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이냐 감옥이냐명원제가 냉소를 띠고, “자진? 아마 아닐 걸,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짐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주명취는 주재상이 배후에서 지시했다고 옥중에서 자백했고, 다섯째는 주명취가 조당에서 심리를 받을 때 주재상에 대해 자백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죽였지.”원경릉은 두 손으로 소매를 쥐고 약지에 핏기가 가지며, “아바마마, 그걸 믿으세요? 진짜 재상대인이 지시했다고 믿으십니까?”“짐이 믿고 안 믿고 하는 것과 주명취가 자백한 것은 별개야. 얘기를 섞지 마라, 주명취가 뭐라고 했든 다섯째가 그녀를 죽인 것은 사실이야.”원경릉은 명원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속으로 눈치챘다.황제는 다섯째가 황제의 의중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 자신도 주재상 짓이 아니란 것을 믿지만, 황제는 이것을 빌미로 원경릉 혹은 다섯째에게 어떤 일을 협박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원경릉은 숨을 삼키고: “아바마마, 다섯째는 폐하의 아들이며 범인을 죽였는지 여부도 폐하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가 한 행동은 모두 조정과 이 강산을 위해서 였으며 어떠한 사심도 없었음을 며느리는 확신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원경릉의 맑고 과단성 있는 눈빛을 들여다보고: “흠, 이 일은 일단 차치하고, 또 하나 짐이 일단 너에게 얘기할 것이 있는데 네 의견을 구하고 있어. 만약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짐도 강요하지는 않으마.”원경릉은 핵심으로 들어가는 구나 싶어 자세를 바로 하고: “말씀하세요.”명원제가 대놓고 심하게 온화하고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된 건데 말이야, 호 대장군(扈大將軍)이 계속 진북(鎮北)에 주둔하며 조정에 공을 세운데다 진북 일대 떠돌이 도둑을 전부 섬멸했다는 급보가 와서 짐이 호 대장군을 진북후(鎮北侯)로 책봉하고 상을 내리고자 하는데 말이야, 진북후가 상은 필요 없다며 짐에게 한 가지 근심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 뭐냐.”원경릉이 눈을 반짝이며, ‘진북후가 딸이 하나 있는데’는 아니겠지 설마…….이윽고 명원제가 실실 웃으
명원제에게 대든 결과명원제는 냉담한 표정으로, “가봐.”목여태감이 대답하고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아바마마, 이렇게 하시는 것은 저에게 강요하시는 겁니다. 다섯째의 목숨을 가지고 저를 압박하시는 거예요.”명원제가 돌연 안색을 바꾸며, “무엄하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자 자기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을 알고 식탁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천천히 무릎을 꿇었으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며, “아바마마 고정 하소서.”명원제가 성난 목소리로: “원경릉, 후궁을 들이는 일에 짐이 너를 존중하여 상의까지 했거늘 네가 동의하지 않으니 짐도 널 강요하지 않았어. 너는 그런데도 고마움을 모르고 감히 짐에게 불손한 말을 해? 너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었느니라!”원경릉이 마음이 불편하고 숨이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바마마, 만약 폐하께서 정말 며느리를 존중하셨으면 며느리가 회임 했을 때 또 다시 후궁을 맞아들이는 일을 거론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째가 왜 주명취를 죽여야 했는지, 폐하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다섯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섯째가 조정을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게 아니란 말씀이신 가요? 만약 주명취가 정말 조당에서 자백해서 주재상에 대해 얘기했어도 결국에 가서는 주재상이 벌을 받을 리 없었을 겁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내겠지요, 하지만 주재상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실마리를 더듬어 진상에 다다르면, 배후의 사람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러면 아바마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다섯째는 그것을 고민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왜 연달아 다섯째를 괴롭히세요? 다섯째가 받은 서러움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아바마마는 정말 너무 편애하세요!”“무엄하다!” 명원제는 분노가 폭발해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 위에 찻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목여태감이 겁에 질려 얼른 무릎을 꿇고, “황제 폐하 고정 하소서, 왕비마마께서 잠시 분을 낸 것입니다. 폐하 고정 하소서!”명원
