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비 추락 사건의 진실“어떻게 유산기가 있는 거예요?” 원경릉이 물었다.고지는 입꼬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억지 웃음을 웃으려 했으나 마음 같지 않게 굳어버렸다.“덜렁거리며 걷다가 넘어져서 왕비마마를 심려케 했네요.”원경릉이말했다. “당신 걱정 안 해요, 나한테 복부 좀 보여 줄 수 있어요?”고지는 고개를 들고 경악스런 표정으로, “뭐라고요?”“배를 부딪힌 게 아닌지 알고 싶어서요.” 원경릉이 말했다.고지가 난감해 하며, “그렇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죠? 왕비마마 이건 신첩을 모욕하는 겁니다.”“모욕이라니요, 위왕비가 사람에게 떠밀려서 다락에서 떨어졌고, 전 당신이 범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겁니다. 한 번 보여줘요. 만약 당신이 아니면 당신에게 사과하죠” 원경릉이 말했다.고지가 버럭 화를 내며, “왕비마마 이건 아니죠. 증거가 있어야 조사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만약 아무 근거도 없이 신첩이 왕비마마를 밀었다고 하신 것도 모자라 신첩의 배를 검사하시겠다니,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맞아 이건 이런 행패야. 사식아, 만아야, 가서 그녀의 복부나 옆구리 부분에 멍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아라.”“너무 하십니다.” 어멈이 막무가내로 막아 서고 뒤에는 분노가 끓어올라 눈물을 떨구는 고지가 보인다. 어멈이 원경릉에게 말했다. “왕야께서 누구도 고지 부인이 가만히 요양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왕비마마 나가주세요.”사식이가 한 손으로 어멈을 밀치고 쩌렁쩌렁한 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뭔 데 감히 왕비마마의 명령을 가로막아? 목숨이 몇 개나 되는 줄 알아?”만아가 바로 고지에게 걸어가자 원경릉은 고지의 멍을 확인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만아야, 조심해. 그녀는 무술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네 환술도 알고 있어.”만아가 듣고 한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고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사식이가 얼른 앞으로 다가왔다. 느슨한 옷 매무새를 하고 앙탈부리는 고지의
죄를 시인한 고지고지는 울며 몸부림을 치고 힘껏 몸을 뒤로 빼며, “초왕비마마, 절 놔주세요. 마마께서 잡아당긴 손목이 너무 아파요, 아야, 너무 아파.”고지가 하도 구슬프게 울어서 밖에 있는 사람이 모르고 들으면 원경릉이 고지를 때린 줄 알겠다. 몸종들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을 말리려 하자 사식이와 만아가 원경릉 앞에 서서 소리쳤다. “누구든 감히 왕비마마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년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을 테다.”고지가 울며 말했다. “초왕비마마, 귀하신 신분으로 어찌 신첩과 다투십니까? 신첩이 잘못했습니다. 마마께서 신첩이 위왕비마마를 밀었다고 하니 신첩이 그런 것이겠지요. 신첩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기왕비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앉아 있고, 반대로 손왕비는 나와서 한 대 칠 기세다. 이 거짓말쟁이 년.원경릉이 고지를 노려보며 울어서 콧물이 나올 지경이 되자 비로소 천천히 고지를 놓아주더니 만아에게: “청동거울을 가져오너라.”만아는 원경릉의 의도를 모르지만 하여간 가서 큰 청동거울을 가져왔다. 원경릉이 물러나 느긋하게 옷 매무새를 고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줘라.”만아가 큰 청동거울을 고지 얼굴 앞으로 밀자, 고지는 순간 울음을 멈추고 난감하다는 듯 뒤로 물러났지만 청동거울이 상당히 커서 고지가 뒤로 갔어도 거울에 비친 눈가가 벌겋고 콧물이 흐르고 머리를 산발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고지는 숨고 싶지만 숨을 데가 없고 분노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쏘아보며, “초왕비마마는 제가 자신의 용모가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까? 그저 외모만 보다니 정말 천박하네요.”원경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거울에서 본 모습은 네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네 마음이야. 추하지? 네 스스로도 보기 싫지? 고지야, 네가 한 짓을 가지고, 널 짐승이라고 욕하면 짐승한테 모욕이야.”고지가 주먹을 꼭 쥐고 눈 밑이 바르르 떨리는데 억울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왜 절 괴롭히세요? 위왕비에게 불공평
