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정무회의를 마치고, 우문호는 냉정언과 홍엽에게 남았다가 어서방에서 잠시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그는 아주 낙담한 모습으로 긴 한숨을 내쉬는데, 홍엽과 냉정언이 서로 눈을 맞추며 ‘이거 또 무슨 꿍꿍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 땐, 예전 모습 그대로 서로를 군신이 아닌 친구처럼 대했다.냉정언이 편하게 물었다.“왜 그래?”우문호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정언아, 엽이야,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나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아.”“어? 잠자리가 마음같이 안돼?” 홍엽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그러자 우문호가 화가 난듯 홍엽에게 붓을 던졌다.“마음같이 안되는 건 너고, 상대도 없는 게 어디서!”홍엽이 킥킥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그럼,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냉정언은 예상이 되는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애들이 다 커서 곁을 떠났는데,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아직 내 딸이 옆에 있잖아?” 우문호가 홍엽에게 눈을 부라렸다.“내 딸이야, 우리 딸 아니거든.”“똑같지, 뭐, 네 꺼가 내 꺼고, 내 꺼가 네 꺼고.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쪼잔하게 나누고 그래.” 홍엽이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이건 원칙의 문제거든!” 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러자 냉정언이 나섰다.“기왕 이렇게 된 거 또 낳으면 되지!”“그건 불가능해.”“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우문호가 두 사람을 쳐다봤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희들 나이도 적지 않잖아. 이젠 본인의 인륜지대사를 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냐?”홍엽과 냉정언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쓸데없는 참견 하지마!”말을 마치고 각자 일어나 예를 취했다.“공무가 바빠서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투덜이는 무시하는 게 정석이지!우문호가 몸을 움츠리고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갔다. 시간이 남았을 땐 딸과 함께 있는 게 역시 최고였다. 반면, 원경릉은 그가 곁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 듯, 오늘 숙왕부에
다행히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무상황은 만두와 아이들이 그리워 원경릉에게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는데, 원경릉이 연말에 돌아와서 시끌벅적하게 함께 새해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무상황은 내심 아쉬웠지만, 지금 숙왕부에 사람이 많아서 가끔 증손자들이 생각나도 이내 왁자지껄한 무리에 이끌려가기에 다행이었다. 원경릉이 궁으로 돌아오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이 나이가 들어, 같이 사는 게 정말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으면 얼마나 고독하셨을지...’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나날이 그들에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우문호는 민심이 향하는 쪽으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느라 바빠졌고, 현대에 한 번 다녀와 인터넷 용어를 잔뜩 배운 것 외에도 국가 관리 정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중 교육, 의료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기에 나라에 전쟁이 없을 때, 백성의 수준을 높이고 교육을 진흥하고 의료를 개혁하기로 했다.의료 개혁 방면에서는 원경릉과 할머니가 주도했다.교육을 추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조정은 아직 의무 교육을 시행할 단계는 아니라, 그저 공부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제창해 더 많은 아이가 공부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우문호가 조례를 발표해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아, 일개 주나 부에서 입학률이 50%를 넘으면 해당 관리 인사고과에 대대적으로 가산점을 줄 예정이다.우문호는 교육부를 설립하고 각지의 교육 상태를 책임지고 전담 감독하며, 교육 모델을 만들도록 했다.학교를 세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조정은 전국에 학교를 세울만큼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 민간의 기부금을 통해 조정과 지방 관아가 연합해서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 목표는 현마다 조정이 개설한 학교를 2곳 이상씩 두는 것이었다.이건 향후 10년 계획으로 전반기가 비교적 힘이 들 예정인데, 어떤 정책이든 마련해 내보내면, 시행이 쉽지 않은데다가 특히 교육 쪽은 더욱 어려웠다.북당은 농업 국가로 최근 몇 년간 경제를 개발하고 무역에서 괜찮은 성
