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 돌아왔다밖으로 나와서 구사가 물었다: “왕비께서는 왜 내가 널 때렸다고 하는 거야?”“왕비가 농담을 좋아해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뒤를 살피고도 안심이 안되는지 구사를 끌고 몇 걸음 더 가서, “무슨 일 있어?”구사가 그제서야 목적이 떠올라서: “기왕이 돌아왔어.”“이렇게 빨리?” 우문호가 놀라서, 한달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당겨서 돌아왔지?“오늘 내가 당직이라 기왕이 입궁해서 어서방에 가는 걸 봤어, 황제 폐하께서 한바탕 혼을 내시고 기왕부로 돌려보내시 더라고.” 구사가 말했다.“이렇게 빨리?” 우문호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감히 스스로 돌아왔을 리는 없고, 분명 아바마마께서 돌아오라고 부르신 거겠지.”“아마도 주씨 집안 둘째를 후궁으로 맞는 일 때문일 거야, 듣기론 다음 달 초사흘이라 더라.”“그래도 날짜가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올 필요는 없는데.” 우문호가 어쩐지 태평성대는 얼마 못 가는구나 싶고, 다시 그 짜증나는 얼굴을 봐야 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구사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어, 너한테 한 마디 깨우쳐주려는 것 뿐이야, 아마도 기왕이 ‘주씨 집안 둘째가 널 집착했다’는 소문을 듣게 될 건데 그때는 아마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천한 것들이 쌍으로!” 우문호가 증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구사가: “어쨌든 네가 스스로 잘 봐야 돼, 지금 초왕비가 기왕비를 치료하고 있는데 기왕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 오늘 마침 아지(阿志)가 밖에서 기왕의 시종이 기왕에게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 일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고, 기왕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우문호’하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더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생각해 보라고.”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응, 그 일 나도 알고 있어.”구사가: “그럼 난 간다.”구사가 가려 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고, “맞다, 왕비가 왜 내가 널 때렸다고 하는 건데?”우문호가 화를 내며: “너 왜 이렇게 성가시게 굴어? 왕비가 농담했다고 했잖아.
원후궁은 어때?사식이가 경계태세로, “어르신은 거기 서서 말씀하세요, 말씀 하시면 전 여기서 듣겠습니다.”우문호는 매력 발산에 실패하자 표정을 가다듬고 이번엔 온유하고도 자상한 표정으로, “우리 사식이, 초왕부에 와서 왕비 곁에 있은 지 좀 되었는데 집이 그립지? 언니도 그립지 않으냐?”사식이가 놀라서 순간 얼굴색이 변하더니 눈물을 훔치고 발을 구르며: “왕야, 사식이가 뭘 잘못했나요? 사식이를 쫓아내시는 건가요?”말을 마치고 흥분해서 나갔다.바람이 곁에 쓱 불고 지나간 것 같은데 사식이가 보이지 않아, 우문호는 망연자실한 얼굴이다.안으로 돌아가다가 사식이가 원경릉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사식이가 왕비마마를 곁에서 모실 수 없게 됐어요, 왕야께서 절 내쫓으신 데요.”우문호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너 지금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야? 내가 언제 널 쫓아낸다고 했어?”“그런데 왕야께서……” 사식이가 눈물을 훔치며, “왜 저에게 가족이 그립냐고 하셨습니까?”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나는 너에게 원후궁을 며칠 불러오라고 하려던 참인데, 너희 자매도 모일 겸해서.”사식이가 화들짝 놀라며 바로 방긋 웃고, “그거 잘됐네요, 언니가 정말 좋아할 겁니다.”말을 마치고 눈물을 그치더니 거들먹거리며 나갔다.우문호가 사식이에게 소리치며, “언니에게 내일 기왕비와 같이 입궁하라고 해라.”“알겠습니다!” 사식이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데 기뻐 죽는다.원경릉이 웃으며, 왜 원후궁을 부르는지 묻지 않아도 우문호가 마음 쓴 것을 알 수 있었다.도리어 묻길, “구사는 왜 왔데?”“큰형이 돌아왔다는 군.” 우문호가 원경릉에 기대 앉아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움직였다.원경릉이 ‘어’하더니, “조만간 돌아올 예정이었으니 좀 일찍 오나 늦게 오나.”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큰 형이 만약 여전히 주씨 집안에 기대려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이 기왕비를 구해준 일에 대해 기뻐할 리 없어.”