소박 맞는 원경릉이 식사는 최후의 만찬이었군.목여태감은 천천히 원경릉을 부축하는데, 원경릉은 발 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며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명원제의 말은 구구절절이 동기가 사악하다.다섯째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건 전부 원경릉 탓이라는 것이다.맞는 말이다.원래 몸의 주인인 그 원경릉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금 그녀가 질 수밖에 없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공주부 일을 끌어들일 것이다.원경릉은 명원제의 옷에 수 놓아진 운해 그림과 그 위에 도사리고 있는 발톱이 다섯개인 진짜 용을 바라봤다. 한 땀 한 땀 세밀하고 정교하게 수를 놓아 용이 살아서 명원제의 몸에서 날아오를 것 같다.원경릉은 눈에서 불꽃이 일어 예를 취하고 힘겹게: “아바마마 옥체 보중 하소서. 원경릉 작별인사 드립니다!”명원제는 원경릉에게 등을 돌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우울한 얼굴이다. 넘쳐 흐르던 고귀한 자태는 사라지고 냉정하고 고집스럽게 보였다.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부축해 내려가니 만아와 사식이가 밖에서 기다리는데 바람에 몸이 꽁꽁 얼었다.원경릉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부축하고 목여태감은 작은 소리로 탄식하며, “왕비마마 왜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이렇게 하시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고작 호 아가씨가 아닙니까? 시집을 와도 후궁인데 마마와 초왕 전하의 깊은 사랑엔 영향을 못 미칩니다.”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뭐요? 아직도 후궁이 있어요?”원경릉이 손을 꼭 누르며, 지친 기색으로: “가자.”목여태감이 금군 하나를 부르더니 의례태감(司禮太監)을 데리고 가서 초왕에게 입궁을 전하게 시켰다.밖으로 나가서도 만아와 사식이는 감히 묻지 못하는 것이 원경릉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목여태감도 따라 나와 원경릉이 깊은 침묵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폐하를 원망하지 마세요, 절박해서 어쩔 수 없으셨습니다.”“알아, 만약 부득이한 게 아니라면 폐하께서 날 이렇게 대하지 않으시겠지.” 원
만아와 사식이의 결심“태감, 아바마마는 아바마마대로의 고충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은혜도 모르고 아바마마께 반기를 드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아바마마께서 나를 위해 골라 주신 길이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왕야는 호 아가씨를 좋아할 리가 없으니 시집을 온다고 해도 저한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죠,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니까요.”목여태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왕비께서는 그렇게 다 알고 계시면서 왜 폐하를 거역하셨습니까? 폐하께서 정말 마마를 괴롭히고 싶으시면 이렇게 특별히 궁으로 불러 식사를 하며 마마께 살뜰하게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바로 성지만 내리셔도 마마는 성지를 거역하실 수 없으니까요.”원경릉이 쓴 웃음을 지으며, “아바마마께서 저를 존중해 주시는데 어떻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잊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제가 계속 어려움에 빠지다 보니 왕야가 혼비백산 했어요, 저를 생각하는 왕야는 분명 호 아가씨와 혼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야가 성지를 거역하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제가 오늘밤 아바마마께 말대꾸 하는 게 낫습니까? 태감께서 찬찬히 생각해보시면 바로 아실 것입니다. 저는 제 꾀에 제가 빠져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저와 복중의 아이에게 모두 잘 된 일입니다. 적어도 얼마간 굳이 폐비를 해치러 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목여태감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왕비마마는 어찌 그리 치밀하십니까,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마마의 이런 생각을 아시면 분명 마마를 선처하실 겁니다.”원경릉이: “선처 여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야가 평생 순탄하게 지내실 수만 있으면.”목여태감에게 한 이 말은 황제가 앞으로 선처해주시길 바라며 원경릉이 일부러 신경 쓴 말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두 걸음 나가기 위해 한걸음 물러나는 전법을 쓴 것은 원경릉이 혼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다.원경릉이 혼인관계를 똑바로 유지하지 못하면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길 텐데 절대로 일가족이 헤어져서는 안된다.초왕부에서
