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왕과 귀비의 계략아니다 됐다. 궁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 새 사람이 들어오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현비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호강연은 훌륭한 며느리감으로 만약 다섯째와 결혼했으면 그의 앞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결국 황제 손에 거둬졌으나, 황제에게 아무 소용없잖아? 진짜 열 받아 죽겠네.그리고 다섯째도 뺐어 올 생각은 없고 내내 원씨만 싸고 돈다.원씨 배속의 아이가 남자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군주면 다섯째를 어쩌면 좋아.궁중에서 가장 냉정한 건 귀비임에 틀림없다.안왕은 오늘도 아침 일찍 입궁해 귀비에게 문안하고 모자는 궁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귀비가 벙글벙글 웃으며 아들에게: “이제 걱정 없지? 당초에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걔가 황제의 후궁이 될 마음을 먹었을 줄 누가 알았어. 비빈마마가 된다고 하니 현비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서 열 꽤나 받았겠지, 호강연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불러들여 담소를 나누더라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안왕이 확실히 안심하며: “진북후가 예전부터 다섯째를 잘 봤고, 만약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면 우리에겐 불리하지만 지금도 방심할 순 없습니다. 진북후 쪽이 움직이는 걸 먼저 확인해 봐야 해요. 그가 저를 밀던 그렇지 않던 다섯째 쪽으로만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됩니다.”귀비가 장의자 등받이에 반쯤 기대서, “진북후는 무장에 불과해서 머리가 단순하고, 원래 출신이 높지 않은데 지금 공을 세워 금의환향했으니 명문세가가 되려고 발버둥칠 게 분명해. 네 외할아버지께 진북후와 연락을 좀 취하라고 하려 무나. 좀더 공을 들여야 해, 그는 아직 우리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안왕이 놀라는 기색으로, “어마마마는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군요.”귀비가 코웃음을 치며, “네 속마음을 내게 감출 수 있을 것 같으냐? 전에 내가 아팠을 때는 코빼기도 안 뵈더니 오늘 네 아바마마가 고 계집애를 비로 책봉했다고 하니 바로 오늘 걸 보고도 눈치 못 챌
우문호의 설레발“알겠습니다.” 안왕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나씨 집안 쪽 판결을 이번에 뒤집는 바람에, 다시 귀영위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외할아버지가 귀영위에서 지위에 영향을 받으시는 건 아니겠죠?”귀비가: “일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서 넌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외할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게.”“알겠어요.” 안왕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 물러갔다.초왕부 쪽에서도 호비의 일을 알게 되어 모두 상당히 경악했다.비록 원경릉이 그런 추측을 하긴 했지만 정말 사실이 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우문호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호비의 소식을 듣고 미친듯이 웃어 제쳤는데 얼마나 심하게 웃었는지 한동안 아물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통증으로 눈물까지 났다.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고 웃긴 건 어쩔 수 없다.“아바마마께서 이번에 난제를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셨는데, 자기 무덤을 팠…..풉, 진심 통쾌해!”원경릉이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며: “종일 웃네 진짜, 고만 웃어,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거야? 넌 슬퍼야 마땅하지.”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왜 슬퍼야 하는데? 얼마나 기쁜 일이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아바마마께서 원래 네 후궁으로 삼으려고 하셨는데, 이젠 아바마마 후궁이 됐으니 마음이 불편하실 게 틀림없어, 마음이 불편하면 누구한테 화를 낼까? 무릎이 닳도록 꿇어본 사람이 잘 생각해 보시지.”우문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원경릉이 거즈를 덮어주고, “상처는 많이 좋아졌어, 슬슬 딱지가 앉기 시작한 게 앞으로 새피부가 나오니까 또 맞으면 아주 그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아플 거야.”우문호가 설레발치다가 망했다.“그럼 난 숨어서 이 시기를 지난 뒤에 입궁하겠어.” 우문호가 머리를 쥐어짜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나 아프게 해줘, 그럼 분명 꼰대도 마음 아파서 날 못 때릴 걸.”“바보야!” 원경릉이 웃으며, “25대를 맞았으니 당분간 넌 안 건드리시지. 계속 너만 드러내 놓고 팰 수도 없고.