떡국을 먹은 후, 모두 적성루에 모여 새해를 맞기로 했다.적성루가 원래 크지 않은 데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은 대부분 담장 위에 쭈그리고 앉거나, 지붕을 가득 메웠다. 담장 아래에서는 술을 마시고 허풍을 떨며 논쟁을 벌이느라 시끌벅적했다.아이들은 눈 늑대, 호랑이, 개들과 같이 밖에서 뛰어다니느라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행히 밖이 넓어서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었다. 여자들은 본관에 자리를 잡았는데, 적성루는 본관도 크지 않아 여자들이 모이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전부 꽉 찼다.멀리서 폭죽 소리가 들리자, 옆 저택에 있는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온통 기쁨으로 일렁였다.태상황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험난했던 보물찾기 사건을 얘기하는데, 감히 안풍 친왕을 원망할 수는 없었지만 어른,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던 차에 그들 또한 관심을 보여서 한바탕 얘기를 늘어놓게 되었다.처음엔 그냥 가볍게 얘기 하는 분위기였는데 누군가 무공을 겨루자고 제안을 하는 바람에, 마당에 빈 곳을 찾아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먼저 대결을 펼쳤다. 그들의 검법은 전혀 우아하지 않은 것이 도처에 살기가 등등했으나, 오히려 상당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이어서 무상황도 소요공과 함께 몇 초식이나 겨뤘다.한창때 무상황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글로는 주 꼬맹이를 능가하고, 무예로는 소요공을 능가한다’ 결과적으로 글은 낫 놓고 기역 자도 겨우 아는 소요공을 넘었고, 무예와 무공도 글만 완벽하게 아는 주 꼬맹이를 능가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으니, 자기표현에 따르면 문무에서 전부 두 사람을 누른 셈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정신 승리에 불과했다.황제와 태상황을 맡던 시절 그는 무공 수련에 소홀했는데, 최근 1-2년 동안 다시 연습을 시작해 소요공과 몇 초식을 나누더니 분위기에 휩쓸려 아들 태상황과도 몇 초식을 겨루고 싶다고 했다.모두가 뜨거운 눈빛으로 그들을 주목하자 전 명원제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하얗게 질려 버렸다.그가 일어나 땀을
맞아서 전신이 쑤시고 아파진 전 명원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을 모질게 먹은 뒤 나뭇가지를 무상황의 머리를 향해 들었고, 무상황이 놀라서 얼른 수비 태세를 취하더니 벽공장을 옆에 홰나무를 향해 날렸다.하지만 이로 인해 커다란 허점을 보이게 되자, 무상황은 바로 엉겨 붙더니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무상황은 술기운을 빌린 김에 사실 명원제가 퇴임 후 무공이 얼마나 정진했는지 보고 싶었는데, 막상 겨뤄보니 약 먹은 병아리처럼 약해빠져 있었다. 그가 되받아치지 못한 건 그래도 괜찮지만, 무공이 너무 형편없었다.무상황은 약간 후회가 되긴 했다. 어쨌든 아랫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자리에서 아들이 체면을 구기면 자신도 마음이 불편할 것으로, 몇 초식 양보하고자 얼른 달려들었다. 바로 자기가 수비에 신경을 못 쓴 것을 아들이 눈치채도록 하는 것으로 이때 반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왜인지 전 명원제가 반격하지 않고 계속 피하기만 하는 바람에, 무상황은 결국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대결에서 지는 바람에 겨우 명원제의 체면을 유지하는 셈이 되어 버렸다.우문호가 얼른 다가가 무상황을 일으키며 다정하게 물었다.“황조부, 괜찮으세요?”무상황은 고개를 저었다. 전 명원제의 얼굴이 창백해져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고, 전 명원제의 체면이 구겨진 것을 보곤 우문호에게 말했다.“네 아바마마와 몇 초식 겨뤄 봐 봐!”우문호는 효심이 깊기에 아바마마에게 양보할 테니, 그럼 전 명원제도 체면을 좀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문호는 조금도 양보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바로 황조부의 구겨진 체면을 만회하는 것으로, 황조부가 원래 이겼어야 하는데 발에 걸려 지고 말았으니, 분명 마음속으로 기분 나빠할게 분명할 테니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드리기로 한 것이다.그래서 우문호는 나뭇가지를 들고 아바마마께 눈짓해 황조부의 체면을 살려드리자며, 짜고 치자는 의사표시를 전했다. 그런데 전 명원제는 우문호의 이 눈짓이 자기가 봐 준다는 걸로 오해하고는,