원경릉과 우문호의 작별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가 함께 하겠다는 뜻에 감격했다. 친정으로 돌아가면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날 텐데 이 두 사람이 함께 해주면 적어도 억울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때 우문호는 초왕부에서 계속 원경릉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입궁하라는 황제의 성지를 받았다.말을 달려 입궁하는데, 원경릉의 마차를 보고 고삐를 잡아 멈춰서 마차를 막았다.목여태감은 두 사람이 만나게 하려고 일부러 마부에게 다른 길로 못 가게 했다.마차를 세운 뒤 목여태감은 얼른 원경릉에게: “왕비마마, 궁에서 일은 절대로 언급하시면 안됩니다. 왕야 성정에 분을 참지 못하시고 궁에서 대역무도한 죄를 지을까 두렵습니다.”원경릉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마차에서 내렸다.우문호기 막 말에서 내려 다가와: “내려오지 마, 굉장히 추워.”우문호는 바람같이 원경릉을 가슴에 품더니 바람막이로 그녀를 싸매고: “아바마마께서 뭐라고 하셨어?”원경릉이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에 묻고 익숙하고도 안정감을 주는 체취에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스르륵 풀어졌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우문호의 등을 껴안고 손가락 끝으로 옷에 놓인 자수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하더니: “별 말씀 없으셨어, 왕야가 매일 초왕부에서 뭘 하는지 묻기만 하시고.”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고작 그거야? 아바마마도 진짜 할 일 없나 보네, 나한테 들어오라고 어명을 내리셨다 길래 무슨 일이 났는 줄 알았지. 널 보니 안심이 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먹빛 눈썹, 그 주변의 흉터를 매만졌다. 흉터는 이제 옅은 붉은 색 줄만 남아 잘 보이지 않아서 잘생긴 얼굴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고 오히려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원경릉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가봐, 아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 게.”이 말을 하고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얼른 심호흡을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미간에 뽀뽀하며: “날이 차, 얼른
원경릉이 친정에 쫓겨가는데희상궁이 안으로 들어와 원경릉이 장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두 손을 배위에 올리고 얼굴은 약간 창백하다.사식이가 희상궁이 온 것을 보고 얼른 그녀의 손을 끌고 가, “희상궁, 얼른 가서 좀 봐줘요. 왕비마마께서 배가 불편하신 거 같아요.”“무슨 일이 생겼나요?” 희상궁이 원경릉 앞에 작은 걸상에 앉아 배를 쓰다듬어 주며, “아프신가요?”원경릉이 심호흡을 하더니,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약간 시큰거리는 정도예요.”희상궁이 조금 당황해서, “절대 무리하시면 안됩니다.”원경릉이 손을 내저으며, “괜찮아요, 내가 너무 긴장했나 봐요, 좀 쉬면 좋아질 거예요.”희상궁이 원경릉에게, “왜 친정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겁니까? 폐하의 뜻인가요?”“제 뜻이에요, 친정에 좀 있고 싶어서요. 희상궁, 질문은 나중에. 시간이 없어서.” 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이 나가서 목여태감을 붙잡고 한 켠으로 데려가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왕비마마는 아직 회임 하신 몸인데, 어떻게 마마를 친정으로 보낼 수가 있나? 정후부 상황을 폐하께서 모르시는 게 아닌데.”목여태감이 가볍게 탄식하며, “왕비마마께서 스스로 원하셨으니 어쩌나, 폐하께서 호 아가씨를 초왕 전하 후궁으로 맞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왕비마마께서 거절 하셨어.”“무슨 또 후궁이야? 설사 혼인을 시키신다고 해도 왕비마마께서 아이를 낳고 하셔도 돼잖아?” 희상궁이 얼른 말했다.목여태감은 희상궁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폐하께서도 절박해서 어쩔 수 없으신 거지, 진북후가 병사를 데리고 세력을 넓혔으니 폐하께서도 반드시 진북후를 누를 구실이 있어야지 않겠나.”“다른 왕야면 안돼?” 희상궁이 눈살을 찌푸렸다.목여태감이 쓴웃음을 삼키며, “초왕 전하보다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어? 진북후가 초왕 전하를 눈여겨본 모양이야, 만약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혼사를 명하신다면, 반드시 진북후가 만족할 인물이어야 해, 안 그러면 진북후가 역심을 품고 농간을 부릴 지 어찌 아는가?”희상궁은 이런 조정
