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에서 돌아오는 제왕과 초왕이 물음에 우문호는 약간 당황스러웠다.왜냐면 자기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자연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던 게 원 선생이 아이를 가진 이래 우문호의 마음이 그녀로 가득 차 있어 다른 일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지금 제왕이 물어서 우문호는 잠시 당황했다가 어떤 일은 이유 같은 거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 놓은 건 그냥 내려 놓은 거다.“형.” 우문호가 망설이며 말이 없자 제왕이 조금씩 몸을 버티다가 화들짝 놀라며 우문호에게, “아직 그녀를 좋아하는 거 아니겠지?”우문호는 제왕에게 눈을 흘기며, “말도 안돼는 소리 하지 마. 네 형수 속 좁은 거 몰라?”“그럼 형은 아직 좋아하는 거야 아니야?” 제왕이 물었다.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안 좋아해.”“어떻게 한 거야? 이렇게 빨리 그녀를 잊을 수 있다니.”우문호는 다시 생각해보는데, 어떻게 했더라? 우문호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잠시 후 제왕은 고개를 들고 얼굴이 환해 지더니, “왜냐면 형한테는 형수가 있잖아.”“그러고 보니까, 다른 사람이 있으면 잊을 수 있다? 이거 일종의 대체 요법 이구만,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제왕이 뭔가 생각이 있는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전전긍긍한 것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하지만 겉으론 적극적으로: “ 맞아, 얼굴 동그란 기지배 있는 데를 좀 자주 가봐,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 거야.”원용의 얘기를 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이번에 원비가 조어의를 데리고 제왕부로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목숨도 보존하지 못했을 거야.”“형수가 보낸 거야.” 우문호가 원경릉의 공로를 챙기는 게, 일곱째는 줄곧 원 선생에게 약간 편견을 가지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반드시 생각을 바꿔주고야 말겠다는 일념이다.제왕은 전혀 듣지 않고 혼잣말처럼, “사실 동그란 얼굴이 사람은 괜찮지, 사려 깊게도 나에게 왕비를 소개해 주겠다 더라고.”우문호가 갑자기
맞고온 우문호의 말남의 부부가 헤어지던 말던, 다섯째가 무슨 상관인데? 굳이 밤늦게 궁으로 불러들여서 곤장을 때리다니 사람을 너무 함부로 여긴다.서일이 우문호를 침대까지 부축해서 우문호가 엎드리자 서일이 한손으로 옷을 벗기는 김에 우문호의 바지를 내리자 사식이와 녹주가 얼른 눈을 가리더니 뒤를 돌아 냅다 달아났다.우문호는 뒤쪽 하반신이 썰렁해서 돌아보더니 이를 갈며 소리치길: “서일, 당장 꺼져!”서일이 당황해서, “상처치료는 안하세요?”원경릉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손을 내저으며, “서일 넌 가서, 물 끓여서 가져와.”서일이 ‘에’하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왕야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정말이지 갈수록 왕야 모시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서일이 나가고 우문호가 성질을 부리며: “서일은 다시는 내 곁에 못 있을 줄 알아.”원경릉은 우문호의 시뻘건 허벅지와 엉덩이를 보고 비록 지난번처럼 피와 살이 엉겨 붙어 있지는 않지만 피멍이 크게 들어 있고 피하출혈이 비교적 심각해서 피부가 얇은 부분은 벌어져 피가 베어 나온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열고 소독약을 출혈 부위에 바르며 역시 눈물을 참지 못하고, “왕야는 스무 대나 맞았는데 제왕은 몇 대 맞았어?”“일곱째는 안 맞았어.” 우문호가 침대에 엎드려 차가운 소독약 기운에 편안하다.“무슨 근거로?” 원경릉이 화가 치밀어서, “그 사람들이 헤어지는데 왜 왕야만 맞는 건데?”“몰라서 그래,”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일곱째가 다쳤어, 주명취가 비녀로 일곱째 가슴이랑 배를 찔러서 피를 많이 흘렸어.”원경릉이 놀라서 완전 굳어버린 채, “정말?”“그렇다니까? 오늘밤 나랑 일곱째랑 같이 입궁했는데 아바마마께서 일곱째가 가마를 타지 못하게 하셔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일곱째가 사실 못 걸으니까 내가 들고 갈 수밖에 없었지 뭐야, 봐 내 손목이……”우문호가 말하면서 소매를 걷고 어혈이 든 손목을 드러내자 손목에 온통 어혈이 맺혀 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이 모습에 원경릉은 더욱 마음이 아팠지만