위왕의 방문3일후 위왕이 원경릉을 찾아왔다.원경릉이 서일 얘기를 듣고 처음 반응은 위왕이 왜 아직 경성에서 꺼져버리지 않았나 였다.미친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도 없다.그래서 서일을 시켜 위왕을 접객실로 안내하라고 했다.원경릉이 나와서 처음 위왕을 보고 거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위왕은 아주 소박하고 얇은 회색 옷을 입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고 있었다.상당히 말랐고 얼굴이 전반적으로 해쓱한 데다 눈두덩이가 푹 꺼지고 눈엔 실핏줄이 가득하다. 수염도 깍지 않고 아무렇 게나 자라서 목이 드러나며 핏줄이 튀어나온 게 보였다.위왕의 얼굴이 꾀죄죄한 것이 마치 흙바닥에 비벼 놓은 것 같다.두 손을 소매 안아 넣고 앉은 위왕의 자세가 구부정하니 없어 보인다.원경릉이 천천히 들어가 한동안 이 사람이 맞는지 살펴보다가 얼굴 윤곽을 보고서야 비로소 ‘위왕이 맞구나’ 알았다. 며칠 사이에 한참 말랐다.원경릉이 앉아서 위왕을 보니, 위왕도 고개를 들었는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초점이 없다.위왕은 입술을 뜯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하는 모습이 원경릉이 보기엔 울상을 짓는 것 같았다.위왕의 이런 몰골을 보기 전까지 원경릉은 위왕을 동정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지금도 동정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니, 인간의 눈이란 참 제멋대로다.한참 뒤 위왕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는데 가느다란 쉰 목소리로, “그녀는 잘 있습니까?”위왕이 입을 열자 원경릉이 그때까지 그에게 품었던 측은지심이 와르르 무너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당신이 완전히 숨통을 끊어 놓지 않아서 다행히 아직 살아있습니다.”위왕이 또 입술을 뜯으며 두 손을 소매에서 꺼내더니 무릎을 비비고 중얼거리듯: “아직 살아있어.”원경릉이: “저를 왜 찾아 오셨죠?”위왕이 원경릉을 흘끔 보니 원경릉의 얼굴빛이 냉랭하자 얼른 비켜서서 이리저리 숨다가 마지막엔 바닥으로 보며, “날 미워하죠? 그렇죠?” 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전 몰라요, 전
원경릉을 찾아온 위왕위왕의 얼굴이 더욱 잿빛으로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무릎을 비볐다. 원경릉은 위왕의 손이 각종 상처로 가득한 것을 봤고, 몇몇 마디에 피부가 벗겨져 있는 것이 주먹으로 뭔가를 내리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렇게 멀리서 대충 봐도 피범벅인 느낌이다.“아직 왜 절 찾아오셨는지 얘기 안 하셨어요.” 위왕이 이런 모습이라 쓸데없는 동정심이 생기지 않게 원경릉이 얼른 시선을 거뒀다.위왕이 작은 소리로: “전 내일 북군 군영에 가야해요. 가기 전에 그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그녀를 찾아가지 마세요.” 원경릉이 위왕의 말을 듣고 얼른 경고하며 말했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얘기하려고 왔어요. 당신이 적당한 때에 그녀에게 전해주세요.” 원경릉이 위왕을 한동안 쳐다보고 비로소: “말씀하세요.”원경릉은 정말 위왕의 진심을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말이다.너무 잔인했다. 살인은 그저 목이 땅에 떨어질 뿐.위왕의 입술이 꿈틀거리며, “물 한 잔만 주실 수 있으세요?”원경릉이 만아에게 고갯짓으로 찻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만아가 나가고, 잠시 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가져와 올리며, “왕야 드세요!”말을 마치고 만아가 방금 서있던 자리로 가서 원경릉을 지켰다.물이 뜨거워서 한 모금 씩 마시는 위왕의 모습을 보고 마치 한동안 물을 마셔본 적이 없는 듯, 극도의 갈증상태처럼 보였다.물을 다 마시길 기다려 원경릉이: “말씀하셔도 돼요.”위왕의 입가에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는데 아무렇게 손으로 쓱 닦는 모습이 털끝만치도 친왕이란 사실을 개의치 않는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한참 뒤에 위왕이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당신들은 믿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전 정말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살구 빛이 도는 노란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전기석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꽃신이 더러워져서 그녀가 고개를 숙여 손수건으로 닦
그는 웃기 시작했다. 그 어두운 웃음은 섬뜩했다. 원경릉은 그의 웃음에 마음이 아팠다. 저 웃음,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정화군주뿐 아니라 그 역시도 병자다. 의심, 편견, 과대망상, 그리고 끊임없는 생각들.그의 목이 거북이처럼 길게 나왔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그녀와 청양군의 아이가 뱃속에서 죽게 하는 거야. 그 약을 과다 복용하면 그녀는 청양군과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어때? 너무 좋은 해결책이지? 그녀는 청양군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야.”그의 몸이 움츠러들더니 말이 없었다. 원경릉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마치 그는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뒤의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방금 말한 것들은 그녀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전 그저 당신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적절한 시기에 그 말을 전하겠습니다. 말 다 했으면 돌아가세요.”아무리 큰 고충이 있다고 해도 그가 한 일은 끔찍해서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가 걸어 나갈 때 바람이 세게 불었고 그의 긴 두루마기가 펄럭였다. *정화군주는 부중에 있기 싫다며 명월암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고지가 명월암에 있기에 최씨 집안에서는 극구 반대를 했지만 정화군주가 자기는 무조건 명월암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녀의 황소고집을 누가 꺾으랴.최씨 집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용한 파자를 불러 명월암으로 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 그들의 임무는 혹시 모를 고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명월암으로 간 지 이틀 후 그녀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가 위왕의 아이를 임신했기에 명월암 주지는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해 결국 관아에 보고했다.그 말을 전해들은 태후는 잠시 슬퍼했지만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아
