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강연의 결혼을 앞둔 진북후천벌을 받을 지고!진북후는 딸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는 팔짝팔짝 뛰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슬픔으로 가슴이 메였다.진북후는 산을 내려온 맹호같이 기세가 등등하고 위엄이 넘쳤는데 어쩌다가 발이 걸려 제대로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체면이 땅에 떨어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온 힘을 다해 만들어낸 위세가 헛것이 되었다.명원제의 어명이 늦게 도착해 다음날에야 진북후 저택에 도달했다.비에 봉했으나 봉호도 만들기 귀찮았는지 호비(扈妃)라고 한 게 아무리 봐도 대충한 것 같다.하지만 호강연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호비가 제일 듣기 좋다고 했다.진북후는 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불쾌한 마음을 다스리며 중얼거리길: “황후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좋아?”호강연이: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리요?”진북후가 한숨을 쉬며,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찌 물고기의 고통을 알겠느냐? 앞으로 알게 될 게다. 후궁 마마들이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게 분명하고, 네가 황제에게서 멀리 있어야 비로소 삶이 편할 거다.”“아버지, 설마 폐하에게 황후를 폐위하라고 압력을 넣으실 건 아니죠? 당초에 제가 초왕에게 시집을 가게 됐어도 초왕비에게 양보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진북후가 썩은 낯빛으로, “애비가 덤벙거리긴 해도 바보는 아니다. 초왕비와 황후가 어떻게 같아? 주씨 집안과 정후부가 같으냐? 정후에겐 미운 털이 박힐 수 있지만, 감히 주재상에겐 밉보일 수 없어.”호강연이 웃으며: ‘아버지도 겁나는 사람이 있으세요? 황제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진북후가 느릿느릿 걸어가 앉으며, “웃는 호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평소엔 잘 참고 받아주지, 네가 어쩌다가 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심지어 어쩌다가 네가 농담삼아 빈정거려도 말이지. 하지만 분수를 알아야 해. 능력만큼 방귀도 뀌는 거지. 내가 초왕비 자리를 요구한다면, 좋다! 하지만 황후의 자리를 요구한다면
호비의 입궁을 대하는 비빈의 태도“넌 체면도 없냐!” 진북후는 즉시 얼굴이 굳어지며 호통을 쳤다.호강연이 웃으며 도망쳤다.비로 봉한다는 교지가 내린 뒤라 후궁에선 분명 다 알고 있을 것이다.황후가 제일 먼저 어안이 벙벙했다.이 일은 황제가 언급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던 일로 비를 책봉하는 것과 같이 중대한 사안을 황제가 황후인 자신과 일언반구조차 않은 것이다.황후는 분통이 터져서 죽을 지경이다.하지만 열 받은 건 자기 뿐이고, 후궁들은 전부 와서 어떻게 된 건지 묻는 행간에, 황후가 지나치게 은밀하게 일을 꾸민다는 말투다. 하긴 후궁들에게 먼저 소식을 알리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다.황후는 단정한 얼굴빛을 꾸미고 듣기 좋은 말로 후궁에 5년간이나 비를 뽑지 않았고, 5년전에 뽑은 3명이 입궁한 뒤 소빈이 죽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후궁에 오랫동안 새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아니냐. 새로운 피로 수혈할 필요가 어쩌고. 후궁들은 상당히 언짢아서 누가 새사람이 필요한데? 당신이나 새 피로 수혈하시지, 후궁들은 긴 세월에 걸쳐, 모두의 얼굴에 주름이 지고서야 비로소 공평해졌나 싶은데 뜬금없이 팽팽하고 윤기나는 소녀가 나타난다는데 늙은 사람들이 어디 상대가 되겠어?황후는 속에 천불이 나지만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입궁한 뒤엔 다 자매가 되니 앞으로 같이 화목하게 지내며 폐하를 잘 모십시다. 자아, 가보세요.”황후가 이렇게 말하니 마마들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자리를 떴다.황후가 마지막 한줄기까지 미소를 유지하다가, 마마들이 모두 문을 나가자 폭발하며 험한 말이 쏟아지는데, “폐하께서 이번엔 단단히 잘못 하셨어, 어찌 나에게 먼저 귀띔조차 안 할 수가 있어.”궁인들은 위로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진북후에서 진북군까지 얘기가 이어지고 다시 황제가 어쩔 수 없었음을 언급하니 황후의 분노도 어느 정도 잠재워 졌다.황후도 사실 감히 황제를 찾아갈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나귀빈 사건 판결이 뒤집어진 이후 황후의 마음이 계속 허했다.당초에