“누가 그 사람 기뻐하라고 그랬나요?” 원경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입궁하는 원용의와 원경릉다음날 원후궁은 이른 새벽같이 일어나 각별히 신경 써서 화장을 한 뒤 쏜살같이 문을 나섰다.막 제왕부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제왕녀석’이 나오는 참이다.제왕은 원후궁이 룰루랄라 하는 모습을 보고 저절로: “어디 가는 거야?”원용의는 눈썹을 휘날리며 몹시 흥분한 상태로, “입궁해요.”“입궁?” 제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오늘 무슨 날도 아니고 넌 왜 입궁하는 데? 누가 널 불렀어? 너 갈 수 있어?”원용의는 낮은 목소리지만 자랑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웃으며, “초왕비가 저랑 같이 가자고 절 초대했지 뭐예요, 세상에, 저 좋아 죽을 거 같아서 한숨도 못 잤어요.”제왕의 미간이 여전히 찌푸려진 채, “그게 왜 좋아 죽을 일이야? 네가 궁에 가겠다면 나도 널 데리고 가 줄 수 있는데.” “궁에 가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원용의가 홱 돌아서서 갔다.제왕은 원용의가 진짜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며, “궁에 가는 게 뭐가 그리 좋냐고? 그럼 원비는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옆에 있던 시종 대안(大安)이 웃으며: “왕야, 원비마마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입궁해서가 아니라, 초왕비께서 초청하셨기 때문입니다.”제왕이: “나도 원비를 청해서 같이 갈 수 있다고 흥.”대안이 고개를 젓고 웃으며: “왕야, 하지만 원비마마의 관심은 초왕비시지 왕야가 아닌 걸요.”제왕이 화가 나서, “무슨 자격으로? 원비가 누구 후궁인데?”“왕야의 후궁이지요, 하지만 왕야께서도 원비마마를 눈 여겨 보신 적이 없으십니다, 만약 초왕비가 남자였으면, 소인의 짐작으론 원비마마는 죽기 살기로 초왕비께 매달렸을 것입니다.”제왕은 입맛이 영 쓰다. 다섯째 형수, 좀 너무 한 거 아냐!원용의는 룰루랄라 초왕부로 가고 마침 기왕비도 있어서 들어가 문안 인사를 하는데 떨렁 두 문장이다.“초왕비와 입궁한다고?” 기왕비가 살짝 눈을 치켜세우고 이 말을 듣더니 속으로 생각이 있는지, “알았네, 재밌게 놀게나, 초왕비가 자네를 꽤 좋아하는 모양이더군.”“저를 좋아한다
태후전에 간 원용의와 원경릉원경릉이 참지 못하고 죄다 폭로하며,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군요.”상선이 정색하고: “정말 중요한 일이시면 왕비마마, 우선 태후마마께 문안하시지요.”원경릉은 술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자제가 안되는 걸 알지만 문이 잠겨 있으니 들어갈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럼 좋아요, 상선은 가서 황조부께 말씀 드리세요,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태후마마께 문안 드린 후 바로 돌아올 테니 안에 들여보내 달라고요.”상선이 미소 지으며: “알겠습니다! 왕비마마 먼저 가시지요, 오늘 태상황 폐하께서 기분이 좋으신 데 더 즐겁게 해 드려야 지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잠시 후 원경릉이 말할 내용은 태상황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니 아예 셋이 좀 더 마시게 내버려 두자. 태후전에 도착하니 마침 덕비도 거기에 있고 태후가 기뻐하며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세히 보는데 특히 배를 한참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배가 빨리 나오는 구나, 게다가 둥글둥글한데.”덕비가 웃으며: “태후마마, 둥글둥글하면 안 좋습니까?”태후가 고개를 돌려 덕비를 째려보더니: “모르는 소리 마라, 자식을 안 낳아봐서 그래, 배가 이렇게 둥그러면 대부분 딸이고, 배가 봉긋해야 아들이야.”덕비가 ‘아하’하더니 여전히 웃고 있으나 약간 쓸쓸한 눈빛으로, “그런 거였군요, 신첩은 정말 몰랐네요.”태후는 자기가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덕비의 손을 두드리며, “자네야 황제의 시중을 드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지 않은가, 그런 건 신경 쓸 거 없네.”덕비가 웃으며: “신첩은 복이 없는지 신경을 써도 돼지를 않네요.”“사람의 복이 어디 자식 뿐인가, 다른 것도 있지. 자네가 지금 잘 지내고, 황제가 이토록 오랜 시간 자네를 소홀히 여긴 적이 없으니 황은이 망극해야 마땅하지.” 태후가 말했다.“맞습니다, 신첩 알고 있어요. 신첩이 지금 매일 태후마마와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걸요.” 덕비가 말했다.태후가 미소를 지으며 원경릉에게