명원제와 우문호의 일전우문호는 진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명원제가 자신에게 무슨 호박 아가씨인지 호 아가씨인지와 혼인하라는 말을 듣고 지붕에 기왓장을 전부 날려버릴 만큼 열이 받았다.우문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완강하게: “아뇨,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호박 아가씨든 수박 아가씨든 일절 혼인하지 않겠습니다.”“이런 몹쓸 자식, 무엄한 지고!” 명원제는 이럴 줄 알았지만 역시 화가 치밀어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어째 시름을 덜어주는 놈이 하나도 없다.“소신 이 생에 ‘원경릉’이란 왕비 하나만 둘 뿐 후궁은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문호가 말했다.명원제는 홧김에 우문호의 머리를 한 대 갈기고, “이 못난 놈아, 그냥 여자 하나가 아니냐? 혼인하고 데려가서 싫으면 건드리지 말고 초왕부에 두면 그만이지, 너희 부부한테 방해 될 게 뭐가 있어?”우문호 머리가 단단해서 오히려 때린 명원제 손만 아팠다.우문호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불끈하며, “아바마마 만약 그러실 거라면 굳이 그녀와 혼인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녀와 잘 될 리도 없는데 혼인해서 초왕부에 데려가는 건 그녀의 일생을 망치는 일이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음흉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음흉해? 뭐 음흉하다고!” 명원제가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대를 연거푸 때리고, “이건 권력에 대한 계책이고 견제와 균형이야, 그래도 모르겠어? 짐은 널 위해 앞길을 터주려 는데 너는 감사는 고사하고, 짐을 분통이 터져서 죽이려는 작정이냐.”명원제가 열 받아서 몹쓸 자식이라고 연거푸 욕을 해댔다.우문호 얼굴이 창백해 지며, “어쨌든 소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자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명원제가 화가 나서: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해야만 할 것이다. 진북후가 이미 조정으로 개선하고 있으니 딸도 같이 올 거다. 부녀가 경성에 다다르면 혼례를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고, 만약 싫거든 감옥에 가라, 짐이 네가 주명취를 죽인 사실을 엄밀하게 조사하도록 하지.”“그럼 아바마마께서 조사하시지요, 제 목이
아버지와 아들이 아들은 고집은 좀 센 편이지만 역시 능력이 있긴 하다.불 붙이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아니지,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땐 꼭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우문호가: “아바마마 만약 진북후가 껄끄러우시면 꼭 소자를 호 아가씨와 혼인 시킬 게 아니라, 아바마마께서 호 아가씨를 양녀로 삼으시고 공주로 책봉한 뒤 입궁해 어마마마와 함께 지내게 해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명원제가 우문호를 노려보며, “어떻게 같아?”이 녀석은 경중을 모른다니까.호 아가씨와 혼사를 치르면 진북후는 우문호의 장인이 되니 이게 진북후에게 있어 얼마나 큰 혜택이고 비호인가?보아하니 아직은 한참 더 갈아도 되겠다. 예리함을 전부 갈아 없앨까 걱정할 게 아니라 뾰족한 날부터 매끄럽게 좀 해 놓고.명원제는 정말 화가 났다. 호 아가씨를 양녀로 삼아 공주에 책봉하는 걸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제 보니 안될 것도 없다.하지만 벌써 일이 벌어져서 원경릉은 친정으로 쫓겨났고 이 녀석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 참에 따끔하게 혼을 내두지 않으면 앞으로 무법천지로 날뛸까 두렵다.그리고 원경릉은 다섯째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최대한 이걸 빌미로 둘을 갈라놓는 편이 좋겠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명원제는 차갑게: “주명취가 옥에서 죽은 것에 대해 네가 개인적으로 살인하여 입막음을 했다고 누군가 상소를 올렸다. 어떤 이유로든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 사건은 짐이 조사를 명할 것이며 너는 계속 정직상태다. 원경릉은 스스로 잘난 척하며 친정으로 갔으니 친정에서 한동안 살게 할 것이나, 만약 네가 정후부에 가서 감히 소란을 피우거나 가만 있지 않을 시엔 짐은 원경릉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죽이는 건 미련이 남지만, 원경릉 하나 죽이는데 짐이 손이 떨려 못할 성 싶으냐?”“원 선생은 회임을……”명원제가 책을 집어 던지며, “닭은 잡고 알은 가져올 것이다.”독하다! 우문호는 냉기를 느꼈다.“꺼져!” 명원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네가 만약 감히 정후부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