위왕비 사건, 손왕비가 나서라고지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배를 만지고 고개를 들어 어멈을 보더니 붉어진 눈으로, “어멈, 사실대로 말해봐, 내가 왕비한테 미안한 거 맞지?”어멈은 고지가 지금 총애를 받는 줄 알고 비위를 맞추는 것만 생각해서: “부인, 미안하고 아니고 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왕야 같은 멋진 남자를 어느 여자가 보고 안 반하겠습니까? 게다가 왕야도 정말 부인을 좋아하시고요.”어멈은 고지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왕비 자신도 잘 모르나 본데 사실 왕비는 정비니 부인이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왕비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지요. 명분상 같은 위왕 전하의 아들이나, 왕비 자신이 임신하고 유산한 아이보다 살아있는 부인 아기가 훨씬 낫지요.”고지는 이 말을 듣고 몸서리를 치며: “내가 낳은 아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엄마로 알게 할 수가 있어?”어멈이 당황해서, “부인,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고지는 잠자코 있는데 속이 쓰렸다.그래, 고지가 또 총애를 입는다 해도 경국 명분이 없잖아.앞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왕비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지는 잠시 수심에 잠겼다가 다시 원경릉의 말을 떠올리고 더욱 마음이 힘들어졌다.원경릉과 왕비들이 나가자 손왕비가물었다 “내일 진짜 입궁해서 태후마마께 이 일을 보고할거야?”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 “제가 입궁하는 건 아니고, 둘째 형님 당신이요.”“내가?” 손왕비 놀랐다.“맞아요, 전 지금 입궁할 수 없으니 내일 궁에 가셔서 태후마마께 말씀해 주세요. 위왕이 강제로 일반 백성의 딸을 위왕부에 남게 했는데 그 여자는 원래 원하지 않았다고 말이예요. 태후마마께서 어찌 하시는 지 보세요.”손왕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년이 안 원하긴요? 내가 보긴 아주 여기 있고 싶어 안달이던데.”“고지 마음 속에 희망 여부는 신경 쓰지 말자구요. 오늘 자기 입으로 원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이 말은 우리 셋과 사식이가 안에서 같이 직접 들었으니 고지도 발뺌하기 힘들 겁니다.”
손왕비와 기왕비의 말다툼손왕비는 그제서야 ’응’하더니 조금 있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셋째가 오늘밤 돌아와서 위왕비를 괴롭힐 수도 있잖아요.”원경릉이: “안심하셔도 돼요, 위왕비마마는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 아니에요.”“쉽게 당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죽을 기회를 넘겼다고.” 손왕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원경릉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위왕비가 있는 곳에 돌아가자마자 손왕비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는 듯 얼른 온고각의 일을 얘기하며 고지가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해댔는지, 얼마나 뻔뻔한 지 알렸다.위왕비가 다 듣고 나서 미소를 띠고, “뭘 신경 쓰고 그래요?”“그 여자한테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남자를 뺏길 거 같아서 그러지요.” 손왕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발을 굴렀다.“제 것이면 못 가져갈 거고, 제 것이 아니어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위왕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손왕비는 사실 위왕비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오늘밤 셋째가 돌아오면 뭔가 위왕비를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모든 걸 다 저한테 떠넘기세요, 제가 둘째 형수니 함부로 못할 겁니다.”위왕비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니 입술에서 한줄기 붉은 피가 스며 나와 옅은 미소를 띠고,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상대할 수 있어요.”위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감사를 가득 담아, “모든 재주를 가진 분께 신세를 지니, 위급할 때 달려와 도우신 은혜 잊지 않으리, 초왕비 고마워요.”원경릉이 보니 위왕비의 눈 밑이 맑고 예전만큼 우울증이 심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답했다. “감사하실 것까지 없어요, 저희도 마마가 쉬시는 걸 방해한 걸요. 진통제 몇 알 더 드릴 게요. 많이 아프시면 드세요, 그리고 지난 번에 드린 건 여전히 잠이 안 올 때 한 알 드시면 됩니다.”위왕비가 이번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억할 게요, 고마워요.”원경릉이 약 상자를 열자 손왕비가 다가와 의혹의 눈빛으로 말했다. “이 상자는 어의 거랑 다르네요, 안에 들