안왕과 귀비의 계략아니다 됐다. 궁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 새 사람이 들어오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현비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호강연은 훌륭한 며느리감으로 만약 다섯째와 결혼했으면 그의 앞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결국 황제 손에 거둬졌으나, 황제에게 아무 소용없잖아? 진짜 열 받아 죽겠네.그리고 다섯째도 뺐어 올 생각은 없고 내내 원씨만 싸고 돈다.원씨 배속의 아이가 남자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군주면 다섯째를 어쩌면 좋아.궁중에서 가장 냉정한 건 귀비임에 틀림없다.안왕은 오늘도 아침 일찍 입궁해 귀비에게 문안하고 모자는 궁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귀비가 벙글벙글 웃으며 아들에게: “이제 걱정 없지? 당초에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걔가 황제의 후궁이 될 마음을 먹었을 줄 누가 알았어. 비빈마마가 된다고 하니 현비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서 열 꽤나 받았겠지, 호강연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불러들여 담소를 나누더라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안왕이 확실히 안심하며: “진북후가 예전부터 다섯째를 잘 봤고, 만약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면 우리에겐 불리하지만 지금도 방심할 순 없습니다. 진북후 쪽이 움직이는 걸 먼저 확인해 봐야 해요. 그가 저를 밀던 그렇지 않던 다섯째 쪽으로만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됩니다.”귀비가 장의자 등받이에 반쯤 기대서, “진북후는 무장에 불과해서 머리가 단순하고, 원래 출신이 높지 않은데 지금 공을 세워 금의환향했으니 명문세가가 되려고 발버둥칠 게 분명해. 네 외할아버지께 진북후와 연락을 좀 취하라고 하려 무나. 좀더 공을 들여야 해, 그는 아직 우리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안왕이 놀라는 기색으로, “어마마마는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군요.”귀비가 코웃음을 치며, “네 속마음을 내게 감출 수 있을 것 같으냐? 전에 내가 아팠을 때는 코빼기도 안 뵈더니 오늘 네 아바마마가 고 계집애를 비로 책봉했다고 하니 바로 오늘 걸 보고도 눈치 못 챌
우문호의 설레발“알겠습니다.” 안왕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나씨 집안 쪽 판결을 이번에 뒤집는 바람에, 다시 귀영위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외할아버지가 귀영위에서 지위에 영향을 받으시는 건 아니겠죠?”귀비가: “일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서 넌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외할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게.”“알겠어요.” 안왕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 물러갔다.초왕부 쪽에서도 호비의 일을 알게 되어 모두 상당히 경악했다.비록 원경릉이 그런 추측을 하긴 했지만 정말 사실이 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우문호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호비의 소식을 듣고 미친듯이 웃어 제쳤는데 얼마나 심하게 웃었는지 한동안 아물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통증으로 눈물까지 났다.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고 웃긴 건 어쩔 수 없다.“아바마마께서 이번에 난제를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셨는데, 자기 무덤을 팠…..풉, 진심 통쾌해!”원경릉이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며: “종일 웃네 진짜, 고만 웃어,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거야? 넌 슬퍼야 마땅하지.”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왜 슬퍼야 하는데? 얼마나 기쁜 일이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아바마마께서 원래 네 후궁으로 삼으려고 하셨는데, 이젠 아바마마 후궁이 됐으니 마음이 불편하실 게 틀림없어, 마음이 불편하면 누구한테 화를 낼까? 무릎이 닳도록 꿇어본 사람이 잘 생각해 보시지.”우문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원경릉이 거즈를 덮어주고, “상처는 많이 좋아졌어, 슬슬 딱지가 앉기 시작한 게 앞으로 새피부가 나오니까 또 맞으면 아주 그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아플 거야.”우문호가 설레발치다가 망했다.“그럼 난 숨어서 이 시기를 지난 뒤에 입궁하겠어.” 우문호가 머리를 쥐어짜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나 아프게 해줘, 그럼 분명 꼰대도 마음 아파서 날 못 때릴 걸.”“바보야!” 원경릉이 웃으며, “25대를 맞았으니 당분간 넌 안 건드리시지. 계속 너만 드러내 놓고 팰 수도 없고.
