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실 계란이는 이곳에 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다. 계란이는 늘 오빠한테 붙어 있는 걸 좋아해, 오빠들이 북당을 떠났을 때 한동안 울적해 있기도 했다. 경단이 말이 사실 맞았다. 계란이는 부모 곁에 남아 있는 것보다 오빠들과 같이 있는 걸 더 좋아했다.우문호가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더 놀아주고 싶어도 조정 일이 많아 바쁘다 보니, 계란이는 아빠를 볼 수 없고, 우문호도 자러 가는 길에 잠든 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밤새 원 선생과 상의 끝에 어려운 결단을 내려, 계란이를 여기 현대에 남겨두기로 했다.딸은 일반인과 다른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배워야 했다. 게다가 딸이 오빠들과 있기를 원해서, 딸만 좋다면 아무리 섭섭해도 역시 자신을 타이르는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1년에 2번은 돌아올 예정이고, 한 번 올 땐 2달씩은 머무를 수 있으니, 1년에 4개월의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이렇게 계란이와 신조는 현대에 남기로 하고, 부부는 크고 작은 봉지를 짊어진 서일을 데리고 쓸쓸히 돌아갔다.섭섭해, 섭섭해, 너무 섭섭하다고.가는 길에 원경릉은 눈물을 터트렸다. 우문호도 울고 싶어 코끝이 찡해지며 괴로웠다.경호로 돌아가서 마음이 텅 빈 듯 원경릉 손을 잡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는데, 곁에 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목 놓아 울었다. 우문호가 계속 아이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바람에, 원경릉은 자신의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자, 마음속에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눈물이 터져 버렸다. 결국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달래주고 나서야 겨우 울음을 멈췄다.서일도 좀 괴로웠다. 본인도 공주를 보내는 게 내심 섭섭했었다. 경성으로 돌아와 며칠간 괴로웠으나 생활은 여전히 계속됐다.아이들이 곁에 없으면 심장의 절반이 사라진 듯, 아주 힘들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익숙해지더니, 많은 시
기화가 놀라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제가 미쳤어요, 여기 살게? 여기는 인터넷 쇼핑도 없고 배달도 안 되고 게임도 없는데, 이런 낙후한 데서 어떻게 살아요?”그러자 북당 황제인 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낙후? 낙후됐지, 그럼 안 그럴 수 있어? 현대랑은 시공간부터가 다른데.근데 다른 나라들이랑 비교하면 북당에 대체 어디가 낙후됐다는 거야?’그러나 우문호는 기화에게 함부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딸이 그 집에 있으니, 비위를 잘 맞추며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아이들은 이미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뒀기 때문에 한 달 있다가 돌아가야 했다.원 교수 부부와 원경주가 그 세계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번갈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었다.그래서 원래는 거의 2달간 방학이지만 한 달만 머물 수 있었다.아이들이 가고 나면 다시 겨울 방학까지 기다려야 했다.교육과 의료는 점점 궤도에 올랐으나 한 나라를 다스리자니 잡다한 일이 많아서 우문호는 여전히 바빴고, 오히려 원경릉은 다시 여유가 생겼다.겨울 방학에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계란이는 전보다 키가 꽤 컸고 턱이 뾰족해진 것이 훈련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기화 말대로 난이도가 높아지긴 한 것 같았다.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침착해졌고, 특히 만두는 점점 맏이 티가 나서 동생들을 상당히 자상하게 챙겼고, 동생들도 만두 말을 참 잘 들었다.섣달그믐 밤, 계란이가 다시 불을 냈지만, 이번엔 화염을 제어하는 것을 시연한 것으로, 지켜보던 숙왕부 어르신들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천재로군.’신조 털도 원래보다 예뻐져서 점점 꼬리에 불같은 붉은 색을 띠었다. 계란이가 시연을 마치자, 신조도 숙왕부를 한 바퀴 돌며 꼬리를 쫙 펼치니 불꽃을 끌고 가듯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이렇게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몇 번 오간 끝에 계란이의 7살 생일이 다가왔다.7살 계란이는 키가 120cm로 매우 아름답게 성장