헛탕친 우문호원경릉이 말했다. “고지가 아이를 가졌으니 태후마마께서는 절대 그녀를 경성에서 떠나도록 하실 리 없습니다. 하지만 태후마마께서 위왕 전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자연히 위왕 전하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고지에게 따로 장소를 마련해 주고 지켜 보실 겁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다시 생각하시겠지요.”“위왕은 분명 싫어할 텐데요.” 기왕비가 말했다.“싫으면 난동을 부리라고 하죠.”기왕비가 코웃음을 치며, “이기적이기도 하지, 제가 눈치 못 챌 거 같습니까? 위왕이 난동을 피우면 초왕은 아바마마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심산이죠? 초왕비도 위왕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였네요.”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가 위왕비를 위해 뭘 해줄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이미 생각이 있던 걸요.”“그걸 어떻게 알아요?” 기왕비가 화들짝 놀랐다. 음모나 계략은 기왕비가 훤히 꿰뚫어 보지만 위왕비의 생각은 기왕비도 알 수가 없었다.전에 기왕비와 위왕비는 마주친 적이 많지 않아서 받은 인상은 그저 유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짐작한 거죠.” 원경릉은 기왕비와 오래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기왕비는 추측하는데 달인으로 그녀와 말을 섞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완전 피곤.기왕비가 말했다. “저는 위왕비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그게 아니면 손목을 그을 필요도 없잖아요, 이번에 다락에서 떨어진 건 누가 밀어서라고 해도, 손목을 그은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위왕비 자신인 걸요. 본인 마음이 약한 걸 다른 사람 탓할 순 없죠.”“위왕비는 병이 있어요.” 원경릉이 참지 못하고 그만 한마디 하고 말았다.“무슨 병이요?” 원경릉은 기왕비의 호기심이 왕성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고개를 젓고 어이없이 웃다가: “마음의 병이겠죠.”기왕비가 구시렁거리며, “마음에 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황실의 며느리가 되면 행복은 없는 거라고요.”기왕비가 얘기하다가 원경릉을 흘끔흘끔 보며, “초왕비는 뭐 예외 지만요.”원경릉은 웃으며 기왕비
기고만장한 진북후의 속내야심이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진북후는 고작 비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평안케 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거야?”적을 물리쳐서 나라를 지킨 것이라면 왕야에 봉해달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우문호가 설명하길: “진북 일대는 줄곧 조정의 골칫거리로, 진북의 인구는 조만간 80만에 달하며 이들은 장난 아니게 사나워. 이유는 지난 조정에서 가제(嘉帝)가 어명을 내려 전국의 비적을 토벌하게 했는데, 워낙 세가 크다 보니 비적과 산적들이 전부 진북 일대로 도망을 쳤어. 진북 쪽은 북막(北漠)과 접경지역이라 조정에서 공격하기 어렵거든. 조정의 대군이 진북으로 간다고 생각해봐, 북막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아. 그래서 가제는 어쩔 수 없이 비적과 산적들이 진북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게 했지. 화근을 남긴 셈이지. 진북의 비적들은 매년 북당 각처로 돌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다가 볼일을 마치면 다시 진북으로 돌아가길 반복했지. 몇 년 전에 아바마마께서 호대장군을 진북으로 파견해 비적을 토벌하게 한 것은, 그저 적당히 위협하거나 약간 압박을 가하길 바란 건데 진북후가 비적을 깨끗하게 토벌해 버린 거야. 그 뿐 아니라 남은 자들을 전부 투항하게 해서 자신의 진북군에 편입시켰어, 바꿔 말해 지금 진북후 수중의 병마는 시들시들한 걸 빼고도 적어도 2~30만은 될 걸.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거야.”원경릉이 그제서야: “그러니까 진북후는 업적도 있고 병력도 있다. 이런 뜻이지?”“바로 그거야. 진북후는 진북의 황제라고 할 수 있어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고 병력을 가졌으니 위세가 대단한 데다 전공도 황제보다 크다고 생각하니 방자하게 날뛰고 있지. 일단 야심이 큰 게 조정의 큰 우환이야.”원경릉이 이제서야 명원제의 난감한 상황이 이해되었다.원경릉 생각에 명원제는 자신에게 인자한 편이었다.북당이 이런 국면에 처해 있어 명원제가 세운 모든 계획을, 다른 여자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가는 걸