위왕의 방문3일후 위왕이 원경릉을 찾아왔다.원경릉이 서일 얘기를 듣고 처음 반응은 위왕이 왜 아직 경성에서 꺼져버리지 않았나 였다.미친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도 없다.그래서 서일을 시켜 위왕을 접객실로 안내하라고 했다.원경릉이 나와서 처음 위왕을 보고 거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위왕은 아주 소박하고 얇은 회색 옷을 입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고 있었다.상당히 말랐고 얼굴이 전반적으로 해쓱한 데다 눈두덩이가 푹 꺼지고 눈엔 실핏줄이 가득하다. 수염도 깍지 않고 아무렇 게나 자라서 목이 드러나며 핏줄이 튀어나온 게 보였다.위왕의 얼굴이 꾀죄죄한 것이 마치 흙바닥에 비벼 놓은 것 같다.두 손을 소매 안아 넣고 앉은 위왕의 자세가 구부정하니 없어 보인다.원경릉이 천천히 들어가 한동안 이 사람이 맞는지 살펴보다가 얼굴 윤곽을 보고서야 비로소 ‘위왕이 맞구나’ 알았다. 며칠 사이에 한참 말랐다.원경릉이 앉아서 위왕을 보니, 위왕도 고개를 들었는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초점이 없다.위왕은 입술을 뜯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하는 모습이 원경릉이 보기엔 울상을 짓는 것 같았다.위왕의 이런 몰골을 보기 전까지 원경릉은 위왕을 동정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지금도 동정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니, 인간의 눈이란 참 제멋대로다.한참 뒤 위왕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는데 가느다란 쉰 목소리로, “그녀는 잘 있습니까?”위왕이 입을 열자 원경릉이 그때까지 그에게 품었던 측은지심이 와르르 무너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당신이 완전히 숨통을 끊어 놓지 않아서 다행히 아직 살아있습니다.”위왕이 또 입술을 뜯으며 두 손을 소매에서 꺼내더니 무릎을 비비고 중얼거리듯: “아직 살아있어.”원경릉이: “저를 왜 찾아 오셨죠?”위왕이 원경릉을 흘끔 보니 원경릉의 얼굴빛이 냉랭하자 얼른 비켜서서 이리저리 숨다가 마지막엔 바닥으로 보며, “날 미워하죠? 그렇죠?” 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전 몰라요, 전
원경릉을 찾아온 위왕위왕의 얼굴이 더욱 잿빛으로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무릎을 비볐다. 원경릉은 위왕의 손이 각종 상처로 가득한 것을 봤고, 몇몇 마디에 피부가 벗겨져 있는 것이 주먹으로 뭔가를 내리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렇게 멀리서 대충 봐도 피범벅인 느낌이다.“아직 왜 절 찾아오셨는지 얘기 안 하셨어요.” 위왕이 이런 모습이라 쓸데없는 동정심이 생기지 않게 원경릉이 얼른 시선을 거뒀다.위왕이 작은 소리로: “전 내일 북군 군영에 가야해요. 가기 전에 그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그녀를 찾아가지 마세요.” 원경릉이 위왕의 말을 듣고 얼른 경고하며 말했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얘기하려고 왔어요. 당신이 적당한 때에 그녀에게 전해주세요.” 원경릉이 위왕을 한동안 쳐다보고 비로소: “말씀하세요.”원경릉은 정말 위왕의 진심을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말이다.너무 잔인했다. 살인은 그저 목이 땅에 떨어질 뿐.위왕의 입술이 꿈틀거리며, “물 한 잔만 주실 수 있으세요?”원경릉이 만아에게 고갯짓으로 찻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만아가 나가고, 잠시 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가져와 올리며, “왕야 드세요!”말을 마치고 만아가 방금 서있던 자리로 가서 원경릉을 지켰다.물이 뜨거워서 한 모금 씩 마시는 위왕의 모습을 보고 마치 한동안 물을 마셔본 적이 없는 듯, 극도의 갈증상태처럼 보였다.물을 다 마시길 기다려 원경릉이: “말씀하셔도 돼요.”위왕의 입가에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는데 아무렇게 손으로 쓱 닦는 모습이 털끝만치도 친왕이란 사실을 개의치 않는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한참 뒤에 위왕이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당신들은 믿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전 정말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살구 빛이 도는 노란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전기석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꽃신이 더러워져서 그녀가 고개를 숙여 손수건으로 닦