주명취와 이혼에 대한 서일이 내놓은 해법탕양과 원경릉이 진지하게 우문호를 보는데 둘 다 어안이 벙벙하다.원경릉이 급하게: “스무 대를 맡겨 놨다는 게 무슨 소리야? 아바마마께서 왕야한테 무슨 어려운 문제를 내셨는데?”우문호가: “아바마마께서 일곱째가 정정당당하게 주명취와 헤어지게 하되 주재상의 체면은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최대한 빨리 생각해 내라고 하셨어.”탕양이 고개를 흔들며, “아마도 주재상의 체면을 상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버림받은 아내를 배출한 것은 어찌해도 체면을 구기는 것인데 헤어지는 거든 쫓겨나는 거든 누가 신경 쓰겠습니까?”우문호가 턱으로 머리를 지탱하고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아바마마의 어명이 그러하셨네.”원경릉이 근심에 쌓여, “이번 이혼은 원래 체면을 따질 일이 아니라 둘이 못 살겠다는 거잖아. 보통 못살겠는 데는 원한이 있기 마련이고 원한이 있는 상황에 체면을 따질 겨를이 어디 있어, 정말 어렵네.”탕양도: “이번은 정말 불시의 재난입니다. 제왕 부부가 이혼하는데 어쩌다 초왕부 사람이 불행을 당합니까.”원경릉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방법이 있나? 이 세계는 원래 절대적인 공평이란 게 없다.세사람이 말없이 머리를 짜내서 생각을 거듭했다.약주를 바르자 어혈이 좀 사라지며 우문호도 꽤 편해져서 일어나 몇 걸음 걷더니, “많이 나아졌어.”원경릉이 우문호를 부축하며 걱정스럽게: “이번엔 심하게 안 맞았지만 이번에 시킨 일을 제대로 못했을 때 스무 대는 만만치 않을 거야.”우문호가 위로하듯: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일은 적어도 며칠은 끌 수 있어.”“며칠 끌면 방법이 있어?” 원경릉이 얼른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방법은 없지, 하지만 며칠 뒤에 내 상처는 괜찮아질 테니까 다시 스무 대를 더 맞아도 버틸 수 있어.”원경릉은 순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세 사람은 한없이 서글퍼졌다.문 앞에 머리 하나가 안을 살피는데 서일이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조그맣게: “재상이
주재상을 부른 희상궁과 선물“마음이 아픈 걸.” 원경릉이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오열했다.둘이 같이 있으며 지금까지 반 년 정도 시간에 칼에 찔리고 곤장을 맞는 등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알아?우문호의 몸이 성할 날이 없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네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내가 앞으로 어떤 고충을 당해도, 아무리 매를 맞아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우문호는 원경릉을 똑바로 눕히며, “이렇게 엎드리지 마, 배 눌리면 어떡해.”우문호는 손을 원경릉의 배에 올려놓고 옆으로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뽀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푹 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원경릉이 우문호의 얼굴을 바라보니 형제 지간의 차별과 편애 생각에 마음 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하지만 관두자, 제왕도 지금 불쌍하고 이 일은 제왕 탓이 아니니까.원경릉은 이혼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 돼서 앞으로 생활이 그 사람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길 바랬다.다음날 우문호가 출근하고 원경릉은 바로 희상궁에게 가서 이 일을 얘기했다.희상궁이 듣더니 역시 우문호를 마음 아파하며, “지난번에 매를 맞고 어젯밤 또 스무 대를 맞으셨는데 만약 이 일이 틀어져서 또 스무 대를 더 맞으시게 되면 왕야께서 어찌 매를 이기시겠습니까?”희상궁이 원경릉을 위로하며: “왕비마마도 걱정 마세요. 제왕 부부의 이혼은 8, 9할은 이미 끝난 일인데다 황제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니 결국 누군가의 명예에 금이 가더라도 이 일은 진행시켜야 지요. 주씨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체면을 생각한다면 자기들이 처리하는 편이 낫지요. 사람을 시켜 쪽지를 보내 내일 그분께 오시라고 해서 이 일을 얘기하겠습니다.”원경릉이 감격해서: “희상궁, 정말 너무 고마워요.”희상궁이 웃으며, “왕비마마 무슨 말씀 이세요? 감사라니요? 이 목숨은 왕비마마께서 구해주신 거잖아요.”원경릉이 이제 편하게 웃으며, “그런 말 하지도 마요, 한 지붕아래 산 인연인데.”희상궁이 사람을 시켜 쪽지를 보내고 내일이나