목욕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은 배가 점점 나와서 목욕하기 편하지 않은 데다 희상궁과 만아가 옆에서 목욕 시중을 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서 가끔 낭패를 볼 때가 있었다.목욕탕이 따듯한 게 일찍부터 난로를 피워 놓았는데 정후부는 초왕부처럼 지렁이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전부 숯화로를 피워야 했다.우문호는 목욕탕이 충분히 따듯한 것을 보고 난로를 밖으로 가져갔는데 조금 있다가 옷을 입을 때 다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원경릉이 지금 임신을 해서 탕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아가 정성 들여 목욕 전용 의자를 만들어 원경릉을 목욕통 옆에 앉히고 안에 긴 바가지를 띄워 놓은 뒤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어 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옷을 벗겨주는데 황실 출신이지만 군에서 지낸 세월이 많아 세심한 구석이 좀 서툰 면이 있다. 그래도 조심조심 하는 법을 배워서 여자 옷을 어떻게 벗기는지 잘 알게 되었다.원경릉의 하얀 죽순 같은 속살을 보고 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끝없이 감탄하며 배 속에 이 꼬맹이 녀석아, 꼭 지금 왔어야 했어?우문호가 원경릉을 의자에 앉히고 옷을 벗기니 배가 한층 더 커 보이는 게 원경릉의 배를 만지며: “넌 몇 번째 녀석이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아빠가 너네 목욕시켜 줄게.”원경릉이 어이없다는 듯, “여기 온도가 사실 그렇게 따듯한 게 아닌 거 알아?”우문호가 얼른 바가지를 집어 원경릉의 몸에 물을 뿌리는데 물온도가 딱 좋아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난다.“온도 괜찮아?” 우문호가 물을 뿌려주며 묻는데 다른 손으론 원경릉의 몸을 닦는 것이 상당히 정성스럽다.원경릉 답했다.: “좋아.”원경릉이 자신의 발가락을 보며 아직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우문호가 한동안 물을 끼얹더니 잠시 멈췄다가 원경릉의 몸에 세정제를 바르는 폼이 영락없는 프로다.원경릉이 웃음이 터지는 걸 참지 못하고, 우문호의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며, 재촉하듯: “왕야,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자 필요한 거 아냐?”우문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좋아,
우문호의 질문과 위왕의 갑작스런 방문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꺾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우문호의 손가락이 천천히 원경릉의 심장을 가리키며, “이 안에 사람이 바뀌었어.”“어?” 눈초리가 사나워지며 웃었다.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억지로 침착한 척 하지 마, 속으로 허둥대는 거 다 알아.”원경릉이 ‘응’하고 고개를 숙이고 옷을 정리했다. “어디 얘기 좀 해봐 내가 뭘 허둥댄다고 그래.”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떠받치더니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원경릉 마음속의 솜털 하나까지 다 들여다 보는 것 같다.“뭘 봐? 할 말 있으면 해.”우문호의 눈이 천천히 부드러워지며, “싫어, 열심히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네가 한 말 너도 수긍 못하잖아.”원경릉은 엄청 난처해서, “뭘!”우문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어떻게 의술을 배워서 알게 됐는지 왜 약 상자가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지, 그 약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던 그때 네 표정은 진실했지만 찬찬히 따져보니 하나도 말이 되는 게 없더라.”원경릉이 뾰로통하게: “그땐 믿었잖아.”“순진해서 너란 사악한 여인을 믿었지. 순진한 게 내 전문이거든.”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았다. 이 목욕탕은 잘못 만들어져서 물이 천천히 빠져서 바닥이 미끄러웠다.원경릉이 우문호의 가슴에 파묻혀 웃었다. 우문호가 바보스럽긴 좀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점점 세심하게 변하고 있다.적어도 마음 속의 의문을 참고 원경릉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만큼은 됐다.아니다, 이 말은 할 필요 없다. 우문호의 마음속엔 생각이 다 있다.목욕을 마치고 부부 두사람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우문호가 떠났다.원경릉은 막 자려고 준비하는데 만아가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만아가 말했다. 왕비마마, 위왕 전하께서 붉으락푸르락하며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겠다고 하는데요.”원경릉이 ‘에’하더니, “이렇게 빨리? 난 또 내일 올 줄 알았는데.”“오셨습니다
