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 식사하러 가는 원경릉아바마마는 혼자서 수라를 드시는데 지난번 원경릉과 드신 것이 이미 여러 면으로 원경릉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또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시니 도대체 무슨 풍파를 일으키려고 하시는 걸까.원경릉이 안에서 단장하고 있는데 우문호가 따라 들어가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원경릉이 웃으며: “안심해요, 아바마마는 결국 내 목숨을 어쩌진 못하시니까.”“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바마마의 과한 은총을 걱정하는 거야.” 우문호는 지금 정세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고,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백배 천배 낫다. 아바마마께서 풍파의 격랑에 원 선생을 제발 좀 그만 밀었으면 좋겠다.원경릉은 청색 비단실로 석류꽃 자수가 놓인 맞섶 치마를 입고 비단 바람막이를 걸친 뒤, 녹주가 솜씨 좋게 머리를 틀어 올려 양쪽에 보요를 끼우고, 기상궁이 원경릉의 손에 은으로 만든 손난로를 쥐여주었다.입궁이니 맨 얼굴로 갈 수 없어 기상궁이 원경릉에게 엷은 화장을 해주는데, 눈썹은 멀리 있는 산처럼 옅고 입술은 붉게 살짝 단장하니 활기차 보여 훨씬 좋다.우문호가 안고 입을 맞추고도 계속 재잘재잘 떠들며, “아바마마께서 너한테 뭘 묻거든, 너무 확실하게 대답하지 말고,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모호하게 하면 돼, 고심해서 너더러 입궁해 식사하자고 하시는 것을 보니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닐 거야,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원경릉이 웃으며, “아바마마는 네 아버지셔, 아버지를 그렇게 얘기해도 돼?”우문호가 답답해 하며: “만약 아무 의도도 없으면 날 왜 못 들어가게 하는데?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목덜미를 잡고 입을 맞추며, “좋아, 알았어, 안심해.”우문호가 절박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며, “진짜 안심이 안돼, 만아랑 사식이를 따라 보낼 게.”“그러던지!” 원경릉은 우문호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의심되면서 돌아와 ‘약을 좀 처방할까’ 생각했다.사식이와 만아를 데리고 원경릉은 문을 나섰다.눈발이
황제를 기다리는 원경릉원경릉이 손을 뻗어 목여태감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태감, 주명취 건과 관련이 있는 거야?”목여태감이: “왕비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황제폐하께서는 먼저 왕비마마의 의견을 물으실 것이고, 만약 마마께서 강력하게 반대하시면 황제폐하께서도 분별하실 것입니다.”이 말에 원경릉은 더욱 안절부절 하게 되었다.무슨 일이길래 원경릉의 의견을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걸까? 초왕부의 일이 아닌 공사라면 그럴 필요 없다.그리고 초왕부의 일로 원경릉에게 물어보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 뻔한 것이, 그럴 만한 일은 후궁 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아니 겨우 잠잠해 진지 얼마나 됐다고? 주명양이 이제 막 시집을 가서 겨우 안도할까 말까 한데 또?어쩌면 이번 식사는 코로 먹을 지도 모르겠다.입궁하자 목여태감이 그녀를 운룡각(雲龍閣)으로 데려갔다.운룡각은 황궁의 동쪽에 위치해 동궁(東宮)과의 경계를 이룬다.운룡각 옆은 운룡전(雲龍殿)으로 황제의 겨울 침전(寢殿)이다.운룡각 3층으로 되어 있는데 크지 않고 바깥에 계단이 나선형으로 나 있어 돌아서 올라가게 되어 있고 수라는 2층에서 든다고 한다.만아와 사식이는 아래서 기다리고 원경릉은 목여태감을 따라 올라갔다.명원제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식탁은 이미 준비가 되어 궁녀 두 명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이곳은 내전과 외전으로 나뉘며 식사는 외전에서 하는데 배치가 간결하고 동쪽 벽에 족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오곡풍등(五穀豐登, 오곡이 풍성하다)’이란 네 글자가 적혀 있다.의외로 명원제의 가장 지극한 바램을 담고 있는 것이다.서쪽엔 병풍이 한 채 있는데 그 안쪽은 내전과 연결되어 있다.남쪽은 계단, 북쪽엔 서탁이 놓여 있고 서탁 위엔 책 몇 권과 문방사우가 놓여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정교하게 조각한 옥사자로 생동감이 넘쳤다.실내에 난로가 피워져 있어 따듯했다. 남쪽으로 난 문을 닫으니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우문호가 살인자라고?요리가 차려져 나오는데 하나같이 가정식 반찬으로 황제의 수라라는 웅장함은 없고 아주 정교하고 야무지다.반찬 5개, 탕 하나, 김이 모락모락 난다.명원제가 아무 말이 없으니 원경릉도 말없이 궁녀가 곁에서 요리를 놓는 것을 보는데 명원제가 들자고 한 마디 하자 원경릉도 먹기 시작했다.