희상궁과 처음 밥을 먹는 주재상이쪽에서는 아랫사람들에게 주재상이 왔다는 말을 듣고 희상궁은 우선 직접 찻물을 준비하고 특별히 호명(胡名)을 시켜 주방에 간단한 요리를 두개를 만들어 달라고 분부했다. 이 시간에 오는 걸 보면 아마 식사를 못했을 테니 말이다.주재상이 와서 희상궁과 먼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밥과 반찬이 다 돼서 들어왔다.주재상이 이렇게 많이 왔지만 남아서 밥을 먹긴 처음이다.시중을 드는 건 호명으로, 주재상이 매우 정중하게 호명에게 은자 한 덩이를 하사하니, 황송해서 호명이 감히 손을 뻗어 받지 못했다.희상궁이 웃으며: “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호명이 얼른 감사인사를 하고, 주재상은 호명이 나가자 단정하게 앉았다.처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밥을 먹는데 조금이라도 수고비를 더 주는 게 남자의 체면이고 도리라고 생각했다.희상궁이 미소를 지으며: “이 요리는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당신이 오실 줄 알았으면 제가 직접 주방에 가서 만들어 드리는 건데.”“앞으로 기회는 많네.” 주재상이 희상궁을 보고 여전히 엄숙하나 눈빛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네!” 희상궁이 미소를 지으며, “그럼 식사하세요.”주재상이 희상궁에게, “사람을 시켜 쪽지를 가져오라고 해, 일부터 얘기 해야지 안 그러면 밥이 제대로 넘어 가겠나.”희상궁이 주재상에게 차를 따르며, “식사를 안하시면 차 한잔 더 드세요.”주재상이 한 모금 하더니, “마셨어, 말해봐.”희상궁이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하면 제가 어떻게 얘기를 해요? 입을 못 떼겠네요.”“나한테 부탁할 거 있어?” 주재상이 물었다.희상궁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초왕비가 부탁하라고 했어?” 주재상은 역시 주재상이다.희상궁이 계속 차를 따르며, “왕비가 청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의 뜻이에요.”“그러니까 초왕비가 부탁을 다하고 어쩐 일이야? 초왕비가 나한테 간청하면 내가 들어줄 수도 있는데.” 주재상이 패기 있게 말했다.희상궁이 주재상을 보고 찻주전자를 내려놓은 뒤 두 손을 가
주재상의 손수건과 불안한 원경릉주재상이: “초왕부에 두 번 빚을 졌지, 만약 이 일을 내가 해서 모두 안심이라면 내가 하면 돼.”희상궁이 한시름 놓고 묻길: “당신이 왜 초왕부에 두 번 빚을 졌어요?”주재상이 밥을 먹으며 애매모호하게: “초왕비가 당신을 두 번 구해주지 않았어?”희상궁이 당황해서 주재상을 멍하니 쳐다보고, 눈가에 순간 눈물이 맺히는데 감추듯 얼른 닦아내고: “식사해요.”주재상이 찬찬히 희상궁을 보더니 어디서인지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며, “눈물 닦아, 앞으론 쉽게 울지 말고. 눈 상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지. 머리카락 한 올도 소홀히 다뤄선 안돼, 이 생이 고작 이 만큼 남았단 말이야.”희상궁이 손수건을 받아 들어 눈물을 닦고, “손수건은 어디서 났어요?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고운 손수건을 들고 다녀요?”“초왕비에게 호랑이무늬 신발 한 쌍 선물했는데 이건 그 신발 싼 거야.” 주재상이 말했다.희상궁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당신이 사람을 시켜서 만든 호랑이무늬 신발이요? 당신 올때마다 선물을 하나씩 가져 온다면서요.”“가져와야지,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나는 매번 소소한 장난감 같은 거 가져와서 돈 별로 안 들어, 하지만 도리는 다 해야 내가 자주 와도 초왕비가 안 싫어하지.” 주재상이 이렇게 말했다.희상궁이 웃으며: “안 가져와도 당신 안 싫어해요.”“그래도 가져 올까 봐, 초왕비 배속에 아이를 당신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할거야.” 주재상이 밥그릇을 들고, “어서 먹어, 밥 먹을 시간을 놓치면 위장에 좋지 않아, 회복하는데 신경 써야지.”“에.” 희상궁도 먹기 시작했는데 식사하며 주재상을 흘깃 보니 진지하게 꼭꼭 씹어 먹는게 정말 건강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희상궁은 말할 수 없이 감개가 무량했다.주재상이 요즘 특별하게 자신을 아껴주고, 하루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걸 안다.그녀도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이쪽에서 주재상의 승락을 얻었다고, 주재상이 간 뒤