원래는 돈을 벌어들여도 시원찮을 정월 초하루부터, 생돈을 한 뭉치나 물어낸 우문호는 속이 쓰려 여동생을 잘 못 챙겼다는 핑계로 만두를 혼냈다.만두는 너무 억울했다. ‘아니, 여동생이 갑자기 불을 지를 줄 어떻게 알아요? 눈으로 찌지직 불꽃을 뿜는데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요.’하지만 아이들도 아빠가 여동생을 혼내는 게 싫었고, 잘못한 걸 알고 주눅이 들어 있는 여동생이 너무 안 돼 보였다.우문호가 딸을 안자, 딸은 고개를 아빠 가슴팍에 쏙 파묻으며, 정말 잘못한 걸 안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속으로 2번이나 불을 냈는데 이대로 넘어가면 우문호가 또 계란이를 편애한다고 할 거라, 몇 마디 꾸지람을 하자 계란이가 울음을 터트렸다.우문호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계란이를 달래주지 않은 채 울도록 내버려뒀는데, 계란이는 아빠가 전처럼 그렇게 자기를 총애해 주지 않는 것에 울어도 소용없겠다 싶어 우문호의 소맷자락을 잡고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계란이가 잘못했어요.”하지만 우문호는 계란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자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기화가 3살까지는 억제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째서 아직 두 살도 안 됐는데 억제가 안 되는 거야? 전에 현대에 갔을 때는 시공간의 속박이 없어 불을 지를 수 있었다고 쳐도, 여기 돌아와서도 불을 낸 건 어떻게 된 거지?”“몰라.”우문호가 원경릉을 빤히 쳐다봤다.“당신이 모르는걸, 내가 어떻게 알아?”원경릉이 한숨을 쉬었다.“더 일찍 보내야 할 수도 있겠어.”우문호가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우연히 화재가 발생했던 게 아닐까?”원경릉이 그에게 말했다.“자기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칭찬해 줄게, 그런데 상황을 보면 자기 생각이 틀린 것 같아.”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달래주었다.“사실, 자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좀 일찍 보내는 대신 일찍 돌아올 수 있잖아. 안 그래?”“말이 그렇지, 이렇게 작은 아이가 엄마 아빠와 떨어지다니 너무 불쌍해.” 우문호는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1월 10일은 개학날이라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돌아가야 했다.이번엔 우문호와 원경릉 둘 다 현대에 다녀올 예정이라 조정 정무는 잠시 냉 재상에게 맡기기로 했다.우문호가 이번에 가는 주된 원인은 기화와 월아를 만나, 계란이가 3살까지는 능력을 억제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는 것이다.서일은 황제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따라갔다.전에는 현대를 두려워했지만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역시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현대에 도착한 우문호는 처가 사람들을 만나고 기화 부부에게 와서 얘기 좀 하자고 초대했다.계란이가 불을 내서 숙왕부가 탔다는 말에 기화도 놀라, 계란이를 안고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좀 더 일찍 아이를 제가 줘야 할 수도 있어요.”우문호는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막상 기화가 이렇게 말하자 역시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다시 한번 봉인해볼 수는 없나요?”“안 돼요, 그녀의 능력이 두 배로 증가해서 이렇게 누른다고 해도 바로 문제가 생길 겁니다.”우문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원경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원경릉도 섭섭한 게, 계란이가 조용히 기화의 품에 누워 있는 착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그녀가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우선 서두르지 마.”기화 부인 월아가 말했다.“아이를 우리 부부 손에 넘겨 주시면 안심하셔도 돼요. 계란이가 당신들 곁에 있을 때 받은 대우대로 우리도 계란이를 대할 테니까요, 절대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월아의 따스한 말은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우문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계란이가 구박받을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저 섭섭해서 그렇죠.”“누가 평범하지 않은 딸을 낳으래요?” 월아가 계란이 얼굴을 살살 쓰다듬는데 사랑이 흘러넘쳐 보였다. 