냉 대인에게 요 몇 년간 혼담이 들어왔지만 결국 이상한 이유로 전부 흐지부지 되었다.첫 번째는, 집안의 담장이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진 것으로, 이는 불길한 징조라며, 어쩌면 하늘의 경고일지도 모르니 학문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혼인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두 번째는, 냉 부인이 막 매파를 찾아내 아직 혼사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냉 대인이 고열이 나고 연속 사흘간 열이 나자,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며 하늘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세 번째는, 집에 늙은 개가 죽었는데 냉 대인이 말이 삼년상을 치러야 하니 3년간은 혼인할 수 없다고 해서, 냉 부인이 완전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몽둥이를 들고 냉 대인을 쫓아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잡히면 죽는다고 했다.네 번째는,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 이유도 없이 눈썹이 절반 깎여 있었는데, 눈썹은 운수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혼담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구실이었다.냉 부인은 마음을 접고 냉 대인을 재상 저택에서 살라고 내쫓으며 무섭게 쏘아붙였다.“평생 홀아비로 살거라!”냉 대인이 탄식했다.“보아하니… 그게 아들의 운명인가 봅니다.”냉정언이 재상 저택으로 이사한 뒤, 냉 부인은 아예 냉정언의 혼사로 속 끓이는 대신해서, 친척 중에 비교적 총명하고 영리한 대를 이를 만한 아이가 없나 찾았다.냉 부인이 직접 냉정언에게 가서 물어보자 냉정언이 원래는 싫다고 했으나, “싫으면 어미를 위해 가서 목을 매달아라!”라는 냉 부인의 한마디 말에 냉정언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그럼, 모든 건 모친께 맡기겠습니다!”냉 부인은 친척 중에 다섯 살짜리의 남자아이를 하나 골라주었는데, 이 아이도 운명이 아주 기구했다. 위에 3명의 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돌아가신 탓에 할머니는 그 애가 재수가 없어서 집안에 불운을 가져왔다며 그 애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그 애 어머니가 작년에 병으로 죽자, 아이는 더욱 살기 힘들어져 세 살처럼 삐쩍 말라 피골이 상접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원경릉이 냉정언에게 물었다.“얘가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는 강자로 하려고 했으나, 집에 온 뒤로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아직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냉정언이 답했다.“아!” 냉정언은 예전에 국자감의 제주로, 학문이 뛰어났기에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붙여 줄게 틀림없었다.냉정언이 원경릉에게 물었다.“황후마마께서 저 아이에게 이름을 하사하시는 것은 어떨지요? 황실의 복을 조금이라도 입었으면 해서요. 이 아이가 전에 고생이 많았거든요!”“제가요?” 원경릉은 당황스러웠다. 어제 냉정언이 옷 가지러 입궁했을 때 듣고 괴로웠던 것이, 아이의 얘기라 특히나 감정 이입이 됐다.“황후 마마께서는 많은 복이 있으시니 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면, 첫 번째 복은 받은 셈이 될 것 같습니다.” 냉정언이 말했다.원경릉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우문호가 소월전으로 돌아왔다가, 원경릉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 가는 대로 한마디 했다.“그럼, ‘냉명여’로 하지. 포부가 원대하고 ‘한 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한다’라는 일명경인의 ‘명’, 임금이 내린다는 뜻의 ‘여’로. 짐이 이름은 좀 지을 줄 알아서 말이야.”냉정언은 평소처럼 아이를 흘끔 바라봤다.“어서 폐하께 성은이 망극하다고 인사드리지 않고 무엇하느냐?”아이는 털썩 꿇어앉았다. 황제가 이름을 지어 준 것이 얼마나 엄청난 복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냉정언이 무섭기만 했다.우문호가 손을 뻗어 아이를 일으켜주며 따스하게 말했다.“겁먹지 마, 네 아버지는 조금도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에게 아주 잘하셔.”아이는 뒤로 움츠러들며 원경릉 뒤에 서서 두려워했다.냉정언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는 여전히 냉정언 뒤에서 쭈뼛거리며 냉정언을 화나게 했다.냉 부인은 원래 두 사람을 집으로 돌아와서 살게 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에 냉정언을 쫓아낸지라 지금 불러들이기엔 체면이 서지 않고, 또 바로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었다. 이 아이는 기왕 이