희상궁 소문의 진실, 방우는 누구인가‘그걸 얼마나 여러 번 가르쳤어? 성은의 비는 공평하게 내려야 한다고. 주씨 집안 그 기지배만 싸고 도니 원.’못난 놈!원용의는 정직하게: “저랑 주무신 적 없어요, 시집온 이래로 제 방에서 주무신 적이 없으셨어요.”태후가 약간 노해서, “어찌 이런 일이? 다섯째 그때와 똑같지 않은가? 시집와서 일년동안 합방을 한 적이 없었던. 그걸로 모자라던가? 내가 한 마디 해야겠구나.”“그러지 마세요, 제왕께서 와서 주무시는 거 싫어요. 혼자 자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원용의가 얼른 말하며 원경릉을 흘깃 보는데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딱이야, 원용의와 초왕비 언니가 같은 상황이었다니.원경릉이 원용의의 이 눈빛을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이 기지배 진짜 기특하네!하지만 지금 제왕과 원용의의 상태는 그때 자신과 다섯째의 모습과 닮았다. 당시 다섯째의 마음속엔 주명취만 있었고 지금 제왕의 마음속에도 주명취만 있다.정말 형제가 쌍으로 눈이 멀었어!원경릉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으로 이 얘기에 흥미가 없고 어서 주재상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게다가 여기서는 태후가 줄곧 자신의 배를 쳐다보고 있어 심각하게 불편하다.다행히 덕비가 이 때 일어서며: “태후마마 오수 드실 시간입니다. 초왕비 나와 저쪽에 좀 가지 않을 텐가?”원경릉이 바로 일어서며, “예!”원용의도 일어서며, “저도요!”세사람이 태후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와 같이 태후전을 나왔다.밖으로 나와 덕비가 원경릉에게, “초왕비 어째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원경릉도 감추지 않고, 바로 희상궁 일을 덕비에게 알렸다. 덕비가 듣고 경악하며: “뭐라고? 밖에서는 방우가 희상궁때문에 곤장을 맞아 죽었다고 한단 말이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 소문을 낸 자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원경릉이 서둘러 묻길: “이 일을 아세요? 그 금군 방우는 왜 죽은 거예요?”덕비가 분노하며: “방우는 당시에 태상황 폐하 측근의 어전 시위였는
희상궁의 자결 소식원경릉과 원용의는 덕상궁에 오래 머무를 겨를도 없이, 다시 건곤전으로 갔다. 태상황과 둘은 안에서 아주 통쾌하게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문을 잠가 놓고 아무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하고 말이다.어쩔 수 없이 원경릉은 현비에게 문안 인사를 가고, 황후에게 문안하고 이렇게 한바탕 돌고나서 마지막엔 다시 덕상궁으로 돌아와 안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선에게 태상황이 다 드시거든 덕상궁에 알리라고 했다.한참을 기다리는데 기다리던 상선은 오지 않고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급한 전갈을 보내더니 덕상궁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이 우문호가 급한 전갈을 보냈다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들어갔다.잠시 후 사식이가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더니 덕상궁에 들어와 덕비에게 문안을 여쭐 겨를도 없이 바로 울며, “왕비마마, 어서 돌아가요, 희상궁이 목을 맸어요!”이 말에 놀란 원경릉이 하마터면 혼절할 뻔 한 것을 얼른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한 손에 원용의 손목을 잡고 사식이에게, “살아있어?”사식이가 울며: “몰라요, 피를 토하고 독주를 마셨다고만 해서, 바로 사람을 시켜 왕야를 찾아서 왕야께서 와서 보셨는데 친서를 써주며 어서 들어가 왕비를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부르러 온 사람은 갔고 제가 밖에서 서신을 받았어요.”덕비가: “초왕부에 어의가 있지 않느냐?”사식이가 눈물을 훔치며, “있어요, 조어의가 있어요, 하지만 왕야께서 왕비마마께서 돌아오셔야 한다고, 광이(光二)가 그러는데 희상궁 얼굴이 새하얗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데요, 죽은 것처럼. 서일이 방금 말을 몰아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너무 괴로워요, 왕비마마, 희상궁이 만약 죽으면 어떡해요.”말을 마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원경릉이 한 소리하며: “울지 마, 우리 어서 출궁하자.”세사람이 같이 나오는데 마침 상선이 직접 오는 것이 보였다. 원경릉을 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왕비마마, 태상황 폐하와 두분 다 마치셨습니다. 가셔도 됩니다.”원경릉이 초조함을 겨우 억누르고