구사는 왕부로 돌아온 후 다시 혼사에 대해 언급했다. 모두가 지지하는 혼사이니 그도 용기를 얻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구사가 혼담을 꺼내자 노부인은 사람을 시켜 정후를 모셨다. 사실 정후는 부중의 일을 늘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초왕 내외에게도 아이가 생기고 그에 정후부가 날개를 달려나 했지만 위왕비의 등장으로 정후는 시종일관 자신이 잘 되려면 누군가가 훼방을 두는 것 같았다. 구씨 집안에서 혼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자 정후는 급히 첩 주씨를 데리고 왔다. 원경릉이 정후부로 돌아오자 원경병이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수줍어했다. 원경릉은 자신의 동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의아해하며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구사가 전부터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잖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구사 집안에서도 너를 마음에 들어 할 거야."원경병은 두 눈을 반짝이며 "누이, 구사가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해요?" 라고 물었다."구사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혼담을 꺼내겠어?""도대체 내가 어디가 좋은 걸까요?" 원경병의 얼굴이 붉어졌다.두 자매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후가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원경병을 밖으로 내보낸 후 원경릉에게 물었다."황상께서 정말로 우리 정후부에게 공주부의 일을 따져 묻겠다고 하셨느냐?""그렇지 않다면 제가 왜 친정으로 쫓겨났겠습니까?"정후는 조용히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왕야가 너를 보러 정후부로 오지 않느냐?""그건 당연히 제가 왕야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죠. 황상께서 죄를 묻겠다는 거지, 왕야께서 제게 죄를 묻겠다는 건 아니잖아요."원경릉의 말을 듣고 정후의 마음에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방법은 없다. 내가 둘째 노마님에게 분부해서 너와 같은 시기에 출산을 할 임산부를 찾으라고 했다. 네가 아들을 낳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임산부가 낳은 아들로 대체하거라
정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지금 정후가 원경병의 혼담을 서두르는 이유도 구씨 집안의 힘을 받아 목숨을 구하기 위함일 것이다. 구씨 집안도 원경병을 며느리로 맞이한 이상 정후부의 몰락을 가만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후는 눈치가 빠른 기회주의자다. 노마님은 매번 외줄 타기를 하듯 정후부를 위험에 빠뜨리는 정후가 걱정됐다. 지금 원경릉이 말한 관직 사퇴도 사실은 노마님의 아이디어다. 자신의 아들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는 어미인 노마님이 더 잘 알 것이다. 원경릉은 오늘 정후의 말을 듣고 그의 한계를 보았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해마다 갖다 받친 은화만 해도 집을 몇 채를 더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허례허식에 미쳐있는 정후는 소리만 요란한 수레에 불과하다. 정후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동경해 왔다. 그래서 공주부의 일도 꾸몄고, 지금 원경병을 구씨 집안으로 시집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원경릉은 정후의 말을 듣고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사람들이 우리 정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부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이 일은 언젠가는 발각될 것입니다. 이번 일은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발각되면 정후부의 모든 사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겁니다. 부친께서는 단념하십시오.""영원한 비밀이 없다고 누가 그러느냐? 내가 잘 처리하면 된다." 정후가 말했다.그는 자신의 일생에 실패란 없다고 생각했다."황상께서 말씀을 그렇게 하셨지만, 저와 부친의 목을 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세자의 어미이고, 부친께서는 세자의 외할아버지 아닙니까. 부친께서는 관직에서 내려오셔서 평탄하게 세자의 외할아버지로써 사시면 됩니다. 부친께서 관직을 그만두신다면 황상께서도 화를 가라앉히시고 정후부에게도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겁니다."정후는 원경릉의 설득에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황상께서는 지금 정후부에 유예기간을 준 거야. 만약 저 뱃속에 세자가 아닌 군주가 들었다면...... 우리 정후부는 화를 면치 못할
원경릉은 희상궁이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경릉은 그런 희상궁의 손을 잡고 눈을 맞췄다."걱정 마세요. 순산할 수 있도록 제가 준비를 잘해놓을게요.""어떻게 준비를 한다는 겁니까?"희상궁은 원경릉이 불안해할까 봐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밤낮으로 원경릉을 걱정했다. 근래 점점 커지는 원경릉의 배를 보며 꿈에서도 왕비가 아이를 낳는 꿈을 꿔 깜짝 놀라 깬 적도 많았다."저를 도와주실 분이 있습니다. 바로 호국사(護國寺)의 주지스님입니다.""스님이요? 주지스님이 아이를 받을 수 있습니까?""제왕절개를 할 줄 아신대요!""뭐라고요?""그... 아무튼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할 테니 안심하세요."희상궁은 원경릉의 말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확신 가득한 모습에 믿음이 갔다. '계획적이고 똑 부러지는 왕비가 큰 일을 대충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야.'*며칠 후 다섯째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등을 대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 상처가 많이 아물어 걸을 수 있게 되자 그는 매일 정후부로 출근을 했다.정후부에 온 우문호에게 원경릉은 이제 궁에 세 쌍둥이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말했다. 조어의는 원경릉의 결정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매일 밤 악몽은 기본이고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주먹씩 빠졌다. 우문호는 날을 잡고 원경릉을 데리고 입궁 할 준비를 했다. '황제의 명으로 쫓겨난 왕비가 입궁을 하다니'원경릉이 궁으로 들어가는 대문 앞에 서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왕비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금군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본왕이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우문호가 막무가내로 궁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금군이 칼을 꺼내 우문호의 앞을 막았다."칼을 꺼내다니! 네가 감히 친왕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냐?"우문호는 금군의 칼을 보고 원경릉의 배를 가리켰