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다 보니 음식이 먹히지 않았다.명원제와 식사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원경릉은 지난번과 정반대로 많이 먹을 생각조차 감히 품지 못했다. 태도가 상당히 공손해 져서 오히려 지난번이 훨씬 편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몰래 쓴 웃음을 지으며 과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구나 싶다.명원제는 혼자서 수라를 들어 왔기 때문에 밥 먹을 때 얘기하지 않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같이 앉은 원경릉도 말이 없다.다섯 종류의 요리를 거진 다 먹었는데 이는 두 사람 식욕이 왕성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요리 하나 당 몇 젓가락밖에 되지 않도록 특별히 앙증맞게 만들었기 때문이다.탕은 약간 남겨서 명원제는 목여태감에게 내려 주었다.목여태감이 성은에 감사하며 받쳐들고 한쪽에 치워 둔 뒤 사람들에게 남은 죽과 접시를 치우게 했다.다 치운 뒤 두 사람에게 차를 내오는데 원경릉이 한 모금 마시니 산사 맥아차로 소화와 체기에 도움이 되었다. 산사차를 마신 뒤 목여태감은 자리를 정리하더니 궁녀를 전부 물러가게 하고 자신은 남쪽 문 앞에 서 있었다.원경릉은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두었는데 사실 이 동작이 상당히 힘든 것이 배가 비교적 많이 나와서 다리를 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명원제가 원경릉에게: “다섯째는 매일 초왕부에서 뭘 하느냐?”원경릉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바마마께 아룁니다, 왕야는 초왕부에서 검술을 연마하시고 글을 쓰시느라 매일 충실하게 지내고 있습니다.”“짐을 원망하지 않더냐?”원경릉이 당황하며, 충성되고 정직하게: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야는 아바마마께 대한 마음은 존경 그 자체입니다.”명원제가 비웃음을
후궁이냐 감옥이냐명원제가 냉소를 띠고, “자진? 아마 아닐 걸,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짐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주명취는 주재상이 배후에서 지시했다고 옥중에서 자백했고, 다섯째는 주명취가 조당에서 심리를 받을 때 주재상에 대해 자백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죽였지.”원경릉은 두 손으로 소매를 쥐고 약지에 핏기가 가지며, “아바마마, 그걸 믿으세요? 진짜 재상대인이 지시했다고 믿으십니까?”“짐이 믿고 안 믿고 하는 것과 주명취가 자백한 것은 별개야. 얘기를 섞지 마라, 주명취가 뭐라고 했든 다섯째가 그녀를 죽인 것은 사실이야.”원경릉은 명원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속으로 눈치챘다.황제는 다섯째가 황제의 의중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 자신도 주재상 짓이 아니란 것을 믿지만, 황제는 이것을 빌미로 원경릉 혹은 다섯째에게 어떤 일을 협박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원경릉은 숨을 삼키고: “아바마마, 다섯째는 폐하의 아들이며 범인을 죽였는지 여부도 폐하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가 한 행동은 모두 조정과 이 강산을 위해서 였으며 어떠한 사심도 없었음을 며느리는 확신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원경릉의 맑고 과단성 있는 눈빛을 들여다보고: “흠, 이 일은 일단 차치하고, 또 하나 짐이 일단 너에게 얘기할 것이 있는데 네 의견을 구하고 있어. 만약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짐도 강요하지는 않으마.”원경릉은 핵심으로 들어가는 구나 싶어 자세를 바로 하고: “말씀하세요.”명원제가 대놓고 심하게 온화하고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된 건데 말이야, 호 대장군(扈大將軍)이 계속 진북(鎮北)에 주둔하며 조정에 공을 세운데다 진북 일대 떠돌이 도둑을 전부 섬멸했다는 급보가 와서 짐이 호 대장군을 진북후(鎮北侯)로 책봉하고 상을 내리고자 하는데 말이야, 진북후가 상은 필요 없다며 짐에게 한 가지 근심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 뭐냐.”원경릉이 눈을 반짝이며, ‘진북후가 딸이 하나 있는데’는 아니겠지 설마…….이윽고 명원제가 실실 웃으
명원제에게 대든 결과명원제는 냉담한 표정으로, “가봐.”목여태감이 대답하고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아바마마, 이렇게 하시는 것은 저에게 강요하시는 겁니다. 다섯째의 목숨을 가지고 저를 압박하시는 거예요.”명원제가 돌연 안색을 바꾸며, “무엄하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자 자기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을 알고 식탁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천천히 무릎을 꿇었으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며, “아바마마 고정 하소서.”