아이들이 자기들 품으로 와서 있을 거란 것을 안 뒤로, 월아는 계란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오길 많이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계란이 능력은 예측할 수가 없는 게, 우리 상상을 초월해요.”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실 계란이는 이곳에 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다. 계란이는 늘 오빠한테 붙어 있는 걸 좋아해, 오빠들이 북당을 떠났을 때 한동안 울적해 있기도 했다. 경단이 말이 사실 맞았다. 계란이는 부모 곁에 남아 있는 것보다 오빠들과 같이 있는 걸 더 좋아했다.우문호가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더 놀아주고 싶어도 조정 일이 많아 바쁘다 보니, 계란이는 아빠를 볼 수 없고, 우문호도 자러 가는 길에 잠든 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밤새 원 선생과 상의 끝에 어려운 결단을 내려, 계란이를 여기 현대에 남겨두기로 했다.딸은 일반인과 다른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배워야 했다. 게다가 딸이 오빠들과 있기를 원해서, 딸만 좋다면 아무리 섭섭해도 역시 자신을 타이르는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1년에 2번은 돌아올 예정이고, 한 번 올 땐 2달씩은 머무를 수 있으니, 1년에 4개월의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이렇게 계란이와 신조는 현대에 남기로 하고, 부부는 크고 작은 봉지를 짊어진 서일을 데리고 쓸쓸히 돌아갔다.섭섭해, 섭섭해, 너무 섭섭하다고.가는 길에 원경릉은 눈물을 터트렸다. 우문호도 울고 싶어 코끝이 찡해지며 괴로웠다.경호로 돌아가서 마음이 텅 빈 듯 원경릉 손을 잡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는데, 곁에 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목 놓아 울었다. 우문호가 계속 아이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바람에, 원경릉은 자신의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자, 마음속에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눈물이 터져 버렸다. 결국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달래주고 나서야 겨우 울음을 멈췄다.서일도 좀 괴로웠다. 본인도 공주를 보내는 게 내심 섭섭했었다. 경성으로 돌아와 며칠간 괴로웠으나 생활은 여전히 계속됐다.아이들이 곁에 없으면 심장의 절반이 사라진 듯, 아주 힘들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익숙해지더니, 많은 시
기화가 놀라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제가 미쳤어요, 여기 살게? 여기는 인터넷 쇼핑도 없고 배달도 안 되고 게임도 없는데, 이런 낙후한 데서 어떻게 살아요?”그러자 북당 황제인 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낙후? 낙후됐지, 그럼 안 그럴 수 있어? 현대랑은 시공간부터가 다른데.근데 다른 나라들이랑 비교하면 북당에 대체 어디가 낙후됐다는 거야?’그러나 우문호는 기화에게 함부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딸이 그 집에 있으니, 비위를 잘 맞추며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아이들은 이미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뒀기 때문에 한 달 있다가 돌아가야 했다.원 교수 부부와 원경주가 그 세계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번갈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었다.그래서 원래는 거의 2달간 방학이지만 한 달만 머물 수 있었다.아이들이 가고 나면 다시 겨울 방학까지 기다려야 했다.교육과 의료는 점점 궤도에 올랐으나 한 나라를 다스리자니 잡다한 일이 많아서 우문호는 여전히 바빴고, 오히려 원경릉은 다시 여유가 생겼다.겨울 방학에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계란이는 전보다 키가 꽤 컸고 턱이 뾰족해진 것이 훈련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기화 말대로 난이도가 높아지긴 한 것 같았다.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침착해졌고, 특히 만두는 점점 맏이 티가 나서 동생들을 상당히 자상하게 챙겼고, 동생들도 만두 말을 참 잘 들었다.섣달그믐 밤, 계란이가 다시 불을 냈지만, 이번엔 화염을 제어하는 것을 시연한 것으로, 지켜보던 숙왕부 어르신들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천재로군.’신조 털도 원래보다 예뻐져서 점점 꼬리에 불같은 붉은 색을 띠었다. 계란이가 시연을 마치자, 신조도 숙왕부를 한 바퀴 돌며 꼬리를 쫙 펼치니 불꽃을 끌고 가듯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이렇게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몇 번 오간 끝에 계란이의 7살 생일이 다가왔다.7살 계란이는 키가 120cm로 매우 아름답게 성장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