계란이가 8살이 되자,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사부 기화와 사모 월아와 다섯 오빠도 함께 했다. 떡들은 7월에 대입을 치러야 하는데, 조금도 긴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명문 대학이든 십중팔구 합격 아니겠어? 2년 전에도 가능했지만, 엄마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어렸을 때보다 너무 잘하지 않도록 애쓴 것이었다.생일잔치는 비교적 조용히 치를 예정으로, 가까운 친척과 친구만 아이들과 함께 오라고 했다. 계란이가 현대에 가있긴 했지만, 동년배 아이들이랑 마음이 잘 맞는 것이, 1년에 2번씩은 같이 놀았기 때문이다.사식이는 둘째를 낳았는데 아들이 태어난 지 이제 두 달째라 장녀인 사탕이가 동생을 책임지고 데리고 있었으며, 계란이에게 남동생이 있다고 자랑하며 으쓱대기도 했다.구사 딸인 수아도 남동생이 있었는데, 원용의도 올 초에 막 회임을 해서 지금 배가 상당히 컸는데 보배도 곧 남동생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계란이는 웃으며 조금도 부러운 내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내심 남동생이 가지고 싶었다.8살 계란이는 침착한 성격으로 예전 원경릉과 아주 닮았고 사모인 월아와도 매우 닮았다.그러나 이 침착한 겉모습 뒤에 어떤 마음이 감춰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계란이가 처음 냉명여를 봤을 때, 그는 홍엽 뒤에서 원숭이를 안고 여전히 겁이 많았지만, 무공을 반년 정도 수련해 막 왔을 때보다 아주 좋아져 있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원숭이랑만 놀고 있었다.계란이가 냉명여 앞에 서서 물었다. “홍엽 삼촌 원숭이를 어떻게 널 주신 거야?”냉명여가 계란이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약간 경계하는 듯했다.“넌 이름이 뭐야?” 계란이가 물었다.“냉명여, 황제께서 이름을 하사해 줬어.” 그가 말했다.계란이가 엷은 미소를 띠었다.“우리 아빠가 붙여주셨다고?”냉명여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빠라고? 아빠가 황제야?!”“응!” 계란이가 그의 뾰족한 턱을 들여다봤다.“넌 누구 동생이야?”“전 누나도 없고, 형
냉명여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예, 아버지!”냉정언에겐 그저 지나가는 농담에만 불과했지만, 냉명여는 마음에 꼭 새기며 앞으로 자신의 임무는 누나를 잘 보호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계란이의 8살 생일 잔칫날, 우문호가 성지를 내려 계란이를 조양진국의 공주로 책봉했다.계란이는 신조를 안고 붉은색 봉황 겉옷을 입은 채 복도에 미소를 띠고 서 있는데, 8살 아이인데도 경국지색의 미모에 기품이 풍기며, 방금의 장난기는 어디 가고 침착하고 의젓하게 변해 있었다.진국공주란 이름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일잔치가 끝난 후, 우문호와 계란이는 어화원을 거닐며 소화를 시켰고, 원경릉은 떡들과 대입에 관해 얘기하며 경험을 전수했다.1년에 고작 2번 돌아오는 계란이가 이렇게 순식간에 커서 8살 꼬마 숙녀가 되었다. 딸 손을 잡고 차분하고 아리따운 옆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과 함께 또 너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다 컸지만, 아직은 정식으로 우문호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사부님이 얼마나 더 있으면 돌아올 수 있겠다고 하셨니?” 우문호가 부드럽게 물었다.“후년이요!” 계란이가 아빠에게 기댄 채, 겉옷 자락을 바닥에 끌자, 금박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며 따스해서 오늘 냉명여와 얘기할 때와 전혀 달라 보였고, 다른 여자애들과 같이 있을 때와도 그랬다.그제서야 우문호는 안심할 수 있었다.“후년이라… 후년이면 넌 열 살이 되겠구나!” 우문호는 이번엔 2년이라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딸이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랬다.하지만 딸이 돌아오면 10살이고 7~8년 후면 혼담이 오갈 거로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다.천신만고 끝에 얻은 금지옥엽 같은 딸이, 곁에 얼마 있지도 못하고 벌써 이만큼 커버린 것이다.“공부는 어때?” 우문호가 물었다.“전부 만점이지요!” 계란이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러자 우문호도 웃으며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계란의 생일 연회가 지난 지 3일이 되어서야 셋째 위왕이 도성에 도착했다.