위왕이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는 돕지 않습니다. 택란이 폐하를 사모한다고 말하거나,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마십시오!”“그럼 난 기다리겠소!”경천이 답했다.위왕은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익숙하고도 강한 결단력을 보며 말했다.“정말 고집이 세시군요. 대체 어찌 말해야 할까요? 세상엔 수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택란보다 더 뛰어난 여인도 있을 텐데, 어찌 택란만 붙잡고 이러십니까?”경천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확고하게 느껴졌다.“나는 오로지 하나만 바라볼 뿐이네. 내 생애 다른 여인을 얻을 생각도, 후궁을 들일 생각도 없소. 택란만 있으면, 나는 그 누구도 마음속에 두지 않네.”위왕과 안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경천의 말에 다소 감동하였다.그러나 약속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스무살, 서른이 되어서도 오늘 한 말을 기억하길 바랍니다.”위왕이 말했다.그러자 경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택란이 돌아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내가 한 일은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전부 없던 일로 생각해라.”“예!”택란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이제 좋은 벗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나를 벗으로 생각해 줄 것이냐?”경천이 미소를 지으며 택란을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저희는 벗이니깐요.”위왕은 그제야 경천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택란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협력하는 상황이니,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이 궁을 떠나려 하자, 경천은 말리지 않고 두둑한 선물을 준비해 그들을 궁 밖으로 모시도록 했다.그들이 떠난 후, 경천은 통천각에 올라가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천천
“이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약속은 해줄 수 없다.”위왕이 웃으며 말하자, 택란또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하하하. 참 현명하십니다!”“그럼! 국사는 국사, 개인적인 일과 섞여서는 안 된다.”택란도 동의했다.“그럼 저도 오늘 밤 장관에 머물겠습니다. 내일 저와 함께 궁으로 들어가시지요.”“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함께 가마.”안왕이 말했다.택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물러나,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나갔다.다음 날 그녀는 두 친왕과 함께 동행하였고, 궁에 도착하자마자 삼 태감이 직접 그들을 어서방으로 모셨다.경천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안색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택란을 보자 눈동자, 그의 눈망울은 여전히 빛이 났다.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러 왔기에, 안왕과 위왕도 편견을 내려놓았다. 경천이 택란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두사람은 못내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그들 역시 젊었었고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에, 그 사람을 위해 유치하고 때로는 무서운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경천이 한 일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비록 책략이 다소 대담하긴 했지만, 혈기 왕성한 나이니 이해할 만했다.경천은 상석에서 내려와 직접 두 친왕에게 사과를 올렸다.“어젯밤 내내 생각해 보니, 어제 일로 두 분께 큰 불편을 가져다주었을 것이오. 부디 용서해 주시오!”위왕은 급히 일어나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젯밤 일은 저희도 이해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두 나라가 자주 오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경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는 말이오. 앞으로도 자주 오가며 지낼 것이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택란을 힐끗 쳐다보았다. 택란은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뜨거운 시선을 느낀듯 고개를 들었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고, 하얀 볼도 살짝 불그스레해졌다.두 나라 모두 광물 채굴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