희상궁 소식을 듣고상선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아, 아닙니다. 왕비께서는 무탈하십니다.”주재상이: “태상황 폐하 고정하시지요, 우선 상선의 말을 들어봅시다.”상선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덕비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고: “태상황 폐하, 초왕부에서 사람을 보내 희상궁이 자신하였다고 알려와서 왕비는 바로 돌아갔습니다.”주재상이 벌떡 일어나 눈알이 튀어 나와 머리 꼭대기에 가서 달릴 듯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덕비마마 뭐라고요? 희상궁이 자진을? 지금 어떤가요? 왜 자진을 했답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초왕부에서 수모를 당한 거 아닙니까?”소요공이: “주대인, 고정하시게, 우선 덕비마마가 하시는 말을 들어봅시다.”주재상이 긴 세월 쌓아온 위신이 하루아침에 다 물거품이 되고 미친 몰골로, “덕비마마, 말해요, 어서 말해요!”덕비가 숨을 삼키고 요점을 간추려, “요즘 밖에 나도는 소문에, 희상궁이 당시 재상과의 일이 있을 때 그녀가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 태상황 신변의 수석 궁녀란 신분을 무기로 주재상을 색으로 유혹하고 재상에게 버림받자 목을 매고 죽겠다며 재상을 협박 했으나 태상황에게 호되게 혼났다. 그래서 희상궁은 대상을 바꿔 방우와 사통하여 방우는 태상황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희상궁은 떠도는 소문이 너무도 추악하고 더러워서 견디지 못한 듯 합니다. 어찌 알았겠습니까. 왕비가 오늘 입궁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던 것을요.”주재상은 바로 이순간 건곤전에서 사라졌다.태상황이 노발대발하며, “방우? 밖에서 희상궁이 방우와 사통했다고 한단 말이냐? 게다가 방우가 나에게 맞아서 죽었다?”덕비가 어쩔 줄 몰랐지만 답할 수 밖에 없어: “이것은 왕비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왕비가 사람을 시켜 물어본 것으로 밖에는 이렇게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소요.” 태상황이 불같이 소리치며, 분노로 태산이라도 뽑을 듯한 기세로, “당장 조사해라, 소문을 퍼트린 자는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소요공이 어명을 받들고 조용히 나
상궁이 독을 먹었다. 그녀가 무슨 독을 먹었는지 어의는 찾아내지 못했고 방안에도 아무 흔적이 없었다. 심지어 독주를 먹은 잔이 깨끗하게 씻겨 있었다.조어의가 부랴부랴 해독 약을 만들어 그녀에게 두 알 먹였지만 약을 먹고 난 뒤에도 희상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힘없는 눈동자와 가는 숨소리는 그녀가 죽음에 문턱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광경을 본 원경릉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우문화 조어의를 막아서는 순간 약 상자를 꺼냈다. 침상 옆에 꿇어앉은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박동이 너무 약해……’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약 상자를 뒤져 아트로피닌을 꺼냈다. 희상궁이 무슨 독을 먹었든 관계없이 원경릉은 다급한 마음에 우선 약을 넣고 보았다.그 순간 주수보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문호가 그를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한 걸음에 희상궁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달려왔다.그는 입이 벌어진 채 공허한 눈빛으로 희상궁을 내려다보았다.주수보가 부중에서 출발하면서 사람을 시켜 쓸만한 약은 모조리 챙겨 왕부로 오라고 명령했다.그는 축 늘어진 희상궁을 보자 온몸에 한기가 돌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해다.우문호는 그런 주수보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재상…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주수보는 멍한 표정으로 원경릉이 희상궁에게 위를 세척하는 수액을 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주수보가 희상궁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녀는 겨우 열다섯의 소녀였다. 그녀는 큰 눈에 웃을 때마다 쏙 들어가는 보조개가 아름다웠고 깔끔하게 빗은 쪽머리가 새침해 보였다. 고급스러운 자수가 놓인 비단 옷을 입은 그녀는 지금의 태상황, 당시 태자 옆에서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날은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거세게 비가 내렸다. 태자는 비를 맞으면서도 지금의 주수보를 상대로 무술을 연마했다. 그때 상선도 어린 태감이었는데 그와 어린 희상궁은 항상 복도에 숨어서 태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