그는 웃기 시작했다. 그 어두운 웃음은 섬뜩했다. 원경릉은 그의 웃음에 마음이 아팠다. 저 웃음,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정화군주뿐 아니라 그 역시도 병자다. 의심, 편견, 과대망상, 그리고 끊임없는 생각들.그의 목이 거북이처럼 길게 나왔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그녀와 청양군의 아이가 뱃속에서 죽게 하는 거야. 그 약을 과다 복용하면 그녀는 청양군과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어때? 너무 좋은 해결책이지? 그녀는 청양군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야.”그의 몸이 움츠러들더니 말이 없었다. 원경릉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마치 그는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뒤의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방금 말한 것들은 그녀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전 그저 당신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적절한 시기에 그 말을 전하겠습니다. 말 다 했으면 돌아가세요.”아무리 큰 고충이 있다고 해도 그가 한 일은 끔찍해서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가 걸어 나갈 때 바람이 세게 불었고 그의 긴 두루마기가 펄럭였다. *정화군주는 부중에 있기 싫다며 명월암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고지가 명월암에 있기에 최씨 집안에서는 극구 반대를 했지만 정화군주가 자기는 무조건 명월암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녀의 황소고집을 누가 꺾으랴.최씨 집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용한 파자를 불러 명월암으로 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 그들의 임무는 혹시 모를 고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명월암으로 간 지 이틀 후 그녀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가 위왕의 아이를 임신했기에 명월암 주지는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해 결국 관아에 보고했다.그 말을 전해들은 태후는 잠시 슬퍼했지만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아
구사는 왕부로 돌아온 후 다시 혼사에 대해 언급했다. 모두가 지지하는 혼사이니 그도 용기를 얻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구사가 혼담을 꺼내자 노부인은 사람을 시켜 정후를 모셨다. 사실 정후는 부중의 일을 늘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초왕 내외에게도 아이가 생기고 그에 정후부가 날개를 달려나 했지만 위왕비의 등장으로 정후는 시종일관 자신이 잘 되려면 누군가가 훼방을 두는 것 같았다. 구씨 집안에서 혼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자 정후는 급히 첩 주씨를 데리고 왔다. 원경릉이 정후부로 돌아오자 원경병이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수줍어했다. 원경릉은 자신의 동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의아해하며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구사가 전부터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잖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구사 집안에서도 너를 마음에 들어 할 거야."원경병은 두 눈을 반짝이며 "누이, 구사가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해요?" 라고 물었다."구사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혼담을 꺼내겠어?""도대체 내가 어디가 좋은 걸까요?" 원경병의 얼굴이 붉어졌다.두 자매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후가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원경병을 밖으로 내보낸 후 원경릉에게 물었다."황상께서 정말로 우리 정후부에게 공주부의 일을 따져 묻겠다고 하셨느냐?""그렇지 않다면 제가 왜 친정으로 쫓겨났겠습니까?"정후는 조용히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왕야가 너를 보러 정후부로 오지 않느냐?""그건 당연히 제가 왕야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죠. 황상께서 죄를 묻겠다는 거지, 왕야께서 제게 죄를 묻겠다는 건 아니잖아요."원경릉의 말을 듣고 정후의 마음에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방법은 없다. 내가 둘째 노마님에게 분부해서 너와 같은 시기에 출산을 할 임산부를 찾으라고 했다. 네가 아들을 낳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임산부가 낳은 아들로 대체하거라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