현대로 돌아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원경릉은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휘종제와 건종 태자를 알현하러 갔다.휘종제와 건종 태자도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아이들이 유학하러 와서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얘기에, 휘종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드는 모든 비용은 전부 자기들이 대고 방학에 북당으로 보내고, 개학 때 맞이하는 것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외갓집엔 모두 출근하는 분들 뿐이라 불편할 거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일단 감사드리고 북당에서 가져온 술과 검, 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문호가 준비한 것으로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의 흙과 돌이 그리운 법이라고 했다.휘종제와 건종 태자가 흙과 돌을 보더니 손에 들곤 통곡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이 두 사람을 위로한 뒤, 그들은 슬퍼하며 ‘언제 한 번 가볼까, 딱 한 번 보더라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한탄했다.“긴 세월 고향 강산을 꿈에도 잊지 못했으나 돌아갈 수는 없었네..”원경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슬픔을 원경릉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자신도 전에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원경릉도 뭐라고 단정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건 안풍 친왕이 진행한 일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아마도 안풍 친왕이 준비해 줄 수 있었다. 북당으로 돌아가면 안풍 친왕에게 상황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입학 준비를 마친 뒤, 원경릉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했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 점이 씁쓸했다.아이들이 크면 놔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얘들은 아직 다 안 컸잖아.돌아가기 전에 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양여혜가 기화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원경릉은 기화를 보자 머리가 아픈 게, 기화는 또
‘이제 어머니가 계시니 술 먹으면 몸 상한다고 말해? 예전에는 왜 말 안 했어?’다행히 누군가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있었다. 회왕은 벼슬에 오른 뒤로 술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많이는 안 마시고 한두 잔만 마실뿐, 석 잔째면 아내를 보러 집에 갔다.즐겁게 박원과 소홍천을 보낸 우문호와 원경릉은 만두와 아이들을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비록 환타와 칠성이는 아직 어려서 2년 정도 더 남아있었지만,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형들이랑 꼭 같이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원경릉과 우문호는 골치가 아파졌다.그나마 우문호에게 약간 위로가 된 건 딸만큼은 곁에 있다는 사실로, 칠성이와 환타가 하도 졸라대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가가, 다 가.”아이들은 기뻐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도 여전히 성깔을 부리며 따라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현대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눈 늑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게다가 이 동물들은 아주 영민해서 사람 일을 이해해, 꼬마 주인들이 이번에 가면 열흘 보름이 아니라 몇 년 있다가 온다는 걸 알고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두가 이리저리 구슬려서, 동물들에게 자기들에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 있고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합치면 적어도 4개월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적어도 1년에 절반 가까이는 같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자 겨우 잠잠해졌다. 비록 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유학을 가는 일이기 때문에 원경릉이 직접 따라가서 진학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이 일은 전에 현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로양이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려면 원경릉 부부도 호적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빠 이름 아래 입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이 일은 로양이 원만하게 처리해 원경릉 가족 모두 호적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원래 집을 사뒀기 때문에, 부근 학군에 진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원경릉은 다섯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