그는 궁으로 향해 황제를 만나 예를 올린 후 우문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문호는 편지를 늦게 보내는 바람에 다급히 달려왔지만 결국 계란이의 생일을 놓쳤다며 변명했다.우문호는 그가 형의 태세를 보이자 어쩔 수 없이 연회를 크게 할 생각도 없이 그저 편지로 생일을 알렸을 뿐, 귀경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다고 사죄 했다.위왕이 조금 화를 내며 말했다."조카딸을 못 본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귀경을 말라고 하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세월이 흘러 위왕의 눈가에는 주름이 생겼고 검붉은 얼굴에 점점 더 의연해진 이목구비가 돋보였다. 마른 체형에 큰 눈은 밤낮으로 길을 재촉한 후 많이 붉어 있었다.걸치고 있던 검은색 망토를 툭 털고 나니, 먼지가 폴폴 새어 나왔다. 그는 예를 차리지 않고 다리 한쪽을 올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변방에서 구속받지 않는 성격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우문호가 목여 태감에게 당부했다."셋째 큰아버지가 왔다고 공주에게 전하고 공주를 데리고 오게."목여 태감은 예를 올리고 자리를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란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계란은 선하고 인자한 목여 태감을 아주 좋아했고 그에게 잘해주었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목여 태감의 선물을 빼놓지 않았고 목여 태감도 그녀를 예뻐했다.위왕을 본 계란이는 아주 기뻐 다급히 예를 올리자, 위왕이 그녀의 손을 잡고 흐뭇하게 훑어보았다.계란이가 장난스럽게 혀를 내둘렀다."셋째 큰아버지, 드디어 오셨습니까?""우리 계란이가 이렇게나 예쁘게 컸구나!"위왕이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생하면서 오느라 쌓였던 피곤함도 그녀의 미소를 보자마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셋째 큰아버지!"계란이는 소매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위왕에게 건네주었다."제가 가져온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는지 보십시오!"위왕이 웃으며 말했다."아이고, 선물까지 준비한 것이냐? 무슨 물건인지 봐야겠구나."상자를 열어보자, 안
"그건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입니다!"우문호가 다가가 그의 안경을 벗기고 말했다."쓰지 말고 잘 넣어두십시오!"위왕은 손을 뻗어 선글라스를 빼앗아 상자 안에 넣고 소매 주머니에 챙겨 넣은 후 그제야 등에 이고 있던 배낭을 풀어 안에서 소매에 넣는 작은 화살 기관을 꺼냈다. 그는 계란이의 손목에 기관을 채운 후 말했다."이것은 암기 기관이다. 기관을 누르면 작은 화살을 쏠 수 있어 쓰기 좋더구나.""여자아이한테 어찌 무기를 선물하는 것입니까?"우문호가 물었다.하지만 오히려 선물이 마음에 든 계란이는 기관을 열어 연구를 시작했다. 작은 상자에는 이쑤시개보다 작은 화살 수십 개가 들어있었는데, 검게 칠해진 기관은 아주 정교해 보였다."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계란이가 위왕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셋째 큰아버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릴 테니 약도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그래!"위왕은 단번에 승낙한 후 우문호를 버리고 계란이와 함께 갔다. 몇 걸음 걷다가 그는 멈춰 서서 선글라스를 끼고 으쓱대며 우문호를 힐긋 본 후 계란이와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라 목여 태감을 힐긋 보았고 목여 태감은 다급히 예를 올렸다."저는 공주마마를 모시러 가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목여 태감도 그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너무 하는구먼!"우문호는 콧방귀를 뀌고 상소문을 보러 들어갔다.계란이는 위왕에게 술을 권해 위왕을 취하게 만든 후, 약도성의 일을 전부 알아냈다.약도성의 영주는 계란이고 저택도 이미 짓고 있었다.한편, 주 아가씨는 낭자군을 데리고 반란을 평정했다. 하지만 약도성은 다른 성보다 훨씬 복잡했다. 부근에 있는 도적 무리가 도성의 여인들을 괴롭히고 혼란을 일으킨 북막인들도 약도성에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주 아가씨가 힘들긴 할 테지만, 그래도 2년 동안은 지원을 받아 잠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다만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약도성 북쪽에 가까이에 있는 금나라이다. 2년 동안 사람을 보냈는데, 약도성이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