명원제가 성난 목소리로: “원경릉, 후궁을 들이는 일에 짐이 너를 존중하여 상의까지 했거늘 네가 동의하지 않으니 짐도 널 강요하지 않았어. 너는 그런데도 고마움을 모르고 감히 짐에게 불손한 말을 해? 너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었느니라!”원경릉이 마음이 불편하고 숨이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바마마, 만약 폐하께서 정말 며느리를 존중하셨으면 며느리가 회임 했을 때 또 다시 후궁을 맞아들이는 일을 거론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째가 왜 주명취를 죽여야 했는지, 폐하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다섯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섯째가 조정을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게 아니란 말씀이신 가요? 만약 주명취가 정말 조당에서 자백해서 주재상에 대해 얘기했어도 결국에 가서는 주재상이 벌을 받을 리 없었을 겁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내겠지요, 하지만 주재상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실마리를 더듬어 진상에 다다르면, 배후의 사람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러면 아바마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다섯째는 그것을 고민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왜 연달아 다섯째를 괴롭히세요? 다섯째가 받은 서러움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아바마마는 정말 너무 편애하세요!”“무엄하다!” 명원제는 분노가 폭발해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 위에 찻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목여태감이 겁에 질려 얼른 무릎을 꿇고, “황제 폐하 고정 하소서, 왕비마마께서 잠시 분을 낸 것입니다. 폐하 고정 하소서!”명원
소박 맞는 원경릉이 식사는 최후의 만찬이었군.목여태감은 천천히 원경릉을 부축하는데, 원경릉은 발 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며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명원제의 말은 구구절절이 동기가 사악하다.다섯째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건 전부 원경릉 탓이라는 것이다.맞는 말이다.원래 몸의 주인인 그 원경릉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금 그녀가 질 수밖에 없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공주부 일을 끌어들일 것이다.원경릉은 명원제의 옷에 수 놓아진 운해 그림과 그 위에 도사리고 있는 발톱이 다섯개인 진짜 용을 바라봤다. 한 땀 한 땀 세밀하고 정교하게 수를 놓아 용이 살아서 명원제의 몸에서 날아오를 것 같다.원경릉은 눈에서 불꽃이 일어 예를 취하고 힘겹게: “아바마마 옥체 보중 하소서. 원경릉 작별인사 드립니다!”명원제는 원경릉에게 등을 돌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우울한 얼굴이다. 넘쳐 흐르던 고귀한 자태는 사라지고 냉정하고 고집스럽게 보였다.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부축해 내려가니 만아와 사식이가 밖에서 기다리는데 바람에 몸이 꽁꽁 얼었다.원경릉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부축하고 목여태감은 작은 소리로 탄식하며, “왕비마마 왜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이렇게 하시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고작 호 아가씨가 아닙니까? 시집을 와도 후궁인데 마마와 초왕 전하의 깊은 사랑엔 영향을 못 미칩니다.”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뭐요? 아직도 후궁이 있어요?”원경릉이 손을 꼭 누르며, 지친 기색으로: “가자.”목여태감이 금군 하나를 부르더니 의례태감(司禮太監)을 데리고 가서 초왕에게 입궁을 전하게 시켰다.밖으로 나가서도 만아와 사식이는 감히 묻지 못하는 것이 원경릉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목여태감도 따라 나와 원경릉이 깊은 침묵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폐하를 원망하지 마세요, 절박해서 어쩔 수 없으셨습니다.”“알아, 만약 부득이한 게 아니라면 폐하께서 날 이렇게 대하지 않으시겠지.” 원
