았는데 너는 내가 그녀를 죽이려 했다고 말해? 어찌 이런 법이 있을 수가 있어, 내가 지금 당장 너를 죽여도 시원치 않아.”태후는 분노로 이를 딱딱 부딪히며 한바탕 욕을 해댔다.“고모, 왜 또 그 얘기를 하세요? 당시에 조카도 잠시 미련했던 거잖아요?” 현비는 따귀를 맞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넌 이생에 정신 차리긴 글렀어,” 태후는 계속 욕을 해대며, “어쩐지 삼일 목욕 때 누가 아가들을 안아도 괜찮았는데 유독 너만 안지 못하고 네가 안으면 울고, 찰떡이는 울다가 숨이 멎을 뻔한 게, 아이들이 막 태어났지만 전생의 영성이 있어서 네가 자신들의 어미를 죽이려 했던 걸 알고 너를 멀리하는 게야. 앞으로 내 명령없이 세 아이 곁에 갈 수 없을 줄 알아.”태후는 현비가 산실에서 소란을 피운 것을 생각하니 부들부들 떨리는데 감히 어디서 아이들을 봐? 아이들이 현비를 싫어하는 것이 일시적인 충동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래? 현비는 태후가 이 일을 들어서 알게 되면 화를 낼 걸 알고, 호상궁에게 신신당부하며 비밀을 엄수하게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돌이켜보니 자신이 그렇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현비는 즉시 태후의 말에 수긍이 안돼서,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