제왕을 만나러 간 주명취제왕부 쪽은 오히려 꽤 평온했다.원용의가 제왕을 모시며 제왕을 보호해서 주명취가 와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목적이었다.하지만 주명취는 의외로 조용했다.이날 주재상이 사람을 시켜 서신을 보냈는데 주명취가 읽고 나가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돌아와서 바로 제왕을 찾아갔다.원용의는 상당히 경계하며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명취를 막았다.주명취가 원용의를 흘끔 보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안심해, 저이를 해치러 온 게 아니니까. 당신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치겠어. 그냥 이별의 말 몇 마디 하려고 온 거야.”“이별?” 원용의가 놀랐다.주명취는 조금 슬픈 눈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래, 할아버지께서 사람을 시켜 서신을 보내셨어, 이혼을 찬성하는. 이 일이 끝나면 난 갈 거야. 단지 내가 상처를 입혔으니 결국 내 불찰이니까. 사과하려고 왔어. 앞으로 서로에게 빚진 거 없게.”원용의는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변할 리 없다는 것을 깊이 믿고 있지만, 주명취가 이렇게 말하는데다 여전히 왕비의 신분이므로 그녀를 못 들어가게 하는 건 확실히 경우가 바르지는 않다.원용의가: “그럼 들어오세요, 제가 옆에 있는 거 신경 쓰이세요?”“괜찮아.” 주명취가 원용의에게 예를 표하자, 원용의는 오히려 상당히 의외였다.제왕이 조용히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데 주명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대비하듯 멀찍이 물러나며 그녀를 쳐다봤다.주명취는 제왕의 이런 반응을 보고 섭섭한 마음이 들어 조용히 걸어가 작은 목소리로: “겁내지 마요, 다시는 당신을 상처 입히지 않을 테니.”제왕은 주명취 뒤의 원용의를 보자 원용의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제왕이 주명취에게: “앉아.”제왕이 옆에 의자를 가리켰으나 주명취는 직접 침대에 앉았고, 제왕은 의식적으로 안으로 자리를 비키며 주명취의 두 손을 바라봤다. 주명취가 아직 비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 하는 빛이다.주명취가 이 상황을 보며: “사실 나 당신이 이런 게 싫었어요. 간
주명취의 이간질과 열덕주점의 진실주명취의 얼굴에 몽환적인 빛이 감돌며, “10살때부터 꿈 꾼 결혼이 있어요, 신부는 나고, 신랑은 초왕이죠. 원경릉은 13살에 그를 사랑했다 던데, 난 원경릉보다 빨랐어요. 만약 당신이 황제의 적자가 아니었다면, 만약 어마마마의 그런 말이 아니었으면 난 그를 포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얘기하던 가요? 며칠 전에 열덕주점으로 그를 찾아 간 적이 있어요. 그와 반 시진을 얘기하고 알게 됐죠. 그의 마음 속에 아직도 내가 있고, 그는 내가 당신과 이혼하길 원한다는 걸. 그는 날 후궁으로 맞아들일 거예요, 어휴, 원래 내가 그의 정비여야 했는데.”주명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는데 얼핏 제왕의 창백하고 처참한 얼굴이 보였다.원용의는 한 손으로 주명취를 끌어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됐어, 입 닥치고 나가.”주명취는 원용의를 보고 작은 소리로: “원후궁, 이 일은 제왕이 반드시 알아야 해. 결국 당신도 나와 호오빠가 사적으로 만났던 일을 알잖아. 사실 당신이 제왕에게 얘기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제왕이 번쩍 고개를 들고 원용의를 바라보고, “너 알았어?”원용의가 얼른: “내가 뭘 안다고? 이건 왕비가 헛소리 하는 거예요, 속지 마세요. 왕비는 당신과 초왕의 감정을 갈라 놓으려는 거라고요.”주명취가 쓴 웃음을 지으며, “이제 와서 갈라놓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나도 초왕의 후궁으로 시집갈 리 없고, 내가 만약 그에게 시집간다면 그는 나만 가질 수 있는데, 원경릉이 이미 애를 가졌잖아. 나도 초왕에게 처자식과 헤어지라고 까지는 못해. 끝이야.”주명취는 제왕을 눈에 깊이 새기더니, “내가 미안해. 앞으로 잘 살아. 일 다 처리하면 나 갈 거야. 이게 우리 마지막 작별인사인 걸로 하자. 내가 가는 날, 너 보러 안 올 거야.”원용의가 화가 나서: “주명취, 어쩜 마음이 그렇게 시커멓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못 봐?”주명취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원용의에게: “뭐라고 하든 맘대로 해. 원후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