만아와 사식이의 결심“태감, 아바마마는 아바마마대로의 고충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은혜도 모르고 아바마마께 반기를 드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아바마마께서 나를 위해 골라 주신 길이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왕야는 호 아가씨를 좋아할 리가 없으니 시집을 온다고 해도 저한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죠,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니까요.”목여태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왕비께서는 그렇게 다 알고 계시면서 왜 폐하를 거역하셨습니까? 폐하께서 정말 마마를 괴롭히고 싶으시면 이렇게 특별히 궁으로 불러 식사를 하며 마마께 살뜰하게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바로 성지만 내리셔도 마마는 성지를 거역하실 수 없으니까요.”원경릉이 쓴 웃음을 지으며, “아바마마께서 저를 존중해 주시는데 어떻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잊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제가 계속 어려움에 빠지다 보니 왕야가 혼비백산 했어요, 저를 생각하는 왕야는 분명 호 아가씨와 혼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야가 성지를 거역하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제가 오늘밤 아바마마께 말대꾸 하는 게 낫습니까? 태감께서 찬찬히 생각해보시면 바로 아실 것입니다. 저는 제 꾀에 제가 빠져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저와 복중의 아이에게 모두 잘 된 일입니다. 적어도 얼마간 굳이 폐비를 해치러 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목여태감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왕비마마는 어찌 그리 치밀하십니까,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마마의 이런 생각을 아시면 분명 마마를 선처하실 겁니다.”원경릉이: “선처 여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야가 평생 순탄하게 지내실 수만 있으면.”목여태감에게 한 이 말은 황제가 앞으로 선처해주시길 바라며 원경릉이 일부러 신경 쓴 말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두 걸음 나가기 위해 한걸음 물러나는 전법을 쓴 것은 원경릉이 혼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다.원경릉이 혼인관계를 똑바로 유지하지 못하면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길 텐데 절대로 일가족이 헤어져서는 안된다.초왕부에서
원경릉과 우문호의 작별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가 함께 하겠다는 뜻에 감격했다. 친정으로 돌아가면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날 텐데 이 두 사람이 함께 해주면 적어도 억울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때 우문호는 초왕부에서 계속 원경릉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입궁하라는 황제의 성지를 받았다.말을 달려 입궁하는데, 원경릉의 마차를 보고 고삐를 잡아 멈춰서 마차를 막았다.목여태감은 두 사람이 만나게 하려고 일부러 마부에게 다른 길로 못 가게 했다.마차를 세운 뒤 목여태감은 얼른 원경릉에게: “왕비마마, 궁에서 일은 절대로 언급하시면 안됩니다. 왕야 성정에 분을 참지 못하시고 궁에서 대역무도한 죄를 지을까 두렵습니다.”원경릉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마차에서 내렸다.우문호기 막 말에서 내려 다가와: “내려오지 마, 굉장히 추워.”우문호는 바람같이 원경릉을 가슴에 품더니 바람막이로 그녀를 싸매고: “아바마마께서 뭐라고 하셨어?”원경릉이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에 묻고 익숙하고도 안정감을 주는 체취에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스르륵 풀어졌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우문호의 등을 껴안고 손가락 끝으로 옷에 놓인 자수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하더니: “별 말씀 없으셨어, 왕야가 매일 초왕부에서 뭘 하는지 묻기만 하시고.”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고작 그거야? 아바마마도 진짜 할 일 없나 보네, 나한테 들어오라고 어명을 내리셨다 길래 무슨 일이 났는 줄 알았지. 널 보니 안심이 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먹빛 눈썹, 그 주변의 흉터를 매만졌다. 흉터는 이제 옅은 붉은 색 줄만 남아 잘 보이지 않아서 잘생긴 얼굴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고 오히려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원경릉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가봐, 아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 게.”이 말을 하고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얼른 심호흡을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미간에 뽀뽀하며: “날이 차, 얼른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